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로켄 전력 60분 ; 오늘은 네 맘 숨기지 마 하고픈 대로 해

 

(제국군 쿠로오와 귀족 소유물 켄마/주제는 두둥실)

-

 

 쿠로오 테츠로는 그 모든 것이 한 여름의 꿈이 아니라면 허상이라 믿었다. 축축하고 낡은 벽의 틈 사이로 자라난 이끼와 눅눅한 곰팡이에 새벽 이슬에 결코 좋지 못한 느낌으로 젖어버린 짚더미 위에서 다시 한 번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그게 현실이 아니였다면 제가 이 곳에 있을 연유도 없었기에 이내 타협해버렸다. 그건 뭐였을까. 이젠 식어 굳어버린 뻣뻣한 핏자국이 선한 제 제복의 옆구리의 언저리를 더듬었다. 알다가도 모를 노릇이였다. 이야- 오늘은 머리가 안눌리겠는걸. 그리 중얼거리며 쿠로오는 짤막한 창 살 너머 보이는 희미한 새벽달을 올려다보았다. 

 

 정말인지 알다가도 모를 노릇이였다.

 

-

 

 제국은 탐욕스러웠고 자라나기 시작하면서 온전히 제 어미를 먹어치웠다. 그로 모자라 형제를 잡아먹었고 끝으로 보란 듯이 아비를 헤치웠다. 그렇게 자라났다. 닥치는 대로 먹어 치우고 제멋대로 굴었다. 그런 무자비함이였지만 함부로 넘볼 수 없는 순수한 힘이였다. 쿠로오 가(家)는 정통 파였지만 그는 예외였다. 특별 취급이라기 보단 어찌되든 좋았다. 힘이란게 그런 것이 였으니. 절대적인 힘에 복종하면 되는 것이였다. 간단하잖아. 선대는 당연히 완강하게 굴었다. 알고있었지만 꽤 단호한걸. 따지고 보면 쿠로오라고 가문에서 미움 살 일은 하고 싶지 않은게 당연했다. 하지만 누군가 희생하지 않으면 더 이상 길은 없었기에 가벼운 머리를 조아렸다. 천성이기도 했다. 제복을 입고 검을 수여받고 충성을 맹세했다. 자신조차 어디서 어디까지가 진실인지 몰랐다. 그 편이 더 좋을거라 생각했다.

 그는 작위를 수여받던 날 아버지에게 불려갔다. 불명예스러운 검을 허리춤에 차고. 사실 얻어맞을거라고 생각했었다. 오히려 그 정도면 다행이라고 되내였었다. 가문의 수치라며 내쫓을거라고, 좀 더 멀리까지 본다면 사지가 멀쩡히 도로 방을 나올 수 없을거라 멋대로 떠올리며 억지로 입꼬리를 말아올렸다. 불안을 보이지 않기 위한 그만의 무기였다.

 

 '작위를 받았다고.'

 '예.'

 

 못난 자식의 얼굴을 마주하지도 않은 채 그저 창가에서 기운 달을 올려다 보고 계셨다. 이제껏 그 손으로 얼마나 많은 이들을 상대해왔을까. 유년 시절부터 쿠로오의 스승은 아버지였고 머리가 굵어지고 나서조차 쉽사리 파고들만한 상대가 아니였기에 그는 자신의 아버지를 잘 알고있었다. 차마 무어라 할 수 없는 것이겠지. 내칠 수도 없었을 터였고 오냐 하고 넘길만한 것도 아니였을 테니 말이다.

 

 '기본에 소홀하지말거라.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다.'

 '예.'

 '마음가짐을 바르게 하거라. 네가 누굴 보필하거든 네 이름에 부끄럽지 않도록.'

 '알겠습니다.'

 '검을 도구로 보지 말아라. 각각의 이름이 있고 삶이 있는 것이니 소중히 다루도록.'

 '명심하겠습니다.'

 

 결국 부모는 부모였다. 당신도 이렇게 약하지 않았을 텐데, 언제부터 그 넓은 등을 한 없이 움츠리고 살아왔는가. 쿠로오는 그 때 처음으로 아버지에게 동정심으 느꼈다. 우습기 그지없었다. 동정심이라니. 한 켠으로 씁쓸해졌다.

 

 힘 없는 아비라 미안하구나.

 

 쿠로오는 본가에서 떨어져 나와 살았다. 본가에 뒤지지 않게 커다란 기와집에 익숙한 사용인들. 아버지였다. 당신은 마지막 까지 이러시는 군요. 쿠로오는 웃었다. 자조적일 뿐이였다.

 

 쿠로오는 성급하게 굴지 않았다. 천천히. 모든 것을 제 편으로 끌어들였다. 원래부터 그런 습성인 것을 아는 사람이라고 해봐야 친우인 야쿠 모리스케 정도였다. 아무도 믿을 수 없었다. 정계가 그런 곳이라 하더라도 이 곳에서 떨어진다면 그 다음이란 없었다. 그렇게기에 영리해야했고 조급하게 굴지 않아야 했다. 남들보다 한 발 앞서야 했고 잡아먹히기 전에 잡아먹어야 했다. 그랬기에 쿠로오 테츠로는 쿠로오 테츠로를 집어삼켰다. 잔해가 남지 않도록. 끝 맛이 느껴지지 않도록.

 

 그는 넓은 바다에 스스로를 내던졌다.

 

-

 

 "아-."

 "죄송합니다."

 

 잘리기라도 한 것 마냥 툭 끊기는 검은 머리칼에서 노란 색. 이 근방에서는 볼 수 없는 희귀한 것이였다. 그것은 짧은 찰나에 쿠로오의 시선을 빼앗기에 적합한 것이였다. 서부 쪽에서 온건가. 쿠로오는 떠올렸다. 잔뜩 싫은 얼굴을 하고 구해줘- 따위의 눈을 하고 있었다. '그것'은 쿠로오를 경계함과 동시에 친근감을 드러냈다. 범인(凡人)의 눈에는 그저 따분함과 무료함에 지친 얼굴일 따름이겠지만 그에게는 달랐다. 막연한 흥미랄까. 새하얀 바탕에 붉게 수놓은 로브라니, 눈에 띄기 적합하기 그지 없었다.

 의문은 금방 해결되었다. 상부의 명령으로 다시 대면할 수 있었다. '그것' 과. 궁에 두 달 간 백작이 머무르고 간다. 백작의 소유물이니 극진히 보살필 수 있도록, 정도. 소유물 이라. 그거 구미가 당기는 말이잖아.

 

 처음에는 귀여운 녀석인 줄 알았다. 알고보니 고양이 과 동물이였다. 식성 까다로워 말수 없어 만사가 귀찮아 취향 확고해. 아니 그냥 고양이 였다. 조금은 외로움을 탔고 조금은 자유를 갈망했다. 쿠로오는 그런 그에게 쉽사리 녹아내렸다.

 

 '이름이 뭐야.'

 '몰라.'

 '쿠로오 테츠로. 너는?"

 '.....켄마.'

 '백작은 그렇게 부르지 않던걸.'

 '코즈메 켄마. 원래 이름이야.'

 

 헤에- 영광인걸, 켄마. 그렇게 부르지 마. 그럼 어떻게 불러, 코즈메 군-? ....아까로 부탁해. 어째서- 어색하니 이렇게 하자고. 싫어.

 쿠로오는 켄마의 페이스가 마음에 들었고 그것은 그가 켄마에게 손 대기 딱 좋은 이유가 되어주었다. 처음 손등에 입 맞추었을 때 켄마는 평소와 다름없는 얼굴로 쿠로오를 응시했다. 어째서 아무 반응도 없냐는 질문에 그는 답했다. 상관없으니까. 슬금슬금 올라왔다. 본연의 저가. 특별히 도로 삼킬 생각따위 없었다. 그래야 할 만땅한 이유가 없었기에. 그는 차례로 목덜미. 뺨. 눈가. 이마. 입술 위에 제 입술을 맞대었다. 어디까지가 상관없다는거야, 켄마. 반응을 원했다.

 

 살을 맞대면 없던 감정도 생긴다고, 물론 애초부터 자리잡은 감정이였지만.

 

 '좋아해, 라고 하면 뭐라고 할래?'

 '거절할게.'

 '쌀쌀맞잖아.'

 '알고 있었잖아, 이런거.'

 

 알고 있어도 부정당하면 씁쓸한거야. 쿠로오는 허울 좋게 웃어보이며 모래시계의 흐름을 관찰하고 있는 켄마의 머리칼을 쓰다듬었다. 침대에 엎드린 채 통 넓은 반 바지 아래로 쭉 뻗은 다리를 까딱이고 있었다. 다 떨어지고도 벽면에 달라붙어 있는 모래 알갱이에 시선을 맞추며 큰 눈을 깜빡이는 켄마였다. 쿠로오는 그런 켄마를 깨닫지도 못한 새 위를 향하게 뒤집어 그 위에 올라타 식탐에 가득 찬 눈으로 켄마를 내려다 보았다. 좀 더 위기감을 가지는 건 어때, 켄마.

 

 '글쎄. 쿠로라면 안심되기도 하고 말이야.'

 

 나른한 눈이 느릿하게 사라졌다 나타났다.

 

 '쿠로라면 괜찮을지도.'

 

 쿠로오는 밤 새 여린 속을 갈랐다. 무심한 주인에 비해 섬세했다. 연신 제 이름을 부르짓는 켄마에 쿠로는 주문도 많아, 하고 중얼거렸다. 불평치곤 부드러운 입맞춤이였다.

 

 언젠가 쿠로오는 켄마에게 물었다. 항상 창 밖으로 무얼 보고 있으냐고. 그러자 켄마가 대답하기를, 내일. 켄마가 말하는 것의 대부분은 좀처럼 이해하지 못할 말 뿐이였지만 쿠로오는 언제나 그저 끄덕였다. 그럼 가버리면 되잖아. 안돼. 어째서. 글쎄, 나 혼자서는 무리랄까. 그거 참 즐거운 상상이네. 식어버린 살갗을 끌어안겨 안으며 쿠로오는 졸린 눈을 한 켄마의 등을 토닥였다. 얼른 자.

 

-

 

 과거의 나에게 묻지 않는 이상 답은 절대 나오지 않을 것만 같았다. 그 때 왜 그랬었냐고. 미련하기 짝이 없지. 켄마의 반응을 원했기에 그러하였단 것 쯤은 잘 알고 있었다. 사랑에 빠지는 순간 멍청이가 된다고 누가 말했었던가. 사랑이구나. 입꼬리를 말아올렸다. 헛웃음이 비집고 나왔다.

 

 "쿠로오."

 "오야오야- 이런 누추한 곳까지 이 시간에 왠 행차시래."

 "조용해, 이 자식아. 너 때문에 진짜 이게 뭐야."

 "쿠로오 상-! 데리러 왔, 윽"

 "리에프 조용해."

 

 최외곽 감옥. 즉 궁에서 가장 떨어진 곳이다. 말끔한 제복차림에 어울리지 않게 과도하게 제한된 행동이였다. 이유 쯤이야 쉽게 간파할 수 있었다.

 

 "현상수배 걸리기라도 하는 날이면 넌 나한테 죽을 줄 알아."

 "이거 무서워서 어디 살기야 하겠어, 야쿠 군?"

 "가. 가버려. 폭동 진압 중이니까 이 쪽에 신경 쓸 전력도 없을거야. 서문은 열려있어. 그 쪽은 우리 부대 담당이니까 길 터놨어."

 

 옥의 문을 열며 기어나온 쿠로오에게 로브와 묵직한 가방을 던지듯 내어주며 야쿠는 말했다. 사나운 눈을 하고 있었다.

 

 "쿠로오 테츠로. 오늘 이 시간 부로 넌 폭동 진압 도중 전사하게 된다. 죽은 사람이야, 알아 들어? 그러니까 꺼져. 죽은 인간이 뻔뻔히 살아 돌아다니면 곤란해지는건 너 하나가 아니란 말이야. 눈 앞에서 당장 꺼져."

 

 아아- 이거 또 신세 지게 됐네. 야쿠에게서 받은 가방을 허리춤에 차고 로브를 둘러쓰고 그의 옆을 지나갔다. 고마워- 야쿠. 망할 자식.

 망을 보던 리에피는 씨익 웃으며 검을 내어주었다. 이거 쿠로오 상 꺼죠? 멍청한건 나 하나가 아니였구만. 왼손에 검을 꽉 쥐고 리에프의 어깨를 툭툭 쳤다. 간다.

 

 "쿠로오-!"

 "아-?"

 "서문은 항상 열어둘테니까."

 

 알아. 로브의 펄럭거림과 군화의 익숙한 둔탁음 검집과 검의 소음.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야쿠는 그제서야 고개를 떨구었다. 굵은 물방울이 군화의 끝을 적셔나갔다.

 

 "멍청한 놈-. 그런 얼굴하는데 어떻게 안보내줘."

 

 리에프는 말 없이 한 없이 작아진 야쿠를 끌어안았다. 울지마요. 안 울어.

 

 야쿠의 말대로 밖은 아수라장이였다. 다만 그의 친우가 알려준 길만은 깔끔했다. 기분 나쁠 정도로 조용하고 음산한 길을 내달리며 쿠로오는 로브를 여몄다. 켄마도 이랬을까. 자유에 가슴이 뛰면서도 불안했을까. 조금 아려오는 옆구리의 통증에 이를 악 물었다. 이래서 귀족 나부랭이들이란, 찌를거면 제대로 찌를테지. 어설프게. 

 

 켄마의 두 손에 자유를 쥐어준 날. 하얀 로브의 펄럭임과 함께 그가 말했다. 쿠로는? 입꼬리를 말아올려보이며 문을 닫아버렸다. 야쿠의 심정도 이럴까. 제 오랜 친우를 보내는 기분이란건 어땠을까. 뒤섞이는 호흡과 생각과 통증에도 쿠로오는 그저 달렸다. 서문에 다다르자 그제서야 그는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주위를 살폈다. 경계 지역이니 조금은 위험할지도. 쿠로오는 검을 뽑았다. 스산하게 선 날은 여전했다. 칼등에 이마를 맞대고 깊게 숨을 내뱉었다. 그리운 감각이였다. 그는 작게 웃으며 문 밖을 내다보았다. 밤이라 시야가 좁아졌다. 하지만 확실히 보이는 바람에 나부끼는 로브와 사람의 인영에 마른침을 삼켰다. 젠장, 틈틈이 연습이라도 해둘걸. 지금이라면 절대적으로 불리할 자신의 입장을 떠올리며 웃기지도 않은 후회를 했다. 그리 깊진 않았지만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상처였다. 쿠로오는 천천히 일어서 검은 수직으로 세우고 왼발은 수직, 오른 발은 수평을 유지한 채 조심스레 접근했다. 여전히 펄럭이고 있었다. 고민할 틈도 없이 검을 수평으로 뉘여 아래서 위로 그어 올렸다. 눈아픈 모래바람이 가라앉자 서서히 드러나는 모습에 쿠로오는 초조했다. 어째서 가만히 있는걸까.

 

 "쿠로."

 

 눈에 띄는 하얀 로브에 시선을 잡아끄는 푸딩 머리. 이것만으로 충분했다. 켄마-. 쿠로오는 검을 천천히 내려 바닥을 겨누었다. 이것도 야쿠의 계획인가. 웃음이 비집고 나왔다. 저를 올려다보는 눈이 그리웠던 지라 말없이 그리웠노라 되내이며 뺨이며 눈가를 엄지로 쓸어내렸다. 켄마는 그의 손 위에 제 손을 겹치며 물었다.

 

 "쿠로는?"

 "아아- 역시 곁에 있을래."

 

 켄마는 발꿈치를 한껏 들어보였다. 쿠로오는 기꺼이 고개를 숙여주었다. 열기가 맞닿자 서로를 옭아맸다. 그들 답지 않게 여유가 없었다. 아무래도 좋았다. 굳이 말로 표현하자면 그것은 구원이였다. 그 깊은 바다에서 건져내어 숨을 불어넣어 준.

 

 쿠로-.

 

 그것은 무서우리만큼 오랜 애욕이 묻어나는 목소리였다.

 

-

 

분명 쿠로켄인데, 얘네가 메인인데..야쿠 멋있잖아, 젠장.

쓰고 싶은게 다 안써져서 불만입니다, 좀 더 넣고 싶었는데 그러자니 갈아 엎어야겠고 여기서 조금만 수정해보자니 이미 만빵인거 같아서 더 넣은면 넘칠거 같습니다 큨큐큐큐큐큐

에라, 몰라 오늘은 전력 두 탕 뛰는 날- 과제 많은데 어쩌지..

 

제복입은 쿠로오와 금기st 의 켄마가 보고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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