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어 님께 협박당한 글  리퀘

 

*기괴설정에 주의해주세요

*과거 날조 주의 


(시점은 나태조와 탐욕조가 만난 후 시점부터 봐주세요/의도찮게 탐욕조가 서브지만 왠지 모르게 메인이 되어버린 듯하지만 카테고리 새로 파기 귀찮으니 이대로 가자 라는 이론의 만행)

 

-

 

 죽은 자는 말이 없다.

 

 검은 악마 하나가 주위를 서성인다.
 선혈 가득의 이를 탓해야 하는가, 그를 홀린 악마를 탓해야 하는가.
 누가 널 이리 무자비도 먹어치웠는가 물어도 역시 죽은 자는 말이 없다.

 

 그렇기에 죽은 자임이 틀림없다.

 

 그야말로 열 가지 무(無)에서 피어오르는 순결의 혼백.

 

-

 

 마히루는 늘어지게 하품을 하며 폭신한 이불 위를 뒹구는 제 서뱀프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납득이 가질 않았다. 쿠로는 유유자적한 시간을 온전히 보낼 수 있다는 사실보다 뚫어져라 저만을 바라보는 이브란 작자의 눈치를 살폈다. 물론 제가 한 걸음 양보한다면 얼마듵지 설명이 가능한 일이였다. 안타깝게도 그에겐 그럴 추호도 없었다.  가끔 진실이란 것은 건장한 정신으로 버텨내기 역부족일 만큼 괴롭고 추하며 잔혹할 때가 있다. 가끔은 아무 것도 몰라도 좋다. 그 이면에 귀찮음이 베여있는 것은 틀림없었다. 마주할 수 없어. 그는 중얼거렸다.

 

 "쿠로, 역시 이해가 안가."

 

 아 시작됐다, 시작됐어. 쿠로는 잔뜩 미간을 구기며 상체를 일으켜 마히루를 마주보았다. 그는 언제나 모든 것을 알려 하였고 쿠로는 나태의 서뱀프 라는 호칭에 걸맞게 귀찮음으로 대응해왔다. 어쩌면 일종의 방어술에 가까울 지도 몰랐다.

 

 "로우레스 라면 맹세컨데 오늘 처음 봤어. 그런데 어째서 날 공격한거야?"
 "..그 녀석 일이라면 나도 몰라."
 "하지만 나한테, '오랜만입니다' 라고 말했는걸."

 

 나랑 누군가를 착각한걸까. 마히루는 잔뜩 얼굴을 찌푸리고 이마에 검지를 갖다대었다. 쿠로는 짐짓 놀라 평소보다 크게 뜬 눈을 도로 감으며 고개를 푹 숙였다. 제 고민에 빠져 역시 심플한게- 를 연호하던 그는 쿠로의 반응을 살필 겨를이 없었다. 보았다 하여도 그저 이상하다 정도로 그쳤을게 눈에 훤했지만 말이다.

 

 알 길이 없어 답답한 쪽은 마히루였다. 서뱀프에 관한 것이라면 여전히 미지에 가까웠다. 게다가 호기심 왕성한 저에 비해 생명과 연관되는 중요한 사실마저 묻지 않았다는 이유로 침묵해버리는 이름 값 톡톡히 하시는 나태의 서뱀프님 덕분에 알고 있던 것들 조차 뒤죽박죽 섞이고 마는 기분이였다. 물론 심플한게 좋지만 그렇다는 이유로 진실까지 치부해버릴 추호는 없었다. 눈 앞의 이리도 가까운 답을 두고 무엇 때문에 돌아가야 하는지 원망스러울 뿐이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원흉은 일순의 순간에 뒹굴거리는 꼴이되어 하얀 이불 위로 파묻혀있었다. 누가 나태 아니랄까. 마히루는 쿠로의 등허리를 가볍게 흔들었다.

 

 "쿠로."

 

 깨울 작정이였다. 그는 가물가물한 눈을 억지로 비집어 열었다 결코 좋은 얼굴을 하고 있지 않은 마히루에 도로 눈을 감아버렸다. 어이, 쿠로! 그는 작게 몸을 뒤척였다. 귀찮아. 미묘한 효과음과 함께 그는 한 마리의 작은 고양이 행세를 하고 있었다.

 

 "너 내가 이 모습일 때 약하다는거 알고 이러는거지."

 

 그의 손은 더 이상 점퍼 따위가 아닌 검고 보드라운 털을 맞대고 있었다. 이럴 때만 약삭 빠르다는 점 하나만은 높이 살 만한 것이 틀림 없었다. 마히루는 쿠로를 깨우는 것을 그만두고 방을 나섰다. 다들 힘 내는데 혼자만 보란 듯이 놀 수만은 없는 천성 탓이였다. 행여나 쿠로가 깨기라도 할까 조심스레 미닫이 문을 밀어 닫았다. 우선은 돌아갈까나. 그리 중얼거리며 겉옷을 챙겨든 후 온천을 빠져나왔다. 벌써 몇 일째 집을 비웠다는 것을 상기시키며 여유롭지만은 않은 걸음은 순식간에 빠르고 넓은 보폭이 되었다.

 

 의도찮게 간단한 집안 일을 마쳐놓고 쿠로에게 줄 포테토 칩 한 봉지를 집어 들고서 마히루는 제법 만족스레 온천으로 향하는 것은 명백히 직업병을 닮아있었다. 

 

 "어라라- 이거 나태 형님의 이브 아님까."

 "로우레스?"    

 "이거 참 우연이지 말임다."

 

 로우레스는 역광을 진 채 마히루를 벽으로 몰아넣었다. 일전에 쿠로와 싸웠을 적과 같이 여전히 소름 끼치는 미소가 만연했다. 그는 강하다. 제 입으로 마음만 먹으면 여럿이서 온전히 상대해도 힘들 적을 홀로 헤치운다 말하며 아무렇지도 않게 도발했다. 결과적으로, 심플하게 보면 마히루에게 있어 경계 인물이였다.

 

 그다지 탐욕은 협력할 마음도 없고 그의 이브 역시 같았다. 적어도 그가 아는 선에서는 그러했다. 둘의 관계는 단순한 이브와 서뱀프의 관계가 아니였다. 서뱀프는 이브에게 복종한다. 하지만 로우레스의 경우는 오히려 반대였다. 제게 평화주의자 스러운 면이 있다는 점을 짚고 넘어가도 다른 이브나 서뱀프들과는 확연히 다른 관계라는 것이다.

 

 "형의 기척도 없고 하니 길-게 대화라도 해보지 말임다."

 

 날카로운 송곳니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마히루는 더 이상 뒷걸음질을 쳐도 의미없다는 사실을 내심 알고 있었다. 어찌 되었건 그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어낼 터였다. 게다가 이브와 서뱀프의 전력 차이라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아직도 그들에 관해서 모르는 것이 너무나도 많았다. 이제 막 알의 막을 헤치고 나온 어린 새끼와 같은 꼴이였다. 하지만 명백한 한 가지라면 자신은 곤란한 상황에 빠져있고 탈출구는 지극히 협소하며 홀로라면 가능성이 제로에 가깝다는 사실이였다.

 순식간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머리로 이해하기도 전에 상체가 먼저 고꾸라지더니 하체 역시 맥 없이 픽 쓰러졌다. 복부에 근육이 갈라지기라도 하는 듯한 통증이 엄습하더니 주위로 퍼져나갔다. 명치 부근이 아니였음에도 숨이 쉬어지질 않았다. 탁한 숨만을 겨우 내쉬건데 눈 앞이 흐렸다. 손발 끝이 저릿하며 관절 마디가 모두 일렬로 늘어서 뻣뻣해져 도저히 움직일 수 없었다. 경련이라도 일어난 양 힘은 들어가지도 않고 마냥 미세한 떨림 사이로 흩어져만 갔다. 


 자- 그럼, 안녕히 주무시죠.


-


 "가엾은 운명은 돌고 돌아 마치 회전목마 마냥 다시- 돌아온다."


 마히루가 흐릿하게 나마 정신을 차렸을 적엔 로우레스는 정신없이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혼잣말을 중얼거리고 있었다. 손목을 포박하고 있는 쇠고랑이 녹슨 쇠음을 내자 그는 목적지를 찾은 듯이 반듯하게 걸어왔다. 올곧게 입가의 끝을 올리는 그는 한 걸음을 남겨둔 채 제자리에 섰다. 머플러가 펄럭이고 두 팔을 커다랗게 휘둘러 마지막으로 왼발을 오른 발 뒤로 점을 찍었다. 기괴스러운 몸짓은 영락없는 신사의 인사법에 불과 했다.


 "좋은 꿈 되셨슴까."


 눅진한 역한 향이 천천히 벽을 타고 오르는 듯한 기분을 떨쳐낼 수 없는 방이였다. 방이라기보다는 영화에서나 보던 지하 감옥과 같은 형세 였다. 멀쩡한 빛 하나 들지 않는 곳은 어둡고 축축하기 그지없었다. 벽면에 걸린 촛대의 건장한 남성 성인의 팔뚝보다 굵은 촛대 위의 아른거리는 불빛만이 지켜낼 따름이였다. 바닥은 촛농으로 어지럽혀진 것이 꽤나 오래 전부터 써오던 장소인 듯 했다.


 "왜 이러는지 궁금하실거라고 생각함다."


 로우레스는 제법 신나게 기세좋게 말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단지 말 상대가 필요했다 정도의 가벼운 생각이 들 정도로 그는 마히루에게 그다지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묶여 있는 것이 설령 츠바키라 할지라도 적이고 아군따위 가리지도, 만들지도 않는 그에게는 애초부터 의미없던 것일지도 모르는 일이였다. 

 그는 머플러는 찢어낼 듯 풀어헤쳤지만 곱게 내려놓았다. 후에 아무래도 좋다는 양 조끼와 셔츠는 뜯어냈다. 면티가 갈기갈기 흩어져버렸지만 그는 태연스레, 오히려 휘파람이라도 불어대며 양옆을 더 찢어내었다. 그는 제법 상냥히 웃어보였지만 묶인 사람에게 그렇게 보일 리가 없지 않은가. 조끼와 셔츠는 옆으로 거둬 골반 쯤에서 잡아 복부가 드러나게 하더니 붉은 동공이 아래서 위로 움직였다.


 "어떠심까, 이 걸작."


 복부의 정중앙을 차지하고 있는 새살의 흔적은 영락없는 나비의 형체였다. 네 방향으로 갈라진 선은 옅게 남아 도드라져 보였다. 온전히 살결만 이어 붙은 것이 로우레스가 숨을 들이마셨다 내쉴 때 마다 살아 꿈틀대는 것만 같았다. 


 "어째서인지는 전-혀 알 수 없지만 말임다. 이거, 나태 형이 남긴검다. 아무래도 같은 서뱀프 끼리라 그런건지, 이 이상으로는 도저히 회복될 기미가 보이질 않아서 말임다."


 뭐 저도 꽤나 곤란하지만요. 그는 옷에 붙은 먼지를 털어내는 손짓으로 흉터를 쓸어내렸다. 마히루의 눈 앞이 멈췄다 다시 재생되기를 반복했다. 노이즈가 웅얼거렸다 돌아오는 스크린 마냥. 이리저리.


 "그게, 무슨..소리야."

 "당연한 소리지만 형이 그런걸 당신에게 알려줄리가 없잖슴까. 그야 모-든게 당신 때문에 일어난 일이니까요. 이 방을 기억 못한다는 것만으로 충분함다."


 헤실거리던 웃음기가 순식간에 자취를 감췄다. 싸늘하게 내뱉은 충분하다는 그의 말에도 미히루는 여전히 무엇 하나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그의 말대로 라면 저는 이 방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실제로 전혀 그러지 못했다. 이것도 쿠로가 얘기해주지 않은 한 부분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지만 당장의 이성적인 논리보다는 두려움이 앞섰다. 


 "무슨 말인지 전혀 모르겠다고."

 "그-러-니까, 그게 당연한 일이라고 말했잖슴까. 형이, 감히 나태의 서뱀프인 형이 이브라 해도 당신께 그런 건 가르쳐줄리가 없슴다. 물론 나태 이전의 문제지만."

 "쿠로가, 쿠로가! 뭘 안 알려준건데!"

 

 로우레스는 하찮다며 걸어와 무릎을 세워 복부를 찍어올렸다. 


 "닥쳐. 당신이 잘한건 지금 여기 있는 것 뿐임다."

 "그러, 니까..모르겠다고, 말하잖아.."


 그는 허리를 바짝 숙인 채 방 안 가득 소리로 찰 때까지 웃어댔다. 그것은 비웃음이였고 허탈함이였다. 


 "정말 형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네요. 물론 나쁜 방향으로 말임다. 그렇다면 제가 알려드리죠. 과거의 모든 일을."


-


 서뱀프는 단 한 번의 계약이 허락된다. 그렇기에 서뱀프에게 계약이란 최초이자 최후의 선택이라는 점에 의의가 있다. 어떠한 경우도 계약한 자가 아닌 이와는 계약 할 수 없다.

 이브란 서뱀프와 계약한 자를 일컫는다. 계약에 관한 권한은 이브가 가진다. 이브는 서뱀프와 계약을 하므로 그들을 수하로 둘 수 있으며 그들에게서 무기를 얻을 수 있다. 이브는 단 하나의 서뱀프와 계약할 수 있다. 이브는 환생한다. 현생에서 계약 후 죽음에 도달하면 도로 환생한다. 그리고 다음 생 역시 서뱀프의 이브로 살아가게 된다. 그 증거로 첫 계약 시 서뱀프의 힘을 미약하게 가지게 되는데 이로 서뱀프들은 환생한 이브를 찾을 수 있다. 환생 시 경우에 따라 전생의 기억을 가지기도 한다.


 나태는 사막에서 저를 살려준 전쟁터의 한 아이와 계약을 맺었다. 어딘가의 동화인 은혜갚은 ~ 처럼 사려가 깊지 않은 그였다. 다만 여전히 희망을 놓지 않은 눈이 마음에 들었던 것 뿐이였다. 반군의 난사질에 엇맞은 아이는 붉게 물드는 손에 가쁘게 숨을 몰아쉬었다. 너, 나랑 계약하자. 예나 지금이나 뜸금없는 소리는 때를 가리지 않고 잘했던 모양이였다. 

 희망 찬 눈을 보면 제 귀찮음을 덜기 위한 것은 절대 아니였다. 어쩌면 이 또한 적당히 그가 갖다붙인 것에 불과할지도 몰랐다. 다만 전쟁터에서 하루가 다르게 제 목숨 하나 겨우 이어가는 그곳에서 먹을 것을 나눠주고 잠자리를 내어주며 오직 나태가 살아있음에 기뻐하는 아이란 좀 처럼 거부하기 어려운 것이였다. 


 단지 그 뿐이였다.


 탐욕은 결과적으로 제 식사를 방해하던 가출 소년과 계약을 맺었다. 성에 차지 않는 식사를 마친 후 돌아서자 그는 무심히도 '맛 없던 것' 과 탐욕을 번갈아 보았다. 그러더니 검지로 대뜸 탐욕을 가리키며 말했다. 


 너, 로우레스 구나.


 영문을 모를 소리를 하던 그를 한 입거리로 삼을까 하며 고민하던 중 소년은 제 손을 만지작거리더니 미간을 구겼다. 좀 더 자세히 상상할걸. 

 버릇없이 구는 건 둘째 치고 살인 장면을 마주했음에도 알 수 없는 제 할 말만을 들어놓는 그는 탐욕에게 꽤나 흥미였다. 그 뒤로도 저를 따라다니며 '로우레스' 라고 불러댔다. 이유를 묻자 간단히 답했다. 넌 내가 상상해서 이 세상에 나온거야. 그 점이 마음에 들었다. 심심하지는 않겠다는 생각으로 단번에 계약 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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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츠바키 라면 처음보는 녀석도 아님다. 당신네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오래 전부터 우리와 함께 있었슴다. 그리고 그 녀석의 안식처 랄까, 봉인되어 있던 곳이 여기 였던 것 뿐임다. 지금, 그 자리에."

 "그럼, 난 원래 전쟁터에 있던 아이고. 내가 쿠로를 주운거라고?"

 "원래가 아니라 전생임다. 그게 전전전생일지도 모르지만 말임다."


 로우레스는 피식 웃더니 마히루의 앞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 자리에 봉인되어 있었슴다. 리히트와 함께. 그리고 제가 풀었죠. 츠바키와 함께."


 그는 커다랗게 두 팔을 벌리더니 이내 뒤로 쓰러지듯 누우며 숨소리만 남을 정도로 웃어댔다. 두 다리를 끌어올려 양옆으로 구르며 웃더니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 앉으며 눈가의 눈물을 훔쳤다. 


 "누구 때문에 츠바키를 리히트와 봉인했다고요. 그래서 제가 풀었어요. 가엾은 리히트- 봉인 덕택에 환생도 못하고 여기서 홀로 차갑고 어둡고 외롭게, 여길 지키고 있었다고!"


 로우레스는 마히루에게 달려들어 그의 목을 짓눌렀다. 목뼈가 으스러질 듯이 한 손에서 두 손으로 늘었고 숨이 막히기 이전에 뼈가 부러질거란 생각이 마히루를 엄습했다.


 "웃기는거 하나 알려드리겠슴다. 나태 형이 왜 나태인 줄 아심까."


 그는 갑자기 힘을 풀더니 두 팔을 뻗은 채 뒤로 두어 걸음 물러났다. 그러더니 손을 찢어진 티에 슥- 하고 문질렀다.


 "사랑에 눈이 멀어 제 할 일을 모두 내팽겨쳐서 임다. 그래서 나태하다고 말이 붙었고요. 웃기는 일이죠. 나태와 사랑이라니 이런 조합따위 말도 안돼. 리히트는 전혀 그렇지 않다고 말할테지만요. 그렇죠?"


 그는 곱게 내려놓은 머플러를 주워들어 가볍게 품에 안았다. 그리곤 익숙한 모양새로 머플러를 매더니 그 안에 얼굴을 묻고 크게 쉼호흡했다.


 "그리고 그 사랑이란건 말임다. 꽤나 웃기는 놈임다. 꽉 찬 것 같지만 실제로 속을 들여다보면 텅 비었거든요. 물론 나태 형은 좀 다른 것 같습니다만. 지금은 아니지만 딱 전전생 까지만 해도 나태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도록 열성적이였슴다. 그 사람 한정이였지만 말임다. 나태인 주제 잘도 숨기고 다니네요."


 그는 여전히 머플러 끝자락을 놓지 않은 채였다. 


 "그렇지, 형-?"


 멀리서부터 촛대가 일렁이더니 삽시간에 군데군데의 촛불이 꺼져 연기만을 피워냈다. 그 광경이 마치 향이라도 피워내는 묘지같아 마히루는 살기에 숨을 멈추었다. 턱 아래까지 밀려들어오는 오한은 그리 반가운 것이 아니였다. 


 서뱀프이자 장남이자 나태이자 쿠로였다.


 반지 앞 주머니에 손을 넣고 반 쯤 굽은 허리로 발을 끄는 그가 아닌 온 몸에 형용할 수 없는 살기가 도는 '쿠로' 였다. 새까만 그림자 안 붉은 눈동자만이 커다랗게 일렁여댔다. 


 로우레스는 빈정거렸다. 이름 하나는 잘 어울리네요, 쿠로(黑) 이라니. 그러면서 그는 머플러는 입가까지 끌어올렸다.


-


 "탐욕에게 납치라니 그게 무슨 소리야."

 

 미소노는 책상을 치며 상체를 일으켰다. 리리이는 그런 미소노를 자리에 앉히며 흥분을 가라앉혔다. 자자, 미소노. 우선은 할 말이 더 있는 것 같으니까 진정하죠. 어린 주인이 깊은 한숨을 내쉬며 도로 앉자 옆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테츠는 호오- 라며 중얼거렸다. 


 "쉽게 타오르는 성질인가."

 "아니야!"


 테츠는 제 서뱀프인 휴를 돌아보더니 미소노의 반응따위 없었던 것 마냥 둘 만의 대화를 이어나갔다. 리리이 역시 곤란한 건 마찬가지였다. 어린 주인이 언제까지고 고분고분히 제 말을 들어주지만은 않을테니 그 전에 해결해야만 했다. 

 저들이 츠바키의 탐색을 위해 자리를 비운 사이 마히루는 나태를 두고 혼자 사라졌다. 사실 그들은 나태 역시 본 적 없으나 때마침 로젠이 리히트를 통해 나태의 행방을 알고 있었다. 더불어 시로타 마히루의 행방에 관해서도. 


 "리히트는 나태와 함께 둘을 찾으러 갔어. 나태도 제 이브니 어렵지 않게 찾을거라고 생각해. 다만 문제라면- 어째서 로우레스가 마히루 군을 납치했냐는건데."

 "그 문제라면 내가 알고 있다."


 박쥐의 형태로 취하던 휴는 어느 새 인간체로 돌아와 책상 앞에 앉아있었다. 잔뜩 미간을 구긴 채 리리이를 바라보고 있었고 리리이 역시 평소와는 다른 가라앉은 미소였다. 미소노는 리리이로 시선을 돌렸다.


 "너도 알고 있는거야?"

 "뭐- 네."

 "서뱀프들, 아마 츠바키 까지 포함해 알고 있을거다."

 "그 문제라는게 리히트와도 관련이 있는건지."

 "물론이다! 가장 크게 연관된 것이 그 청년이다."

 "휴, 자세히 말해봐."


 휴는 흠칫하더니 눈을 굴렸다. 그게. 


 "얼른 말해야 우리도 도울거 아니야."

 "사실 우리는 크게 관련이 없으니 하는 말이지만 슬리피 애쉬와 로우레스의 얘기다. 그 둘이 어긋나게 된 결정적인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그게 무슨 문제냐고 묻잖아."

 "흠- 멋대로 얘기해버리기엔 다소."

 "나태가 탐욕의 이브를 죽였습니다. 자신의 이브를 살리기 위해서요."


 리리이가 입을 열었다.


 "올 오브 러브!"


 휴의 낯빛이 새파랗게 식었다. 하지만 그는 미동조차 없었다. 


 "테츠 군이 한 말이 맞습니다. 도울 수 있다면 도와야합니다. 아니면 그 때의 일이 다시 반복될게 뻔해요. 로우레스라고요. 마히루 군을 죽이러 들겁니다. 아마 보는 앞에서 말이죠."


 휴는 마른 세수를 하더니 이내 끄덕였다. 


 "츠바키는 원래 봉인되어 있었다. 다만 이유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풀려난 것 뿐이다. 그 전까지 지하에 봉인되어 있었는데 힘이 강해 도저히 혼자 봉인시키기에는 역부족이였다. 그래서- 로우레스의 이브와 함께."

 "그게 무슨 소리야. 츠바키라면 처음 보는데."

 "자네는 전생까지 기억하는 모양이지만 안타깝게도 그 때는 봉인되어 었었다."

 "미소노는 잘 모르던 때라서 그런겁니다. 계속해주세요."


 휴는 리리이의 말에 잠시 끊어진 흐름을 다시 이어나갔다.


 "문제라면 그 츠바키를 잡아 가두는 과정에서 슬리피 애쉬의 이브가 츠바키와 그의 서브 클래스에 의해 죽기 직전의 상황이였다. 봉인이란건 최대한 힘을 억눌러야 하는데 그렇게 기력이 쇠하니 도저히 안될터였고 그래서 마침 곁에 있던 로우레스의 이브였던 청년을 재료로 쓴게지. 로우레스는 이에 분노했고 아마 슬리피 애쉬의 이브 탓이라고 생각하는게일 터야. 하지만 슬리피 애쉬의 이브도 때를 넘기지 못하고 그만 죽어버리고 말았지."


 긴 설명의 끝은 침묵이였다.


 "로우레스는 제 이브를 사랑했어. 지금 역시."


-


 "역시 올 줄 알고 있었슴다, 형."

 "쿠로..!"

 

 손가락의 관절 하나하나가 꺽이더니 목이 기계마냥 굳은 채 돌아갔다.


 "당장, 풀어."


 결코 그의 페이스를 잃지 않았음에도 낮게 읊조리는 나태스런 목소리는 귓가에 찌르르 하고 멤돌았다. 


 "풀어."

 "싫다면 어쩔검까."


 로우레스 역시 검을 뽑아들며 허공을 휘저어댔다. 


 "형의 이브 사랑은 유별난건 알겠슴다. 그렇다고- 남의 이브를 그 따위로 갖다 쓰는건 어디 상식임까!"  


 먼저 달려든 쪽은 로우레스 였다. 오른팔을 크게 휘두르며 손목을 꺽어 얇은 검을 옆으로 찔러넣었다. 쿠로는 달리 움직이지도 않은 채 뒤로 두어 걸음을 빠져나왔다. 허공을 짚은 로우레스는 방향을 틀어 검을 밀어넣었다. 연한 살을 뚫는 쾌감에 한껏 승리에 취한 미소가 번지기 시작할 무렵. 쿠로는 그의 뒤에서 목 아래를 손으로 찔렀다. 두 마디 정도가 수면 아래로 사라진 채 이성을 잃은 그가 손을 휘두르자 힘 주어 비틀어 빼내었다. 검붉은 피가 흡사 구멍에 가까운 상처를 에워싸고 짓눌러 그 안에 묶인 죄라도 쏟아냈다. 


 쿠로는 제 이브를 속박한 쇠사슬을 손짓 하나로 간단히도 끊어냈다. 손을 비롯한 팔은 거의 질리다시피 허옇게 식어있었고 마히루는 그것 하나만으로 고역이였다. 로우레스에게 가격당한 복부 역시 무사하지는 못했기에 사슬이 끊어짐과 동시에 그는 쿠로의 품에 안기듯 내려앉아야했다. 


 "마히루, 마히루..!"

 "쿠로."

 "괜찮아?" 


 그는 눈을 두어 번 감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어느 새 쿠로는 그가 알던 모습으로 돌아온 뒤였다. 만사를 귀찮아하며 무기력한 나태의 진조로.


 "멋대로 돌아다니지 말란 말이야. 귀찮다고."

 "미안. 그냥 잠시 집에 다녀온다는게 이렇게 되버려서."

 "자칫 하다가 그 때 처럼..!"


 멈칫. 그는 어금니를 맞물려 갈며 눈을 피했다. 마히루는 말 없이 그런 쿠로를 올려다보았다. 그 얼굴이 마치 로우레스와 마주 했을 때와 같다고 생각했다. 


 "..가면 간다고 얘기 정도는 하고 가."

 "아- 응."


 쿠로는 마히루의 손을 잡고 일으켜 세우고는 앞 장 섰다. 주머니에 손을 비집어 넣은 채 구부정하게 걸으면서도 그는 간간히 뒤를 돌아보았다. 그의 시선이 익숙하지 못한 탓에 마히루는 어색히 웃기만 했다. 가고 있다니까. 이내 쿠로는 마히루의 손을 잡아끌더니 소매를 붙잡게 하였다. 그제서야 돌아보기를 그만 둔 그에 마히루는 조금 미묘한 심정을 내비췄다.


 "손이면 손이지 왜 소매야. 그리고 나 잘 따라가고 있다고, 무슨 어린 애도 아니고."

 "귀찮아."

 "뭐가 귀찮다는거야."


 내색하면서도 결국 얌전히 손을 내어주는 쿠로에 마히루는 작게 웃었다.   


 "쥐새끼는."

 "제일 안쪽 광장."


 오늘은 가방이 보이지 않는 리히트가 반대편에서 여유롭게 걸어오고 있었다. 대뜸 자신의 서뱀프의 행방을 묻는 그보다 마히루는 그의 텅 빈 어깨가 더욱 눈에 들어왔다. 


 "로우레스, 미워하지 마."

 "네..?"

 

  오로지 제 할 말만을 남기고 리히트는 제 갈 길을 가버렸다. 그가 사라진 반대편을 한참이고 바라보자 쿠로가 그를 잡아당겼다. 


 "혼자서 멀리 가지 마. 안그래도 되니까."

 "쿠로가 귀찮아 하잖아."

 "..혼자 가지마."


-


 "어이, 쥐새끼. 죽었냐."


 리히트는 굽으로 로우레스는 건들였다. 출혈이 멎은 목은 말끔히 새 살이 돋아나있었다. 


 "리히땅-? 어떻게 여기,"

 "쥐새끼의 형님 되시는 분이랑 같이 왔다만."

 "그 자식이- 어떻게."


 리히트는 비교적 핏방울이 튀지 않은 곳에 털썩 주저앉더니 거적때기 마냥 늘어진 검은 머플러를 집어들었다. 로우레스는 천천히 몸을 틀어 제 이브를 바라보았다. 색 덕분에 핏빛으로 물드는 것을 면했을 뿐인 머플러는 묵직하게 적셔있었다. 


 "버려."

 "리히땅이 준거니까 아직은 쓸까나- 싶어서."

 "더러워."


 경멸스러운 시선에도 로우레스는 시종일관 웃었다. 리히트는 기분나빠 를 연호하며 뻔뻔스런 낯짝 위로 머플러를 던졌다. 


 "무슨 일 인지 설명해."

 "아아- 그거 라면,"

 "피곤하니까 잘거야. 그리고 나서 해."


 리히트는 로우레스의 옆자리를 차지하고 누우면서 그를 바라보았다. 


 "팔."

 "에-?"

 "바닥 딱딱하니까 못 잔다고. 팔 내놔."


 어안이 벙벙해진 그의 팔을 잡아당기더니 리히트는 기세 좋게 베고 누워 잠을 청해버렸기에 도저히 어쩌지도 못하는 웃지도 못하는 상황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증오도 허무도 슬픔도 아닌 고요가 가라앉았다. 우선은 아무래도 좋았다. 리히트가 살아있다는 것만으로 충분히 벅찼지만 이런 류의 서프라이즈에는 약한 그였다. 남은 팔을 천천히 그의 허리 위에 얹었다. 잘자, 리히트. 좀 더 안으며 그 역시 눈을 감았다. 


 "로우레스."


 리히트는 감고 있던 눈을 살며시 떴다. 어리숙한 모습은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었다. 아둔한 자식. 그리 중얼거리며 뺨에 작게 입맞췄다. 어차피 정신은 이미 아득해진 상태일 테고 깨어있다 해도 저는 자고 있다고 생각하니 이래나 저래나 상관없었다. 좀 더 안으로 파고 든 채 눈을 감았다. 심장이 뛰긴 뛰는구나. 다음 음악회 메인으로 쓰면 되겠다. 그런 생각을 했다. 


 결코 텅 비지만은 않았다. 처음 만남부터 지금까지.


-


흐어어어어ㅓㅓㅓ어어ㅓ어ㅓ엉


지금은 새벽 4시 32분/노트북 시계로


나는 오늘 잠을 포기하겠다 죠죠!!!!1 같은 상황 연출은 바란 적이 없으나 


우연찮게 이렇게 되서 유감스러운건지 뭔지 잘은 모르겠지만


마감!!! 완료시마시타!!!!!! 우와아아ㅏㅏㅏㅏ


사실 지금 내가 뭐라고 써놨는지 기억도 안나고...ㅋㅋㅋㅋㅋ


분명 쿠로마히였지만 결국 난 탐욕조였나봅니다, 음음


이번 글 쓰면서 깨달았어요, 탐욕조가 취향인건같습니다 :D (빵긋-)


그럼 오전에 보면 더 이상 이 건으로 시달리지 않겠네요 하핳  



아 역시 제목은 어떻게든 해명해야할거 같아서..음-

해명이라고 한 시점부터 망한건 알지만 그래도..!! 하핳


쿠로 입장에서는 마히루를 지키지 못한게 죄고 혼자 가지 말라고 말하는거고요, 음

로우레스는 뒷 부분 전체적으로 보면 되지..되, 되지 않을까...하지만 

 

살해당하고 말거야, 암살 당할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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