뚜이 (님) 리퀘스트 가 아닌 생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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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키타 소고, 열 아홉. 화풍이 독특하기로 소문났다. 그러니 호불호가 격하게 벌어지는 그런 류에 속하기도 했다. 당연한 일이였다. 사람은 누구든지 새로운 것을 추구하거나 옛 것을 간직하려드는 법이니 말이다. 그의 그림에서는 형체를 찾아볼 수 없었다. 매번 형형색색만이 흩뿌려진 것이 전부였다. 무엇 하나를 표현해내는 것은 오로지 색 뿐이였다. 곧잘 위험한 발언도 해대는 녀석이였지만 단 한 가지만은 굳게 입을 닫아버렸다.

 

 "색으로 표현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글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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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이, 콘도씨가 부른다고."

 

 작업실의 구석에 웅크리고는 두 손을 빤히 내려다 보던 소고에게는 들은 척 조차 용납되지 않는 듯 보였다. 어이-, 사람이 부르면 반응을 해야할거 아니야. 거참. 히지카타의 중얼거림과 함께 소고는 두 손을 털고 일어났다. 몇 날이고 밤을 샌 탓이겠지만 그렇다고 하여 평소 그리 살가운 인상의 소유자가 아니였음에 히지카타는 괜시리 흠칫하고 눈가의 주름이 잡혔다 사라졌다. 급하게 작업실을 나서는 바쁜 그를 붙잡았다.

 

 "야."

 

 "..뭔데요."

 

 "택배왔더라. 가져가라."

 

 역겹다는 듯 인상을 구기며 잡힌 손목을 세게 빼내어 메만지며 걸음을 재촉하는 그였다. 마른 입술을 축였다. 마침 색이 떨어져버린 탓에 작업의 한창에 멈춰야만 했었다. 그 부분이 영 석연찮았기 때문에 제때 도착한 제 물건에 안도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시간에 쫓기고 있을 따름이였다. 바빠 죽겠다고, 이쪽은. 이를 갈며 미닫이 문을 세차게 열자 익숙하다는 듯 웃으며 반기는 콘도가 있었다. 오, 소고. 얼른 여기 와, 앉아 봐. 앉아. 무슨 일인데요. 별 건 아니고- 그럼 갈게요. 중요하다고! 그리고 이어지는 한참의 눈싸움. 항상 져주는건 콘도였다. 애초부터 그런 사람이였다. 욕심내서 그러려면 충분히 그럴 수 있었음에도 가만히 기다려주는 사람. 작업 바쁠텐데 불러서 미안하다. 소고는 긴 소매를 휘적이며 소파 등에 몸을 묻으며 가만히 눈을 감았다. 굳이 보지 않아도 뻔히 보일 저 사람의 얼굴에 피식 웃음이 비집고 나왔다. 나이 어린 애송이 상대로 뭘 그렇게 매사에 진지한건지 아직도 이해할 수 없었다. 다만 한 가지만은 확실했다. 그런 사람이기 때문에 기꺼이 저를 받아준 것이라고. 소고는 자기 입으로 말하기도 무르지 않다. 그런 상대가 있다면 일순위는 혈족되시는 누나. 그 다음을 장식하는 분이 콘도 되시겠다. 정정하자면 일순위란건 이제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 정도. 몇 해 전 지병이 돋으면서 이래저래 합병이 겹쳐져 그 작은 몸뚱아리에 다 담지 못한 채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 공백기의 삶을 이어가게 도와준 장본인이니 무를 수 밖에 없는 노릇이였다.

 

 "이번 전시회 말인데, 토시로 파트까지 해도 될거 같아서 더 그리던가 아니면 2차로 미뤄뒀던 것들 까지 같이 전시해도 될거같아."

 

 "그 자식은 뭘 한다고 자식 파트를 빼요."

 

 "얼마 전에 개인 전시회 했잖아. 일부러 그 때부터 이번은 빠지기로 했었고 나한테 미리 얘기했어. 물론 너하고는 얘기가 안되있을 줄은 알았지만- 화 내지마!"

 

 "화 안났어요."

 

 "아..그래."

 

 "몇 장 더 필요해요."

 

 "열- 두어 점 정도."

 

 "전부 새로 안그려도 되죠."  

 

 "당연하지. 니 실력이 어디간다고."

 

 손도 대지 않은 차는 식어버렸다. 무심하게 자리에서 일어나는 소고에게 콘도의 시선이 따라붙었다. 미처 한 걸음도 떼지 못하고 소매를 거둬 주인을 기다린 잔을 들어 단숨에 비워냈다. 됐죠. 짧은 한 마디를 마무리로 소고를 작업실로 향했다. 그 잘난 '열 두어 점' 때문에 골 썩게 생겼으니 그 정도면 잘 참았노라 생각했다. 망할 자식. 중얼거리며 볼품없는 얇은 종이에 싸매여진 캔버스 여럿을 꺼냈다. 일거리가 늘었다는 생각보다 늦을지도 모른다는 초조함이 강했다. 바닥부터 벽까지 빼곡히 쌓은 최근 작업물에 절로 인상이 구겨졌다. 꼬박 두달하고 조금 더 남은 전시회 임에도 열 점 이상씩 그려내기엔 턱없이 부족할 뿐이였다. 

 유난히 소고의 전시회는 작게만 열었다. 크고 떠들썩하게 하는 갤러리가 아니였을 뿐 아니라 작가의 개인 의사가 반영된 것이였다. 조금 더 보고 싶다는 아쉬움이란 묘미를 남긴다 라고 평론가들은 잘들 떠들어대지만 혼자서들 북치고 장구치고 다 해먹으라며 고개를 내저었다. 마쳤다고 전시회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내지르며 뛰어다닐 상식에서 벗어난 사람은 없었지만 조용히 열고 싶다는 희망사항이였다. 그래서 대형 기획전 참여를 모두 거부하는 이유이기도 했다. 물론 덧붙이자면 거들먹거리는 자식들 그림 옆에 제 작품이 걸려있다는 것만으로 충분한 모욕과 수치라는 것이였다. 이 말은 그대로 출판될 예정이였으나 다음 인터뷰 타자였던 히지카타의 1차 검열에 걸려 세상의 빛을 보지 못했다. 더불어 콘도의 2차 검열로 그런 류의 발언들은 막혀버렸다.

 

 "야 내가 가져가랬지."

 

 "두고가지 그래요."

 

 "너 평소에 하던거 있으니까 그걸로 하면 될 줄 알았지."

 

 "전시회마다 컨셉 잡는건 왜 모르실까, 헛똑똑아."

 

 "열 두점 니가 다 안맡아도 되잖아."

 

 "뭐 그럼 잘나신 그 쪽께서 도로 회수해주시게."

 

 "쉰다고 했잖아. 할거 였으면 지금 노닥거리고 있겠냐."

 

 "네네. 잘났네요. 꺼져."

 

 "이것도 같이 왔더라."

 

 미닫이 문이 닫히고 그제서야 소고는 힘 준 어깨를 떨궜다. 이제껏 준비해온 컨셉과 상반된 컨셉으로 내어도 충분했지만 찝찝했기 때문이였다. 개인 소장인 갤러리인 만큼 전시회도 꾸준히 열고 있지만 냈던 그림을 또 낸다는 사실 자체가 스스로에게 용납되지 않는 부분이였다. 설사 그게 본래 제 파트가 아니였다는 사실에도 생각을 바꿀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프라이드 였고 철칙이였다.

 

 첫사랑.

 

 이번 전시회의 컨셉이였다. 단언컨데 이제껏 제 그림에 그런 감정을 담은 적은 없었다. 낯간지럽기도 했고 그다지 저와는 상관없기도 했다. 어쨋거나 그 이유가 어찌되었든 제 관심분야가 아니라는 점은 확실했다. 흔해빠진 여자 하나 덩렁 그려놓고 끝이다 하고 손을 놓고 싶지도 않았고 더군다나 그는 형체를 그리지 않았다. 그런 미묘함을 색으로 표현해내는게 오키타 소고 였지만 이러거나 저러거나 귀찮기 짝이 없는 얘기였다. 적당히 빨간색이나 캔버스에 뒤엎고 심장이니 뭐니 알아서들 떠들어대게 내버려두고 싶은 심정이였다. 평론가들이 제일 잘 하는 짓이잖아.

 머리를 헤집던 소고는 히지카타가 가져다준 소포로 몸을 돌렸다. 알게뭐야. 두 달이나 남았잖아. 두꺼운 소설책만한 크기의 상자를 갈라내자 보란듯이 자리한 것은 주황색 물감들이였다. 빼곡히 쌓인 물감들을 한참 바라보다 아직 제 손 끝에 남은 주황빛에 피식 웃음이 새어나왔다. 마저 작업할 수 있겠다. 복잡한 얘긴 잠시 미뤄두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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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황색으로 벌인 광란의 작업이 끝나자 그는 붓을 떨구었다. 사방에 색색이 튀었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그 편이 좋았다. 손등으로 턱선을 쓸어내렸다. 뜨거운 체온 사이로 식은 주황빛이 번지는 소리가 들렸다. 좋았다. 구석에 자리한 수도꼭지를 틀어 배수구 아래까지 색을 흘려보내었다. 그림에 해가 될까 작업실엔 보일러를 틀지 않기 때문에 덩달아 물까지 온수불능의 상태였다. 덕분에 사라진 색위에 시린 물방울이 맺혔다. 이걸로 끝났다. 제 파트의 메인은 끝을 매었지만 늘어난 파트 덕분에 욕짓거리를 올라왔지만 어둑한 방에 신경질적으로 슬리퍼를 끌며 스위치를 키자 두어번 깜빡이더니 환하게 밝히며 늦은 오후 내내 제가 저지른 현장을 적나라게 드러내주었다. 기꺼이 받아들이는 모습이였지만 담담했다. 기꺼이 라기보단 그저 일상에 불과했다. 6시를 조금 넘긴 시계를 한참바라보았다. 몇 시 였더라. 혼자 되내여도 소용없다는 사실을 알기에 씁쓸해진 소고는 짧게 기지개를 펴고는 물감들을 벽쪽에 밀어둔 사물함에 넣었다. 그 안은 온통 물감들이였다. 주황색. 조심스레 두손으로 닫고 이마를 박았다. 이마께가 시렸다. 저녁을 위해 발걸음을 돌리다 발치에 체이는 종이를 사그락하고 주워들었다. 수신인 뿐인 악질적인 편지라면 곤욕스럽긴 하지만 마지막 한 마디까지 지옥이나 가라고 열심히 써주시는 어디 사는 열혈팬들을 생각하며 작은 조소를 흘렸다. 그리고 그의 예상과 다르게 하얀 봉투에서 떨어진 것은 티켓 뿐이였다. 이 기지배가. 보란듯이 미간이 구겨지더니 휴대전화를 꺼내들었다. 익숙한 번호를 누르기 시작할 즈음 화면을 잠궈버렸다. 나름대로 생각따위 있을리가 없으니 넘어가자는 행위에 가까웠다.

 

 8시 40분 시작. 넉넉한 시간과 졸지에 두 자리나 차지할 수 있게된 좌석부자가 되어버렸다. 쓸모없는 짓만 골라서 하지, 이 기집애는. 모처럼의 VIP 석인 모양이였다. 제 예매는 3층이니 엄지 손톱만하게 보일게 뻔했다. 공짜로 좋은 자리라니 사양할 필요는 없었지만 모처럼 3층의 A열의 중간석을 사수했던 수고가 사라지는 것은 거부할 것이였다. 찬찬히 티켓을 다시 살피며 2층으로 올라갔다.

 

 "아, 오늘 작업 다 하셨어요?"

 

 "어."

 

 "전 남았는데 말이죠."

 

 "힘내라."

 

 "그러고보니 히지카타 씨 파트까지 하신다면서요."

 

 "니가 할래, 야마자키. 귀찮은데."

 

 "무슨 말씀이세요. 제 실력으로 무리에요. 제 파트도 벅찬데- 그건 뭐에요?"

 

 "아- 공연 티- 너 시간있냐."

 

 "오늘 작업분은 조금 남았는데..말이죠."

 

 "너 보러가라."

 

 팔랑이며 티켓이 야마자키의 눈가를 스치고 바닥으로 떨어졌다. 계단에 기대 희미하게 웃었다. 너 보러가.

 

 "오키타 씨, 이거..표 어떻게 구하셨어요?!"

 

 "그냥-"

 

 "이거 요즘 구하기 힘들텐데, 게다가 VIP 석!!..같은걸 저한테 주시면,"

 

 "난 피곤해서."

 

 "이거 표값만 15만...원! 이라는데.."

 

 손을 훠이 저어 보이며 소고는 층계를 올랐다. 나 바쁘다고 전해줘라. 야마자키는 멀뚱히 그런 소고의 뒷모습만을 올려다보았다. 이내 모습이 사라지자 다시 티켓으로 시선을 내리박았다. 전해달라고? 갸우뚱하다 뭔가 깨달았다는 듯이 소고가 사라진 위를 가벼운 충격에 싸인 눈으로 올려다보았다. 오키타 씨, 이거. 덧붙여 한 마디가 들려왔다. 사거리 쪽 꽃집에서 내 이름 말해라. 야마자키는 급하게 계단을 올랐다.

 

 "오키타 씨, 이거!"

 

 "얼른 준비해서 가."

 

 "어떻게 제가 가요!"

 

 "못갈게 어딨어. 여자애한테 고백받아도 그럴거냐, 나 피곤해."

 

 "그런게 아니잖아요!"

 

 "작업도 있고 히지카타 자식 파트 매우려면 시간이 어딨냐. 잠깐 눈 붙이고 말거니까 꽃 찾아가라. 그거 계집애 알레르기 있거든."

 

 픽하고 바람 빠지듯 웃어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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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엇나가는 행위를 나름 즐겼기에 따로 오페라 글라스 마저 소지한 상태였다. 조금 지연되고 있는 꼴을 보아하니 얼굴이 굳어 풀기 위할 따름일 것이였다. 이러나 저러나 여전히 버릇을 고치지 못했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앉아서는 1층이 보이지 않았기에 야마자키가 어떤 잡스런 자세를 취하고 있을지는 안타깝게도 볼 수 없었지만 대충 상상할 수는 있었다. 보나마나 우스운 꼴이겠지. 이내 지체에 대한 사과와 공연 시작을 알리는 벨소리가 극장 안에 울렸다. 서서히 불이 가라앉고 무대만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소고는 여유롭게 초점을 맞춰둔 글라스를 들어 한 걸음 나가오는 무용수를 보았다. 프로는 프로라고 생각하며 아직 옅게 굳은 얼굴에 슬그머니 미소를 띄웠다. 묶지않은 머리카락이 길게 허리께 까지 내려와 아직 가벼운 동작에 제 자리에서 머물고 있었다. 본래 핏기 가신 살갗이였으나 온몸으로 분노를 표출해낸 것인지, 전신화장이라도 한 것인지 불그스름한 손 끝이 파도 처럼 넘실거렸다. 왼 손을 힘 없이 들어올려 등 뒤로 떨구더니 바닥을 짚고 제자리를 위 아래로 배회하곤 그 자리에 자리 잡고 앉았다. 위로 목을 쭉 빼고 눈을 내리감은게 어깨 아래서부터 공연장 바닥까지 늘어진 머리칼에, 숨을 들이마시며 뒤로 턱을 빼내어 두 팔이 허공에서 유영하며 의심없이 내딛는 한 걸음에, 무던히도 내짓는 표정에 차마 말로 이루못할 손 끝에, 소고는 결국 어깨를 툭 떨구며 그 눈을 곱게 접으며 흩날리는 감정을 내버렸다. 누가 말했던가 당장의 눈 앞의 적보단 유종의 미라고. 그게 누가 되었든 한 마디 쏘아주고 싶은 마음이 한 가득 넘쳐 끝내 입가를 가리고 터져나오는 뜨거움에 아랫 입술을 베어물어야만 했다. 눈 앞의 하나 조차 집중치 못하는데 어찌 유종의 미를 거두겠느냐고. 도약하는 한 걸음에 허리께에서 펄럭이던 하얀 레이스가 면사포 마냥 날리고 하얀 두 다리를 감싸안았다. 아랫 입술을 잘근거리며 소리없이 터져나오는 박동에 아플 새도 없이 바쁘게 하얗게 바랜 동작을 쫓았다, 그 쌍안경의 두꺼운 유리알  너머로. 더할 나위 없이, 의심할 한 치의 여지조차 없이 그 뜨거운 손 끝에서 이뤄내는 선은 그의 뮤즈 였다.

 

 그가 막 갤러리에서 활동하기 시작할 무렵이였다. 고작 열 여섯의 제 감정 하나 토로할 줄 모르던 그 때였다. 학교는 마치기 바랬던 콘도의 손에 이끌려 원치도 않는 사회에 도로 던져지던 당시의 좌절감과 환멸감이란 쉬이 잊혀지지 않았다. 입학 시험조차 치루기 어렵다는 그런 곳에 어린 그의 밀어넣으며 네가 하고 싶은대로 해봐 라는게 단순한 헛소리에 그지지 않는다고 생각했었다. 모멸 당하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누이와 이별한 이후로 그의 살갗에서 유화 향이 사그라들었다. 제게 붓을 쥐어준 것도 누이였고 결국 놓게 된 것 역시 누이에 그치고 말았다. 평생 가까이 할 일따위 없으리라 죽는 날까지 믿었다. 꼴보기 싫다며 자해를 떠올릴만한 행위를 반복했고 수업은 커녕 출석일수가 얼마나 비었는지보다 채워져있는지를 확인하는게 빠를 지경이였다. 타이르고 달래고 큰 소리를 내어보아도 캔버스 앞에 서려하지 않았다. 그 앞에서 자신은 죄인에 불과하다는 의미심장한 말만을 늘어놓았다. 지속되는 수전증과 불면증에 온전한 하루를 시달려야 했다.

 

 "매일 같이 여기서 뭐하는거야."

 

 "..신경 꺼."

 

 "니가 내 연습하는걸 방해하니까 그런거지."

 

 "그래."

 

 미술실 따위는 근처도 가고 싶지 않았고 저를 찾는답시고 활기치고 다니는 꼴도 보고 싶은 추호도 없었다. 좋은 말로하면 자기가 하는 일을 사랑하고 자신감을 가지는 것이지만 그의 눈으로 비춰진 것은 그저 꼴사나운 짓거리에나 뒤지지 않았다. 기본적으로 음악과나 미술과나 무용과나 사이좋지 않은 관계를 잘도 유지해가고 있었기 때문에 존재감도 적으니 그런 소고에게 있어 빈 체육관이란 장소는 몸을 숨기기에 적합하다 못해 제 집과 같았다. 체육관은 무용과가 점령했기 때문에 정규 수업으로 체육이나 전시를 위해 빌리지 않고서야 발걸음할 이들도 없었다. 그래봐야 겨우 쪽잠이나 청할 뿐이였다. 그 늦은 시간에 누가 남아있을 줄이야 생각조차 해 본 적도 없었고 이어폰이 거친 발소리를 죽여주었기에 눈치 챌 기회도 없었다. 그리고 그런 장소를 침범당해버렸다.

 

 "넌 여기서 뭐해. 무용과 아니잖아."

 

 "피난처."

 

 "음악과야?"

 

 "미술."

 

 "아, 안그려?"

 

 "안그려."

 

 "왜 여기 입학한거야?"

 

 "내가 어떻게 알아."

 

 "넌 아는게 뭐냐."

 

 "없어."

 

 "진짜 깨끗한 뇌구나."

 

 "신경 꺼라." 

 

 "할 일 없으면 나 턴 봐줘."

 

 "싫어."

 

 "너 여기 있는거 미술과 쌤한테 말하면 되는거지?"

 

 "....어쩌라고."

 

 "봐달라고."

 

 "본다고 내가 아냐."

 

 "그러니까 봐달라는거잖아, 멍청아. 모르는 사람이 봤을 때 어색하면 그게 진짜 끝장나는거지. 같은 무용과 애들이 보는거랑 다르다고, 알겠냐."

 

 긴 머리를 한 갈래로 높게 질끈 묶고 큰 반팔 셔츠가 어깨를 타고 흘러내렸다. 가볍게 한 발을 찍고 돌았다. 말 그대로 제자리에서 돌았다.

 

 "이상하냐."

 

 "아니."

 

 "그럼 어떤데."

 

 "괜찮아. 됐지, 이제 귀찮게 굴지마."

 

 그저 유별난 애 정도로 밖에 비치지 않았다. 미치지도 못할 헛소리 사이에 끼여 있는 것보단 훨씬 낫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일까, 일수는 점점 채워져갔다.

 

 "제대로 수업 안들으면 유급할지도 몰라, 너."

 

 "상관없어."

 

 "상관있어."

 

 결코 귀찮은건 하루이틀이 아니였다.

 

 "귀찮게 굴지마."

 

 "그럼 내 부탁 하나만 들어라. 그러면 그만두지 뭐."

 

 "내가 뭐하러 그런 짓을 해."

 

 "그럼 알아서 하던가."

 

 새침하게 묶어올린 머리칼이 휘청거렸다. 허리께에 조금 닿지 못하고 등허리를 치대는 색에 소고는 미간을 구겼다. 거슬려.

 

 "뭔데."

 

 "나 그려줘."

 

 "그림 같은거 안그려"

 

 "미술과 입에서 저런 말을 들을 줄이야." 

 

 그럴 줄 알았다는 과장된 팔동작과 비웃음에 가까운 표정에 일부러 높이는 소리.

 

 "그릴 수 있잖아, 그러니까 따지자면- 재능낭비."

 

 "....이제 생각이 안난다고."

 

 "무슨 소리야."

 

 "어떻게 했는지 모르겠다고, 하고 싶어도 못해. 형체같은거 다 사라져버리는데."

 

 "색."

 

-

 

 [잘도 안왔다- 이거지.]

 

 "분명 바쁘다고 야마자키 자식한테 전하랬다."

 

 [니가 봐야 의미가 있다니까!]

 

 "제대로 꽃도 보냈다."

 

 [그거야 당연한 도리 아니야? 여전히 깨끗한 뇌인거야, 넌?]

 

 "그 도리는 다 했으니까 그만하라는 소리지."

 

 [진짜- 얼마나 당황했는지 알아! 당연히 센터에 너 있을 줄 알았는데 멍-한 얼굴이 하나..!]

 

 "멍하다니 들으면 섭섭해하겠네."

 

 [니가 섭섭해하라고!!]

 

 "뭐- 별로."

 

 [이번에 평론가 자식들 평도 좋단 말이야!! 내가, 진짜 어! 얼마나! 망할 놈아!!]

 

 "네네."

 

 [너무하네.]

 

 "이제 알았냐."

 

 [아니. 익숙해.]

 

 "그럼 다행이고. 그런 김에 마지막 턴 때 크로스 하지 말지. 크로스는 그닥 취향이 아니라서 말이야."

 

 [어- 잠깐만 뭐라고?]

 

 "끊는다-"

 

 [야! 야! 야 이 도S 자식아!!]

 

 새삼 한결 편해진 얼굴을 하곤 아무렇지도 않게 종료버튼을 누른 소고는 다시 걸려올 전화에 화면조차 끄지 않고 끊어진 통화기록을 내려다 보았다. 물론 그럴 새도 없이 도로 걸려와버렸지만.

 

 "뭐."

 

 [야아아-!!]

 

 "야아아-!!"

 

 휴대전화 너머로 들려오는 짧게 끊어지는 목소리와 함께 들려오는 육성에 그의 시선은 당연스레 문가로 갔다. 세차게 미닫이 문이 열리고 조만간 새로 장만해야될지도 모를 휴대전화를 아스라질것 마냥 쥐고 흡사 제 머리색과 비스므리한 얼굴색을 한 여자를 태연스레 맞이했다. 아 왔어.

 

 "아 왔어? 왔어어? 왔냐고?! 왔다 이 자식아!"

 

 "소리 좀 그만 지르지."

 

 "안지르게 생겼냐!"

 

 "알아서해."

 

 당장이라도 한 대 쥐어팰 얼굴에 소고는 무죄를 주장하는 양 두 손을 들어보였다. 미리 고통에 대비해 어금니를 맞대어 물었다. 눈을 살포시 내리감으면서 그 찰나의 고통을 폐부로 느끼기도 전에 식은 손이 목덜미를 감쌌다. 품 안 가득 밝기만 했다.

 

 "뭐하냐."

 

 "..알아서 하라며."

 

 "안기는건 뭐 하자는 건데."

 

 "아 이럴땐 좀 가만히 모른척하라고! 이러니까 니가 연애도 못하고- 책으로 연애할 새끼지 아주.."

 

 "이럴 땐 책에서 밀어내래."

 

 "그딴 책 갖다버려!"

 

 소리로 터져나왔다. 환희를 참지 못해 기어코 터져버렸다. 

 

 "뭐, 뭐가 웃겨."

 

 "별로."

 

 "...보러 왔으면 왔다고 했으면 좋았잖아."

 

 "내 돈낸건 봐야지."

 

 "어디에 있었는데."

 

 "3층 A열 센터석."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올려다 보았다. 그에 진짜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졸업 전시회 출품은?"

 

 "다 끝났는데."

 

 "왠일이래."

 

 "졸업하고 싶어서."

 

 "아."

 

 빠른 수긍과 함께 도로 가슴팍에 얼굴을 묻자 허리께까지 떨어지는 머리카락 위에 손을 얹어 쓸어내렸다.

 

 "밥."

 

 "그게 어쨌다고."

 

 "먹자고. 다른게 있냐."

 

 "니가 사냐."

 

 "남자친구라는게, 지 애인 무대는 이상하게나 봐놓고는."

 

 "아, 그거 기억 왜곡."

 

 "니가 사!"

 

 겉옷을 집어들며 작업실 전등을 껐다. 잔뜩 열려버린 문과 문 사이 가득 빛으로 찼다. 먼저 앞서 기다리는 뒷모습에 그늘이 졌다.

 

 "야."

 

 대답은 없었다.

 

 "야."

 

 마찬가지 였다.

 

 "카구라."

 

 "응?"

 

 "..가자."

 

 그 자리는 온전히 온기였다.

 

-

 

 "무슨 색, 무슨 소리야."

 

 "색만 쓰라고. 미술과 친구랑 미술관 간 적 있는데 색만 쓰기도 하던데. 그거 너도 하면 되잖아."

 

 "넌-"

 

 고개를 갸우뚱 하며 비킨 자리로 체육관의 센 조명이 눈에 닿았다. 아 씨.. 연신 감았다 뜨기를 반복하는 그의 눈가에 물기가 섞여들었다. 분명 깨끗하다 말 못할 바닥에 하얀 연습복을 입은 다리가 주저 앉았다.

 

 "눈 떠봐, 아픈거야?"

 

 떠지지도 않는 눈을 억지로 비집으며 물기가 섞여 위로 말려올라간 자리에 선명한 주황이 자리했다. 단지 그것 뿐이였다.

 

 "괜찮아?"

 

 "..야, 너."

 

 "내가 한거 아니거든."

 

 "이름 뭐냐."

 

 "나?"

 

 "그럼 누구."

 

 "카구라."

 

 빠르게 번져나갔다.

 눈을 감아도 짙게 퍼져나간 주황이 분명했다.

 

-

 

작년에 리퀘받고 올해 끝냈다(!)

미묘하게 게을러 보이지만 미묘한게 아니라 확정된 사실이다!!!

생일은 지난지 오래라고 하기엔 이제 의미 없지만 그냥 그렇다고 생각해주셨으면 합니다.

 

아 편의상을 위해 '~해' 는 생략해버렸습죠..

대충 2년이였나 2년! 뒤의 소고+5년 후의 카구라 모습으로 봐주셨으면 합

그게 이미지 상 맞아떨어지니까..어-

 

미안하고 사실 후반부 끝낼 수가 없어서 강제 종료 시켜......읍읍-!

 

미안하다아아아ㅏㅏ!!!!!!!!!!!!!!!!!!!!!!!!!!!!!!!!!!!!!!!!!!!!!!!!!!!!!!!!!!!1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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