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날조 심각(라기보다 과거 파괴)

*극극극소량의 유혈사태 및 약약약 수위묘사

 

-에 유의해주십시오..라고해도 별거 아닌데..

 

 

"사장님. 죄송한데 바꿔달라고만 하시네요."

 

 후쿠자와는 그의 비서인 하루노의 곤란해하는 얼굴에 가만히 주억여주었다. 그럼 회선 바꿔드릴게요. 임무를 무사히 전달받은 그녀는 한시름을 덜고 자리로 돌아가 회선을 돌렸다. 수화기를 집어들자 슈베르트의 [마왕] 의 시작 부분만이 간헐적으로 들려올 뿐이였다.

 

 "용무가 없다면 끊겠다."

 

 [여전히 참을성 없는 친굴세.]

 

 "자네 따위의 친우를 둔 기억은 없다."

 

 [아아- 친우는 아니지. 확실히.]

 

 "끊겠다."

 

 [잠-깐.]

 

 "긴 말 않겠다. 녹차다."

 

 [잘- 알겠네.]

 

 던질 것 같이 수화기를 귓가에서 끌어내리곤 꽤나 얌저히 내려놓자 그제서야 통화는 끊겼다. 후쿠자와는 뒷편에 위치한 거치대 위의 일본도에 손을 뻗었다 금세 그만 두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의자를 밀어넣고 하오리를 손으로 거둬 펴내리곤 흡사 팔짱이라도 끼는 양 손목보다 깊게 손을 밀어넣었다. 지체없이 걸음을 옮기자 하루노는 엉거주춤 일어섰고 그는 그런 그녀를 저지했다. 사장실에서 나오자 제법 소란스러웠던 탐정사들의 눈이 모였다.

 

 "다녀오겠다."

 

 "네엡-."

 

 묘한 미소를 머금은 다자이만이 인사를 건냈다. 후쿠자와가 자리를 뜨자 다자이는 한껏 기지개를 켜더니 키보드에서 손을 뗐다.

 

 "오늘 일은 끝- 이란 말이지."

 

 "다-자-이."

 

 "기한 연장이잖아, 쿠니키타 군."

 

 "악의적이란 말이다. 신입들이 배우기라도 하면 어쩔거냐."

 

 "쿠니키타 씨. 무슨 말이에요?"

 

 "아."

 

 "아아- 쿠니키타 군이 신입군들에게 나쁜 버릇을 들이다니."

 

 "네 놈 때문이잖아!"

 

 "으음- 오늘 사장님은 퇴근이셔."

 

 친절한 다자이의 설명에 아츠시는 눈을 끔뻑였다.

 

 "외출하신거잖아요."

 

 "아까 하신 말씀에서 평소와 다른 점은 뭘까, 아츠시 군."

 

 아츠시는 예상치못한 타이밍의 질문에 눈알을 굴렸다. 글쎄요, 뭘까요.

 

 "'잠시' 란 말이 없으셨지."

 

 "아- 그러고보니 그러네요."

 

 "이제껏 그냥 다녀오신다고 했을 때 당일엔 돌아오신 적이 없으셔. 그러니까 자유다!"

 

 "다자이-!"

 

 다자이는 책상 위의 어지럽게 늘어놓은 서류 몇 장을 허공에 던져버리며 눈 오는 날의 아이 같이 즐거워했다. 물론 동시에 쿠니키타의 잔소리가 흩어졌지만. 

 

-

 

 후쿠자와는 신호등 앞에 서있었다. 어떤 이유인지 평소면 바뀌었을 시간이 진즉에 지나버렸지만 부동의 자세로 신호가 떨어지길 기다리고 있었다. 깊게 생각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지만 여유시간이 생겨버리면 일 이외에도 이것저것 떠올리게 되고 말았다. 조금 미뤄둔다고 문제가 생기는건 아니였지만 타의 모범이 되어야한다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다는 사실은 부정하지 않았다. 서류 결정 건은 2건이 남았지만 금방 끝나니 내일봐도 상관이 없을 터였다. 그 사이 신호가 바뀌고 횡단보도로 내딛으려던 걸음은 제 앞을 가로막은 차에 의해 멈춰섰다. 창이 내려가고 선글라스에 수트를 입은 조수석의 남자가 목례를 했다.

 

 "보스께서 모셔오라 하셨습니다."

 

 실로 언짢기 그지 없었다.

 

 "내 발로 가겠다."

 

 앞을 가로질러 횡단보도에 발을 딛은 후쿠자와는 고개를 돌려 무어라 말도 못하고 제자리에 선 마피아들에게 말을 던졌다.

 

 "전해라. 네 놈의 호의는 거절한다고."

 

 빠르게 지나쳐간 후쿠자와의 그림자를 쫒는데 연결된 스피커 폰에서 호탕한 웃음이 터져나왔다. 보, 보스.

 

 [됐다. 차피 이렇게 될 줄 알았으니, 돌아오도록.]

 

 "예."

 

 모리는 아래 조직원과의 통화를 끊으며 미미하게 새어나오는 웃음을 무리해서 참지 않았다. 애초에 참을 마음이 없다는게 더 맞는 말일 것이다. 모처럼 날도 좋은데 비라도 왔더라면 얌전히 타고 왔을까 라고 생각하다가도 그럴리가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작은 원탁에 우려놓은 홍차를 한 모금 머금었다 삼켰다. 기다린답시고 오래 우려둔게 화근이였다. 끝물에 쓴 맛이 올라와 두어번 입맛을 다셨다. 혀 끝에 남아도는 향에 그래도 짙은 향이라며 혼자 만족하고 말았다.

 

 둘의 관계는 항상 그랬다. 분명 서로의 입장 위치 상 이루어진 관계가 애매하게 지속되면서 그렇게 된 것도 한 몫 했다.

 

"줄곧 이래왔었는데, 자네와 난 말일세."

 

 찻잔을 비워내며 중얼거렸다.

 

-

 

 후쿠자와 가(家) 는 대대로 이능력자 집안이였다. 그래서 막부 정권 즈음부터 뒷일을 맡아왔다. 유서깊은 집안인 만큼 엄했고 그들만의 철칙이 존재했다. 남녀 가리지 않고 힘의 순서로 하여 당주를 내어주었다. 약육강식이란 말이 딱이였다.

 

 장남 후쿠자와 유키치의 위로는 누이, 아래 역시 누이가 있었다. 유감스럽게도 윗 누이는 이능력을 지니지 못한 몸이였을 뿐더러 집안의 폐를 끼치고 싶지 않다며 시집을 들어버렸다. 아랫 누이, 후쿠자와 카나타는 실로 대단했다. 타고난 피라 이르며 집안 어른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으며 자라났다. 자칫하면 살해를 위한 능력이 될 수도 있었거늘 어린 것의 손에 쥐었다 폈다를 반복했다. 그녀가 열 둘이 되던 해 이미 당주는 그녀라는 소문아닌 소문이 돌았다. 자연스러운 것이였지만 그는 그녀를 애써 만나려들지 않았다. 제 아버지 되시는 당주의 결정이기도 하니 그 만은 어길 수 없었다. 어머니가 병석에서 앓기를 자주 하셨기에 저를 유년시절부터 잘도 따르는 누이는 애정의 대상일 수 밖에 없었으나 그녀는 어린 나이에 차기 당주로 발탁될 것이였고 열 여덟에 아직 능력조차 피지 않은 그는 그저 조용히 침전하면 될 이야기에나 불과했다.

 

 "오라버니, 유키치 오라버니."

 

 끈질기게도 하루가 멀다하고 문안인사를 핑계로 다녀갔다. 내심 귀찮아 할까 굳이 오지 않아도 된다 일러두어도 다음 날이면 어린 누이의 발걸음이 들려오기는 마찬가지였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그런 그녀가 한편으론 기특하기도 했다.

 

 검은 마음을 수양할 수 있다한 것보다 제 몸 하나를 지키기위한 수단으로 시작하였다. 그의 유년 역시 검과 함께 였다. 그 머리에 피도 마르지 않은 것이 어찌 마음의 평화고 온화하며 냉철한 정신을 알리가 있단 말인가. 호된 꾸짖음에 시작된 것에 불과할 뿐더러 납치나 살해 위협을 받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타고난 제 복이였다.

 공식석상에서 만날 수 있는 기회는 얼마되지 않았다. 집안이 모두 모일 적 정도 뿐이였다. 그녀가 차기 당주로 발탁되기 전만 하더라도 검이나 경전 수업을 같이 하였으나 그 마저 마땅치 않게 여긴 것이였다. 발탁 이후 그는 아버지를 찾아가 말씀을 올렸다. 그녀는 이제 차기 당주이니 그에 걸맞게 대우해야할 것이고 그러하니 자신과의 접촉도 최소화 해야한다는 누이가 들었다면 서글퍼할 말들이였다. 아버지는 흔쾌히 옳다 하며 그의 소원대로 별채를 지어 그에게 내주었다. 자연스레 저와 멀어지며 당주로서의 마음가짐을 탄탄히 하라는 의미였으나 그래봐야 그녀는 고작 열 둘에 불과했다. 좀 더 사랑받아 마땅했고 어리광이라도 부릴 나이였다. 유감스럽게도 '차기 당주' 라는 역할이 발목을 잡았다.

 

 그 무렵이였다, 모리 오가이를 알게 된 것은. 그는 어머니 주치의의 아들이였다. 만난 것은 분명 몇 해 전의 유년이였으나 짧게나마 목례나 하고 마는 사이에 불과했다. 그는 그의 아버지를 따라다니며 잔심부름을 맡았고 말수가 적었다. 어머니는 안채의 남향으로 방을 내었기에 별채에 따로 지내는 그가 의사 부자를 볼 수 있을 적이라곤 들어갈 때와 나올 때 정도였다.

 그녀의 병세가 깊어지자 방을 내어주고 곁에서 볼 수 있도록 했는데 동갑이라며 아들인 모리가 별채에 들어오게 되었다.

 

 "모리 오가이야, 잘 부탁하네."

 

 "후쿠자와 유키치다."

 

 후쿠자와는 고개를 주억일 뿐 별다른 말을 덧붙이지 않았다.

 

 "원래 말수가 없는거냐?"

 

 그 조차 주억이는 것 말고는 다르지 않자 모리는 작게 웃었다.

 

 "적어도 몇 주는 봐야할텐데 친하게 지내는건 어떤가."

 

 "사양한다."

 

 "손님 접대가 엉망이군, 자네."

 

 "내가 관여할게 아니다."

 

 "유키치 오라버니-!"

 

 분명 다른 이가 보았더라면 경박스럽다 꾸짖었을걸 누이는 달려와 그에게 안겼다.  두 손이 서로 닿지도 않는 등 뒤로 팔을 두르곤 보고싶어 왔노라 말했다. 후쿠자와는 그런 그녀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어주며 일렀다.

 

 "카나타, 손님이 와 계신다."

 

 "아, 죄송합니다."

 

 "아니 괜찮아. 그 쪽은 유키치 동생?"

 

 "네. 후쿠자와 카나타 라고 합니다."

 

 "아아- 차기 당주가 너로구나."

 

 그녀는 금세 자세를 바로하여 무릎을 꿇고 두 손을 가지런히 하였다. 그리곤 모리의 말에 겸연쩍은 듯 작게 웃어보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카나타."

 

 "조금만 더 있다 가겠습니다."

 

 "-그래."

 

 새침하게 툭 뱉고는 웃어버리고 마니 얼른 돌아가라 하려다가도 덩달아 조소를 흘리고 말았다.

 

 "모리 오가이 님, 되시는가요?"

 

 "님은 필요없는데 말이지."

 

 "저희 오라버니가 말수가 적은게지 무척이나 상냥합니다."

 

 "너 무슨 말을,"

 

 "그러니 실망하지 마시고 부디 좋게 봐주세요."

 

 모리는 턱을 괴고 있다 말고 그만 웃으며 알았다 일렀다. 당돌한 그녀는 제 오라버니를 흘깃 보다 마저 이르고 안채로 내뺐다.

 

 "오라버니도 그리 쳐내지 말고 잘 지내세요-." 

 

 미간을 구기며 살뿐하게 뛰어내려가는 뒷모습을 보아도 별달리 할 수 있는게 없어 한숨만 내쉴 뿐이였다. 때마침 차를 내왔고 저러다 아씨 다치시기라도 하는 것 아니냐는 말을 들어야 했다.

 

 "살가운 누이일세."

 

-

 

 병세가 호전되기 시작한게 꼬박 반 년이 조금 지난 후의 일인지라 그 동안 -일방적이지만- 짧게나마 말이 오갔고 대련이라도 같이 하며 살을 맞대고 지내자 후쿠자와 역시 일전보단 이방인을 멀리 하지 않았다. 어쩌면 그의 누이의 소원이 제 몫을 한 건지도 몰랐다.

 

 "유키치. 혼사는 어찌되나."

 

 "집안에서 정해줄테지."

 

 "속 편한 놈이구만."

 

 "그러는 네 녀석이야 말로."

 

 가벼운 농담 따먹기가 오가는 사이가 되어서도 누이는 신신당부를 거듭했다. 자연스레 셋이서 어울리기도 했는데 그럴 때마다 후쿠자와는 한 걸음 뒤에서 있었다. 제 누이를 봐온 것도 십 수년이였고 당찬 그녀가 '여자' 로 보이는 순간이 많아지며 둘이 시간을 보낼 수 있게 해준 그의 배려였다. 그가 여러 면으로 좋은 사람이라는 것은 무의식 속에서 인정하고 있는 부분이였다. 그러니 그녀가 좋다면 지지해 주고 싶은게 오라버니 되는 후쿠자와의 마음이기도 했다.

 싹싹하게 굴고 얘기도 잘 들어주는데다 사람 홀리는게 능한 작자였다. 얼마나 능글맞게 구는지 한동안 한 이불을 덮고 자야했는데 제 몫이 준비된 이후로도 이 편이 좋다며 옆자리를 꿰차고 잠자리에 들었다. 게다가 툭 하면 장난질인데 다 큰 사네 자식한테 수련 중에 뒤로 다가와 허리께를 휘어감기도 하고 상체를 더듬거리며 역시 후쿠자와 가는 다르단 말인가 같이 태평한 소리를 늘어놓아댔다. 그리곤 어느 새 그 모든 것들이 익숙해져 갔다.

 

 "또 고양이한테 말 걸고 있었나."

 

 "-카나타는."

 

 "당주께서 부르셨네."

 

 "어머니 병세는 어떤가."

 

 "많이 호전되셨지."

 

 "고맙다."

 

 "내가 한게 뭐가 있다고, 감사라면 내 아버지에게나 하게."

 

 그와도 1년이 다 되던 해 누이의 등쌀에 못이긴 척 둘은 짧은 휴식을 가지기로 했다. 모처럼이니 누이도 같이 갔으면 했지만 고개를 설레설레 저어보이며 오라버니들끼리 잘 다녀오라며 가서 쉬라는 말만을 재차 말했다. 귀뜸으로 모리가 무얼 좋아하는지 물어봐달라는 말을 덧붙이는 것 보니 마냥 커버린 것은 아니라 실감했다.

 

 여름에 만났다. 꼬박 한 해가 지나 돌아온 새 여름이였다. 시종 몇몇을 미리 여름 별채로 보내 살피게 하고 일주일 채 안되어 출발하자 대충 날짜가 맞아떨어졌다. 산의 중턱에 자리한게 담장 너머까지 들어서는 가지들에 술렁이는 잎이 팔을 거두고 앉아있자니 시원하기 짝이 없었다. 모리는 조금 긴 머리칼에 더워보였다. 후쿠자와 역시 피차일반이였다. 저녁상을 물리고 앉아있자 붉게 익은 하늘은 새파랗게 식어가고 있었다.

 

 "자지 않을 셈인가."

 

 "조금."

 

 "줄여말하는건 그만두라 했던 것 같은데."

 

 "알아들으니 상관없잖나."

 

 "그야 그렇다만."

 

 조금 떨어진 언저리에 앉으며 그는 자연스레 후쿠자와의 무릎의 한 구석을 차지했다. 여기가 지상 낙원이 따로없구만. 덥다. 말만 그러면서 무슨-. 후쿠자와는 이미 양껏 즐기는 모리를 흘겨보고는 그저 내버려둘 따름이였다.

 

 "모리."

 

 "뭔가."

 

 "카나타는 어떤가."

 

 "너무 직접적이라고 생각하진 않는 모양이구나."

 

 "내 돌려말하는 적은 있고?"

 

 "없지, 없어."

 

 호탕한 웃음은 언제나와 같았다.

 

 "네 누이라면, 동경에 가깝지."

 

 "동경?"

 

 "아마 듣고싶은 답이라면 여기있고."

 

 모리는 손을 뻗어 감았던 눈을 슬며시 뜨고 후쿠자와의 턱선을 손가락 마디뼈로 긁어내렸다. 그와 동시에 구겨지는 얼굴은 어쩔 수 없이 익숙하면서도 당연스러운 현상이였다.

 

 "네 놈은 사람을 우롱하는 것도 작작,"

 

 "우롱이 아니라 진심이라면 어쩔텐가."

 

 "그런 걸 보고 세간에선 '우롱한다' 라고 일컫는다."

 

 "항상 그랬었지."

 

 얼굴을 뒤로 빼자 그의 손도 떨어져나갔다. 한껏 기지개를 켜며 고쳐 눕는 모리는 여전히 후쿠자와의 허벅지를 베곤 실없이 웃었다. 기껏해봐야 이제 하루가 지난 탓이였다.

 

 분명히 떠올리건데 치기어린 열병과 생소한 감각에 한 번 타기 시작한 마른 장작이 밑도 끝도 없이 타오르는 것과도 같았다. 

 누이는 단순한 동경이라 취급해버리고는 사람 홀리기 좋은 얼굴로 묘한 기를 띄우며 네가 좋다 라 하여도 별다를 것 없는 나날에 불과했다. 구색이 필요했다. 단지 그 뿐이였다.

 

 술이 들어가기 시작하면 어찌되었든 경계심이 누그러들기 마련이였다. 이만은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는 후쿠자와의 불가항력적 도리와도 같았다. 게다가 좋으나 싫으나 살을 맞대고 벗으로 삼아 짧게나마 지내왔으며 잘도 여는 입에선 제가 모르는 세상살이들이 흘러나왔다. 차갑게 식은 한 잔에 달이 조막만하게 세간살이로 들어서면 어디 그 뿐이겠는가, 분위기에 취해 연거푸 들이킨게 화근이였다.

 

 "자네, 누이를 어찌 그리 아낀단 말인가."

 

 "-어머니가 병석에 누운게 나를 낳고 난 후였고, 카나타는 열 달도 다 채우지 못해 죽을거라 했었지. 누님은 장녀시고 이러니 저러니 해도 집안 도리에서 어긋나지도 않으니- 조부께서 아끼시기도 하는 터고,"

 

 한 마디로 결착을 지으리라 생각한 모리로서는 예상치도 못한 답이 쏟아져나오기 시작했고 깨달았을 때 후쿠자와는 이미 꼭대기까지 열이 오른 상태였다.

 

 "어른들 말씀처럼 내가 죽었어야 했네. 어머니가 아니라 내가-."

 

 "자네 어머니는 지병이시지 않는가."

 

 "나 때문에 얻으신게지."

 

 감쪽같이 달의 반이 사그라들어버렸다.

 

 "아버지 말씀으론 몸의 기가 약하시다 하셨다만."

 

 "그 기가 약하면 정신이 혼란하실 때도 있는가."

 

 "있을지도 모르지."

 

 "나를 배셨을 때, 스스로 강에 몸을 던지셨다 들었다."

 

 내려앉았던 시선이 떠올랐다. 들었던 잔을 내리고 잡되게 안을 헤집어 갈비뼈 아래의 언저리 즈음에 낙인마냥 주욱- 길게 교차로 그인 흉이 보였다. 환락에라도 빠져든 양 후쿠자와는 소리높여 웃었다. 처음이였다.

 

 "유년부터 가까이 두질 않으셨고 내 열 살이 되던 해에 은장도로 찌르셨네. 죽으라 하셨지."

 

 헤집어진 옷가지를 정리하지도 않은 채 남은 잔을 비워냈다. 고개를 떨구었다. 자네 괜찮은가.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지만 흉이 날개를 접은 나비와 같다고 떠올렸다.

 

 "누이만- 내가 살아야된다 말해주었다. 그만두려던 나에게 살아도 좋다고 말해준 유일한 사람이다."

 

 살고싶었다. 작게 중얼거렸다. 잔 안에 바다가 끓어올랐고 그 안에 하얀 달이 몸을 내던졌다. 한 방울의 파도가 울렸다.

 

 "모처럼이니 나도 큰 이야기나 해봐야 겠군."

 

 모리는 술잔의 아래를 손끝으로 치며 장단이라도 맞추는 것 같았다.

 

 "난 아버지를 죽였네."

 

 "-지금의 아버지는,"

 

 "양 아버지일세. 타고난 술꾼이라고 해야할까, 술만 들어갔다 하면 사람 하나를 죽여야 말끔해지곤 했지. 내 죽기 싫어 죽였네."

 

목을 엄지로 슬그머니 그어보이며 아무것도 아니라 한입거리 이야기를 털어놓고 잔을 한 입에 털어넣었다. 

 

 "아버지, 인가."

 

 "자네도 아버지와는 그리 살가운 사이는 아닐터고. 뭣하면 보내드릴 수는 있다만." 

 

 그러고보니 게 어디냐- 아랫지방 아가씨라는 모양이더군. 자네 혼사. 시선이 느껴지자 손을 내저어보였다. 주워들은 얘기일세. 녹록찮은 감상에 젖은 듯 후쿠자와는 더 이상 잔에 손을 뻗지 않았다. 후쿠자와 가(家)의 본가는 도쿄에 있으며 시집 든 윗 누이 역시 도쿄 근방에 자리잡고 있다. 아랫지방이라 한다면 영영 선을 그어버릴 셈이 틀림없었다. 집안 구석에 있어봐야 걸치적거린다 외마디만을 내놓을 것이고 눈엣가시나 다름없었다. 본 부인의 자식이라는 위치가 그러했다.

 

 "때 아닌 반항도 좋은 법이지."

 

 열오른 뺨에 닿는 식은 손길은 기분 좋은 것이였다. 자연스레 이끌려 자각하기도 전에 수치라는 것을 죄다 잊고 본능에 울었다. 간간이 낮게 들려오는 이름에 속세를 잠시 놓았다. 붉게 수놓자 나비는 날개를 가졌다. 뜨겁게도 몸을 갈랐고 거부할 이유는 없었다. 모리의 말 그대로 였다. 때 아닌 반항에 불과했다.

 

 살아가게, 유키치.

 

 새벽녘 느릿하게 눈을 감았다 뜨기를 반복하며 후쿠자와는 가시지 않은 전율을 가만히 받아들였다. 구실이 어찌되어도 좋았다. 괴리감보단 오히려 안정감이 들었다. 이제껏 붕 떠있기만 했었다 느꼈던 불완전한 감각이 사라졌다. 인정치 않고 싶었던 부분이였다. 모든 걸 멀찍이서 바라보는 아버지. 자식더러 죽음을 선사하며 울부짖던 어머니와 제가 가지지 못한 모든 것을 가진 누이. 모두가 증오의 대상에 불과했다. 일말의 배덕감조차 들지 않았다. 온 집안 구석이 그랬다. 한두 푼의 푼돈에 사람이 죽어나가기 일쑤였고 윗 누이는 일찌감치 그런 정세를 떠난 것이였다. 의미를 알 수 없는 말들이 다 그런 것이였다. 어서 예를 빠져나가라며, 단련을 소홀치 말라며. 날 선 칼날 위를 걷고 있음에 깨닫지 못한게 한스러울 뿐이였다.

 

 "좀 더 자두는 편이 좋지 않은가."

 

 "본가로 돌아가야한다."

 

힘없이 어깨를 잡아당겨져 도로 눕자 어지러운 머리칼을 쓸어주었다.

 

 "전장으로 돌아가는건가. 누이를 위해?"

 

 "내 확인해야할게 있네."

 

 "그렇다면 가야겠군. 한 몫 거들어 주겠네."

 

 사양마시게. 이번만큼은 않겠다. 후쿠자와는 윗 누이가 이르게 사람을 시켜 보내온 편지를 구겼다. 돌아가지 말라는 당부였다.

 

-

 

 대문을 들어서자 이미 비린내가 섞여들어있었다. 저도 모르게 소매를 들어 가리며 제법 조심스레 안으로 들어섰다. 몇 걸음 가지 않아 사체들이 곳곳에 널려있었다. 난도질 되어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것들이 대부분이였다. 참극이나 다름없었다. 깨진 기왓장에 미닫이는 깔끔히도 반이 잘려나가버렸고 다다미마다 붉게 물들어 있었다. 안채를 다 돌았지만 산 사람의 흔적은 남아있지 않았다. 급히 비극을 피한 듯이 여기저기 널부러진 병상의 것에 후쿠자와는 미련없이 별채로 향했다.

 

 "도, 도련님..!"

 

 "-무사했느냐."

 

 "다행히죠. 주인 어른께서는 동관으로, 가셨습니다. 그리고 이거."

 

 별채의 시중인 그녀는 끌어안다시피 하고 있던 검을 꺼들내며 후쿠자와에게 건냈다. 칼집에 유혈이 짙게 묻어났다.

 

 "별채가 타버렸습니다. 그래서, 이것 만이라도.."

 

 "더 말하지 말거라."

 

 "도련님. 아씨가, 아씨가- 위험합니다. 가까이 가지 마세요."

 

 질척이며 살결로 옮겨지는 유혈에도 후쿠자와는 아무 말이 없었다. 예는 위험하다. 늙은 시종은 도련님의 손을 깊게 잡고 고개를 주억였다. 울고 있었다. 조심하셔야 합니다.

 

 "누이가 동경이라 했었던가."

 

 "동경이지. 저렇게 날뛸 수 있는 재능이란건 실로 무서운 법이야."

 

 아직도 목으로 모든게 빠져나가던 한심하기 짝이 없던 모습이 잊혀지질 않네. 좀 더 마무리 지었다면 좋았을텐데. 언제나와 같은 얼굴이였다. 모리 오가이는 그런 사람이였다. 매캐한 연기와 함께 솟아오르는 별채의 불길에 마주한 모습이 형편없어 보였다.

 

 "언제부터 알고 있었나."

 

 "어렴풋이 처음부터랄까."

 

 "-아."

 

 "미워하지말게. 말했더라도 좋을 것도 없었잖나." 

 

 별채의 마당으로 들어서자 후회의 연속이였다. 짓밟힌 흔적만이 가득한 못 앞에 제가 선물이라며 내밀었던 붉은 비단의 유카타를 입고 곱게 머리를 묶어올려 머리장식까지 매단 누이가 있었다. 평소에 불평하던것 처럼 답답하다며 맨발인 채에 게다를 신고 있었다. 막 발을 디뎠을 뿐인데 그녀는 천천히 뒤를 돌아보았다.

 

 "오라버니들. 잘 다녀오셨어요."

 

 "덕분에 랄까."

 

 "온다고 기별이라도 하셨으면 마중 나갔을텐데 섭하네요."

 

 "급하게 온거라 말이지."

 

"좀 전부터 유키치 오라버니는 왜 아무 말씀도 안하시나요. 어디 편찮기라도 하십니까?"

 

 "조-금. 잠을 못잔 모양이더군."

 

 "그럼 안되죠. 보시다시피 별채가 간밤에 타버리는 바람에-."

 

 "카나타. 어머니는 어디 계시냐."

 

 "어머니라 하시면, 하루 종일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서 누워있던 안채의 여자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 여자라면 죽었습니다."

 

 반 쯤 돌아선 그녀의 시선을 식어있었다. 온전히 돌아서자 그늘진 아래가 유카타의 색과 빼닮아있었다. 앞으로 내딛는 걸음을 모리가 막았다.

 

 "광기다."

 

 "오라버니는 잘도 그런 사람더러 '어머니' 라고 부르시네요. 불결하기 짝이 없는걸."

 

 "-언행이 나빠졌구나."

 

 "그건 돼지들이겠죠. 잠깐의 권력에 눈 돌아간 꼴들 하고는. 우습네요. 오라버니- 알고는 계셨나요. 오라버니가 그리도 극진히 모셔온 것들은 정작 당신을 죽일 생각 밖에 하지 않다는 사실을요. 알고 있으시냔 말입니다!!"

 

 "그게- 어머니를 살해한 이유냐."

 

 "네. 오라버니를 멸시하던 것들은 마땅히 죽어야합니다."

 

 후쿠자와는 저를 가로막던 팔을 밀어냈다. 다급하게 붙잡아 오는 손길에 살며시 입가를 끌어올려 보이며 모리의 가슴팍에 손을 얹었다. 괜찮네. 심각해보이는 상황과는 무엇하나 어울릴리가 만무했지만 수려하다고 떠올렸다. 큰 동요를 보이지 않는 걸음으로 당장 누이의 앞에 나선 그는 보란듯 검을 떨구었다.

 

 "유키치!"

 

 "뭐하는건가요, 오라버니."

 

 "알다시피 내게는 이능력이 없다."

 

 "알고 있습니다."

 

 "다룰 줄 아는 것도 검 하나 뿐이다."

 

 "알고 있다 하였습니다."

 

 "한 걸음도 움직이지 않겠다."

 

 카나타는 오른 손목을 반대손으로 그러쥐고 그런 그녀의 오라버니를 바라보았다. 두 팔을 벌린게 전장에선 생을 마감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날 죽여라."

 

 "오라버니. 제가 오라버니를 멸시하던 것들을 모두 없애버렸습니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그 옆에서 푼돈이라도 더 받아먹으려는 더러운 것들까지도요! 한낱의 아랫것들이 감히 무어라 하는 것도- 다, 전부 다! 죄다 죽였다고요!!"

 

 "그러니 나 역시 죽여라."

 

 "어째서, 어째서..오라버닌 절 사랑하지 않으십니까."

 

 "그게 너에게 해가 되었다면 내가 나서야 할테지."

 

 "제가 어찌 오라버니를 죽일 수 있을거라 생각하신단 말입니까, 감히 제가!"

 

 "네가 하지 못한다면-"

 

 후쿠자와는 품 안의 은장도를 집어들어 목의 언저리에 가져다대는 순간- 멈췄다. 헛웃음이 났다. 붙잡힌 팔이 그대로 붙들려 찢겨나갈 것만 같았다. 그대로 뼈가 뭉개질 것만 같았다. 거대하고 흉측스런 모습을 하얀 가면으로 가린 오니였다. 가면의 구멍 사이로 파아란 도깨비 불 같은 눈이 일렁였다. 잡아먹을 셈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오라버니는 절 사랑하시잖아요!"

 

 "어디까지나- 가족의 유대다."

 

 "그 유대란게 얼마나 대단하길래 부모가 자식을 죽이려든단 말이,"

 

 "적당히 해두는 어떨까- 카나타 양."

 

 군더더기 따위 없었다. 살기도 없이 그녀가 후쿠자와에게 온 정신을 쏟고 있을 때 손 안에 들어오는 메스로 뒷목을 슬며시 그었다. 긴 직선에 핏방울이 맺히다 등 아래로 굴러 떨어졌다. 얕은 상처였지만 후쿠자와는 주박에서 풀려날 수 있었고 그녀는 기묘한 미소를 보이는 모리를 비웃었다.

 

 "그깟 메스로 뭘 할 수 있단 말이예요."

 

 "적어도 유키치를 구해줄 수 있지."

 

 "당신은 아무것도 몰라요."

 

 "맞아. 난 아무것도 몰라. 그런데 네 년이 죽어야한다는 사실은 잘- 알겠어."

 

 후쿠자와가 엇나간 듯한 팔을 움켜쥐며 검을 도로 쥘 무렵 그녀는 볼품없이 쓰러져버렸다. 찰나의 순간이였다. 눈 앞이 흐릿해졌다. 시선의 끝엔 모리가 있었다.

 

 "유키치, 마무리는 자네가 하는게 좋겠네."

 

 "무슨-"

 

 "아끼는 누이잖아."

 

 어서. 칼집을 집어던지며 날 선 검을 손에 쥐여주며 말했다. 무릎을 굽히고 맞춘 시선이 그리 무서운 줄 몰랐다. 그는- 웃고 있었다. 후쿠자와의 힘없이 검을 쥔 손을 모리는 대련마냥 자세를 고쳐주며 카나타의 명치 언저리에 놓아주었다. 손이 떨렸다. 간단해. 그냥-

 

 "이렇게."

 

 직접 살갗이 닿은 것도 아니였다. 그저 얄팍한 금속을 타고 올라오는 살인의 감각은 유쾌하지 못했다. 뼈도 없는 부근이였는지 부드럽게 날이 들어갔다. 연회 준비로 바쁜 부엌에서도 봐왔던 광경이 제 손에 이루어졌다. 실없이 웃던 모리는 여전히 떨리는 후쿠자와의 손을 놓아주었다. 유감스럽게도 다정하게 굴었다. 어깨를 감싸고 다독이며 말했다. 울지마. 그제야 깨달은 자신이 울고 있다는 사실에 거짓말처럼 피로 물든 손으로 눈가를 닦아내자 모리는 하얀 손수건을 꺼내 자국까지 지워주었다. 

 

 후쿠자와는 정신을 잃었다.

 

-

 

 "유키치."

 

 "-누님."

 

 후쿠자와가 제정신이 든건 언젠지 조차 확실하지 않았다. 그의 검을 챙겨주었던 시종이 윗 누이에게 서신을 보내었고 가까운만큼 바삐 달려와준 것이였다. 누이의 말로는 그는 꼬박 사흘내리 깨어나지 않았고 그 사이 별채는 잿더미가 되어버린지 오래였으며 카나타는 이미 사후경직으로 몸이 굳어있었다. 집안 곳곳에 숨어있던 시종 몇몇과 그 날 본가를 비운 사람들만이 난을 피했다.

 

 "쓰러져 있는 널 발견해서 급히 데려왔으니 망정이지 아니였으면 별채와 같이 탈 뻔 했구나."

 

 "다른 사람은 못보셨습니까."

 

 "사람이라고 한다면, 너와 카나타 뿐이였다."

 

 "그렇습니까."

 

 "팔과 어깨의 이음새가 어긋나 맞추었다고 들었고, 불편한게냐."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어머니를 봐주시던 의원분도 난에 휘말리셨다 하였는데 그 아들이 혹여나 하여 주소를 남기고 갔으니 불편하다면 예로 불러주겠다."

 

 "살아있습니까, 그 아들."

 

 "아버지 심부름으로 내려갔다 화를 면했다더라. 헌데-."

 

 "무슨 일이라도 있으신겁니까."

 

 "의원분의 사체도 타버렸단 말이지. 별채의 불씨가 안채까지 옮겨 조금 탔다만 목에 의도적으로 그어놓은게 보여서 말이다."

 

 누이는 검지의 손톱으로 목에 긴 수평선을 그어보이며 의심쩍은 듯 말을 이어나갔다. 후쿠자와는 마른침을 삼켰다. 녀석의 소행이 틀림없었다.

 

 "골 아픈 이야기지. 더불어 네 혼사도 꼬여버린 모양이고- 장례에, 남은 어른들과 당주 문제도 다뤄야하니 벌써부터 지끈거리는구나."

 

 "누님. 혼사라면 그만두겠습니다."

 

 "난 찬성한다만 영감들과는 알아서 하거라."

 

 "예."

 

 "차피 그 쪽도 이런 화가 난 집안의 아들에게 귀히 키운 딸내미를 내어줄만큼 배짱이 있지도 아닐할 터이니."

 

 "누님이 하십시오, 당주."

 

 "유키치, 네 어릴 적부터 욕심이 없단건 알고 있지만 당주를 내어줄만큼 녹록한 사네는 아닐텐데 말이다."

 

 "이 집안에서 벗어나고 싶습니다."

 

 "진심인게로구나."

 

 누이의 붉은 하오리가 눈에 거슬렸다. 아직도 남은 감촉에 몰려오는 자괴감이 컸다. 사실은 두려웠다. 사람을, 가족을, 누이를 제 손으로 죽여버렸다는 배덕감이 아닌 녀석에게 흔들렸다는 사실이 무엇보다 목을 죄어왔다. 해방이 아닌 또 다른 감금에 다름없었다. 간사하기 짝이 없었다.

 

 "윗 선에서 이 일은 타협 볼 요량인 듯 하니 그냥 가거라."

 

 "누님은 살고 싶었던 적이 있으십니까."

 

 살풋 웃었다. 없을리가 없지 않느냐. 당연한 소리였다.

 

 누이의 말대로 별다른 조사를 이루어지지 않았다. 분명 뒷돈이 오고간 흔적이 틀림없었다. 그는 아무래도 좋았다. 이능 특무과에서 다녀간 사람은 누이와 시종들에게서 면담을 가진 후 후쿠자와 카나타의 이능력 폭주로 사건을 마무리 지었다. 한 마디도 입을 떼지말라는 누이의 엄한 지시에 따라 -애초에 특무과 사람을 만나지 못하게 하였다.- 안채에 어머니 마냥 누워만 있었다. 안이한 편안함은 도리어 사람을 죽게끔 하고 싶게했다. 결국 예정보다 바삐 짐을 꾸려 본가를 떠나기로 했다. 다 죽어가는 패잔병 꼴을 하고 있으니 얼른 나가버리라는 한 소리를 겻들어 늦여름, 조금은 쌀쌀해진 밤 후쿠자와는 떠났다.

 

 "유키치 네 놈은 사람 위에 설 재량이 되지 못한다."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어디가서 그 재량이나 양껏 뽐내거라."

 

 매몰차기 그지없는 누이였다. 자상하거나 상냥한 말투도 아니였을 뿐더러 제 할말만을 마치자 홱 돌아서고 마는 것이였다. 다만 방황하던 그 한 마디가 목적지를 정해주었다. 아니, 사실 처음부터 그럴 요량이였을지도 모른다. 그는 이미 한참 멀어진 누이를 향해 깊게 허리를 숙여 인사를 건냈다. 그럼.

 

 지체없이 향했다. 이유가 어찌되었든 큰 문젯거리가 되지 않았다. 너스레 할 짓은 아니였지만 회피한다면 팔다리를 잘라내어 붙잡고라도 물어보아야할 것이 있었다.

 

시즈오카 현의 끝자락, 도시 외곽의 벽돌 공장에서 찍어낸 듯한 서양식 건물들이 나란히 붙어있었다. 두어 차례 후쿠자와는 주소를 확인하고 현관문의 옆 초인종을 울렸다. 얼마안되어 문이 열리더니 그립다못해 간사하기 뻔뻔한 얼굴이 드러났다.

 

 "드문 손님이로군."

 

 얼굴 안색을 살피더니 모리는 문을 열어 후쿠자와를 맞이했다. 들어오게나. 망설임없이 들어선 집 안은 다름아닌 품 안이였다.

 

 "궁색한 장난은 그만둬라."

 

 "보고싶었다는 애정표현이라고 정정해주겠나."

 

 평온하다못해 지루해보이기 짝이 없는 얼굴이 일그러지자 그제서야 놓아주며 더 이상의 그럴 의사가 없다는 것을 보여주며 두 손을 들어보였다. 차라도 내오겠다며 안쪽으로 들어선 모리는 후쿠자와의 등을 떠밀어 2층으로 향하는 층계로 몰았다. 그는 위를 바라보다 벽면에 기대 지난 후회를 되새겼다. 범을 잡으려거든 범의 굴로 가라하였건만 이건 굴이 아니라 아가미 속에 제 발로 걸어들어온 모양이였다. 어딘가 미심쩍인 감정이 일렁였다. 

 

 "올라가지 않고 뭐하나."

 

 고개를 들자 유리잔 가득 채워진 물이 보였다. 눈치 챈 모리는 키득거리며 눈 앞에 컵을 흔들어보였다. 보기좋게 불이 들어오지 않는 모양인지라. 여전한 사네였다. 올라가세. 한 걸음을 내딛자 모리는 만족스레 입꼬리를 말아올리며 현관문을 걸어잠그곤 후쿠자와의 뒤를 따랐다. 불이 켜지지 않아 어두운 복도임에 모리가 올라오기를 기다리자 자연스레 허리를 감싸고 안쪽으로 데려갔다. 왼쪽 방으로 후쿠자와를 밀어넣더니 협탁 위의 스탠드 하나 키는게 고작이였다. 그런 그의 동선을 따라 후쿠자와의 시선이 따라갔다. 모리는 후쿠자와에게 한 잔의 물을 권했다.

 

 "물어볼게 있다."

 

 "이 까지 찾아올 정도면 필시 그 날의 일이겠군."

 

 "그렇다."

 

 "우선 이거 마시고, 진정하고 질문은 그 다음인걸로 하자고."

 

 연유만만한게 질색이였다. 그에게서 빼앗아 든 물따위 한 입에 털어넣고 협탁에 컵을 내려놓았다. 모리는 그런 그를 침대 위로 쓰러지는 양 앉아 지켜보았다. 그리곤 제 옆을 손으로 두어번 내리치더니 앉으라 했다.

 

 "그 질문이란건 많은 편인가."

 

 "그럴지도 모른다."

 

 "그럼, 뭐."

 

 "그 날 왜 사라진건가."

 

 "내가 그 자리에 있어봐야 좋을 것도 없고 자네의 안전을 위해 누이되는 사람에게 도움도 청했으니 된 일 아닌가."

 

 "아버지는, 양 아버지는 또 다시 죽인거냐."

 

 "아버지라, 답할 가치가 없군."

 

 "자네가 죽인거로군, 어째선가."

 

 "내가 죽였다는 추론은 좋다만 확증이 있는건 아닐텐데. 게다가 난 더 이상 자네의 질문에 답해줄 마음이 없네."

 

 "...무얼 바라느냐."

 

 "이해가 빨라서 좋지. 자네는 나의 답을 원하니 나도 자네에게서 내가 원하는 것을 얻어가야 수지가 맞지 않은가."

 

 이런 류의 이해관계가 썩 유쾌치 못했지만 합리적이라는 것은 인정하는 사실이였다. 후쿠자와는 가만히 고개를 주억였다. 모리는 골똘히 생각하는 양 고심하는 척을 선보였다. 마주한 후쿠자와를 흘겨보더니 이내 만족스러운 미소를 내걸었다. 이게 좋겠네. 깨달은 틈도 없이 잡아당겨져 후쿠자와를 농락했다. 깊게도 아닌 그저 잠깐 타액을 섞곤 허리께를 지분거리며 경박한 소리를 내며 떨어진 입술로 말했다.

 

 "하나로 받도록 하지."

 

 실로 기분 나쁜 사네였다. 태연한 얼굴에 짜증이 치밀러올랐다.

 

 "의원의 목에 네 놈의 장난질과 같은 선이 있었다. 안채에 난 화재에 일어난 화상에 가려진 절상이였지."

 

 "그거야 당연하지. 누이 때 봤었으니 잘 알테고."

 

 "왜 죽인것이냐."

 

 허리선을 타고 내리는 감촉이 유카타 너머로 생생했다. 다른 손은 유카타 옷깃 사이를 벌려 안에 목덜미를 약하게 물었다. 저절로 뒤로 젖혀지는 고개에 모리는 뒷목을 받치고 재차 물어 잇자국을 남겼다.

 

 "이제 쓸모없는 존재니 제 역할을 다한 셈이지. 더는 필요없어 죽였네."

 

 상체가 거의 다 보이도록 벌려놓은게 그닥 소용없어 보였다. 안으로 침범한 손길이 어깻죽지부터 갈비뼈를 지나 허리까지 쓸어내리자 후쿠자와는 미약하게 앓아야 했다. 쇄골 부근을 물었다 훑기를 반복하더니 후쿠자와의 위로 올라앉더니 이마를 맞대었다.

 

 "자네에겐 마지막 질문이 남았지 않은가."

 

 "-구실이 필요했던게지."

 

 소리 죽여 웃으며 눈을 마주했다.

 

 "어차피 이리 될 줄 알고 있었을텐데, 유키치. 게다가 자네가 듣고 싶은건 결국 마지막 질문이 아닌가."

 

 "이래서 네 놈이 싫다."

 

 "이런 격한 감정 표현은 처음이군. 나야 어느 편이든 환영이지만 맨정신에 괜찮겠나."

 

 "각오했던 일이다."

 

 "대범해졌군."

 

 후쿠자와는 떠올렸다. 그 눈이 죽은 누이의 오니와 닮아있다고.

 

-

 

 만연의 본능을 온 몸으로 받아들이고 깨는 이성이란 '자살충동' 을 일으키고 마는 것이였다. 수치를 잊은지는 오래라 했건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닌 모양이였다. 어리석은 질문 하나에 제 몸을 팔았다는, 우매한 자신 덕택에 다른 사람도 아닌 모리 오가이와 몸을 섞었다는 배덕감이 아닌 안겼을 때 울어버렸다는 그닥 의미가 부족한 자존심이였다. 잘도 이런 일을 벌여놓고는 세상만사가 편해보이는 모리였다. 모리는 후쿠자와가 좋다고 했다. 은근히 제 애정을 과시해온 것은 명백한 사실이나 어젯밤 처럼 꺼리지 않고 내놓은 일은 또 둘만의 이야기였다. 처음이 취기에 달해 여차저차 엉망이였다면 다음은 욕심과 탐욕, 쾌락의 어디 쯤에 있었다. 본능이란게 그리 무서운 것이였다. 후쿠자와가 인정하는 바였다. 허리가 아팠다. 술의 힘을 빌린 것도 아닌 터무니 없는 제 배짱이였다. 어쩌면 한 잔 걸치는 편이 좋았을지도 모르는 일이였다. 추태를 조금이나마 잊을 수단이 되어줄지도 몰랐지만 모리를 상대로는 좋은 전법은 아닌 듯 했다. 알코올이 들어갔던 아니던 간에 연달아 몇 번이고 저를 안았을거라는 점을 바뀌지 않을 기정사실에 입각해있었다. 모리는 처음부터 그럴 요량이였겠지만 일이 이리로 흘러간게 제 책임이 없다기엔 저질러 놓은게 너무 컸다. 사람 감정이란게 그랬다. 일방적이다만 제가 좋다는 상대와 낯 뜨거운 행위를 가지면서 낮게 이름을 불리며 연모한다 라는 말을 듣는다는게 그런건지도 몰랐다.

 

 "좀 더 자두는 편이 좋지 않은가."

 

 어디서 들어본 대사였다. 후쿠자와는 기꺼이 도로 누웠다.

 

 "답을 아직 듣지 못했다."

 

 "두 가지라고 말해두겠네. 자네는 누이의 그림자에 살고 있는 꼴이였지. 헌신적인 사랑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난 아니라고 보네. 주박이나 다름없었다고. 그 하나에 매달려 네 자신은 돌아보지도 않은 채로- 이미 죽어있었네."

 

 "이미 죽어있었다, 인가."

 

 "살고 싶다고 나에게 말했던 적이 있었지. 자네가 살기 위해 누이의 죽음은 하나의 원인이자 계기이고 내 바램이였지."

 

 "..다른 하나 역시 대가를 치뤄야하는가."

 

 "그건 잠시 미뤄두기로 하지. 자네 시집갔다는 누님은 알고 계셨던 모양이다만- 자네는 이능력자네."

 

 후쿠자와는 불현듯 집을 떠나오기 전 누이가 건냈던 말이 떠올랐다. 사람 위에 설 재량이 없다.

 

 "자네 검을 품고 있던 시종과 다시 만났을 적에 자네 걱정을 하더군. 큰 아씨가 우려하던 일이 일어났다면서 말이야. 자네가 작은 누이의 폭주를 막아주고 있었는데 그녀의 증오가 기폭제가 되면서 일이 터진거지."

 

 "난 별달리 능력이-"

 

 "자네 능력은 타인의 능력을 제어해주는 역할인 셈이지."

 

 역시 후쿠자와 가(家)의 장남이로군. 모리는 중얼거렸다. 누님은 모든 것을 알고 계셨으면서 무엇 하나 알려주지 않으셨다. 되내이자 서글픈 말이였다. 하지만 납득이 갔다.

 

 "그럼 대가를 받아가볼까."

 

 단념한 후쿠자와의 표정을 읽은 모리는 호탕하게 웃었다. 저와 같이 가줬으면 하는 바램이였지만 그것 만큼은 입 밖에 꺼내지 않았다. 무엇보다 저래보여도 자유분방한게 후쿠자와 스러웠고 같은 길을 걷기엔 여러모로 아까웠다.

 

 "말벗이나 되어주게."

 

 "골치아픈 대가로군."

 

 알겠다. 절대 모리의 특성상 단순한 '말벗'이 아니리란 것은 후쿠자와가 제일 잘 알고 있었다. 누군가 말했다. 유종의 미보다 눈 앞의 적을. 당장의 적도, 유종의 미도 죄다 헤쳐버릴 것만 같았다. 

 

 "자넨 이제 어쩔 셈인가. 여기 왔단 소린 당주도 포기했다는 것일텐데."

 

 "당주따위 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거야 그렇군."

 

 "육지는 진저리나니 바다가 좋겠네."

 

 "호오- 바다인가."

 

 "요코하마."

 

 "누님 때문인가."

 

 "마냥 떠안겨버렸으니."

 

 "고작 그 까지 가서 뭘 한단 말인가."

 

 "카나타 같은 아이들이 없었으면 한다."

 

 "자네도 상냥한 사람이야, 정말."

 

-

 

 "마침 제 시간- 이라하긴 좀 늦었군."

 

 "네 놈의 새까만 호의따위는 받을 생각없다."

 

 후쿠자와는 모리가 의자를 권하기도 전 하오리를 흩날리며 걸어와 맞은 편에 앉았다. 그 시절과는 다르게 제법 당돌해져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자네도 참 고지식한 사람일세."

 

 "고지식하니 돌아가보도록 하겠다."

 

 "사람이 농담을 농담으로 받질 못하니."

 

 포트 마피아의 보스가 대립관계에 서 있는 무장 탐정사의 사장과 변변치도 않은 대화를 하는 사실을 아는 것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포트 마피아에서도 간부 두어 명이 관여하는 일이였고 아래는 입단속 시키기엔 충분했다. 탐정사는 관심이 없다고 해도 무방했지만 의심 사는 것은 사절하고 싶었다. 모리는 몇 번 비워냈을지 모를 찬 잔을 내려놓으며 한탄했다.

 

 "얌전히 타고 왔더라면 좋았을 것을. 자네는 오는데만 해도 몇 시간인가."

 

 "불만이라면 네 놈의 행적부터 의심해보는걸 권하지."

 

 "불만사항이긴해도 상관은 없네. 대가는 톡톡히 받아내고 있으니."

 

 후쿠자와의 표현을 빌리자면 간사한 표정을 지어보이는 모리를 흘깃 보더니 찻 잎이 선 잔을 한참이고 내려다보았다. 좋은 일이라-. 외투를 벗는 모리에 한 마디를 거들었다.

 

 "여기서는 사양이다."

 

 "제법 운치있고 좋지 않은가."

 

 "전처럼 네 수하가 도중에 쳐들어오는건 사양이다."

 

 "아아- 아직 마음에 담아두고 있었단 말인가. 잘 해결했다고 말했을 터인데."

 

 "해결이라 해봐야- 근본적인 문제에 관심은 없는 모양이군."

 

 "근본적이라 하면, 그건 문제가 아니지."

 

 "네 놈과 말로 하는건 지쳤다."

 

 후쿠자와는 건들이지도 않은 차를 내려보다 모리를 따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말벗이니 뭐니 결국은 이리 될 줄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모리는 그의 넓은 상층 방의 불을 껐다. 정정하자면 창을 막았다. 가장 오른 편의 구석에 나무 무늬가 살아있는 문을 열었다. 후쿠자와는 방으로 내딛으며 하오리를 끌어내렸다.

 

 "실로 골치 아픈 대가로군."

 

 "예나 지금이나 표현 못하는건 여전하군, 유키치."

 

문이 닫히고 안에서 걸어잠그는 소리가 났다.

 

-

 

 

 

이게 뭐라고, 이게 뭐라고!!! 꼬박 3일에 걸쳐서 썼..

 

나레기 일복 터짐각인데, 얘네가 너무 오래 걸려서 신쌍흑 아가들 언제 쓰닠ㅋㅋㅋ

 

얘네 소개해준 장본인에게 책임지라고 하고싶지만

 

왜!!!!!!!!111 1일 1연성하라고 이 자식 크흑-

 

이래저래 힘들었으면 힘들었고 재밌었으며 재밌는 작업이였달까

 

나름 즐겼으니 그걸로 만족하련다..

 

과거 조작이 굉장하지만 이게 한계였다..나렉))

 

여튼 끝났다 워후!!!!!! (ㅍㅁㅍ)9 욧샤-

 

눈매 더러워 ㅋㅋㅋㅋㅋㅋㅋㅋㅋ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