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고야아아아ㅏㅏㅏㅏㅏㅏㅏㅏ 


(뱀파이어AU 라고해도 사실 별거없습니다, 존재 정도)


-


 "어째서 저런 녀석이란 말입니까."


 "이건 수치입니다."


 "어디서 굴러들어온 되먹지도 못한 것이.."


 "달리 방도가 없는건 사실이잖아요."


 "더러운 녀석."


 생애 첫 기억은 유감스럽게도 질타에 불과했다. 그리 달갑지도 않았지만 연유를 알 도리도 없이 쏟아지는 말 하나하나가 표피를 찢고 진피를 가르며 비참히 도살당하는 기분. 이대로 갈가리 분해되서 아무것도 아닌게 되어버리고 싶다고 생각했던건 꼬박 태어난지 다섯 해가 되던 해였다. 평범하게 죽어버렸으면 좋았을텐데- 라고 속좋게 내뱉을 처지가 아니였다. 일가 전체가 한패이자 공범이나 나름없었다. 죽으라고, 이참에 죽어버리라고. 이렇게 비참하게 구질구질하게 사느니 눈 질끈 감고 죽어버리라고. 어차피 니까짓게 뭐라고 꼬맹이 하나 죽는다고 일가가 살라지지도, 명예가 사그라들리도 없다고. 사실이였다. 무엇하나 빠지지 않고 진실. 그 점이 한층 아래까지 발목을 잡아당겼다. 

 용케 지금까지 살아있노라 해도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이젠 뭐 살아있는게 무슨 대수냐. 뱀파이어 라는 어중간한 지위의 형태로 태어나게 되면 좋든 싫든 대부분은 영생을 누리게 된다. 도중 살해당해버리는 녀석들은 제외 대상에 불과하지만. 그런 영생의 생물이라 해도 어리석은건 어쩐지 다를리가 없는 모양이였다. 본래 핏줄을 타고난 왕가에 대한 불복종으로 모든게 뒤집히고 죽고 죽이는 약육강식에 끌려가던 천년 전쟁에서 결국 왕가는 한 놈도 남김없이 멸족해버리는 일이 벌어졌고 결국 상급가문에 속하는 다섯 가문이서 골고루 챙겨먹게 되었다. 권력을 위해 피 뿌리던 싸움은 가문 싸움으로 번지게 되자 수장을 거부하는 이들 역시 생겨났다. 겨우 삼일전하 따위를 위해 영생을 버리지는 못했던 모양이였다. 그렇다고 해서 아무나가 수장 자리에 오를 수도 없는 노릇이였다. 수장이 되기위해선 세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만 했다. 첫째, 순혈일것. 둘째, 적자일것. 셋째, 일족과 닮지 않을것. 납득가지 않는 마지막 조건은 사실 뭉뚱그려 적당히 이름을 붙인 것이였다. 유별나게 일족 중 신체적으로 타고난 놈들이 존재한다. 주로 색으로 두드러지는데, 눈, 머리카락, 피부, 손톱, 입술 등에 군데군데 색이 묻어나기도 한다. 


 코즈메 일가는 지배가문 중에서도, 뱀파이어 일족 중에서도 유별나기로 유명한 가문이였다. 대체적으로 익사해버리는 경우가 종종 일어나는 만큼 물에 저항을 가지는 법인데 이 가문만은 친근히도 여겼다. 아마 일가에서 아무도 익사 당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소문이 항간에 돌지만 뱃놀이라던가 수영을 즐기는 탓에 그닥 흥미로운 취급을 받지도 못하는 모양이였다. 그런 이유에서인지 선조들부터 살아온 성 역시 해안 절벽에 지어져 있는데다 지배 영토는 두말할것도 없이 내해를 끼고 있다. 어디서 비롯되었는지 모를 인구가 덜 몰린다는 편안함을 위한 선택이였다지만 모종의 이유에서 몰려든 사람이며 뱀파이어에 의해 다음 수도 이전지로 확정이 나버릴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 일가는 역대의 수장이자 영주들의 제 몫을 톡톡히 한 탓도 있겠지만 예외없이 고양이를 떠올리게 하는 얼굴 상을 가지고 있는게 특징이다. 그렇기 때문에 곧잘 정체가 탄로나는 일이 벌어져 현지시찰도 어렵다고 퉁명스레 불만을 토로하는 일원들도 있었다. 유쾌하다고 웃어넘겨짚고 싶다만 현지시찰을 몸소 다니실 귀족나리는 그닥 존재하지 않는다. 보나마나 어디가서 인간 하나를 적당히 꼬시거나 잡아채 내장이나 뒤지며 즐거운 시간을 보낼게 뻔하니 골칫거리 민원에 불과했다. 


 보름달이 뜨는 날이면 지배가문이서 상황보고나 필요에 따른 협상이나 불가피한 싸움을 피하기 위해 회의를 여는데, 가장 달의 정기를 잘 받는 날이기에 선호하는 모양이다만 그런 이유와는 무슨 관계가 있는지도 모를 만월식을 가지게 된다. 유감스럽게도 다음 회의 장소가 코즈메 일가이기에 얼마남지 않은 만월식 -을 빙자하는 호화로운 만찬식에 불과하다- 을 위해 이래저래 바쁜 듯 보이지만 수장인 켄마는 여전히 침실에 틀어박혀 나올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나오지 말라는 식의 협박을 받은 것은 아니지만 암묵적으로 이 일은 친척에게 위임했기 때문이다. 가문 힘의 상징이자 권력과 명예를 내보이는 멍청한 짓거리라는 이유로 굉장한 세금을 낭비해대는게 사실이였다. 장소 물색이니 뭐니 하며 경비도 될대로 뜯어내가는것을 보면 단지 어딘가의 양아치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원해서 황안 따위를 안고 태어난 것도 흑발도 아니였다. 남들처럼 일가의 이들처럼 평범하게 적안에 금발이고 싶었다. 적당히 타협보자면 차라리 인간으로 태어나 눈에 띄지 않고 살아가길 바랬다. 태어나지 않았다면 그것이야말로 최선이였다. 다만 그런 선택지는 처음부터 없었다. 제 의사 반영따위 될리가 없는데 바란다는 사실이 조금은 우스우면서도 비참하게만 다가왔다.


 "수장님, 야쿠님께서."


 "-들여보내세요."


 일일이 따지자면 하나부터 열까지 죽음으로 결말을 내는 바람에 골치가 썩어들어가는 기분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일같이 저 문 너머서 시녀가 말을 걸어올 때마다, 저 사람도 날 비웃겠지? 라는 뻔한 질문을 도로 던지고 있는 자신이였다. 돌아오리라는 것쯤은 알고 있어도 그게 어찌될지 알면서도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묻고 또 묻고 되물으며 죄악감에 시달려야만 했다. 그러지 않으면 도무지 참을 수가 없었다. 간단한 이유였다.


 "또 그러고 있냐, 넌."


 "아-."


 "아-, 가 아니라고. 회의 준비는 끝낸거야?"


 "적당히. 것보다 귀찮아."


 "귀찮아라고 해도 아무도 대신 회의에 참석해주지 않는다고. 게다가 이번은 주최니까 봐줄리도 없잖아."


 켄마는 고개를 반대방향으로 돌리며 시선을 회피했지만 별 의미없는 행동이였다. 어깨 한쪽이 안으로 우그러드는 스프링에 아래로 기울었다. 야쿠는 걸터앉은 채로 몸을 돌려 금세 검은 뿌리가 돋아난 짧은 단발 머리를 쓸어주었다. 예상 외로 가만히 있어주는 켄마에 신나게 세차레 문지르자 힘겹게 손을 들어 양가로 저어보였다.


 "전혀 안귀엽다고, 너 같은 애는."


 "귀엽고 싶지도 않아."


 "그건 니 입장이지. 형의 입장으로는 귀여울 나이에 좀 더 어린 애마냥 굴어도 된단 소리다."


 "-야쿠가 수장 했으면 좋았잖아."


 "여보세요, 있잖아요. 나 적자가 아니거든요."


 "적당히 윗사람 처리하면-"


 "애가 무서운 소리하고 앉아있네, 어."


 다그치는 말투에도 손은 여전히 머리카락의 끝자락을 오가고 있었다. 이리저리 흩어진 금빛 사이로 하얀 목덜미가 드러났다. 선명하게 자리잡은 검은 역십자가 위에 다시 손가락 끝으로 그어보이는 야쿠의 얼굴은 마냥 좋아보이지도 못했다. 저보다 어린 나이에 수장자리에 앉은 동생이 안타깝지 않을리가 없었다. 하다못해 허울 좋은 놈이였다면 하루가 멀다 하고 찾아올리도 없었다. 제 부모를 포함한 일가의 일원들에게 겨우 네살배기가 자살을 강요당하는 그런 사태가 벌이진다는건 일가의 비밀이였다. 좋게 들릴리가 없으니 적당히 입막음이나 시켰겠지만 드러내기 치욕스러운 일임은 변함없다. 매번 용케도 살아주었구나 라는 아슬아슬함을 느끼며 방문 때마다 문이 열리고 옆의 시녀가 비명을 지르지 않게 해달라고 비는건 어째서인지 당연스러웠다. 말수가 적은 것도, 타인의 손길을 거부하는 것도, 일가에게 배신당했음에도 차마 그들을 쳐내지 못하는 것도, 볕 드는 날을 좋아하는 것도, 고집스러우리만큼 일가대면식에 불참하는 것도, 아이러니 하게도 누구보다도 가장 코즈메 가문의 특징이 두드러지는 것도, 이 모든 걸 끌어안고 있는 작은 아이가 아직 살아있다는 것도 야쿠는 유감을 느끼면서도 조용히 옆에 있어줄 수 밖에 없는 이유였다. 제 부모역시 이 아이더러 경박하다며 욕짓거리를 일삼고 독살을 시도했다는 사실에 대해 책임감을 가지고 있다는 시작이 결코 좋을리는 없었다. 그럼에도 가만히 받아들인 쪽은 켄마였다. 성인식을 치루기 불과 일이어년 전, 끔찍한 소문의 진상을 알게 되었고 한밤 중에 무례라는 것을 알고도 쫓아들어가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었다. 고개를 들 수 없었다. 말그대로 치욕감에 가득차 최초로 코즈메 가문에서 익사 당하는 뱀파이어라도 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잠 들지 못한 아이의 눈 아래는 길게 밤하늘이 이어져 있었다. 다만 별 같은건 존재치 못했다. 어쩌면 당연했다. 길고 긴 덕지덕지 배덕감이 묻어난 그의 고백에 켄마는 조용히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구부러든 마른 등을 끌어안아주었다. 


 '고마워.'


 단지 그 뿐이였다. 그리고 야쿠는 깨달았다. 코즈메 켄마가 수장일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야쿠."


 "어-."


 켄마는 도로 고개를 돌려 야쿠를 올려다보았다. 지는 석양에 눈가를 찌푸렸지만 이미 반쯤 배게에 파묻혀있는 상태인지라 그 안으로 파고들기를 반복하다 들썩- 하고 어깨를 들었다 내리놓으며 나지막하게 속삭였다.


 "고마워."


-


 "코즈메-. 수고."


 "아. 아카아시."


 "별 시덥잖은걸로 이렇게 매번 불려오는거 꽤나 불쾌하지 않아?"


 "확실히."


 "제멋대로잖아. 곤란하다고, 이 쪽은 쌓인 일도 많고, 얼른 돌아가서 마저 남은것도 처리해야되고-"


 "북방은 힘들겠네."


 "곧 여름이잖아? 들떴다고 다들."


 "축제?"


 "응. 특히나 보쿠토 씨가."


 "보좌?"


 "응."


 "오늘은 안보였는데."


 "뻗어있어. 두고 오려했는데 따라오겠다고 생고집을 부려대는 바람에."


 아카아시는 앞머리를 쓸어올리며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주최지가 남쪽이다 보니 반대가 거처인 아카아시네는 항상 그랬다. 

 

 냉혈인이라는 말은 북방민족에 의해 붙여진 이름인데 추위에 강해 극한지까지 담당하는 모양이지만 더위는 약한게 틀림없었다. 그런 사유에도 잘도 목끝까지 단추를 잠그고 예복을 차려입은 아카아시 케이지를 볼때마다 혀를 내두르며 저는 절대 그러지 못한다고 자신에게 신신당부해온 켄마였다. 흘낏 옆모습을 바라보면 짧은 곱슬기 도는 흑발에 적안이 보였다. 부럽다. 저 쪽은 흑발이평범이니까. 켄마는 마름침을 삼켰다.


 "아카아시."


 "응."


 "손 보여줄 수 있어?"


 "넌 매번 그러네."


 어쩔 수 없다는 양 아카아시는 손에 낀 장갑을 벗어 손끝이 잘 보이게 켄마에게 내밀었다. 꽤나 길게 자리한 검은 손톱을 몇번이고 매만졌다. 야쿠가 일전에 그만두라고 말했었지만 괜찮다는 아카아시의 말에 한숨만 이어졌다. 흥미를 잃은 듯 손을 놓으면 도로 장갑을 끼는 모습을 조용히 바라보아야 했다. 같은 족이지만 고혹적이라는 말만이 남았다. 


 "눈에 띄는 편이 좋지 않아?"


 "그닥."


 "난 다들 좀 더 화려한 편이 좋았다고들 말하는데 말이야."


 "부럽다구, 그런 거."


 "그치만 난 코즈메 눈, 좋아해."


 "난 싫어."


 "그야 본인은 싫은 법이지."


 "수장따위 하고 싶지도 않았고 말이야."


 "하긴. 코즈메는 이런거 귀찮아하는 타입이잖아."


 "나도 북방에 갈래."


 "안돼. 춥다고 북쪽은."


 "곧 여름이랬잖아."


 "넌 남쪽 출신이니까- 게다가 너 햇볕 드는거 좋아하잖아."


 "응."


 "그럼 그건 기각."


 "싫네."


 아카아시는 푸스스 웃으며 잠시 눈을 맞추었다. 


 "있잖아, 코즈메. 선물이 있어. 받을래?"


 "글쎄- 귀찮은건 싫은데."


 "그런 류는 아니니까 걱정마."


 "뭔데."


 "인간."


 "-인간?"


 "응. 하프인데 일처리도 잘하고 제2 보좌."


 "보쿠토 씨는 어떻게 된거야."


 "제1 보좌라고 해도 사실 명목상이잖아. 약혼잔데 뭐."


 "그런건 아니지만, 아니 됐어."


 "그래서, 받을래?"


 "하프라고 해도 와닿지도 않고. 나 우리 일가 이외에는 본 적도 없고."


 "사실은- 위쪽은 알잖아. 인간들 살기 힘든거."


 "그거야 그렇지만.."


 "유민으로 넣기에는 하프다보니 걱정되는 것도 있어서 이것저것 부탁하기에는 니 사정을 내가 모르는 것도 아니고."


"그거야 그렇지만,"


 "원래는 중앙으로 보내려 했는데 요즘 하프들 유민들한테 천시받는거 알잖아. 중앙에선 얼마전에 연쇄 살인만지 뭔지도 있다더라고. 일만 커지게 말이야. 그래서 이참에 유능한 보좌나 두세요- 라는건데."


 "야쿠가 있잖아."


 "야쿠 씨는 보좌가 아니잖아. 아니면 정식 보좌로 임명했어?"


 "전혀."


 "여기 적성인데 정 안되겠으면 돌려보내. 그래도 난 괜찮으니까."


 "-알았어."


 "그럼 대충 해서 보낼게."


-


 "보낸다며."


 "역시 혼자는 무리랄까. 너희는 너무 잘 돌아다닌다고."


 침실을 습격받은 켄마는 여전히 이불에 파묻혀 기습해온 아카아시와 그 뒤의 인간을 주시했다. 늘 아카아시의 곁에 붙어다니는 보좌랑 엇비슷한 체격에 다시 보아도 흑발이라는 점은 변하지 않았다. 눈을 떼지못하는 켄마를 바라보며 아카아시는 작게 웃었다. 보쿠토 씨가 아니란 말이야. 


 "소개할게, 제2보좌'였던' 쿠로오 테츠로 씨."


 "그런 과거형 소개는 그만두는게 어때?"


 "사실인걸요. 부정하지마세요, 모처럼의 이력인데."


 "아아 영광입니다, 도련님."


 "쿠로오 씨 그런 태도라면 분명하게 말하는데 이 면접도 불합격이고, 원래 직장에서도 목이 떨어진다고요."


 "그렇게 웃으면서 살벌하게 말하지마, 젠장. 무섭다고."


 "하프가 잘도 그런 말을 하네요. 겁내는 척이라도 해보세요. 웃기지도 않아요."


 몇 마디하지도 않았지만 드러나는 능구렁이 같은 구석에 켄마는 저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 아카아시의 본래 보좌와는 전혀 상반되는 타입이였다. 귀찮아보이는건 덤.


 "그리고 저쪽은 유명하디 유명하신 유능한 남쪽의 코즈메가 수장님이신 코즈메 켄마."


 "그런 낯부끄런 수식어 갖다붙이지마."


 "오- 길게 말했다."


 "아카아시.."


 "농담."


 "만나뵙게되서 영광입니다, 수장님."


 "수장님이라고 하지마."


 "에."


 "저랑 보쿠토 씨보다 힘들겁니다. 물론 다른 이유지만요."


 "우선은 해방이란 소리잖아. 우와-."


 "지금 실컷 기뻐해주세요. 부디."


 "아카아시는 웃는 얼굴로 그런 소리 잘하구나."


 "아, 이 사람이랑 보쿠토 씨랑 있다보니 저절로 몸에 익게 되버렸다고 해야할까."


 "무섭네, 그거."


 "쿠로오 씨, 축하드려요. 코즈메에게 무섭다 라는 소리 듣기 어려운데 말이죠."


 "오 좋은거냐."


 "네, 저도 반쯤 해방이니 멍청한 부엉이나 달래러 돌아가보도록 하겠습니다. 코즈메 그럼."


 "아카-,"


 "-가버렸네요."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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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퀘 ; 봉고 님

                                               -                    

 

 시선이 닿는 곳마다 탐스런 꽃송이가 피어나는 기분이였다. 그것은 장미를 닮은 빼어난 색이였고 지독하게 숨막히는 광경이였다. 동공이라도 마주하면 와닿는 순간 눈 앞을 가득 메우는 진한 향에 이내 눈을 감아버리고 마는 것이였다. 장미려나. 중얼거리자 김 빠지듯 새어나오는 순수는 작은 꽃망울을 떠올리기 너무나도 당연했다.

 

 쿠로는 무슨 꽃 생각해.

 

 좋아한다던가 선호한다던가로 묻지않나, 그런 류의 질문.

 

 어느 쪽이야.

 

 글쎄.

 

 그거 어디에 답하는 거야.

 

 글쎄. 뭐라고 생각하는데, 켄마.

 

                                               -                    

 

 인간은 변화에 둔하던가. 켄마는 결론을 내지도 않을 골 아픈 질문을 되풀이 하며 오전 수업의 끝무렵을 맞이했다. 결코 인간 따위의  넓은 범위로는 한정 지을 수 없는 탓에 바짝 깍인 손톱으로, 사실 상 손가락으로 책상 모서리를 불규칙적으로 두드렸다. 손톱 끝이 아린 것은 분명 눅진히 붙어있던 살점을 떼어버렸기 때문이였고 손톱을 다듬은 것은 부활동 때문이였으며 이런 손 상태를 그의 소꿉친구가 보기라도 한다면 기정사실로 한 소리 들을게 뻔했다. 질문이 어떤 형식이든 결국 답은 귀차니즘에 도태된 고약한 생물체라는 결말일 터였다. 눈에 훤한 엔딩은 피하고픈 심정이였으나 이틀 전 넌지시 정리를 요구한 것은 다름아닌 쿠로오 였기에 별 도리도 없었다. 그야 대뜸 부실에서 환복 중일 때 즈음 들이닥쳐서 잡아당겨져 핏기 맺힌 손끝과 불투명의 하얗고 쓸모없이 계속 기는 손톱의 실종사건으로 사람 좋은 얼굴을 하고는 시끄럽게 굴 쿠로오 였다. 사라진 켄마의 손톱을 찾습니다, 따위의 웃기지도 않을 짓을 벌일 근미래를 예견하는 켄마의 미간은 보기 좋게 구겨졌다. 귀찮아-. 책상 위로 나른하게 엎드려 뻑뻑한 눈을 억지로 감았다. 우선은 아무래도 좋았다.

 

 배구부 내에서는 이제 입 밖으로 꺼내기도 진부한 이야기에 불과하지만 타학교 배구부라던가 전교에서라던가 둘은 왠지 모르게 이름이 알려진 '유명인' 이였다. 물론 '너희들이 말하는 저 비실비실한 꼬마가 우리 네코마의 척추이고 뇌이며 심장입니다' 따위의 부끄러운 발언을 잘도 해대는 덕에 대외선전 하나만큼은 효과가 굉장했다. 교내에서 이름을 날리게 된 것은 분명 배구부라는 타이틀이 한 몫했을게 뻔했지만 그 하나만으로는 설명이 턱없이 부족했다.

 갑작스레 2학년 층에 수험생이신 3학생들이 유독 한 반에 몰려있다던가. 복도나 체육관에서 남의 눈총을 받는다던가. 귀찮음에 흠뻑 젖은 발을 끌어 기꺼이 주장의 호출에 응하면 미묘한 기류가 흐른다던가. 켄마로써 그리 달가울 상황이 아닌데다 덧붙이자면 고교 2학년이나 되건만 한동안 아침에 이불 속에서 도통 일어날 생각을 않은 채 그를 열성적으로 깨우려는 어머니께, 학교 가기 싫어 라는 투정을 해야만 했다. 타인의 시선이 익숙치 않다는 사회 부적응자의 본능에 따른 것이기도 하지만 의미모를 관심은 가십거리에나 불과할 것이였고 얼굴도 이름도 뭣도 모르는 사람의 입에 제가 오르내리는 꼴을 상쾌하게 웃으며 받아드릴 족속이 과연 몇이나 될까.

 

 태초는 항상 리스크를 감수해야한다. 그것이 태초이자 최초라는 칭호를 짊어지는 응당한 무게이기 때문이다. 그 리스크란 것이 보잘 것 없이 자잘하고 의미없는 무범위 속 타겟을 벗어난 사냥일지도 몰랐고 치명상으로 이어지는 일격일지도 몰랐다.

 

 "쿠로."

 

 그는 자주 말버릇처럼 말하곤 했다. 켄마의 그 부름이 마치 없는 것을 보채는 것만 같다고. 어려운 말이라며 게임 속 사인드 트랙 사이로 흘려보내버렸지만 이제야 그게 무슨 말이였는지 조금이나마 알게 된거 같은 켄마였다. 끝도 없이 무언가를 갈망하건데 자신 역시 무엇을 원하는지 알 길이 없다. 자각이 없다.

 

 코즈메 켄마는 사회 부적응자 부류의 인간이니까, 그러니까 좀처럼 꾀를 내지 않았다. 머리가 좋다는 사실을 본인도 무의식에 주억여도 들통난다는 사실보다 누가 버릇 고약한 녀석이 아니랄까 만사가 귀찮다는 허울좋은 변명이였다. 게다가 속인다거나 백 번 양보해 속아 넘어가주는 그의 소꿉친구는 있어도 속는 쿠로오는 없었으니까. 요령 좋은 그에게는 당해낼 재간도 없을 뿐더러 괜히 힘 빼는 일은 벌이고 싶지 않은게 본심이였다.

 

 "왠일이야, 제 발로 찾아오고."

 

 역시 달랐다. 억지로 만들어냈잖아, 그 얼굴.

 켄마는 대뜸 손을 그의 앞에 들이밀었다. 예상대로 눈살을 찌푸리더니 찬찬히 뜯어보다 이내 고개를 들었다. 손끝마다 작은 꽃이 맺었다.

 

 "지금 잘했다고 말해주길 바라는건 아니겠지."

 

 "아파."

 

 "약은."

 

 고개를 가로 젓자 그 큰 손으로 다섯가락을 모조리 끌어안았다. 엄지는 안 아픈데. 아아-. 기꺼이 놓아주었다. 꽃은 순식간에 만개했다. 볼품없어. 중얼거리며 사로잡힌 제 손을 도로 탈환했다. 코즈메 켄마 님께 +150P. 그래도 승전보 따윈 없었다. 단위부터가 다른걸 어떻해.

 

 "데려다 줄게."

 

 "혼자 갈래."

 

 무미건조한 목소리였다. 그래서 더욱 억척스레 굴었다. 겨우 그게 다 였으니까. 몸에 베인 행위 하나 하나가 단순히 반복학습이나 다름없는 반복 퀘스트를 통해 이루어진 것이였고 말 한 마디는 가상 현실의 대화의 보기좋은 예시 답안 여러 개 중 그의 선택안일 뿐이였다. 혼자. 세상에 누가 이렇게 외로운 말을 만들어낸 걸까. 셔츠 소매를 움켜쥐는 쿠로오의 손길을 뿌리치고 켄마는 나섰다. 혼자. 외롭지 않게 '두' 다리가 걸었다. 그래봤자 혼자이걸. 따라붙는 발자국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좀 더 빨리 끝냈더라면 좋았을텐데. 웅얼거리며 그는 발을 끌었다. 계단 오르기 따위 세상에서 제일 싫었다.

 

 아니, 제일은 아닐지도.

 

                                               -                    

 

 "왜 둘은 냉전인거야."

 

 "그런거 아니야."

 

 "세간에서 이런걸 냉전이라고 부른단다, 켄마 군."     

 

 "놀리지마."

 

 야쿠는 팩 음료를 구겼다. 메마른 소리였다. 텅 빈 소리였다.

 

 "게임이라도 하는건 어때."

 

 "무리."

 

 "어째서."

 

 "가지고 있는 게임이라면 2인용 이니까. 그러니까 혼자는 못해."

 

 "혼자라."

 

 딱히 '엄마' 라는 포지션에 기댄 것은 아니였다. 게다가 중요한 사실은 켄마가 먼저 나선게 아니니 말이다. 주장과 부원 사이의 문제였고 미들 블로커와 세터 사이의 문제였고 친구와 친구 사이의 문제였으며 쿠로오와 켄마 사이의 문제였다. 한꺼풀씩 도로 싸매는 켄마도 켄마였지만 이번만큼은 어째서인지 굽히지 않는 쿠로오의 공이 컸다. 뻔히 알면서 나 몰라라 식인 주장 덕분에 수고스러운건 야쿠였다. 함부로 말 꺼내기도 힘드니 가볍게 입을 열 수도 없는 노릇이였고 서로 다른 이유로 진실을 외면하는데 지극히 관대한 저 둘을 바라보는 야쿠로썬 속이 타들어갔다.

 

 "그 자식이 갑자기 변한건 언제야."

 

 "글쎄. 3주 전 쯤"

 

 "뭐 어땠는데."

 

 "제멋대로야."

 

 "아아-." 

 

 그런데 눈은 변하지 않았어. 켄마는 입을 꾹 다물었다. 아니면 금방이라도 나약한 소리가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언제나 처럼 못이기는 척 패배선언을 해주길 바라고 있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였다. 그렇기에 좀 더 시간을 끌어야만 했다. 장기전은 시간 싸움이니까. 견뎌야하니까.

 

                                               - 
                                          

 천성이 무언가를 탐내지 않았다. 그 마저 귀찮다 넘겨짚을 지도 모르지만 아마 원하는 것이 손에 넣기엔 벅차다는 사실을 좀 더 빨리 자각한 탓일지도 모른다. 그럴법도 한 것은 켄마에게 있어 현실과 가상 공간의 갭은 꽤나 컸고 굳이 메우려들지 않았다. 이유라면 그래야할 마땅한 이유가 없으니 당연했다.

 

 어렴풋이 이걸 원하고 있을지도 몰라 정도의 무심함이였고 덕분에 뭐 적당히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하곤 해왔다. 애초부터 청춘 따위와는 멀고도 멀었으니 이제와 가까이 하는 것은 켄마의 룰에 어긋나는 행위나 다름없었다. 게다가 자기 식대로 라는 말이 있듯이 제 나름의 고교생활을 보내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용케 배구를 붙잡고 있는 것은 쿠로오의 공이 컸지만 질리지도 않고 손을 한데 모으고 '우리들은 혈액이다' 따위를 듣는 것은 그 하나로 설명하기 부족했으니까 말이다.

 

 부활동은 가지 않았다. 내빼기 식이냐 물으며 그렇다 긍정할 터였다. 이런 상황에 얼굴 보기 껄끄러운게 당연하니까 괜히 힘 빠질거같아 교실에 남았다. 텅 빈 교실에 홀로 자리를 지키며 게임기를 켰다. 금세 땅거미가 내려앉은 덕에 파란 화면에 눈살을 찌푸렸다. 동그라미 버튼을 두어 번 누르자 얼마 전 하던 게임의 시작화면이 로딩되었다.

 

 혼자서는 못하는걸.

 

 그렇게 괴기스러운 전투 시뮬레이션 화면을 바라보건데 기분이 가라앉았다.

 

 "아, 있다 있다!! 켄마 상- 쿠로오 상이 불러오라고..!"

 "..리에프."

 

 "네?"

 

 "이거 쿠로 갖다줘."

 

 "부활 안오시는 검까?"

 

 켄마는 고개를 주억이며 게임기에서 꺼낸 칩을 건내었다. 조금 뜨끈한 게임칩을 받아든 리에프는 영문을 모르겠단 표정을 해보였다.

 

 "그럼 오늘은 누가 토스올려주는 검까?"

 

 "...몰라."

 

 "역시 부활가요. 쿠로오 상도 걱정하고, 야쿠 상도 걱정하고..또,"

 

 "가."

 

 켄마는 안절부절 못하는 리에프를 내버려둔 채 교실을 나섰다. 걱정 따위 할리가 없잖아. 그런거 뻔하잖아.

 

 "켄마 상-! 밖에 비!! 오는데.."

 

 리에프는 그저 받아든 칩과 켄마를 번갈아 보며 꽤 벅차게 쏟아지는 늦은 오후의 소나기를 떠올렸다. 우산, 있으시려나.

 

 물론 가방 무거워지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켄마는 부수적인 물건따위 흔쾌히 넣고 다닐리가 없었다. 운동화의 신발끈이 풀려있었다. 젖을텐데 아무래도 좋았다. 이미 축축한 현관을 바라보는 눈이 마냥 달갑지 않았다. 가방을 품 깊숙히 끌어안고 빗 속으로 내던져졌다. 걸었다. 발이 끌렸다. 그래서 걸어야했다. 묶이지 못한 신발끈이 애처로웠다.

 사실 볼록한 앞주머니에 든 것이 딱히 꺼내보지 않아도 알고 있었다. 틀림없이 우산일 것이다. 비 맞고 감기 걸리지 말라며 상냥하게 건낸 우산이다. 이름을 닮아서 검은색인지 의미없는 것을 떠올리며 켄마는 걸었다. 쿠로오의 손을 탄 것이기에 달갑지도 않았다. 오히려 당장이라도 내던지고팠다. 그러니 가만히 끌어안고 가는 수 밖에 별 다른 수가 없었다. 버리면 네가 슬퍼할거잖아. 언제부터 그 상냥함을 제가 흉내내고 있는지는 저로써 알 방도가 없었다. 머리가 조금 지끈거렸다.

 

 지금 넌 뭘 하고 있을까. 다 식은 게임칩 따위 건내받고는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까. 이번만큼은 제대로 화 낼까. 아니면 또 어쩔 수 없다는 듯 웃어넘길까. 너라면 그런 면에서 두각을 보이니까 걱정 안해도 잘 알겠지. 그래, 걱정할 필요없겠지. 거절이란게 어려운거였구나. 널 잘도 하더니, 이런 거였구나.

 

 석연찮았다. 칩 건낸 것만으로 충분하지 못한 기분이였다. 그래도 어떤가. 이게 제일 저다운 방법이였다. 표면적으로 뿐만 아니라 남들 눈치 보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얼굴을 맞대고 싫어 따위 무리였다. 그야 슬프니까.

 

 "..아파."

 

 "켄마 왔니..켄마-!"

 

 이미 한계나 나름없었다. 억지로 자신을 몰아세워 끌고 온 것일 따름이였다. 눈 앞이 멀어지는 기분이였다. 아프다는 것을 자각할 즈음 다행히 따스한 엄마의 품에 안겼다. 헤아려보건데 극심한 열기에 혹했을 터였다. 그 품을 착각했으니 당연할지도.

 

                                               - 
 "아 깼다, 깻어."

 

 "아-."

 

 "남의 속 뒤집어 놓고 잘 주무셨는지 몰라. 응."

 

 "쿠로."

 

 잔뜩 가시 박힌 말투였으면서 그는 허탈하게 웃었다. 뜨거운 뺨에 닿은 커다란 손이란건 부정하지 않을만큼 기분 좋은 것이였다. 쿠로오 역시 이를 알고 있기에 번갈아 가며 차갑게 식은 손을 기꺼이 내어주었다. 상냥해. 어둑한 방이라 제 자신 조차 보이지 않았지만 얇은 이불조차 덮지 못하고 드러난 얼굴 위로 그 동안 벼루기라도 한 마냥 꽃송이가 한 다발로 피어오르는 것이 똑똑히 보였다.

 

 "쿠로."

 

 "듣고 있어."

 

 "그렇게 보지마."

 

 "어째서."

 

 "조만간에 앞도 안보일거같으니까."

 

 "그럼 내가 손 잡아줄게."

 

 "...악취미."

 

 "그래서 손 잡아도 되는겁니까."

 

 "글쎄."

 

 "켄마야 말로 악취미 아니야, 이거."

 

 켄마는 쿠로오의 손에 뺨을 부비며 눈을 감았다. 억척스러웠다.

 

 "그럼 쿠로도 답해줘."

 

 "뭔데."

 

 "무슨 꽃 생각해."

 

 "설마지만 아직 마음에 담아두고 있었다던가는 아니라고 말해줘."

 

 "그렇다고 해줄게."

 

 "헤에-. 설마 니가 아직도 그런걸 담아두고 있었다, 라. 뭐 같은데."

 

 "되묻지마."

 

 쿠로오는 낮게 키득였다. 열 오른 모습이 영락없는 아이 같다고 생각하면서도 입 밖으로 꺼내면 혼쭐 날테니까. 여전히 보채고 있었다.

 

 "금어초, 정도면 만족하려나."

 

 켄마는 가만히 눈을 떴다. 보일 리도 없지만 고양이가 떠오르는 덕에 마치 시선이 닿고 있다고 착각해버리고 말았다. 노랗게 초승달을 닮은 눈에 푸스스 하고 웃었다.

 

 "욕망."

 

 "용케도 알고 있네. 어려운데 말이야."

 

 "놀리지마."

 

 켄마는 두 팔을 꺼내들어 쿠로오의 목을 끌어안았다. 좀 더 정확히 하자면 쿠로오가 기꺼이 몸을 숙여 응해주었다. 소리도 없이 입술이 맞닿았다. 쿠로오의 손이 뺨을 어루만졌다. 손가락 끝자락 너머 속눈썹이 간지러웠다. 그 역시 금어초를 빼닮아있었다.

 

 "켄마."

 

 "...아-."

 

 "게임 마저 해야지."

 

 "응."

 

 쿠로오는 막 열기가 가시기 시작한 연인을 안았다. 셈세하니까. 가슴팍에 닿은 머리를 가만히 쓸자 사그락 거리던 잡음이 가셨다. 당장이라도 붉게 달아올랐을 어린 아이를 놀리고팠지만 지금 만큼은 눈 감아주기로 했다. 제 손에 찢겨나간 소꿉친구로 향하는 러브레터와 적당히 합쳐서 없는 일로 해버리면 되는 일이였으니 말이다.

 

 머리 지끈거리는 담담한 금어초들의 향연이라는 착각을 멋대로 해버리며 아이의 등을 다독였다. 이대로 좋았다. 딱 이대로가.

 

                                               - 

 

 

 

 

 

 

 

 

끝났다-!!!! 꼬박 이틀 이였지만 쿨켄 이렇게

고민해서 쓰는 건 또 처음입니다, 젱장..

뭐 그래도 아무래도 제도 꽤 쓰는 내내 즐겼고

나쁘지만은 않다고 생각합니다.

 

만족스럽진 않지만 뭐 사람은 만족하면서

살 줄 알아야하니, 기브 업이지만

이 정도로 봐주십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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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로켄 전력 60분 ; 우산

 

(쿠로켄은 성인/주제는 빗물과 같이 시궁창으로)

-

 

 켄마는 자주 음악을 틀어놓고 있었다. CD 가 다 돌아가는데 걸리는 시간은 31분 02초. 2초는 항상 버렸다. 매번 31분이 지나면 정지버튼을 꾹 눌렀다 도로 재생 버튼을 눌렀다. 특별히 들을 이유도 없었고 CD 를 듣는 것도 그저 시간을 때우기 위한 일종의 무의미한 행위 쯤에 속했기 때문이였다. 따분하기 그지없었다. 켄마는 속으로 센 숫자가 60에 닿자 보지도 않은 채 익숙하게 정지와 재생 버튼을 눌렀다. 한가하네.

 

 애초에 켄마네 외할머니가 이 작은 잡화점의 주인이셨다. 시골이라 그런건지 도시의 잡다한 잡화점과는 다르게 소박하게 하얀 벽면에 나무 테와 유리로 진열장이 보였고 마을에서 유일하게 붉은 지붕이였다. 가게와 붙어있는 집은 그저 문턱 하나의 차이였다. 게다가 어딘가 동화에서 흔히 볼법한 분위기에 담쟁이 넝쿨이 하얀 벽을 메우고 있었기에 더할 나위 없었다. 진열장과 같이 테와 유리로 이루어진 바깥으로 열리는 나무문을 열어두면 여름에 훌쩍 가까워진 봄 바람이 기어들어오곤 했다. 가게 안은 대부분 나무재질로 계산대 부근 켄마는 작은 소품같은 의자에 다리를 몸에 붙이고 앉아 숫자 세기에 여념이 없었다. 게임기가 고장난 턱에 지루하기 그지 없었다. 그렇다고 게임을 하면 이 기분이 사라질것 같지도 않았다.

 켄마는 고갤 젖혀 천장에 대롱거리며 달려있는 모빌을 바라보았다. 조개 껍데기와 불가사리로 만들어진 모빌은 이따금 바람에 흔들려 종소리같은 음을 만들어내곤 했다. 그 옆에 한창 유행했던 드림캐쳐가 하얀색, 노란색, 파란색이 종종 매달려있었다. 그 옆엔 조금씩 바람이 빠져나가는 중인 공룡모양 헬륨 풍선이 보였다. 진열장에는 작은 머리핀부터 바늘에 실타래, 골무, 참빗, 이 빠진 그릇에 낡은 수저, 거울, 컵, 갈라진 붓, 얇은 공책들, 조각비누, 쿠션, 담요, 하얀 면티, 가위, 슬리퍼, 모자, 연필, 포크, 수건, 도마, 도시락 통, 낡은 카메라, 부채, 목도리, 앞치마, 촛대, 손전등, 비닐팩, 빨대 까지. 정말 '잡화점' 다운 잡동사니가 가득했다. 그런 점이 켄마는 성가셨고 마음에 들었다.

 

-

 

 비가 내렸다. 지독하게도 삼일내리 쉬지 않고 내렸다. 켄마는 앓았다. 비가 오는 날이면 남김없지 열을 토해냈다. 하루도 빼놓지않고 비가 오기 시작할 즈음이면 열이 올라 이미 제정신으로 있기조차 힘겨웠고 마른 땅위에 세게 내리칠 때면 달아올라 어찌하지도 못한 채 안쪽으로 우그러들 것만 같은 몸뚱아리를 쥐여잡고 끙끙 앓았다. 눈 앞이 점점 하얗게 번지다 정점을 찍었을 때 항상 눈을 떴다. 비가 그친 후였다. 땀에 흠뻑 젖어 휘청이는 머리를 부여잡고 일어나 부엌으로 향했다. 물. 눈 앞이 일렁였다.

 

 실례합니다.

 

 켄마는 이를 갈았다. 참아야 돼. 켄마는 겨우 벽을 짚고 서 가게로 통하는 미닫이 문을 열었다. 그것은 CD 의 재생이 끝난 소리였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미닫이 방에 누워있었다. 한참 큰 절대 제 것일리가 없는 져지를 덮은 채로. 아 괜찮아요? 낯선 목소리에 겨우 눈을 뜨니 마을에서 본 적 없는 얼굴이였다. 누구. 이번에 새로 이사온 쿠로오 테츠로, 라고 합니다. 아-. 병원이라도 가봐야하는게 아닌가요. 괜찮아. 조금만 있으면. 비만, 그치면. 켄마는 일으키던 상체에 힘이 풀려 앞으로 고꾸라지면서 다시 정신을 잃었다. 찌그러질거같아. 나. 아마. 

 

-

 

 친절히도 자신의 져지를 남겨두고 간 새 입주민 덕에 켄마는 돌려주러 마을 깊숙히 까지 들어가야만 했다. 싫어. 후드를 눌러쓰고 맑게 갠 하늘 아래 물 웅덩이를 피해 조심스레 걸었다. 사람 대하는게 꺼끄러운 켄마였기에 그를 위한 외할머니의 배려였을까, 아니면 단지 같은 부류였을까 마을 입구 부근에 위치한 잡화점은 마을과는 꽤 거리가 되는 편이였다. 덕분에 켄마는 편했지만 이럴 경우는 전혀 반대의 경우였다. 어디 사는지도 모르는 사람을 찾아야한다. 새 입주민이라고 하면 얼마든지 찾을 수 있을 터였지만 말 걸기가 어렵달까 그냥 다가간다는 그 자체가 힘겨울 뿐이였다. 꽤 깊게 들어오자 켄마는 제자리에 멈추어섰다. 싫어. 그는 져지를 세게 쥐었다. 동네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싫어. 눈 앞이 흐릿해지기 시작하면서 호흡이 불규칙적으로 변질되었다. 싫어, 싫어. 스니커즈가 흙과 자갈에 쓸려 소음을 만들어내며 뒷 걸음질 쳤다. 싫어. 이내 몸을 돌려 마을 어귀까지 뛰었다. 아파. 어귀의 커다란 이름 모를 나무 앞에 주저앉아 가슴께를 쥐어잡고 숨을 토해냈다. 한참이고 한참이고 그러다 천천히 일어나 느릿하게 가게 문을 열었다. 오늘은 무리, 라 중얼거리며 카운터의 의자에 신발을 아무렇게나 벗어던지고 올라앉아 31 : 00 에서 멈춘 카세트를 보더니 재생 버튼을 눌렀다. 그렇게 다시 처음부터 흘러나오기 시작한 익숙한 곡조에 숨을 몰아 쉬었다.

 

 "아, 있다. 있다."

 

 고개를 들자 그곳엔 쿠로오가 서 있었다. 아- 새 입주민분. 잘되었다 싶어 켄마는 제 왼팔에 감겨버린 져지를 건내었다.

 

 "고마워."

 "뭘, 이름이 뭐야, 그 때도 못 들었어."

 "이미 들었을거아니야."

 "네 입으로 듣고 싶은걸. 그 편이 훨씬 기억에 남고 말이야."

 

 켄마는 입을 삐죽였다. 이런 작은 시골 마을에선 젊은 사람보기란게 좀 처럼 쉬운 일이 아니였다. 말동무 정도야 되어줄지도 모르는 일이였다. 스트라이크 존이 협소한 저는 뭐 아무래도 좋았다. 인터넷이 먹통이라는 것 쯤은 이미 알고있었고 슬프지만 꽤 익숙해진 탓이였다. 싫어.

 

 "안 알려줄거야?"

 "...켄마, 코즈메. 켄마."

 "자아 그럼 켄마군, 앞으로 잘 부탁해요, 나이는?"

 "스물 둘."

 "헤에- 어리구만."

 

 그러는 그 쪽은 나이가 어떻게 되는데. 켄마가 눈을 흘겼다. 쿠로오는 씨익 웃었다.

 

 "그 쪽 말고, 쿠로오."

 "...쿠로는 나이가 어떻게 되는데."

 "쿠로, 오 인걸. 뭐 상관없지만. 스물 셋."

 

 겨우 한 살 차이주제. 켄마는 작게 중얼거렸다. 쿠로오는 키득거렸다. 져지를 꿰입으며 가라앉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전에도 저거 틀어놨지 않았었나.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간다, 나중에 다시 올게. 가볍게 머리를 헤집어놓았다. 아-.

 

 "쿠로."

 "응?"

 "쿠로 말고 쿠로."

 

 문가에 서 돌아보는 쿠로오의 발치에는 작은 고양이 한 마리가 가게 안으로 살며시 발을 내딛고 있었다. 올 블랙. 설마 이래서 쿠로(黑) 라거나. 켄마는 맨발로 나무 바닥을 밟으며 작은 고양이를 품에 안았다. 비 오는 날에 어디 있었어, 응? 검지로 코를 톡톡 두들이며 부드럽게 꾸짖는게 영락없는 연인의 모습이라도 되는 듯 했다. 냐아-. 고양이의 울음소리에 쿠로오는 발걸음을 멈추고 잠시 둘을 바라보았다. 왠지 진 기분이란 말이야. 뒷목을 쓸어내리며 행여나 방해가 될까 발소리를 죽여 가게를 빠져나갔다.

 

 후로 쿠로오는 선전포고 했듯이 하루 두 번씩 잡화점을 찾았다. 필요한 것이 있다면 더 오기도 했다. 그의 방문이 익숙해지기 시작했고 암묵적으로 그는 CD 가 두 번 돌때까지 켄마의 곁에 가만히 앉아 쓸데없는 자잘한 얘깃거리를 주고받거나 요깃거리를 가져와 나눠먹거나 고양이 쿠로의 갸르릉 거림을 들으며 강아지풀을 가지고 장난을 쳤다. 어느 세 자연스럽게 의자가 한 더 늘었고 아이스크림을 소다맛을 준비하게 되었으며 워낙 둘 사이를 왔다 갔다 하던 져지는 미닫이 방의 옷걸이에 걸려 있었다. 어쩌면 싫어가 쿠로오 한정으로 괜찮아가 되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였다. 여전히 하늘은 맑았다. 켄마는 감고 있던 눈을 슬며시 떴다.

 

 "다시 눌러줘?"

 "응."

 

 쿠로오는 켄마가 하던 것처럼 정지버튼과 재생버튼을 차례로 눌렀다. 끊겼던 음이 도로 흘렀다.

 

-

 

 켄마. 켄마. 켄마!

 

 켄마는 억지로 눈을 떴다. 분명 이 감각은 비 였다. 손 끝이 부어 뭉퉁한 느낌이 들었다. 싫어. 싫어. 건들이지마. 싫어. 켄마는 몸을 웅크렸다. 비만 오면 다시 떠올라 정말 죽을 것만 같았다. 당시조차 없었던 수치심마저 들었다. 싫어.

 비 오는 날에 제 집 안에 있을 사람이라면 쿠로오 뿐이였다. 키를 복사해준 것도 저였고 허락해준 것도 저였으며 비 오는 날이면 하루 종일 곁을 지켜주는 것도 쿠로오 뿐이였기에 당연한 것이였다. 알고 있음에도 몸은 거부했다. 쿠로, 나 무서워.  무서워. 싫어. 싫단 말이야. 쿠로. 나. 아마.

 쿠로오는 카세트를 틀었다. 익숙한 31분을 위해. 비교적 잠잠해진 켄마의 상태에 쿠로오는 이불 위를 천천히 쓸어주었다.

 

 "켄마. 쿠로는? 안보이던데."

 "저기, 카운터 밑에.."

 "아니 그 밑에 없어."

 

 켄마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후들거리는 몸에도 억지로 부여잡고 일어섰다. 미닫이 문을 세차게 열었다. 카운터 아래 잡다한 천과 솜으로 채운 담요는 식어있었다. 없어.  켄마가 비틀거렸다. 쿠로오는 켄마의 어깨를 잡아주었다. 내가 찾아볼게, 기다려. 살짝 밀어 문턱을 넘지 못하게 하며 쿠로오는 가게 안으로 내려갔다. 쿠로- 어딨어. 손전등을 가지고 여기저길 비추어보았지만 보이지 않았다.

 

 "쿠로.."

 

 켄마는 밖으로 향하는 문을 바라보았다. 오늘 같은 날이면 들어오라고 조금 열어둔다. 그리고 들어왔는데 다시 나갔다, 인가. 켄마는 그대로 밖으로 뛰쳐나갔다. 켄마! 뒤에서 쿠로오가 부를 듯 했지만 차마 돌아볼 생각따위 하지 않았다. 비는 장마철 못지 않게 쏟아져내리고 있었다. 평평한 길에 물줄기가 보일 정도라면 세차게 쏟아붓고 있음이 틀림 없었다. 이런 날에 갈 곳이 어디 있다고, 켄마는 휘청이는 몸으로 뛰었다. 쿠로 어디야. 쿠로. 어디선가 애처롭게 울고 있을 어린 것의 생각에 켄마는 아찔했다. 어디야, 어디야. 하지만 무엇보다 문제라면 자신이였다. 비. 비. 비. 잊고 싶은 기억을 되돌리는 비. 옆 집 주민이라는 남자의 얼굴. 비. 청 테이프로 가로 막힌 입. 비. 묶인 손. 비. 찢어진 옷. 비. 피. 비. 고통. 비. 아픔. 비. 싫어. 비. 싫어. 비. 그런, 비.

 

 "켄마!"

 "싫어, 건들이지마! 건들이지말라고!! 싫어, 싫어, 싫어, 싫어!!"

 "켄마, 켄마. 나 쿠로오야, 응?" 

 "싫어, 싫어, 건들이지마, 만지지마, 더러워, 싫어. 싫어."

 

 켄마. 켄마. 켄마. 바닥에 주저앉은 켄마의 손목을 그러쥐었다. 하염없이 싫어 만을 외치며 울음을 토해냈다. 다- 싫어. 싫어. 정지, 재생. 정지 그리고 재생. 리셋. 켄마는 중얼거렸다. 눈물과 비가 섞여 흘러내렸지만 눈물이 흐른 곳만이 화끈거렸다. 정지 재생 정지 재생 정지 재생 정지 재생 리셋.

 

 "켄마."

 

 쿠로오는 켄마를 품에 안았다. 정지 재생 리셋. 싫어. 싫어. 나- 쿠로, 나-. 괜찮아, 절대 켄마 잘못 아니야, 그러니까 괜찮아. 나-, 나 더러운걸. 전혀, 그럴리가. 그럴리가. 괜찮아, 괜찮아, 켄마.

 안이한 생각이라는 것 쯤은 켄마도 알고 있었다. 사람따위 믿을게 못되고 거짓에 위선에 연기에 흉내에 불과하다고. 하지만, 하지만. 이 사람이라면 그래도 좋다고- 그렇게 생각해버릴만큼-.

 

 쿠로오는 잔뜩 젖은 채 반 쯤 정신을 잃은 켄마를 안아들고 잡화점으로 들어섰다. 떨어지는 물기따위 닦으면 될 것이였다. 켄마의 몸도 걱정이였고 비까지 덤으로 맞았으니 감기는 확정일지도 몰랐다. 게다가 고양이까지 찾아야한다니. 냐아-.

 

 "쿠로..!"

 

 고양이는 카운터의 아래 담요에 작은 새끼들과 함께 있었다. 밖에서 데리고 온 모양이였다. 현명하네. 쿠로오는 한 시름 놓으며 잡화점 문을 잠그고 켄마를 방으로 옮겼다. 대충 수건으로 닦고 열 오른 아이의 옷을 갈아입혔다. 방 안에 떨어진 물자국을 닦아내고 그 위에 안방에서 가져온 이불을 깔고 켄마를 뉘였다. 제대로 아프겠지, 켄마. 쿠로오는 작게 한숨지었다. 이사 온 날 대충은 들었던 얘기였다. 잡화점 주인, 원래는 도시에 살았는데 남자한테, 좀 그런 일이 있었던 모양이라며. 그래서 본인 외할머니가 그 아이 이름 앞으로 남긴 이 시골까지 내려와서 있는거라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지만 쿠로오는 켄마의 젖은 머리칼을 쓸었다. 진짜였구나. 켄마.

 

 혼자 그러지마, 켄마.

 

 쿠로오는 켄마의 입술에 입 맞췄다.

 

-

 

 그 후 켄마는 삼일내리 지독한 고열에 시달렸다. 다행히 감기는 피했지만 말이다. 어디까지나 인과응보라며 잔소리하는 쿠로오에 켄마는 시선을 피했다. 쿠로 너무해. 그런 소리 하지말고 얼른 나아.

 

 쿠로오는 켄마에게 단색의 빨간 우산을 선물했다. 다음 비오는 날에 이거 쓰고 데이트 합시다, 켄마 군. 데이트라니, 고백도 안했잖아. 나중에. 최악. 그렇게 말하는 켄마의 얼굴은 작은 호선을 그리고 있었다.

 

 "켄마, 선물로 주는 우산의 의미. 알아?"

 "전혀."

 

 쿠로오는 푸스스 하고 웃어보였다. CD 의 31분하고 02초가 탁- 하고 멈추었다.

 

 "당신을 지켜줄게요-"

 

 이제 막 여름에 들어선 하늘은 맑기만 했다. 켄마는 우산 손잡이를 만지작 거렸다.

 

 아- 얼른 비 왔으면 좋겠다.

 

-

 

망! 했! 다! 아! 아! 

역시 졸면서 쓰는거 무리 도중에 급전개로 가버렸잖아.....파들))

 

전 이런걸 원치않았습니다, 음음-

 

단지, 켄마가 쿠로오에게만 의지하는게 보고 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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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로켄 전력 60분 ; 시간은 흘러가고 계절도 지나가지만 애달픔에는 익숙해질 것 같지 않아서 다시 만나고 싶어(시간/계절/애달픔)

 

(제물 쿠로오&사제 켄마/모르겠어요, 주제를)

-

 

 '만월의 아이' 가 있다. 일 년 중 오직 만월이 떠오르는건 네 번 뿐. 그렇기에 대개 사람들은 만월을 신성시여기고 그런 존재로 추앙했다. 그런 달에게 제물을 받치고 그 해를 잘 보내게 해달라는 일종의 의식이였다. 세 달마다 이루어지는 의식을 위해 사람들은 기꺼이 순결한 아이를 내놓았다. 상처하나 없는 순결한 아이야 말로 신성한 만월에게 올리는 무엇보다 값진 것이였다.

 

 미친게 틀림 없었다.

 

 인간 제물이다. 그저 몇몇 보기 힘든 것에 대고 구원을 외쳐대며 어린 것의 목숨을 흔쾌히도 내던지는 동조일 뿐이였다. 적어도 쿠로오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하지만 결코 입 아프게 꺼내지는 않았다. 만월에 해가 되는 말이라도 했다가는 소리 소문 없이 잡혀 사막으로 내던져질게 분명했다. 아무도 어떻게 될지 모른다고 입을 모으지만 누구나 알고 있을 터였다. 그것마저 동조하고 있었다.

 

 글러먹었구나.

 

 쿠로오는 그리 생각하며 차오르기 시작한 탐욕스런 달을 바라보았다. 하나. 하나. 하나. 그렇게 잡아먹고도 부족하단 말인가. 바람빠지듯 웃으며 그는 주사위에 난 결을 따라 손가락을 주욱- 그었다.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객기라도 부려봤으면 좋았을 것을.

 

-

 

 만월의 서에는 그리 씌여있다. 만월의 의미는 '기꺼이 나를 주어도 좋아요' 누가 지었는지 참 잘 지었다 생각하며 쿠로오는 두루마기의 끄트머리를 쓸다 이내 제자리에 돌려넣었다. 미쳤지. 그는 좀처럼 진정되지 않는 혼란에 카펫 위에 털썩 주저앉았다. 뭐 그만한 가치가 있는걸까나, 이거.

 

 사제가 그리 말했다. 이번의 만월은 조금 특별하다고. 누구보다 상처가 가득한 아이를 원한다며 해당되는 이들은 모두 신전에 모이라 했다. 겨우 달 때문에 죽으라니 억울한 처지인 것은 당연했고 그러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고있었지만 어딘가 찝찝한 구석이 남아 쿠로오는 집의 모든 문을 걸어잠궜다. 그는 나라에서 소문난 조각가였다. 조각은 세심한 부분이 많아 자잘한 부상이 끊이질 않으니 그 또한 해당자였음이 틀림 없었다. 가고 싶지 않아. 보고 싶지 않아. 자신의 죽음이라면 그다지 신경쓰지 않는 부분도 있었다. 그야 미련이 없는걸. 그는 입버릇 처럼 말해왔었다. 그에게 삶의 미련으로 남은 것이라면 딱 하나가 있었지만 그것은 수도에서 사귄 이들이 알리가 만무했다. 보면 뭐 어쩔거야. 별 수도 없으면서 괜히 얼굴 봤다간 낭패인게 당연하지. 그리 굳게 다짐했지만 그의 다짐의 집행사제의 명령에 깨졌다.

 

 집행사제님이 널 지목했어. 확실히 '쿠로오 테츠로' 라고.

 

 거참 영광일세. 쿠로오는 작게 이를 갈았다. 좋을게 없었다. 이 미친 '의식' 따위의 메인 이벤트 속 빠질 수 없는 포지션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물론 잡혀들어가는 것은 사양이니 제 발로 걸어들어가는 수 밖에 별 도리가 없었다. 보고 싶진 않단 말이지. 우연찮게 기회가 닿아 집행사제는 볼 수 있냐 묻자 집행사제는 사제들 중에서도 가장 신성시 되기에 의식 날이나 되야 볼 수 있을거라는 답변이 돌아왔고 쿠로오는 안도했다.

 

 그는 집행사제를 알고있었다. 모를리가 없지 않은가. 한낯 대륙 구석에 위치한 곳에서 함께 자란 아이인 것을. 만월의 정기를 가지고 태어난 자. 그리 불렀다. 코즈메 켄마. 그는 집행사제이자 쿠로오의 소꿉친구이자 만월, 그 자체였다. 심블이라도 필요한 것일 테지, 그리 생각했지만 아니였다. 켄마가 집행사제로 지목받은 이후 다음 해, 그는 직접 의식을 거행하였다. 그저 내세울 뿐인 허수아비 따위가 아니였다. 날카로운 칼을 그 손에 쥐고 가만히 눈을 감고 있는 어린 아이의 심장에 그것을 꽂아넣었다. 솟아오르는 붉은 체액에도 그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그 날 쿠로오는 제 심장을 잃었다.

 

 만월의 아이로 지목된 이는 일주일 간 신전에서 생활하며 몸과 마음을 가다듬는다. 물론 쿠로오는 이를 거부하였다. 이번에 필요한게 가장 상처많은 거였던가, 대충 그런 거였으니 가다듬을 이유가 없다는 것이였다. 소란으로 이어졌지만 이내 그를 자유롭게 놓아주었다. 경비병의 말에 따르면 집행사제의 명이였단다. 젠장. 쿠로오는 작게 신음했다. 뭐든 좋으니 그의 눈 밖에 나고 싶었다. 보고 싶지도 않았다. 이 따위로 남에게서 듣고 싶지도 않았다. 그런 마음이였다. 교차되었다. 여전히 머리가 아팠다.

 결국 그는 극단적으로 가기로 마음 먹었다. 자살기도라면 본인이 무리였다. 그러고 싶지도 않고 겨우 이 따위의 애들 장난에 놀아나겠답시고 목숨을 버리고 싶진 않았다. 간단했다. 넘어졌을 뿐이다. 그게 넘어지면서 머리를 박은 바람에 피가 새어나온다면 얘기는 달라지겠지만 말이다.

 쿠로오가 눈을 떴을 때는 제 방이였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미친 의식을 위한 제물의 방이였다. 머리에는 익숙한 손놀림으로 붕대가 감겨있었다. 제법인걸. 뭐 이대로 상처가 늘었다고 좋아라 하려나. 그건 그거대로 재미없다고 생각하며 쿠로오는 팔을 쭉 뻗었다. 투박했다. 조각사가 그런 것이였다. 무엇보다 아름다운 것을 파내지만 그 만큼 손을 혹사시키는 일이였다. 그런 점이 쿠로오를 사로잡았다. 왠지 희생정신같다나 뭐래나. 분명 이 손을 알고 있었기에 지명당한 것이리라. 머리는 맑아지지 못했다.

 

 결국 이러니 저러니 별다른 특별한 것도 없이 의식 날이 성큼 다가왔다. 심란하던 마음은 생각보다 차분했다. 다 끝났다는 걸까.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조금 우스웠다. 조금은 솔직했다면 좋았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머리를 헤집었다.

 

 "나오시지요."

 

 낮은 음성에 쿠로오는 발걸음을 옮겼다. 뭐 어때 이젠 전부 끝나는걸. 그가 신전의 뒤뜰로 향하자 그의 눈은 관중들로 가득찼다. 이제껏 저 위치에 있었던 제 자신을 떠올리자니 조금은 역겨웠다. 매번 그 따위로 생각해놓고 보러왔었던거지. 겨우 이런게 뭐라고. 그는 대리석으로 깎인 제물대 위에 올라 무릎을 꿇었다. 어쩌면 절대 오지 않을 것만 같던 순간이 코 앞에 다가와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의외로 굉장히 골치 아픈 것이였다.

 

 "켄마."

 "쿠로, 안녕."

 

 다시는 보지 않을거라 다짐했던 얼굴이 수면 위로 드러나는 것. 보고 싶지 않았다니, 이렇게 그리워했는걸. 쿠로오는 피식 웃었다. 저 손에 죽는거구나. 여전히 핏기 가신 손을 바라보며 그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저를 내려다보는 켄마를 올려보았다. 달을 등지고 서 있었기에 어둡게만 보였다. 무슨 표정을 짓고 있는지 조차 가늠이 되지 않았다. 평범히 무표정이려나.

 

 "오랜만이네."

 "아아- 그런걸, 확실히."

 "보고 싶었어?"

 "글쎄. 어떻다고 생각하는데?"

 

 난 보고싶었는걸. 켄마가 말했다. 그랬구나. 쿠로오가 말했다.

 

 켄마는 한 걸음 다가와 그의 앞에 섰다. 무엇하나 보이지 않는 어둠이였다.

 

 "대답해줘."

 "별로. 난 별로. 보고싶지 않았어. 응."

 

 쿠로오는 웃었다. 켄마는 머리 위로 칼을 들어올렸다. 떨어진다. 쿠로오는 짧은 순간 켄마를 바라보고 있었다. 조금 익숙해져 옅게 비치는 얼굴은 울상이였다. 니가 왜 그런 얼굴이야. 왜. 떠난건 너였잖아. 먼저 손을 놓은 것도 너였잖아. 왜.

 

 "거짓말."

 

 요란한 소리를 내며 칼은 쿠로오의 오른편으로 떨어졌다.

 

 "아니야."

 "거짓말. 그럼 왜 그렇게 울거같은 얼굴하고 있는거야, 쿠로는."

 "그야- 빌어먹을 만큼 아름다운걸. 조각에 담지 못할 만큼, 그런 만월인걸."

 

 켄마는 주저 앉았다.

 

 "쿠로."

 "응."

 "만월의 의미, 알아?"

 "아마, 기꺼이 나를 주어도 좋아요 였던거 같은데."

 

 켄마는 쿠로오를 올려다보았다. 그 안에 언제나 만월이 담겨있었다. 아- 아름다워.

 

 "쿠로한테 있어서 나는 뭐야?"

 "켄마."

 "대답해줘, 얼른."

 "무슨 답이 듣고 싶은거야."

 

 알고있는 주제. 켄마는 두 팔을 벌려 쿠로오는 끌어안았다. 쿠로오는 검고 노란 그 머리칼을 조심스레 쓸어주었다.

 

 "넌 내 만월이야."

 "쿠로라면, 날 줘도 좋아."

 "그거 고백이야?"

 "아마."

 

 그것은 품 안에 만월이 안겨오는 소리였다.

 

-

 

에에...사실 뭘 쓰고싶었는지 저도 모르겠습니다..

 

그냥 저런 포지션이 보고싶었습니다..쿨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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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로켄 전력 60분 ; 오늘은 네 맘 숨기지 마 하고픈 대로 해

 

(제국군 쿠로오와 귀족 소유물 켄마/주제는 두둥실)

-

 

 쿠로오 테츠로는 그 모든 것이 한 여름의 꿈이 아니라면 허상이라 믿었다. 축축하고 낡은 벽의 틈 사이로 자라난 이끼와 눅눅한 곰팡이에 새벽 이슬에 결코 좋지 못한 느낌으로 젖어버린 짚더미 위에서 다시 한 번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그게 현실이 아니였다면 제가 이 곳에 있을 연유도 없었기에 이내 타협해버렸다. 그건 뭐였을까. 이젠 식어 굳어버린 뻣뻣한 핏자국이 선한 제 제복의 옆구리의 언저리를 더듬었다. 알다가도 모를 노릇이였다. 이야- 오늘은 머리가 안눌리겠는걸. 그리 중얼거리며 쿠로오는 짤막한 창 살 너머 보이는 희미한 새벽달을 올려다보았다. 

 

 정말인지 알다가도 모를 노릇이였다.

 

-

 

 제국은 탐욕스러웠고 자라나기 시작하면서 온전히 제 어미를 먹어치웠다. 그로 모자라 형제를 잡아먹었고 끝으로 보란 듯이 아비를 헤치웠다. 그렇게 자라났다. 닥치는 대로 먹어 치우고 제멋대로 굴었다. 그런 무자비함이였지만 함부로 넘볼 수 없는 순수한 힘이였다. 쿠로오 가(家)는 정통 파였지만 그는 예외였다. 특별 취급이라기 보단 어찌되든 좋았다. 힘이란게 그런 것이 였으니. 절대적인 힘에 복종하면 되는 것이였다. 간단하잖아. 선대는 당연히 완강하게 굴었다. 알고있었지만 꽤 단호한걸. 따지고 보면 쿠로오라고 가문에서 미움 살 일은 하고 싶지 않은게 당연했다. 하지만 누군가 희생하지 않으면 더 이상 길은 없었기에 가벼운 머리를 조아렸다. 천성이기도 했다. 제복을 입고 검을 수여받고 충성을 맹세했다. 자신조차 어디서 어디까지가 진실인지 몰랐다. 그 편이 더 좋을거라 생각했다.

 그는 작위를 수여받던 날 아버지에게 불려갔다. 불명예스러운 검을 허리춤에 차고. 사실 얻어맞을거라고 생각했었다. 오히려 그 정도면 다행이라고 되내였었다. 가문의 수치라며 내쫓을거라고, 좀 더 멀리까지 본다면 사지가 멀쩡히 도로 방을 나올 수 없을거라 멋대로 떠올리며 억지로 입꼬리를 말아올렸다. 불안을 보이지 않기 위한 그만의 무기였다.

 

 '작위를 받았다고.'

 '예.'

 

 못난 자식의 얼굴을 마주하지도 않은 채 그저 창가에서 기운 달을 올려다 보고 계셨다. 이제껏 그 손으로 얼마나 많은 이들을 상대해왔을까. 유년 시절부터 쿠로오의 스승은 아버지였고 머리가 굵어지고 나서조차 쉽사리 파고들만한 상대가 아니였기에 그는 자신의 아버지를 잘 알고있었다. 차마 무어라 할 수 없는 것이겠지. 내칠 수도 없었을 터였고 오냐 하고 넘길만한 것도 아니였을 테니 말이다.

 

 '기본에 소홀하지말거라.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다.'

 '예.'

 '마음가짐을 바르게 하거라. 네가 누굴 보필하거든 네 이름에 부끄럽지 않도록.'

 '알겠습니다.'

 '검을 도구로 보지 말아라. 각각의 이름이 있고 삶이 있는 것이니 소중히 다루도록.'

 '명심하겠습니다.'

 

 결국 부모는 부모였다. 당신도 이렇게 약하지 않았을 텐데, 언제부터 그 넓은 등을 한 없이 움츠리고 살아왔는가. 쿠로오는 그 때 처음으로 아버지에게 동정심으 느꼈다. 우습기 그지없었다. 동정심이라니. 한 켠으로 씁쓸해졌다.

 

 힘 없는 아비라 미안하구나.

 

 쿠로오는 본가에서 떨어져 나와 살았다. 본가에 뒤지지 않게 커다란 기와집에 익숙한 사용인들. 아버지였다. 당신은 마지막 까지 이러시는 군요. 쿠로오는 웃었다. 자조적일 뿐이였다.

 

 쿠로오는 성급하게 굴지 않았다. 천천히. 모든 것을 제 편으로 끌어들였다. 원래부터 그런 습성인 것을 아는 사람이라고 해봐야 친우인 야쿠 모리스케 정도였다. 아무도 믿을 수 없었다. 정계가 그런 곳이라 하더라도 이 곳에서 떨어진다면 그 다음이란 없었다. 그렇게기에 영리해야했고 조급하게 굴지 않아야 했다. 남들보다 한 발 앞서야 했고 잡아먹히기 전에 잡아먹어야 했다. 그랬기에 쿠로오 테츠로는 쿠로오 테츠로를 집어삼켰다. 잔해가 남지 않도록. 끝 맛이 느껴지지 않도록.

 

 그는 넓은 바다에 스스로를 내던졌다.

 

-

 

 "아-."

 "죄송합니다."

 

 잘리기라도 한 것 마냥 툭 끊기는 검은 머리칼에서 노란 색. 이 근방에서는 볼 수 없는 희귀한 것이였다. 그것은 짧은 찰나에 쿠로오의 시선을 빼앗기에 적합한 것이였다. 서부 쪽에서 온건가. 쿠로오는 떠올렸다. 잔뜩 싫은 얼굴을 하고 구해줘- 따위의 눈을 하고 있었다. '그것'은 쿠로오를 경계함과 동시에 친근감을 드러냈다. 범인(凡人)의 눈에는 그저 따분함과 무료함에 지친 얼굴일 따름이겠지만 그에게는 달랐다. 막연한 흥미랄까. 새하얀 바탕에 붉게 수놓은 로브라니, 눈에 띄기 적합하기 그지 없었다.

 의문은 금방 해결되었다. 상부의 명령으로 다시 대면할 수 있었다. '그것' 과. 궁에 두 달 간 백작이 머무르고 간다. 백작의 소유물이니 극진히 보살필 수 있도록, 정도. 소유물 이라. 그거 구미가 당기는 말이잖아.

 

 처음에는 귀여운 녀석인 줄 알았다. 알고보니 고양이 과 동물이였다. 식성 까다로워 말수 없어 만사가 귀찮아 취향 확고해. 아니 그냥 고양이 였다. 조금은 외로움을 탔고 조금은 자유를 갈망했다. 쿠로오는 그런 그에게 쉽사리 녹아내렸다.

 

 '이름이 뭐야.'

 '몰라.'

 '쿠로오 테츠로. 너는?"

 '.....켄마.'

 '백작은 그렇게 부르지 않던걸.'

 '코즈메 켄마. 원래 이름이야.'

 

 헤에- 영광인걸, 켄마. 그렇게 부르지 마. 그럼 어떻게 불러, 코즈메 군-? ....아까로 부탁해. 어째서- 어색하니 이렇게 하자고. 싫어.

 쿠로오는 켄마의 페이스가 마음에 들었고 그것은 그가 켄마에게 손 대기 딱 좋은 이유가 되어주었다. 처음 손등에 입 맞추었을 때 켄마는 평소와 다름없는 얼굴로 쿠로오를 응시했다. 어째서 아무 반응도 없냐는 질문에 그는 답했다. 상관없으니까. 슬금슬금 올라왔다. 본연의 저가. 특별히 도로 삼킬 생각따위 없었다. 그래야 할 만땅한 이유가 없었기에. 그는 차례로 목덜미. 뺨. 눈가. 이마. 입술 위에 제 입술을 맞대었다. 어디까지가 상관없다는거야, 켄마. 반응을 원했다.

 

 살을 맞대면 없던 감정도 생긴다고, 물론 애초부터 자리잡은 감정이였지만.

 

 '좋아해, 라고 하면 뭐라고 할래?'

 '거절할게.'

 '쌀쌀맞잖아.'

 '알고 있었잖아, 이런거.'

 

 알고 있어도 부정당하면 씁쓸한거야. 쿠로오는 허울 좋게 웃어보이며 모래시계의 흐름을 관찰하고 있는 켄마의 머리칼을 쓰다듬었다. 침대에 엎드린 채 통 넓은 반 바지 아래로 쭉 뻗은 다리를 까딱이고 있었다. 다 떨어지고도 벽면에 달라붙어 있는 모래 알갱이에 시선을 맞추며 큰 눈을 깜빡이는 켄마였다. 쿠로오는 그런 켄마를 깨닫지도 못한 새 위를 향하게 뒤집어 그 위에 올라타 식탐에 가득 찬 눈으로 켄마를 내려다 보았다. 좀 더 위기감을 가지는 건 어때, 켄마.

 

 '글쎄. 쿠로라면 안심되기도 하고 말이야.'

 

 나른한 눈이 느릿하게 사라졌다 나타났다.

 

 '쿠로라면 괜찮을지도.'

 

 쿠로오는 밤 새 여린 속을 갈랐다. 무심한 주인에 비해 섬세했다. 연신 제 이름을 부르짓는 켄마에 쿠로는 주문도 많아, 하고 중얼거렸다. 불평치곤 부드러운 입맞춤이였다.

 

 언젠가 쿠로오는 켄마에게 물었다. 항상 창 밖으로 무얼 보고 있으냐고. 그러자 켄마가 대답하기를, 내일. 켄마가 말하는 것의 대부분은 좀처럼 이해하지 못할 말 뿐이였지만 쿠로오는 언제나 그저 끄덕였다. 그럼 가버리면 되잖아. 안돼. 어째서. 글쎄, 나 혼자서는 무리랄까. 그거 참 즐거운 상상이네. 식어버린 살갗을 끌어안겨 안으며 쿠로오는 졸린 눈을 한 켄마의 등을 토닥였다. 얼른 자.

 

-

 

 과거의 나에게 묻지 않는 이상 답은 절대 나오지 않을 것만 같았다. 그 때 왜 그랬었냐고. 미련하기 짝이 없지. 켄마의 반응을 원했기에 그러하였단 것 쯤은 잘 알고 있었다. 사랑에 빠지는 순간 멍청이가 된다고 누가 말했었던가. 사랑이구나. 입꼬리를 말아올렸다. 헛웃음이 비집고 나왔다.

 

 "쿠로오."

 "오야오야- 이런 누추한 곳까지 이 시간에 왠 행차시래."

 "조용해, 이 자식아. 너 때문에 진짜 이게 뭐야."

 "쿠로오 상-! 데리러 왔, 윽"

 "리에프 조용해."

 

 최외곽 감옥. 즉 궁에서 가장 떨어진 곳이다. 말끔한 제복차림에 어울리지 않게 과도하게 제한된 행동이였다. 이유 쯤이야 쉽게 간파할 수 있었다.

 

 "현상수배 걸리기라도 하는 날이면 넌 나한테 죽을 줄 알아."

 "이거 무서워서 어디 살기야 하겠어, 야쿠 군?"

 "가. 가버려. 폭동 진압 중이니까 이 쪽에 신경 쓸 전력도 없을거야. 서문은 열려있어. 그 쪽은 우리 부대 담당이니까 길 터놨어."

 

 옥의 문을 열며 기어나온 쿠로오에게 로브와 묵직한 가방을 던지듯 내어주며 야쿠는 말했다. 사나운 눈을 하고 있었다.

 

 "쿠로오 테츠로. 오늘 이 시간 부로 넌 폭동 진압 도중 전사하게 된다. 죽은 사람이야, 알아 들어? 그러니까 꺼져. 죽은 인간이 뻔뻔히 살아 돌아다니면 곤란해지는건 너 하나가 아니란 말이야. 눈 앞에서 당장 꺼져."

 

 아아- 이거 또 신세 지게 됐네. 야쿠에게서 받은 가방을 허리춤에 차고 로브를 둘러쓰고 그의 옆을 지나갔다. 고마워- 야쿠. 망할 자식.

 망을 보던 리에피는 씨익 웃으며 검을 내어주었다. 이거 쿠로오 상 꺼죠? 멍청한건 나 하나가 아니였구만. 왼손에 검을 꽉 쥐고 리에프의 어깨를 툭툭 쳤다. 간다.

 

 "쿠로오-!"

 "아-?"

 "서문은 항상 열어둘테니까."

 

 알아. 로브의 펄럭거림과 군화의 익숙한 둔탁음 검집과 검의 소음.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야쿠는 그제서야 고개를 떨구었다. 굵은 물방울이 군화의 끝을 적셔나갔다.

 

 "멍청한 놈-. 그런 얼굴하는데 어떻게 안보내줘."

 

 리에프는 말 없이 한 없이 작아진 야쿠를 끌어안았다. 울지마요. 안 울어.

 

 야쿠의 말대로 밖은 아수라장이였다. 다만 그의 친우가 알려준 길만은 깔끔했다. 기분 나쁠 정도로 조용하고 음산한 길을 내달리며 쿠로오는 로브를 여몄다. 켄마도 이랬을까. 자유에 가슴이 뛰면서도 불안했을까. 조금 아려오는 옆구리의 통증에 이를 악 물었다. 이래서 귀족 나부랭이들이란, 찌를거면 제대로 찌를테지. 어설프게. 

 

 켄마의 두 손에 자유를 쥐어준 날. 하얀 로브의 펄럭임과 함께 그가 말했다. 쿠로는? 입꼬리를 말아올려보이며 문을 닫아버렸다. 야쿠의 심정도 이럴까. 제 오랜 친우를 보내는 기분이란건 어땠을까. 뒤섞이는 호흡과 생각과 통증에도 쿠로오는 그저 달렸다. 서문에 다다르자 그제서야 그는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주위를 살폈다. 경계 지역이니 조금은 위험할지도. 쿠로오는 검을 뽑았다. 스산하게 선 날은 여전했다. 칼등에 이마를 맞대고 깊게 숨을 내뱉었다. 그리운 감각이였다. 그는 작게 웃으며 문 밖을 내다보았다. 밤이라 시야가 좁아졌다. 하지만 확실히 보이는 바람에 나부끼는 로브와 사람의 인영에 마른침을 삼켰다. 젠장, 틈틈이 연습이라도 해둘걸. 지금이라면 절대적으로 불리할 자신의 입장을 떠올리며 웃기지도 않은 후회를 했다. 그리 깊진 않았지만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상처였다. 쿠로오는 천천히 일어서 검은 수직으로 세우고 왼발은 수직, 오른 발은 수평을 유지한 채 조심스레 접근했다. 여전히 펄럭이고 있었다. 고민할 틈도 없이 검을 수평으로 뉘여 아래서 위로 그어 올렸다. 눈아픈 모래바람이 가라앉자 서서히 드러나는 모습에 쿠로오는 초조했다. 어째서 가만히 있는걸까.

 

 "쿠로."

 

 눈에 띄는 하얀 로브에 시선을 잡아끄는 푸딩 머리. 이것만으로 충분했다. 켄마-. 쿠로오는 검을 천천히 내려 바닥을 겨누었다. 이것도 야쿠의 계획인가. 웃음이 비집고 나왔다. 저를 올려다보는 눈이 그리웠던 지라 말없이 그리웠노라 되내이며 뺨이며 눈가를 엄지로 쓸어내렸다. 켄마는 그의 손 위에 제 손을 겹치며 물었다.

 

 "쿠로는?"

 "아아- 역시 곁에 있을래."

 

 켄마는 발꿈치를 한껏 들어보였다. 쿠로오는 기꺼이 고개를 숙여주었다. 열기가 맞닿자 서로를 옭아맸다. 그들 답지 않게 여유가 없었다. 아무래도 좋았다. 굳이 말로 표현하자면 그것은 구원이였다. 그 깊은 바다에서 건져내어 숨을 불어넣어 준.

 

 쿠로-.

 

 그것은 무서우리만큼 오랜 애욕이 묻어나는 목소리였다.

 

-

 

분명 쿠로켄인데, 얘네가 메인인데..야쿠 멋있잖아, 젠장.

쓰고 싶은게 다 안써져서 불만입니다, 좀 더 넣고 싶었는데 그러자니 갈아 엎어야겠고 여기서 조금만 수정해보자니 이미 만빵인거 같아서 더 넣은면 넘칠거 같습니다 큨큐큐큐큐큐

에라, 몰라 오늘은 전력 두 탕 뛰는 날- 과제 많은데 어쩌지..

 

제복입은 쿠로오와 금기st 의 켄마가 보고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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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로켄 전력 60분 ; 목소리

 

(짝사랑 요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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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쿠로오와 켄마는 제 인생의 대부분을 함께 지냈다고 해도 부족할 정도로 길고도 끈질긴 인연이였다. 부모님끼리 친했으니 엄밀히 따지고보면 켄마의 탄생시점부터 둘은 본인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친구' 였다. 쿠로오가 한 살 많고 켄마가 한 살 어리고 따위의 자잘한 문제는 모두 떠나서.

 그것은 불행이자 행운이였다. 켄마는 그리 생각하며 천천히 눈을 감았다. 더워. 게으른 천성이 어딜가리, 이미 뇌는 녹아내렸다고 믿으면서도 몸을 움직일 생각은 하지 않았다. 선풍기의 예약시간이 끝났는데 켄마의 잠을 방해하며 웅웅 귓가에 울리던 소리는 깨닫지도 못한 새에 잠잠해들어 있었다. 다시 켜야될텐데. 뭐, 상관없나. 찌르르- 하고 꼭 꼭 닫아놓은 창 밖에서 매미가 우는 것만 같았다. 켄마는 마른 침을 삼켰다.

 

 "더워."

 

-

 

 본디 감성적이지 않았다. 그렇기에 감정이 메마른건 아닐까 하고 되내여봐도 좋은건 좋은거고 싫은건 싫은거니까 그건 아니라 생각해왔다. 그건 호불호의 문제잖아. 하고 주위에서 타박해와도 그러려니 했지만 무엇보다 그런 말들을 귀에 들어가지 않게 해 준건 쿠로오 였다. 켄마는 원래 이런거야. 어, 이게 도시 남자라는거지. 쿨-하고. 그지? 씨익 웃어보이며 나 잘했지 라는 의기양양해 하는 얼굴을 하곤 제 옆을 나란히 걷던 사내란. 지금 떠올리자니 조금은 우습기도 했다.

 쿠로오와 저의 거리를 느끼기 시작한건 꽤나 어릴 적부터 였다. 그렇게 끈덕지게 붙어다니며 제 끼니를 챙기고 준비물을 확인해주며 숙제를 도와주고 등하교는 꼭 함께 했다. 불편하면 그러지 않아도 좋다고 말해주고 싶었지만 그럴 용기는 없으니까 그냥 다 물었다. 그게 최선이였다. 미안, 쿠로. 전혀 괜찮은데.

 

 아니, 그런게 아니야. 용기 없는 나라서 미안해.

 

 연상이라는 책임감에 휩싸여 있던 걸까. 내가 '형'이니까 더 잘해야 돼, 따위의 의무감에 가까우려나. 아니면 단순히 어린 아이의 부모에 대한 애정갈구를 위한 도구였을까. 그게 습관이라도 된 모양일까. 비겁하지만 이런 생각을 떠올릴 수 밖에 없었다. 애초부터 난 이런 놈이였는걸. 쿠로.

 

 쿠로오가 먼저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의 1년이라는 공백은 무시할 수 없는 것이였다. 하지만 '공백' 이란 말이 무색하게 연락을 계속해왔고 덕분에 이어나갈 수 있었다. 이 아슬아슬한 관계를. 다만 학교에서나 반에선 외톨이 였다. 그걸로 좋았다. 오히려 그게 좋았다. 좀 더 동정심이라도 불러일으킬테니까. 그 나이부터 저는 이런 생각을 해왔을지도 모르는 일이였다. 난 약하니까. 그러니까.

 쿠로오가 원했고 저도 그게 편했기에 중학교도 고등학교도 같은 학교에 지원했다. 배구 덕분에 꽤 흔쾌히 입학이 승낙된 모양이였다. 배구라. 쿠로가 원해서 했을 뿐인데. 어디까지나 그의 옆자리에 있기 위한 허울 좋은 수단에 불과했다. 그게 아니라도 쿠로오라면 얼마든지 제 옆에 머물러 줄 터였다.

 

 '소꿉친구' 니까.

 

 

시간을 확인하기 위해 켠 휴대전화 화면은 눈이 따가울 정도로 밝았다. '밝기' 따위 아무래도 좋았다. 작동한다면 상관없었으니까. 너랑 내 관계도 결국 그런거겠지, 쿠로. '친한 정도' 따위 아무래도 좋아. 지속되기만 한다면 상관없어. '친한 정도'라는건 관계가 지속되기 위한 부속품일 뿐이니까.

 

 목록을 죽- 둘러보았다. 정말 볼품없었다.

 야쿠. 리에프. 타케토라. 이누오카. 시바야마. 후쿠나가. 카이를 비롯한 네코마 시절 배구부와 제가 3학년이 되고나서 만난 배구부. 쇼요. 카게야마(천재). 케이지. 보쿠토(시끄러운 부엉이).

 가족을 제외하고 여기서 저와 관계를 유지해나가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여긴 없지만 쿠로 정도일려나. 아- 쿠로도 가족인가. 애매해져버렸다. 가족이라면 왜 힘들어야 하는거야.

 

 이미 충분히 골치 썩는 탓에 휴대전화 따위 저 멀리 던져버렸다. 그래봐야 제가 누운 침대 안 제 손이 닿는 정도의 거리겠지만. 눈 앞이 어질어질해지는 휴대전화의 밝은 화면에 아지랑이라도 보는 듯한 착각을 느끼며 바로 누워 눈을 감아버렸다. 여름 축제 불꽃놀이의 여운 마냥 여전히 허옇게 터지는 눈 앞의 감각에 슬며시 눈을 떴다. 무언가 대단한 결심을 하고 눈을 감은 것도 아니였는데 뜬 눈을 한 제가 조금 못났다고 생각했다. 여전히 잠들지 못했고 더운 날이다. 여름인가. 

 긴 팔을 둘둘 거두었다. 잘 되지 않았다. 겨우 팔꿈치 까지 끌어올린 모양새가 엉망이였다.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거 어떻게 하는거야. 

괜히 솟구치는 짜증에 켄마는 상관없나-라며 대(大)자로 팔을 크게 벌렸다. 덥네.

 

 그 날도 이렇게 더웠던가. 켄마는 작게 중얼거렸다.

 

-

 

 "쿠로는 결혼같은거 안해?"

 "갑자기 그런 얼굴로 무슨 소리래."

 "그런 얼굴은 무슨 얼굴."

 "있어, 그런게. 생뚱맞게 갑자기 니가 그런 말을 할 줄이야. 뭐야-."

 "아니, 그냥. 쿠로는 충분히 할 수 있잖아. 인기도 많고."

 "인기와 결혼은 상관관계가 아닙니다."

 

 물론 내가 한 인기는 하지만. 재수 없어. 겍- 그렇게 까지 말할 필요는 없잖아. 

 

 "켄마."

 "난 했으면 좋겠는데. 결혼"

 "켄마."

 

 하나.

 

 "지금 이 얘기를 왜 하는거야."

 "글쎄."

 

 둘.

 

 "글쎄라니, 무책임한 발언아닌가."

 "쿠로는 어떻해 생각하는데."

 

 셋.

 

 게임기는 방바닥 어딘가를 뒹굴고 있겠지. 둔탁한 소리를 내며 떨어진 게임기를 생각했지만 뭐 어때. 그거 꽤 쉬웠으니까 세이브는 괜찮겠지.

 그 보다 시급한건 제 위에서 저를 내려다 보는 쿠로오 였다. 누구봐도 화가 치밀러 오른 저 얼굴. 아아- 그런가. 느릿하게 내리감았다 뜨자 쿠로오는 어금니라도 물고 있는 듯 보였다. 그렇게 화 내지마.

 

 "왜 그래."

 "여유로우신데."

 "아-."

 "장난해? 내가 결혼했으면 좋겠다고? 이 얼굴이나 그만두고 말하는게 어때?"

 

 나흘 후 쿠로오의 이름으로 청첩장이 날아왔다. 빠르네.

 고마워. 쿠로. 청첩장에 작게 입 맞추며 말했다. 담아둔 말은 많았지만 꺼내진 않았다.

 

 여름의 끝자락 그는 결혼식을 올렸다. 아름다웠다. 그 뿐이였다.

 

-

 

 뻔뻔히도 모른 척하고 등 돌린 것도 그를 몰아세운 것도 저였다. 그리고 결국 바라는건 애정이라니 우습기 짝이없지. 허탈한 속과는 다르게 몸은 착실히 다시 휴대전화를 쥐고 잊지도 못한 쿠로오의 번호를 꾹꾹 누르고 있었다. 저를 위해서라도 번호따위 바꾸진 않았을 터였다. '소꿉친구' 잖아. 넌 그런 책임감으로 의무감따위에 날 보살필 이유는 없잖아. 좋아해. 네가 행복하길 바래. 좋아해. 날 좀 더 봐줘. 좋아해. 챙겨줘. 좋아해. 신경써줘. 좋아해. 좋아하는걸. 그렇지만 소꿉친구잖아.

 

 좋아해.

 

 암울하게도 푸른 통화 버튼을 눌렀다. 수신음이 갔다. 하나. 둘. 셋.

받을리가 없잖아. 넷. 지금이 몇 신데. 다섯. 3시 45분. 여섯. 받아서도 안되고. 일곱.

 

 [..여보세요.]

 

 여덟.

 

 [여보세요?]

 

 아홉.

 

 [켄마?]

 

 열.

 

 아아- 네 목소리. 그리웠어. 이 목소리가. 그러니까.

 

 좋아해. 쿠로.

 

-

 

쿠로켄으로는 오늘 또 처음이자 첫 전력. 그냥 전력으로 두번째.

오늘 전력 두개나 뛰었어...으어-

 

쓸데마다 느끼지만 이거 생각보다 빠듯하면서 동시에 여유로운 느낌이란. 신기하다.

 

또 망했습니다! 하지만 애정합니다, 쿠로켄.

 

짝사랑 코드의 켄마가 보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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