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니키타 씨, 다자이 씨 못보셨나요?"

 

 "다자이 라면 사장님-"

 

 "다자이 씨 오늘 출근안하셨어요!"

 

 켄지는 해맑게 웃으며 언제나 처럼 답했다. 그리곤 무슨 일이라도 있냐는 듯 눈을 끔뻑였다, 물론 해맑게.

 

 "뭐- 다자이 그 자식이 출근을 안했다고?!"

 

 "어라어라 아침부터 무슨 소란일까나- 쿠니키타 군."

 

 "다자이가,"

 

 "방금 귓청 떨어지게 들어버려서 알고 있으니까 반복할 생각하지마. 시끄러운 남자는 치료 중 이외에는 질색이니까."

 

 장갑을 끼지 않은 손을 허공에 내저으며 요사노는 질렸다는 얼굴을 내보였다. 남은 한 짝의 장갑을 끌어올리는 동안 쿠니키타는 못마땅하다는 내색을 비췄지만 소용은 없었다.

 

 "오호라 이 상황은-"

 

 "란포 씨!"

 

 상황을 타개할 만한 인물의 등장에 아츠시는 책상을 치고 자리에서 박차고 일어섰다. 란포는 안주머니로 부터 안경을 꺼내들었다. 초추리를! 기대에 가득 찬 눈으로 안경의 이음새에 손을 얹은 채 고개를 주억이며 그렇군 이라며 중얼거리는 란포의 행동에 아츠시 뿐만 아니라 모두가 입을 다물고 주목했다.

 

 "쿠니키타 군이 요사노 씨에게 질책을 당하고 있었군. 그것도 쓸데없는 행동을 반복했기 때문이지."

 

 "역시 란포. 명탐정이시네."

 

 일제히 같은 행동으로 모아졌다 모두 다른 행동으로 퍼져버렸다. 아츠시는 김 빠졌다는 양 의자로 도로 주저앉아버렸고 쿠니키타는 반문하고 싶지만 그럴만한 여력이 없어보였다. 켄지는 처음부터 그다지 신경쓰지 않았다는 눈치지만 사실 그 편이 아니라 란포가 말하는 것을 예상하고 있었다는 얼굴이였으며 유일하게 요사노는 두 손을 맞잡으며 웃어주었다. 

 

 "내 이능력- 초추리만 있으만 뭐든지 가능하단 말씀이지."

 

 "어째서 이렇게 돌아가냐는 말이다."

 

 "추가적으로 쿠니키타 군이 요사노 씨에게 혼나고 있었던 이유는-"

 

 "말하지마! 됐어! 이제 됐다고!"

 

 "어머, 쿠니키타 군. 예의가 없네. 지금 한창 명탐정님의 추리 해설 중인데."

 

 "그래, 가만히 앉아서 듣기나 해."

 

 "-그래라, 알아서들 해라."

 

 "다자이 씨가 출근을 하지 않았고, 물론 그 질문은 누구보다 저기 우리의 신입군! 아츠시의 발업이 시발점이겠지. 당연스레 사장님과 면담이라도 할거라고 예상한 쿠니키타 군에게 들려온 답변은 출근을 하지 않았다- 라는 예상 밖의 그런, 답변."

 

 또 한건을 멋지게 해결해냈다는 성취감에 가득 찬 몸짓으로 고고하게 안경을 벗어 도로 안주머니로 집어넣는 란포가 결착을 지었다.

 

 "맞았지?"

 

 "니 추리가 틀릴리가 없잖아."

 

 "그렇다는 말씀-!"

 

 제 자리로 구두굽 소리를 내며 쿠니키타를 지나친 란포는 망토 격의 외투를 펄럭이며 존재감을 과시했다. 아츠시는 그런 란포와 굳어버린 쿠니키타를 번갈아 보다 꽤나 조심스런 발걸음으로 란포에게 향했다.

 

 "저어- 그렇다면 다자이 씨, 왜 오늘 출근하지 않으신걸까요?"

 

 "그거야 나도 모르지."

 

 "에-! 하지만 란포 씨의 초추리는!"

 

 "내 초추리로 알지 못하는 것은 없어!!"

 

 "그렇다면 어째서-!"

 

 곤란하다는 표정에 가느다란 실눈이 모습을 드러냈다. 아츠시는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뭔가 건들여서는 안될 것을 건들여버린것만 같아 초조하게 식은땀으로 가득찬 주먹을 쥐었다 펴기를 반복해댈 뿐이였다. 란포는 주먹을 쥐고 책상을 내리쳤다.

 

 "당연히!"

 

 "당연히?!"

 

 "당질 OFF- 다.."

 

 기세 좋게 내리친 주먹을 감싸쥐고 방금까지만 하더라도 보이던 의기양양한 모습은 사라져버린 채였다. 책상에 뺨이 달라붙어라, 누군가 누르기라도 하는 마냥 늘어져 기운 빠진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더불어 뱃가죽이 울리는 소리까지 덤으로.

 

 "아."

 

 무언가 깨달아버리고 말았다는 기괴한 얼굴로 아츠시는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건들이면 안되는게 아니라 알아서는 안되는 것도 아니라 알고 싶지 않은 란포의 이면이였다. 그렇구나. 쉽게 납득이 가면서 진지함이 빠져나갔다.

 

 "자- 이거라도 먹어라."

 

 "오오 그것은!"

 

 "그래. 니 당분이니까 먹어둬."

 

 "내 돈 주고는 절대 사먹지 않는 초코바로군."

 

 어디서 기운 빠지는 소리가 났다. 더불어 쿠니키타의 안경이 반으로 갈라지는 소리도 났다.

 

 "어이. 란포- 너 말이야,"

 

 "하지만! 예외는 존재하는 법이지. 그-! 러니..받아두도록 하겠어..이번 뿐이니 우쭐해지지 말라고, 쿠니키타 군."

 

 아츠시의 입가가 무리하게 올라갔다. 아아- 확실히 이런 사람이지. 란포 씨는.

 정말 힘이라곤 없는 건지 비닐 포장지 하나 제대로 뜯지 못하고 자꾸 헛탕을 쳤다. 보다 못한 쿠니키타는 란포의 가냘픈 손에 들린 초코바를 빼앗아들었다.

 

 "역시 네 놈이란 녀석은."

 

 귀찮아하는 기색을 내비취면서도 제대로 벗겨 먹기 쉽게 포장지 부분을 접어 손에 쥐어주었다. 아츠시는 익숙하면서도 별 수 없다는 얼굴을 한 쿠니키타를 향해 두 눈을 끔뻑였다.

 

 "말하고 싶은게 있으면 말하란 말이다!"

 

 "아니- 그 화낼지도 모르지만, 쿠니키타 씨는 상냥하시네요."

 

 카운터. 그것도 아주 제대로 들어맞아버리고 말았다. 재밌다는 듯이 요사노는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아츠시와 '주변 녀석' 들을 관찰했다. 예상대로 쿠니키타는 이제 전투 불능. 얼어버린게 꼴 좋다고 말한만 했다. 분명 상대를 잘못 골랐다는게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이겠지. 요사노는 중얼거렸다.

 

 "뭐, 뭐라는거냐, 네 놈은..! 쓸데없는."

 

 "그러시면서도 주위 사람들 잘 챙겨주시잖아요. 저도 그렇고."

 

 "돼, 됐으니까 일이나 해."

 

 "네에."

 

 란포는 질린 얼굴을 해가며 질긴 모양인지 몇 번이고 재차 씹기만을 되풀이했다. 목구멍 너머로 -란포의 표현을 빌리자면- '싼 맛' 이 흘러들어가자 그나마 살겠다 라며 얼굴이 펴졌다. 그 사이 제 자리로 돌아간 아츠시는 오늘 자 신문을 훑어보다가 묘한 좌측의 부제를 두 번째로 깨달아야했다.

 

 "그러고 보니, 다자이 씨는 정말 어디가신 걸까요?"

 

 "어딘가 강에 쳐박혀 있겠지."

 

 "또 자살방법 실천 중일걸, 아마-."

 

 "단순히 일 하기 싫은게 아닐까요?"

 

 "귀찮아."

 

 윽-. 속으로 적당히 골라낸 무장 탐정사의 일원들의 해답은 애석하게도 부정하기 어려운 것들 뿐이였다. 틀렸다고 반박할 수가 없잖아. 게다가 자신보다 다자이를 오래 동료로 둔 동료들의 의견이니 신빙성도 있고. 아츠시는 머리를 헤집으며 넓게 책상의 반 이상을 차지하는 신문 위로 쓰러졌다. 아아- 정말 어디 가신거야.

 

 소 몰기 좋은 날이네요. 창가에 선 켄지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오늘 날씨가 정말- 좋아요."

 

-

 

 "아아- 분명 쿠니키타 군 화낼텐데에."

 

 뭐 어쩔 수 없지. 조금도 걱정이 없다는 얼굴을 하고는 제법 호탕하게 소리를 내질렀다. 그의 계산 범위 내의 행동에 불과했다. 주변에는 사람이라곤 저 하나 뿐이였으니 말이다. 글라스 안에서 구 형의 얼음이 벽면의 유리와 맞닿이며 화합을 맞췄다. 날씨 탓인지 기어코 택시를 타고 왔건만 하필 택시에서 해가 비치는 곳에 둔 탓인지 미묘하게 짙은 알코올 향내 사이를 비집고 머금은 한 모금의 끝맛은 물이였다. 이걸 어쩌면 좋담. 조금만 마시기로 오자마자 당당히 건낸 약속치고는 너무 얄팍하기 그지없는 노릇이였다. 입맛을 다시며 상대를 바라보았다. 웃었다.

 

 "오랜만이잖아. 이 정도는 봐줘."

 

 검은 비닐 봉투 속으로 밀어넣은 손 끝에 달랑이며 끌려올라온 것은 당연히 술병이였다. 다 안마실거니까 그런 눈으로 보지 말아줄래. 입을 삐죽이며 달그락 하고 병을 열었다. 특별히 내 월급으로 사온거니까 말이야- 이 정도는 마시게 해달라고. 툴툴 거리면서도 단숨에 미미하게 섞여나는 물을 들이켰다. 빈잔은 채워야하는 법이라고. 신나게 위에서 아래로 내리붓던 병을 급하게 기울였다. 거품이 여기저기 올라온게 딱 반 잔 즈음 될 법했다. 좋아, 이 정도로 타협하자. 손등 언저리 까지 감은 붕대에 물기라도 닿을새라 조심스레 검지를 내려 기포를 터뜨렸다.

 

 "있잖아, 나 얼마 전에 미인을 찾아버렸는데 나랑 같이 동반자살을 부탁했더니 차여버렸어."

 

 그것도 웃는 얼굴로. 울렁였다. 히죽이는 얼굴로 들이켰다. 도로 뱉었다. 잔기침으로 명치를 두어번 가볍게 치댔다. 자네도 이 쯤되면 익숙해지란 말이야. 아무 말 않은 채 삽시간에 얼굴이 굳어버렸다.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려다 보았다. 얼기설기 뒤섞인 앞머리에 눈이 따끔거렸다.

 

 비올거 같아. 

 

 눈 앞이 돌았다. 얼마 마셨다고 꽤나 빨리 오른 취기에 바람 빠지는 소리를 냈다. 있잖아, 나 여기서 술주정 부려봐도 되려나. 뭐, 안된다고? 어째서. 그 편이 더 재밌을게 뻔한데. 아아 알았으니까 잔소리는 그만. 술잔을 요란스레 내려놓으며 두 손으로 귓가를 감쌌다. 더는 안들을거니까 그런 줄 알아. 고개까지 홱 돌리며 온몸으로 반항을 해댔다. 그러다가도 살며시 눈을 떠 옆을 흘겨보자 순식간에 사그락 거리는 바람 소리와 함께 흩날려버리고 마는 꼴이였다. 알잖아, 자네한테 화 못내는건. 푸스스 웃었다. 동시에 두 다리를 끌어모아 안고 고개를 내리박았다. 알아. 이렇게도 잔인한 결말.

 

 "자네가 쓰고 싶었다는 결말은 이런거였어?"

 

 중얼거려봤자 닿기는 커녕 안에서 맴돌기만을 되풀이했다. 또 다시, 또.

 

 있잖아, 있잖아. 달그락 거리는 빌어먹을 화합이 귓가에 거슬렸다. 떨리는 손으로 그 따위 젖는게 두려운게 아니라며 글라스 안의 얼음 덩어리를 꺼내 집어던졌다. 분명 풀숲으로 떨어져버리고 말았으리라. 보기 좋게 산산조각이라도 났으면 기뻤을텐데. 작게 중얼거렸다. 작은 소란에도 여전했다. 내면에서 끓어오른게 화근이였다. 가끔 이렇게 주체 못하곤 날뛰어버리는게 편하다 해도 장소는 한정적일 수 밖에 없는 노릇이였다. 기인 취급을 넘어선 자살 매니아의 별난 놈 이상으로 대해지는데 선이라도 넘었다간 분노 조절 장애 라는 명예까지 끌어안아야 했다. 그 만큼은 절대 사절이였다. 매번 그렇게 삭히고 삼키고 넘기고 참고 억눌러봐야 결국 행선지는 정해져있었고 당연히 거부감 따윈 없었다. 슬프게도 그마저 예상행동 범위 내였다.

 애초부터 다자이 오사무 라는 남자가 그랬다. 딱히 이능력이 미래를 예측한다던가의 대단한 남자는 아니였지만 굉장한 남자였다. 사람이다. 순수하게 머리가 좋을 뿐일지도 몰랐다. 다만 까마득히 기억하는 옛 기억 속에서부터 머리 굴리는데는 일가견이 있다는 정도였다. 그런 말이 있다. 

 

 '적들에게 유감을 표해야하는 이유라면 그들이 다자이 오사무를 적으로 두었다는 점이다' 라는.

 

 계기가 어찌되었든 옛 '친우' 의 한 마디에 제 인생을 뒤집어버린 사람이였다. 애정을 내보여도 그조차 허투루 하는 짓에 불과했고 진심은 삼키는 사람이였다. 그 마저 몇 해전 제 손으로 흩어져버린 친우의 온기와 함께 묻어버린 사람이였다.

 

 "부끄럼 많은 인생을 살아왔습니다- 자네를 포함해서."

 

 오다사쿠.

 

 알싸하게 톡 퍼지는 알코올 맛에 다자이를 양껏 머금었다 삼키곤 혀를 내밀어보였다. 술맛도 다 떨어져버렸는데 책임지셔야겠어. 빈 잔 속은 물기로 젖어들어 벽면에 매달린 물방울이 아래로 흘러내려 모여 다시 한 모금을 만들어냈다. 화하게 올라오는 알딸딸한 기분에 피식 웃으며 아래는 술, 위는 물로 분리되어버린 오다사쿠의 잔에 부어주었다. 너나 더 마셔라. 고개가 절로 내리박혔다. 이유모를 따름이였지만 왠지 그의 앞에만 서면 낯 부끄럽기 짝이 없었다. 분명 그랬다.

 

 "오랜만에 죽기 싫어졌다. 진짜."

 

 그리 중얼거리는 다자이의 눈이 감겼다. 오다사쿠, 나-.

 

 "묘 앞에서 술주정이냐, 다자이."

 

 "-내 반쯤 또렷한 정신이 이 목소리는 츄야라고 말해주고 있지만 믿고싶지 않은걸."

 

 "썩 꺼져. 망할 다자이."

 

 "간부님께서 이런 누추한 곳까진 무슨 일이시래."

 

 "보스 명령. 그러니까 비키라고 썩을 놈아."

 

 "보스?"

 

 "그래. 기일이잖아. 네 놈때문에 챙기시는 모양인데. 조직에서 나가서 까지 일거리나 만들고 징한 놈이다. 넌."

 

 어깨가 미미하게 들썩였다. 츄야는 못마땅하단 얼굴로 미간을 구기며 억지로 집어든 것 마냥 보이는 꽃바달을 상체를 숙여 언저리를 내려놓았다.

 

 "뭐가 우습다는거야."

 

 "-츄야."

 

 "뭐."

 

 "부탁이 있어."

 

 "내가 들어줄거 같냐."

 

 "응. 그야 들을 수 밖에 없잖아."

 

 츄야는 팔짱을 끼고 흩어진 머리칼 사이로 보이지 않는 다자이의 얼굴을 응시했다. 유감스럽게도 이유가 어찌되어도 그가 하는 말이 틀렸던 적이 없다. 굴욕스럽지만 사실이였다. 쳇.

 

 "이거, 츄야의 능력으로 비가 오는 것 처럼 해줘."

 

 "술-반 물 반인데, 애초에 난 젖기 싫거든."

 

 "괜찮아, 나한테만 하면 되니까."

 

 오다사쿠 앞으로 내주었던 잔을 건내었다. 물론 시선은 여전히 오다사쿠에게로 향해 있었다. 떨떠름한 표정임에도 츄야는 잔을 건내받았다.

 

 "뭘 바라는거야."

 

 "비. 비가 내리면 돼."

 

 "공격이라도 해달라는건 아닐텐데."

 

 "지금 여기서 날 공격한다해도 츄야 성격에는 못버틸게 분명하잖아. 그야 정정당당하게 힘으로 꺾은게 아니니까 인정 안할거야."

 

 "망할 놈."

 

 "대신- 내가 츄야에게 빚지는 셈이지. 내가, 이 다자이 오사무가 츄야에게 부탁을 했다 라는 거지."

 

 그제서야 얼굴을 들어보이는 다자이와 영문을 모르겠다는 츄야의 시선이 맞닿았다. 싫어? 그 한 마디는 선악과와도 같았다. 뿌리쳐야 장래에 득될 것은 뻔한데 도무지 그럴 수가 없었다.

 

 "네 놈이 빚지는 꼴이라면 볼만하겠군."

 

 푸스스 웃어보이는 다자이에 츄야는 한숨을 쉬었다. 잔에 든 것을 손바닥에 붓자 흘러내리려던 찰나에 다자이의 위로 모여들었다. 그리곤 일순간의 소나기와 같이 하염없이 내렸다. 여우비같아. 중얼거렸다. 빌어먹으리만큼 좋은 날 알코올과 물을 기꺼이 온 몸으로 받아내는 다자이도 이해할 수 없었지만 제 귀중한 개인 시간을 깨 이 까지 왔건만 왜 이런 허무맹랑한 부탁을 들어주고 있는지도 알 길이 없었다. 그리고 몇 번이고 어깨아래까지 젖어들 때까지 비는 내렸다.

 

 "오다사쿠. 비, 그치지 않는 모양이야. 안그쳐면 좋겠다. 응, 안그치면 좋을텐데."

 

 그러고 보니 그 날도 비가 왔었던가.

 

기어코 마지막 한 방울이 뺨을 타고 흐르자 다자이는 일어섰다. 츄야는 젖은 손바닥을 허벅지면에 슥 밀어 닦아내며 고개를 떨군 다자이를 바라보았다. 각별했던 사이라는 것 쯤은 알고 있었다. 단순히 안다는 것과 눈으로 보는 것은 큰 차이였다. 이 조차도 알고 있었다. 조금은 우스웠다. 비틀거렸다. 시선은 천천히 가라앉았다.

 

 "역시 술주정이였냐."

 

 "츄야-."

 

 "야, 야!"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한 걸음 내딛어 츄야의 어깨 위로 얼굴을 묻었다. 차마 아래를 향하지 못한 빗방울이 검은 원단 위에 짙게 자리했다.

 

 "나- 한 번만 괜찮다고 해줘."

 

 질겁하며 다자이를 밀어내던 손이 멈칫했다. 힘없이 기댄 것이라곤 머리 하나였다. 그토록 증오했고 미워했고 시기했던 작은 머리통 하나. 말해줘, 얼른. 위화감이였다. 비가 그쳐버렸어. 츄야. 동시에 괴리감이기도 했다. 츄야는 어정쩡하게 손을 올려 머리칼이 덮힌 목덜미에 어루만졌다. 그보단 손 끝으로 희미하게 긁었다가 더 가까울 행위였다.

 

 "괜-찮아."

 

 "한 번만 더."

 

 "괜찮아."

 

  오다사쿠, 비 그쳐버리면 어쩌지. 그쳐버린 기분이야.

 

 "끄, 끝나으면 니네 탐정사로 얼른 꺼지라고!"

 

 "머리 아파- 소리 지르지 마."

 

 "이 자식이!"

 

 "데려다 줘어. 어차피 츄야는 차 끌고 왔잖아? 감사의 인사로 내가 운전하고 싶어도 한 잔 해버린 상태고 환자라고, 나."

 

 "니 놈이랑 난 적이다. 잊은건 아니겠지."

 

 "하지만 태워다주면 한 잔, 사줄게."

 

 "지갑 털릴 각오는 됐냐."

 

 "츄야는 어린이니까 그만큼 못먹어요오."

 

 "어딜봐서 어린애라는 거냐!"

 

 "키. 다른 말론 신장."

 

 "한 판 하자는 걸로 받아들여도 되겠네."

 

 "무리무리. 환자에 술 마신 사람 상대로 이능력이라 그거 참 무섭네. 세상이 말세로다-."

 

 "니 놈에게서만큼은 듣고싶지 않아!"

 

 "그거야 나도 마찬가지거든."

 

 "다자이, 네 놈의 그런 면이 죽을만큼 싫다."

 

 "어라라 그래? 난 츄야의 모든게 싫어."

 

 소란을 뒤로 다자이를 휘적휘적 잘도 걸었다. 츄야는 이를 갈며 그 뒤를 쫓았다. 물론 고래고래 소리를 내지르며 말이다. 아아 츄야 어린이 시끄러워요. 이런 곳에선 조용히 해야되는거에요. 포트 마피아의 교육대도 내가 없으니 돌아가질 않는구나. 다자이!!

 

 "아차차."

 

 다자이는 급히 돌아와 비닐봉지를 코트 주머니 속에 밀어넣고 술병 채로 두 빈 잔을 채우곤 꽃다발의 언저리에 내려놓았다.

 

 "오다사쿠. 이제와서 언제나 말하지만, 역시 좋아했어."

 

 포트 마피아의 현 보스인 모리 오가이가 물었던 적이 있었다. 오다 사쿠노스케를 구하러 가야하는 합리적인 이유가 있느냐고. 그 때 그리 답했다. 친구이기 때문이노라고. 잔인하지. 다시 답하라 하여도 다자이의 답변은 변할리가 없었다.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것과 애정은 건너편에나 존재하는 것들이였다. 아마 깊이 애정하기 때문이라 답하였더라면 독방 신세라도 졌을 터였다. 이제와 후회한단들 늦었다는 것도 소용없단 것도 다 부질없단 것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사람 앞날은 모른다는 말이 괜히 있는 꼴이 아니였다.

 

 단언컨데, 오다 사쿠노스케는 다자이 오사무를 향해 있었다. 

 

 안고가 귀뜸 해줬던 것도 있지만 그 정도를 눈치채지 못할 다자이도 아니였다. 모른척했을 뿐이다. 상냥함은 전장에서 약점이나 다름없다. 죽지 않아야 했다. 살아남는 자가 정의라 누가 말했던가.

 

 "안오면 두고 갈테다!!"

 

 "아아- 츄야는 어른이 못된다니까."

 

 창백한 묘석 위를 찬찬히 쓸다 귓가를 때리는 츄야의 목소리에 인상 좋게 고개를 내저으며 어쩔 수 없다는 듯 발걸음을 돌렸다.

 

 "또 올게, 오다사쿠."

 

 역시 비, 그쳐버렸네.

 

-

 

 "네 놈은 어딜 가면 간다고 연락을 하란 말이다! 다들 걱정하잖아!"

 

 "그러는 쿠니키타 군은 걱정하지 않은거야?"

 

 "했, 안했, 해-"

 

 "어느 쪽인거야."

 

 "그래서 결국 어디 가셨던거예요, 다자이 씨."

 

 "으음- 뭐랄까."

 

 다자이는 책상 위에 구두 채 발을 올리고 골똘히 고민하더니 두통이 말끔해졌다는 표정을 지으며 아츠시를 향해 웃어보였다. 알겠다, 알겠어.

 

 "그래서요?"

 

 "동창회, 랄까나-"

 

 "다자이 씨가 동창회?"

 

 "응. 그리운 사람을 만나고 왔어."

 

 믿기지 않는다는 아츠시의 뺨을 콕 찌르고 빙그르 돌며 의자에서 벗어난 다자이는 당당히 문을 열고 나가려다 쿠니키타의 손에 잡히고 말았다.

 

 "이제 일 좀 하지."

 

 "그러려는 참인걸, 쿠니키타 군-."

 

 "어딜봐서 그게 일하려는 태도냔 말이다!"

 

 "다녀왔습니다- 다자이 씨도 안녕하세요."

 

 "켄지도 안-녕."

 

 "으에- 켄지 바닥에 물- 뭐하다 온거야."

 

 요사노가 질겁하며 몸을 뒤로 빼자 타이밍이라도 기다리고 있었는 양 이미 초추리를 위한 안경을 낀 란포가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켄지가 맡은 임무는 단순한 심부름. 이 시간에 물을 뿌리며 정리하는 가게는 없지. 가게 까지 세차장이나 분수 조형은 제로! 그렇다면-!"

 

 "그, 그렇다면?"

 

 여전히 초추리에 흠뻑 빠져든 아츠시였다.

 

 "현재 밖에 비가 오고 있고 그것을 예상치 못했던 켄지는 다 젖고 말았다는 것이다! 더불어 신나서는 여기저기 물장난을 치다 온 거지!!"

 

 "아, 맞아요. 지금 밖에 비오는걸요."

 

 "감기라도 걸린거야?"

 

 "에- 아, 아니요. 절대."

 

 "아쉽네, 그거."

 

 "아쉬워 하지 마세요, 요사노 씨."

 

 "그러는 아츠시가 대신-"

 

 "죄송합니다, 함부로 끼어들어서!!"

 

 "비."

 

 얼빠진 표정으로 소매를 붙잡힌 다자이는 창 밖으로 시선을 내던졌다. 어제 왔더라면 더 좋았을텐데.

 

 "다자이, 그렇다면 어제 어째서 나카하라 츄야가 네 놈과 같이 있었는지는 어떻게 설명할 셈이지. 동창이라고 할 셈인가."

 

 "내가? 츄야랑? 그런 쿠니키타의 '이상' 이 철저히 부서지는 소리따위 하지 말아줄래."

 

 "다들 일 안할 셈이야? 사장님한테 한 소리 들어도 난 모른다고."

 

 요사노의 말에 급히 자리로 돌아간 아츠시와 쿠니키타에 다자이는 소리내어 웃었다.

 

 "아마 니가 제일 유력 후보 일걸, 다자이."

 

 "아."

 

 어쩔 수 없다며 머리를 긁적이며 다자이는 자리로 돌아갔다. 돌아간 의자를 되돌려 거꾸로 앉아 책상에 붙어있기 1분이 채 되지 않았지만 그는 온통 빗 속에 존재하고 있었다. 역시 그치지 않네. 그 편이 좋아. 응, 나도 좋아. 오다사쿠.

 

 하루의 끝까지 창살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는 것은 잔잔히 빗방울이였다.

 

 "비 그치지 않네."

 

-

 

 

 

비가 그치지 않네요=좀 더 곁에 있고 싶어요 라는 표현에서 빌려온건데

 

사실 암흑시대(흑의 시대) 편 보고 아- 이런거 좋겠다 해서

 

다 보자마자 몇 달 내내 연성 못했는데 한순간에 되고 마네..어째서

 

자살맨은 아무래도 좋지만 쓰다보니 츄야한테 이쁨이 가기 시작한다..

 

덕분에 잘 썼습니다, 음- 본인은 알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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