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차피 인간인데, 언젠가는 죽는걸. 줘봐야 뭐해. 다시 죽을 목숨인데."

 "보쿠토, 너 이 자식."

 

 쿠로오도 참 감성적이란 말이지. 보쿠토는 중얼거리며 미간을 구긴 채 '라인 북'을 들여다보는 쿠로오의 어깨를 두어번 가볍게 쳤다. 이에 쿠로오는 매서운 눈으로 보쿠토를 노려보다 이내 한숨을 내쉬었다. 저 부엉이 자식이 뭘 알아, 젠장할. 

 보쿠토로써는 이해하지 못할 쿠로오의 행동에 의아해할 뿐이였다. 일부러 제 업을 늘려서 겨우 인간따위의 생명을 지속시켜 준다는건 하루 빨리 '테이커'의 자리에서 벗어나고픈 보쿠토에게 있어 상상치도 않는 것일 따름이였을 뿐이다.

 

 유일한 테이커의 장점이라 꼽는다면 업을 늘려 테이커 기간을 늘리는 대신 생명을 지속한 인간을 사후에 제가 거둘 수 있다는 점이다. 과연 이점일지는 테이커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갈리는 편이였다. 애초부터 테이커란 것은 형벌의 한 형태이기에 '상'으로 올려주기에는 악업을 지녔기에 테이커의 역할을 수행하며 그 업을 지워나가는데 의미가 있다. 그리고 확실한 것은 결코 유쾌한 일은 아니라는 것이다. 말 그대로 테이커. 죽은 이를 이끌어 주는 역할이다. 간단해보이지만 여간 쉬운 일이라 할 수만은 없었다. 

 

 "쿠로오는 어차피 커넥트 되어있잖아. 그럼 거두면 안돼?"

 "말처럼 쉬우면 이러고 있겠냐. 얘가 얼마나 섬세한 앤데."

 

 그거야 그렇지. 보쿠토는 주억거리며 여전히 머리를 싸매고 있는 쿠로오를 애처롭게 바라보았다. 그러니까 애초에 커넥트 따위 안했으면 좋았잖아. 분명 한 마디 들을거라 생각하며 속으로 주절거리는 꼴이란. 그런 보쿠토의 속을 읽기라도 하듯 쿠로오는 라인 북을 덮으며 말했다.

 

 "너도 때가 되면 알거야. 내 업을 늘리면서라도 더 살리고 싶다는 심정이 뭔지."

 

 물론 너 같은 애송이는 모르겠지만.

 결국 승자는 쿠로오였다. 히죽이는 평소의 페이스로 돌아와 허리춤의 홀더에 라인 북을 넣곤 주머니에 손을 비집어 넣은 채 허리를 숙여 보쿠토의 앞에 얼굴을 마주했다. 쭉- 빠지더니 이내 발걸음을 돌려 손을 들어보이며 걸어가버렸다. 간다, 라는 말만을 남긴 채였다. 그러니까 그 심정을 모르겠단 말인데, 쿠로오. 영 탐탁찮은 얼굴을 한 보쿠토는 씁쓸한 끝말을 느끼며 쿠로오의 뒷 모습을 바라보았다.

 

-

 

"커넥트. 테이커가 자신의 테이커 수행 기간을 늘리는 대가로 생명을 연장한 링커가 이어지는 것으로 링커의 사후 테이커는 링커를 테이커 수행 기간 동안 그 업을 같이 지울 수 있다, 라고 하지. 아마."

 "그럼 링커도 테이커로 판정나면 뭐야. 걔도 또 링커 둘 수 있는거야?"

 "아니, 그건 안돼. 테이커가 걔를 안거뒀을 때 테이커 판정받으면 링커 두는거고."

 

 아아- 어려워. 보쿠토는 제 머리를 헤집으며 책상에 머리를 콩-하고 박았다. 제가 테이커가 된지도 어느 덧 몇 해째인가. 쿠로오랑 같은 해부터 시작했으니 아마 적어도 족히 70년은 넘었을 터였다. 정상참작된 처지이니 불평만 할 수도 없는 위험한 위치였다. 테이커들 사이에서도 꺼리는 '어린 아이'들을 맡은 보쿠토였기에 링커를 찾지 않는건 아니냐는 말도 있었다. 어린 애 상대로 동정심을 베푸는 행위가 아닌가, 라는 의문이 있을 법도 했지만 보쿠토는 단순했다. 많이 안하니까 제가 맡고 점수따고 얼른 테이커 따위 그만둬 버리자고. 어린 아이들은 항상 낯선 이를 경계했고 무서워했고 숨어버린다. 그러니 힘들다. 당연한 것이였다. 다만 그걸 잘 구슬려내는 것 뿐이였다. 아니면 보쿠토의 정신연령이 그 즈음을 엇돌고 있지 않을까, 라는게 코노하의 추측이다.

 

 "넌 링커같은거 관심없는거 아니였어?"

 "그치만- 쿠로오가 그렇게 신경쓰는 것도 꽤 보기 힘든 거라고."

 "하기야."

 "그러고 보니 코노하도 링커 없지?"

 "응, 뭐. 없지."

 "봐둔 사람이라던가 있어?"

 

 코노하는 잠시 제 라인 북에서 보았던 얼굴을 떠올렸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저어보였다. 그에 보쿠토는 의기양양한 얼굴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고마워- 따위를 외치며 문 밖으로 뛰쳐나갔다. 저 바보가 또 무슨 짓을 하려고 저러는거야. 한숨은 온전히 코노하의 몫이였다.

 

-

 

 열. 아홉. 여덟. 일곱. 여섯. 다섯. 넷. 셋. 둘. 하나.

 

 커다란 벛나무에 앉아 발을 까딱이던 보쿠토는 숫자를 거꾸로 세고 마침내 0에 다다르자 병실의 창가로 내려앉았다. 삭막한 방이였다. 어린애다운 그림 하나 없는 허연 병원 특유의 벽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침대와 그 옆의 링겔. 반대 측 벽면의 반을 채울 듯한 스크린 텔레비전과 협탁에 놓인 이미 오래전 시들어버린 꽃바구니. 작은 냉장고의 소음. 간병인 하나 없는 모양새가 간이 침대도 없는 듯하였다. 차갑네, 차가워.

 웃차-. 보쿠토가 병실 안으로 발을 들여놓으며 여기저기를 둘러보았다. 꽤나 부유한 가정에서 자란 듯 병실도 1인 실에 침대 사이즈도 달랐다. 도련님이시구나. 보쿠토는 주억이며 라인 북을 꺼내어 펼쳤다. 침대에 다가가 곤히 잠든 얼굴을 바라보았다. 일치했다. 더 어려보이지만 뭐 상관없지. 보쿠토는 침대 맡에 엉덩이를 걸치고 앉아 아이를 내려다보았다. 귀티나네. 곱슬머리에 뽀얀 피부. 감고있어도 예뻐보이는 눈을 가지고 있었다. 올망졸망한 입술은 턱없이 작아만 보일 뿐이였다.

 

 귀엽네. 보쿠토는 푸스스- 웃으며 머리칼을 쓸어주었다.

 

 "잠시만 일어나서 형 볼래?"

 

 미안하지만 일은 일이니까. 모처럼 예쁜데 안타깝네. 보쿠토는 아이의 볼을 톡톡 쳤다. 금세 눈을 떠 웃고있는 보쿠토와 눈을 마주했다. 옅은 청록빛을 띠는 눈은 나이에 맞지 않게 차분했다. 우선은 설명부터 해줘야 하니까. 어린 애들은 낯선 사람보고 놀래잖아. 전의 아이를 되새기며 보쿠토는 떠올렸다. 절 보자마자 울음부터 터뜨리며 비명을 질러대는 턱에 꽤나 고생했던 터였다. 같은 실수 하지 말자. 귀찮아지는건 싫은걸.

 

 "안녕,"

 "저, 죽은건가요?"

 

 응? 도저히 되물을 수 밖에 없는 아이의 질문에 보쿠토는 당황스럽기 그지 없었다. 틀린 것은 아니니 부정할 수 없고 그렇다고 긍정하자니 뭐라하면 좋을지 몰랐다. 아직 열 살도 되지 않은 저 핏덩어리의 입에서 나온 말이 죽은거냐니. 어리광 부릴 나이 아닌가, 9살이면?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제 라인 북 데이터 속에는 죽음을 경험한 적이 없다. 비슷한 경험도 없었다. 그런데 죽음을 감지한다는 것 자체가 이상했다. 물론 자신이 죽을 때를 안다는 말이 있듯이 아는 사람도 있기 마련이다. 그래도 이건 아니였다. 우선은 침착하자. 어느 센가 아이는 상체를 일으키고 앉아 헤드에 기대어 저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그 모습이 너무나도 고요했다.

 

 "일단 하나씩 천천히 하자, 응?"

 "네."

 "이름은 아카아시 케이지. 9살. 맞아?"

 

 아카아시는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간단하기 그지없지만 본인확인은 끝났다.

 

 "음- 심장이 아픈거야?"

 

 아이는 잘 모르겠다는 얼굴로 갸우뚱 해보였다. 아- 귀여워. 보쿠토는 웃으며 아이의 왼쪽 가슴에 손을 올리며 여기? 하고 묻자 고개를 끄덕였다.

 

 "아까 아카아시 군이 먼저 물었지만, 응. 맞아. 이제 하늘나라로 가자."

 "역시 전 죽었군요."

 

 너무 담담했다. 죽었나요. 그렇군요. 이런게 어디있어.

 기운 없어보이는 얼굴로 천천히 떨군 고개를 들어 보쿠토와 시선을 맞췄다. 두어번 깜빡이더니 다시 고개를 힘없이 떨구었다. 시트를 고사리같은 손으로 꼬옥 쥐었다. 아이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하지만 말은 하지 않았다. 뭐라고 말할까.

 

 싫다고 할까. 무섭다고 할까. 그것도 아니라면 울음을 내뱉을까.

 

 "지금, 가야하나요?"

 "응, 그럴거같은데. 왜 그래?"

 "어머니."

 

 뭐라고? 도로 되묻자 아카아시는 다시 보쿠토와 눈을 마주했다.

 

 "어머니. 어머니 얼굴 한 번만 보고 가면 안될까요?"

 

 이것도 예상치 못했다. 호칭도 호칭이지만 말이다. 성숙하네, 정도가 아니였다.

 말 없이 아카아시를 내려다보던 보쿠토의 시선에 아카아시는 다시 말했다.

 

 "역시 곤란하겠죠. 죄송해요."

 

 그 작은 입이 미묘한 호선을 그었다.

 

-

 

 "천하의 보쿠토가 링커라니. 놀랄 노잔데 정말-?"

 

 틈만 나면 케넥트따위 이해 못하겠다시던 보쿠토 코타로 씨 어디계신가나. 쿠로오 특유의 껄렁한 목소리가 들렸다. 보쿠토는 그런 쿠로오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 이젠 라인 북 제일 첫 면에 적힌 '아카아시 케이지' 를 읽고 있었다.

 

 특별히 말하지 않을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말해줄 이유도 없었다. 그리고 미묘한 독점욕. 아이는 예뻤다. 그저 그 뿐이라 말했다.

 

 "오야오야오야- 어린 애 상대로 뭘 진지해지는거야, 코타로 군."

 "너에게 듣고싶지 않아, 쇼타콤 테츠로 군."

 

 그건 이제 너도 마찬가지 잖아. 아-.

 

 "진짜로 무슨 일이 있었던거야, 너. 예뻤어 따위로 무마시킬 수 없다고."

 "그냥 단지,"

 "단지?"

 

 환하게 웃는게 보고 싶었어. 그 뿐이야.

 

 쿠로오는 조금 놀란 표정을 짓더니 이내 피식 웃으며 보쿠토의 옆에 주저앉으며 어깨 위에 팔을 얹었다. 자식- 뭘 좀 알게 됐군. 보쿠토는 키득이며 라인 북의 아카아시 얼굴을 바라보았다. 왠지 얘라면 괜찮을거 같았어.

 

-

 

 "아니, 아니야. 아카아시 군은 죽지 않았어."

 "하지만 방금 말씀하,"

 

 보쿠토는 손을 저어가며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절-대 아니야.

 

 겨우 9살인데. 이렇게나 예쁜데. 넌 사랑받아야 마땅한 아이야, 그러니까.

 

보쿠토는 아카아시를 품에 끌어안았다. 작은 몸뚱아리가 품에 안기고도 남았다. 도드라진 뼈에 가만히 등을 쓸어주었다. 아이는 가만히 있었다. 미동조차 없었다. 보쿠토는 아카아시의 양 팔 사이에 손을 끼워넣어 들어 제 무릎에 앉힌 채 품에 안기게 하였다. 가만가만 머리를 쓰다듬어주자 아이는 제 셔츠를 한 손에 꼬옥 쥐고 있었다. 그 마저 예뻤다. 조금은 불안해보이는 눈으로 셔츠의 어딘가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아카아시."

 

 눈을 마주쳤다.

 

 "아카아시는 죽길원해?"

 

 아이는 멈칫하더니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영리한 아이야.

 

 "거짓말 안해도 돼. 그리고 울고 싶을 때는 울어야 되는거야."

 

 보쿠토는 작게 등을 토닥이자 아카아시는 품 안에 고개를 묻고 얼굴을 부볐다. 보쿠토는 끊이지 않고 토닥여주며 연신 괜찮아-하고 속삭였다. 이제야 좀 제 나이같네. 보쿠토는 소리 죽여 키득거렸다.

 

 "대신 아카아시, 형이랑 하나만 약속하자. 오늘 일은 둘만의 비밀이야, 알았지?"

 

 아직 눈물을 매단 눈으로 저를 올려다보는 아카아시의 두 눈을 차례로 닦아주며 보쿠토는 씨익 웃어보였다. 약속, 하고 새끼 손가락만을 들어보이자 아카아시는 서툴게 그 손을 따라했다. 귀여워-. 이렇게 걸고 약속하는거야, 응? 아이는 주억였다.

 

 그럼.

 

 보쿠토는 아카아시를 도로 자리에 뉘이고 이불을 목 아래까지 끌어 당겨 덮어주었다. 머리칼을 쓰다듬자 두 눈을 깜빡이며 저를 바라본다. 조금은 웃어주지. 그리 생각하며 보쿠토는 작게 웃어보였다. 갈게-. 살짝 잡아당겨진 셔츠의 귀퉁이에 돌아보자 작은 손으로 잡고 놓아주지 않고 있었다.

 

 "왜 그래?"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형 이름은,"

 

 보쿠토 코타로야. 아이의 이마에 짧게 입 맞추며 귓가에 낮게 속삭였다. 아카아시는 작게 보쿠토, 코타로. 하고 되내였다.

 

 보쿠토는 병원 특유의 넓은 창틀 위에 섰다. 그럼 진짜 갈게-. 손을 흔들어보였다. 아이는 미동도 없이 고개만을 돌려 저를 바라보고 있었다. 희미한 달빛에 비친 청록색 눈이 또렷히 보였다. 아카아시. 네. 스마일-.    

 

Fin.

 

-

 

설정 짰습니다. 힘들어..

테이커-링커. 그거 시리즈로 좀 이을까 고민 중입니다. 으음-.

쿠로오만 나왔어, 미안해 켄마. 주륵.

 

다정한 어른 보쿠토가 제 나이에 맞지 않는 어린 아카아시의 성숙함에 놀라는게 보고 싶었을 뿐입니다. 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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