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로켄 전력 60분 ; 우산

 

(쿠로켄은 성인/주제는 빗물과 같이 시궁창으로)

-

 

 켄마는 자주 음악을 틀어놓고 있었다. CD 가 다 돌아가는데 걸리는 시간은 31분 02초. 2초는 항상 버렸다. 매번 31분이 지나면 정지버튼을 꾹 눌렀다 도로 재생 버튼을 눌렀다. 특별히 들을 이유도 없었고 CD 를 듣는 것도 그저 시간을 때우기 위한 일종의 무의미한 행위 쯤에 속했기 때문이였다. 따분하기 그지없었다. 켄마는 속으로 센 숫자가 60에 닿자 보지도 않은 채 익숙하게 정지와 재생 버튼을 눌렀다. 한가하네.

 

 애초에 켄마네 외할머니가 이 작은 잡화점의 주인이셨다. 시골이라 그런건지 도시의 잡다한 잡화점과는 다르게 소박하게 하얀 벽면에 나무 테와 유리로 진열장이 보였고 마을에서 유일하게 붉은 지붕이였다. 가게와 붙어있는 집은 그저 문턱 하나의 차이였다. 게다가 어딘가 동화에서 흔히 볼법한 분위기에 담쟁이 넝쿨이 하얀 벽을 메우고 있었기에 더할 나위 없었다. 진열장과 같이 테와 유리로 이루어진 바깥으로 열리는 나무문을 열어두면 여름에 훌쩍 가까워진 봄 바람이 기어들어오곤 했다. 가게 안은 대부분 나무재질로 계산대 부근 켄마는 작은 소품같은 의자에 다리를 몸에 붙이고 앉아 숫자 세기에 여념이 없었다. 게임기가 고장난 턱에 지루하기 그지 없었다. 그렇다고 게임을 하면 이 기분이 사라질것 같지도 않았다.

 켄마는 고갤 젖혀 천장에 대롱거리며 달려있는 모빌을 바라보았다. 조개 껍데기와 불가사리로 만들어진 모빌은 이따금 바람에 흔들려 종소리같은 음을 만들어내곤 했다. 그 옆에 한창 유행했던 드림캐쳐가 하얀색, 노란색, 파란색이 종종 매달려있었다. 그 옆엔 조금씩 바람이 빠져나가는 중인 공룡모양 헬륨 풍선이 보였다. 진열장에는 작은 머리핀부터 바늘에 실타래, 골무, 참빗, 이 빠진 그릇에 낡은 수저, 거울, 컵, 갈라진 붓, 얇은 공책들, 조각비누, 쿠션, 담요, 하얀 면티, 가위, 슬리퍼, 모자, 연필, 포크, 수건, 도마, 도시락 통, 낡은 카메라, 부채, 목도리, 앞치마, 촛대, 손전등, 비닐팩, 빨대 까지. 정말 '잡화점' 다운 잡동사니가 가득했다. 그런 점이 켄마는 성가셨고 마음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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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가 내렸다. 지독하게도 삼일내리 쉬지 않고 내렸다. 켄마는 앓았다. 비가 오는 날이면 남김없지 열을 토해냈다. 하루도 빼놓지않고 비가 오기 시작할 즈음이면 열이 올라 이미 제정신으로 있기조차 힘겨웠고 마른 땅위에 세게 내리칠 때면 달아올라 어찌하지도 못한 채 안쪽으로 우그러들 것만 같은 몸뚱아리를 쥐여잡고 끙끙 앓았다. 눈 앞이 점점 하얗게 번지다 정점을 찍었을 때 항상 눈을 떴다. 비가 그친 후였다. 땀에 흠뻑 젖어 휘청이는 머리를 부여잡고 일어나 부엌으로 향했다. 물. 눈 앞이 일렁였다.

 

 실례합니다.

 

 켄마는 이를 갈았다. 참아야 돼. 켄마는 겨우 벽을 짚고 서 가게로 통하는 미닫이 문을 열었다. 그것은 CD 의 재생이 끝난 소리였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미닫이 방에 누워있었다. 한참 큰 절대 제 것일리가 없는 져지를 덮은 채로. 아 괜찮아요? 낯선 목소리에 겨우 눈을 뜨니 마을에서 본 적 없는 얼굴이였다. 누구. 이번에 새로 이사온 쿠로오 테츠로, 라고 합니다. 아-. 병원이라도 가봐야하는게 아닌가요. 괜찮아. 조금만 있으면. 비만, 그치면. 켄마는 일으키던 상체에 힘이 풀려 앞으로 고꾸라지면서 다시 정신을 잃었다. 찌그러질거같아. 나. 아마. 

 

-

 

 친절히도 자신의 져지를 남겨두고 간 새 입주민 덕에 켄마는 돌려주러 마을 깊숙히 까지 들어가야만 했다. 싫어. 후드를 눌러쓰고 맑게 갠 하늘 아래 물 웅덩이를 피해 조심스레 걸었다. 사람 대하는게 꺼끄러운 켄마였기에 그를 위한 외할머니의 배려였을까, 아니면 단지 같은 부류였을까 마을 입구 부근에 위치한 잡화점은 마을과는 꽤 거리가 되는 편이였다. 덕분에 켄마는 편했지만 이럴 경우는 전혀 반대의 경우였다. 어디 사는지도 모르는 사람을 찾아야한다. 새 입주민이라고 하면 얼마든지 찾을 수 있을 터였지만 말 걸기가 어렵달까 그냥 다가간다는 그 자체가 힘겨울 뿐이였다. 꽤 깊게 들어오자 켄마는 제자리에 멈추어섰다. 싫어. 그는 져지를 세게 쥐었다. 동네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싫어. 눈 앞이 흐릿해지기 시작하면서 호흡이 불규칙적으로 변질되었다. 싫어, 싫어. 스니커즈가 흙과 자갈에 쓸려 소음을 만들어내며 뒷 걸음질 쳤다. 싫어. 이내 몸을 돌려 마을 어귀까지 뛰었다. 아파. 어귀의 커다란 이름 모를 나무 앞에 주저앉아 가슴께를 쥐어잡고 숨을 토해냈다. 한참이고 한참이고 그러다 천천히 일어나 느릿하게 가게 문을 열었다. 오늘은 무리, 라 중얼거리며 카운터의 의자에 신발을 아무렇게나 벗어던지고 올라앉아 31 : 00 에서 멈춘 카세트를 보더니 재생 버튼을 눌렀다. 그렇게 다시 처음부터 흘러나오기 시작한 익숙한 곡조에 숨을 몰아 쉬었다.

 

 "아, 있다. 있다."

 

 고개를 들자 그곳엔 쿠로오가 서 있었다. 아- 새 입주민분. 잘되었다 싶어 켄마는 제 왼팔에 감겨버린 져지를 건내었다.

 

 "고마워."

 "뭘, 이름이 뭐야, 그 때도 못 들었어."

 "이미 들었을거아니야."

 "네 입으로 듣고 싶은걸. 그 편이 훨씬 기억에 남고 말이야."

 

 켄마는 입을 삐죽였다. 이런 작은 시골 마을에선 젊은 사람보기란게 좀 처럼 쉬운 일이 아니였다. 말동무 정도야 되어줄지도 모르는 일이였다. 스트라이크 존이 협소한 저는 뭐 아무래도 좋았다. 인터넷이 먹통이라는 것 쯤은 이미 알고있었고 슬프지만 꽤 익숙해진 탓이였다. 싫어.

 

 "안 알려줄거야?"

 "...켄마, 코즈메. 켄마."

 "자아 그럼 켄마군, 앞으로 잘 부탁해요, 나이는?"

 "스물 둘."

 "헤에- 어리구만."

 

 그러는 그 쪽은 나이가 어떻게 되는데. 켄마가 눈을 흘겼다. 쿠로오는 씨익 웃었다.

 

 "그 쪽 말고, 쿠로오."

 "...쿠로는 나이가 어떻게 되는데."

 "쿠로, 오 인걸. 뭐 상관없지만. 스물 셋."

 

 겨우 한 살 차이주제. 켄마는 작게 중얼거렸다. 쿠로오는 키득거렸다. 져지를 꿰입으며 가라앉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전에도 저거 틀어놨지 않았었나.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간다, 나중에 다시 올게. 가볍게 머리를 헤집어놓았다. 아-.

 

 "쿠로."

 "응?"

 "쿠로 말고 쿠로."

 

 문가에 서 돌아보는 쿠로오의 발치에는 작은 고양이 한 마리가 가게 안으로 살며시 발을 내딛고 있었다. 올 블랙. 설마 이래서 쿠로(黑) 라거나. 켄마는 맨발로 나무 바닥을 밟으며 작은 고양이를 품에 안았다. 비 오는 날에 어디 있었어, 응? 검지로 코를 톡톡 두들이며 부드럽게 꾸짖는게 영락없는 연인의 모습이라도 되는 듯 했다. 냐아-. 고양이의 울음소리에 쿠로오는 발걸음을 멈추고 잠시 둘을 바라보았다. 왠지 진 기분이란 말이야. 뒷목을 쓸어내리며 행여나 방해가 될까 발소리를 죽여 가게를 빠져나갔다.

 

 후로 쿠로오는 선전포고 했듯이 하루 두 번씩 잡화점을 찾았다. 필요한 것이 있다면 더 오기도 했다. 그의 방문이 익숙해지기 시작했고 암묵적으로 그는 CD 가 두 번 돌때까지 켄마의 곁에 가만히 앉아 쓸데없는 자잘한 얘깃거리를 주고받거나 요깃거리를 가져와 나눠먹거나 고양이 쿠로의 갸르릉 거림을 들으며 강아지풀을 가지고 장난을 쳤다. 어느 세 자연스럽게 의자가 한 더 늘었고 아이스크림을 소다맛을 준비하게 되었으며 워낙 둘 사이를 왔다 갔다 하던 져지는 미닫이 방의 옷걸이에 걸려 있었다. 어쩌면 싫어가 쿠로오 한정으로 괜찮아가 되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였다. 여전히 하늘은 맑았다. 켄마는 감고 있던 눈을 슬며시 떴다.

 

 "다시 눌러줘?"

 "응."

 

 쿠로오는 켄마가 하던 것처럼 정지버튼과 재생버튼을 차례로 눌렀다. 끊겼던 음이 도로 흘렀다.

 

-

 

 켄마. 켄마. 켄마!

 

 켄마는 억지로 눈을 떴다. 분명 이 감각은 비 였다. 손 끝이 부어 뭉퉁한 느낌이 들었다. 싫어. 싫어. 건들이지마. 싫어. 켄마는 몸을 웅크렸다. 비만 오면 다시 떠올라 정말 죽을 것만 같았다. 당시조차 없었던 수치심마저 들었다. 싫어.

 비 오는 날에 제 집 안에 있을 사람이라면 쿠로오 뿐이였다. 키를 복사해준 것도 저였고 허락해준 것도 저였으며 비 오는 날이면 하루 종일 곁을 지켜주는 것도 쿠로오 뿐이였기에 당연한 것이였다. 알고 있음에도 몸은 거부했다. 쿠로, 나 무서워.  무서워. 싫어. 싫단 말이야. 쿠로. 나. 아마.

 쿠로오는 카세트를 틀었다. 익숙한 31분을 위해. 비교적 잠잠해진 켄마의 상태에 쿠로오는 이불 위를 천천히 쓸어주었다.

 

 "켄마. 쿠로는? 안보이던데."

 "저기, 카운터 밑에.."

 "아니 그 밑에 없어."

 

 켄마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후들거리는 몸에도 억지로 부여잡고 일어섰다. 미닫이 문을 세차게 열었다. 카운터 아래 잡다한 천과 솜으로 채운 담요는 식어있었다. 없어.  켄마가 비틀거렸다. 쿠로오는 켄마의 어깨를 잡아주었다. 내가 찾아볼게, 기다려. 살짝 밀어 문턱을 넘지 못하게 하며 쿠로오는 가게 안으로 내려갔다. 쿠로- 어딨어. 손전등을 가지고 여기저길 비추어보았지만 보이지 않았다.

 

 "쿠로.."

 

 켄마는 밖으로 향하는 문을 바라보았다. 오늘 같은 날이면 들어오라고 조금 열어둔다. 그리고 들어왔는데 다시 나갔다, 인가. 켄마는 그대로 밖으로 뛰쳐나갔다. 켄마! 뒤에서 쿠로오가 부를 듯 했지만 차마 돌아볼 생각따위 하지 않았다. 비는 장마철 못지 않게 쏟아져내리고 있었다. 평평한 길에 물줄기가 보일 정도라면 세차게 쏟아붓고 있음이 틀림 없었다. 이런 날에 갈 곳이 어디 있다고, 켄마는 휘청이는 몸으로 뛰었다. 쿠로 어디야. 쿠로. 어디선가 애처롭게 울고 있을 어린 것의 생각에 켄마는 아찔했다. 어디야, 어디야. 하지만 무엇보다 문제라면 자신이였다. 비. 비. 비. 잊고 싶은 기억을 되돌리는 비. 옆 집 주민이라는 남자의 얼굴. 비. 청 테이프로 가로 막힌 입. 비. 묶인 손. 비. 찢어진 옷. 비. 피. 비. 고통. 비. 아픔. 비. 싫어. 비. 싫어. 비. 그런, 비.

 

 "켄마!"

 "싫어, 건들이지마! 건들이지말라고!! 싫어, 싫어, 싫어, 싫어!!"

 "켄마, 켄마. 나 쿠로오야, 응?" 

 "싫어, 싫어, 건들이지마, 만지지마, 더러워, 싫어. 싫어."

 

 켄마. 켄마. 켄마. 바닥에 주저앉은 켄마의 손목을 그러쥐었다. 하염없이 싫어 만을 외치며 울음을 토해냈다. 다- 싫어. 싫어. 정지, 재생. 정지 그리고 재생. 리셋. 켄마는 중얼거렸다. 눈물과 비가 섞여 흘러내렸지만 눈물이 흐른 곳만이 화끈거렸다. 정지 재생 정지 재생 정지 재생 정지 재생 리셋.

 

 "켄마."

 

 쿠로오는 켄마를 품에 안았다. 정지 재생 리셋. 싫어. 싫어. 나- 쿠로, 나-. 괜찮아, 절대 켄마 잘못 아니야, 그러니까 괜찮아. 나-, 나 더러운걸. 전혀, 그럴리가. 그럴리가. 괜찮아, 괜찮아, 켄마.

 안이한 생각이라는 것 쯤은 켄마도 알고 있었다. 사람따위 믿을게 못되고 거짓에 위선에 연기에 흉내에 불과하다고. 하지만, 하지만. 이 사람이라면 그래도 좋다고- 그렇게 생각해버릴만큼-.

 

 쿠로오는 잔뜩 젖은 채 반 쯤 정신을 잃은 켄마를 안아들고 잡화점으로 들어섰다. 떨어지는 물기따위 닦으면 될 것이였다. 켄마의 몸도 걱정이였고 비까지 덤으로 맞았으니 감기는 확정일지도 몰랐다. 게다가 고양이까지 찾아야한다니. 냐아-.

 

 "쿠로..!"

 

 고양이는 카운터의 아래 담요에 작은 새끼들과 함께 있었다. 밖에서 데리고 온 모양이였다. 현명하네. 쿠로오는 한 시름 놓으며 잡화점 문을 잠그고 켄마를 방으로 옮겼다. 대충 수건으로 닦고 열 오른 아이의 옷을 갈아입혔다. 방 안에 떨어진 물자국을 닦아내고 그 위에 안방에서 가져온 이불을 깔고 켄마를 뉘였다. 제대로 아프겠지, 켄마. 쿠로오는 작게 한숨지었다. 이사 온 날 대충은 들었던 얘기였다. 잡화점 주인, 원래는 도시에 살았는데 남자한테, 좀 그런 일이 있었던 모양이라며. 그래서 본인 외할머니가 그 아이 이름 앞으로 남긴 이 시골까지 내려와서 있는거라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지만 쿠로오는 켄마의 젖은 머리칼을 쓸었다. 진짜였구나. 켄마.

 

 혼자 그러지마, 켄마.

 

 쿠로오는 켄마의 입술에 입 맞췄다.

 

-

 

 그 후 켄마는 삼일내리 지독한 고열에 시달렸다. 다행히 감기는 피했지만 말이다. 어디까지나 인과응보라며 잔소리하는 쿠로오에 켄마는 시선을 피했다. 쿠로 너무해. 그런 소리 하지말고 얼른 나아.

 

 쿠로오는 켄마에게 단색의 빨간 우산을 선물했다. 다음 비오는 날에 이거 쓰고 데이트 합시다, 켄마 군. 데이트라니, 고백도 안했잖아. 나중에. 최악. 그렇게 말하는 켄마의 얼굴은 작은 호선을 그리고 있었다.

 

 "켄마, 선물로 주는 우산의 의미. 알아?"

 "전혀."

 

 쿠로오는 푸스스 하고 웃어보였다. CD 의 31분하고 02초가 탁- 하고 멈추었다.

 

 "당신을 지켜줄게요-"

 

 이제 막 여름에 들어선 하늘은 맑기만 했다. 켄마는 우산 손잡이를 만지작 거렸다.

 

 아- 얼른 비 왔으면 좋겠다.

 

-

 

망! 했! 다! 아! 아! 

역시 졸면서 쓰는거 무리 도중에 급전개로 가버렸잖아.....파들))

 

전 이런걸 원치않았습니다, 음음-

 

단지, 켄마가 쿠로오에게만 의지하는게 보고 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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