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사랑 요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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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히트 지킬란드 토도로키. 열 여덟. 세간을 떠들석하게 하는 천재 피아니스트, 하고 흥미롭다.

 딱 그 정도였다. 제 이브에 대해 아는 것을 떠올려 보아도 결코 여럿 떠오르는 법이 없었다. 이젠 제 피에 코를 박고 숨 죽인 사람의 형태만으로 남아 역한 기억이 되고 말았기에 솔직히 털어놓자면 얼굴은 고사하고 존재도 잊은지 까마득했다. 한 번 잃은 흥미가 죽음으로 다시일어날리가 없었다. 물을 끼얹은 화로에서 도로 불이 피어오르지 못하는 것과 같은 이치였다.

 

 어린아이 마냥 구는 부분이 남아있다. 이것은 탐욕의 신조인 본인조차 인정하곤 하는 부분이였다. 흥미로운 것이 좋다. 재미난 것이 좋다. 질리는 것이라면 사절이다. 그런 면이 탐욕스러웠고 그의 만들어진 정체성에 가까웠다.

 어디까지나 로우레스 에게 있어 이브는 흥미와 놀이의 대상에 불과했고 질리면 장난감 상자에 넣기는 커녕 떨구어 산산조각 나는 말로인 일시적인 것일 뿐이였다. 어차피 인간이란 죽기 마련이니 그 명 좀 줄였다고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발상보다는 눈 밖에 났으니까 에 가까웠다.

 

 

 "모처럼 휴일인데 말임다-."

 

 로우레스는 발치에 걸리적거리는 돌멩이를 걷어차며 불만을 토로했다. 길덴스턴은 초근접으로 인형탈인 제 얼굴을 들이밀었다. 암묵적인 협박이였다. 로우레스는 길게 눈을 죽- 찢더니 혀를 찼다. 알았슴다, 알았슴다. 구부정하게 허리를 숙이고 주머니에 손을 꽂아넣은게 나태와 닮아있었다. 저런 인형탈인 채 돌아다니면 눈에 띌게 뻔했다. 무슨 배짱인지도 알 길이 없었고 과보호 정도로 밖에 눈에 비치지 않았다.

 

 "리히땅은 댁들 처럼 멍청하진 않으니까 알아서 잘 놀다 올거 아님까."

 "사고라도 일어나면 큰일이란 사실을 왜 모르는거야."
 "리히땅이 사고라뇨. 그럴리가 없슴다."

 

 어리다 해도 사지분별은 확실할 나이였다. 미아 찾기도 아니고 우습기 짝이 없는 연출을 굳이 뛰어나가 해야할 이유도 없었고 리히트는 그렇게 손이 많이 가는 어리광쟁이나 사고뭉치도 아니였다.

 

 "간식시간 전 까지는 돌아온다 말하고 나갔어. 근데 지금은 3시잖아."

 "아아- 확실히. 리히땅이 간식을 거부할리가 없는데 말임다. 안온다면 제가 먹어치워버리면-"

 

 길덴스턴은 다시 한 번 푸른 고래와 어울리는 검은 동공을 들이밀었다. 장난임다! 쓸데없이 제 이브에 더 충실한 서브 클래스는 꽤나 속이 꼬이는 것이였다.

 

 애초부터 리히트가 사라지지만 않았어도, 제 시간에 간식을 먹기 위해 돌아오기만 했다면 이 고생을 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였다. 연주회가 끝나고 호텔로 돌아온지 얼마 되지도 않아 잠시 나갔다 오겠다며 골아떨어진 로우레스 따위 내버려둔 채 그는 홀로 나섰다. 좋아하는 크림소다에다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준비해두었다는 로젠의 말에 눈을 반짝이며 기뻐했다는 리히트의 모습을 떠올리자면 무슨 일이 생긴게 분명했다. 다만 로우레스는 모처럼의 제 잠을 깨운 서브 클래스와 로젠이 불만일 뿐이였다. 명백히 리히트 역시 강한 편이지만 인간이였고 아직 제 감정에 미숙한 열 여덟에 불과했다. 그래도 24시간 떨어지게 된다면 이후의 일 따위 잘 알고 있을 터였다. 그는 영리했다. 그럼에도 순순히 끌려나온 준 것은 꿈자리가 뒤숭숭 했기 때문이였다.

 

 제가 아닌 다른 이에게 죽음을 당하는 제 이브의 모습은 결코 보기 좋은 것이 아니였다. 맘에 안들어. 미묘한 떨림이 멈추질 않았다. 손바닥을 바지에 문지르며 로우레스는 미간을 구겼다. 금방 올검다. 그렇게 말하면서도 무엇 하나 확신할 수 없었다.

 

-

 

 리히트가 기세 좋게 나선지 한참 시간이 흐르고 저녁놀이 하늘을 뒤덮고 이내 칠흑의 색을 낳았다. 달은 건져올리고 해를 걸어놓은 하늘은 옅게 가라앉았다. 차라리 시원하게 비라도 쏟아냈다면 좋았으련만 느릿하게 손으로 훑기만 할 뿐 여전히 어둑한 채였다. 기상 캐스터는 오후에 짧게 소나기가 올테니 외출하실 분들은 우산을 챙기라는 조언을 남겼다.

 새벽녘을 기점으로 로우레스는 미적지근한 두통을 호소했다. 이내 두개골 마저 깨질 것만 같은 통증과 함께 역한 속을 게워내지도 못하고 헛구역질을 반복했다. 분노감에 충실히 밖으로 뛰쳐나와 호텔 옥상에 궁상 맞게 걸터앉아있자 타이밍 좋게 비가 내렸다. 빌어먹을. 아직 오전 10시 였다. 세운 무릎 사이에 고개를 파묻고 관자놀이를 붙잡았다. 고통은 태어날 적부터 익숙했다. 익숙하다 못해 어느 정도 즐기기도 했다. 이런 류는 즐기고 싶지도 않았다.

 

 [머리아파.]

 

 그는 기우뚱 상체를 일으켰다. 잠긴 옥상 문 너머로 적어도 인간은 들어올 수 없었다. 지겹도록 들어온 목소리, 리히트였다. 계약 특성 상 의식까지 이어지기 때문에 의도찮게 멋들어진 '둘 만의' 텔레파시 따위를 실현해낼 수 있었다. 다만 둘 사이가 뭐가 그리 돈독하다고 쓰길 시도하지도 않았다. 듣기 싫은 상대의 목소리가 감미롭게 머릿 속에서 울려퍼지는 일 따위 리히트는 제 머리를 도려내려 했을 것이다.

 

 "리, 리히땅?"

 

 [쥐새끼 목소리. 시끄러워. 머리아파.] 

 

 "리히땅!"

 

 한 번도 시도해보지 않았다는게 발목을 잡았다. 계약 초기에 지나가는 식으로 얘기해 준 적은 있지만 그걸 기억할 지는 의문이였다.

 

 [닥쳐, 쥐새끼. 내 머리에서 나가.]

 

 다행이도 기억하고 있는 모양이였다. 로우레스가 기억하는 리히트 그대로, 그는 영리했으니까.

 

 "지금 어디임까. 이대로 가다 둘 다 개죽음 당할거라고요."

 

 "리히땅?"

 

 [회전목마.]

 

 이후로 무엇 하나 답하지 않았다.

 

-

 

 공교롭게도 하나 뿐인 유원지는 폐장인 상태였다. 굳이 거길 들어가 있을 그도 아니였거니 어제까지만 해도 개장이였으니 들어가 하루를 온전히 보낼 만한 위인도 아니였다. 그런 '쓸데없는' 일을 벌이길 즐기는 타입과는 거리가 멀었다.

 

 정오가 다가왔다.

 

 리히트와 떨어져 있던 것은 어제 연주회가 끝난 후 호텔에 돌아온 뒤, 적어도 오후 1시 정도였다.

 

 '폐장된 유원지가 하나 있는데, 시내에서 가까워.'

 

 손의 마디가 굽혀지질 않고 핏줄이 돋아올라 흉측한 모양새였다. 보나마나 얼굴 역시 다를 바 없을 것이였다. 로우레스는 머플러를 둘러 최대한 끌어올려 눈가 아래까지 가렸다. 여전히 작게나마 비가 내렸다. 빌어먹을 상황과는 다르게 한창 시기인 벚나무에서 잎들이 떨어져내리고 있었다. 꽃길이라니.

 

 낡은 유원지는 죽은 봄과 닮아있었다. 어둑한 색채를 강렬히 남긴 구조물들이 멈추어 하나같이 저를 향해 시선을 내던지고 있었다. 작은 규모였지만 자꾸만 끌리는 발에 더디게만 나아갔다. 유원지의 정중앙을 화려히 수놓았을 회전목마는 누군가 물감을 통채로 들어부은 양 얼룩덜룩한 색들의 향연이였다. 크리스마스 트리에나 달려 있을 법한 조그만한 장신구들로 치장되어 있었다. 그의 짓이였다.

 

 리히트는 보이지 않았다.

 

 "리히땅-."

 

 그는 거칠게 머플러를 끌어내리며 불렀다. 이렇게 절박해 본 적이 있었는지를 떠올릴만큼, 이브에게 이리도 간절했던 적이 있었는지를 회상할 만큼.

 

 "망할, 쥐 새끼."

 

 리히트는 비틀거리며 회전목마와 조금 떨어져 있는 운전석에서 쓰러지 듯 튀어나왔다. 비틀거리는 걸음세가 영 좋지 않았다. 제 의지와 상관없이 리히트는 로우레스의 품에 안겼다. 엄밀히 말하자면 로우레스가 리히트를 붙잡아준 것이지만. 평소였다면 기꺼이 밀쳐냈을 그였지만 꽤나 얌전히 숨을 색색 거렸다.

 

 "조금만 늦었으면 죽을 뻔 했슴다."

 "죽는게, 무서워?"

 

 리히트의 말에 로우레스는 미간을 구기더니 이내 웃음을 터뜨렸다. 그럴리가 없잖슴까. 리히트는 로우레스의 어깨를 짚고 이마를 맞대었다. 이만하면 충분한 신체접촉으로 통증이 가라앉을 법 했지만 여전히 그의 이마는 뜨거웠다. 얇은 셔츠로 간밤을 지새기엔 충분하지 못한게 뻔했다. 감기라도 걸린검까. 정말 리히땅은-.

 

 뜨거운 입술이 닿았다. 서툴은 입맞춤은 뜨거웠고 애처로웠다.

 

 "난-, 난 무서워."

 

 한순간의 장난일까. 로우레스는 말없이 리히트를 내려다보았다. 반 쯤 풀린 눈이였지만 너무나도 확고해보였다.

 

 "그런데, 너라면. 상관없을거같아."

 

 리히트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소란스레 소나기가 한바탕 자리했다. 로우레스는 그를 안고 낡은 운전 박스로 들어갔다. 아무래도 좋았다. 우선은 열부터 식혀야했으니까. 역시 제가 아닌 것에 죽음을 맞이하는 제 이브란 좋은 꼴이아니였다.

 

 죽는 그 순간까지 난 당신을 기억합니다.

 

 그만의 유별난 이브 사랑법이였다.

 

 "난, 리히땅의 그 희망찬 무지함을 동경함다. 미숙한 감정을 사랑함다."

 

 편안히 눈 감은 리히트는 경멸하는 로우레스의 팔에 안겨 잠들어 있었다. 로우레스는 가만히 뺨을 쓸어주었다. 잠결에 뒤척이지도 않고 얌전히 잠든 그의 눈 위에 작게 입 맞추었다.

 

 리히트 지킬란드 토도로키. 열 여덟. 세간을 떠들석하게 하는 천재 피아니스트가 아닌 오로지 자신 하나만으로 벅찬 나이. 어리숙한 감정.

 

 난 지금 이 순간 속 당신을 기억합니다.

 

 그만의 독특한 리히트 사랑법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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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했...다

 

(와장창)

 

긴 말 하지 않으려 노력하지만 길어지겠지

 

그냥, 음- 얘네 예뻐..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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