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로켄 전력 60분 ; 시간은 흘러가고 계절도 지나가지만 애달픔에는 익숙해질 것 같지 않아서 다시 만나고 싶어(시간/계절/애달픔)

 

(제물 쿠로오&사제 켄마/모르겠어요, 주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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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월의 아이' 가 있다. 일 년 중 오직 만월이 떠오르는건 네 번 뿐. 그렇기에 대개 사람들은 만월을 신성시여기고 그런 존재로 추앙했다. 그런 달에게 제물을 받치고 그 해를 잘 보내게 해달라는 일종의 의식이였다. 세 달마다 이루어지는 의식을 위해 사람들은 기꺼이 순결한 아이를 내놓았다. 상처하나 없는 순결한 아이야 말로 신성한 만월에게 올리는 무엇보다 값진 것이였다.

 

 미친게 틀림 없었다.

 

 인간 제물이다. 그저 몇몇 보기 힘든 것에 대고 구원을 외쳐대며 어린 것의 목숨을 흔쾌히도 내던지는 동조일 뿐이였다. 적어도 쿠로오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하지만 결코 입 아프게 꺼내지는 않았다. 만월에 해가 되는 말이라도 했다가는 소리 소문 없이 잡혀 사막으로 내던져질게 분명했다. 아무도 어떻게 될지 모른다고 입을 모으지만 누구나 알고 있을 터였다. 그것마저 동조하고 있었다.

 

 글러먹었구나.

 

 쿠로오는 그리 생각하며 차오르기 시작한 탐욕스런 달을 바라보았다. 하나. 하나. 하나. 그렇게 잡아먹고도 부족하단 말인가. 바람빠지듯 웃으며 그는 주사위에 난 결을 따라 손가락을 주욱- 그었다.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객기라도 부려봤으면 좋았을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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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월의 서에는 그리 씌여있다. 만월의 의미는 '기꺼이 나를 주어도 좋아요' 누가 지었는지 참 잘 지었다 생각하며 쿠로오는 두루마기의 끄트머리를 쓸다 이내 제자리에 돌려넣었다. 미쳤지. 그는 좀처럼 진정되지 않는 혼란에 카펫 위에 털썩 주저앉았다. 뭐 그만한 가치가 있는걸까나, 이거.

 

 사제가 그리 말했다. 이번의 만월은 조금 특별하다고. 누구보다 상처가 가득한 아이를 원한다며 해당되는 이들은 모두 신전에 모이라 했다. 겨우 달 때문에 죽으라니 억울한 처지인 것은 당연했고 그러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고있었지만 어딘가 찝찝한 구석이 남아 쿠로오는 집의 모든 문을 걸어잠궜다. 그는 나라에서 소문난 조각가였다. 조각은 세심한 부분이 많아 자잘한 부상이 끊이질 않으니 그 또한 해당자였음이 틀림 없었다. 가고 싶지 않아. 보고 싶지 않아. 자신의 죽음이라면 그다지 신경쓰지 않는 부분도 있었다. 그야 미련이 없는걸. 그는 입버릇 처럼 말해왔었다. 그에게 삶의 미련으로 남은 것이라면 딱 하나가 있었지만 그것은 수도에서 사귄 이들이 알리가 만무했다. 보면 뭐 어쩔거야. 별 수도 없으면서 괜히 얼굴 봤다간 낭패인게 당연하지. 그리 굳게 다짐했지만 그의 다짐의 집행사제의 명령에 깨졌다.

 

 집행사제님이 널 지목했어. 확실히 '쿠로오 테츠로' 라고.

 

 거참 영광일세. 쿠로오는 작게 이를 갈았다. 좋을게 없었다. 이 미친 '의식' 따위의 메인 이벤트 속 빠질 수 없는 포지션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물론 잡혀들어가는 것은 사양이니 제 발로 걸어들어가는 수 밖에 별 도리가 없었다. 보고 싶진 않단 말이지. 우연찮게 기회가 닿아 집행사제는 볼 수 있냐 묻자 집행사제는 사제들 중에서도 가장 신성시 되기에 의식 날이나 되야 볼 수 있을거라는 답변이 돌아왔고 쿠로오는 안도했다.

 

 그는 집행사제를 알고있었다. 모를리가 없지 않은가. 한낯 대륙 구석에 위치한 곳에서 함께 자란 아이인 것을. 만월의 정기를 가지고 태어난 자. 그리 불렀다. 코즈메 켄마. 그는 집행사제이자 쿠로오의 소꿉친구이자 만월, 그 자체였다. 심블이라도 필요한 것일 테지, 그리 생각했지만 아니였다. 켄마가 집행사제로 지목받은 이후 다음 해, 그는 직접 의식을 거행하였다. 그저 내세울 뿐인 허수아비 따위가 아니였다. 날카로운 칼을 그 손에 쥐고 가만히 눈을 감고 있는 어린 아이의 심장에 그것을 꽂아넣었다. 솟아오르는 붉은 체액에도 그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그 날 쿠로오는 제 심장을 잃었다.

 

 만월의 아이로 지목된 이는 일주일 간 신전에서 생활하며 몸과 마음을 가다듬는다. 물론 쿠로오는 이를 거부하였다. 이번에 필요한게 가장 상처많은 거였던가, 대충 그런 거였으니 가다듬을 이유가 없다는 것이였다. 소란으로 이어졌지만 이내 그를 자유롭게 놓아주었다. 경비병의 말에 따르면 집행사제의 명이였단다. 젠장. 쿠로오는 작게 신음했다. 뭐든 좋으니 그의 눈 밖에 나고 싶었다. 보고 싶지도 않았다. 이 따위로 남에게서 듣고 싶지도 않았다. 그런 마음이였다. 교차되었다. 여전히 머리가 아팠다.

 결국 그는 극단적으로 가기로 마음 먹었다. 자살기도라면 본인이 무리였다. 그러고 싶지도 않고 겨우 이 따위의 애들 장난에 놀아나겠답시고 목숨을 버리고 싶진 않았다. 간단했다. 넘어졌을 뿐이다. 그게 넘어지면서 머리를 박은 바람에 피가 새어나온다면 얘기는 달라지겠지만 말이다.

 쿠로오가 눈을 떴을 때는 제 방이였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미친 의식을 위한 제물의 방이였다. 머리에는 익숙한 손놀림으로 붕대가 감겨있었다. 제법인걸. 뭐 이대로 상처가 늘었다고 좋아라 하려나. 그건 그거대로 재미없다고 생각하며 쿠로오는 팔을 쭉 뻗었다. 투박했다. 조각사가 그런 것이였다. 무엇보다 아름다운 것을 파내지만 그 만큼 손을 혹사시키는 일이였다. 그런 점이 쿠로오를 사로잡았다. 왠지 희생정신같다나 뭐래나. 분명 이 손을 알고 있었기에 지명당한 것이리라. 머리는 맑아지지 못했다.

 

 결국 이러니 저러니 별다른 특별한 것도 없이 의식 날이 성큼 다가왔다. 심란하던 마음은 생각보다 차분했다. 다 끝났다는 걸까.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조금 우스웠다. 조금은 솔직했다면 좋았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머리를 헤집었다.

 

 "나오시지요."

 

 낮은 음성에 쿠로오는 발걸음을 옮겼다. 뭐 어때 이젠 전부 끝나는걸. 그가 신전의 뒤뜰로 향하자 그의 눈은 관중들로 가득찼다. 이제껏 저 위치에 있었던 제 자신을 떠올리자니 조금은 역겨웠다. 매번 그 따위로 생각해놓고 보러왔었던거지. 겨우 이런게 뭐라고. 그는 대리석으로 깎인 제물대 위에 올라 무릎을 꿇었다. 어쩌면 절대 오지 않을 것만 같던 순간이 코 앞에 다가와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의외로 굉장히 골치 아픈 것이였다.

 

 "켄마."

 "쿠로, 안녕."

 

 다시는 보지 않을거라 다짐했던 얼굴이 수면 위로 드러나는 것. 보고 싶지 않았다니, 이렇게 그리워했는걸. 쿠로오는 피식 웃었다. 저 손에 죽는거구나. 여전히 핏기 가신 손을 바라보며 그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저를 내려다보는 켄마를 올려보았다. 달을 등지고 서 있었기에 어둡게만 보였다. 무슨 표정을 짓고 있는지 조차 가늠이 되지 않았다. 평범히 무표정이려나.

 

 "오랜만이네."

 "아아- 그런걸, 확실히."

 "보고 싶었어?"

 "글쎄. 어떻다고 생각하는데?"

 

 난 보고싶었는걸. 켄마가 말했다. 그랬구나. 쿠로오가 말했다.

 

 켄마는 한 걸음 다가와 그의 앞에 섰다. 무엇하나 보이지 않는 어둠이였다.

 

 "대답해줘."

 "별로. 난 별로. 보고싶지 않았어. 응."

 

 쿠로오는 웃었다. 켄마는 머리 위로 칼을 들어올렸다. 떨어진다. 쿠로오는 짧은 순간 켄마를 바라보고 있었다. 조금 익숙해져 옅게 비치는 얼굴은 울상이였다. 니가 왜 그런 얼굴이야. 왜. 떠난건 너였잖아. 먼저 손을 놓은 것도 너였잖아. 왜.

 

 "거짓말."

 

 요란한 소리를 내며 칼은 쿠로오의 오른편으로 떨어졌다.

 

 "아니야."

 "거짓말. 그럼 왜 그렇게 울거같은 얼굴하고 있는거야, 쿠로는."

 "그야- 빌어먹을 만큼 아름다운걸. 조각에 담지 못할 만큼, 그런 만월인걸."

 

 켄마는 주저 앉았다.

 

 "쿠로."

 "응."

 "만월의 의미, 알아?"

 "아마, 기꺼이 나를 주어도 좋아요 였던거 같은데."

 

 켄마는 쿠로오를 올려다보았다. 그 안에 언제나 만월이 담겨있었다. 아- 아름다워.

 

 "쿠로한테 있어서 나는 뭐야?"

 "켄마."

 "대답해줘, 얼른."

 "무슨 답이 듣고 싶은거야."

 

 알고있는 주제. 켄마는 두 팔을 벌려 쿠로오는 끌어안았다. 쿠로오는 검고 노란 그 머리칼을 조심스레 쓸어주었다.

 

 "넌 내 만월이야."

 "쿠로라면, 날 줘도 좋아."

 "그거 고백이야?"

 "아마."

 

 그것은 품 안에 만월이 안겨오는 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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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에...사실 뭘 쓰고싶었는지 저도 모르겠습니다..

 

그냥 저런 포지션이 보고싶었습니다..쿨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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