"쿠니키타 씨, 다자이 씨 못보셨나요?"

 

 "다자이 라면 사장님-"

 

 "다자이 씨 오늘 출근안하셨어요!"

 

 켄지는 해맑게 웃으며 언제나 처럼 답했다. 그리곤 무슨 일이라도 있냐는 듯 눈을 끔뻑였다, 물론 해맑게.

 

 "뭐- 다자이 그 자식이 출근을 안했다고?!"

 

 "어라어라 아침부터 무슨 소란일까나- 쿠니키타 군."

 

 "다자이가,"

 

 "방금 귓청 떨어지게 들어버려서 알고 있으니까 반복할 생각하지마. 시끄러운 남자는 치료 중 이외에는 질색이니까."

 

 장갑을 끼지 않은 손을 허공에 내저으며 요사노는 질렸다는 얼굴을 내보였다. 남은 한 짝의 장갑을 끌어올리는 동안 쿠니키타는 못마땅하다는 내색을 비췄지만 소용은 없었다.

 

 "오호라 이 상황은-"

 

 "란포 씨!"

 

 상황을 타개할 만한 인물의 등장에 아츠시는 책상을 치고 자리에서 박차고 일어섰다. 란포는 안주머니로 부터 안경을 꺼내들었다. 초추리를! 기대에 가득 찬 눈으로 안경의 이음새에 손을 얹은 채 고개를 주억이며 그렇군 이라며 중얼거리는 란포의 행동에 아츠시 뿐만 아니라 모두가 입을 다물고 주목했다.

 

 "쿠니키타 군이 요사노 씨에게 질책을 당하고 있었군. 그것도 쓸데없는 행동을 반복했기 때문이지."

 

 "역시 란포. 명탐정이시네."

 

 일제히 같은 행동으로 모아졌다 모두 다른 행동으로 퍼져버렸다. 아츠시는 김 빠졌다는 양 의자로 도로 주저앉아버렸고 쿠니키타는 반문하고 싶지만 그럴만한 여력이 없어보였다. 켄지는 처음부터 그다지 신경쓰지 않았다는 눈치지만 사실 그 편이 아니라 란포가 말하는 것을 예상하고 있었다는 얼굴이였으며 유일하게 요사노는 두 손을 맞잡으며 웃어주었다. 

 

 "내 이능력- 초추리만 있으만 뭐든지 가능하단 말씀이지."

 

 "어째서 이렇게 돌아가냐는 말이다."

 

 "추가적으로 쿠니키타 군이 요사노 씨에게 혼나고 있었던 이유는-"

 

 "말하지마! 됐어! 이제 됐다고!"

 

 "어머, 쿠니키타 군. 예의가 없네. 지금 한창 명탐정님의 추리 해설 중인데."

 

 "그래, 가만히 앉아서 듣기나 해."

 

 "-그래라, 알아서들 해라."

 

 "다자이 씨가 출근을 하지 않았고, 물론 그 질문은 누구보다 저기 우리의 신입군! 아츠시의 발업이 시발점이겠지. 당연스레 사장님과 면담이라도 할거라고 예상한 쿠니키타 군에게 들려온 답변은 출근을 하지 않았다- 라는 예상 밖의 그런, 답변."

 

 또 한건을 멋지게 해결해냈다는 성취감에 가득 찬 몸짓으로 고고하게 안경을 벗어 도로 안주머니로 집어넣는 란포가 결착을 지었다.

 

 "맞았지?"

 

 "니 추리가 틀릴리가 없잖아."

 

 "그렇다는 말씀-!"

 

 제 자리로 구두굽 소리를 내며 쿠니키타를 지나친 란포는 망토 격의 외투를 펄럭이며 존재감을 과시했다. 아츠시는 그런 란포와 굳어버린 쿠니키타를 번갈아 보다 꽤나 조심스런 발걸음으로 란포에게 향했다.

 

 "저어- 그렇다면 다자이 씨, 왜 오늘 출근하지 않으신걸까요?"

 

 "그거야 나도 모르지."

 

 "에-! 하지만 란포 씨의 초추리는!"

 

 "내 초추리로 알지 못하는 것은 없어!!"

 

 "그렇다면 어째서-!"

 

 곤란하다는 표정에 가느다란 실눈이 모습을 드러냈다. 아츠시는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뭔가 건들여서는 안될 것을 건들여버린것만 같아 초조하게 식은땀으로 가득찬 주먹을 쥐었다 펴기를 반복해댈 뿐이였다. 란포는 주먹을 쥐고 책상을 내리쳤다.

 

 "당연히!"

 

 "당연히?!"

 

 "당질 OFF- 다.."

 

 기세 좋게 내리친 주먹을 감싸쥐고 방금까지만 하더라도 보이던 의기양양한 모습은 사라져버린 채였다. 책상에 뺨이 달라붙어라, 누군가 누르기라도 하는 마냥 늘어져 기운 빠진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더불어 뱃가죽이 울리는 소리까지 덤으로.

 

 "아."

 

 무언가 깨달아버리고 말았다는 기괴한 얼굴로 아츠시는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건들이면 안되는게 아니라 알아서는 안되는 것도 아니라 알고 싶지 않은 란포의 이면이였다. 그렇구나. 쉽게 납득이 가면서 진지함이 빠져나갔다.

 

 "자- 이거라도 먹어라."

 

 "오오 그것은!"

 

 "그래. 니 당분이니까 먹어둬."

 

 "내 돈 주고는 절대 사먹지 않는 초코바로군."

 

 어디서 기운 빠지는 소리가 났다. 더불어 쿠니키타의 안경이 반으로 갈라지는 소리도 났다.

 

 "어이. 란포- 너 말이야,"

 

 "하지만! 예외는 존재하는 법이지. 그-! 러니..받아두도록 하겠어..이번 뿐이니 우쭐해지지 말라고, 쿠니키타 군."

 

 아츠시의 입가가 무리하게 올라갔다. 아아- 확실히 이런 사람이지. 란포 씨는.

 정말 힘이라곤 없는 건지 비닐 포장지 하나 제대로 뜯지 못하고 자꾸 헛탕을 쳤다. 보다 못한 쿠니키타는 란포의 가냘픈 손에 들린 초코바를 빼앗아들었다.

 

 "역시 네 놈이란 녀석은."

 

 귀찮아하는 기색을 내비취면서도 제대로 벗겨 먹기 쉽게 포장지 부분을 접어 손에 쥐어주었다. 아츠시는 익숙하면서도 별 수 없다는 얼굴을 한 쿠니키타를 향해 두 눈을 끔뻑였다.

 

 "말하고 싶은게 있으면 말하란 말이다!"

 

 "아니- 그 화낼지도 모르지만, 쿠니키타 씨는 상냥하시네요."

 

 카운터. 그것도 아주 제대로 들어맞아버리고 말았다. 재밌다는 듯이 요사노는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아츠시와 '주변 녀석' 들을 관찰했다. 예상대로 쿠니키타는 이제 전투 불능. 얼어버린게 꼴 좋다고 말한만 했다. 분명 상대를 잘못 골랐다는게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이겠지. 요사노는 중얼거렸다.

 

 "뭐, 뭐라는거냐, 네 놈은..! 쓸데없는."

 

 "그러시면서도 주위 사람들 잘 챙겨주시잖아요. 저도 그렇고."

 

 "돼, 됐으니까 일이나 해."

 

 "네에."

 

 란포는 질린 얼굴을 해가며 질긴 모양인지 몇 번이고 재차 씹기만을 되풀이했다. 목구멍 너머로 -란포의 표현을 빌리자면- '싼 맛' 이 흘러들어가자 그나마 살겠다 라며 얼굴이 펴졌다. 그 사이 제 자리로 돌아간 아츠시는 오늘 자 신문을 훑어보다가 묘한 좌측의 부제를 두 번째로 깨달아야했다.

 

 "그러고 보니, 다자이 씨는 정말 어디가신 걸까요?"

 

 "어딘가 강에 쳐박혀 있겠지."

 

 "또 자살방법 실천 중일걸, 아마-."

 

 "단순히 일 하기 싫은게 아닐까요?"

 

 "귀찮아."

 

 윽-. 속으로 적당히 골라낸 무장 탐정사의 일원들의 해답은 애석하게도 부정하기 어려운 것들 뿐이였다. 틀렸다고 반박할 수가 없잖아. 게다가 자신보다 다자이를 오래 동료로 둔 동료들의 의견이니 신빙성도 있고. 아츠시는 머리를 헤집으며 넓게 책상의 반 이상을 차지하는 신문 위로 쓰러졌다. 아아- 정말 어디 가신거야.

 

 소 몰기 좋은 날이네요. 창가에 선 켄지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오늘 날씨가 정말- 좋아요."

 

-

 

 "아아- 분명 쿠니키타 군 화낼텐데에."

 

 뭐 어쩔 수 없지. 조금도 걱정이 없다는 얼굴을 하고는 제법 호탕하게 소리를 내질렀다. 그의 계산 범위 내의 행동에 불과했다. 주변에는 사람이라곤 저 하나 뿐이였으니 말이다. 글라스 안에서 구 형의 얼음이 벽면의 유리와 맞닿이며 화합을 맞췄다. 날씨 탓인지 기어코 택시를 타고 왔건만 하필 택시에서 해가 비치는 곳에 둔 탓인지 미묘하게 짙은 알코올 향내 사이를 비집고 머금은 한 모금의 끝맛은 물이였다. 이걸 어쩌면 좋담. 조금만 마시기로 오자마자 당당히 건낸 약속치고는 너무 얄팍하기 그지없는 노릇이였다. 입맛을 다시며 상대를 바라보았다. 웃었다.

 

 "오랜만이잖아. 이 정도는 봐줘."

 

 검은 비닐 봉투 속으로 밀어넣은 손 끝에 달랑이며 끌려올라온 것은 당연히 술병이였다. 다 안마실거니까 그런 눈으로 보지 말아줄래. 입을 삐죽이며 달그락 하고 병을 열었다. 특별히 내 월급으로 사온거니까 말이야- 이 정도는 마시게 해달라고. 툴툴 거리면서도 단숨에 미미하게 섞여나는 물을 들이켰다. 빈잔은 채워야하는 법이라고. 신나게 위에서 아래로 내리붓던 병을 급하게 기울였다. 거품이 여기저기 올라온게 딱 반 잔 즈음 될 법했다. 좋아, 이 정도로 타협하자. 손등 언저리 까지 감은 붕대에 물기라도 닿을새라 조심스레 검지를 내려 기포를 터뜨렸다.

 

 "있잖아, 나 얼마 전에 미인을 찾아버렸는데 나랑 같이 동반자살을 부탁했더니 차여버렸어."

 

 그것도 웃는 얼굴로. 울렁였다. 히죽이는 얼굴로 들이켰다. 도로 뱉었다. 잔기침으로 명치를 두어번 가볍게 치댔다. 자네도 이 쯤되면 익숙해지란 말이야. 아무 말 않은 채 삽시간에 얼굴이 굳어버렸다.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려다 보았다. 얼기설기 뒤섞인 앞머리에 눈이 따끔거렸다.

 

 비올거 같아. 

 

 눈 앞이 돌았다. 얼마 마셨다고 꽤나 빨리 오른 취기에 바람 빠지는 소리를 냈다. 있잖아, 나 여기서 술주정 부려봐도 되려나. 뭐, 안된다고? 어째서. 그 편이 더 재밌을게 뻔한데. 아아 알았으니까 잔소리는 그만. 술잔을 요란스레 내려놓으며 두 손으로 귓가를 감쌌다. 더는 안들을거니까 그런 줄 알아. 고개까지 홱 돌리며 온몸으로 반항을 해댔다. 그러다가도 살며시 눈을 떠 옆을 흘겨보자 순식간에 사그락 거리는 바람 소리와 함께 흩날려버리고 마는 꼴이였다. 알잖아, 자네한테 화 못내는건. 푸스스 웃었다. 동시에 두 다리를 끌어모아 안고 고개를 내리박았다. 알아. 이렇게도 잔인한 결말.

 

 "자네가 쓰고 싶었다는 결말은 이런거였어?"

 

 중얼거려봤자 닿기는 커녕 안에서 맴돌기만을 되풀이했다. 또 다시, 또.

 

 있잖아, 있잖아. 달그락 거리는 빌어먹을 화합이 귓가에 거슬렸다. 떨리는 손으로 그 따위 젖는게 두려운게 아니라며 글라스 안의 얼음 덩어리를 꺼내 집어던졌다. 분명 풀숲으로 떨어져버리고 말았으리라. 보기 좋게 산산조각이라도 났으면 기뻤을텐데. 작게 중얼거렸다. 작은 소란에도 여전했다. 내면에서 끓어오른게 화근이였다. 가끔 이렇게 주체 못하곤 날뛰어버리는게 편하다 해도 장소는 한정적일 수 밖에 없는 노릇이였다. 기인 취급을 넘어선 자살 매니아의 별난 놈 이상으로 대해지는데 선이라도 넘었다간 분노 조절 장애 라는 명예까지 끌어안아야 했다. 그 만큼은 절대 사절이였다. 매번 그렇게 삭히고 삼키고 넘기고 참고 억눌러봐야 결국 행선지는 정해져있었고 당연히 거부감 따윈 없었다. 슬프게도 그마저 예상행동 범위 내였다.

 애초부터 다자이 오사무 라는 남자가 그랬다. 딱히 이능력이 미래를 예측한다던가의 대단한 남자는 아니였지만 굉장한 남자였다. 사람이다. 순수하게 머리가 좋을 뿐일지도 몰랐다. 다만 까마득히 기억하는 옛 기억 속에서부터 머리 굴리는데는 일가견이 있다는 정도였다. 그런 말이 있다. 

 

 '적들에게 유감을 표해야하는 이유라면 그들이 다자이 오사무를 적으로 두었다는 점이다' 라는.

 

 계기가 어찌되었든 옛 '친우' 의 한 마디에 제 인생을 뒤집어버린 사람이였다. 애정을 내보여도 그조차 허투루 하는 짓에 불과했고 진심은 삼키는 사람이였다. 그 마저 몇 해전 제 손으로 흩어져버린 친우의 온기와 함께 묻어버린 사람이였다.

 

 "부끄럼 많은 인생을 살아왔습니다- 자네를 포함해서."

 

 오다사쿠.

 

 알싸하게 톡 퍼지는 알코올 맛에 다자이를 양껏 머금었다 삼키곤 혀를 내밀어보였다. 술맛도 다 떨어져버렸는데 책임지셔야겠어. 빈 잔 속은 물기로 젖어들어 벽면에 매달린 물방울이 아래로 흘러내려 모여 다시 한 모금을 만들어냈다. 화하게 올라오는 알딸딸한 기분에 피식 웃으며 아래는 술, 위는 물로 분리되어버린 오다사쿠의 잔에 부어주었다. 너나 더 마셔라. 고개가 절로 내리박혔다. 이유모를 따름이였지만 왠지 그의 앞에만 서면 낯 부끄럽기 짝이 없었다. 분명 그랬다.

 

 "오랜만에 죽기 싫어졌다. 진짜."

 

 그리 중얼거리는 다자이의 눈이 감겼다. 오다사쿠, 나-.

 

 "묘 앞에서 술주정이냐, 다자이."

 

 "-내 반쯤 또렷한 정신이 이 목소리는 츄야라고 말해주고 있지만 믿고싶지 않은걸."

 

 "썩 꺼져. 망할 다자이."

 

 "간부님께서 이런 누추한 곳까진 무슨 일이시래."

 

 "보스 명령. 그러니까 비키라고 썩을 놈아."

 

 "보스?"

 

 "그래. 기일이잖아. 네 놈때문에 챙기시는 모양인데. 조직에서 나가서 까지 일거리나 만들고 징한 놈이다. 넌."

 

 어깨가 미미하게 들썩였다. 츄야는 못마땅하단 얼굴로 미간을 구기며 억지로 집어든 것 마냥 보이는 꽃바달을 상체를 숙여 언저리를 내려놓았다.

 

 "뭐가 우습다는거야."

 

 "-츄야."

 

 "뭐."

 

 "부탁이 있어."

 

 "내가 들어줄거 같냐."

 

 "응. 그야 들을 수 밖에 없잖아."

 

 츄야는 팔짱을 끼고 흩어진 머리칼 사이로 보이지 않는 다자이의 얼굴을 응시했다. 유감스럽게도 이유가 어찌되어도 그가 하는 말이 틀렸던 적이 없다. 굴욕스럽지만 사실이였다. 쳇.

 

 "이거, 츄야의 능력으로 비가 오는 것 처럼 해줘."

 

 "술-반 물 반인데, 애초에 난 젖기 싫거든."

 

 "괜찮아, 나한테만 하면 되니까."

 

 오다사쿠 앞으로 내주었던 잔을 건내었다. 물론 시선은 여전히 오다사쿠에게로 향해 있었다. 떨떠름한 표정임에도 츄야는 잔을 건내받았다.

 

 "뭘 바라는거야."

 

 "비. 비가 내리면 돼."

 

 "공격이라도 해달라는건 아닐텐데."

 

 "지금 여기서 날 공격한다해도 츄야 성격에는 못버틸게 분명하잖아. 그야 정정당당하게 힘으로 꺾은게 아니니까 인정 안할거야."

 

 "망할 놈."

 

 "대신- 내가 츄야에게 빚지는 셈이지. 내가, 이 다자이 오사무가 츄야에게 부탁을 했다 라는 거지."

 

 그제서야 얼굴을 들어보이는 다자이와 영문을 모르겠다는 츄야의 시선이 맞닿았다. 싫어? 그 한 마디는 선악과와도 같았다. 뿌리쳐야 장래에 득될 것은 뻔한데 도무지 그럴 수가 없었다.

 

 "네 놈이 빚지는 꼴이라면 볼만하겠군."

 

 푸스스 웃어보이는 다자이에 츄야는 한숨을 쉬었다. 잔에 든 것을 손바닥에 붓자 흘러내리려던 찰나에 다자이의 위로 모여들었다. 그리곤 일순간의 소나기와 같이 하염없이 내렸다. 여우비같아. 중얼거렸다. 빌어먹으리만큼 좋은 날 알코올과 물을 기꺼이 온 몸으로 받아내는 다자이도 이해할 수 없었지만 제 귀중한 개인 시간을 깨 이 까지 왔건만 왜 이런 허무맹랑한 부탁을 들어주고 있는지도 알 길이 없었다. 그리고 몇 번이고 어깨아래까지 젖어들 때까지 비는 내렸다.

 

 "오다사쿠. 비, 그치지 않는 모양이야. 안그쳐면 좋겠다. 응, 안그치면 좋을텐데."

 

 그러고 보니 그 날도 비가 왔었던가.

 

기어코 마지막 한 방울이 뺨을 타고 흐르자 다자이는 일어섰다. 츄야는 젖은 손바닥을 허벅지면에 슥 밀어 닦아내며 고개를 떨군 다자이를 바라보았다. 각별했던 사이라는 것 쯤은 알고 있었다. 단순히 안다는 것과 눈으로 보는 것은 큰 차이였다. 이 조차도 알고 있었다. 조금은 우스웠다. 비틀거렸다. 시선은 천천히 가라앉았다.

 

 "역시 술주정이였냐."

 

 "츄야-."

 

 "야, 야!"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한 걸음 내딛어 츄야의 어깨 위로 얼굴을 묻었다. 차마 아래를 향하지 못한 빗방울이 검은 원단 위에 짙게 자리했다.

 

 "나- 한 번만 괜찮다고 해줘."

 

 질겁하며 다자이를 밀어내던 손이 멈칫했다. 힘없이 기댄 것이라곤 머리 하나였다. 그토록 증오했고 미워했고 시기했던 작은 머리통 하나. 말해줘, 얼른. 위화감이였다. 비가 그쳐버렸어. 츄야. 동시에 괴리감이기도 했다. 츄야는 어정쩡하게 손을 올려 머리칼이 덮힌 목덜미에 어루만졌다. 그보단 손 끝으로 희미하게 긁었다가 더 가까울 행위였다.

 

 "괜-찮아."

 

 "한 번만 더."

 

 "괜찮아."

 

  오다사쿠, 비 그쳐버리면 어쩌지. 그쳐버린 기분이야.

 

 "끄, 끝나으면 니네 탐정사로 얼른 꺼지라고!"

 

 "머리 아파- 소리 지르지 마."

 

 "이 자식이!"

 

 "데려다 줘어. 어차피 츄야는 차 끌고 왔잖아? 감사의 인사로 내가 운전하고 싶어도 한 잔 해버린 상태고 환자라고, 나."

 

 "니 놈이랑 난 적이다. 잊은건 아니겠지."

 

 "하지만 태워다주면 한 잔, 사줄게."

 

 "지갑 털릴 각오는 됐냐."

 

 "츄야는 어린이니까 그만큼 못먹어요오."

 

 "어딜봐서 어린애라는 거냐!"

 

 "키. 다른 말론 신장."

 

 "한 판 하자는 걸로 받아들여도 되겠네."

 

 "무리무리. 환자에 술 마신 사람 상대로 이능력이라 그거 참 무섭네. 세상이 말세로다-."

 

 "니 놈에게서만큼은 듣고싶지 않아!"

 

 "그거야 나도 마찬가지거든."

 

 "다자이, 네 놈의 그런 면이 죽을만큼 싫다."

 

 "어라라 그래? 난 츄야의 모든게 싫어."

 

 소란을 뒤로 다자이를 휘적휘적 잘도 걸었다. 츄야는 이를 갈며 그 뒤를 쫓았다. 물론 고래고래 소리를 내지르며 말이다. 아아 츄야 어린이 시끄러워요. 이런 곳에선 조용히 해야되는거에요. 포트 마피아의 교육대도 내가 없으니 돌아가질 않는구나. 다자이!!

 

 "아차차."

 

 다자이는 급히 돌아와 비닐봉지를 코트 주머니 속에 밀어넣고 술병 채로 두 빈 잔을 채우곤 꽃다발의 언저리에 내려놓았다.

 

 "오다사쿠. 이제와서 언제나 말하지만, 역시 좋아했어."

 

 포트 마피아의 현 보스인 모리 오가이가 물었던 적이 있었다. 오다 사쿠노스케를 구하러 가야하는 합리적인 이유가 있느냐고. 그 때 그리 답했다. 친구이기 때문이노라고. 잔인하지. 다시 답하라 하여도 다자이의 답변은 변할리가 없었다.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것과 애정은 건너편에나 존재하는 것들이였다. 아마 깊이 애정하기 때문이라 답하였더라면 독방 신세라도 졌을 터였다. 이제와 후회한단들 늦었다는 것도 소용없단 것도 다 부질없단 것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사람 앞날은 모른다는 말이 괜히 있는 꼴이 아니였다.

 

 단언컨데, 오다 사쿠노스케는 다자이 오사무를 향해 있었다. 

 

 안고가 귀뜸 해줬던 것도 있지만 그 정도를 눈치채지 못할 다자이도 아니였다. 모른척했을 뿐이다. 상냥함은 전장에서 약점이나 다름없다. 죽지 않아야 했다. 살아남는 자가 정의라 누가 말했던가.

 

 "안오면 두고 갈테다!!"

 

 "아아- 츄야는 어른이 못된다니까."

 

 창백한 묘석 위를 찬찬히 쓸다 귓가를 때리는 츄야의 목소리에 인상 좋게 고개를 내저으며 어쩔 수 없다는 듯 발걸음을 돌렸다.

 

 "또 올게, 오다사쿠."

 

 역시 비, 그쳐버렸네.

 

-

 

 "네 놈은 어딜 가면 간다고 연락을 하란 말이다! 다들 걱정하잖아!"

 

 "그러는 쿠니키타 군은 걱정하지 않은거야?"

 

 "했, 안했, 해-"

 

 "어느 쪽인거야."

 

 "그래서 결국 어디 가셨던거예요, 다자이 씨."

 

 "으음- 뭐랄까."

 

 다자이는 책상 위에 구두 채 발을 올리고 골똘히 고민하더니 두통이 말끔해졌다는 표정을 지으며 아츠시를 향해 웃어보였다. 알겠다, 알겠어.

 

 "그래서요?"

 

 "동창회, 랄까나-"

 

 "다자이 씨가 동창회?"

 

 "응. 그리운 사람을 만나고 왔어."

 

 믿기지 않는다는 아츠시의 뺨을 콕 찌르고 빙그르 돌며 의자에서 벗어난 다자이는 당당히 문을 열고 나가려다 쿠니키타의 손에 잡히고 말았다.

 

 "이제 일 좀 하지."

 

 "그러려는 참인걸, 쿠니키타 군-."

 

 "어딜봐서 그게 일하려는 태도냔 말이다!"

 

 "다녀왔습니다- 다자이 씨도 안녕하세요."

 

 "켄지도 안-녕."

 

 "으에- 켄지 바닥에 물- 뭐하다 온거야."

 

 요사노가 질겁하며 몸을 뒤로 빼자 타이밍이라도 기다리고 있었는 양 이미 초추리를 위한 안경을 낀 란포가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켄지가 맡은 임무는 단순한 심부름. 이 시간에 물을 뿌리며 정리하는 가게는 없지. 가게 까지 세차장이나 분수 조형은 제로! 그렇다면-!"

 

 "그, 그렇다면?"

 

 여전히 초추리에 흠뻑 빠져든 아츠시였다.

 

 "현재 밖에 비가 오고 있고 그것을 예상치 못했던 켄지는 다 젖고 말았다는 것이다! 더불어 신나서는 여기저기 물장난을 치다 온 거지!!"

 

 "아, 맞아요. 지금 밖에 비오는걸요."

 

 "감기라도 걸린거야?"

 

 "에- 아, 아니요. 절대."

 

 "아쉽네, 그거."

 

 "아쉬워 하지 마세요, 요사노 씨."

 

 "그러는 아츠시가 대신-"

 

 "죄송합니다, 함부로 끼어들어서!!"

 

 "비."

 

 얼빠진 표정으로 소매를 붙잡힌 다자이는 창 밖으로 시선을 내던졌다. 어제 왔더라면 더 좋았을텐데.

 

 "다자이, 그렇다면 어제 어째서 나카하라 츄야가 네 놈과 같이 있었는지는 어떻게 설명할 셈이지. 동창이라고 할 셈인가."

 

 "내가? 츄야랑? 그런 쿠니키타의 '이상' 이 철저히 부서지는 소리따위 하지 말아줄래."

 

 "다들 일 안할 셈이야? 사장님한테 한 소리 들어도 난 모른다고."

 

 요사노의 말에 급히 자리로 돌아간 아츠시와 쿠니키타에 다자이는 소리내어 웃었다.

 

 "아마 니가 제일 유력 후보 일걸, 다자이."

 

 "아."

 

 어쩔 수 없다며 머리를 긁적이며 다자이는 자리로 돌아갔다. 돌아간 의자를 되돌려 거꾸로 앉아 책상에 붙어있기 1분이 채 되지 않았지만 그는 온통 빗 속에 존재하고 있었다. 역시 그치지 않네. 그 편이 좋아. 응, 나도 좋아. 오다사쿠.

 

 하루의 끝까지 창살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는 것은 잔잔히 빗방울이였다.

 

 "비 그치지 않네."

 

-

 

 

 

비가 그치지 않네요=좀 더 곁에 있고 싶어요 라는 표현에서 빌려온건데

 

사실 암흑시대(흑의 시대) 편 보고 아- 이런거 좋겠다 해서

 

다 보자마자 몇 달 내내 연성 못했는데 한순간에 되고 마네..어째서

 

자살맨은 아무래도 좋지만 쓰다보니 츄야한테 이쁨이 가기 시작한다..

 

덕분에 잘 썼습니다, 음- 본인은 알겠지만

 

뚜이 (님) 리퀘스트 가 아닌 생축

 

-

 

 오키타 소고, 열 아홉. 화풍이 독특하기로 소문났다. 그러니 호불호가 격하게 벌어지는 그런 류에 속하기도 했다. 당연한 일이였다. 사람은 누구든지 새로운 것을 추구하거나 옛 것을 간직하려드는 법이니 말이다. 그의 그림에서는 형체를 찾아볼 수 없었다. 매번 형형색색만이 흩뿌려진 것이 전부였다. 무엇 하나를 표현해내는 것은 오로지 색 뿐이였다. 곧잘 위험한 발언도 해대는 녀석이였지만 단 한 가지만은 굳게 입을 닫아버렸다.

 

 "색으로 표현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글쎄요."

 

-

 

 "어-이, 콘도씨가 부른다고."

 

 작업실의 구석에 웅크리고는 두 손을 빤히 내려다 보던 소고에게는 들은 척 조차 용납되지 않는 듯 보였다. 어이-, 사람이 부르면 반응을 해야할거 아니야. 거참. 히지카타의 중얼거림과 함께 소고는 두 손을 털고 일어났다. 몇 날이고 밤을 샌 탓이겠지만 그렇다고 하여 평소 그리 살가운 인상의 소유자가 아니였음에 히지카타는 괜시리 흠칫하고 눈가의 주름이 잡혔다 사라졌다. 급하게 작업실을 나서는 바쁜 그를 붙잡았다.

 

 "야."

 

 "..뭔데요."

 

 "택배왔더라. 가져가라."

 

 역겹다는 듯 인상을 구기며 잡힌 손목을 세게 빼내어 메만지며 걸음을 재촉하는 그였다. 마른 입술을 축였다. 마침 색이 떨어져버린 탓에 작업의 한창에 멈춰야만 했었다. 그 부분이 영 석연찮았기 때문에 제때 도착한 제 물건에 안도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시간에 쫓기고 있을 따름이였다. 바빠 죽겠다고, 이쪽은. 이를 갈며 미닫이 문을 세차게 열자 익숙하다는 듯 웃으며 반기는 콘도가 있었다. 오, 소고. 얼른 여기 와, 앉아 봐. 앉아. 무슨 일인데요. 별 건 아니고- 그럼 갈게요. 중요하다고! 그리고 이어지는 한참의 눈싸움. 항상 져주는건 콘도였다. 애초부터 그런 사람이였다. 욕심내서 그러려면 충분히 그럴 수 있었음에도 가만히 기다려주는 사람. 작업 바쁠텐데 불러서 미안하다. 소고는 긴 소매를 휘적이며 소파 등에 몸을 묻으며 가만히 눈을 감았다. 굳이 보지 않아도 뻔히 보일 저 사람의 얼굴에 피식 웃음이 비집고 나왔다. 나이 어린 애송이 상대로 뭘 그렇게 매사에 진지한건지 아직도 이해할 수 없었다. 다만 한 가지만은 확실했다. 그런 사람이기 때문에 기꺼이 저를 받아준 것이라고. 소고는 자기 입으로 말하기도 무르지 않다. 그런 상대가 있다면 일순위는 혈족되시는 누나. 그 다음을 장식하는 분이 콘도 되시겠다. 정정하자면 일순위란건 이제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 정도. 몇 해 전 지병이 돋으면서 이래저래 합병이 겹쳐져 그 작은 몸뚱아리에 다 담지 못한 채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 공백기의 삶을 이어가게 도와준 장본인이니 무를 수 밖에 없는 노릇이였다.

 

 "이번 전시회 말인데, 토시로 파트까지 해도 될거 같아서 더 그리던가 아니면 2차로 미뤄뒀던 것들 까지 같이 전시해도 될거같아."

 

 "그 자식은 뭘 한다고 자식 파트를 빼요."

 

 "얼마 전에 개인 전시회 했잖아. 일부러 그 때부터 이번은 빠지기로 했었고 나한테 미리 얘기했어. 물론 너하고는 얘기가 안되있을 줄은 알았지만- 화 내지마!"

 

 "화 안났어요."

 

 "아..그래."

 

 "몇 장 더 필요해요."

 

 "열- 두어 점 정도."

 

 "전부 새로 안그려도 되죠."  

 

 "당연하지. 니 실력이 어디간다고."

 

 손도 대지 않은 차는 식어버렸다. 무심하게 자리에서 일어나는 소고에게 콘도의 시선이 따라붙었다. 미처 한 걸음도 떼지 못하고 소매를 거둬 주인을 기다린 잔을 들어 단숨에 비워냈다. 됐죠. 짧은 한 마디를 마무리로 소고를 작업실로 향했다. 그 잘난 '열 두어 점' 때문에 골 썩게 생겼으니 그 정도면 잘 참았노라 생각했다. 망할 자식. 중얼거리며 볼품없는 얇은 종이에 싸매여진 캔버스 여럿을 꺼냈다. 일거리가 늘었다는 생각보다 늦을지도 모른다는 초조함이 강했다. 바닥부터 벽까지 빼곡히 쌓은 최근 작업물에 절로 인상이 구겨졌다. 꼬박 두달하고 조금 더 남은 전시회 임에도 열 점 이상씩 그려내기엔 턱없이 부족할 뿐이였다. 

 유난히 소고의 전시회는 작게만 열었다. 크고 떠들썩하게 하는 갤러리가 아니였을 뿐 아니라 작가의 개인 의사가 반영된 것이였다. 조금 더 보고 싶다는 아쉬움이란 묘미를 남긴다 라고 평론가들은 잘들 떠들어대지만 혼자서들 북치고 장구치고 다 해먹으라며 고개를 내저었다. 마쳤다고 전시회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내지르며 뛰어다닐 상식에서 벗어난 사람은 없었지만 조용히 열고 싶다는 희망사항이였다. 그래서 대형 기획전 참여를 모두 거부하는 이유이기도 했다. 물론 덧붙이자면 거들먹거리는 자식들 그림 옆에 제 작품이 걸려있다는 것만으로 충분한 모욕과 수치라는 것이였다. 이 말은 그대로 출판될 예정이였으나 다음 인터뷰 타자였던 히지카타의 1차 검열에 걸려 세상의 빛을 보지 못했다. 더불어 콘도의 2차 검열로 그런 류의 발언들은 막혀버렸다.

 

 "야 내가 가져가랬지."

 

 "두고가지 그래요."

 

 "너 평소에 하던거 있으니까 그걸로 하면 될 줄 알았지."

 

 "전시회마다 컨셉 잡는건 왜 모르실까, 헛똑똑아."

 

 "열 두점 니가 다 안맡아도 되잖아."

 

 "뭐 그럼 잘나신 그 쪽께서 도로 회수해주시게."

 

 "쉰다고 했잖아. 할거 였으면 지금 노닥거리고 있겠냐."

 

 "네네. 잘났네요. 꺼져."

 

 "이것도 같이 왔더라."

 

 미닫이 문이 닫히고 그제서야 소고는 힘 준 어깨를 떨궜다. 이제껏 준비해온 컨셉과 상반된 컨셉으로 내어도 충분했지만 찝찝했기 때문이였다. 개인 소장인 갤러리인 만큼 전시회도 꾸준히 열고 있지만 냈던 그림을 또 낸다는 사실 자체가 스스로에게 용납되지 않는 부분이였다. 설사 그게 본래 제 파트가 아니였다는 사실에도 생각을 바꿀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프라이드 였고 철칙이였다.

 

 첫사랑.

 

 이번 전시회의 컨셉이였다. 단언컨데 이제껏 제 그림에 그런 감정을 담은 적은 없었다. 낯간지럽기도 했고 그다지 저와는 상관없기도 했다. 어쨋거나 그 이유가 어찌되었든 제 관심분야가 아니라는 점은 확실했다. 흔해빠진 여자 하나 덩렁 그려놓고 끝이다 하고 손을 놓고 싶지도 않았고 더군다나 그는 형체를 그리지 않았다. 그런 미묘함을 색으로 표현해내는게 오키타 소고 였지만 이러거나 저러거나 귀찮기 짝이 없는 얘기였다. 적당히 빨간색이나 캔버스에 뒤엎고 심장이니 뭐니 알아서들 떠들어대게 내버려두고 싶은 심정이였다. 평론가들이 제일 잘 하는 짓이잖아.

 머리를 헤집던 소고는 히지카타가 가져다준 소포로 몸을 돌렸다. 알게뭐야. 두 달이나 남았잖아. 두꺼운 소설책만한 크기의 상자를 갈라내자 보란듯이 자리한 것은 주황색 물감들이였다. 빼곡히 쌓인 물감들을 한참 바라보다 아직 제 손 끝에 남은 주황빛에 피식 웃음이 새어나왔다. 마저 작업할 수 있겠다. 복잡한 얘긴 잠시 미뤄두기로 했다.

 

-

 

 주황색으로 벌인 광란의 작업이 끝나자 그는 붓을 떨구었다. 사방에 색색이 튀었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그 편이 좋았다. 손등으로 턱선을 쓸어내렸다. 뜨거운 체온 사이로 식은 주황빛이 번지는 소리가 들렸다. 좋았다. 구석에 자리한 수도꼭지를 틀어 배수구 아래까지 색을 흘려보내었다. 그림에 해가 될까 작업실엔 보일러를 틀지 않기 때문에 덩달아 물까지 온수불능의 상태였다. 덕분에 사라진 색위에 시린 물방울이 맺혔다. 이걸로 끝났다. 제 파트의 메인은 끝을 매었지만 늘어난 파트 덕분에 욕짓거리를 올라왔지만 어둑한 방에 신경질적으로 슬리퍼를 끌며 스위치를 키자 두어번 깜빡이더니 환하게 밝히며 늦은 오후 내내 제가 저지른 현장을 적나라게 드러내주었다. 기꺼이 받아들이는 모습이였지만 담담했다. 기꺼이 라기보단 그저 일상에 불과했다. 6시를 조금 넘긴 시계를 한참바라보았다. 몇 시 였더라. 혼자 되내여도 소용없다는 사실을 알기에 씁쓸해진 소고는 짧게 기지개를 펴고는 물감들을 벽쪽에 밀어둔 사물함에 넣었다. 그 안은 온통 물감들이였다. 주황색. 조심스레 두손으로 닫고 이마를 박았다. 이마께가 시렸다. 저녁을 위해 발걸음을 돌리다 발치에 체이는 종이를 사그락하고 주워들었다. 수신인 뿐인 악질적인 편지라면 곤욕스럽긴 하지만 마지막 한 마디까지 지옥이나 가라고 열심히 써주시는 어디 사는 열혈팬들을 생각하며 작은 조소를 흘렸다. 그리고 그의 예상과 다르게 하얀 봉투에서 떨어진 것은 티켓 뿐이였다. 이 기지배가. 보란듯이 미간이 구겨지더니 휴대전화를 꺼내들었다. 익숙한 번호를 누르기 시작할 즈음 화면을 잠궈버렸다. 나름대로 생각따위 있을리가 없으니 넘어가자는 행위에 가까웠다.

 

 8시 40분 시작. 넉넉한 시간과 졸지에 두 자리나 차지할 수 있게된 좌석부자가 되어버렸다. 쓸모없는 짓만 골라서 하지, 이 기집애는. 모처럼의 VIP 석인 모양이였다. 제 예매는 3층이니 엄지 손톱만하게 보일게 뻔했다. 공짜로 좋은 자리라니 사양할 필요는 없었지만 모처럼 3층의 A열의 중간석을 사수했던 수고가 사라지는 것은 거부할 것이였다. 찬찬히 티켓을 다시 살피며 2층으로 올라갔다.

 

 "아, 오늘 작업 다 하셨어요?"

 

 "어."

 

 "전 남았는데 말이죠."

 

 "힘내라."

 

 "그러고보니 히지카타 씨 파트까지 하신다면서요."

 

 "니가 할래, 야마자키. 귀찮은데."

 

 "무슨 말씀이세요. 제 실력으로 무리에요. 제 파트도 벅찬데- 그건 뭐에요?"

 

 "아- 공연 티- 너 시간있냐."

 

 "오늘 작업분은 조금 남았는데..말이죠."

 

 "너 보러가라."

 

 팔랑이며 티켓이 야마자키의 눈가를 스치고 바닥으로 떨어졌다. 계단에 기대 희미하게 웃었다. 너 보러가.

 

 "오키타 씨, 이거..표 어떻게 구하셨어요?!"

 

 "그냥-"

 

 "이거 요즘 구하기 힘들텐데, 게다가 VIP 석!!..같은걸 저한테 주시면,"

 

 "난 피곤해서."

 

 "이거 표값만 15만...원! 이라는데.."

 

 손을 훠이 저어 보이며 소고는 층계를 올랐다. 나 바쁘다고 전해줘라. 야마자키는 멀뚱히 그런 소고의 뒷모습만을 올려다보았다. 이내 모습이 사라지자 다시 티켓으로 시선을 내리박았다. 전해달라고? 갸우뚱하다 뭔가 깨달았다는 듯이 소고가 사라진 위를 가벼운 충격에 싸인 눈으로 올려다보았다. 오키타 씨, 이거. 덧붙여 한 마디가 들려왔다. 사거리 쪽 꽃집에서 내 이름 말해라. 야마자키는 급하게 계단을 올랐다.

 

 "오키타 씨, 이거!"

 

 "얼른 준비해서 가."

 

 "어떻게 제가 가요!"

 

 "못갈게 어딨어. 여자애한테 고백받아도 그럴거냐, 나 피곤해."

 

 "그런게 아니잖아요!"

 

 "작업도 있고 히지카타 자식 파트 매우려면 시간이 어딨냐. 잠깐 눈 붙이고 말거니까 꽃 찾아가라. 그거 계집애 알레르기 있거든."

 

 픽하고 바람 빠지듯 웃어보였다.

 

-

 

 이런 엇나가는 행위를 나름 즐겼기에 따로 오페라 글라스 마저 소지한 상태였다. 조금 지연되고 있는 꼴을 보아하니 얼굴이 굳어 풀기 위할 따름일 것이였다. 이러나 저러나 여전히 버릇을 고치지 못했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앉아서는 1층이 보이지 않았기에 야마자키가 어떤 잡스런 자세를 취하고 있을지는 안타깝게도 볼 수 없었지만 대충 상상할 수는 있었다. 보나마나 우스운 꼴이겠지. 이내 지체에 대한 사과와 공연 시작을 알리는 벨소리가 극장 안에 울렸다. 서서히 불이 가라앉고 무대만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소고는 여유롭게 초점을 맞춰둔 글라스를 들어 한 걸음 나가오는 무용수를 보았다. 프로는 프로라고 생각하며 아직 옅게 굳은 얼굴에 슬그머니 미소를 띄웠다. 묶지않은 머리카락이 길게 허리께 까지 내려와 아직 가벼운 동작에 제 자리에서 머물고 있었다. 본래 핏기 가신 살갗이였으나 온몸으로 분노를 표출해낸 것인지, 전신화장이라도 한 것인지 불그스름한 손 끝이 파도 처럼 넘실거렸다. 왼 손을 힘 없이 들어올려 등 뒤로 떨구더니 바닥을 짚고 제자리를 위 아래로 배회하곤 그 자리에 자리 잡고 앉았다. 위로 목을 쭉 빼고 눈을 내리감은게 어깨 아래서부터 공연장 바닥까지 늘어진 머리칼에, 숨을 들이마시며 뒤로 턱을 빼내어 두 팔이 허공에서 유영하며 의심없이 내딛는 한 걸음에, 무던히도 내짓는 표정에 차마 말로 이루못할 손 끝에, 소고는 결국 어깨를 툭 떨구며 그 눈을 곱게 접으며 흩날리는 감정을 내버렸다. 누가 말했던가 당장의 눈 앞의 적보단 유종의 미라고. 그게 누가 되었든 한 마디 쏘아주고 싶은 마음이 한 가득 넘쳐 끝내 입가를 가리고 터져나오는 뜨거움에 아랫 입술을 베어물어야만 했다. 눈 앞의 하나 조차 집중치 못하는데 어찌 유종의 미를 거두겠느냐고. 도약하는 한 걸음에 허리께에서 펄럭이던 하얀 레이스가 면사포 마냥 날리고 하얀 두 다리를 감싸안았다. 아랫 입술을 잘근거리며 소리없이 터져나오는 박동에 아플 새도 없이 바쁘게 하얗게 바랜 동작을 쫓았다, 그 쌍안경의 두꺼운 유리알  너머로. 더할 나위 없이, 의심할 한 치의 여지조차 없이 그 뜨거운 손 끝에서 이뤄내는 선은 그의 뮤즈 였다.

 

 그가 막 갤러리에서 활동하기 시작할 무렵이였다. 고작 열 여섯의 제 감정 하나 토로할 줄 모르던 그 때였다. 학교는 마치기 바랬던 콘도의 손에 이끌려 원치도 않는 사회에 도로 던져지던 당시의 좌절감과 환멸감이란 쉬이 잊혀지지 않았다. 입학 시험조차 치루기 어렵다는 그런 곳에 어린 그의 밀어넣으며 네가 하고 싶은대로 해봐 라는게 단순한 헛소리에 그지지 않는다고 생각했었다. 모멸 당하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누이와 이별한 이후로 그의 살갗에서 유화 향이 사그라들었다. 제게 붓을 쥐어준 것도 누이였고 결국 놓게 된 것 역시 누이에 그치고 말았다. 평생 가까이 할 일따위 없으리라 죽는 날까지 믿었다. 꼴보기 싫다며 자해를 떠올릴만한 행위를 반복했고 수업은 커녕 출석일수가 얼마나 비었는지보다 채워져있는지를 확인하는게 빠를 지경이였다. 타이르고 달래고 큰 소리를 내어보아도 캔버스 앞에 서려하지 않았다. 그 앞에서 자신은 죄인에 불과하다는 의미심장한 말만을 늘어놓았다. 지속되는 수전증과 불면증에 온전한 하루를 시달려야 했다.

 

 "매일 같이 여기서 뭐하는거야."

 

 "..신경 꺼."

 

 "니가 내 연습하는걸 방해하니까 그런거지."

 

 "그래."

 

 미술실 따위는 근처도 가고 싶지 않았고 저를 찾는답시고 활기치고 다니는 꼴도 보고 싶은 추호도 없었다. 좋은 말로하면 자기가 하는 일을 사랑하고 자신감을 가지는 것이지만 그의 눈으로 비춰진 것은 그저 꼴사나운 짓거리에나 뒤지지 않았다. 기본적으로 음악과나 미술과나 무용과나 사이좋지 않은 관계를 잘도 유지해가고 있었기 때문에 존재감도 적으니 그런 소고에게 있어 빈 체육관이란 장소는 몸을 숨기기에 적합하다 못해 제 집과 같았다. 체육관은 무용과가 점령했기 때문에 정규 수업으로 체육이나 전시를 위해 빌리지 않고서야 발걸음할 이들도 없었다. 그래봐야 겨우 쪽잠이나 청할 뿐이였다. 그 늦은 시간에 누가 남아있을 줄이야 생각조차 해 본 적도 없었고 이어폰이 거친 발소리를 죽여주었기에 눈치 챌 기회도 없었다. 그리고 그런 장소를 침범당해버렸다.

 

 "넌 여기서 뭐해. 무용과 아니잖아."

 

 "피난처."

 

 "음악과야?"

 

 "미술."

 

 "아, 안그려?"

 

 "안그려."

 

 "왜 여기 입학한거야?"

 

 "내가 어떻게 알아."

 

 "넌 아는게 뭐냐."

 

 "없어."

 

 "진짜 깨끗한 뇌구나."

 

 "신경 꺼라." 

 

 "할 일 없으면 나 턴 봐줘."

 

 "싫어."

 

 "너 여기 있는거 미술과 쌤한테 말하면 되는거지?"

 

 "....어쩌라고."

 

 "봐달라고."

 

 "본다고 내가 아냐."

 

 "그러니까 봐달라는거잖아, 멍청아. 모르는 사람이 봤을 때 어색하면 그게 진짜 끝장나는거지. 같은 무용과 애들이 보는거랑 다르다고, 알겠냐."

 

 긴 머리를 한 갈래로 높게 질끈 묶고 큰 반팔 셔츠가 어깨를 타고 흘러내렸다. 가볍게 한 발을 찍고 돌았다. 말 그대로 제자리에서 돌았다.

 

 "이상하냐."

 

 "아니."

 

 "그럼 어떤데."

 

 "괜찮아. 됐지, 이제 귀찮게 굴지마."

 

 그저 유별난 애 정도로 밖에 비치지 않았다. 미치지도 못할 헛소리 사이에 끼여 있는 것보단 훨씬 낫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일까, 일수는 점점 채워져갔다.

 

 "제대로 수업 안들으면 유급할지도 몰라, 너."

 

 "상관없어."

 

 "상관있어."

 

 결코 귀찮은건 하루이틀이 아니였다.

 

 "귀찮게 굴지마."

 

 "그럼 내 부탁 하나만 들어라. 그러면 그만두지 뭐."

 

 "내가 뭐하러 그런 짓을 해."

 

 "그럼 알아서 하던가."

 

 새침하게 묶어올린 머리칼이 휘청거렸다. 허리께에 조금 닿지 못하고 등허리를 치대는 색에 소고는 미간을 구겼다. 거슬려.

 

 "뭔데."

 

 "나 그려줘."

 

 "그림 같은거 안그려"

 

 "미술과 입에서 저런 말을 들을 줄이야." 

 

 그럴 줄 알았다는 과장된 팔동작과 비웃음에 가까운 표정에 일부러 높이는 소리.

 

 "그릴 수 있잖아, 그러니까 따지자면- 재능낭비."

 

 "....이제 생각이 안난다고."

 

 "무슨 소리야."

 

 "어떻게 했는지 모르겠다고, 하고 싶어도 못해. 형체같은거 다 사라져버리는데."

 

 "색."

 

-

 

 [잘도 안왔다- 이거지.]

 

 "분명 바쁘다고 야마자키 자식한테 전하랬다."

 

 [니가 봐야 의미가 있다니까!]

 

 "제대로 꽃도 보냈다."

 

 [그거야 당연한 도리 아니야? 여전히 깨끗한 뇌인거야, 넌?]

 

 "그 도리는 다 했으니까 그만하라는 소리지."

 

 [진짜- 얼마나 당황했는지 알아! 당연히 센터에 너 있을 줄 알았는데 멍-한 얼굴이 하나..!]

 

 "멍하다니 들으면 섭섭해하겠네."

 

 [니가 섭섭해하라고!!]

 

 "뭐- 별로."

 

 [이번에 평론가 자식들 평도 좋단 말이야!! 내가, 진짜 어! 얼마나! 망할 놈아!!]

 

 "네네."

 

 [너무하네.]

 

 "이제 알았냐."

 

 [아니. 익숙해.]

 

 "그럼 다행이고. 그런 김에 마지막 턴 때 크로스 하지 말지. 크로스는 그닥 취향이 아니라서 말이야."

 

 [어- 잠깐만 뭐라고?]

 

 "끊는다-"

 

 [야! 야! 야 이 도S 자식아!!]

 

 새삼 한결 편해진 얼굴을 하곤 아무렇지도 않게 종료버튼을 누른 소고는 다시 걸려올 전화에 화면조차 끄지 않고 끊어진 통화기록을 내려다 보았다. 물론 그럴 새도 없이 도로 걸려와버렸지만.

 

 "뭐."

 

 [야아아-!!]

 

 "야아아-!!"

 

 휴대전화 너머로 들려오는 짧게 끊어지는 목소리와 함께 들려오는 육성에 그의 시선은 당연스레 문가로 갔다. 세차게 미닫이 문이 열리고 조만간 새로 장만해야될지도 모를 휴대전화를 아스라질것 마냥 쥐고 흡사 제 머리색과 비스므리한 얼굴색을 한 여자를 태연스레 맞이했다. 아 왔어.

 

 "아 왔어? 왔어어? 왔냐고?! 왔다 이 자식아!"

 

 "소리 좀 그만 지르지."

 

 "안지르게 생겼냐!"

 

 "알아서해."

 

 당장이라도 한 대 쥐어팰 얼굴에 소고는 무죄를 주장하는 양 두 손을 들어보였다. 미리 고통에 대비해 어금니를 맞대어 물었다. 눈을 살포시 내리감으면서 그 찰나의 고통을 폐부로 느끼기도 전에 식은 손이 목덜미를 감쌌다. 품 안 가득 밝기만 했다.

 

 "뭐하냐."

 

 "..알아서 하라며."

 

 "안기는건 뭐 하자는 건데."

 

 "아 이럴땐 좀 가만히 모른척하라고! 이러니까 니가 연애도 못하고- 책으로 연애할 새끼지 아주.."

 

 "이럴 땐 책에서 밀어내래."

 

 "그딴 책 갖다버려!"

 

 소리로 터져나왔다. 환희를 참지 못해 기어코 터져버렸다. 

 

 "뭐, 뭐가 웃겨."

 

 "별로."

 

 "...보러 왔으면 왔다고 했으면 좋았잖아."

 

 "내 돈낸건 봐야지."

 

 "어디에 있었는데."

 

 "3층 A열 센터석."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올려다 보았다. 그에 진짜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졸업 전시회 출품은?"

 

 "다 끝났는데."

 

 "왠일이래."

 

 "졸업하고 싶어서."

 

 "아."

 

 빠른 수긍과 함께 도로 가슴팍에 얼굴을 묻자 허리께까지 떨어지는 머리카락 위에 손을 얹어 쓸어내렸다.

 

 "밥."

 

 "그게 어쨌다고."

 

 "먹자고. 다른게 있냐."

 

 "니가 사냐."

 

 "남자친구라는게, 지 애인 무대는 이상하게나 봐놓고는."

 

 "아, 그거 기억 왜곡."

 

 "니가 사!"

 

 겉옷을 집어들며 작업실 전등을 껐다. 잔뜩 열려버린 문과 문 사이 가득 빛으로 찼다. 먼저 앞서 기다리는 뒷모습에 그늘이 졌다.

 

 "야."

 

 대답은 없었다.

 

 "야."

 

 마찬가지 였다.

 

 "카구라."

 

 "응?"

 

 "..가자."

 

 그 자리는 온전히 온기였다.

 

-

 

 "무슨 색, 무슨 소리야."

 

 "색만 쓰라고. 미술과 친구랑 미술관 간 적 있는데 색만 쓰기도 하던데. 그거 너도 하면 되잖아."

 

 "넌-"

 

 고개를 갸우뚱 하며 비킨 자리로 체육관의 센 조명이 눈에 닿았다. 아 씨.. 연신 감았다 뜨기를 반복하는 그의 눈가에 물기가 섞여들었다. 분명 깨끗하다 말 못할 바닥에 하얀 연습복을 입은 다리가 주저 앉았다.

 

 "눈 떠봐, 아픈거야?"

 

 떠지지도 않는 눈을 억지로 비집으며 물기가 섞여 위로 말려올라간 자리에 선명한 주황이 자리했다. 단지 그것 뿐이였다.

 

 "괜찮아?"

 

 "..야, 너."

 

 "내가 한거 아니거든."

 

 "이름 뭐냐."

 

 "나?"

 

 "그럼 누구."

 

 "카구라."

 

 빠르게 번져나갔다.

 눈을 감아도 짙게 퍼져나간 주황이 분명했다.

 

-

 

작년에 리퀘받고 올해 끝냈다(!)

미묘하게 게을러 보이지만 미묘한게 아니라 확정된 사실이다!!!

생일은 지난지 오래라고 하기엔 이제 의미 없지만 그냥 그렇다고 생각해주셨으면 합니다.

 

아 편의상을 위해 '~해' 는 생략해버렸습죠..

대충 2년이였나 2년! 뒤의 소고+5년 후의 카구라 모습으로 봐주셨으면 합

그게 이미지 상 맞아떨어지니까..어-

 

미안하고 사실 후반부 끝낼 수가 없어서 강제 종료 시켜......읍읍-!

 

미안하다아아아ㅏㅏ!!!!!!!!!!!!!!!!!!!!!!!!!!!!!!!!!!!!!!!!!!!!!!!!!!!!!!!!!!!1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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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퀘 ; 봉고 님

                                               -                    

 

 시선이 닿는 곳마다 탐스런 꽃송이가 피어나는 기분이였다. 그것은 장미를 닮은 빼어난 색이였고 지독하게 숨막히는 광경이였다. 동공이라도 마주하면 와닿는 순간 눈 앞을 가득 메우는 진한 향에 이내 눈을 감아버리고 마는 것이였다. 장미려나. 중얼거리자 김 빠지듯 새어나오는 순수는 작은 꽃망울을 떠올리기 너무나도 당연했다.

 

 쿠로는 무슨 꽃 생각해.

 

 좋아한다던가 선호한다던가로 묻지않나, 그런 류의 질문.

 

 어느 쪽이야.

 

 글쎄.

 

 그거 어디에 답하는 거야.

 

 글쎄. 뭐라고 생각하는데, 켄마.

 

                                               -                    

 

 인간은 변화에 둔하던가. 켄마는 결론을 내지도 않을 골 아픈 질문을 되풀이 하며 오전 수업의 끝무렵을 맞이했다. 결코 인간 따위의  넓은 범위로는 한정 지을 수 없는 탓에 바짝 깍인 손톱으로, 사실 상 손가락으로 책상 모서리를 불규칙적으로 두드렸다. 손톱 끝이 아린 것은 분명 눅진히 붙어있던 살점을 떼어버렸기 때문이였고 손톱을 다듬은 것은 부활동 때문이였으며 이런 손 상태를 그의 소꿉친구가 보기라도 한다면 기정사실로 한 소리 들을게 뻔했다. 질문이 어떤 형식이든 결국 답은 귀차니즘에 도태된 고약한 생물체라는 결말일 터였다. 눈에 훤한 엔딩은 피하고픈 심정이였으나 이틀 전 넌지시 정리를 요구한 것은 다름아닌 쿠로오 였기에 별 도리도 없었다. 그야 대뜸 부실에서 환복 중일 때 즈음 들이닥쳐서 잡아당겨져 핏기 맺힌 손끝과 불투명의 하얗고 쓸모없이 계속 기는 손톱의 실종사건으로 사람 좋은 얼굴을 하고는 시끄럽게 굴 쿠로오 였다. 사라진 켄마의 손톱을 찾습니다, 따위의 웃기지도 않을 짓을 벌일 근미래를 예견하는 켄마의 미간은 보기 좋게 구겨졌다. 귀찮아-. 책상 위로 나른하게 엎드려 뻑뻑한 눈을 억지로 감았다. 우선은 아무래도 좋았다.

 

 배구부 내에서는 이제 입 밖으로 꺼내기도 진부한 이야기에 불과하지만 타학교 배구부라던가 전교에서라던가 둘은 왠지 모르게 이름이 알려진 '유명인' 이였다. 물론 '너희들이 말하는 저 비실비실한 꼬마가 우리 네코마의 척추이고 뇌이며 심장입니다' 따위의 부끄러운 발언을 잘도 해대는 덕에 대외선전 하나만큼은 효과가 굉장했다. 교내에서 이름을 날리게 된 것은 분명 배구부라는 타이틀이 한 몫했을게 뻔했지만 그 하나만으로는 설명이 턱없이 부족했다.

 갑작스레 2학년 층에 수험생이신 3학생들이 유독 한 반에 몰려있다던가. 복도나 체육관에서 남의 눈총을 받는다던가. 귀찮음에 흠뻑 젖은 발을 끌어 기꺼이 주장의 호출에 응하면 미묘한 기류가 흐른다던가. 켄마로써 그리 달가울 상황이 아닌데다 덧붙이자면 고교 2학년이나 되건만 한동안 아침에 이불 속에서 도통 일어날 생각을 않은 채 그를 열성적으로 깨우려는 어머니께, 학교 가기 싫어 라는 투정을 해야만 했다. 타인의 시선이 익숙치 않다는 사회 부적응자의 본능에 따른 것이기도 하지만 의미모를 관심은 가십거리에나 불과할 것이였고 얼굴도 이름도 뭣도 모르는 사람의 입에 제가 오르내리는 꼴을 상쾌하게 웃으며 받아드릴 족속이 과연 몇이나 될까.

 

 태초는 항상 리스크를 감수해야한다. 그것이 태초이자 최초라는 칭호를 짊어지는 응당한 무게이기 때문이다. 그 리스크란 것이 보잘 것 없이 자잘하고 의미없는 무범위 속 타겟을 벗어난 사냥일지도 몰랐고 치명상으로 이어지는 일격일지도 몰랐다.

 

 "쿠로."

 

 그는 자주 말버릇처럼 말하곤 했다. 켄마의 그 부름이 마치 없는 것을 보채는 것만 같다고. 어려운 말이라며 게임 속 사인드 트랙 사이로 흘려보내버렸지만 이제야 그게 무슨 말이였는지 조금이나마 알게 된거 같은 켄마였다. 끝도 없이 무언가를 갈망하건데 자신 역시 무엇을 원하는지 알 길이 없다. 자각이 없다.

 

 코즈메 켄마는 사회 부적응자 부류의 인간이니까, 그러니까 좀처럼 꾀를 내지 않았다. 머리가 좋다는 사실을 본인도 무의식에 주억여도 들통난다는 사실보다 누가 버릇 고약한 녀석이 아니랄까 만사가 귀찮다는 허울좋은 변명이였다. 게다가 속인다거나 백 번 양보해 속아 넘어가주는 그의 소꿉친구는 있어도 속는 쿠로오는 없었으니까. 요령 좋은 그에게는 당해낼 재간도 없을 뿐더러 괜히 힘 빼는 일은 벌이고 싶지 않은게 본심이였다.

 

 "왠일이야, 제 발로 찾아오고."

 

 역시 달랐다. 억지로 만들어냈잖아, 그 얼굴.

 켄마는 대뜸 손을 그의 앞에 들이밀었다. 예상대로 눈살을 찌푸리더니 찬찬히 뜯어보다 이내 고개를 들었다. 손끝마다 작은 꽃이 맺었다.

 

 "지금 잘했다고 말해주길 바라는건 아니겠지."

 

 "아파."

 

 "약은."

 

 고개를 가로 젓자 그 큰 손으로 다섯가락을 모조리 끌어안았다. 엄지는 안 아픈데. 아아-. 기꺼이 놓아주었다. 꽃은 순식간에 만개했다. 볼품없어. 중얼거리며 사로잡힌 제 손을 도로 탈환했다. 코즈메 켄마 님께 +150P. 그래도 승전보 따윈 없었다. 단위부터가 다른걸 어떻해.

 

 "데려다 줄게."

 

 "혼자 갈래."

 

 무미건조한 목소리였다. 그래서 더욱 억척스레 굴었다. 겨우 그게 다 였으니까. 몸에 베인 행위 하나 하나가 단순히 반복학습이나 다름없는 반복 퀘스트를 통해 이루어진 것이였고 말 한 마디는 가상 현실의 대화의 보기좋은 예시 답안 여러 개 중 그의 선택안일 뿐이였다. 혼자. 세상에 누가 이렇게 외로운 말을 만들어낸 걸까. 셔츠 소매를 움켜쥐는 쿠로오의 손길을 뿌리치고 켄마는 나섰다. 혼자. 외롭지 않게 '두' 다리가 걸었다. 그래봤자 혼자이걸. 따라붙는 발자국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좀 더 빨리 끝냈더라면 좋았을텐데. 웅얼거리며 그는 발을 끌었다. 계단 오르기 따위 세상에서 제일 싫었다.

 

 아니, 제일은 아닐지도.

 

                                               -                    

 

 "왜 둘은 냉전인거야."

 

 "그런거 아니야."

 

 "세간에서 이런걸 냉전이라고 부른단다, 켄마 군."     

 

 "놀리지마."

 

 야쿠는 팩 음료를 구겼다. 메마른 소리였다. 텅 빈 소리였다.

 

 "게임이라도 하는건 어때."

 

 "무리."

 

 "어째서."

 

 "가지고 있는 게임이라면 2인용 이니까. 그러니까 혼자는 못해."

 

 "혼자라."

 

 딱히 '엄마' 라는 포지션에 기댄 것은 아니였다. 게다가 중요한 사실은 켄마가 먼저 나선게 아니니 말이다. 주장과 부원 사이의 문제였고 미들 블로커와 세터 사이의 문제였고 친구와 친구 사이의 문제였으며 쿠로오와 켄마 사이의 문제였다. 한꺼풀씩 도로 싸매는 켄마도 켄마였지만 이번만큼은 어째서인지 굽히지 않는 쿠로오의 공이 컸다. 뻔히 알면서 나 몰라라 식인 주장 덕분에 수고스러운건 야쿠였다. 함부로 말 꺼내기도 힘드니 가볍게 입을 열 수도 없는 노릇이였고 서로 다른 이유로 진실을 외면하는데 지극히 관대한 저 둘을 바라보는 야쿠로썬 속이 타들어갔다.

 

 "그 자식이 갑자기 변한건 언제야."

 

 "글쎄. 3주 전 쯤"

 

 "뭐 어땠는데."

 

 "제멋대로야."

 

 "아아-." 

 

 그런데 눈은 변하지 않았어. 켄마는 입을 꾹 다물었다. 아니면 금방이라도 나약한 소리가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언제나 처럼 못이기는 척 패배선언을 해주길 바라고 있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였다. 그렇기에 좀 더 시간을 끌어야만 했다. 장기전은 시간 싸움이니까. 견뎌야하니까.

 

                                               - 
                                          

 천성이 무언가를 탐내지 않았다. 그 마저 귀찮다 넘겨짚을 지도 모르지만 아마 원하는 것이 손에 넣기엔 벅차다는 사실을 좀 더 빨리 자각한 탓일지도 모른다. 그럴법도 한 것은 켄마에게 있어 현실과 가상 공간의 갭은 꽤나 컸고 굳이 메우려들지 않았다. 이유라면 그래야할 마땅한 이유가 없으니 당연했다.

 

 어렴풋이 이걸 원하고 있을지도 몰라 정도의 무심함이였고 덕분에 뭐 적당히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하곤 해왔다. 애초부터 청춘 따위와는 멀고도 멀었으니 이제와 가까이 하는 것은 켄마의 룰에 어긋나는 행위나 다름없었다. 게다가 자기 식대로 라는 말이 있듯이 제 나름의 고교생활을 보내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용케 배구를 붙잡고 있는 것은 쿠로오의 공이 컸지만 질리지도 않고 손을 한데 모으고 '우리들은 혈액이다' 따위를 듣는 것은 그 하나로 설명하기 부족했으니까 말이다.

 

 부활동은 가지 않았다. 내빼기 식이냐 물으며 그렇다 긍정할 터였다. 이런 상황에 얼굴 보기 껄끄러운게 당연하니까 괜히 힘 빠질거같아 교실에 남았다. 텅 빈 교실에 홀로 자리를 지키며 게임기를 켰다. 금세 땅거미가 내려앉은 덕에 파란 화면에 눈살을 찌푸렸다. 동그라미 버튼을 두어 번 누르자 얼마 전 하던 게임의 시작화면이 로딩되었다.

 

 혼자서는 못하는걸.

 

 그렇게 괴기스러운 전투 시뮬레이션 화면을 바라보건데 기분이 가라앉았다.

 

 "아, 있다 있다!! 켄마 상- 쿠로오 상이 불러오라고..!"

 "..리에프."

 

 "네?"

 

 "이거 쿠로 갖다줘."

 

 "부활 안오시는 검까?"

 

 켄마는 고개를 주억이며 게임기에서 꺼낸 칩을 건내었다. 조금 뜨끈한 게임칩을 받아든 리에프는 영문을 모르겠단 표정을 해보였다.

 

 "그럼 오늘은 누가 토스올려주는 검까?"

 

 "...몰라."

 

 "역시 부활가요. 쿠로오 상도 걱정하고, 야쿠 상도 걱정하고..또,"

 

 "가."

 

 켄마는 안절부절 못하는 리에프를 내버려둔 채 교실을 나섰다. 걱정 따위 할리가 없잖아. 그런거 뻔하잖아.

 

 "켄마 상-! 밖에 비!! 오는데.."

 

 리에프는 그저 받아든 칩과 켄마를 번갈아 보며 꽤 벅차게 쏟아지는 늦은 오후의 소나기를 떠올렸다. 우산, 있으시려나.

 

 물론 가방 무거워지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켄마는 부수적인 물건따위 흔쾌히 넣고 다닐리가 없었다. 운동화의 신발끈이 풀려있었다. 젖을텐데 아무래도 좋았다. 이미 축축한 현관을 바라보는 눈이 마냥 달갑지 않았다. 가방을 품 깊숙히 끌어안고 빗 속으로 내던져졌다. 걸었다. 발이 끌렸다. 그래서 걸어야했다. 묶이지 못한 신발끈이 애처로웠다.

 사실 볼록한 앞주머니에 든 것이 딱히 꺼내보지 않아도 알고 있었다. 틀림없이 우산일 것이다. 비 맞고 감기 걸리지 말라며 상냥하게 건낸 우산이다. 이름을 닮아서 검은색인지 의미없는 것을 떠올리며 켄마는 걸었다. 쿠로오의 손을 탄 것이기에 달갑지도 않았다. 오히려 당장이라도 내던지고팠다. 그러니 가만히 끌어안고 가는 수 밖에 별 다른 수가 없었다. 버리면 네가 슬퍼할거잖아. 언제부터 그 상냥함을 제가 흉내내고 있는지는 저로써 알 방도가 없었다. 머리가 조금 지끈거렸다.

 

 지금 넌 뭘 하고 있을까. 다 식은 게임칩 따위 건내받고는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까. 이번만큼은 제대로 화 낼까. 아니면 또 어쩔 수 없다는 듯 웃어넘길까. 너라면 그런 면에서 두각을 보이니까 걱정 안해도 잘 알겠지. 그래, 걱정할 필요없겠지. 거절이란게 어려운거였구나. 널 잘도 하더니, 이런 거였구나.

 

 석연찮았다. 칩 건낸 것만으로 충분하지 못한 기분이였다. 그래도 어떤가. 이게 제일 저다운 방법이였다. 표면적으로 뿐만 아니라 남들 눈치 보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얼굴을 맞대고 싫어 따위 무리였다. 그야 슬프니까.

 

 "..아파."

 

 "켄마 왔니..켄마-!"

 

 이미 한계나 나름없었다. 억지로 자신을 몰아세워 끌고 온 것일 따름이였다. 눈 앞이 멀어지는 기분이였다. 아프다는 것을 자각할 즈음 다행히 따스한 엄마의 품에 안겼다. 헤아려보건데 극심한 열기에 혹했을 터였다. 그 품을 착각했으니 당연할지도.

 

                                               - 
 "아 깼다, 깻어."

 

 "아-."

 

 "남의 속 뒤집어 놓고 잘 주무셨는지 몰라. 응."

 

 "쿠로."

 

 잔뜩 가시 박힌 말투였으면서 그는 허탈하게 웃었다. 뜨거운 뺨에 닿은 커다란 손이란건 부정하지 않을만큼 기분 좋은 것이였다. 쿠로오 역시 이를 알고 있기에 번갈아 가며 차갑게 식은 손을 기꺼이 내어주었다. 상냥해. 어둑한 방이라 제 자신 조차 보이지 않았지만 얇은 이불조차 덮지 못하고 드러난 얼굴 위로 그 동안 벼루기라도 한 마냥 꽃송이가 한 다발로 피어오르는 것이 똑똑히 보였다.

 

 "쿠로."

 

 "듣고 있어."

 

 "그렇게 보지마."

 

 "어째서."

 

 "조만간에 앞도 안보일거같으니까."

 

 "그럼 내가 손 잡아줄게."

 

 "...악취미."

 

 "그래서 손 잡아도 되는겁니까."

 

 "글쎄."

 

 "켄마야 말로 악취미 아니야, 이거."

 

 켄마는 쿠로오의 손에 뺨을 부비며 눈을 감았다. 억척스러웠다.

 

 "그럼 쿠로도 답해줘."

 

 "뭔데."

 

 "무슨 꽃 생각해."

 

 "설마지만 아직 마음에 담아두고 있었다던가는 아니라고 말해줘."

 

 "그렇다고 해줄게."

 

 "헤에-. 설마 니가 아직도 그런걸 담아두고 있었다, 라. 뭐 같은데."

 

 "되묻지마."

 

 쿠로오는 낮게 키득였다. 열 오른 모습이 영락없는 아이 같다고 생각하면서도 입 밖으로 꺼내면 혼쭐 날테니까. 여전히 보채고 있었다.

 

 "금어초, 정도면 만족하려나."

 

 켄마는 가만히 눈을 떴다. 보일 리도 없지만 고양이가 떠오르는 덕에 마치 시선이 닿고 있다고 착각해버리고 말았다. 노랗게 초승달을 닮은 눈에 푸스스 하고 웃었다.

 

 "욕망."

 

 "용케도 알고 있네. 어려운데 말이야."

 

 "놀리지마."

 

 켄마는 두 팔을 꺼내들어 쿠로오의 목을 끌어안았다. 좀 더 정확히 하자면 쿠로오가 기꺼이 몸을 숙여 응해주었다. 소리도 없이 입술이 맞닿았다. 쿠로오의 손이 뺨을 어루만졌다. 손가락 끝자락 너머 속눈썹이 간지러웠다. 그 역시 금어초를 빼닮아있었다.

 

 "켄마."

 

 "...아-."

 

 "게임 마저 해야지."

 

 "응."

 

 쿠로오는 막 열기가 가시기 시작한 연인을 안았다. 셈세하니까. 가슴팍에 닿은 머리를 가만히 쓸자 사그락 거리던 잡음이 가셨다. 당장이라도 붉게 달아올랐을 어린 아이를 놀리고팠지만 지금 만큼은 눈 감아주기로 했다. 제 손에 찢겨나간 소꿉친구로 향하는 러브레터와 적당히 합쳐서 없는 일로 해버리면 되는 일이였으니 말이다.

 

 머리 지끈거리는 담담한 금어초들의 향연이라는 착각을 멋대로 해버리며 아이의 등을 다독였다. 이대로 좋았다. 딱 이대로가.

 

                                               - 

 

 

 

 

 

 

 

 

끝났다-!!!! 꼬박 이틀 이였지만 쿨켄 이렇게

고민해서 쓰는 건 또 처음입니다, 젱장..

뭐 그래도 아무래도 제도 꽤 쓰는 내내 즐겼고

나쁘지만은 않다고 생각합니다.

 

만족스럽진 않지만 뭐 사람은 만족하면서

살 줄 알아야하니, 기브 업이지만

이 정도로 봐주십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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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사랑 요소 있습니다)

 

-

 

 리히트 지킬란드 토도로키. 열 여덟. 세간을 떠들석하게 하는 천재 피아니스트, 하고 흥미롭다.

 딱 그 정도였다. 제 이브에 대해 아는 것을 떠올려 보아도 결코 여럿 떠오르는 법이 없었다. 이젠 제 피에 코를 박고 숨 죽인 사람의 형태만으로 남아 역한 기억이 되고 말았기에 솔직히 털어놓자면 얼굴은 고사하고 존재도 잊은지 까마득했다. 한 번 잃은 흥미가 죽음으로 다시일어날리가 없었다. 물을 끼얹은 화로에서 도로 불이 피어오르지 못하는 것과 같은 이치였다.

 

 어린아이 마냥 구는 부분이 남아있다. 이것은 탐욕의 신조인 본인조차 인정하곤 하는 부분이였다. 흥미로운 것이 좋다. 재미난 것이 좋다. 질리는 것이라면 사절이다. 그런 면이 탐욕스러웠고 그의 만들어진 정체성에 가까웠다.

 어디까지나 로우레스 에게 있어 이브는 흥미와 놀이의 대상에 불과했고 질리면 장난감 상자에 넣기는 커녕 떨구어 산산조각 나는 말로인 일시적인 것일 뿐이였다. 어차피 인간이란 죽기 마련이니 그 명 좀 줄였다고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발상보다는 눈 밖에 났으니까 에 가까웠다.

 

 

 "모처럼 휴일인데 말임다-."

 

 로우레스는 발치에 걸리적거리는 돌멩이를 걷어차며 불만을 토로했다. 길덴스턴은 초근접으로 인형탈인 제 얼굴을 들이밀었다. 암묵적인 협박이였다. 로우레스는 길게 눈을 죽- 찢더니 혀를 찼다. 알았슴다, 알았슴다. 구부정하게 허리를 숙이고 주머니에 손을 꽂아넣은게 나태와 닮아있었다. 저런 인형탈인 채 돌아다니면 눈에 띌게 뻔했다. 무슨 배짱인지도 알 길이 없었고 과보호 정도로 밖에 눈에 비치지 않았다.

 

 "리히땅은 댁들 처럼 멍청하진 않으니까 알아서 잘 놀다 올거 아님까."

 "사고라도 일어나면 큰일이란 사실을 왜 모르는거야."
 "리히땅이 사고라뇨. 그럴리가 없슴다."

 

 어리다 해도 사지분별은 확실할 나이였다. 미아 찾기도 아니고 우습기 짝이 없는 연출을 굳이 뛰어나가 해야할 이유도 없었고 리히트는 그렇게 손이 많이 가는 어리광쟁이나 사고뭉치도 아니였다.

 

 "간식시간 전 까지는 돌아온다 말하고 나갔어. 근데 지금은 3시잖아."

 "아아- 확실히. 리히땅이 간식을 거부할리가 없는데 말임다. 안온다면 제가 먹어치워버리면-"

 

 길덴스턴은 다시 한 번 푸른 고래와 어울리는 검은 동공을 들이밀었다. 장난임다! 쓸데없이 제 이브에 더 충실한 서브 클래스는 꽤나 속이 꼬이는 것이였다.

 

 애초부터 리히트가 사라지지만 않았어도, 제 시간에 간식을 먹기 위해 돌아오기만 했다면 이 고생을 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였다. 연주회가 끝나고 호텔로 돌아온지 얼마 되지도 않아 잠시 나갔다 오겠다며 골아떨어진 로우레스 따위 내버려둔 채 그는 홀로 나섰다. 좋아하는 크림소다에다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준비해두었다는 로젠의 말에 눈을 반짝이며 기뻐했다는 리히트의 모습을 떠올리자면 무슨 일이 생긴게 분명했다. 다만 로우레스는 모처럼의 제 잠을 깨운 서브 클래스와 로젠이 불만일 뿐이였다. 명백히 리히트 역시 강한 편이지만 인간이였고 아직 제 감정에 미숙한 열 여덟에 불과했다. 그래도 24시간 떨어지게 된다면 이후의 일 따위 잘 알고 있을 터였다. 그는 영리했다. 그럼에도 순순히 끌려나온 준 것은 꿈자리가 뒤숭숭 했기 때문이였다.

 

 제가 아닌 다른 이에게 죽음을 당하는 제 이브의 모습은 결코 보기 좋은 것이 아니였다. 맘에 안들어. 미묘한 떨림이 멈추질 않았다. 손바닥을 바지에 문지르며 로우레스는 미간을 구겼다. 금방 올검다. 그렇게 말하면서도 무엇 하나 확신할 수 없었다.

 

-

 

 리히트가 기세 좋게 나선지 한참 시간이 흐르고 저녁놀이 하늘을 뒤덮고 이내 칠흑의 색을 낳았다. 달은 건져올리고 해를 걸어놓은 하늘은 옅게 가라앉았다. 차라리 시원하게 비라도 쏟아냈다면 좋았으련만 느릿하게 손으로 훑기만 할 뿐 여전히 어둑한 채였다. 기상 캐스터는 오후에 짧게 소나기가 올테니 외출하실 분들은 우산을 챙기라는 조언을 남겼다.

 새벽녘을 기점으로 로우레스는 미적지근한 두통을 호소했다. 이내 두개골 마저 깨질 것만 같은 통증과 함께 역한 속을 게워내지도 못하고 헛구역질을 반복했다. 분노감에 충실히 밖으로 뛰쳐나와 호텔 옥상에 궁상 맞게 걸터앉아있자 타이밍 좋게 비가 내렸다. 빌어먹을. 아직 오전 10시 였다. 세운 무릎 사이에 고개를 파묻고 관자놀이를 붙잡았다. 고통은 태어날 적부터 익숙했다. 익숙하다 못해 어느 정도 즐기기도 했다. 이런 류는 즐기고 싶지도 않았다.

 

 [머리아파.]

 

 그는 기우뚱 상체를 일으켰다. 잠긴 옥상 문 너머로 적어도 인간은 들어올 수 없었다. 지겹도록 들어온 목소리, 리히트였다. 계약 특성 상 의식까지 이어지기 때문에 의도찮게 멋들어진 '둘 만의' 텔레파시 따위를 실현해낼 수 있었다. 다만 둘 사이가 뭐가 그리 돈독하다고 쓰길 시도하지도 않았다. 듣기 싫은 상대의 목소리가 감미롭게 머릿 속에서 울려퍼지는 일 따위 리히트는 제 머리를 도려내려 했을 것이다.

 

 "리, 리히땅?"

 

 [쥐새끼 목소리. 시끄러워. 머리아파.] 

 

 "리히땅!"

 

 한 번도 시도해보지 않았다는게 발목을 잡았다. 계약 초기에 지나가는 식으로 얘기해 준 적은 있지만 그걸 기억할 지는 의문이였다.

 

 [닥쳐, 쥐새끼. 내 머리에서 나가.]

 

 다행이도 기억하고 있는 모양이였다. 로우레스가 기억하는 리히트 그대로, 그는 영리했으니까.

 

 "지금 어디임까. 이대로 가다 둘 다 개죽음 당할거라고요."

 

 "리히땅?"

 

 [회전목마.]

 

 이후로 무엇 하나 답하지 않았다.

 

-

 

 공교롭게도 하나 뿐인 유원지는 폐장인 상태였다. 굳이 거길 들어가 있을 그도 아니였거니 어제까지만 해도 개장이였으니 들어가 하루를 온전히 보낼 만한 위인도 아니였다. 그런 '쓸데없는' 일을 벌이길 즐기는 타입과는 거리가 멀었다.

 

 정오가 다가왔다.

 

 리히트와 떨어져 있던 것은 어제 연주회가 끝난 후 호텔에 돌아온 뒤, 적어도 오후 1시 정도였다.

 

 '폐장된 유원지가 하나 있는데, 시내에서 가까워.'

 

 손의 마디가 굽혀지질 않고 핏줄이 돋아올라 흉측한 모양새였다. 보나마나 얼굴 역시 다를 바 없을 것이였다. 로우레스는 머플러를 둘러 최대한 끌어올려 눈가 아래까지 가렸다. 여전히 작게나마 비가 내렸다. 빌어먹을 상황과는 다르게 한창 시기인 벚나무에서 잎들이 떨어져내리고 있었다. 꽃길이라니.

 

 낡은 유원지는 죽은 봄과 닮아있었다. 어둑한 색채를 강렬히 남긴 구조물들이 멈추어 하나같이 저를 향해 시선을 내던지고 있었다. 작은 규모였지만 자꾸만 끌리는 발에 더디게만 나아갔다. 유원지의 정중앙을 화려히 수놓았을 회전목마는 누군가 물감을 통채로 들어부은 양 얼룩덜룩한 색들의 향연이였다. 크리스마스 트리에나 달려 있을 법한 조그만한 장신구들로 치장되어 있었다. 그의 짓이였다.

 

 리히트는 보이지 않았다.

 

 "리히땅-."

 

 그는 거칠게 머플러를 끌어내리며 불렀다. 이렇게 절박해 본 적이 있었는지를 떠올릴만큼, 이브에게 이리도 간절했던 적이 있었는지를 회상할 만큼.

 

 "망할, 쥐 새끼."

 

 리히트는 비틀거리며 회전목마와 조금 떨어져 있는 운전석에서 쓰러지 듯 튀어나왔다. 비틀거리는 걸음세가 영 좋지 않았다. 제 의지와 상관없이 리히트는 로우레스의 품에 안겼다. 엄밀히 말하자면 로우레스가 리히트를 붙잡아준 것이지만. 평소였다면 기꺼이 밀쳐냈을 그였지만 꽤나 얌전히 숨을 색색 거렸다.

 

 "조금만 늦었으면 죽을 뻔 했슴다."

 "죽는게, 무서워?"

 

 리히트의 말에 로우레스는 미간을 구기더니 이내 웃음을 터뜨렸다. 그럴리가 없잖슴까. 리히트는 로우레스의 어깨를 짚고 이마를 맞대었다. 이만하면 충분한 신체접촉으로 통증이 가라앉을 법 했지만 여전히 그의 이마는 뜨거웠다. 얇은 셔츠로 간밤을 지새기엔 충분하지 못한게 뻔했다. 감기라도 걸린검까. 정말 리히땅은-.

 

 뜨거운 입술이 닿았다. 서툴은 입맞춤은 뜨거웠고 애처로웠다.

 

 "난-, 난 무서워."

 

 한순간의 장난일까. 로우레스는 말없이 리히트를 내려다보았다. 반 쯤 풀린 눈이였지만 너무나도 확고해보였다.

 

 "그런데, 너라면. 상관없을거같아."

 

 리히트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소란스레 소나기가 한바탕 자리했다. 로우레스는 그를 안고 낡은 운전 박스로 들어갔다. 아무래도 좋았다. 우선은 열부터 식혀야했으니까. 역시 제가 아닌 것에 죽음을 맞이하는 제 이브란 좋은 꼴이아니였다.

 

 죽는 그 순간까지 난 당신을 기억합니다.

 

 그만의 유별난 이브 사랑법이였다.

 

 "난, 리히땅의 그 희망찬 무지함을 동경함다. 미숙한 감정을 사랑함다."

 

 편안히 눈 감은 리히트는 경멸하는 로우레스의 팔에 안겨 잠들어 있었다. 로우레스는 가만히 뺨을 쓸어주었다. 잠결에 뒤척이지도 않고 얌전히 잠든 그의 눈 위에 작게 입 맞추었다.

 

 리히트 지킬란드 토도로키. 열 여덟. 세간을 떠들석하게 하는 천재 피아니스트가 아닌 오로지 자신 하나만으로 벅찬 나이. 어리숙한 감정.

 

 난 지금 이 순간 속 당신을 기억합니다.

 

 그만의 독특한 리히트 사랑법이였다.

 

-

 

다 했...다

 

(와장창)

 

긴 말 하지 않으려 노력하지만 길어지겠지

 

그냥, 음- 얘네 예뻐..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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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어 님께 협박당한 글  리퀘

 

*기괴설정에 주의해주세요

*과거 날조 주의 


(시점은 나태조와 탐욕조가 만난 후 시점부터 봐주세요/의도찮게 탐욕조가 서브지만 왠지 모르게 메인이 되어버린 듯하지만 카테고리 새로 파기 귀찮으니 이대로 가자 라는 이론의 만행)

 

-

 

 죽은 자는 말이 없다.

 

 검은 악마 하나가 주위를 서성인다.
 선혈 가득의 이를 탓해야 하는가, 그를 홀린 악마를 탓해야 하는가.
 누가 널 이리 무자비도 먹어치웠는가 물어도 역시 죽은 자는 말이 없다.

 

 그렇기에 죽은 자임이 틀림없다.

 

 그야말로 열 가지 무(無)에서 피어오르는 순결의 혼백.

 

-

 

 마히루는 늘어지게 하품을 하며 폭신한 이불 위를 뒹구는 제 서뱀프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납득이 가질 않았다. 쿠로는 유유자적한 시간을 온전히 보낼 수 있다는 사실보다 뚫어져라 저만을 바라보는 이브란 작자의 눈치를 살폈다. 물론 제가 한 걸음 양보한다면 얼마듵지 설명이 가능한 일이였다. 안타깝게도 그에겐 그럴 추호도 없었다.  가끔 진실이란 것은 건장한 정신으로 버텨내기 역부족일 만큼 괴롭고 추하며 잔혹할 때가 있다. 가끔은 아무 것도 몰라도 좋다. 그 이면에 귀찮음이 베여있는 것은 틀림없었다. 마주할 수 없어. 그는 중얼거렸다.

 

 "쿠로, 역시 이해가 안가."

 

 아 시작됐다, 시작됐어. 쿠로는 잔뜩 미간을 구기며 상체를 일으켜 마히루를 마주보았다. 그는 언제나 모든 것을 알려 하였고 쿠로는 나태의 서뱀프 라는 호칭에 걸맞게 귀찮음으로 대응해왔다. 어쩌면 일종의 방어술에 가까울 지도 몰랐다.

 

 "로우레스 라면 맹세컨데 오늘 처음 봤어. 그런데 어째서 날 공격한거야?"
 "..그 녀석 일이라면 나도 몰라."
 "하지만 나한테, '오랜만입니다' 라고 말했는걸."

 

 나랑 누군가를 착각한걸까. 마히루는 잔뜩 얼굴을 찌푸리고 이마에 검지를 갖다대었다. 쿠로는 짐짓 놀라 평소보다 크게 뜬 눈을 도로 감으며 고개를 푹 숙였다. 제 고민에 빠져 역시 심플한게- 를 연호하던 그는 쿠로의 반응을 살필 겨를이 없었다. 보았다 하여도 그저 이상하다 정도로 그쳤을게 눈에 훤했지만 말이다.

 

 알 길이 없어 답답한 쪽은 마히루였다. 서뱀프에 관한 것이라면 여전히 미지에 가까웠다. 게다가 호기심 왕성한 저에 비해 생명과 연관되는 중요한 사실마저 묻지 않았다는 이유로 침묵해버리는 이름 값 톡톡히 하시는 나태의 서뱀프님 덕분에 알고 있던 것들 조차 뒤죽박죽 섞이고 마는 기분이였다. 물론 심플한게 좋지만 그렇다는 이유로 진실까지 치부해버릴 추호는 없었다. 눈 앞의 이리도 가까운 답을 두고 무엇 때문에 돌아가야 하는지 원망스러울 뿐이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원흉은 일순의 순간에 뒹굴거리는 꼴이되어 하얀 이불 위로 파묻혀있었다. 누가 나태 아니랄까. 마히루는 쿠로의 등허리를 가볍게 흔들었다.

 

 "쿠로."

 

 깨울 작정이였다. 그는 가물가물한 눈을 억지로 비집어 열었다 결코 좋은 얼굴을 하고 있지 않은 마히루에 도로 눈을 감아버렸다. 어이, 쿠로! 그는 작게 몸을 뒤척였다. 귀찮아. 미묘한 효과음과 함께 그는 한 마리의 작은 고양이 행세를 하고 있었다.

 

 "너 내가 이 모습일 때 약하다는거 알고 이러는거지."

 

 그의 손은 더 이상 점퍼 따위가 아닌 검고 보드라운 털을 맞대고 있었다. 이럴 때만 약삭 빠르다는 점 하나만은 높이 살 만한 것이 틀림 없었다. 마히루는 쿠로를 깨우는 것을 그만두고 방을 나섰다. 다들 힘 내는데 혼자만 보란 듯이 놀 수만은 없는 천성 탓이였다. 행여나 쿠로가 깨기라도 할까 조심스레 미닫이 문을 밀어 닫았다. 우선은 돌아갈까나. 그리 중얼거리며 겉옷을 챙겨든 후 온천을 빠져나왔다. 벌써 몇 일째 집을 비웠다는 것을 상기시키며 여유롭지만은 않은 걸음은 순식간에 빠르고 넓은 보폭이 되었다.

 

 의도찮게 간단한 집안 일을 마쳐놓고 쿠로에게 줄 포테토 칩 한 봉지를 집어 들고서 마히루는 제법 만족스레 온천으로 향하는 것은 명백히 직업병을 닮아있었다. 

 

 "어라라- 이거 나태 형님의 이브 아님까."

 "로우레스?"    

 "이거 참 우연이지 말임다."

 

 로우레스는 역광을 진 채 마히루를 벽으로 몰아넣었다. 일전에 쿠로와 싸웠을 적과 같이 여전히 소름 끼치는 미소가 만연했다. 그는 강하다. 제 입으로 마음만 먹으면 여럿이서 온전히 상대해도 힘들 적을 홀로 헤치운다 말하며 아무렇지도 않게 도발했다. 결과적으로, 심플하게 보면 마히루에게 있어 경계 인물이였다.

 

 그다지 탐욕은 협력할 마음도 없고 그의 이브 역시 같았다. 적어도 그가 아는 선에서는 그러했다. 둘의 관계는 단순한 이브와 서뱀프의 관계가 아니였다. 서뱀프는 이브에게 복종한다. 하지만 로우레스의 경우는 오히려 반대였다. 제게 평화주의자 스러운 면이 있다는 점을 짚고 넘어가도 다른 이브나 서뱀프들과는 확연히 다른 관계라는 것이다.

 

 "형의 기척도 없고 하니 길-게 대화라도 해보지 말임다."

 

 날카로운 송곳니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마히루는 더 이상 뒷걸음질을 쳐도 의미없다는 사실을 내심 알고 있었다. 어찌 되었건 그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어낼 터였다. 게다가 이브와 서뱀프의 전력 차이라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아직도 그들에 관해서 모르는 것이 너무나도 많았다. 이제 막 알의 막을 헤치고 나온 어린 새끼와 같은 꼴이였다. 하지만 명백한 한 가지라면 자신은 곤란한 상황에 빠져있고 탈출구는 지극히 협소하며 홀로라면 가능성이 제로에 가깝다는 사실이였다.

 순식간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머리로 이해하기도 전에 상체가 먼저 고꾸라지더니 하체 역시 맥 없이 픽 쓰러졌다. 복부에 근육이 갈라지기라도 하는 듯한 통증이 엄습하더니 주위로 퍼져나갔다. 명치 부근이 아니였음에도 숨이 쉬어지질 않았다. 탁한 숨만을 겨우 내쉬건데 눈 앞이 흐렸다. 손발 끝이 저릿하며 관절 마디가 모두 일렬로 늘어서 뻣뻣해져 도저히 움직일 수 없었다. 경련이라도 일어난 양 힘은 들어가지도 않고 마냥 미세한 떨림 사이로 흩어져만 갔다. 


 자- 그럼, 안녕히 주무시죠.


-


 "가엾은 운명은 돌고 돌아 마치 회전목마 마냥 다시- 돌아온다."


 마히루가 흐릿하게 나마 정신을 차렸을 적엔 로우레스는 정신없이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혼잣말을 중얼거리고 있었다. 손목을 포박하고 있는 쇠고랑이 녹슨 쇠음을 내자 그는 목적지를 찾은 듯이 반듯하게 걸어왔다. 올곧게 입가의 끝을 올리는 그는 한 걸음을 남겨둔 채 제자리에 섰다. 머플러가 펄럭이고 두 팔을 커다랗게 휘둘러 마지막으로 왼발을 오른 발 뒤로 점을 찍었다. 기괴스러운 몸짓은 영락없는 신사의 인사법에 불과 했다.


 "좋은 꿈 되셨슴까."


 눅진한 역한 향이 천천히 벽을 타고 오르는 듯한 기분을 떨쳐낼 수 없는 방이였다. 방이라기보다는 영화에서나 보던 지하 감옥과 같은 형세 였다. 멀쩡한 빛 하나 들지 않는 곳은 어둡고 축축하기 그지없었다. 벽면에 걸린 촛대의 건장한 남성 성인의 팔뚝보다 굵은 촛대 위의 아른거리는 불빛만이 지켜낼 따름이였다. 바닥은 촛농으로 어지럽혀진 것이 꽤나 오래 전부터 써오던 장소인 듯 했다.


 "왜 이러는지 궁금하실거라고 생각함다."


 로우레스는 제법 신나게 기세좋게 말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단지 말 상대가 필요했다 정도의 가벼운 생각이 들 정도로 그는 마히루에게 그다지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묶여 있는 것이 설령 츠바키라 할지라도 적이고 아군따위 가리지도, 만들지도 않는 그에게는 애초부터 의미없던 것일지도 모르는 일이였다. 

 그는 머플러는 찢어낼 듯 풀어헤쳤지만 곱게 내려놓았다. 후에 아무래도 좋다는 양 조끼와 셔츠는 뜯어냈다. 면티가 갈기갈기 흩어져버렸지만 그는 태연스레, 오히려 휘파람이라도 불어대며 양옆을 더 찢어내었다. 그는 제법 상냥히 웃어보였지만 묶인 사람에게 그렇게 보일 리가 없지 않은가. 조끼와 셔츠는 옆으로 거둬 골반 쯤에서 잡아 복부가 드러나게 하더니 붉은 동공이 아래서 위로 움직였다.


 "어떠심까, 이 걸작."


 복부의 정중앙을 차지하고 있는 새살의 흔적은 영락없는 나비의 형체였다. 네 방향으로 갈라진 선은 옅게 남아 도드라져 보였다. 온전히 살결만 이어 붙은 것이 로우레스가 숨을 들이마셨다 내쉴 때 마다 살아 꿈틀대는 것만 같았다. 


 "어째서인지는 전-혀 알 수 없지만 말임다. 이거, 나태 형이 남긴검다. 아무래도 같은 서뱀프 끼리라 그런건지, 이 이상으로는 도저히 회복될 기미가 보이질 않아서 말임다."


 뭐 저도 꽤나 곤란하지만요. 그는 옷에 붙은 먼지를 털어내는 손짓으로 흉터를 쓸어내렸다. 마히루의 눈 앞이 멈췄다 다시 재생되기를 반복했다. 노이즈가 웅얼거렸다 돌아오는 스크린 마냥. 이리저리.


 "그게, 무슨..소리야."

 "당연한 소리지만 형이 그런걸 당신에게 알려줄리가 없잖슴까. 그야 모-든게 당신 때문에 일어난 일이니까요. 이 방을 기억 못한다는 것만으로 충분함다."


 헤실거리던 웃음기가 순식간에 자취를 감췄다. 싸늘하게 내뱉은 충분하다는 그의 말에도 미히루는 여전히 무엇 하나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그의 말대로 라면 저는 이 방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실제로 전혀 그러지 못했다. 이것도 쿠로가 얘기해주지 않은 한 부분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지만 당장의 이성적인 논리보다는 두려움이 앞섰다. 


 "무슨 말인지 전혀 모르겠다고."

 "그-러-니까, 그게 당연한 일이라고 말했잖슴까. 형이, 감히 나태의 서뱀프인 형이 이브라 해도 당신께 그런 건 가르쳐줄리가 없슴다. 물론 나태 이전의 문제지만."

 "쿠로가, 쿠로가! 뭘 안 알려준건데!"

 

 로우레스는 하찮다며 걸어와 무릎을 세워 복부를 찍어올렸다. 


 "닥쳐. 당신이 잘한건 지금 여기 있는 것 뿐임다."

 "그러, 니까..모르겠다고, 말하잖아.."


 그는 허리를 바짝 숙인 채 방 안 가득 소리로 찰 때까지 웃어댔다. 그것은 비웃음이였고 허탈함이였다. 


 "정말 형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네요. 물론 나쁜 방향으로 말임다. 그렇다면 제가 알려드리죠. 과거의 모든 일을."


-


 서뱀프는 단 한 번의 계약이 허락된다. 그렇기에 서뱀프에게 계약이란 최초이자 최후의 선택이라는 점에 의의가 있다. 어떠한 경우도 계약한 자가 아닌 이와는 계약 할 수 없다.

 이브란 서뱀프와 계약한 자를 일컫는다. 계약에 관한 권한은 이브가 가진다. 이브는 서뱀프와 계약을 하므로 그들을 수하로 둘 수 있으며 그들에게서 무기를 얻을 수 있다. 이브는 단 하나의 서뱀프와 계약할 수 있다. 이브는 환생한다. 현생에서 계약 후 죽음에 도달하면 도로 환생한다. 그리고 다음 생 역시 서뱀프의 이브로 살아가게 된다. 그 증거로 첫 계약 시 서뱀프의 힘을 미약하게 가지게 되는데 이로 서뱀프들은 환생한 이브를 찾을 수 있다. 환생 시 경우에 따라 전생의 기억을 가지기도 한다.


 나태는 사막에서 저를 살려준 전쟁터의 한 아이와 계약을 맺었다. 어딘가의 동화인 은혜갚은 ~ 처럼 사려가 깊지 않은 그였다. 다만 여전히 희망을 놓지 않은 눈이 마음에 들었던 것 뿐이였다. 반군의 난사질에 엇맞은 아이는 붉게 물드는 손에 가쁘게 숨을 몰아쉬었다. 너, 나랑 계약하자. 예나 지금이나 뜸금없는 소리는 때를 가리지 않고 잘했던 모양이였다. 

 희망 찬 눈을 보면 제 귀찮음을 덜기 위한 것은 절대 아니였다. 어쩌면 이 또한 적당히 그가 갖다붙인 것에 불과할지도 몰랐다. 다만 전쟁터에서 하루가 다르게 제 목숨 하나 겨우 이어가는 그곳에서 먹을 것을 나눠주고 잠자리를 내어주며 오직 나태가 살아있음에 기뻐하는 아이란 좀 처럼 거부하기 어려운 것이였다. 


 단지 그 뿐이였다.


 탐욕은 결과적으로 제 식사를 방해하던 가출 소년과 계약을 맺었다. 성에 차지 않는 식사를 마친 후 돌아서자 그는 무심히도 '맛 없던 것' 과 탐욕을 번갈아 보았다. 그러더니 검지로 대뜸 탐욕을 가리키며 말했다. 


 너, 로우레스 구나.


 영문을 모를 소리를 하던 그를 한 입거리로 삼을까 하며 고민하던 중 소년은 제 손을 만지작거리더니 미간을 구겼다. 좀 더 자세히 상상할걸. 

 버릇없이 구는 건 둘째 치고 살인 장면을 마주했음에도 알 수 없는 제 할 말만을 들어놓는 그는 탐욕에게 꽤나 흥미였다. 그 뒤로도 저를 따라다니며 '로우레스' 라고 불러댔다. 이유를 묻자 간단히 답했다. 넌 내가 상상해서 이 세상에 나온거야. 그 점이 마음에 들었다. 심심하지는 않겠다는 생각으로 단번에 계약 해버렸다. 


-


 "츠바키 라면 처음보는 녀석도 아님다. 당신네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오래 전부터 우리와 함께 있었슴다. 그리고 그 녀석의 안식처 랄까, 봉인되어 있던 곳이 여기 였던 것 뿐임다. 지금, 그 자리에."

 "그럼, 난 원래 전쟁터에 있던 아이고. 내가 쿠로를 주운거라고?"

 "원래가 아니라 전생임다. 그게 전전전생일지도 모르지만 말임다."


 로우레스는 피식 웃더니 마히루의 앞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 자리에 봉인되어 있었슴다. 리히트와 함께. 그리고 제가 풀었죠. 츠바키와 함께."


 그는 커다랗게 두 팔을 벌리더니 이내 뒤로 쓰러지듯 누우며 숨소리만 남을 정도로 웃어댔다. 두 다리를 끌어올려 양옆으로 구르며 웃더니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 앉으며 눈가의 눈물을 훔쳤다. 


 "누구 때문에 츠바키를 리히트와 봉인했다고요. 그래서 제가 풀었어요. 가엾은 리히트- 봉인 덕택에 환생도 못하고 여기서 홀로 차갑고 어둡고 외롭게, 여길 지키고 있었다고!"


 로우레스는 마히루에게 달려들어 그의 목을 짓눌렀다. 목뼈가 으스러질 듯이 한 손에서 두 손으로 늘었고 숨이 막히기 이전에 뼈가 부러질거란 생각이 마히루를 엄습했다.


 "웃기는거 하나 알려드리겠슴다. 나태 형이 왜 나태인 줄 아심까."


 그는 갑자기 힘을 풀더니 두 팔을 뻗은 채 뒤로 두어 걸음 물러났다. 그러더니 손을 찢어진 티에 슥- 하고 문질렀다.


 "사랑에 눈이 멀어 제 할 일을 모두 내팽겨쳐서 임다. 그래서 나태하다고 말이 붙었고요. 웃기는 일이죠. 나태와 사랑이라니 이런 조합따위 말도 안돼. 리히트는 전혀 그렇지 않다고 말할테지만요. 그렇죠?"


 그는 곱게 내려놓은 머플러를 주워들어 가볍게 품에 안았다. 그리곤 익숙한 모양새로 머플러를 매더니 그 안에 얼굴을 묻고 크게 쉼호흡했다.


 "그리고 그 사랑이란건 말임다. 꽤나 웃기는 놈임다. 꽉 찬 것 같지만 실제로 속을 들여다보면 텅 비었거든요. 물론 나태 형은 좀 다른 것 같습니다만. 지금은 아니지만 딱 전전생 까지만 해도 나태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도록 열성적이였슴다. 그 사람 한정이였지만 말임다. 나태인 주제 잘도 숨기고 다니네요."


 그는 여전히 머플러 끝자락을 놓지 않은 채였다. 


 "그렇지, 형-?"


 멀리서부터 촛대가 일렁이더니 삽시간에 군데군데의 촛불이 꺼져 연기만을 피워냈다. 그 광경이 마치 향이라도 피워내는 묘지같아 마히루는 살기에 숨을 멈추었다. 턱 아래까지 밀려들어오는 오한은 그리 반가운 것이 아니였다. 


 서뱀프이자 장남이자 나태이자 쿠로였다.


 반지 앞 주머니에 손을 넣고 반 쯤 굽은 허리로 발을 끄는 그가 아닌 온 몸에 형용할 수 없는 살기가 도는 '쿠로' 였다. 새까만 그림자 안 붉은 눈동자만이 커다랗게 일렁여댔다. 


 로우레스는 빈정거렸다. 이름 하나는 잘 어울리네요, 쿠로(黑) 이라니. 그러면서 그는 머플러는 입가까지 끌어올렸다.


-


 "탐욕에게 납치라니 그게 무슨 소리야."

 

 미소노는 책상을 치며 상체를 일으켰다. 리리이는 그런 미소노를 자리에 앉히며 흥분을 가라앉혔다. 자자, 미소노. 우선은 할 말이 더 있는 것 같으니까 진정하죠. 어린 주인이 깊은 한숨을 내쉬며 도로 앉자 옆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테츠는 호오- 라며 중얼거렸다. 


 "쉽게 타오르는 성질인가."

 "아니야!"


 테츠는 제 서뱀프인 휴를 돌아보더니 미소노의 반응따위 없었던 것 마냥 둘 만의 대화를 이어나갔다. 리리이 역시 곤란한 건 마찬가지였다. 어린 주인이 언제까지고 고분고분히 제 말을 들어주지만은 않을테니 그 전에 해결해야만 했다. 

 저들이 츠바키의 탐색을 위해 자리를 비운 사이 마히루는 나태를 두고 혼자 사라졌다. 사실 그들은 나태 역시 본 적 없으나 때마침 로젠이 리히트를 통해 나태의 행방을 알고 있었다. 더불어 시로타 마히루의 행방에 관해서도. 


 "리히트는 나태와 함께 둘을 찾으러 갔어. 나태도 제 이브니 어렵지 않게 찾을거라고 생각해. 다만 문제라면- 어째서 로우레스가 마히루 군을 납치했냐는건데."

 "그 문제라면 내가 알고 있다."


 박쥐의 형태로 취하던 휴는 어느 새 인간체로 돌아와 책상 앞에 앉아있었다. 잔뜩 미간을 구긴 채 리리이를 바라보고 있었고 리리이 역시 평소와는 다른 가라앉은 미소였다. 미소노는 리리이로 시선을 돌렸다.


 "너도 알고 있는거야?"

 "뭐- 네."

 "서뱀프들, 아마 츠바키 까지 포함해 알고 있을거다."

 "그 문제라는게 리히트와도 관련이 있는건지."

 "물론이다! 가장 크게 연관된 것이 그 청년이다."

 "휴, 자세히 말해봐."


 휴는 흠칫하더니 눈을 굴렸다. 그게. 


 "얼른 말해야 우리도 도울거 아니야."

 "사실 우리는 크게 관련이 없으니 하는 말이지만 슬리피 애쉬와 로우레스의 얘기다. 그 둘이 어긋나게 된 결정적인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그게 무슨 문제냐고 묻잖아."

 "흠- 멋대로 얘기해버리기엔 다소."

 "나태가 탐욕의 이브를 죽였습니다. 자신의 이브를 살리기 위해서요."


 리리이가 입을 열었다.


 "올 오브 러브!"


 휴의 낯빛이 새파랗게 식었다. 하지만 그는 미동조차 없었다. 


 "테츠 군이 한 말이 맞습니다. 도울 수 있다면 도와야합니다. 아니면 그 때의 일이 다시 반복될게 뻔해요. 로우레스라고요. 마히루 군을 죽이러 들겁니다. 아마 보는 앞에서 말이죠."


 휴는 마른 세수를 하더니 이내 끄덕였다. 


 "츠바키는 원래 봉인되어 있었다. 다만 이유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풀려난 것 뿐이다. 그 전까지 지하에 봉인되어 있었는데 힘이 강해 도저히 혼자 봉인시키기에는 역부족이였다. 그래서- 로우레스의 이브와 함께."

 "그게 무슨 소리야. 츠바키라면 처음 보는데."

 "자네는 전생까지 기억하는 모양이지만 안타깝게도 그 때는 봉인되어 었었다."

 "미소노는 잘 모르던 때라서 그런겁니다. 계속해주세요."


 휴는 리리이의 말에 잠시 끊어진 흐름을 다시 이어나갔다.


 "문제라면 그 츠바키를 잡아 가두는 과정에서 슬리피 애쉬의 이브가 츠바키와 그의 서브 클래스에 의해 죽기 직전의 상황이였다. 봉인이란건 최대한 힘을 억눌러야 하는데 그렇게 기력이 쇠하니 도저히 안될터였고 그래서 마침 곁에 있던 로우레스의 이브였던 청년을 재료로 쓴게지. 로우레스는 이에 분노했고 아마 슬리피 애쉬의 이브 탓이라고 생각하는게일 터야. 하지만 슬리피 애쉬의 이브도 때를 넘기지 못하고 그만 죽어버리고 말았지."


 긴 설명의 끝은 침묵이였다.


 "로우레스는 제 이브를 사랑했어. 지금 역시."


-


 "역시 올 줄 알고 있었슴다, 형."

 "쿠로..!"

 

 손가락의 관절 하나하나가 꺽이더니 목이 기계마냥 굳은 채 돌아갔다.


 "당장, 풀어."


 결코 그의 페이스를 잃지 않았음에도 낮게 읊조리는 나태스런 목소리는 귓가에 찌르르 하고 멤돌았다. 


 "풀어."

 "싫다면 어쩔검까."


 로우레스 역시 검을 뽑아들며 허공을 휘저어댔다. 


 "형의 이브 사랑은 유별난건 알겠슴다. 그렇다고- 남의 이브를 그 따위로 갖다 쓰는건 어디 상식임까!"  


 먼저 달려든 쪽은 로우레스 였다. 오른팔을 크게 휘두르며 손목을 꺽어 얇은 검을 옆으로 찔러넣었다. 쿠로는 달리 움직이지도 않은 채 뒤로 두어 걸음을 빠져나왔다. 허공을 짚은 로우레스는 방향을 틀어 검을 밀어넣었다. 연한 살을 뚫는 쾌감에 한껏 승리에 취한 미소가 번지기 시작할 무렵. 쿠로는 그의 뒤에서 목 아래를 손으로 찔렀다. 두 마디 정도가 수면 아래로 사라진 채 이성을 잃은 그가 손을 휘두르자 힘 주어 비틀어 빼내었다. 검붉은 피가 흡사 구멍에 가까운 상처를 에워싸고 짓눌러 그 안에 묶인 죄라도 쏟아냈다. 


 쿠로는 제 이브를 속박한 쇠사슬을 손짓 하나로 간단히도 끊어냈다. 손을 비롯한 팔은 거의 질리다시피 허옇게 식어있었고 마히루는 그것 하나만으로 고역이였다. 로우레스에게 가격당한 복부 역시 무사하지는 못했기에 사슬이 끊어짐과 동시에 그는 쿠로의 품에 안기듯 내려앉아야했다. 


 "마히루, 마히루..!"

 "쿠로."

 "괜찮아?" 


 그는 눈을 두어 번 감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어느 새 쿠로는 그가 알던 모습으로 돌아온 뒤였다. 만사를 귀찮아하며 무기력한 나태의 진조로.


 "멋대로 돌아다니지 말란 말이야. 귀찮다고."

 "미안. 그냥 잠시 집에 다녀온다는게 이렇게 되버려서."

 "자칫 하다가 그 때 처럼..!"


 멈칫. 그는 어금니를 맞물려 갈며 눈을 피했다. 마히루는 말 없이 그런 쿠로를 올려다보았다. 그 얼굴이 마치 로우레스와 마주 했을 때와 같다고 생각했다. 


 "..가면 간다고 얘기 정도는 하고 가."

 "아- 응."


 쿠로는 마히루의 손을 잡고 일으켜 세우고는 앞 장 섰다. 주머니에 손을 비집어 넣은 채 구부정하게 걸으면서도 그는 간간히 뒤를 돌아보았다. 그의 시선이 익숙하지 못한 탓에 마히루는 어색히 웃기만 했다. 가고 있다니까. 이내 쿠로는 마히루의 손을 잡아끌더니 소매를 붙잡게 하였다. 그제서야 돌아보기를 그만 둔 그에 마히루는 조금 미묘한 심정을 내비췄다.


 "손이면 손이지 왜 소매야. 그리고 나 잘 따라가고 있다고, 무슨 어린 애도 아니고."

 "귀찮아."

 "뭐가 귀찮다는거야."


 내색하면서도 결국 얌전히 손을 내어주는 쿠로에 마히루는 작게 웃었다.   


 "쥐새끼는."

 "제일 안쪽 광장."


 오늘은 가방이 보이지 않는 리히트가 반대편에서 여유롭게 걸어오고 있었다. 대뜸 자신의 서뱀프의 행방을 묻는 그보다 마히루는 그의 텅 빈 어깨가 더욱 눈에 들어왔다. 


 "로우레스, 미워하지 마."

 "네..?"

 

  오로지 제 할 말만을 남기고 리히트는 제 갈 길을 가버렸다. 그가 사라진 반대편을 한참이고 바라보자 쿠로가 그를 잡아당겼다. 


 "혼자서 멀리 가지 마. 안그래도 되니까."

 "쿠로가 귀찮아 하잖아."

 "..혼자 가지마."


-


 "어이, 쥐새끼. 죽었냐."


 리히트는 굽으로 로우레스는 건들였다. 출혈이 멎은 목은 말끔히 새 살이 돋아나있었다. 


 "리히땅-? 어떻게 여기,"

 "쥐새끼의 형님 되시는 분이랑 같이 왔다만."

 "그 자식이- 어떻게."


 리히트는 비교적 핏방울이 튀지 않은 곳에 털썩 주저앉더니 거적때기 마냥 늘어진 검은 머플러를 집어들었다. 로우레스는 천천히 몸을 틀어 제 이브를 바라보았다. 색 덕분에 핏빛으로 물드는 것을 면했을 뿐인 머플러는 묵직하게 적셔있었다. 


 "버려."

 "리히땅이 준거니까 아직은 쓸까나- 싶어서."

 "더러워."


 경멸스러운 시선에도 로우레스는 시종일관 웃었다. 리히트는 기분나빠 를 연호하며 뻔뻔스런 낯짝 위로 머플러를 던졌다. 


 "무슨 일 인지 설명해."

 "아아- 그거 라면,"

 "피곤하니까 잘거야. 그리고 나서 해."


 리히트는 로우레스의 옆자리를 차지하고 누우면서 그를 바라보았다. 


 "팔."

 "에-?"

 "바닥 딱딱하니까 못 잔다고. 팔 내놔."


 어안이 벙벙해진 그의 팔을 잡아당기더니 리히트는 기세 좋게 베고 누워 잠을 청해버렸기에 도저히 어쩌지도 못하는 웃지도 못하는 상황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증오도 허무도 슬픔도 아닌 고요가 가라앉았다. 우선은 아무래도 좋았다. 리히트가 살아있다는 것만으로 충분히 벅찼지만 이런 류의 서프라이즈에는 약한 그였다. 남은 팔을 천천히 그의 허리 위에 얹었다. 잘자, 리히트. 좀 더 안으며 그 역시 눈을 감았다. 


 "로우레스."


 리히트는 감고 있던 눈을 살며시 떴다. 어리숙한 모습은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었다. 아둔한 자식. 그리 중얼거리며 뺨에 작게 입맞췄다. 어차피 정신은 이미 아득해진 상태일 테고 깨어있다 해도 저는 자고 있다고 생각하니 이래나 저래나 상관없었다. 좀 더 안으로 파고 든 채 눈을 감았다. 심장이 뛰긴 뛰는구나. 다음 음악회 메인으로 쓰면 되겠다. 그런 생각을 했다. 


 결코 텅 비지만은 않았다. 처음 만남부터 지금까지.


-


흐어어어어ㅓㅓㅓ어어ㅓ어ㅓ엉


지금은 새벽 4시 32분/노트북 시계로


나는 오늘 잠을 포기하겠다 죠죠!!!!1 같은 상황 연출은 바란 적이 없으나 


우연찮게 이렇게 되서 유감스러운건지 뭔지 잘은 모르겠지만


마감!!! 완료시마시타!!!!!! 우와아아ㅏㅏㅏㅏ


사실 지금 내가 뭐라고 써놨는지 기억도 안나고...ㅋㅋㅋㅋㅋ


분명 쿠로마히였지만 결국 난 탐욕조였나봅니다, 음음


이번 글 쓰면서 깨달았어요, 탐욕조가 취향인건같습니다 :D (빵긋-)


그럼 오전에 보면 더 이상 이 건으로 시달리지 않겠네요 하핳  



아 역시 제목은 어떻게든 해명해야할거 같아서..음-

해명이라고 한 시점부터 망한건 알지만 그래도..!! 하핳


쿠로 입장에서는 마히루를 지키지 못한게 죄고 혼자 가지 말라고 말하는거고요, 음

로우레스는 뒷 부분 전체적으로 보면 되지..되, 되지 않을까...하지만 

 

살해당하고 말거야, 암살 당할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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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바뀌셔서 뭘 써야할지 모르겠습니다만) 고등어 님 응원글

 

키워드 ; 부정하고 싶었다/눈물조차 나오지 않았다/예쁜 꿈을 꾸렴

(https://kr.shindanmaker.com/484366//진단메이커로 우시오이를 돌렸습니다)



(어쩌다보니 약 마츠하나 요소가 포함되어버렸습니다/나도 모르겠다) 

-

 

 오이카와 토오루 라고 불리는 작자를 떠올리자면 벼랑 끝 자락에서 피어나는 수선화이다. 덧붙여보자면 동양적 뉘앙스보단 '나르시스' 따위의 우아한 어감이나 어울릴 법한 그런 사네이다. 동시에 제 오랜 연을 맺은 이와이즈미의 말을 빌리자면 빌어먹을 만큼 잘난 자식, 이기도 하다. 꽤나 안타까운 얘기지만 그가 '벼랑 끝' 에 비유되는 것에는 다 이유가 있다. 출신이다. 이 바닥에서 정상에 오른 사네에게 이제 와 배경을 가지고 시비를 걸 문제는 전혀 아니였음에도 어렴풋이 마음에 담아둘 수 밖에 없는건 오이카와, 자신이였다.  

 

 따지고보면 이 바닥에선 슬럼가 출신이 많았다. 곱게곱게 자라온 온실 안 탐스런 꽃송이보다 산전산수를 다 겪은 야생화가 혹독한 현실에 강하다는 것은 사실이다. 다시 말하자면, 곱게 주위의 보호와 살핌을 받으며 자란 이들보단 밑바닥부터 이 악물고 올라온 이들이 한 수 위라는 얘기이다. 

 후자에 속하는 그에게 있어서는 꽤나 기쁜 이야깃 거리일지도 모른다. 끝을 모르고 덤벼드는 것들만 제외했다면 말이다. 골칫거리라고 해도 순위가 있기 마련이고 손가락을 하나 씩 접어가며 세어보건데 단연 최고봉이라 한다면 '왕좌' 이다. 온실 안에서 자랐다면 얌전히 쳐박혀 있기라도 했다면 좋았을 터였으나 좀처럼 빈틈을 보이는 법이 없었다. 썩어버리면 좋을텐데. 그는 가끔 그리 중얼거리곤 하였다. 물론 이걸 증명해 줄 사람은 오직 그의 오랜 친우인 이와이즈미 뿐이였지만 말이다.

 

 오이카와의 천성이 그러하다. 웃는 얼굴로 속 뒤집어 놓는 것이 능숙한 작자이다. 빌어먹게 억울한 점은 범인(凡人)의 선을 넘었다는 것이다. 이 바닥은 이미 그의 놀이터와도 같았다. 사실 그가 몸 담고 있는 조직인 '아오바죠사이' 는 '아오바' 와 '죠사이'가 합병된 조직이다. 밑바닥에서 부터 안면이 튼 사이인 만큼 어느 정도 세력을 키우고 돌아갈 만큼 굴려놓고는 흔쾌히 오이카와에게 조직 전체를 내어주었다. 마츠카와가 말했다. 지쳤어, 그 뿐이야. 제 온전히 평생을 바라본 그 얼굴에 안도가 피어올랐다. 그는 입을 열려다 닫았다. 아아- 그럼. 덕분에 제 잡다한 일거리가 늘어났다는 점은 분명 부인할 수 없지만 한가로이 제 연인과 노닥거리게 된 마츠카와에게는 심심찮은 감사를 가지고 있다. 그에게 있어 마츠카와 잇세이는 이와이즈미 못지 않게 오랜 시간을 함께 했기에 도저히 세력끼리 맞붙기라도 하면 저는 어쩔 도리도 없을 터였다. 이미 더러워진 손이라 해도 결코 이 따위로 썩어나기를 바라진 않았다. 다만 그 전에 마츠카와가 자리를 내어준 것이였다. 그리 된 지도 몇 해가 지난 얘기일 뿐이다. 


 사실 그는 제 자신의 존재를 부정해곤 했다. 자신을 인정해버리면 꼬리마냥 이어지는 것들까지 이내 고개를 끄덕여버리고 말아야했기 때문였다. 


 썩어버리면 좋을텐데. 

 

-

 

 낯짝 한 번 참 두텁다고 생각했다. '그' 의 말을 빌리자면 오이카와의, '가출' -물론 본인은 전면 부정해댈테지만- 이후 징글맞을 만큼 그는 칠석으로 부터 보름에 하루를 더한 날 항상 무언갈 보내왔다. 간단히 말하자면 생일이다. 얇고 검은 가죽에 오컬트스러운 초커일 적도 있었고 빈티지 느낌의 낡은 듯한 커다란 새 장일 적도 있었으며 의미 모를 파스텔 톤의 수트 일 적도 있었다. 세간에서 숨어지내는 것이 아니였기에 그를 찾아내는 것은 그리 칭하기 황송하리만큼 쉬운 일이였다. 어디 까지나 표면 상 오이카와 토오루는 건물 하나 씩이나 되는 바의 오너 되시는 분이다. 그 특출난 외모 덕에 의도찮게 잘잘 굴러가는 비지니스이자 취미생활에 본인도 꽤나 만족하는 듯 하였다. 

 그 뒷수습하느라-손님 상대랄까- 죽어나는 하나마키와 마츠카와에겐 두둑한 매출이 그리 달갑지만은 않았다. 다만 마츠카와라면 총질에 소질없는 제 연인이 커피 메이커나 돌리고 있는 걸로 위안을 삼을 수 있었다. 애초에 이 쪽에 물든 적 없이 자랐으니 말이다. 게다가 하나마키로 말할 것 같으면 손주를 끔찍히 아끼던 그의 할아버님 덕분에 세상물정 모르고 자란 도련님 되시겠다. 그런 하나마키가 뒷세계 까지 오게 된 사연은 길고 거기 다 마츠카와의 연인이 되기 까지의 험난한 길을 이어 붙이자니 이루 말로 할 수 없다는 정도만 일러두겠다. 짧게 한다면 그의 할아버님이 어떤 조직에 의해 살해당하고 그 틈에 그 조직을 소탕한 조직이 '죠사이' 였을 뿐이다. 딱 그 정도. 


 이래나 저래나 매년 짙은 보라색 정육면체에 무식하게 하얀 리본을 두른 '것' 이 가게로 배달되었다. 출처는 뻔했으나 배달해주시는 감사한 분들의 멱살이라도 틀어쥐건데 공통점이라면 모두 사람인 것 정도려나. 단언컨데 적어도 '왕좌' 를 섬기는 이들은 아니였다. 그런 소름 끼치게 섬세한 배려가 오이카와의 열을 돋우고 있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이 쯤되면 지쳤을 법도 하건만 지칠 줄을 모르는 윗대가리 되시는 오이카와에 물론 죽어나는 건 아래 였다. 그만 두라 하면 어떻게 제 맘도 몰라주냐며 토라질 것이 분명 했기에 이와이즈미로써도 달가운 리액션가 아닐 수 밖에. 정 그렇다면 역추적이라도 하면 되지 않냐며 영문을 모르겠다는 하나마키에 마츠카와는 그저 몰라도 괜찮다며 히로는 나만 봐 따위의 로맨스 씬을 연출해내면서 무산되고 말았다.

 따지고보면 하나마키의 말이 옳다. 오이카와 토오루 란 작자를 다시 떠올려보자. 원하는 것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족속이건데 그러지 않는다는 것은 사실 그가 '그것' 에 극도로 날카로워져 있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제 안중에는 없다는 뜻이다. 그저 유별 떠는 것에 지나지 않으며 잘도 제 방이든 창고든 가게든 어딘가에 보관 중이니 말 다 한 것이다. 결국의 결국엔 그 휘황찬란한 청색과 진홍색의 적절한 조화가 한 눈에 띄는 파스텔 톤 수트까지 입고 바로 출근한 오이카와는 갓 정신병원에서 탈출한 환자보듯 바라보는 제 '직원' 들의 눈초리에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어보이며 두 팔을 벌렸다. 


 설마 이 오이카와 씨가 부끄러운거야?  


 부끄러운게 당연하잖아, 멍청아! 다행히 오픈 전이였고 자리를 지키던 이와이즈미의 손에 단번에 해결되었다. 그냥 괴상망측한 취미를 가진 또라이일 뿐이라며 고개를 내젓는 이와이즈미는 찬사를 받았다. 이후 그 수트는 옷장에 봉인당했다나 뭐래나. 


 이 에피소드 만으로 오이카와가 '선물' 을 얼마나 아끼는지 혹은 얼마나 호기심을 가지는 지는 모두에게 입증되었다. 더불어 의도찮았지만 공식적인 정신 이상자로 낙인 찍히게 되기도 하였다. 썩어버리면 좋을텐데. 뭐, 이 젠장카와가 어디다 대고 욕질이야? 이와쨩이 아니라..! 문답무용!

 

 언제나의 해프닝이다.

 

-

 

 "어이, 오이카와."

 "응?"

 "너 슬슬 생일 다 되가지 않냐."

 

 그는 지휘하는 양 검지를 치켜세운 채 허공을 휘저었다.

 

 "아아- 그러네."

 "그러네-가 아니잖아, 젠장카와."      

 

 오이카와는 바의 구석에 덩그러니 놓여진 흔들의자 위로 몸을 내던지며 가만히 눈을 감았다. 아아- 어쩔까나.

 

 "우선은, 에어컨 키자. 더워."

 

-

 

 서프라이즈 라는 것은 흔히들 말 그대로 뜻 밖의 일, 놀라움 등을 의미한다. 그것이 좋은 일이던 나쁜 일이던.

 

 "안-녕, 오랜만이야!"

 

 그런 의미에서 저 붉은 머리의 등장은 실로 서프라이즈 스러울 수 밖에 없다.

 

 "아직 오픈 전인데.."

 "하나마키, 타카히로 맞지?"

 "예..?"

 

 별 꺼리낌없이 바 안으로 발을 내딛는 남자는 기분 나쁜 웃음으로 화답했고 그의 뒤에는 또 다른 남자가 묵묵히 열중 쉬어 자세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집안에 외손주. 그래서 그 영감이 그렇게 감싸돌았던 건가! 그런가! 그런가봐 카와니시!"

 "네." 

 

 하나마키가 제2의 오이카와와 이와이즈미를 보고 있다 떠올릴 즈음 마츠카와가 하나마키를 제 뒤로 물러서게 했다.

 

 "이 까지 산보라고 둘러대실건 아니라 믿겠습니다. 텐도 씨."

 "오랜만에 봤더니 애가 까칠해졌어. 반항긴가, 카와니시 저거 반항기야?"

 "모릅니다."

 

 카와니시는 눈길조차 주지 않고는 손목의 시계를 한 번 훑고 돌아섰다. 먼저 가 있겠습니다. 적당히 하고 오십시오. 매정해-.

 

 "마츠카와 군, 내가 정-말 위스키라도 한 잔하면서 옛 얘기 하고싶지만 이러다간 우리 세미 수재 쿠키도 놓칠거 같고 슬슬 카와니시도 열 오르는거 같으니까 간단히 할게."

 "뭡니까."

 "오이카와 어딨어."

 

 마츠카와는 하나마키의 손목을 움켜쥐었다. 세게 쥐었다 놓았다. 하나마키는 그런 연인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둘의 암묵적인 사인이였다. 도망가.

 

 "잇세이- 잇세이- 잇-세-이. 정말. 난 협박할 수단도 없고 무장해제 상태랍니다. 뭣 하시면 수색해보시던가. 응? 뭐가 네 뒤의 작은 아이를 겁먹게 한거야? 나?"

 "닥치시죠."

 "저 작은 도련님 말이야. 서툴지? 여기 사람도 아니잖아. 너 때문에 억지로 발 묶인거잖아. 세간에서 이름 날리던 애가 말이야, 갑자기 사라졌어. 그런데 어라라- 여긴 무슨 밤놀이신가?"

 

 아 밤이 아니니까 밤놀이는 아닌가. 텐도는 혼자 중얼거리더니 뭐든 좋아 라며 미묘히 얼굴이 굳었다.

 

 "오이카와 군 어디계시냐고, 너희 보스님. 꽃병풍. 토오루 군. 오이카와 씨 말이야."

 "대답할 의무는 없습니다."

 "그럼 거기 도련님? 대답해줄래?"

 "얘는 끌어들이지 마시죠."

 "그야- 마츠카와 군이 반항기에 접어들면서 나한테 더 이상 대답해주지 않는걸 어떻해. 그럼 오이카와 어디있는지만 말하면 되는걸."

 

 역광을 진 텐도의 모습은 흡사 사신을 닮아있었다. 열 손가락을 맞대고 있는 것은 상대를 끝내기 전 그의 습관이였다. 마츠카와는 어금니를 물었다. 허튼 움직임이라도 보이면 팔 하나 날아갈 것 쯤은 각오해야만 했다. 그를 상대로는 그래야만 했다. 

 

 "바쁘니까 빨리 가자고."

 "어레-?"

 

 오이카와는 언제부터 였는지도 모르게 문가에 기대 휴대전화를 뚫어져라 바라보며 답했다. 특유의 퉁명스런 억양이였다.

 

 "이게 얼마만이야-!! 라고 하고 싶지만 이 쪽도 급하니까 얼른 가자고. 오이카와 군."

 "아아- 물론이지."

 

 그럼 또 봐, 라며 가볍게 손을 흔들고 자리를 뜨는 텐도에 마츠카와는 그제야 몰아넣은 숨을 내뱉었다.

 

 "맛층, 맛키. 늦어서 미안해. 다녀올게."

 "이와이즈미는?"

 "오늘 휴가랍니다-"

 "혼자갈 생각이냐, 너."

 "응, 그런데?"

 

 그 말은 마치 '지금 산책하러 가는 길이야' 따위의 것과 동격이였다.

 

 "..다녀와라."

 "다녀-오겠습니다, 참. 오늘 오픈 하지마."

 

 검은 세단이 매끄럽게 골목을 빠져나갔다. 아직 상황을 모르는 하나마키는 흡사 넋이 나간 사람처럼 서있는 마츠카와의 소매를 아래로 잡아 당겼다. 마츠. 마츠. 아-. 괜찮은거야? 그는 막연히 저를 바라보는 아이를 안았다.

 

 히로. 사격 배우자.

 

 ..그러자. 그렇게 해. 대신 너한테 배울래.

 

-

 

 "있잖아- 오이카와는 영화같은거 스포일러 하는 편, 받는 편?"

 "헤에- 그런건 왜 물으시는걸까나-?"

 "그야 난 전자니까."

 

 오이카와는 미간을 구겼다. 이럴거면 이와이즈미라도 데려왔을텐데. 이제 와 후회해보지만 기세좋게 마츠카와에게도 그렇게 큰 소리 치고 온 이상 어쩔 도리가 없었다. 따지고보면 시라토리자와 역시 그저 귀찮고 거슬리는 존재지 천적은 아니였다. 구역 지키고 오해 살 일 하지말고 서로 일에 관심끄면 되는 것이다. 그 암묵적이지만 기본적인 수칙만 지킨다면 충돌할 일은 없으며 딱 한 가지 가능성이 있다면 그것이 침략이다. 다만 그 수는 이미 배제된지 오래다. 어쩌면 오이카와는 그가 조직을 꾸리기 시작한 시점부터 블랙리스트의 가장 위쪽을 차지하지만 동시에 영 번에 올렸을지 모른다. 가장 거슬리지만 걸치적거리진 않는다.

 

 "꼬맹이 일 땐 나랑 영화관도 같이 갔으면서 섭하구만, 참. 그렇지, 카와니시?"

 "덕분에 요즘은 가지도 못하고 있네요, 댁덕에."

 "그 어릴 때 장난 친거 가지고 삐지기는, 카와니시도 그렇게 생각하지?"

 

 창 밖 익숙한 경치에 실로 빌어먹을 감탄을 금치 못하며 오이카와는 감상에 젖었다. 하나도 안 바뀌는 구나. 어째서 제 유년의 기억은 죄다 이 곳에 쳐박혀 있느냐고 물어도 답할 수 없었다.

 

 "카와니시는 말이야, 너무 말 수가 적단 말이지."

 "이제 최선이니까요."

 "리액션 안해줘도 되는데."

 "해주길 바라시잖아요."

 

 그렇군! 이라면서 저 혼자 납득할 사이 어느 세 시커멓고 커다란 고딕 풍 건물에 도착해있었다. 썩어버리면 좋을텐데. 오이카와는 혀를 찼다.

 

 "여기서부터는 에스코트 안해드려도 되겠지, 도련님?"

 "소름 돋으니까 그렇게 부르지 말아줄래?"

 "그렇게 말하면 이 삼촌, 슬퍼진단다!"

 "그거 좋은데."

 

 가능한 빨리 텐도와는 멀어지고 싶은게 사람 심정이다. 카와니시 역시 그럴거라 중얼거리며 오이카와는 세단에서 내려 담쟁이로 뒤덮인 정원문을 열고 여전한 분수를 바라보았다. 온통 꽃밭에 풀밭으로 도배된 꼴을 보며 미간을 구겼다. 썩어버리면 좋을텐데. 어울리지도 않았을 뿐더러 역겨웠다. 무엇 때문에 그리 하느냐고.

 

 언제나처럼 이골난 상태로 나무 문 앞에 서 작은 벨을 울리면 문이 열렸다. 도련님 어서오세요. 골 때리는 멘트라며 시대가 시댄데 무슨 대사냐며 생색내도 상부 명령이라며 시종일관 도련님- 하고 부르는게 싫었다.

 넌 자유다. 라면서 무엇이든 우선 옭아매고 보는 것도 싫었다. 보호니 뭐니 그런 허울 좋은 변명이나 갔다 붙이며 아무래도 좋으니 가만히 있어라 따위의 명령에 불과했다. 이중적이잖아. 어린아이의 시선이 비친 영화 속 경찰과 같은 것이였다. 움직이지 말라며 손을 들라니. 어처구니 없지만 따지고보면 틀린 말이 아닌 것 처럼. 어딜 가도 좋지만 저긴 안돼 라니. 이제 와 구역의 경계에 예민해지는 것은 이해한다만 어릴 것에게 설명없이 막연히 선을 그어버리는 것은 꽤나 난폭한 행위였다.

 

 계단을 오르며 습관마냥 난간을 손가락으로 쓸었다. 아니, 습관이다. 당장이라도 잘라내지 않고서야 잊지못할 몸이 기억하는 습관. 먼지. 집관리 또 안되고 있구나. 비웃음이 찬 억양을 뱉고는 제법 신나게 발을 옮겼다.

 

 "도련님, 오랜만."

 "아- 그러네."

 "완전 다 컸네, 다 컸어."

 

 제 유모 격이던 세미는 여전한 얼굴로 그를 반겼다. 분명 적대시 하는 조직의 우두머리를 앞에 두고 있음에도 그는 함박웃음이였다. 모성애에 가까운 것일지도 모른다. 세미는 그의 '가출' 전이나 후까지도 상징적 엄마인 존재였으니 말이다. 제법 의연한 모습으로 주머니에 손을 꽂아넣으며 발걸음을 내딛었다.

 

 "와카토시 한테 가는거지?"

 "뭐."

 "사무실말고 침실로 가. 거기 있으니까."

 "침실?"

 

 응, 침실. 얼른 가봐. 기다린다. 누가봐도 엄마나 할 법한 잔소리를 늘어놓기 시작한 세미에 오이카와는 빠른 걸음으로 사무실을 지나쳐 침실로 향했다. 분명 그대로 두면 몇 시간이고 지난 일까지 들춰 설교할게 뻔했다.

 

 여전히 음산한 그의 침실 앞에 선 오이카와는 노크하려던 손을 멈추었다. 그다지 예의는 갖추고 싶지 않았다. 오히려 정직하게 말하자면 뒷통수라도 한 대 후려갈기고픈 마음이 컸지만 그랬다가는 오늘의 목숨이 간당간당해질 판국이였으니 그만둔지는 꽤 오래 전의 일이다. 다만 문이라며 노크없이 열고 들어갔다.

 

 '노크를 하지 않았다.'

 '우시와카쨩이 못 들은거야.'

 '그런가.'

 

 아직도 신물나게 눈에 훤히 보이는 저 대화가 성립되지 않았다. 놀랄 노자 였지만 다른 것도 포함하자면 사태는 조금 더 심각했다. 올블랙 수트를 갖춰입고 킹 사이즈 침대 위에 홀로 누워 산소 공급기를 낀 꼴이라건 볼만하지만은 않았다.

 

 "새로운 놀이인거야, 그거?"

 "왔는가."

 "난 시체라도 되는 줄 알고 기뻤는데 기어코 눈을 뜨시네."

 "살았으니 당연한거다."

 

 언제 도착했는지 모를 카와니시는 시라부를 지나쳐 의자를 끌어다 주었다. 제법 익숙한 폼으로 앉아 자리잡자 텐도는 시라부를 데리고 방에서 나갔다. 잘난 쿠키라도 드실 요량인 듯 했다.

 

 "생일 축하한다."

 "설마 그 말하려고 이 난리를 쳐서 내가 이 까지 오게 했다고 말하지 마." 

 "물론 아니다."

 "오늘 들은 말 중에서 가장 믿음이 가는 말이네, 참."  


 오이카와는 익숙하게 밝은 청록색 벨벳으로 쌓인 의자에 앉으며 다리를 꼬았다. 등받이에 기대서 살짝 고개를 올려든 것이 딱 건방지기 그지 없어보였다. 한 조직의 우두머리에 군림하고 있다해도 여전히 앳되게만 보일 뿐이였다. 마냥 아이가 받아쓰기에서 만점이라도 받고 의기양양해 보이듯이. 

 우시지마는 그런 오이카와를 바라보았다. 그의 시선이 달갑지 않은 오이카와는 눈살을 찌푸렸다. 우시지마는 왼손을 들어 카와니시에게 손짓하자 그는 고개를 숙이고 방을 나섰다. 오이카와는 문이 완전히 닫히는 순간까지도 그리로 시선을 내어주었다. 습성에 가까운 것이였다.


 "너무 방심하는거 아니야? 죽어가는 주제 자존심 세우기라도 하는거야?"

 "죽어가는게 아니다."

 "그럼 뭔데."

 "죽음은 당연한거다."

 "어릴 적에 잘도 가르쳤지. 그 말."


 오이카와는 따끔거리는 목을 메만지며 지독했던 유년을 떠올렸다. 지독하다 말하지만 사실 그에게 있어 유년을 만들어 준 것이 우시지마일 따름이였다. 

 사채로 인해 아버지가 조직에 살해 당하고 남겨진 그와 어머니는 터무니없는 빚더미 위로 나앉게 되었다. 조직은 그의 어머니에게 매춘을 강행했고 그는 잡일을 떠맡겨되었다. 심심풀이로 지나가던 조직원들에게 일방적으로 폭행을 당하기 일쑤였다. 어머니는 그런 아들을 끌어안고 소리 죽여 우셨다. 날이 지날수록 많은 상처를 지니고 살아야했고 그런 흉측한 자국들을 가리기 위해 그는 좀처럼 살갗을 내보이지 않았다. 그럴수록 그는 프라이드의 집합체에 가까워졌다. 물론 결말은 꽤나 참혹하였지만 말이다. 어미는 누군지 모르는 아이를 잉태하곤 목을 달아 죽었다. 남겨진 그는 죽은 이의 몫까지 챙겨야 했고 복부를 찔려 강에 버려졌다. 반익사 상태로 오이카와는 건져졌다. 산책 삼아 간만에 휴식을 즐기던 우시지마의 손에. 불행 중 다행이라 한다면 오이카와는 중학생 나이가 채 되지 않은 어린아이였고 우시지마는 전신의 혈흔과 상처에도 제 아지트로 그를 데려왔다. 필시 조직과 연관이 있을 법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어린 나이였던 그는 경계의 대상이 아닌 보호의 대상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덧붙이자면 그냥 애정의 대상으로 어린아이를 좋아하기도 했다.

 

 오이카와가 눈을 뜬 직후 얼굴을 맞댄 이는 텐도였다. 어라, 일어났네. 어린 눈에 비친 그는 영 달가운 모습이 아니였다고만 해두자. 저와 눈을 마주하고도 용케 울음을 터뜨리지 않는 아이에 텐도는 괜스레 질 나쁜 장난으로 이어졌고 덕에 '텐도 사토리' 는 오이카와의 기피 순위의 정상을 당당히 차지하였다. 

 

 어쩌면 당연한 것이였다. 아무 의심없이 저를 받아주었고 아무 대가없이 저를 머물게해주었다. 오이카와 토오루에게 있어 우시지마 와카토시는 유년의 상징이다. 어린 티를 벗은 지금에서야 부정해대지만 은연 중 그리 생각해온 사실이다. 

 

 "그게 옳은 길이였다. 넌 네 어미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목 매단 모습을 보자마자 인정했어."

 "아니다."

 "아니야."

 

 우시지마는 미간을 구기며 상체를 일으켰다. 수트가 영 불편한 모양이였다. 오이카와는 반사적으로 손을 뻗었다 혀를 차며 재빨리 내렸다. 조금 느릿한 동작으로 헤드에 기대며 산소 마스크를 벗겨내더니 짧게 숨을 들이마셨다.


 "그거 없으면 죽는거 아니였어?"

 "아니다. 두 번째 서랍을 열어라."

 "내가 왜 니 말을 듣는데? 이젠 꼬맹이도 아니고 니가 이래라 저래라 해서 들을거 같아? 넌 그냥 허우대 뿐이야. 그게 다야."

 "너에게 득이 될거다."

 "그래서 그 때도 그랬어? 재밌었어?"

 "그 얘기를 하려 널 부른게 아니다."

 "잘도 아니시겠지."

 "오이카와."

 "그딴 여자랑 나랑 자던 침대에서 보란 듯이 뒹구는게 나 물 먹이려는거 아니면 도대체 뭔데? 어, 뭐냐고. 설명을 해봐!!"


 의자가 뒤로 쓰러졌다. 우시지마는 가만히 그를 응시하고 있었다. 오이카와는 잠시 숨을 고르더니 주머니에 손을 비집어 넣고는 돌아섰다. 내가 미쳤지. 나무결이 상한 바닥을 짓밟으며 문가로 다가 서 그는 문을 열었다. 반 쯤 몸이 빠져나갔을 때 그는 돌아보았다.


 "니가 말하는 그 잘난 가출이 아니라 니가 제 발로 나가게 만든거야."


 차마 닫히지 못하고 삐걱거리는 경첩은 오랫동안 울어댔다.


-


 "와카토시랑은 얘기 다 했어?"

 "죄다 부질없는 짓이야."

 "말하는거 봐라, 이게. 무슨 일인데." 


 대합실의 창가에 기대 밖을 바라보던 오이카와에게 세미가 물었다. 장난스레 표정으로 그의 앞에 서 두 팔을 벌리더니 엄마한테 오세요 라며 웃었다. 스물 다섯에 징그럽다며 피할 법도 하지만 얌전히 안기자 세미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윽고 오이카와는 웃음을 터트렸고 어깨가 들썩거렸다. 영문을 모를 세미는 세게 안았던 팔을 느슨히 풀어줄 뿐이였다.


 "겨우 열 두살 차이 밖에 안나면서 무슨 엄마야."

 "그 쪽 엄마는 너랑 동갑이잖아."

 "이와쨩 말이야?"


 응, 세미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와쨩은 내추럴 본 엄마란 말이야. 그럼 나는? 제 1호 쯤 되지 않을까? 이게 어디서 까불어. 세미는 짐짓 화가 난 듯한 말투였지만 그의 갈비뼈를 양쪽에서 혹사시키는 것으로 상황은 정리되었다. 


 "뭐라도 마실래?"

 "음-."


 ""마쉬멜로우 코코아.""


 둘은 대합실이 떠나가도록 배를 잡고 웃어댔다. 세미는 눈물을 훔치며 아직 웃음기 가득한 숨을 내뱉는 오이카와는 응접실로 이끌었다.  


 세미는 오이카와에게 커다랗고 하얀 머그컵 가득 코코아 위에 마쉬멜로우를 얹어건내었다. 조심스레 한 모금 마시려던 오이카와는 바지 위로 마쉬멜로우 서너 개를 떨구고나서야 제대로 된 한 입을 맛볼 수 있었다. 목울대가 일렁이자마자 그는 어깨를 바짝 올리고 인상을 구기며 혀를 내밀었다. 


 "달아."

 "어릴 땐 잘만 마셨으면서."

 "사실 그 때도 엄-청 달았어. 근데 지금은 더 하네."

 "그럼 다른거 줄까? 그만 마실래?"

 "아니."

 "어린애 입맛하고는."

 "엄마의 정성을 거절하지 못하는 착한 오이카와 씨 일 뿐이거든?"


 세미는 눈을 크게 뜨더니 응접실 여기저기를 살펴보다 다시 오이카와를 바라보았다. 여기 그런 사람없는데? 누가 엄마 아니랄까 사람 다루는데는 일가견있는 그였다. 빙그레 웃으며 그를 바라보던 세미는 손뼉을 치더니 자리를 떴다. 잠시 뒤 그는 손바닥 두개를 옆으로 이은 것보다 조금 큰 종이상자와 레코드 판을 들고 왔다. 테이블 위에 늘어놓더니 뿌듯한 얼굴로 그것들을 훑어보고는 오이카와를 향해 웃었다.


 "생일 축하해, 토오루."

 "헤에-"

 "나는 이런거 잘 모르니까 그냥 가게가서 커버 보고 샀어. 니네 가게에 축음기 있잖아. 그래서, 뭐. 그렇게 됐네."

 "이거는?"

 "아 홍차. 티백이니까 너무 부담갖지 말고. 내가 너 어릴 때 타주던걸로 포장했으니까 아마 괜찮을거야. 아 얼그레이 일부러 뺐는데 이제는 잘 마시니?"


 극심히 단 입안에 혀를 조금 물며 그는 고개를 내저었다. 이제와 하는 말이지만 풍미가 도저히 견딜 수 없는 그런 류였다. 세미는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레코드 판을 쌓아 그 위에 상자를 올렸다. 


 "와카토시한테는 받았고?"

 "뭘?"

 "뭐긴 뭐야. 생일 선물."

 "전혀."

 "니네 방에서 뭐 했냐."

 "음- 대화?"

 "흔한 사춘기의 청소년이랑 이해못하는 어른의 일방적인 대화라고는 하지 말아줘."

 "아마 빙고."

 "둘이 아주 똑같아요, 정말. 와카토시는 아직도 널 꼬마라고 생각하고 넌 나가서 새 살림을 차렸고. 니가 나가고 나서 한동안 술만 마시더니 자살기도 하시고 난리도 아니다." 

 "자살..기도?"


 세미는 두 눈을 끔뻑였다. 아차. 


 "그게 무슨 소리야."

 "아아- 아무것도 아니..라고 하기엔 늦었구나. 후우- 그냥, 니가 나간 후로 조직에 신경 쓰지도 않았고 구역도 마찬가지였어. 전부 제 탓이라면서, 니가 죽었다고 생각한거지. 토오루 너도 알겠지만 조직은 지배자가 있어야 돼. 아니면 순식간에 엉망이 되버리는거지. 단순히 힘만으로 해결되는게 아니야. 우리도 나름의 규율이란게 있잖아. 그걸 지켜줄 사람이 필요해. 바로 잡느라 시라부랑 카와니시가 고생이 많았지. 넌 모를거야, 후에 합류한 애들이니까."


 세미는 입을 닫았다. 볼 안쪽 살을 잘근거리며 씹었다. 


 "넌, 아마 지금도 와카토시한테는 그냥 어린 애에 불과할거야. 걔 눈에서 본 너는 항상 그랬으니까. 니가 살아있단 사실을 몇 해 후에 텐도한테서 듣기 전까지는 정말 죽은 것 처럼 살았어. 그래서 니가 선물을 받기 시작한 것도 바가 들어서고 나서잖아."


 오이카와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손가락에 찐득하게 달라붙은 마쉬멜로우는 이미 식어버린 채였다.


 "죽음은 당연한거라고 본인이 말해놓고는 참. 어쩌면 니가 사라진 날부터, 한참 전부터 죽어버린건지도 모르지. 특별한 이유도 없는데 말이야. 원래 지병이 있던건지 어디서 부상이라도 입은건지. 알려줄 생각도 없어. 그냥 앉아서 죽는 날만 기다린달까."


 세미는 의자에 완전히 기댄 채 눈을 감았다. 


 "내 탓은 안해?"

 "내가, 너를? 어째서?"

 "따지고 보면 내가 원흉이잖아."

 "글쎄. 잘 모르겠어."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오이카와에게 다가섰다. 그리곤 가만히 안았다.


 "오늘 와 줘서 고마워. 그러니까 하나만 부탁하자."


 세미는 오이카와에게 블레이저 포켓에서 소음기와 함께 권총을 건내주었다.


 와카토시 좀 살려줘.


-


 다시 선 방 문 앞에는 텐도와 카와니시가 서 있었다. 


 "어라라 토오루 군이잖아."

 "제길."

 "토오루, 이 삼촌이 그런 말 쓰면 안된다고 했잖아."

 "제발 좀 닥칠래?"


 오이카와는 짜증스레 그를 밀치고 방 문을 열었다. 순순히 길을 내어주는 카와니시를 바라보며 그는 안으로 들어섰다. 우시지마는 산소 호흡기를 끼지 않은 채 누워있었다. 눈을 뜨지 않았다. 반듯하게 세워놓은 의자를 지나쳐 침대에 걸터앉았다. 여전히 눈을 뜨지 않았다. 


 "난 아직도 내가 나라고 생각 안해. 다른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냐겠지만 넌 알겠지. 내가 나 라고 단정지어버리면 어릴 적 기억까지 다 인정해야할거같아서. 그래서." 


 그는 건내받은 소음기와 권총은 각각 양손에 쥐고 뜸 들였다.


 "굳이 고차원적인게 아니더라도 그냥, 니가 알던 나랑 지금의 나는 다르잖아."


 소음기를 입구에 조심스레 밀어넣자 부드럽게 맞춰들어갔다.


 "지금의 내가 진짜 나라고 하면,"


 소음기가 완전히 고정되었다.


 "예전의 나는 내가 아니게 되버리는것도 아니고."


 오이카와는 확인 차 약하게 소음기를 잡아당겨보았다. 완벽했다.


 "그럼 지금껏 한 말이 모두 맞다면 말이야."


 그는 우시지마의 이마에 입구를 갖다대고 안전장치를 해제시켰다.


 "내가 널 사랑했던 과거도 사랑하는 현재도 다 사실이 되버리는걸."


 이럴 때는 어떻해, 안가르쳐 줬잖아. 물기 섞인 목소리가 웅얼거렸다. 그의 위에 올라탄 오이카와는 이마를 맞대고 가만히 눈을 감았다. 여전히 총구를 갖다댄 채였다. 우시지마는 가볍게 총을 든 오이카와의 손을 잡자 스르륵 총을 내려놓았다. 그는 흘낏 권총을 바라보더니 중얼거렸다. 세미인가. 


 "이럴 땐 어떻게 하면 되는지 왜 안알려줬어."

 "알 필요가 없었다."

 "지금은 어떻게 설명할건데."

 "필요할지도 모르겠군."


 우시지마는 그를 안고 등을 쓸어내렸다. 


 "넌 아직 아이다, 오이카와."

 "어련하시겠어."


 그는 팔을 뻗어 협탁 위에 놓인 쥬얼리 박스를 오이카와의 손에 쥐어주었다. 짙은 보라색 벨벳의 촉감에 오이카와는 상체를 일으켜 앉았고 우시지마 역시 그랬다. 다만 여전히 제 위에서 내려갈 기미가 보이지 않는 오이카와가 떨어질까 조심스러웠다. 


 "생일 축하한다, 토오루."


 목걸이 였다. 오컬트스럽지도 않았고 빈티지스럽지도 않았다. 그냥 목걸이였다. 얇은 실버게열의 줄에 곡선문양 안에 작은 진주가 박힌. 단 하나 뿐인 진주는 모양조차 원이 아니였다. 특별히 다른 모양을 갖추지도 않았다. 그저 원에 가까운 원이 아닌 원이였다. 일그러져 있었다. 


 "굳이 꼭 이런 것만 주는건 도대체 무슨 심보야."

 "너와 닮았다."


 오이카와는 눈을 치켜세우며 우시지마를 바라보았다. 우시지마는 태연히 그에게서 목걸이를 가로채더니 목에 걸어주었다. 말끔히 체인이 걸리기 까지는 오래 걸리지도 않았다. 


 "넌 진주다. 니가 완벽할 때는 내 옆에 있는 순간 뿐이다."


 그걸 기억해라. 오이카와는 손에 걸리는 진주를 만지작 거렸다. 매끄럽게 돌아가지 않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영락없는 저 였다. 


 그를 사랑하는 자신만이 '나' 였다. 

 


바로크 ; 17세기 유럽의 바로크 풍은 우연과 자유분방함, 기괴한 양상 등이 강조된 예술양식이다 라고 어디서 보고 생각나서 썼는데...음


어떻게 인간적으로 6주 씩 걸린단 말입니까......흐어


엔딩 못내는 병에 걸려 개망!!!!!!!!!!!!!!


Dive To Blue!!!!!!!!!!!!!!!!!!!!!!!!!!!!!!!!!!!!!!!!!!!!!!!!!!!!!!!!!!!!!!!!!!!!!!!!


요즘 서뱀프 파시는데 이제 완성해서 뭔가 더 애매해져버렸다는게 사실이지만..음

뭐랄까, 지나가는 것처럼 가볍게 즐겨주세요


얘네 쓰느라 공부했어요..항상 개그 였지만...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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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워드 ; 방금 좀 위험했어

 

(하나하키 소재 ; *하나하키 병은 짝사랑하면 꽃을 토해내는 병입니다!)

-

 

 분명 그것은 무의식에서 흘러나온 한 가닥의 실과 같은 것이였다. 단순한 실보다는 새끼 손가락에 운명 끼리 엮여 있다는 붉은 실 즈음 될 법했다. 물론 그는 동급 여자들이나 좋아할 법 한 운명이라던가 미신이라던가는 믿지 않는 편이였다. 관심조차 없었다. '붉은 실' 전설이라면 흔히 그런 것이였다.

 

 '나는 결코 알 생각도 없었고 알고 싶지도 않았지만 그저 우연찮게 귀에 들려와 어쩌다보니 알게 된 것이다.'

 

 지금 떠올리자니 영 쓸모없는 얘기는 아니였다만 이러나 저러나 귀찮을 뿐이였다. 빌어먹을 꽃 덕분에 잠도 못자고 있는 터였다. 당연히 수면 부족에 시달려야했고 컨디션은 말할 것도 없었다. 수업 때 이미 자고 있는 자신이라 하여도 정해진 수면 시간에서 벗어나는 일은 꽤나 까다로운 것이였다. 무시하고 자면 되잖아? 따위의 제 멍청한 파트너의 조언과는 거리가 멀었다. 자고 싶어도 수북히 차오르는 꽃송이들은 간단히도 제 숨통을 죄여오는 덕이였고 기어코 손가락으로 휘저어 빼내야만 했다. 목 안을 간지럽히는 얇은 꽃잎을 비집어 꺼내면 제 타액에 축축히 젖어 늘어진 나태의 형체를 이루는 곤욕일 뿐이였다.

 

 푸른 자양화 였다.

 

-

 

 세간에서 말하기를 '동경' 과 '애정' 은 전혀 다른 것이다. 접점이 없다 말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 하여 굉장한 접점이 있다 이르기도 애매한 부분이 있다. 물론 죄다 부정할 순 없었지만 어디 시립 도서관에서 엄청난 두께에 먼지가 쌓인 고전적이고 지루하기 짝이 없는 국어사전을 펼쳐보지 않아도 아는 사실이다.

 

 그건 아무리 배구 이외 알지 못하는, 알려고 하지 않는 그라 할지라도 눈에 훤히 보이는 '사실' 이였다. 한자를 떠올리기 까지 조금 시간이 걸릴지는 모른다 하여도 그의 활기 넘치는 파트너가 묻는다면 고민할 새도 없이 머리통을 쥐어박으며 '바보' 를 연호할 것임이 틀림없었다.

 사실 상 그의 세상은 배구와 제 자신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 외 부수적인 것이라면 주위를 겉돌 뿐이지 결코 중심부는 커녕 외곽부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을게 뻔했다.  

 그는 자신에게 솔직한 편에 속했다. 어디 까지나 천연이라는 점에서 충분히 만족할 부분이였지만 그는 지나치게 솔직한 면이 있었다. 아직 덜 컸다는 애틋한 어른의 시선이 아닌 더러운 이면을 알기 시작한 경계의 시선으로 바라본 그는 소년과 청년의 사이보단 아이와 소년의 선에 머무른 채였다. 그렇기에 솔직하지만 그것이 진심으로 제가 느끼는 것인지 조차 구별하지 못하기도 했다. 미숙한 감정이란 것이다.

 

 그는 오이카와 토오루를 동경했다.

 

 이것 만큼은 결코 부정하지 않았고 기정사실이였다. 아직 물기어린 제 눈으로 담은 그는 중심이였다. 빛이였다. 그에 비해 저는 벼랑 끝에 서 있었고 이름을 빼닮은 그림자에 불과했다. 그가 되지 못하여 이런 류의 감정을 느끼는 것은 아니였다. 단지 조금 초조할 따름이였다. 제 자신도 모를 그런 다급함. 저 아래서 부터 걷어차 올라오니 사방으로 가로막혀 밀려드는 기분이란 그리 유쾌할 수 없었다. 가라앉으면 그 아래 풍경이 너무도 뻔해서 그게 더 싫었다.

 왠지 모를 배덕감에 휩싸여 역겨울만큼 푸르른 것들을 바라보건데 저도 모르게 눈물이 핑그르 돌고 마는 것이였다. 금세 소매로 훔쳐내며 알 것 없다는 얼굴로 거울 너머 저를 노려보면 간단히도 비웃고 말았다.

 

 용기조차 없는 애송이.

 

 알아.

 

 욕실 전등이 깜빡였다. 속이 울렁였다. 비적비적 걸어나와 방으로 건너들어가 방문을 걸어 잠그고 침대 위에 걸터앉았다. 어느 센가 익숙해져 버린 습관에 좀 전까지 긁어내던 목을 손으로 감싸쥐었다. 차가워. 분명 낮동안 먹은 것도 없는데 속이 헤집어져 무언가 무의식에 집어 오르려는 감각에 이불 위로 쓰러졌다. 배를 끌어안았다. 찬 것만 집어먹은 것 마냥 차가웠다.

 

 간단히 휴대전화 플립을 열어 버튼 두어 개만 누르면 되는 일이다. 휴대전화라는 게 그런 것이였다. 그런데 제 용도로 쓰이질 못하는 비통함이 떨림이 되어 손가락 너머로 울렸다. 참고 견디다 버티다 못해 결국 작은 플라스틱을 누르면 수신음이 들리기 마련이다.

 

 [예, 오이카와 토오루 입니다-] 

 

 코 끝까지 차오르는 자양화의 향기에 저도 모르게 손을 들어 막았다. 소름 끼치도록 새초롬한 향에 눈 앞이 핑그르르 하고 돌았다.

 

 [으흠- 여보세요?]

 

 혓바닥을 덮기 시작하는 얇은 수술과 잎사귀에 헛구역질 할 수 밖에 없었다. 새어나오는 신음마저 삼킬 수 밖에 없었다. 토비오? 좀 처럼 눌리지 않는 조잡한 버튼을 몇 번이고 내리찍고서야 통화는 끊어졌다. 물론 마지막 말이야 들렸지만.

 

 끝으로 쏟아지는 푸른 자양화에 그는 눈물도 함께 쏟아내야만 했다. 빌어먹을 만큼 온전한 모양새인 꽃송이 하나를 집어들며 소리 죽여 비명을 내질렀다. 짝사랑이란게 그랬다. 수없이 부서지고 조각조각 찢어져도 그 속에는 아직 온전히 감정을 끌어안고 있는 제가 있음을 찾아내고야 만다는 것.

 그는 가만히 온전한 꽃을 도로 입 안에 집어 넣었다. 씹지도 않은 채 삼켜버렸다. 얄팍한 것이 식도를 타고 내려가는 미묘한 감각. 이렇게 삼켜버릴 수 있으면 좋을텐데. 작게 중얼거렸다.

 

 그의 세상은 배구와 제 자신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하지만 그것은 겉모습에 지나지 않는다. 소중한 것을 감싸기 위한 껍데기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그의 중심은 자신조차 잠식시켜버렸다. 플립조차 닫지 않은 채 '통화 종료' 라는 안내가 떠있는 화면에 다 잠긴 목소리로 웅얼거렸다.

 

 오이카와 씨. 전 당신을 이렇게 사랑하고 있습니다. 

 

-

 

늦어서 죄송합니다.

 

자양화=수국입니다! 이 쪽 어감이 더 마음에 들어서..쓰면서 수국으로 바꿔야하나 하고 엄청나게 내적갈등했습니다

 

꽃말이 "당신은 아름답지만 차갑다." 이고 여기서 이 글이 시작했습니다. 진단 메이커 씨 도움도 있었지만 아무래도 시작이 반이라니

 

뭔가..음- 죄송합니다

 

사실 얘네 안파는 애들이라 공부하고나서 썼습니다

만족....하실련지 나도 모르겠다..

 

이제 뒷감당 어떻게 할지 궁리나 해보겠습니다

Dive to Blue

 

다시 한번 우리 존잘님의 트위터 입성을 축하드리며 (짝짝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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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쿠아카 키워드 ; 비

 

(쿠로켄 조금이랄까요)

-

 

 "아카아시 군, 미안한데."

 

 전화, 받아봐야 될거 같아. 그녀는 엄지와 새끼를 들고 나머진 접어보이며 귓가에서 흔들어보였다. 어딘가 청초롬 해보이는 그녀는 싱긋 웃으며 기꺼이 그가 일어날 때까지 기다렸다 받아, 라며 유선 전화기를 가리키곤 돌아섰다. 뒤집어놓은 수화기를 들어 잠기는 목소리로 답했다.

 

 "'이부' 입니다."

 

-

 

 부엉이 hibou[ibu] 라는 의미를 가진 '이부' 는 독어이자 아카아시의 회사명이기도 하다. 맞춤형 가구 제작소로 디자인의 전면을 떠맡고 있는 실정이다. 이 제작소가 조금 특이한 점이 있다면 디자인, 소재, 길이, 높이, 폭을 포함한 모든 것을 선택형으로 고객의 '맞춤형'으로 제작한다는 것이다. 제작 5명 디자인 1명 내외 업무 3명으로 매번 10명 이상이 되지 않다는 점에서 혹사 당하고 있는 건 아닐까 라며 자주들 떠들곤 한다. 

 

 물론 인원수가 그런 만큼 한달에 주문은 크기에 따라 소 중 대로 나눠 각각 7개, 4개, 2개로 제한한다. 그러지 않는다면 진정으로 혹사 당할 처지가 틀림 없었으니 말이다. 고객 중 감사히도 도안을 그려보내주시는 분들이 있기도 하다. 하지만 대부분은 그저 이런이런 느낌이였으면 좋겠네요, 라던가 이런 색깔로 해주세요, 라던가의 희망사안만을 적기 때문에 아카아시는 만만찮게 그를 고려해야만 했고 결국 도안을 서너 개를 그리고 제작부에 넘겨 다수결로 붙여버렸다. 결과적으로는 고객에게 묻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지 않냐는 질문은 회사측에서 부정하기 때문이다. 당신의 상상을 꺼내드립니다. 이부의 공식 문구이다. 그렇기에 신비주의적 성향이 강했고 그런 점이 아카아시를 자극했다. 따지고보면 '사장' 입장이였지만 공동대표니 뭐니 해도 막연히 귀찮을 뿐이였다.

 

 그녀. 카미에 쇼는 잘 웃는 편이다. 아니 항상 웃고 있다. 공동대표인 그녀는 아카아시와 아무런 사이도 아니였고 아니며 아닐 것이다. 그저 같은 대학이였으며 다른 학과였고 우연찮게 도서관 앞 자판기에서 커피를 뽑아 덩그러니 놓아두고 사라진 것을 도로 주었을 뿐이였다. 뽑아놓고 그냥 가세요? 흔들어보이면서 웃는 그녀와 어쩌다보니 같은 것을 공유하게 되었고 어쩌다보니 많은 것을 알게 되었고 지금에 닿은 것이였다.

 

 웃는 모습이 미묘히 누군가를 떠올리게 해서 조금 괴로웠다. 닮은 것은 아니였지만 조금 마음이 쓰였던 것일 뿐이였다. 난 아카아시 군한테 마음 전혀 없는걸. 걱정마. 알아. 멀쩡히 임자 있는 사람 이상하게 만들지 말자, 우리.

 

 그녀는 집안에서 약속한 약혼자가 있었다, 물론 파혼 상태이긴 하지만. 좋아하던게 아니였냐는 물음에 푸스스 웃어보이면서 이젠 아니잖아. 라며 취기가 도는지 반쯤 풀린 눈으로 아카아시에게 기대었다. 아직도 임자 있는 몸이야? 글쎄. 그치만 처음부터 말했잖아- 난 너한테 마음 없다고. 제법 멀쩡히, 경쾌히 거리를 휘적이며 걷는 뒷모습이 조금은 부러웠다. 확실히 말하자면 그녀는 매력있는 여자이다. 똑 부러지고 깔끔한 타입으로 유럽계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의 혼혈아로 특유의 뽀얀 살결이 눈에 띈다. 연한 갈색의 머리칼이 허리부근 까지 흘러내리는 그녀는 사랑받는 존재이다. 겉으로도 다 보일 만큼 그녀는 사랑 받고 자란 이였다. 다만 고집스레 웃는 모습에 걸렸다. 막연히 사랑만 받은 것은 아니리라 그리 생각했다.

 

 '힘들면 울어도 되는데 말이야.'

 '운다고 뭐가 바뀌진 않잖아.'

 '그거야 그렇지.'

 

 하지만, 울어도 된다고 얘기해준건 아카아시가 처음이야. 등에 기대오는 탓에 다독여주지 못했지만 응어리가 풀리는 느낌이였고 날개뼈 아래가 축축히 젖어오는 기분이였다.   

 

-

 

 "아카아시, 아카아시. 아카아시 케이지-."

 

 아카아시는 사경을 헤매다 잠에서 깼다. 분명 낮은 음성이였을 터인데 눈을 뜨면 가늘고 얇은 여자의 목소리로 변질되어 있었다. 머리가 띵하게 울리는 것은 언제나와 같았다. 늦가을의 빗소리가 창가를 두드리고 아카아시는 빈백소파에서 담요를 둘러매고도 시린 손으로 눈가를 문질렀다. 빈 머릿속을 누군가 연신 두드려대는 것만 같아 두어번 마른 세수를 하다 말고 오른 손으로 목을 감쌌다.

 

"미안해, 근데 제작부 애들이.."

 "갈게."

 

 겨울용 담요를 소파 위에 얹어두고 일어서는 발걸음이 위태롭기만 했다. 초점이 확실하지 않았고 아직 강하게 관자놀이를 가격하는 느낌의 어지러움에 어쩔 새도 없이 도로 소파 위에 쓰러져야만 했다.

 

 "아카아시!"

 

 배를 끌어안고 웅크리는 것이 영락없는 아이였고 찡그렸다기보다 울상에 가까운 얼굴에 쇼는 이마에 손을 갖다댔다. 야- 너 아프면 아프다고 말을 하라고. 사장이나 되는 놈이 말이야, 아카아시? 작게 웅얼거렸다. 단말마를 지르는 얼굴이였다.

 

 "잘못,했, 습니, 다."

 

 울음기 다분한 목소리였다. 몇 번이고 부르짖는 모습은 다섯 살배기 아이의 애원에 가까웠다. 쇼는 가만히 담요를 끌어 덮어주며 머리칼을 쓸었다. 가지, 마세요. 잘못했어요. 물기 머금은 목소리에 그녀는 자리를 뜨지 못하고 무릎을 꿇고 그 앞에 앉아 작은 아이의 곁을 지켰다. 그래야만 할 것 같았기 때문일지도 모르지만 제가 이제껏 아카아시를 봐왔던 모든 순간을 지켜내기 위함에 가까웠다. 넌 원래 그런 사람이니까. 그리 치부해버리는 행위가 위태롭다 되내이면서도 그러지 않을 순 없었으니까, 그러니까 그녀는 말없이 시리게 떨리는 손을 잡아주지 못해 그저 가만히, 가만히.

 

 사실 그녀는 아카아시의 고질적인 병과 같은 증상에 대해 꽤나 알고 있었다. 물론 본인에게서 들은 것이야 몇몇에 불과하지만 주위에서 들은 것이 훨씬 유용한 정보였다. 구미가 당길 법한 이야깃거리였고 술자리에서 한 술 떠보기도 하였다. 다만 확신했던 것은 여느 때와 같은 비가 오던 날이였다. 쏟아지는 비에도 그는 여전히 작업실에 박혀 살았고 무기력했다. 점심시간이 가까워졌고 이러니 저러니 귀찮다 싶은 마음에 배달 음식이 적절하다며 한 입을 모았고 단순한 주문을 위해 들어갔다 반 쯤 기절 상태에 가까울 정도로 흐느끼는 목소리를 듣고 말았다. 작업대 위에 이질적인 느낌인 반지가 놓여 있었다. 그 뿐이였다. 물론 후에 캐물어 결국 알아낸 것이긴 했지만 여자의 감이란 것은 무시할 수 없는 노릇이였다.

 

 "애인, 이였어."

 "헤- 과거형?"

 

 말없이 작게 고개를 끄덕여보이던 눈 위로 안도감이 피어올랐다. 무엇에. 도대체 무엇에 안도하는걸까. 어디까지나 생각에 불과했다. 입 밖으로 꺼내진 않았다. 그걸 위해 이제껏 그리도 참아왔노라 생각했기 때문이였다. 예나 지금이나 그것만은 같다. 금기어와 비스므리한 뉘앙스를 지니는 '그것' 은 둘 사이의 비밀로 붙였다. 지키지 않는건 매한가지 였지만 말이다.

 

 이름 불명. 나이는 한 살 연상. 극히 활발하고 기운이 심히 넘친다. 애같이 구는 경향이 강하다. 애정 표현이 많다. 누구에게나 공평한 애정을 준다. 지각하는 한이 있더라도 머리는 세우고 다닌다. 학교 선배이다. 쇼가 아는 아카아시의 전 애인에 관한 것이다. 단도직입으로 물어서 안 것도 있지만 역시 알코올이 들어가면 잘 나오기 마련이다. 그리고 요즘 많이 느끼는 두 가지가 남아있다.

 

 하나, 도저히 이름은 알 수가 없다.

 하나, 그는 아직 그 사람을 좋아하고 있다.

 

 그녀의 파혼에 담담하던 것도 이런 이유일 것이 틀림없었다. 같은 처지 라는 거지. 물론 그리 유쾌하지 않은 그녀의 끝과 아카아시의 끝이 어떻게 다를지는 미지수였지만 이별이라는 상황은 지극히 변함없었다.

 사실 그녀가 그를 만났을 적은 이미 둘은 갈라선 상태였기에 둘의 관계가 어떠하였는지는 주위에서나 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지난 일을 듣노라 하거니 아카아시 또한 제법 사랑 받은 테가 났다. 그런 애정에 익숙해져 다시 혼자 그 뒤엉킨 속을 가라앉히기 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을 허비 하였을까. 아카아시 케이지란 남자가 그랬다. 쉬이 마음을 주지 않았지만 한 번 준다면 설령 먼저 끊어져버린다 해도 결코 돌아서지 않는다고, 그런 감정이라고. 깊음이 무엇인지 아는 남자였다. 그리고 그리 깊게 애정하고 창을 열고 그를 맞이했을 터였다. 미워했을까. 새겨두었을까. 무엇도 아닐테지만, 아무것도 털어놓지 않는 눈은 깊었다. 쇼는 그런 눈을 사랑했고 도로 피어나길 바랬다.

 

 쇼는 아카아시의 장점이라면 두 손으론 도저히 모자르다 곧잘 말하고 다녔다. 그 만큼 아끼는 터였고 애정을 쏟아붓는 것이였다. 그것은 도저히 '사랑' 이라 부르기 어려운 형태였고 둘 모두에게 부정당하였다. 아직 남아있노라 다른 이에게 마음을 주기가 버겁다며 몇 번이고 중얼거렸다. 카미에 쇼의 약혼자는 커다란 키의 남자였다. 수트가 잘 어울렸다. 운전실력이 영 나쁘진 않았지만 그닥 즐길 수 있지는 않았다. 스포츠는 관람을 선호했다. 선천적이라 믿지만 매사에 급했다. 그 점이 조금 숨 막혔지만 몇 해가 지나며 몸에 익고나서부터는 즐거운 것이 되었다. 다음은 그러겠지, 라며 시간 떼먹기 좋은 놀잇감이 되어주곤 하였다. 

 물론 끝까지 재미를 가져다 주는 장난감 행세를 하진 않았지만 말이다. 두 달 정도 제 약혼자를 바라보더니 그녀가 물었다. 사랑해? 주체가 없었지만 여전히 웃고 있던 그녀는 어렴풋이 알고있었다, 이 시간부로 그 주체는 제가 될 수 없음을. 겸연쩍은 듯 애매모호하게 웃는지 우는지 당황한지 알 수 없는 표정을 한 그에 그녀는 푸스스 웃음을 터뜨렸다. 받을 적부터 제게 조금 컸던 약혼반지는 언젠가 꼭 줄이자고, 다시 맞추자고 약속했던 것이였다. 굳이 귀찮은데 그러지 않아도 좋다 하였지만 섭섭할거라며 제 의사를 마음대로 정해버렸었다. 아직도 안맞아. 그녀는 작게 소리내어 웃었다. 그 사람한테는 맞을거야. 그 투박한 손에 건내고 돌아섰다. 울지도 않았으며 원망하지도 않았다. 단지 조금 허 했을 뿐이였다. 그리고 지금에 와서야 종종 떠올릴 따름이였다. 그럴 때마다 습관마냥 볼 안쪽 살을 잘근 거리곤 했다. 그 땐 어렸다고, 그러니 제 감정에 솔직해지고 싶지 않았다고, 구차하게 굴고싶지 않았다고.

 

 그리워하고 있다고.

 

-

 

 "매번 신세지네."

 "아니요, 얼굴이라도 보고 저야 좋죠."

 "천하의 이부에 하나 뿐이라는 디자이너가 이렇게 손수 해주시는데 황송하지."

 "이거, 도로 들고 가도 되는겁니까."

 "아니, 아니, 아니. 감사히 잘 받겠습니다- 라는거지."

 

 단순한 사람. 아카아시는 작게 중얼거렸다.      

 

 디자이너가 물론 본업이기야 하지만 취미삼아 조금씩 제작부에서 배우는 턱에 시험삼아 무언갈 만들면 곧잘 남에게 주었다. 가장 처음으로 리스트에 이름 올린 상대라면 쿠로오 테츠로 이다. 제 과거 연인의 친구이자 친구, 라기에는 조금 다른 느낌이다. 워낙이나 속을 알 수 없는 작자라 무의식에 경계하고 있다고 아카아시는 생각한다.

 

 "또 굉장한거 만들었네."

 "굉장하지 않습니다."

 "난 범인(凡人)이라 그냥 다 대단해보이는 겁니다-."

 

 어디까지나 배우는 단계에 있고 무엇보다 제 손재주가 생각보다 쓸만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달아버린 탓에 간단한 것들 위주로 손을 대고 있는 터다. 이번에 쿠로오에게 가져다 준 것만 해도 선반일 뿐이였다. 널빤지에 양 옆에 두어개 덧대면 끝이니 그다지 제가 손 본 것도 없다. 다만 조금 정성들인 곳이라면 기둥 모양으로 깍아 윗 부분을 부엉이로 조각한 정도랄까. 꽤 고생한 건 사실이다. 실제로 손가락 어딘가 베인 것도 사실이다.

 

 "무리하지 않는게 좋다고, 아카아시 군."

 "괜찮습니다."

 

 쿠로오는 어느 센가 손가락을 감싸쥐고 있는 아카아시를 지긋이 바라보았다. 고교 시절부터 봐왔기에 저것이 결코 얄팍히 베여나오는 통증을 위한 것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것 쯤은 잘 알고 있었다. 버릇이였다. 마디를 감싸쥐고 눌러대는 그저 단순한 버릇.

 

 "괜찮다는 얼굴이라도 하고 말하는게 좋지 않을까."

 "쿠로, 또 케이지 괴롭히고 있지."

 

 켄마는 인상을 구기며 방 안에서 지친 걸음으로 쿠로오에게 향했다. 요란한 머리카락이 분명 자다 일어났음을 말하고 있었다. 아직 졸린 눈을 한 켄마는 쿠로오를 지나 아카아시의 품에 안착했다. 얼굴을 묻고 조금 비비적 거렸다. 고양이 같아. 아카아시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야 들으면 좋아하지 않을게 분명하니까 기분을 상하게 하고 싶진 않았다.

 

 "언제 왔어."

 "방금."

 "밥은?"

 "아직."

 

 나왔다, 초간단 대화. 쿠로오는 옆에서 놀림조로 키득거렸다. 어디까지나 둘 다 고교 시절이나 그 전부터 말 많은 상대에게 끌려다니기 일쑤였으니 말수가 적은 상대가 편할 터였다. 놀림조였음은 사실이지만 그러는 쿠로오도 켄마가 아카아시와 대화하는 것을 싫어하지 않았다. 오히려 좋아했다. 제게 보여주지 않는 애교가 자연스레 묻어나는 사람 중 하나였으니 말이다.

 

 "안 먹을거야?"

 "글쎄."

 "나, 할말있는데."

 "뭔데."

 

 켄마는 파묻고 있던 고개를 들어 쿠로오와 시선을 마주했다. 한참이고 말 없이 바라만보는게 위태로웠다. 켄마.

 

 "돼?"

 

 저게 일 치려고.

 

 "안돼."

 "그치만-"

 "안돼."

 

 켄마는 토라진 얼굴로 다시 고개를 묻었다. 켄마-.

 

 "켄마."

 "아."

 "뭔데."

 "오늘,"

 "아, 아카아시!!"

 

 쿠로오는 어쩔새도 없이 소리를 내질렀다. 진짜 일 치네. 아카아시는 천천히 시선을 옮겼다. 켄마 역시 그랬다. 아- 그, 그러니까. 밥 먹고 가라고. 아카아시는 두 눈을 두어 번 내리감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감사히. 다행히 그것은 수락의 뜻이였다.

 

-

 

한 번에 못 끝내겠어요..

하 편 쓰긴 쓸까..슬슬 걱정입니다..에라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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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몽님 리퀘 ; 죽음

 

센티넬버스/왠지모르게 오이이와오이st 지만 전 오이이와라고 주장할겁니다 

-

 

 죽었다. 이와이즈미가 죽었다. 이와이즈미 하지메가 죽었다.

 

 불공평해. 오이카와는 말했다. 애석하게도 그것은 이와이즈미 하지메의 입버릇이였다. 그토록 버릇다운 버릇을 들이라 했지만 끝내 물들고 말았다.

 

 왜 그랬어. 대답. 대답. 대답.

 

 그렇게 기다리기만 한다면, 언제까지고 기다려준다면 답해줄까. 확실한 것은 결국 하나였다. 아니.

 

 이와이즈미 하지메는 죽었다.

 

-

 

 정부 산하 기구의 명은 유려한 영어인터라 그다지 기억이 나지도 않았다. 가이드 라인, 따위의 흔해빠진 것에 불과했다. 빠른 발현 10세부터 늦은 발현 20세에 덧붙여 조기 발현 증상 등 자잘한 것을 더해 관리하고 통제하는 곳이다. 그렇기에 자국민들은 의무적으로 10세를 기점으로 5년마다 재검사 판정을 받아야한다. 결과는 세 가지 뿐이다. 가이드. 센티넬. 노멀. 이 중에서도 가장 귀찮은 것을 고르라 한다면 역시 센티넬이다. 노멀은 말 그래도 무특성. 일반인. 가이드는 피 검사와 조직 검사 정도의 한 손 안에 꼽을 수 있는 베이스 데이터만 작성한 후 등록하면 끝이다. 그에 비해 센티넬은 신체검사부터 능력지수, 발현시기, 구체화, 한계에 이르기 까지 공식적인 검사만 열댓가지에 이른다. 물론 등록 후는 가이드나 센티넬이나 할거 없이 시설에서 트레이닝을 받아야하지만 말이다.

 오이카와는 조기 발현자였다. 그는 이미 9살에 가이드 판정을 받은 지 오래였고 반면 이와이즈미는 볼 것도 없이 노멀이였다. 중학교 시절의 이야기 이다. 여름 방학을 맞이해 원치도 않는 가이드 캠프를 언제나 처럼 발을 질질 끌며 갔고 그런 오이카와를 떼어놓으며 다녀오라던 이와이즈미는 평소와 다름이 없었다. 이와쨩, 나 보고 싶어도 울면 안돼?! 울까보냐! 가벼운 인사 후도 아무렇지 않았다. 단지 밤에 옅게 열에 시달렸다. 몇 일이 지나도 그의 상태는 지극히 멀쩡했다. 조금 어지럽다 느낄 뿐이였다. 2주 째에 접어들자 위장이 역류했다. 목 안이 매말라 목을 내리 긁었다. 어린 것의 통증은 날을 세우고 피를 맺히게 하였다. 막 한 주가 끝나갈 무렵 결국 병원을 찾을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의사의 입에서 나온 말은 꽤나 충격적인 것이였다.

 

 "병원이 아니라 가이드 라인 시설 쪽을 가보시게 어떠신지요."

 

 흔히 센티넬들이 겪는 현상이라 말했다. 안정화 시켜줄 수 있는 가이드가 없기에 초기에 쉽게 폭주해버리는 경우가 있다며 시설에 연락을 넣어주었다. 그리고 홀로 캠프를 마치고 돌아온 오이카와를 맞이해주던 이와이즈미는 없었다. 그가 제 오랜 친구를 만나기 위해 발걸음을 옮긴 곳은 옆 집이 아닌 시설이였다는 것이 전부였다. 또래에 비해 발현이 늦은 감이 있다며 갑작스런 센티넬 발현에 시설 간호사는 이와이즈미의 부모님들을 진정시켜야 했고 무의식에 안정화가 되고 있었다, 라는 말을 전했다. 가이드가 옆에서 무의식에 안정화시켜 발현 자체가 늦추어진 것이다 라는 하얀 진실이였다. 가족 중 가이드는 없었다.

 이와이즈미가 인공 안정화를 받은 후 정신이 돌아오자 반나절은 센티넬 명부에 이름을 올리기 위해 수많은 검사를 할 수 밖에 없었고 나머지 반은 아무 사정도 모르는 오이카와를 진정시키는데 걸렸다. 일주일 후 공식적인 서류가 둘 앞에 날아왔다. 길고 따분하고 지루하고 복잡하며 딱딱한 전문용어 세례였지만 결론은 그것이였다.

 

 오이카와 토오루 님의 센티넬은 이와이즈미 하지메 님 입니다.

 이와이즈미 하지메 님의 가이드는 오이카와 토오루 님 입니다.

 

 그 후 왠지 모르게 서먹해진 사이는 얌전히 휴일을 시설에 반납하면서 무색해져버리고 말았다.

 

 "불공평해."  

 "뭐가?"

 

 훈련 중 트레이닝 룸 바닥에 나뒹굴며 턱 아래 진 땀방울을 훔치던 이와이즈미는 미간을 구겼다. 드링크를 입가에 가져다 대며 검지로 오이카와의 팔뚝을 찌르자 커다랗게 눈을 끔뻑일 따름이였다. 나? 그래, 너.

 

 "내가 뭐 어때서."

 "니가 가이드지, 센티넬이야, 어? 측정기록이 그렇게 나오면 괴물이지. 멍청한 자식."

 "이와쨩이 나보다 높은걸."

 "그게 아니잖아, 망할카와. 내가 너하고 뭔 얘길하냐."

 

 이와이즈미는 재차 고개를 내젖다 드링크를 던지고 언제 지쳤냐는 듯이 벌떡 일어나 문 밖으로 뛰쳐나갔다. 얼굴 정면을 정확히도 맞은 오이카와는 옅게 붉어지는 이마 부근을 매만지며 이내 따라나갔다. 이와쨩- 나 아파! 아프라고 던졌는데 안아프면 안되지. 겍- 나빴어. 시끄러워.

 

 이와이즈미는 나 센티넬, 쟤 가이드 따위를 티내고픈 추호도 없었기에 가벼운 스킨쉽조차 거부하곤했다. 밖은 당연하지만 시설 내에서도 그냥 살갗이 닿는 것을 싫어했다. 물론 연인 사이라던가는 아니였으므로 그러려니 싶게 생각할 법도 했지만 안정화 조차 꺼려하는 턱에 시설 관계자들에게 걱정을 받기도 했다. 아아- 이와쨩 부끄러운거 다 알아. 그러니까 어서 이 오이카와 상에게 안겨, 라는 식으로 구는 날이면 한시도 같이 있으려 들지 않았다. 볼거 다 본 자식인데 굳이 뭘 그래야하냐며 알량한 자존심 문제에 불과했지만 말이다. 그러다가도 늦은 밤 귀갓길에 보는 눈도 없다며 칭얼거리기라도 하면 누가 아니랄까 두어 번 짜증을 내다가도 양쪽 볼을 부풀리며 툴툴거리면 한숨 짙은 말투로 이번 뿐이라고 얌전히 제 손을 내어주곤 하였다. 그러면 오이카와는 잽싸게 손을 잡아채 손가락이 얽히게, 서로의 더울 법한 열기에도 좋아라 붙잡고 놓지 않았다. 오이카와는 저에게만 져주는 이와이즈미가 좋았고 이와이즈미는 손끝에 감겨오는 긴 손가락을 싫어하지 않았다.

 

-

 

 사실 가이드와 센티넬의 관계가 그러했기 때문에 결혼까지 하는 경우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가이드의 입장에선 어떨지 몰라도 센티넬은 가이드 없이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어쩌면 일방적으로 복종 관계가 나타나기도 하지만 어디까지나 어두운 면이라 하겠다. 안정화를 위해서 심한 경우나 각인을 찍어버릴 경우는 관계를 가지기 때문에 그 편이 바람직할지도 모른다.

 기계나 의약품의 힘을 빌려 센티넬의 폭주를 의도적으로 막을 수 있는 것은 4번 뿐. 이후는 면역의 문제인지 정확히 모르지만 비슷한 것으로 인해 몸이 말을 듣지 않는 모양이였다. 더군다나 심한 경우는 육체적 고통에서 죽기라도 한다니 어쩔 도리도 없었다.

 

 제 자신에게 물어보자면 오이카와는 이와이즈미를 좋아했다. 자각한 것이라면 중학교 시절이였다. 정확히는 이와이즈미의 센티넬 발현 후 였다. 그래서 이와이즈미가 제 센티넬이라는 사실에 말하진 않았지만 굉장히 만족스러웠다. 일종의 소유욕이였다. 따지고 보면 좀 더 오래 전부터 짝사랑이란 감정을 품어왔을 터였다. 소꿉친구라는 타이틀이 괜히 있는게 아니였음에 오이카와는 선뜻 다가서지 않았다. 그게 최악의 선택지일테니. 좋아해. 이 한마디를 깊게 묻어놓고 잘도 웃었다. 그래도 틀린 방향은 아니였다. 확실히 한 조각 한 조각 집어삼키고 있었으니까.

 

 이와이즈미에게 남아있던 기회는 세 번이였다. 같은 공간에 있는 것만으로 괜찮던 시기를 넘어서자 이와이즈미는 간단히 정신을 잃었다. 안정화 핑계로 치근덕거리던 오이카와를 떠올리자니 위장이 싸해지는 기분에 좀처럼 손도 잡지 못했다. 아득해져 오는 정신을 부여잡고 머리를 헤집으며 나서자 다리에 힘이 풀렸다. 소리에 뒤따라나온 오이카와는 얼굴을 어루만져주었다. 눈에 선 핏발에 눈가에 도드라지게 드러난 혈관과 삐걱이는 손가락에 더불어 턱턱 막혀오는 숨에도 이와이즈미는 오이카와를 밀어내었다. 사람, 불..러, 와. 순간 오이카와의 얼굴이 눈에 띄게 굳었다. 하지만 별말 없이 뛰어갔다. 그리고 눈을 떴을 때는 입가에 굳은 피가 엉겨붙어 있었다. 목이 따가웠다. 손 끝이 아렸다. 보기 좋게 수직으로 그인 목에 난 선들과 두어 군데 손톱이 빠져버린 손가락에 이마에 바늘자국과 곳곳에 멍자국. 시설 병동에서 작게 신음하자 오이카와는 말했다.

 

 "언제까지 그럴꺼야."

 

 핏기 가신 눈이였다. 아직 두어 개의 인영이 겹쳐보이는 오이카와에게 손을 뻗었다. 나름 기세좋게 뻗어올라 파르르 어깨 위에 안착했다. 오이카와. 오이카와는 말없이 그 손을 잡고 상체를 숙였다. 애석하게도 첫키스는 핏비랜내였다.

 

 물론 그 후로 쉽사리 먼저 다가오는 일은 없었지만 손 정도는 용서해주는 분위기 였다. 오이카와는 여전히 잘도 웃고 다녔다.

 

-

 

 재능은 피워내는 것. 센스는 갈고 닦는 것. 오이카와와 이와이즈미는 그 말이 무색하리만큼 특출났다. 굳이 나쁘게 말하자면 무자비였지만 말이다. 오이카와는 작전 지휘에 두각을 보였고 왠만한 중상급 센티넬과 대등할 법한 측정기록의 소유자였다. 이와이즈미는 제 능력인 방향 감각 극대화로 사격 실력이 출중했다. 덕분에 최전방을 덥썩 받아야만 했다. 생존 확률이 희박하다는 최전방 중에서도 선발대에 배치 받았다. 모래 사막 지형이였다. 폭풍이 자주 휩쓸고 지나가는 구간이였고 시체도 찾지 못한다는 말이 돌만큼 난폭한 곳이였다. 안타깝게도 극도의 확률 전쟁에서 이와이즈미는 살아남았다. 상처 하나 없이, 는 아니였지만 적어도 피 흘리진 않았다. 모래의 잔재 정도에 불과했다.

 

 "이와쨩, 다녀왔어?"

 "어."

 

 땀과 전우인지 적인지 모를 혈흔에 모래를 끼얹은 것을 덕지덕지 붙이고 전초기지로 돌아오면 오이카와는 두 팔 벌려 이와이즈미를 끌어안았다. 수고했어, 이와쨩. 시큼한 비릿내와 손끝이 저릿한 이와이즈미 특유의 체향에 어깨에 코를 박곤 했다. 다치진 않았어? 날 뭘로 보는거냐, 젠장카와. 역시 내 이와쨩.

 오이카와의 경우는 작전이나 지휘 역이 였기에 후방지원에 소속되어 있었고 이와이즈미는 말할 것도 없이 선발대 였다. 말이 후방 '지원' 이지 사실은 그저 기지에 눌러앉아 선발대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는 역할에 불과했다. 가끔 심심한 나머지 스톱워치를 눌러놓고 기록을 재기도 했다. 기지 내 방송으로 귀환 소식이 들리면 극심히 내달리던 시계를 멈추고 군장 준비실 앞까지 한걸음에 뛰어가 제 센티넬을 맞이해 주곤 하였다. 보란 듯이 두 팔을 벌리고 환하게 웃으면서 마치 뒤에 후광이라도 비칠 태세였다. 보는 눈이 많기에 그런 짓을 병적으로도 해대는 것을 잘 아는 이와이즈미 였지만 그 정도는 어리광으로 뵐 뿐이였다.

 

-

 

 그 날 역시 그랬다. 옅게 바람에 묻어나는 모래 한 웅큼을 용케도 입에서 토해내며 철제 책상을 손톱 세워 두드리며 이와이즈미를 기다리고 있었다. 방송이 울리기 전 귓가를 때리는 요란한 기계음에 오이카와는 푸스스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군장 준비실로 향하던 복도였다. 몇 번이고 지겹게 듣던 멘트를 중얼거리고 있던 참이였다.

 

 [선발대가 급습당하였습니다. 제 1 후방지원 조는 지금 즉시 군장 준비실로 모여주시기 바랍니다. 다시 한 번 알립니다. 선발대가 급습당하였습니다. 제 1 후방지원 조는 지금 즉시 군장 준비실로 모여주시기 바랍니다. 이상.]

 

 "선발대가 귀환합니다. 최외곽 구역 게이트가 열립니다."

 

 멋나게 첫머리만이 맞아떨어졌다. 느긋하게 옮기던 발걸음이 우뚝 멈추어섰다. 급습? 오이카와는 고장난 것마냥 스피커를 올려다보았다. 이와쨩? 두 번째 집합 방송이 울리고나서야 정신을 차린 오이카와는 가장 늦게 도착해 가장 먼저 준비를 마쳤다. 후발대의 준비가 끝마치기 까지도, 전투지역에 도착하기 까지도 오이카와는 무선 연결만을 시도 하고 있었다. 이와이즈미 하지메 코드 번호 A-04798. 폭풍 때문인지 연결이 불가능하다는 문구만이 떴다. 젠장. 이를 악 물었다. 절대 그럴리 없다고 알면서도 불안에 젖어 내리앉는 고동은 어쩌지도 못했다.

 

 "후발대는 지금부터 수색작업에 들어간다. 적과의 접전은 피하고 아군의 위치 파악을 최우선으로 한다."

 

 예상보다 극심히 모래폭풍에 고글을 쓰고도 눈을 제대로 뜨기 힘들었다. 이런 날이라면 속공보단 후퇴지. 오이카와는 간신히 연결된 채 깜빡이기를 반복하는 GPS 기기를 붙잡고 현 위치와 설정한 목적지만을 바라보며 나아갔다. 이와쨩! 어디야! 단단히 조여맨 제복과 살갗 사이로 날카로운 감각이 파고들었다. 화력이 부실한 탓에 개조한 리볼버를 놓칠새라 고쳐쥐며 갈라지는 목소리로 내질렀다.

 

 "이와이즈미!!"

 

 발치에 걸리는 느낌에 주위를 살피자 사나운 바람에 휩쓸린 것은 GPS 송신 기기가 부착된 이와이즈미의 제복이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한 땐 제복 블레이저였을 혈흔이 낭창한 넝마였다. 손바닥이 축축해지도록 불쾌한 감각에 오이카와는 아랫 입술을 짓이겼다.

 

 "이와이즈미 하지메!!"

 

 모 동화의 폭풍에 집이 날아가버렸다는 얘기처럼 모래 위 떨어진 혈흔이 날아가버리고 있었다. 오이카와는 고글을 눌러 활성화 시켰다. 눈 앞에 기계판이 나타나며 요란하게 흔들렸다. 열 감지로 돌리자 열 걸음도 안되는 곳에 사람의 인영이 포착되었다.

도무지 사람이라는 것 이외에는 생사조차 알 수 없다는 기계음에 오이카와는 꽤 난폭하게 시스템을 종료시켰다. 이와이즈미? 리볼버를 이마에 겨누고 조심스레 바짝 붙자 그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이, 이와이즈미..! 어쩌다, 다친거야? 어디야, 심해? 아파? 괜찮은거야?!"

 "시, 끄러..하나 씩, 물으란 말이다, 넌."

 

 군복 식 제복인 점을 감안하더라도 블레이저와 그 위에 따로 방탄 가능한 외투 형식의 옷이 있다. 그게 생각보다 제 몫을 톡톡히 해내는 것이였다. 다만 이와이즈미는 방탄 외투는 커녕 보란 듯이 셔츠까지 찢어 대충 둘둘 말아놓은 상태가 심각했다. 이런 날이라면 감염은 거의 확실히 보장된 거나 마찬가지였다. 오이카와가 이와이즈미의 허리께에 손을 넣어 상체를 조심스럽게 들어올리자 신음이 터졌다. 별 도리없이 오이카와는 제 무릎을 세워 받치고 수통을 열어 지혈 중이던 손을 치우고 들이부었다. 이와이즈미가 크게 들썩였다. 오이카와 역시 이를 악 물고 그의 손을 맞잡아주고 있었다. 참아. 젠장, 그만..둬..! 참아, 출혈 심해지면 또 폭주할거야. 난 그렇게 안둬. 손등 위로 자잘한 근육 사이로 혈관이 돋아오르고 뼈가 드러났다. 더 세게 잡아. 오이카와는 급히 안주머니에서 상시로 가지고 다니던 새하얀 행커칩을 꺼내들어 이와이즈미의 입에 물렸다. 참아. 스며드는 고통에 잇자국이 남도록, 찢어발겨지도록, 얼마 가지 않아 행커칩은 더 이상 하얀색이 아니였다.

 

 "망할, 카와.."

 "말하지마. 다시 물어."

 "9시 방향에, 한 마리. 11시 방향에, 두 마리..처리해."

 

 오이카와의 미간이 꿈틀거렸다. 뭐라할 새도 없이 제 리볼버를 9시 방향으로 들어 조금 힘을 빼고 방아쇠를 당겼다. 팔이 떨리는 감겨오는 진동에도 무표정이 역력했다.

 

 "야, 리볼버, 주제..탄환 아껴, 뭘, 내 꺼 써라."

 "두 발이면 충분해. 다시 물어."

 

 오이카와는 이번엔 고개를 들어 11시 방향을 응시했다. 소음기 들고 왔어야 했네. 그래도 이 난리에 총성이 들릴리가 만무하다는 것을 자각하며 고글의 시스템을 재가동시켰다. 두 마리. 성가셔. 아까와는 다르게 팔 전체에 힘을 준 채 당기자 어깨가 조금 뒤로 밀리고는 빈 수통을 내던졌다. 상처 위를 열기로 지지자 신음성 비명이 터져나왔다. 목소리가 아니라 목에서 울리는 소리였다. 참아.

 

 "그, 만..둬."

 "닥쳐. 참아. 이대로 죽게 둘거 같아?"

 "늦었다고, 말하잖아. 망할 자식아-. 내 말 좀, 마지막인..데, 쳐, 들어..!"

 "누가 멋대로 마지막이야, 이대로 복귀해서 전선 다시 바로잡고, 우리 쪽 피해가 크면, 지금 만회하면 되는, 거 잖아. 그러니까 정신 차려." 

 

 잠잠해지는 폭풍우에 이와이즈미는 울컥하며 핏덩이를 쏟아냈다. 처참하게 토해진 응어리들은 말간 모래 속에 파묻혔다. 파르르 떨리는 손으로 힘껏 오이카와를 밀어냈다. 통증 때문도, 역류한 혈액 때문도, 더군다나 지지리도 제 말을 듣지 않는 오이카와 때문도 아니였다.

 

 "멍청한, 자식..아-"

 

 기도가 막히는 듯한 소음을 만들어내며 응어리가 흘러내렸다. 날을 세웠다. 탁하게 내쉬던 숨도 멈추었다. 더렵혀진 숨을 삼키더니 이내 가단하기 삼켜버리고 마는 것이였다. 가만히 눈을 감았다 뜨자 백안이 검게 물들어있었다. 눈가에 솟은 혈관들은 말할 것도 없었다. 찢기고 엉망이 되어 펄럭이는 셔츠 사이로 힘줄과 뼈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와, 이즈미?"

 

 제 앞을 막아선 채 보란 듯이 피를 토해내며 평소의 입버릇처럼 욕짓거리를 내뱉는 이와이즈미에 오이카와는 뺨의 언저리에 튄 핏자국을 쓸어내리는 순간 이와이즈미는 몸을 돌려 군화로 사네의 발을 내리찍고 턱 아래 움푹한 부위에 엄지를 제외한 손가락을 끼워넣고 날렸다. 평소 상태라도 목에 무리가 갈게 뻔했지만 그는 폭주 상태였다. 팔뚝으로 갗 뽑은 체액이 흘러내렸고 머리와 분리된 몸뚱아리는 허공을 비집다 처참히 쓰러졌고 이와이즈미는 뜯어낸 한낯의 거대한 살점을 떨구었다. 그리곤 고꾸라졌다. 무릎이 가장 먼저 모래 사이를 파고들었고 그 다음 손바닥이 닿기도 전 상체가 엎어졌다. 오이카와는 이와이즈미의 어깨를 잡아 돌리곤 가면마냥 달라붙은 모래를 쓸자 이와이즈미는 허탈하게 웃었다.

 

 "너, 그깟..총 하나, 개조, 했다고..어, 자만질이냐."

 "빨리, 후송.."

 "야, 진짜..어, 끝까, 지 이러냐. 너."

 

 오이카와는 한 손으론 이와이즈미의 턱도 없는 출혈 부위를 막으며 본부에 연락을 넣었다. 물론 무엇 하나 통하진 않았지만 말이다. 한바탕 휩쓸고 간 폭풍우의 여파인지 도무지 닿지 않는 터에 출혈 부위가 한 두군데가 아니라 복부 정중앙에 뚫린 것은 관통상이라 아물지를 못했다.

 이와이즈미는 흉측하게 일그러지는 손을 가만히 들어 배덕감과 죄악감에 시달리는 오이카와의 뺨에 가져다대었다. 얼굴 풀어, 자식아.

 

 "하지메...?" 

 "이럴거면, 손, 먼저 잡아줄..걸 그랬나보다."

 "무슨, 무슨 소리야. 무슨 마지막 같은..! 아니아니, 이제 잡아주면 되는거잖아. 하지메? 하지메, 말하지마. 또 역류할거야, 그만,"

 "줘도, 의미없지, 아주, 어?"

 

 이리와, 토오루. 

 

 표면부터 굳기 시작한 핏자국은 입술이 닿자 몽글거리던 표피가 견디지 못하고 찌그러져 다시 흘러내렸다.

 

 "나쁘진, 않네."

 

 희미하게 걸린 호선은 핏기가 가신 것이였다. 하지메. 조금만, 더 빨리, 할..걸 그랬나. 불공평해. 옅은 키득거림과 함께 마지막으로 말라붙은 손이 모래를 파고 들었다.

 

 하지메. 하지메. 하지메.

 대답. 대답. 대답.

 

 그의 입버릇처럼 대답은 없었다. 불공평하게도. 귓가에 노이즈가 울리더니 이내 지원부대의 연결팀과 연락이 닿았다. 무슨 일이십니까, 오이카와 분대장님. 그 좌표로 지원 필요하십니까. 분대장님. 오이카와는 가만히 인이어를 빼내었다.

 

 불공평해.

 

 그리 중얼거리는 오이카와는 허탈하게 웃었다.

 

 "대답."

 

-

 

어제부터 질질 끌어온 글..다 썼..쿨럭-

 

뭔가 환영해요- 로 시작해서 쓴 글인데 우중충해져버렸..

 

아닙니다, 카몽님 전 진짜로 막-막!! 어휘가 딸린다.....짐승

 

쓰면서 조금은 즐거웠고 나머진 고통받았습니다

 

하지만 그게 일상이므로 신경쓰지 않습니다 하하하하하하ㅏㅎㅎ

 

미묘하게 전력 글 따위로 전락해버린 것만 같지만 아무래도 좋습니다!!

 

그럼, 이런 괴상한 거 받고 나서 뒷수습 어떻게 할지 고민해보겠습니다 구석))

마츠하나 전력 60분 ; 아이스크림

 

(마법사 AU/둘은 사귀지 않습니다/주제는 소품으로 등장ㅋㅋ)

-

 

 "거짓말."

 "아니, 진짜라니깐."

 

 하나마키는 인상을 팍 쓰곤 제 앞에 서 있는 '고객' 을 바라보았다. 로브 후드를 걷자 드러난 선명한 색에 하나마키는 신음했다. 그럴리가 없는데. 멀쩡한 동공은 여전히 붉었다. 문제라면 동공을 넘어서 까지 적흑 색을 띄고 있었다.

 

 "구울이라고 오해받고 있단말이야."

 "아니- 지금 먹어줘? 멀쩡하다니까?"

 "그럼 아니라고 할 셈이야? 난 실제로 이렇게 됐잖아."

 "그건 너고. 성향 차이일지도 모르지."

 

 옅게 푸른 혈관이 눈가에 두드러지게 돋자 하나마키는 한 걸음 뒤로 물러서 두 손으로 앞으로 내밀었다. 자,자. 우선 진정하자. 그는 천천히 하나마키에게 다가갔다.

 

 "내가, 지금. 어?"

 "자,잠시만..!"

 "진정하게 생겼어? 출석까지 이틀 남았다고."

 "아,아직 이틀이나 남았..!"

 

 다가오던 걸음을 멈추고 가만히 눈을 맞추는 덕에 결국 입을 열었다. 미안. 하나마키는 어깨를 떨구었다. 이래나 저래나 결국은 제 과실인 셈이였다. '진짜 고객' 이였다면 바로 배상이라도 했을 터 였지만 지금 제 앞에 있는 사네라면 달랐다. 마츠카와 잇세이, 소꿉친구이자 이 일대의 지배자인 제 1 에리카 였다.

 

 워낙 종족이 섞여버리는 바람에 종족끼리 묶어 구역을 지정하고 지배자 격의 '에리카' 를 둔다. 다른 족에 비해 수가 압도적으로 많은 족은 구역에서 다시 일대로 나눠 그 안에 에리카를 둔다. 제 1 부터 제 3 까지로 당연히 힘이 차이로 결정한다. 중앙보고를 위해 구역별 각 에리카 한 명이 선발되어 반 년에 한 번 회의에 참석한다. 

 대륙에서 상당한 수를 자랑하는 위저드는 총 여섯 구역으로 나눠져 두 구역씩 묶어 에리카들이 각각이 관리하고 있는 실상이다. 그 셋 중에서도 츠바이(zwei) 의 에리카가 마츠카와 였고 덕분에 빌어먹을 아인스(eins) 에서 오이카와를 보지 않아도 된다며 한 편으로 걱정하면서 마츠카와가 제 1 에리카로 승격 하여 츠바이(zwei) 로 옮기게 되던 날 좋아라 했다.

 

 마츠카와는 하나마키의 이마에 제 이마를 맞대었다. 잇세- 아파. 아프라고 한거다. 이 모든 사건을 요약해보자면 이러하다. 하나마키는 위저드 능력으로 자그만한 과자 가게를 차렸다. 말이 과자 가게지 사실은 간식 가게나 다름 없다. 간단한 빵부터 사탕에 껌 젤리 쿠키 초콜릿 마카롱까지 별의 별 것이 즐비되어 있다. 그리고 신제품이랍시고 만든 아이스크림 맛 마카롱을 마츠카와가 시험삼아 먹었다. -언제나 마츠카와가 실험 대상이다- 그리고 반 나절도 되지 않아 구울같은 눈을 하게 되었다.

 

 마츠카와는 눈 아래를 약하게 당겨 눈알이 드러나게 하여 하나마키에게 얼굴을 들이 밀었다.

 

 "난- 이런 눈을 하곤 회의 참석 못한다고요, 하나마키 씨."

 "예...에리카 님."

 "그러니까 어떻게든 해달라고."

 "그,그냥...잇세이가 주문 걸면 안돼?"  

 

 하나마키가 마츠카와의 시선을 피하곤 힐끗 거리며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손가락을 꼼지락 거리며 어깨는 움츠러든 채 어색하게 웃어보였다.

 

 "부작용 걸리라고요?"

 "그게 아니라, 괜히 또 내가 하는 것보다..실력 좋으니까."

 "하나마키 씨는 어디 학교 출신이시죠?"

 

 마츠카와가 씨익 웃어보였다. 저거 위험해. 마른침을 삼키며 하나마키는 두 뺨에 가해지는 악력에 고개를 들었다.

 

 "아, 아오바죠사이..학,원입니다."

 "아 명문 사립 맞죠?"

 "아,아마도.."

 "그런 경쟁률 높고 졸업반은 빡세게 굴리기로 유명한 사립에서 땡전 한 푼 안내시고 졸업까지 널럴하게 하신 분이 본인이 건 주문에 부작용이 생겼을 때 가장 안전하게 푸는 법은 뭔지 모를리가 없다고 생각하는데요, 전."

 "자,자기가 도로 푸는게 가장 안전합니다.."

 

 마츠카와는 여전히 웃는 얼굴로 하나마키의 볼을 주욱- 잡아 당겼다.

 

 "그럼 내가 푸는게 안전할까요, 하나마키 씨가 푸는게 안전할까요?"

 "저, 저요..아,아파-!"

 

 참지못하고 결국 하나마키는 저 볼을 잡아당기는 마츠카와의 손을 꾹 잡았다. 놔- 미안해, 잘못했어. 놔주세요! 그제야 손을 뗀 마츠카와에 하나마키는 빨간 양 볼을 손바닥으로 문질렀다. 잇세이 너무해. 누가 먼저 시작했는데. 하나마키는 입을 비죽 내밀었다.

 

 "미안해, 내가 심했어. 많이 아파?"

 "나빴어."

 

 눈가에 맺힌 눈물을 보자니 꽤나 아팠던 모양이였다. 마츠카와가 손을 뻗자 하나마키는 움찔거렸다. 손 떼, 안할거야. 어정쩡한 자세로 손을 내린 하나마키에 한숨을 내쉬며 마츠카와는 손바닥을 뺨에 맞닿게 하였다.

 

 "아프지 마. 미안해."

 "잇세- 자,잠시만 이런거에 힐 같은건..!"

 "가만히 있어."

 "괜히 마력소모 되잖아. 괜찮아."

 "이제 괜찮아?"

 

 하나마키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거 안해도 된단 말이야. 투정하면서도 괜스레 입가가 올라가는건 저도 어쩔 수 없었다. 구석에서 빠져나와 언젠가부터 가게의 카운터 아래 자리하게 된 학원 시절 말도 안될 만큼 두터운 백과사전을 꺼내 바닥에 펼쳤다. 마츠카와는 사전 앞에 주저앉은 하나마키의 맞은편에 앉아 뒤집어진 글자를 읽어올라갔다.

 

 "에에- 내가 썼던게 아우구스트립 이였으니까- 부작용 없이가.."

 "저거 아니야?"

 "어디어디?"

 "니가 오른 손으로 누르고 있는 쪽 위에."

 

 아, 이거다. 깨알같은 글자를 찬찬히 읽더니 하나마키의 얼굴은 점점 굳어만 갔다. 뭔데. 마츠카와가 책을 돌려 경직된 하나마키를 대신해 읽었다.

 

 "아우구스트립은 민감한 재료로 부작용으로 여러가지 신체 발현이 이루어질 수 있다. 사흘 정도면 자연적으로 사라진다. 주문자가 해제 시키는 법은,"

 

 하나마키는 마른침을 삼켰다.

 

 "신체접촉이다, 라는데?"

 

 마츠카와가 고개를 들어 하나마키를 바라보았다. 위험해, 이거.

 

 "아,아까 닿았잖아. 괜찮지..않네."

 "아무래도 주문자가 하란 소리겠지. 그리고 내가 아는 한에선 이거 독할걸. 간단히 닿는 정도로 소용없어."

 "그럼 어떻해애."

 

 하나마키는 울상이 되었다. 마츠카와는 태연스레 책을 덮어 옆으로 밀어내며 두 팔을 벌렸다. 안겨봐. 하아? 나도 그런 것까진 몰라. 그냥 해보면 되겠지. 그치만-. 아아- 이번 회의는 못 가겠구나. 제 1 에리카주제 다들 참석하는데 혼자 결석이네. 츠바이(zwei) 에 특례 사라지려나-, 큰일이네. 큰일. 아, 아, 알았어. 마지못해 하나마키는 달려들 듯 마츠카와의 품에 안겼다. 넓은 등을 안노라니 묘하게 나른해졌다. 하나마키는 저도 모르게 얼굴을 부비적거렸다.

 

 "어때?"

 "아아- 유감스럽게도 전혀."

 

 여전히 검붉은 흰자위에 하나마키는 아랫입술을 물었다. 다른 거 시도해보자. 어떤 거? 흐음- 뽀뽀? 에- 싫어. 어릴 때 자주 했잖아, 어때. 그 때랑 지금이 같아? 지금 그런거 따질 때냐. 불만 가득한 하나마키는 상체를 일으켜 잽싸게 뺨에 입술을 찍었다. 마츠카와는 주문으로 거울같이 변한 손바닥으로 눈을 바라보았다. 옅어졌어, 살짝. 진짜? 뭐가 좋다고 거짓말하겠냐, 내가 하나마키도 아니고. 에. 결과 올 라잇- 아니야? 그럼 어떻해? 또 해? 마츠카와가 늘어진 하나마키를 응시했다.

 

 "히로, 기왕이면 한 번에 끝내는게 낫잖아."

 "그야 그렇지."

 "키스."

 "하아? 절대 무리. 무리. 무리. 무리."

 

 마츠카와는 하나마키의 뒷목을 손으로 받치고 이마를 맞대었다. 마주한 얼굴이 담담하기 그지 없어 하나마키는 당황스러울 뿐이였다.

 

 "하나, 내가 할까. 니가 할래."

 "...내, 내가 할게."

 

 하나마키는 눈을 꼭 감고 입 맞추었다. 닿았다. 닿았다. 더욱 세게 눈을 감을 따름이였다. 그런 하나마키를 내려다보던 마츠카와는 작게 웃었다. 귀엽잖아. 아랫입술을 물자 놀라 입을 벌려왔다. 그 안에 혀를 밀어넣자니 놀라 눈을 뜨자 마츠카와는 가볍게 치열을 훑었다. 하나마키는 마츠카와의 옷깃을 쥐며 도로 눈을 감았다. 본능적으로 였다. 살짝 타액만 섞다 마츠카와가 빠져나오자 숨을 조금 가쁘게 몰아쉬며 달아오른 얼굴로 시선을 마주했다.

 

 "이,잇세이."

 "확실한게 좋잖아. 이제 됐네."

 "아-."

 

 나 간다. 몸을 일으키며 마츠카와는 채 일어서지 않은 하나마키를 흘깃 보곤 가게를 나섰다. 그런 마츠카와의 뒤를 바라보던 하나마키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열이 나는 것만 같았다. 다음에도 써봐야지.

 어느 세 정오가 다 되어가는 날에 마츠카와는 밀린 업무에 미간을 구겼다 아직 주머니 속에 남은 하나마키의 시험작 마카롱을 떠올렸다. 웃음이 비집고 나왔다.

 

 언제까지 모른 척 해주면 되는거야, 히로.

 

 또 저를 위해 준비해줄 발칙한 것을 상상하며 마츠카와는 피식 웃었다. 또 보고싶네. 우리 히로.

 

-

 

요즘 전력하면서 느낀 건데 전 주제를 소재로 쓰는게 아니라 소품으로 등장시키고 있어욬ㅋㅋㅋㅋㅋㅋㅋㅋ 젠장

 

그냥 서로서로 저러는 소나무랑 꽃 보고팠어요

오늘 마지막 전력 클리어! 뿌듯하다! /(ㅇㅅ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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