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쿠아카 키워드 ; 비

 

(쿠로켄 조금이랄까요)

-

 

 "아카아시 군, 미안한데."

 

 전화, 받아봐야 될거 같아. 그녀는 엄지와 새끼를 들고 나머진 접어보이며 귓가에서 흔들어보였다. 어딘가 청초롬 해보이는 그녀는 싱긋 웃으며 기꺼이 그가 일어날 때까지 기다렸다 받아, 라며 유선 전화기를 가리키곤 돌아섰다. 뒤집어놓은 수화기를 들어 잠기는 목소리로 답했다.

 

 "'이부' 입니다."

 

-

 

 부엉이 hibou[ibu] 라는 의미를 가진 '이부' 는 독어이자 아카아시의 회사명이기도 하다. 맞춤형 가구 제작소로 디자인의 전면을 떠맡고 있는 실정이다. 이 제작소가 조금 특이한 점이 있다면 디자인, 소재, 길이, 높이, 폭을 포함한 모든 것을 선택형으로 고객의 '맞춤형'으로 제작한다는 것이다. 제작 5명 디자인 1명 내외 업무 3명으로 매번 10명 이상이 되지 않다는 점에서 혹사 당하고 있는 건 아닐까 라며 자주들 떠들곤 한다. 

 

 물론 인원수가 그런 만큼 한달에 주문은 크기에 따라 소 중 대로 나눠 각각 7개, 4개, 2개로 제한한다. 그러지 않는다면 진정으로 혹사 당할 처지가 틀림 없었으니 말이다. 고객 중 감사히도 도안을 그려보내주시는 분들이 있기도 하다. 하지만 대부분은 그저 이런이런 느낌이였으면 좋겠네요, 라던가 이런 색깔로 해주세요, 라던가의 희망사안만을 적기 때문에 아카아시는 만만찮게 그를 고려해야만 했고 결국 도안을 서너 개를 그리고 제작부에 넘겨 다수결로 붙여버렸다. 결과적으로는 고객에게 묻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지 않냐는 질문은 회사측에서 부정하기 때문이다. 당신의 상상을 꺼내드립니다. 이부의 공식 문구이다. 그렇기에 신비주의적 성향이 강했고 그런 점이 아카아시를 자극했다. 따지고보면 '사장' 입장이였지만 공동대표니 뭐니 해도 막연히 귀찮을 뿐이였다.

 

 그녀. 카미에 쇼는 잘 웃는 편이다. 아니 항상 웃고 있다. 공동대표인 그녀는 아카아시와 아무런 사이도 아니였고 아니며 아닐 것이다. 그저 같은 대학이였으며 다른 학과였고 우연찮게 도서관 앞 자판기에서 커피를 뽑아 덩그러니 놓아두고 사라진 것을 도로 주었을 뿐이였다. 뽑아놓고 그냥 가세요? 흔들어보이면서 웃는 그녀와 어쩌다보니 같은 것을 공유하게 되었고 어쩌다보니 많은 것을 알게 되었고 지금에 닿은 것이였다.

 

 웃는 모습이 미묘히 누군가를 떠올리게 해서 조금 괴로웠다. 닮은 것은 아니였지만 조금 마음이 쓰였던 것일 뿐이였다. 난 아카아시 군한테 마음 전혀 없는걸. 걱정마. 알아. 멀쩡히 임자 있는 사람 이상하게 만들지 말자, 우리.

 

 그녀는 집안에서 약속한 약혼자가 있었다, 물론 파혼 상태이긴 하지만. 좋아하던게 아니였냐는 물음에 푸스스 웃어보이면서 이젠 아니잖아. 라며 취기가 도는지 반쯤 풀린 눈으로 아카아시에게 기대었다. 아직도 임자 있는 몸이야? 글쎄. 그치만 처음부터 말했잖아- 난 너한테 마음 없다고. 제법 멀쩡히, 경쾌히 거리를 휘적이며 걷는 뒷모습이 조금은 부러웠다. 확실히 말하자면 그녀는 매력있는 여자이다. 똑 부러지고 깔끔한 타입으로 유럽계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의 혼혈아로 특유의 뽀얀 살결이 눈에 띈다. 연한 갈색의 머리칼이 허리부근 까지 흘러내리는 그녀는 사랑받는 존재이다. 겉으로도 다 보일 만큼 그녀는 사랑 받고 자란 이였다. 다만 고집스레 웃는 모습에 걸렸다. 막연히 사랑만 받은 것은 아니리라 그리 생각했다.

 

 '힘들면 울어도 되는데 말이야.'

 '운다고 뭐가 바뀌진 않잖아.'

 '그거야 그렇지.'

 

 하지만, 울어도 된다고 얘기해준건 아카아시가 처음이야. 등에 기대오는 탓에 다독여주지 못했지만 응어리가 풀리는 느낌이였고 날개뼈 아래가 축축히 젖어오는 기분이였다.   

 

-

 

 "아카아시, 아카아시. 아카아시 케이지-."

 

 아카아시는 사경을 헤매다 잠에서 깼다. 분명 낮은 음성이였을 터인데 눈을 뜨면 가늘고 얇은 여자의 목소리로 변질되어 있었다. 머리가 띵하게 울리는 것은 언제나와 같았다. 늦가을의 빗소리가 창가를 두드리고 아카아시는 빈백소파에서 담요를 둘러매고도 시린 손으로 눈가를 문질렀다. 빈 머릿속을 누군가 연신 두드려대는 것만 같아 두어번 마른 세수를 하다 말고 오른 손으로 목을 감쌌다.

 

"미안해, 근데 제작부 애들이.."

 "갈게."

 

 겨울용 담요를 소파 위에 얹어두고 일어서는 발걸음이 위태롭기만 했다. 초점이 확실하지 않았고 아직 강하게 관자놀이를 가격하는 느낌의 어지러움에 어쩔 새도 없이 도로 소파 위에 쓰러져야만 했다.

 

 "아카아시!"

 

 배를 끌어안고 웅크리는 것이 영락없는 아이였고 찡그렸다기보다 울상에 가까운 얼굴에 쇼는 이마에 손을 갖다댔다. 야- 너 아프면 아프다고 말을 하라고. 사장이나 되는 놈이 말이야, 아카아시? 작게 웅얼거렸다. 단말마를 지르는 얼굴이였다.

 

 "잘못,했, 습니, 다."

 

 울음기 다분한 목소리였다. 몇 번이고 부르짖는 모습은 다섯 살배기 아이의 애원에 가까웠다. 쇼는 가만히 담요를 끌어 덮어주며 머리칼을 쓸었다. 가지, 마세요. 잘못했어요. 물기 머금은 목소리에 그녀는 자리를 뜨지 못하고 무릎을 꿇고 그 앞에 앉아 작은 아이의 곁을 지켰다. 그래야만 할 것 같았기 때문일지도 모르지만 제가 이제껏 아카아시를 봐왔던 모든 순간을 지켜내기 위함에 가까웠다. 넌 원래 그런 사람이니까. 그리 치부해버리는 행위가 위태롭다 되내이면서도 그러지 않을 순 없었으니까, 그러니까 그녀는 말없이 시리게 떨리는 손을 잡아주지 못해 그저 가만히, 가만히.

 

 사실 그녀는 아카아시의 고질적인 병과 같은 증상에 대해 꽤나 알고 있었다. 물론 본인에게서 들은 것이야 몇몇에 불과하지만 주위에서 들은 것이 훨씬 유용한 정보였다. 구미가 당길 법한 이야깃거리였고 술자리에서 한 술 떠보기도 하였다. 다만 확신했던 것은 여느 때와 같은 비가 오던 날이였다. 쏟아지는 비에도 그는 여전히 작업실에 박혀 살았고 무기력했다. 점심시간이 가까워졌고 이러니 저러니 귀찮다 싶은 마음에 배달 음식이 적절하다며 한 입을 모았고 단순한 주문을 위해 들어갔다 반 쯤 기절 상태에 가까울 정도로 흐느끼는 목소리를 듣고 말았다. 작업대 위에 이질적인 느낌인 반지가 놓여 있었다. 그 뿐이였다. 물론 후에 캐물어 결국 알아낸 것이긴 했지만 여자의 감이란 것은 무시할 수 없는 노릇이였다.

 

 "애인, 이였어."

 "헤- 과거형?"

 

 말없이 작게 고개를 끄덕여보이던 눈 위로 안도감이 피어올랐다. 무엇에. 도대체 무엇에 안도하는걸까. 어디까지나 생각에 불과했다. 입 밖으로 꺼내진 않았다. 그걸 위해 이제껏 그리도 참아왔노라 생각했기 때문이였다. 예나 지금이나 그것만은 같다. 금기어와 비스므리한 뉘앙스를 지니는 '그것' 은 둘 사이의 비밀로 붙였다. 지키지 않는건 매한가지 였지만 말이다.

 

 이름 불명. 나이는 한 살 연상. 극히 활발하고 기운이 심히 넘친다. 애같이 구는 경향이 강하다. 애정 표현이 많다. 누구에게나 공평한 애정을 준다. 지각하는 한이 있더라도 머리는 세우고 다닌다. 학교 선배이다. 쇼가 아는 아카아시의 전 애인에 관한 것이다. 단도직입으로 물어서 안 것도 있지만 역시 알코올이 들어가면 잘 나오기 마련이다. 그리고 요즘 많이 느끼는 두 가지가 남아있다.

 

 하나, 도저히 이름은 알 수가 없다.

 하나, 그는 아직 그 사람을 좋아하고 있다.

 

 그녀의 파혼에 담담하던 것도 이런 이유일 것이 틀림없었다. 같은 처지 라는 거지. 물론 그리 유쾌하지 않은 그녀의 끝과 아카아시의 끝이 어떻게 다를지는 미지수였지만 이별이라는 상황은 지극히 변함없었다.

 사실 그녀가 그를 만났을 적은 이미 둘은 갈라선 상태였기에 둘의 관계가 어떠하였는지는 주위에서나 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지난 일을 듣노라 하거니 아카아시 또한 제법 사랑 받은 테가 났다. 그런 애정에 익숙해져 다시 혼자 그 뒤엉킨 속을 가라앉히기 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을 허비 하였을까. 아카아시 케이지란 남자가 그랬다. 쉬이 마음을 주지 않았지만 한 번 준다면 설령 먼저 끊어져버린다 해도 결코 돌아서지 않는다고, 그런 감정이라고. 깊음이 무엇인지 아는 남자였다. 그리고 그리 깊게 애정하고 창을 열고 그를 맞이했을 터였다. 미워했을까. 새겨두었을까. 무엇도 아닐테지만, 아무것도 털어놓지 않는 눈은 깊었다. 쇼는 그런 눈을 사랑했고 도로 피어나길 바랬다.

 

 쇼는 아카아시의 장점이라면 두 손으론 도저히 모자르다 곧잘 말하고 다녔다. 그 만큼 아끼는 터였고 애정을 쏟아붓는 것이였다. 그것은 도저히 '사랑' 이라 부르기 어려운 형태였고 둘 모두에게 부정당하였다. 아직 남아있노라 다른 이에게 마음을 주기가 버겁다며 몇 번이고 중얼거렸다. 카미에 쇼의 약혼자는 커다란 키의 남자였다. 수트가 잘 어울렸다. 운전실력이 영 나쁘진 않았지만 그닥 즐길 수 있지는 않았다. 스포츠는 관람을 선호했다. 선천적이라 믿지만 매사에 급했다. 그 점이 조금 숨 막혔지만 몇 해가 지나며 몸에 익고나서부터는 즐거운 것이 되었다. 다음은 그러겠지, 라며 시간 떼먹기 좋은 놀잇감이 되어주곤 하였다. 

 물론 끝까지 재미를 가져다 주는 장난감 행세를 하진 않았지만 말이다. 두 달 정도 제 약혼자를 바라보더니 그녀가 물었다. 사랑해? 주체가 없었지만 여전히 웃고 있던 그녀는 어렴풋이 알고있었다, 이 시간부로 그 주체는 제가 될 수 없음을. 겸연쩍은 듯 애매모호하게 웃는지 우는지 당황한지 알 수 없는 표정을 한 그에 그녀는 푸스스 웃음을 터뜨렸다. 받을 적부터 제게 조금 컸던 약혼반지는 언젠가 꼭 줄이자고, 다시 맞추자고 약속했던 것이였다. 굳이 귀찮은데 그러지 않아도 좋다 하였지만 섭섭할거라며 제 의사를 마음대로 정해버렸었다. 아직도 안맞아. 그녀는 작게 소리내어 웃었다. 그 사람한테는 맞을거야. 그 투박한 손에 건내고 돌아섰다. 울지도 않았으며 원망하지도 않았다. 단지 조금 허 했을 뿐이였다. 그리고 지금에 와서야 종종 떠올릴 따름이였다. 그럴 때마다 습관마냥 볼 안쪽 살을 잘근 거리곤 했다. 그 땐 어렸다고, 그러니 제 감정에 솔직해지고 싶지 않았다고, 구차하게 굴고싶지 않았다고.

 

 그리워하고 있다고.

 

-

 

 "매번 신세지네."

 "아니요, 얼굴이라도 보고 저야 좋죠."

 "천하의 이부에 하나 뿐이라는 디자이너가 이렇게 손수 해주시는데 황송하지."

 "이거, 도로 들고 가도 되는겁니까."

 "아니, 아니, 아니. 감사히 잘 받겠습니다- 라는거지."

 

 단순한 사람. 아카아시는 작게 중얼거렸다.      

 

 디자이너가 물론 본업이기야 하지만 취미삼아 조금씩 제작부에서 배우는 턱에 시험삼아 무언갈 만들면 곧잘 남에게 주었다. 가장 처음으로 리스트에 이름 올린 상대라면 쿠로오 테츠로 이다. 제 과거 연인의 친구이자 친구, 라기에는 조금 다른 느낌이다. 워낙이나 속을 알 수 없는 작자라 무의식에 경계하고 있다고 아카아시는 생각한다.

 

 "또 굉장한거 만들었네."

 "굉장하지 않습니다."

 "난 범인(凡人)이라 그냥 다 대단해보이는 겁니다-."

 

 어디까지나 배우는 단계에 있고 무엇보다 제 손재주가 생각보다 쓸만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달아버린 탓에 간단한 것들 위주로 손을 대고 있는 터다. 이번에 쿠로오에게 가져다 준 것만 해도 선반일 뿐이였다. 널빤지에 양 옆에 두어개 덧대면 끝이니 그다지 제가 손 본 것도 없다. 다만 조금 정성들인 곳이라면 기둥 모양으로 깍아 윗 부분을 부엉이로 조각한 정도랄까. 꽤 고생한 건 사실이다. 실제로 손가락 어딘가 베인 것도 사실이다.

 

 "무리하지 않는게 좋다고, 아카아시 군."

 "괜찮습니다."

 

 쿠로오는 어느 센가 손가락을 감싸쥐고 있는 아카아시를 지긋이 바라보았다. 고교 시절부터 봐왔기에 저것이 결코 얄팍히 베여나오는 통증을 위한 것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것 쯤은 잘 알고 있었다. 버릇이였다. 마디를 감싸쥐고 눌러대는 그저 단순한 버릇.

 

 "괜찮다는 얼굴이라도 하고 말하는게 좋지 않을까."

 "쿠로, 또 케이지 괴롭히고 있지."

 

 켄마는 인상을 구기며 방 안에서 지친 걸음으로 쿠로오에게 향했다. 요란한 머리카락이 분명 자다 일어났음을 말하고 있었다. 아직 졸린 눈을 한 켄마는 쿠로오를 지나 아카아시의 품에 안착했다. 얼굴을 묻고 조금 비비적 거렸다. 고양이 같아. 아카아시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야 들으면 좋아하지 않을게 분명하니까 기분을 상하게 하고 싶진 않았다.

 

 "언제 왔어."

 "방금."

 "밥은?"

 "아직."

 

 나왔다, 초간단 대화. 쿠로오는 옆에서 놀림조로 키득거렸다. 어디까지나 둘 다 고교 시절이나 그 전부터 말 많은 상대에게 끌려다니기 일쑤였으니 말수가 적은 상대가 편할 터였다. 놀림조였음은 사실이지만 그러는 쿠로오도 켄마가 아카아시와 대화하는 것을 싫어하지 않았다. 오히려 좋아했다. 제게 보여주지 않는 애교가 자연스레 묻어나는 사람 중 하나였으니 말이다.

 

 "안 먹을거야?"

 "글쎄."

 "나, 할말있는데."

 "뭔데."

 

 켄마는 파묻고 있던 고개를 들어 쿠로오와 시선을 마주했다. 한참이고 말 없이 바라만보는게 위태로웠다. 켄마.

 

 "돼?"

 

 저게 일 치려고.

 

 "안돼."

 "그치만-"

 "안돼."

 

 켄마는 토라진 얼굴로 다시 고개를 묻었다. 켄마-.

 

 "켄마."

 "아."

 "뭔데."

 "오늘,"

 "아, 아카아시!!"

 

 쿠로오는 어쩔새도 없이 소리를 내질렀다. 진짜 일 치네. 아카아시는 천천히 시선을 옮겼다. 켄마 역시 그랬다. 아- 그, 그러니까. 밥 먹고 가라고. 아카아시는 두 눈을 두어 번 내리감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감사히. 다행히 그것은 수락의 뜻이였다.

 

-

 

한 번에 못 끝내겠어요..

하 편 쓰긴 쓸까..슬슬 걱정입니다..에라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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