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쿠아카 키워드 ; 비

 

(쿠로켄 조금이랄까요)

-

 

 "아카아시 군, 미안한데."

 

 전화, 받아봐야 될거 같아. 그녀는 엄지와 새끼를 들고 나머진 접어보이며 귓가에서 흔들어보였다. 어딘가 청초롬 해보이는 그녀는 싱긋 웃으며 기꺼이 그가 일어날 때까지 기다렸다 받아, 라며 유선 전화기를 가리키곤 돌아섰다. 뒤집어놓은 수화기를 들어 잠기는 목소리로 답했다.

 

 "'이부' 입니다."

 

-

 

 부엉이 hibou[ibu] 라는 의미를 가진 '이부' 는 독어이자 아카아시의 회사명이기도 하다. 맞춤형 가구 제작소로 디자인의 전면을 떠맡고 있는 실정이다. 이 제작소가 조금 특이한 점이 있다면 디자인, 소재, 길이, 높이, 폭을 포함한 모든 것을 선택형으로 고객의 '맞춤형'으로 제작한다는 것이다. 제작 5명 디자인 1명 내외 업무 3명으로 매번 10명 이상이 되지 않다는 점에서 혹사 당하고 있는 건 아닐까 라며 자주들 떠들곤 한다. 

 

 물론 인원수가 그런 만큼 한달에 주문은 크기에 따라 소 중 대로 나눠 각각 7개, 4개, 2개로 제한한다. 그러지 않는다면 진정으로 혹사 당할 처지가 틀림 없었으니 말이다. 고객 중 감사히도 도안을 그려보내주시는 분들이 있기도 하다. 하지만 대부분은 그저 이런이런 느낌이였으면 좋겠네요, 라던가 이런 색깔로 해주세요, 라던가의 희망사안만을 적기 때문에 아카아시는 만만찮게 그를 고려해야만 했고 결국 도안을 서너 개를 그리고 제작부에 넘겨 다수결로 붙여버렸다. 결과적으로는 고객에게 묻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지 않냐는 질문은 회사측에서 부정하기 때문이다. 당신의 상상을 꺼내드립니다. 이부의 공식 문구이다. 그렇기에 신비주의적 성향이 강했고 그런 점이 아카아시를 자극했다. 따지고보면 '사장' 입장이였지만 공동대표니 뭐니 해도 막연히 귀찮을 뿐이였다.

 

 그녀. 카미에 쇼는 잘 웃는 편이다. 아니 항상 웃고 있다. 공동대표인 그녀는 아카아시와 아무런 사이도 아니였고 아니며 아닐 것이다. 그저 같은 대학이였으며 다른 학과였고 우연찮게 도서관 앞 자판기에서 커피를 뽑아 덩그러니 놓아두고 사라진 것을 도로 주었을 뿐이였다. 뽑아놓고 그냥 가세요? 흔들어보이면서 웃는 그녀와 어쩌다보니 같은 것을 공유하게 되었고 어쩌다보니 많은 것을 알게 되었고 지금에 닿은 것이였다.

 

 웃는 모습이 미묘히 누군가를 떠올리게 해서 조금 괴로웠다. 닮은 것은 아니였지만 조금 마음이 쓰였던 것일 뿐이였다. 난 아카아시 군한테 마음 전혀 없는걸. 걱정마. 알아. 멀쩡히 임자 있는 사람 이상하게 만들지 말자, 우리.

 

 그녀는 집안에서 약속한 약혼자가 있었다, 물론 파혼 상태이긴 하지만. 좋아하던게 아니였냐는 물음에 푸스스 웃어보이면서 이젠 아니잖아. 라며 취기가 도는지 반쯤 풀린 눈으로 아카아시에게 기대었다. 아직도 임자 있는 몸이야? 글쎄. 그치만 처음부터 말했잖아- 난 너한테 마음 없다고. 제법 멀쩡히, 경쾌히 거리를 휘적이며 걷는 뒷모습이 조금은 부러웠다. 확실히 말하자면 그녀는 매력있는 여자이다. 똑 부러지고 깔끔한 타입으로 유럽계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의 혼혈아로 특유의 뽀얀 살결이 눈에 띈다. 연한 갈색의 머리칼이 허리부근 까지 흘러내리는 그녀는 사랑받는 존재이다. 겉으로도 다 보일 만큼 그녀는 사랑 받고 자란 이였다. 다만 고집스레 웃는 모습에 걸렸다. 막연히 사랑만 받은 것은 아니리라 그리 생각했다.

 

 '힘들면 울어도 되는데 말이야.'

 '운다고 뭐가 바뀌진 않잖아.'

 '그거야 그렇지.'

 

 하지만, 울어도 된다고 얘기해준건 아카아시가 처음이야. 등에 기대오는 탓에 다독여주지 못했지만 응어리가 풀리는 느낌이였고 날개뼈 아래가 축축히 젖어오는 기분이였다.   

 

-

 

 "아카아시, 아카아시. 아카아시 케이지-."

 

 아카아시는 사경을 헤매다 잠에서 깼다. 분명 낮은 음성이였을 터인데 눈을 뜨면 가늘고 얇은 여자의 목소리로 변질되어 있었다. 머리가 띵하게 울리는 것은 언제나와 같았다. 늦가을의 빗소리가 창가를 두드리고 아카아시는 빈백소파에서 담요를 둘러매고도 시린 손으로 눈가를 문질렀다. 빈 머릿속을 누군가 연신 두드려대는 것만 같아 두어번 마른 세수를 하다 말고 오른 손으로 목을 감쌌다.

 

"미안해, 근데 제작부 애들이.."

 "갈게."

 

 겨울용 담요를 소파 위에 얹어두고 일어서는 발걸음이 위태롭기만 했다. 초점이 확실하지 않았고 아직 강하게 관자놀이를 가격하는 느낌의 어지러움에 어쩔 새도 없이 도로 소파 위에 쓰러져야만 했다.

 

 "아카아시!"

 

 배를 끌어안고 웅크리는 것이 영락없는 아이였고 찡그렸다기보다 울상에 가까운 얼굴에 쇼는 이마에 손을 갖다댔다. 야- 너 아프면 아프다고 말을 하라고. 사장이나 되는 놈이 말이야, 아카아시? 작게 웅얼거렸다. 단말마를 지르는 얼굴이였다.

 

 "잘못,했, 습니, 다."

 

 울음기 다분한 목소리였다. 몇 번이고 부르짖는 모습은 다섯 살배기 아이의 애원에 가까웠다. 쇼는 가만히 담요를 끌어 덮어주며 머리칼을 쓸었다. 가지, 마세요. 잘못했어요. 물기 머금은 목소리에 그녀는 자리를 뜨지 못하고 무릎을 꿇고 그 앞에 앉아 작은 아이의 곁을 지켰다. 그래야만 할 것 같았기 때문일지도 모르지만 제가 이제껏 아카아시를 봐왔던 모든 순간을 지켜내기 위함에 가까웠다. 넌 원래 그런 사람이니까. 그리 치부해버리는 행위가 위태롭다 되내이면서도 그러지 않을 순 없었으니까, 그러니까 그녀는 말없이 시리게 떨리는 손을 잡아주지 못해 그저 가만히, 가만히.

 

 사실 그녀는 아카아시의 고질적인 병과 같은 증상에 대해 꽤나 알고 있었다. 물론 본인에게서 들은 것이야 몇몇에 불과하지만 주위에서 들은 것이 훨씬 유용한 정보였다. 구미가 당길 법한 이야깃거리였고 술자리에서 한 술 떠보기도 하였다. 다만 확신했던 것은 여느 때와 같은 비가 오던 날이였다. 쏟아지는 비에도 그는 여전히 작업실에 박혀 살았고 무기력했다. 점심시간이 가까워졌고 이러니 저러니 귀찮다 싶은 마음에 배달 음식이 적절하다며 한 입을 모았고 단순한 주문을 위해 들어갔다 반 쯤 기절 상태에 가까울 정도로 흐느끼는 목소리를 듣고 말았다. 작업대 위에 이질적인 느낌인 반지가 놓여 있었다. 그 뿐이였다. 물론 후에 캐물어 결국 알아낸 것이긴 했지만 여자의 감이란 것은 무시할 수 없는 노릇이였다.

 

 "애인, 이였어."

 "헤- 과거형?"

 

 말없이 작게 고개를 끄덕여보이던 눈 위로 안도감이 피어올랐다. 무엇에. 도대체 무엇에 안도하는걸까. 어디까지나 생각에 불과했다. 입 밖으로 꺼내진 않았다. 그걸 위해 이제껏 그리도 참아왔노라 생각했기 때문이였다. 예나 지금이나 그것만은 같다. 금기어와 비스므리한 뉘앙스를 지니는 '그것' 은 둘 사이의 비밀로 붙였다. 지키지 않는건 매한가지 였지만 말이다.

 

 이름 불명. 나이는 한 살 연상. 극히 활발하고 기운이 심히 넘친다. 애같이 구는 경향이 강하다. 애정 표현이 많다. 누구에게나 공평한 애정을 준다. 지각하는 한이 있더라도 머리는 세우고 다닌다. 학교 선배이다. 쇼가 아는 아카아시의 전 애인에 관한 것이다. 단도직입으로 물어서 안 것도 있지만 역시 알코올이 들어가면 잘 나오기 마련이다. 그리고 요즘 많이 느끼는 두 가지가 남아있다.

 

 하나, 도저히 이름은 알 수가 없다.

 하나, 그는 아직 그 사람을 좋아하고 있다.

 

 그녀의 파혼에 담담하던 것도 이런 이유일 것이 틀림없었다. 같은 처지 라는 거지. 물론 그리 유쾌하지 않은 그녀의 끝과 아카아시의 끝이 어떻게 다를지는 미지수였지만 이별이라는 상황은 지극히 변함없었다.

 사실 그녀가 그를 만났을 적은 이미 둘은 갈라선 상태였기에 둘의 관계가 어떠하였는지는 주위에서나 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지난 일을 듣노라 하거니 아카아시 또한 제법 사랑 받은 테가 났다. 그런 애정에 익숙해져 다시 혼자 그 뒤엉킨 속을 가라앉히기 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을 허비 하였을까. 아카아시 케이지란 남자가 그랬다. 쉬이 마음을 주지 않았지만 한 번 준다면 설령 먼저 끊어져버린다 해도 결코 돌아서지 않는다고, 그런 감정이라고. 깊음이 무엇인지 아는 남자였다. 그리고 그리 깊게 애정하고 창을 열고 그를 맞이했을 터였다. 미워했을까. 새겨두었을까. 무엇도 아닐테지만, 아무것도 털어놓지 않는 눈은 깊었다. 쇼는 그런 눈을 사랑했고 도로 피어나길 바랬다.

 

 쇼는 아카아시의 장점이라면 두 손으론 도저히 모자르다 곧잘 말하고 다녔다. 그 만큼 아끼는 터였고 애정을 쏟아붓는 것이였다. 그것은 도저히 '사랑' 이라 부르기 어려운 형태였고 둘 모두에게 부정당하였다. 아직 남아있노라 다른 이에게 마음을 주기가 버겁다며 몇 번이고 중얼거렸다. 카미에 쇼의 약혼자는 커다란 키의 남자였다. 수트가 잘 어울렸다. 운전실력이 영 나쁘진 않았지만 그닥 즐길 수 있지는 않았다. 스포츠는 관람을 선호했다. 선천적이라 믿지만 매사에 급했다. 그 점이 조금 숨 막혔지만 몇 해가 지나며 몸에 익고나서부터는 즐거운 것이 되었다. 다음은 그러겠지, 라며 시간 떼먹기 좋은 놀잇감이 되어주곤 하였다. 

 물론 끝까지 재미를 가져다 주는 장난감 행세를 하진 않았지만 말이다. 두 달 정도 제 약혼자를 바라보더니 그녀가 물었다. 사랑해? 주체가 없었지만 여전히 웃고 있던 그녀는 어렴풋이 알고있었다, 이 시간부로 그 주체는 제가 될 수 없음을. 겸연쩍은 듯 애매모호하게 웃는지 우는지 당황한지 알 수 없는 표정을 한 그에 그녀는 푸스스 웃음을 터뜨렸다. 받을 적부터 제게 조금 컸던 약혼반지는 언젠가 꼭 줄이자고, 다시 맞추자고 약속했던 것이였다. 굳이 귀찮은데 그러지 않아도 좋다 하였지만 섭섭할거라며 제 의사를 마음대로 정해버렸었다. 아직도 안맞아. 그녀는 작게 소리내어 웃었다. 그 사람한테는 맞을거야. 그 투박한 손에 건내고 돌아섰다. 울지도 않았으며 원망하지도 않았다. 단지 조금 허 했을 뿐이였다. 그리고 지금에 와서야 종종 떠올릴 따름이였다. 그럴 때마다 습관마냥 볼 안쪽 살을 잘근 거리곤 했다. 그 땐 어렸다고, 그러니 제 감정에 솔직해지고 싶지 않았다고, 구차하게 굴고싶지 않았다고.

 

 그리워하고 있다고.

 

-

 

 "매번 신세지네."

 "아니요, 얼굴이라도 보고 저야 좋죠."

 "천하의 이부에 하나 뿐이라는 디자이너가 이렇게 손수 해주시는데 황송하지."

 "이거, 도로 들고 가도 되는겁니까."

 "아니, 아니, 아니. 감사히 잘 받겠습니다- 라는거지."

 

 단순한 사람. 아카아시는 작게 중얼거렸다.      

 

 디자이너가 물론 본업이기야 하지만 취미삼아 조금씩 제작부에서 배우는 턱에 시험삼아 무언갈 만들면 곧잘 남에게 주었다. 가장 처음으로 리스트에 이름 올린 상대라면 쿠로오 테츠로 이다. 제 과거 연인의 친구이자 친구, 라기에는 조금 다른 느낌이다. 워낙이나 속을 알 수 없는 작자라 무의식에 경계하고 있다고 아카아시는 생각한다.

 

 "또 굉장한거 만들었네."

 "굉장하지 않습니다."

 "난 범인(凡人)이라 그냥 다 대단해보이는 겁니다-."

 

 어디까지나 배우는 단계에 있고 무엇보다 제 손재주가 생각보다 쓸만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달아버린 탓에 간단한 것들 위주로 손을 대고 있는 터다. 이번에 쿠로오에게 가져다 준 것만 해도 선반일 뿐이였다. 널빤지에 양 옆에 두어개 덧대면 끝이니 그다지 제가 손 본 것도 없다. 다만 조금 정성들인 곳이라면 기둥 모양으로 깍아 윗 부분을 부엉이로 조각한 정도랄까. 꽤 고생한 건 사실이다. 실제로 손가락 어딘가 베인 것도 사실이다.

 

 "무리하지 않는게 좋다고, 아카아시 군."

 "괜찮습니다."

 

 쿠로오는 어느 센가 손가락을 감싸쥐고 있는 아카아시를 지긋이 바라보았다. 고교 시절부터 봐왔기에 저것이 결코 얄팍히 베여나오는 통증을 위한 것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것 쯤은 잘 알고 있었다. 버릇이였다. 마디를 감싸쥐고 눌러대는 그저 단순한 버릇.

 

 "괜찮다는 얼굴이라도 하고 말하는게 좋지 않을까."

 "쿠로, 또 케이지 괴롭히고 있지."

 

 켄마는 인상을 구기며 방 안에서 지친 걸음으로 쿠로오에게 향했다. 요란한 머리카락이 분명 자다 일어났음을 말하고 있었다. 아직 졸린 눈을 한 켄마는 쿠로오를 지나 아카아시의 품에 안착했다. 얼굴을 묻고 조금 비비적 거렸다. 고양이 같아. 아카아시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야 들으면 좋아하지 않을게 분명하니까 기분을 상하게 하고 싶진 않았다.

 

 "언제 왔어."

 "방금."

 "밥은?"

 "아직."

 

 나왔다, 초간단 대화. 쿠로오는 옆에서 놀림조로 키득거렸다. 어디까지나 둘 다 고교 시절이나 그 전부터 말 많은 상대에게 끌려다니기 일쑤였으니 말수가 적은 상대가 편할 터였다. 놀림조였음은 사실이지만 그러는 쿠로오도 켄마가 아카아시와 대화하는 것을 싫어하지 않았다. 오히려 좋아했다. 제게 보여주지 않는 애교가 자연스레 묻어나는 사람 중 하나였으니 말이다.

 

 "안 먹을거야?"

 "글쎄."

 "나, 할말있는데."

 "뭔데."

 

 켄마는 파묻고 있던 고개를 들어 쿠로오와 시선을 마주했다. 한참이고 말 없이 바라만보는게 위태로웠다. 켄마.

 

 "돼?"

 

 저게 일 치려고.

 

 "안돼."

 "그치만-"

 "안돼."

 

 켄마는 토라진 얼굴로 다시 고개를 묻었다. 켄마-.

 

 "켄마."

 "아."

 "뭔데."

 "오늘,"

 "아, 아카아시!!"

 

 쿠로오는 어쩔새도 없이 소리를 내질렀다. 진짜 일 치네. 아카아시는 천천히 시선을 옮겼다. 켄마 역시 그랬다. 아- 그, 그러니까. 밥 먹고 가라고. 아카아시는 두 눈을 두어 번 내리감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감사히. 다행히 그것은 수락의 뜻이였다.

 

-

 

한 번에 못 끝내겠어요..

하 편 쓰긴 쓸까..슬슬 걱정입니다..에라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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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쿠아카 전력 60분 ; 문신

 

(네임버스/봌앜 성인/주제가 탈선해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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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아시 케이지의 경우

 

 이름을 지웠다. 빨갛게 부어올라 따끔거리는게 마음에 들었다. 차라리 이 편이 좋았다. 흉하게 일그러진다해도 그게 마음 놓였다. 내일이면 또 다시 지워야겠지만 한결 가벼워진 기분에 만족스러울 뿐이였다. 남은 것은 이 만족감과 함께 가만히 앉아 전화를 기다릴 곳을 찾는 것이다. 지금쯤이면 분명 잔뜩 열 올라 익숙하게 번호를 찍어 통화버튼을 누르고 싶어 안달일 테니까 말이다. 낯선 곳까지 들어와버려 천천히 걸어왔던 길을 되짚어야했다. 굳이 돌아갈 길을 찾지 않아도 알아서 잘도 찾아올 그를 생각하면 벌써부터 골머리가 울렸다. 조금 더운 봄이였다. 골목을 나서면 큰 길이 나올 터 였고 그 길을 온통 햇볕이 들었다. 단순히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 눈이 아파오는 것만 같아 골목의 그림자 진 벽에 몸을 기대었다. 손 안에 울리는 진동에 휴대전화 화면을 뒤집어보니 어김없었다. 뭐라고 할까요, 당신은.

 

 "네."

 [너 가만히 있어. 알아들어?]

 

 그렇겠죠. 당신이란 사람은. 어느 세 익숙해진 왼쪽 갈비뼈 언저리의 쓰라림에 대충 그 부근을 쥐어잡고 가만히 눈을 감았다.

 

 [케이지. 대답.]

 "네."

 

 케이지, 라고 불렀으니 날만큼 화는 난 상태임이 틀림 없었다. 당신이 내 이름을 부르는 순간은 두 가지 뿐이니까, 지금처럼 무척이나 화가 난 상태이거나. 관계 도중. 이내 전화가 끊기고 더 이상 그가 있지 않다는 소리 아닌 소리가 울린다. 아-. 아마도 오늘은 조금 더 혼날지도 모르겠네요, 저. 힘 없이 주르륵 미끄러져 내려 흡사 우는 사람마냥 다리를 끌어안고 그 위에 고개를 파묻었다. 얼른 와 주세요, 보고싶지만 보고싶지 않은 사람아.    

 

 그와 만난 것은 오래 전의 일이다. 어릴 적 집으로 편지 한 통이 보내져왔다. 놀랍게도 발신인은 일본 내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대기업의 가문 이름이였다. 보쿠토 가(家). 편지 내용은 이랬다. 막내 아들에게 '아카아시 케이지' 라는 이름이 새겨져 있으니 아들의 이름 주인을 찾고 싶다, 혹여나 보쿠토의 이름으로 이름을 가진 '아카아시 케이지' 는 연락을 달라는 얘기였다.

 편지를 받은 어머니는 어린 나에게 물었다. 케이지는 그 이름이 누군지 알고싶니? 어린 내게 그것은 금단의 것과 같았다. 가족 중 유일한 발현이 있었기에 어머니는 혹여나 어린 것이 상처받지 않도록 함구령을 내리셨고 가족 내에서 또 다른 발현자셨던 할머니만이 이름에 관해 이런 저런 말씀을 해주시곤 하셨다. 어린 나는 어머니를 바라보다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머니는 작게 웃으시더니 어딘가로 전화를 거셨다. 그 다음 날 어딘가 고급스러워 보이는 가게에서 '이름' 을 드러냈고 그 뒤로는 무어라말씀을 나누셨는지 몰랐다. 어려웠던 것 같다. 하지만 일주일 후 난 당신을 만날 수 있었다. 보쿠토 코타로. 보쿠토 가(家)의 막내아들이자 내 이름의 주인. 천진난만하던 그 모습에 어딘가 동요하고 있었던 것일까, 나.

 

 손목을 잡아끌린다. 이름이 말끔히 지워진 흉부가 아려온다. 눈가가 시큰해진다. 위를 올려본다. 당신이 있다. 아-.

 

 "보쿠토 씨."

 "일어나."

 

 억지로 끌어올려져 일어났다. 여전히 잡힌 손목보다 좌측 흉부가 더 뜨겁다. 당신은 조수석 문을 열어주고 돌아가 운전석에 자리를 잡는다. 문이 닫힌다. 나를 바라본다.

 

 "이번엔 또 왜 지웠어?"

 "죄송합니다."

 "이유라도 말해보라고, 케이지."

 "죄송합니다."

 

 난폭하게 걷어져 낱낱이 드러난 표피 위로 당신의 손이 닿는다. 양껏 부어오른 모양새에 당신은 미간을 구기며 엄지로 한 때, 적어도 오늘 아침까진 있었던 이름이 사라진 자리를 쓴다. 목 아래서 신음이 터진다. 것 봐. 차가운 살갗 위에 뜨거운 입술이 닿았다.

 

 "이러면, 또."

 

 수면 위로 올라오는 신음에 당신은 만족스레 웃는다. 아-.

 

 "이름같은 건 드러날 텐데 그런걸로 가려도 소용없어. 제일 잘 알잖아."

 

 다시금 검게 피어오른 이름에 셔츠를 끌어내렸다. 케이지, 여기 봐. 커다란 손이 뒷 목을 감싸고 숨결을 삼켜온다. 정각의 햇볕에 유난히 금빛 테가 두드러진다. 그 안에 삼켜질거 같아 눈을 감았다.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당신의 이름은 사실 심장에 새겨진게 아닐까, 하고. 너무 강해서 겉으로 드러나고만 건 아닐까, 하고. 그러니 지우고 지우고 또 지워내도 결국 손 길 하나에 도로 피어나는 건 아닐까, 하고. 마치 심장박동을 가만히 느끼고 있노라면 내 것이 하나가 아닌 두 개라는 착각마저 들 만큼 담담히 뛰는 내 것과는 다르게 여기 있노라 라며 세차게 뛰어온다. 온전히 받고싶지만 받을 수가 없어 그저 지워낼 뿐이다. 지우면 모를테니까. 잠깐 아픈걸로 잊을 수 있으니까. 그럴테니까.

 

 난 당신을 지운다.

 

-

 

*보쿠토 코타로의 경우

 

 아카아시가 이름을 지웠다. 자주 있는 일이라 익숙해질 법도 하지만 따끔거리는 이름 위의 통증보다 또 '내' 이름을 지웠다는게 싫었다. 그렇게 몇 번이고 몇 번이고 화를 내어보아도 부탁을 해보아도 시선을 맞추었다 다음 날이면 또 금세 지우고 마는 아카아시가 싫었다. 이젠 버릇이라도 든 것마냥 업무 도중이면 빠져나가 당당히도 지우고 오는 것이였다. 처음 한 두번은 가까운 곳에 가서 지우고 다음은 조금씩 조금씩 멀리까지 가서라도 지우고 오는 모양이였다. 그게 싫었다. 강박증 처럼 지우는게 섬세하게 느껴져 소름이 돋았다.

 오늘도 그렇게 한바탕 일을 치루고 곤히 잠든 아이 위의 이불을 걷자 이름이 보였다. 보쿠토 코타로. 내 꺼. 오르락 내리락 거리는 흉부에 윤곽이 드러난 갈비뼈의 중간 정도에 자리한 이름이.

 

 본래 욕심이 많았다. 어릴 적부터 그랬다. 내 것이라면 빠짐 없이 이름을 적어놓곤 했고 덕분에 어머니께도 꽤나 혼이 났었다. 그리고 갈비뼈 언저리에 이름을 가지고 태어났다. 아카아시 케이지. 이게 무엇이냐 물었을 때 상대는 내 이름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태어날 적부터 내 이름을 가지고 있다고.

 

 그런 걸 들은 이상 가만히 있을 수 있을리가 없잖아.

 

 아카아시를 만났을 땐 전율했다. 이제껏 느껴던 그 모든 소유욕을 더해도 이 보다 더할 순 없다고 그 작은 아이에게 떠오른 이름을 보고 생각했다. 내 아이.

 

이름을 쓸다 그 위에 짧게 입 맞추었다.

 

 "보쿠토...씨."

 "미안, 깼어?"

 

 눈가를 손으로 가리며 더 자, 괜찮습니다 라며 그 위에 자기 손을 살포시 얹어놓는다. 졸린 음색이였다. 새벽에 잠들었으니 당연한 걸지도.

 

 "당신은, 절. 사랑하는게 아닙니다."

 "무슨 소리야."

 "당신은 저에게 새겨진 이름을 사랑하는 것 뿐입니다."

 "케이지."

 "당신은 새겨진 이름으로 들려오는 심자박동을 사랑하는 것 뿐입니다."

 

 여전히 졸음기가 섞여있었다. 그렇다면 본심인걸까.

 

 "그러니, 당신은 절 사랑하는 것 따위가 아닙니다."

 "그런 말 하지마."

 

 손가락이 얽혀왔다. 조금 떨리고 있었다.

 

 "그러니 그만두세요."

 

 손바닥을 적셔오는 물기에 졸음이 달아난 목소리에는 어느 세 울음기가 뒤섞여있었다.

 

 "케이지. 난 케이지 사랑해."

 "아닙니다."

 "사랑해."

 "거짓말."

 "사랑해."

 

 케이지, 사랑해. 손을 맞잡으며 들어내자 붉어진 눈가가 드러났다. 그마저 사랑스러워 입 맞추었다. 눈을 감고 받아들이던 아카아시는 이내 손을 뻗어 목에 감아온다. 어리광.

 

 "좀 더."

 "응."

 

 좀 더 원해주세요. 얌전히 입을 벌려온다.

 

 케이지. 케이지. 케이지. 케이지. 케이지. 원해. 좀 더. 갈비뼈가 아려올 만큼 세차게 뛰는 것이 느껴졌다. 내 것인가. 네 것일까.

 

난 네게 새겨 넣었다.

-

 

에에- 나,나도 모르겠습니다..흠-

왜 자꾸 잘 쓰다 잘못 빠지는거냐고오오오오오오오ㅗㅗ오ㅇ...쿨쩍))

 

사실 어리광st가 보고팠습니다..음....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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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쿠아카 전력 60분 ; 향수

 

(보쿠토는 성인 아카아시는 학생/주제는 언제나와 같이 두둥실)

 

-

 

 눈을 뜰 수 없을 만큼 맑은 하늘이였다. 한 줌의 재로 변해버린 한 땐, 어머니 라 불렀던 '것' 을 바다에 뿌렸다. 소금기 가득한 바다향에 그 아래 말갛게 속을 내보이는 물가에 내려놓았다. 물에 닿는 순간 사르르 가라앉으며 짙은 잔향만을 남기고 사라져버리는 것을 바라보던 아이는 울지 않았다. 반 쯤 감긴 눈은 슬픔이 어려있지도 않았다. 그저 피곤해보일 뿐 그게 다 였다. 아이는 이내 재를 모두 여전히 투명한 바닷물에 털어버리고 함을 닫았다. 어스름하게 노을이 조금씩 다가오고 있었다. 아이는 홀로였고 그와 조금 떨어져 상점가로 이어지는 계단에 서있는 무리들은 수근거렸다. 골칫거리. 짐. 딱 그 정도의 취급이였다. 아이는 알고있었다. 아버지는 이미 오래 전 돌아가신 탓에 어머니와 단 둘만이 남겨진 것은 가문에서 좋게 볼리가 만무했다. 아버지는 장남이셨고 당연히 재산을 가업을 물려받을 일순위의 자리였기에 그가 없다면 당연히 그의 아들인 아이가 다음 타자였다. 아이에게 있어 어머니의 죽음은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였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로 가문에서는 알게모르게 협박을 가해왔고 그에 시달리는 것은 온전히 어머니의 몫이였다. 이제야 쉴 수 있을거란 생각에 아이는 안도감 마저 들었다. 이제 편히 쉬세요.

 

 "안녕."

 

 작게 웃으며 말을 거는 남자는 아이와 눈높이를 맞추며 허리를 숙였다. 아이는 피곤한지 살짝 고개만 까딱였다. 남자는 아이의 머리칼을 쓰다듬었다.

 

 "오늘부터 형이랑 같이 살아야될거같은데. 혹시- 싫으려나."

 "아니요. 감사합니다."

 

 무슨 소리야, 감사라니. 남자는 피식 웃으며 아이를 품에 안아 올렸다. 아이는 여전히 함을 끌어안은 채였다. 피곤하지, 자도 괜찮아. 남자는 아이의 머리를 큰 손으로 살며시 눌러 어깨에 이마를 닿게하였다. 더러운 자식들. 남자는 작게 내뱉었다. 행여나 들렸을까 바다 바람에 춥지 않을까 조금 더 세게 품에 안으며 남자는 조수석 문을 열고 아이를 앉혔다. 문을 닫고 운전석으로 돌아와 앉으며 조수석 쪽 안전벨트를 매 주었다.

 

 "그러고 보니, 이름은?"

 "아카아시 케이지입니다."

 "형은 보쿠토 코타로."

 

 지금은 밤. 미안해, 자. 아이의 눈가를 손으로 덮어버리며 보쿠토는 시동을 걸고 조금 급하게 자리를 떴다. 이딴 곳에 있어봤자 좋을게 없다고 생각했다. 조금은 난폭했을 운전에도 아이는 깨지 않고 자고 있었다. 많이 피곤할테지. 신호가 걸리자 보쿠토는 블레이져를 벗어 조심스레 덮어주었다. 깨지말고 잘 자. 이마에 작게 입맞추었다. 낮은 음성이 아카아시의 귓가에 가물가물 들려오며 아카아시는 수마로 빠져들었다.

 

 

 "아카아시, 가서 자야지."

 "아-네.."

 "뭐야, 이리와. 옳지."

 

 아카아시는 보쿠토의 말에 선뜻 팔을 벌리자 보쿠토는 제 팔을 벌려 안아들었다. 보쿠토는 침실로 향해 침대 위에 아카아시를 조심스레 뉘이고 가슴께 정도까지 얇은 담요를 덮어주었다. 그리곤 저도 옆에 누웠다. 습관처럼 머리칼을 쓸어주고 이마에 입을 맞춰주며 아카아시, 잘자. 이에 화답하듯 아카아시는 보쿠토에게 안긴 채 시원한 체온에 제 뺨을 가볍게 부비었다.

 

 "오늘 왠일로 어리광이야."

 "저- 꿈 꿨습니다아.."

 "응? 무슨 꿈?"

 "보쿠토 상..이랑 처음 만났을 적이요."

 

 보쿠토는 살풋 웃으며 등을 쓸어주었다. 그랬구나. 안녕히주무세요. 응, 아카아시도 얼른 자. 둘은 금세 잠들었다. 조금도 시원하지 않은 그런 여름 밤이였다.

 

-

 

 보쿠토는 급하게 차를 몰았다. 아카아시의 학교에서 전화가 걸려온 탓이였다. 말 뿐인 '임원' 이니 업무라면 상관없을 터였다. 초조했다. 이러면 안되는데. 보쿠토는 주차를 마치고 시동을 끈 상태에서 핸들에 머리를 박았다. 진정하자. 진정해. 보쿠토는 교무실 앞에서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문을 열었다.

 

 "안녕하십니까."

 "무슨 용무신지."

 "아카아시 케이지 보호자 되는 사람입니다만."

 "바쁘신 와중에 죄송하게 됐습니다."

 

 보쿠토는 뒷문에 가까운 의자에 고개를 내리박은 채 앉아있는 아카아시를 발견하곤 곧장 그리로 갔다. 아카아시는 움츠러들었다.

 

 "아카아시."

 ".........."
 "나 왔어. 고개 들어봐."

 

 아카아시는 고개를 돌렸다.

 

 "아카,"

 "그 쪽이 그 학생 보호자되는 사람이에요? 잘 됐네요. 지금 우리 애가 얼마나..!"

 "아카아시, 얼른."

 "저기요, 잠시만요. 사람 무시하는거에요?"

 "아카아시. 나 화낸다."

 

  아카아시는 여전히 미동도 없었다.

 

 "저기요!"

 "아카아시 케이지."

 "당신 뭐야!"

 "케이지."

 

 아카아시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보쿠토는 손을 뻗어 아이의 뺨을 가만히 들어보였다. 여전히 숙인 모양새였기에 얼굴은 보쿠토 한정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보이고 싶지 않을 터였다. 보쿠토에게라면 더더욱. 내리깔은 눈이 어렴풋이 보였지만 보쿠토의 시선은 닿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상처' 위에 있을 뿐이였다. 벌겋게 부어오른 뺨에 터진 입술. 이 정도면 분명 입 안도 찢어졌을게 분명했다. 그제서야 닿은 시선은 단호했다. 조금 충열된 모양새에 보쿠토는 작게 신음했다.

 

 "당신 지금, 사람이 말을 하는데 들어야 하는게 당연하거 아니야? 그러니까 애가 저 모양 저 꼴이지. 자식 교육을 어떻게 시키는거야, 도대체가!"

 "어,어머님 우선 진정하시고."

 "지금 우리 애가 저렇게 됐는데 진정하게 생겼어요?!"

 

 보쿠토는 아카아시의 찢어진 입술 위를 쓸었다. 여전히 미동조차 없었다. 낯선 향이 미미하게 남아있었고 그것은 보쿠토가 미간을 구기기에 충분했다. 역한 싸구려 여자 향수냄새. 보쿠토는 작게 숨을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뒤돌아 여자를 마주했다. 모멸감마저 들었다. 저따위 여자에게.

 

 "자식 교육 하나 제대로 시키지도 못하고 깡패처럼 아무나 패고 다니게 만들 셈이라면 학교에 보내질 말아야하는거 잖아. 그거 하나 몰라? 당신도 그 정도겠지. 그러니 애 꼴이 저런거 잖아!"

 

 저런거, 라니. 설마 아카아시? 아카아시한테 저런 거라고 한거야, 지금? 교육? 깡패?

 

 "죄송합니다만 초면에 실례가 아닌,"

 "실례고 뭐고 지금 우리 애가 어떻게 됐는지 알기나 해?"

 "모릅니다. 모른다고요. 그러니까 알려나주시죠. 당신의 '애' 가 도대체 얼마나 심각한 상태에 다다라서 지금 이 모양 이 꼴로 우리 애를 만들어놓고 제가 업무 재쳐두고 학교에 나와 당신같은 사람이나 상대하고 있어야 하는지 말해보란 말입니다."

 

 여자는 아무 말 없던 보쿠토의 긴 답에 잠시 움찔하였다 이내 인상을 구기며 조금 옆에 떨어진 의자에 앉은 남학생을 가르켰다. 광대 부근에 멍이 들어있었다. 조금 센가. 보쿠토는 남학생의 얼굴을 흘깃 보고 혀를 찼다. 극성이란 말이지.

 

 "겨우 멍든거 말씀하시는 건가요."

 "겨,겨우 라니..!"

 "전치 몇 주가 나오기라도 하셨습니까? 뭐, 그런건 의미없으니 좋습니다. 얼마 원하시는 겁니까. 그게 목적일테니까요."

 "지금 내가 돈 몇 푼때문에 이러고 있는 줄 알아?!"

 "어,엄마..그만해. 이미 다 끝,"

 "넌 조용히 하고 있어!"

 

 보쿠토는 고개 숙인 아카아시에게 시선을 주었다 남학생의 말에 다시 고개를 돌렸다. 다 끝났다고 말하는건가.

 

 "선생님, 죄송합니다. 제가 급히 오느라 대강 들어서 상황을 잘 모릅니다만."

 "아, 네. 말다툼에서 시작한 모양인데 아카아시 군이 먼저, 손을.."

 "것봐, 그 쪽이 먼저 잘못해놓고 큰 소리나 치는게,"

 "아카아시, 왜 그랬어."

 "저! 제,제가 먼저 그랬어요. 죄송합니다! 아카아시한테도 사과했지만 다시 한 번 미안해."

 "너, 조용하고 있으라니까!"

 "무슨 일이였는데."

 "제,제가.."

 

 남학생은 벌떡 일어나 크게 허리를 숙여 사죄했다. 잠시 침묵이 돌았다.

 

 "부모님..일로 말을 꺼내버려서..죄송합니다. 다시는 그러지 않겠습니다."

 

 보쿠토는 남학생에게 다가갔다. 일어나. 그는 천천히 허리를 세웠다. 보쿠토는 작게 웃고 있었다.

 

 "그랬구나. 말해줘서 고마워."

 "죄,죄송합니다!"

 "아니야, 이렇게 반듯하게 자라주고 말이야. 저런 부모 밑에서. 창피라는 걸 알지도 못하고 대뜸 자식이 맞았다고 해서 찾아가서 인정사정 없이 뺨부터 갈기는걸. 저렇게 되면 전교에 소문 날거고 너도 많이 곤란해지고 하니까 진짜 자식을 생각하는 부모였다면 애초에 이성의 끈이나 잘 잡고 있는게 당연한거잖아. 이렇게 일이 커지게 되서 미안하게 생각해. 앞으로 학교생활하는데 아무런 지장 없게 해줄테니까 안심하고. 우리 아카아시랑 친하게 지내줬으면 좋겠어. 응?"

 "예, 예."

 

 그럼. 보쿠토는 아이의 어깨를 툭툭 치고 일어섰다. 교사는 보쿠토의 기색을 살피다 학생을 내보내었다. 보쿠토는 블레이져를 벗어 아카아시의 어깨 위에 걸쳐주었다. 차 키를 손에 쥐여주며 말했다.

 

 "먼저 가 있어."

 

 아카아시가 교무실을 나서자 보쿠토는 희미하게나마 웃고있던 가짜 미소를 지웠다. 사실 제가 없는 곳에서 다쳤다는 사실에 진정이 되지 않았다. 그것도 저렇게 더러운 손에. 역겨워. 똑같잖아, 그 때랑. 우습기도하지. 보쿠토는 단추 두어개를 풀어헤쳤다. 이렇게 격식 차릴 이유도 없었잖아. 얌전한 머리칼을 쓸어올렸다. 주머니에 손을 꽂아넣고 피식 웃었다.

 

 "당신 말이야. 그거 나쁜 손버릇이야."

 "뭐, 뭐라는 거..야."

 "근데 유감스럽게도 나도 나쁜 버릇있거든."

 

 보쿠토는 천천히 고개를 꺾었다.

 

"내 꺼에 손대는 자식들은."

 

 보쿠토가 웃었다. 흡사 먹잇감을 앞에 둔 맹수처럼.

 

-

 

 "아카아시, 상처보자."

 "죄송합니다."

 "아니 괜찮아. 얼른 아- 해봐."

 "업무 시간이였을텐데 겨우 이런 일로.."

 

 그만. 보쿠토는 아카아시를 얼굴을 쓰다듬었다. 가라앉았지만 여전히 붉은 기가 다분했다. 아팠겠지. 그는 작게 웃으며 시동을 켰다. 이 이상 다그쳐도 좋을게 없었다.

 

 "저녁 먹고 들어갈까?"

 "..좋을대로 하십시오."

 "냉랭하다고, 아- 그러고보니 아카아시가 좋아하던거 있던 곳 기억해. 거기 가자."

 

 아카아시? 아이의 눈은 슬며시 감겨있었다. 뭐야. 보쿠토는 언제나의 습관처럼 벨트를 매어주고 가만히 자는 얼굴을 바라보았다. 시달렸을테니까 조금 일찍 갈걸. 보쿠토는 작게 중얼거리다 가물가물한 눈으로 다시 힘겹게 뜨는 눈에 가만히 손을 올렸다.

 

 지금은 밤.

 

 살짝 벌어진 입술에 제 입술을 겹쳤다. 아카아시는 아무 것도 몰라도 돼. 내 안에 숨어. 너만의 밤이니까 이 안에선 좋을대로 해.

 

 여전히 머리아픈 향수냄새가 났다. 아무래도 좋으니 지우고 싶었다. 역해. 반은 더러운 오물과 같은 냄새였고 반대는 아카아시의 체향이였다. 보쿠토는 머리를 헤집었다. 이렇게 사랑스러운걸. 밥도 밥이지만 씻기는게 우선이라며 조심스레 차를 몰기 시작하는 보쿠토 였다. 

 

 

와ㅏ...죄송합니다

 

이건 진짜로, 진지하게 아닌데..뭐 하다 이리로 빠졌지...흐어

남은 전력 뛰지 말아야하나...

 

개사이다 보쿠토가 보고팠죠, 네..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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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쿠아카 전력 60분 ; 잔혹동화

 

(보쿠아카는 성인/사망소재 있습니다/이번엔 조금이나마 주제 맞춘건가)

-

 

 "있잖아- 글은 작가의 욕구 배출구, 아닐까."

 "갑자기 무슨 멀쩡한 소리세요, 코타로 군."

 

 여느 때와 같았다면 이미 어금니에 갈려나갔을 얼음이 여전한 유리 컵을 만지작거리며 보쿠토는 창 밖으로 시선을 던졌다. 저도 모르게 그런 보쿠토의 이마에 손을 얹은 쿠로오는 질색할 뿐이였다. 열은 없는데. 보쿠토는 웃음을 터트리며 가볍게 쿠로오의 손을 쳐내자 쿠로오는 팔짱을 끼고 전혀 모르겠단 얼굴로 보쿠토를 바라보았다.

 

 "보쿠토, 나라도 이건 좀 무서운데 말이지."

 "그냥- 그럴수도 있겠구나, 하고 최근 생각하고 있어서."

 

 여전히 쿠로오와 시선을 마주하지 않은 채 뒷목을 쓰는 보쿠토의 행동에 쿠로오는 그저 가만히 '관찰' 하였다. 오늘은 크로스냐 스트레이트냐. 좀처럼 보기 드문 보쿠토의 차분함은 언제나 이면에 무언가 숨어 있었다. 혼자서 멋지게 커버리고 말이야. 이 쿠로오 씨 조금 슬픈걸. 고교 시절부터 손에 꼽을 만큼 본 적은 있었다. 분명 연애상담 이였다고 기억한다. 직접 네코마 고교까지 찾아와서 허리를 숙이고 저를 하루만 빌려가도 되겠느냐고 당당히도 외쳤었다. 이 녀석도 막무가내란 말이지.

 익숙해지지 않는 보쿠토의 페이스에 쿠로오는 아랫입술을 짓이겼다. 또 뭐가 튀어나올지는 절대적으로 미지수였다. 이건 리드 블록 따위 할 수 있을리가 만무했다. 불규칙적으로 테이블을 얄팍한 하얀 손톱으로 내리찍던 의미모를 행위를 그만두고 보쿠토는 처음으로 쿠로오와 눈을 마주쳤다.

 

 "아카아시가."

 

 토스가 올랐다. 몸에 밴 습관대로 두 팔을 뻗고 손가락 마디까지 힘을 주고 네트 위로-.

 

 "뭐- 헤어지기라도 하재?"

 "아니. 그건 아니지만."

 

 원 터치. 그의 천성이리 만큼 쿠로오는 조급해하지 않았다. 아니지만-? 참을성 있게 그는 기다렸다. 찬스는 언제라도 오는 법이니까.

 보쿠토는 입을 열었다 잠시 머뭇거렸다. 그리곤 금세 닫아버렸다. 그는 손가락 마디를 하나하나 누르며 갈 곳 잃은 시선으로 방황했다. 마른침을 삼켰다. 눈을 감아버렸다. 그리고. 천천히. 뜬다.

 

 "아카아시, 다시는 눈 못 뜰 수도 있대."

 

 원터치가 아니라 블로킹 아웃. 쿠로오의 시선에는 작게 웃고 있는 보쿠토가 보였다.

그렇게도 당당해보이던 그가 너무나도 작아만 보였다.

 

-

 

 보쿠토와 아카아시, 그 둘의 관계는 저울이였다. 보쿠토가 한 발 다가가면 아카아시는 한 발 물러났다. 그렇게 미묘한 수평을 이뤄냈다. 그럼에도 보쿠토는 끊임없이 다가섰고 아카아시는 그런 그를 밀어냈다. 그렇게 질릴 법도 한데 보쿠토는 지친 기색도 없이 한 발을 더 다가섰다. 깨달았을 땐 늦었고 등 뒤엔 벽이 가로막고 있었다. 다만 보쿠토는 아카아시를 기다려주었다. 아카아시가 저를 밀어낸 것에는 이유가 있다는 것 쯤은 잘 알고 있었기에 마지막 한 뼘의 거리를 남겼다.

 

 '아카아시. 좋아해.'

 

 당신은 정말-. 쓰러지듯 아카아시는 보쿠토의 품에 안겨왔다. 그 한 뼘의 거리가 뭐라고 이제껏 좁히지 않았던 걸까. 그 오랜 고백이 무색하리 만큼 아카아시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자신의 에이스의 품에 달려들었다. 좋아합니다, 저도. 당신을.

 벅차오르는 감정에 보쿠토는 단 한 마디만 했다. 기다려줘서 고마워, 라고. 그 보답이라도 되는 양 아카아시가 말했다. 포기하지 않아주셔서 감사합니다.

 

 후쿠로다니 배구부를 비롯한 이들도 당연하다 여길 만큼 보쿠토는 배구를 이어나갔다. 물론 배구 이외의 길이란건 애초부터 없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였다. 대학 졸업 후 그는 당당히 국가 대표에 발탁되었고 완전히 라고 하기엔 불완전했지만 더 이상 저만을 위한 세터가 아니라는 자각때문이였을까. 보쿠토의 감정기복은 상당히 완화되었다. 더 이상 어리광부릴 아카아시가 없다는 것이 아니였다. 그야 당연히 코트 밖에서 볼텐데 꼴 사나운 모습 보일 순 없잖아. 끝을 모르는 그는 다시 한번 벽을 깨고 도약했다. 위력만은 우시와카 다음을 이을만큼 그는 자라있었다. 

 반대로 아카아시의 경우는 조금 달랐다. 특별히 선수 생활을 지속할 계획이 아니였기에 대학 배구부에 들어 제 에이스에게 공을 올려주는 것으로 그의 배구는 끝이 났다. 아카아시도 나랑 같이 배구 계속하면 좋을텐데, 라는 제 연인의 투정아닌 투정에 그는 보쿠토네 팀의 오이카와 토오루를 언급하며 절대 무리라 쐐기를 박아버렸다. 물론 여전히 떼 쓰는 보쿠토의 덕분에 가끔 주말이면 생활 체육관에서 여전히 토스를 올려주긴 했지만 말이다. 국가 대표급에 비해 질 떨어질 제 토스를 기분 좋게 내리치며 제 오른손을 쥐고 이거야-라며 이게 치고 싶었어 하고 씨익 웃어오는 보쿠토는 아카아시에게 있어 쉽사리 거절할 수 없는 것이였으니 말이다.

 

 여전히 서로를 자신의 세터, 자신의 스파이커로 칭하며 할가 멀다 하고 애정을 주는 탓에 오히려 진 빠지는 쪽은 보쿠토 네 팀이였다. 그렇게 대단하면 데리고 왔으면 좋았잖아- 라며 칭얼거리는 오이카와에 보쿠토는 무슨 정신인지 다음 연습날 정말로 아카아시를 데리고 나타났고 이는 의도치 않게 연습경기로 이어졌다. 믿기지 않았지만 이겨버렸으니 문제였다. 국가 대표라고. 연습 후 드링크를 가져다 주겠다며 보쿠토가 자리를 비운 사이 오이카와가 아카아시에게 다가왔다. 야호-. 오이카와 상. 코타로 군은 말이야 평소에도 흐름 타면 굉장하긴했지만 오늘 처럼 그렇게 기분 좋게 치는 건 또 처음 봐. 그렇습니까. 세터로써 본받아야지, 나도. 이미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만. 흐음- 케이지군은 코타로랑 처음 경기 해봤을 적 기억해? 글쎄요. 벌써 몇 해전의 일이니까요. 아마 굉장히 힘들었겠지. 그런 타입이니까. 뭐- 그거야. 코타로 군 여기까지 끌어올려줘서 고마워, 케이지 군. 전 한게 없습니다. 무슨 소리, 세터야 말로 아군의 전력을 이끌어내는..! 보쿠토 상은, 보쿠토 상 자신이 완성시켰습니다. 전 옆에서 갈 길을 보여드렸을 뿐입니다. 선택은 보쿠토 상 몫이였고요. 그리고 그 이후로 어쩌다보니 종종 연습시합에 불려오게도 되어버리고 말았다.

 

 보쿠토에게는 외길이였고 아카아시에게는 지나가는 길의 핀 들꽃같이 존재에 가까웠을지도 모른다. 결과는 그렇게 되었지만.

 아카아시는 전공과는 전혀 관련없는 글 쓰는 직업을 가지게 되었다. 어쩌다 우연찮게 시작하게 된 것였지만 깨닫고 보니 흠뻑 빠진 뒤였다. 그 특유의 시니컬하지만 섬세한 문체가 돋보였고 그 바닥에서 인지도를 서서히 쌓아나갔다. 어째서 인지 몰랐지만 항상 어둡게 끝나고마는 그의 글은 몇 해간의 시간 후에 공식처럼 자리잡았고 아카아시 케이지 라는 작가만의 독특한 방식이 되었다.

 조금은 신선하게 헤피엔드 라던가는 어때, 라는 보쿠토의 말에 아카아시는 갸웃 거리며 저도 잘 모르겠다는 답을 했다. 작가가 제 작품을 마음대로 못하는게 어딨어. 하지만 왠지 마음놓을 정도로 편하게 끝나는건 손에 잡히지가 않는걸요.. 뭐- 난 아카아시라면 뭐든 좋지만 말이야! 결론은 팔분출에 불과했다.

 

-

 

 글은 작가의 욕구 배출구. 언젠가 아카아시가 저에게 해 준 말이다. 소설이란게 그렇지 않습니까. 허구에 불과하다고요. 현실같은 허구. 진짜같은 가짜. 그러니 작가의 일생이 들어가 있다 해도 이상하지 않은게 소설이라며.

 

 "그럼 아카아시는 뭘 바란거야. 응?"

 

 보쿠토는 물었다. 답은 없었다. 도로 물었지만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젠장. 보쿠토는 욕지거리를 읊조리며 의자를 끌어다 아카아시의 옆에 자리를 잡았다. 링겔 액이 투여되고 있을 호스도 겨우 저런 것에 의지해 숨을 내맽고 있을 호흡기도 죄다 떼어버리고만 싶은 심정이였다. 케이지 얼굴 안보인단 말이야. 힘 없는 손을 잡아다 가볍게 뺨에 부볐다. 차가워. 여전히 차가운 손이였다. 보쿠토는 아카아시의 손가락을 하나하나 쓸어내리더니 작게 웃었다.

 

 "이젠 반지 헐렁하겠다."

 

 웃었다. 웃었다. 웃었다. 툭. 눈물이 웃음을 비집고 나왔다. 어째서. 난 웃어야 하는걸. 케이지는 나 우는거 싫어하잖아. 울컥 하고 쏟아져나왔다. 기별없는 이별에 지쳐있었다. 알고 있다. 나 케이지 아니면 안되는거 알잖아. 이번에 나- 서브도 확실히 성공했어. 마지막 세트까지 코트에 서 있었어. 스트레이트 뚫리지 않고 막았어. 응?

 

 "잔인하다, 케이지는."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거야? 난 어디서부터 놀아난거야? 화 안낼테니까 대답해줘. 쓰러지기전 온전히 B와 A라는 이름으로 완성시킨 소설 한 권을 건냈었다. 나중에 읽어주세요. 언제? 때가 되면. 그 때가 언젠데. 알거에요.

 A는 시한부 판정을 받았다. B는 그 사실을 몰랐다. A는 B를 짝사랑했다. 얼마가지 않아 B가 A에게 고백했다. 받지 않았다. 하지만 결국 받았다. 욕심이였다. 이게 니 이야기야? 나는? 난 어떻하고? 후두둑- 시트 위로 굵은 눈물 방울이 떨어졌다. 케이지, 케이지, 케이지, 케이지, 케이지. 의자가 소음을 내며 쓰러졌다. 그 아래 보쿠토는 무릎을 꿇었다. 허탈했다. 난-.

 

 눈에 뻔히 보이는 변명이라도 좋아. 이건 아니잖아. 이건 너무 잔인하잖아, 케이지.

 

-

 

아- 날렸어요. 네- 빰! 하고 쫙!하니 차잔!! 하고 사라졌더라고요..쿨쩍))

 

이번 주제 엄청 소재 고민 많이 했는데 보쿠토 얀데레로 간다!! 했다가 요즘들어 아카아시를 심적으로 너무 많이 괴롭혀서 괜시리 죄책감에..미안해 이것도 다를 것 없지만 육체적으로 고통 받..은건가...아 잠시만-

 

어른 스런 보쿠토가 우는 거 보고싶었습니다, 라고 주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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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5일 기념//

-

 

 "저기저기저기!!"

 "보쿠토 시끄러."

 "나이값 좀 해라."

 

 내 말 좀 들어봐! 평소같았으면 이미 어깨가 축 쳐졌을 보쿠토는 여전히 뜨거웠다. 배구부 져지를 끌어안은 채 체육관으로 들어서는 발걸음이 몹시 바빴다.

 

 "이거 보라고!"

 

 져지를 뒤집어 그에 싸인 것을 코노하들에게 들이밀었다. 불만 가득한 얼굴에 부루뚱한 표정으로 꽤나 얌전히도 안겨있는 아이가 있었다. 부드러운 곱슬 머리에 나른한 눈은 영락없는 아카아시 였다.

 

 "헤에- 어디서 또 납치해오셨나 몰라."

 "부실에 있었는걸."

 

 한껏 잘했지, 라는 얼굴을 한 보쿠토에게서 코노하는 아이를 빼앗으며 혀를 내둘렀다. 그리곤 가만히 내려두며 눈높이를 맞추었다. 아- 어디서부터 뭐라고 하면 되는거지.

 

 "죄송합니다."

 

 조금 유-해진 목소리가 어린애다운 구석이 있었다. 답답해 보이는 져지를 끌어내리자 보이는 남청색 셔츠에 검은 반바지, 무릎 아래까지 올려신은 새하얀 니삭스. 이거 제대로 잖아-, 라면서 코노하는 작게 속으로 절규했다.

 

 "아카, 아시?"

 "예. 어쩌다보니 이렇게 되버렸습니다."

 

 눈을 깜빡이며 저를 올려다보는 아카아시를 가만히 보던 코노하는 우선 조치를 내렸다. 일단 이러면 연습은 무리니까, 무슨 영문인진 몰라도.

 

 "보쿠토는 접근 금지."

 "겍- 너무해. 내가 처음 발견했는걸!"

 "니가 있으면 아카아시는 더 힘들어. 절대 안돼."

 

 코노하가 보쿠토와 열심히 실갱이를 벌이는 사이 아카아시는 와시오와 공놀이를 하고 있었다. 와시오가 위로 포물선을 그리게 던져주면 스파이크라도 치는 흉내로 공을 쳐냈다. 성공하고는 자축이라도 하는 양 고사리 같이 작은 손으로 박수를 치면 작게 꺄르륵 하고 웃었다. 금세 빠져들었는지 리시브도 해내는 아이에 보쿠토와 코노하 조차 대화의 목적을 잃고 아카아시를 바라보았다. 리시브 한 공이 와시오가 아닌 저 멀리 구석으로 날아가자 무릎 조금 위로 겉도는 져지를 휘날리며 뛰어가 공을 주어 쪼르르 달려왔다. 와시오에게 공을 도로 던져 주며,

 

 "한 번 더."

 

 아 이거 꽤 위험할지도, 라고 생각하면서 후쿠로다니 배구부는 어린 아카아시에게 매료되기라도 연습따위 잊고 같이 리시브에 뛰어들었다.

 

-

 

 "재밌었어, 아카아시?"

 

 작게 고개를 끄덕여오는 아이의 머리칼을 쓰다듬어주는 보쿠토의 손길에 아카아시는 환하게 웃어보였다.  빨갛게 부어오른 아이의 두 팔에 파스를 붙여주고 드링크를 손에 쥐여주며 보쿠토는 그런 아카아시를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후반부에 본격적으로 달려 든 보쿠토의 덕에 다들 기진맥진 해져 막무가내로 코트 여기저기에 드러누워 버린 채였다. 어느 세 붉게 수놓인 하늘을 창살 사이로 올려다보며 구름 한 조각 없이 맑은 풍경에 보쿠토는 아카아시를 불렀다.

 

 "아카아시, 저기.."

 

 아, 자구나. 제 앞에 가만히 드링크를 끌어안다시피하고 보쿠토 쪽으로 기울어진 채 까무룩히 잠이 든 아이에 푸슬 웃으며 보쿠토는 아이에게서 드링크를 빼앗아 옆에 두고 어깨를 천천히 토닥였다. 잘 자, 아카아시.

 

 "뭐야, 아카아시 자?"

 "응."

 

 보쿠토는 아카아시가 깰까 작게 대답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대답을 들은 코노하는 다시 코트 위에 고개를 박았다. 아카아시는 너같은 스테미너 바보랑 어떻게 연습을 해줬다냐. 중얼거리자 다들 한 마디씩 거들었다.

 

 "아- 아직 계셨습니까."

 "에엑- 아카아시?!"

 

 왜 그러십니까. 아카아시는 작게 얼굴을 찌푸리며 체육관 안으로 들어섰다. 어버버 거리는 보쿠토는 제 옆에 기대어 자는 아이와 아카아시를 번갈아 보았다. 이게 뭐야?! 아카아시는 보쿠토 쪽으로 걸어오더니 자는 아이의 뺨을 부드럽게 감쌌다.

 

 "쿄헤이, 형한테 와."

 "아- 형아."

 

 잠결인지 아카아시의 품에 얼굴을 부비더니 이내 두 팔을 벌려 아카아시에게 안겼다. 밤 날씨를 걱정한 아카아시는 제 져지를 더 여며주며 안아들었다. 여전히 영문을 모르겠단 보쿠토와 눈이 마주쳤다. 이거 귀찮아질게 뻔한데. 하아-. 아카아시는 작게 한숨을 내쉬더니 입을 열었다.

 

 "사촌동생입니다. 아카아시 쿄헤이 입니다."

 "사촌?"

 "그렇습니다만, 무슨 문제라도."

 "너랑 완전 닮았다.."

 

 아- 그러십니까. 아카아시는 미간을 구기며 작게 칭얼거리는 쿄헤이의 등을 토닥여주었다. 괜찮아, 괜찮아. 형 여기있어. 으응-케-지-형. 응, 알았어.

 보쿠토는 물론이고 코노하들까지 넋을 놓고 그런 아카아시를 바라만 보았다. 저러니까 보쿠토도 잘 다루는건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확실히 누군가를 돌보는데 있어 가장 필요한건 경험일 따름이였다. 어르고 달래고 타이르고 보듬어주고.

 

 "부실에 재우고 오겠습니다."

 "아아- 괜찮아. 우리도 이제 슬슬 갈테니까."

 "보쿠토 상은 어쩌시겠습니까."

 "오늘은 나도 갈래."

 

 그럼 죄송한데 잠시만-. 아카아시는 보쿠토에게 조심스레 쿄헤이를 안겼다. 뒤척이거나 잠투정하면 등 쓸어주세요. 그 말을 끝으로 아카아시는 코노하들을 일으켜 체육관에서 내보내고 공을 줍고 네트를 내렸다.

 

 "아,아카아시 그건 내가 할게."

 "괜찮으니 쿄헤이 봐주세요."

 

 시끄러웠는지 쿄헤이는 투정을 부렸다. 으응...에엣- 괘,괜찮아. 괜찮아, 쿄헤이. 형아아-. 아카아시는 잽싸게 뛰어와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보쿠토에게 키를 넘겨주고 쿄헤이를 넘겨받았다. 그리곤 입모양으로 '잠궈주세요.' 라고 말했다. 보쿠토는 주억이며 체육관을 나서는 아카아시의 뒤를 따랐다. 보쿠토는 체육관 문을 잠그고 열쇠를 져지 주머니에 넣었다. 벌써 끝물이 남청색으로 물들기 시작한 하늘에 잠시 눈을 마주했다. 왠지 모르게 떨려오는 기분이 나쁘지만은 않았다.

 

 "보쿠토 상, 가방."

 "오우- 고마워."

 "교복은 넣어놨습니다."

 "아, 응. 아카아시는?"

 

 전 여기요. 어깨에 아슬아슬하게 걸친 가방에 눈짓하며 제 가방을 보이자 보쿠토는 아카아시의 가방을 빼앗아들었다. 큰 소리를 낼 수도 도로 빼앗을 수도 없는 상태에 아카아시는 그런 보쿠토를 노려보았다. 보쿠토는 말 없이 제 져지를 벗어다 아카아시의 어깨 위에 얹어주며 추우니까. 하고 중얼거렸다.

 

 "야, 니네 그러고 있으니까 가족같다."

 "딱이네, 딱."

 "근데 애만 둘이야."

 

 하나같이 보쿠토만 툭툭 치고 먼저들 약속이라도 한듯 뛰어가 버리는 코노하들과 왠지 모르게 보쿠토의 어깨에 손을 얹고 고개를 끄덕여보이며 사라진 와시오에 보쿠토는 어버버 거리며 아니라고 항의했다. 물론 이미 저 만치 가버린 이들에게 들릴리가 만무했다. 보쿠토는 울상으로 아카아시를 돌아보았다.

 

 "아카아시, 진짜?"

 "글쎄요,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형아,"

 "쿄헤이 깼어?"

 

 둘의 대화에 아이가 끼어들었다. 작게 버둥거리니 아카아시는 쿄헤이를 품에서 내려주었다. 아카아시는 허리를 숙여 져지 소매를 거둬주고 손을 잡았다. 아이는 저의 조금 앞에 선 보쿠토의 손가락을 가만히 꼬옥 쥐었다. 보쿠토가 아이를 보았다. 아이도 보쿠토를 보았다. 키득.

 셋은 나란히 손을 잡고 학교 정문을 나섰다. 자동차 한 대가 불을 밝히고 서 있었다. 아이는 우뚝 발걸음을 멈추었다. 손을 놓고 져지를 벗어 아카아시에게 내밀었다. 가만히 보쿠토를 바라보았다.

 

 "형이 보쿠토 상이에요?"

 "오우-이 몸이 그 유명한 보쿠토 코타로다."

 "헤에-진짜구나."

 "응?" 

 "진짜 바보네요."

 

 보쿠토는 뒷통수를 한 대 맞은 얼굴로 쿄헤이를 바라보았다. 그게 무슨 소리야. 아이는 작게 키득였다. 쿄헤이-. 아, 괜찮아. 아카아시.

 아이는 보쿠토의 져지 끝자락을 잡아 당겼다. 보쿠토는 아이와 시선을 나란히 맞추었다. 실은요-. 귀에 나른한 목소리가 흘러들어갔다.

 

 "케이지, 태워주고싶은데 미안하게 됐구나."

 "아니요, 괜찮습니다."

 "쿄가 귀찮게 굴진 않았고?"

 "얌전한 아이잖아요. 괜찮았어요."

 "그렇다니 다행이구나. 이쪽은?"

 "아, 처음 뵙겠습니다. 보쿠토 코타로 라고 합니다."

 

 시합 언제나 잘 보고 있어요. 아, 감사합니다.

 아카아시의 숙모는 잠시 아카아시와 도란도란 대화를 나누었고 그 동안 보쿠토는 쿄헤이와 쎄쎄쎄- 하고 있었다.

 

 "그럼 가볼게. 쿄- 가자."

 "아, 응-."

 "형들한테 인사하고."

 

 아이는 두 형을 앞에 두고 눈을 반짝이며 올려다보았다. 함박웃음을 머금은 채 둘은 번갈아 바라보다 아카아시를 향해 두 팔을 벌렸다. 아카아시는 익숙하게 그에 응해주었다. 등을 토닥여주며 안아주자 아이는 아카아시의 뺨에 짧게 입 맞추었다. 형아, 안녕. 또 올게. 그래. 아카아시는 쿄헤이를 꼭 안았다 놔주었다. 아이는 보쿠토의 앞에 서서 두 팔을 벌렸다. 보쿠토는 이제껏 아카아시를 급습한 전적이 무색하게 어정쩡한 자세로 아이를 끌어안았다. 쿄헤이는 아이다운 웃음소리로 답했다. 형도 잘 있어. 다음에도 같이 배구하자. 오우- 그러자. 그때까지 블로킹 연습해올게. 나도 지지않게 연습해야겠는걸-. 아이는 보쿠토의 뺨에 입 맞추었다. 그런 둘을 아카아시는 지긋이 바라보고 있었다.

 

 총총 걸음으로 차로 향하던 쿄헤이는 다시 둘을 돌아보았다. 그러더니 입가에 두 손을 모아 외쳤다.

 

 "보쿠토 형- 우리 형아 잘부탁해-!"

 "오우-!"

 

 보쿠토는 씨익 웃어보였다.

 

 "케-지-형, 좋아한다고 말해!"

 

 아이는 손을 크게 흔들어보이고 차에 탔다. 보쿠토는 어리둥절한 채 아이에게 손을 흔들어주었다. 제일 아래까지 창을 내리고 바이바이- 하고 인사를 했다. 저 만치 멀어진 차의 붉은 빛을 눈이 아플 정도로 바라보았다.

 

 "아카아시 우리도 가..자?"

 

 아랫입술을 다 문 채 붉게 달아오른 얼굴로 바닥으로 향한 시선이였다. 아까 본 등 때문인가 싶어 보쿠토는 두 눈을 문질렀다. 도로 문질러보아도 같았다. 어디 아프기라도 한 걸까. 보쿠토는 아카아시의 곁에 다가가 이마에 손을 얹었다. 열은..없는걸.

 

 "아카아시?"

 "괜찮습니다."

 

 금세 돌아온 아카아시의 모습에 제가 헛것을 봤다 확신하며 보쿠토는 아카아시와 나란히 발을 맞추었다. 언제나 처럼 보쿠토는 아카아시의 손을 잡았다. 둘 사이의 습관이였다. 엄밀히 말하자면 보쿠토의. 아카아시는 거기에 장단을 맞춰주는 것에 불과했을 지도 모른다. 아카아시는 보쿠토의 져지를 여미며 얌전히 손을 내어주었다.

 

 "쿄헤이는 몇 살인거야?"

 "초등학교 2학년입니다."

 "뭐야, 생각보다 어리진 않잖아. 아카아시한테 어리광 부리는거 보고 완전 초등학생 전이라고 생각했다고, 나."

 "쿄헤이는 이러니 저래니 해도 저한테 무르니까요. 형제가 없어 외로운 모양입니다."

 "무른건 쿄헤이가 아니라 아카아시 아니야? 그렇게 응석 받아주는 것도 처음 봤고 말이야."

 "그럴지도 모르죠."

 

 비록 잠투정에 불과했을지도 모를 어린 아이의 면모를 떠올리며 보쿠토는 작게 웃었다. 귀엽잖아. 아카아시는 그런 보쿠토에게 잠시 시선을 주었다 도로 거두었다.

 

 "생긴 것도 딱 아카아시 였고 말이지."

 "보쿠토 상, 엄밀히 따지면 쿄헤이도 아카아시 입니다만."

 "겍- 그러지마. 케이지 닮았다고 케이지를. 그래서 난 좋았는데."

 "작아진게 좋았다는 겁니까, 태클 걸지 않아서 좋았다는 겁니까."

 "아니야, 그런거! 그냥, 아카아시가 어릴 때 딱 저랬겠구나 싶어서. 똑 부러지니깐 말이야. 괜히 어리광 부린다거나 보고싶기도 했고."

 

 아-. 싸늘한 밤 공기에 말이 흩어졌다. 아카아시는 어깨에 걸쳐진 져지를 끌어내렸다. 보쿠토에게 건내었다 도로 팔에 걸쳤다. 에에- 뭐야, 아카아시. 세탁 후에 돌려드리겠습니다. 괜찮은데- 아카아시 향이라던가 좋은걸. 뭡니까, 그건. 기분 나쁘네요.

 아카아시는 발걸음을 멈추었다. 그럼 가보겠습니다. 오우-. 보쿠토의 집은 아카아시의 집보다 좀 더 가야했기에 보쿠토는 항상 아카아시를 바래다 주곤 했다. 좀 더 걷고 싶기도 했고 같이 있고 싶었지만 늦은 시간에 오랜만에 추가 연습도 없는데 모처럼이니 오래 잡아두고 싶진 않았다. 저 때문에 항상 늦게 귀가하는 아카아시를 생각하자니 괜시리 미안해졌다.

 

 "저- 아카아시."

 "예?"

 "뭐 하나만 물어봐도 돼?"

 

 들어가려던 아카아시의 팔을 붙잡고 보쿠토가 물었다.

 

 "네, 뭔가요."

 

 들었을 때부터 자꾸 떨쳐내지지가 않아서 말이야. 보쿠토는 단호해보였다.

 

 "아까 쿄헤이가 너한테 했던 말. 그거 무슨 말이야?"

 

 아카아시가 작게 움찔거렸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럴리가 없잖아."

 "아무 뜻 없습니다. 그러니 이거 좀 놓으시죠."

 "아무 것도 아니라면, 왜 그런 표정인거야."

 

 평소의 페이스가 아닌 경기 도중 상대 팀의 매치 포인트 때 서브 미스라도 한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어디까지나 보쿠토 다운 발상이였다. 흔히 울 것 같은 얼굴이였지만 말이다. 틀린 말은 아니였다. 낭패감과 당황함이 섞인 불안한 표정.

 

 "나, 사실 쿄헤이한테 들은게 있어서 말이지."

 "무슨 소리십니까."

 "아카아시는 좋은건 좋고 싫은건 싫다고. 물론 나도 알고 있었지만!"

 

 자신의 어리광이 귀찮다는걸 알지만 받아주는 아카아시에게는 도저히 그만 둘 수가 없는 노릇이라던 웃음기 섞인 목소리를 들었다. 하지만 결코 싫지만은 아니라면서.

 

 실은요. 케-지 형은, 싫은건 절대 안하는 사람이에요. 그러니까 분명 보쿠토 형 옆에 있는 것도 좋아서 있는거고. 매번 말은 그렇게 하면서 속으로는 걱정도 많이 할걸요. 사실 나한테도 보쿠토 형 얘기 많이 해줘요. 정말로 형이 싫고 귀찮고 피곤한 사람이라면 그렇게 좋은 얼굴로 말할 리가 없잖아요.

 

 "포기할까도 생각했고 역시 안될거라고도 생각했지만 말이야. 오늘 그런 말 들어버렸으니까 나 용기내보려고."

 "예?"

 "나 아카아시가 좋아."

 "그게 무슨,"

 "나 챙겨주는 어른스러운 점도 좋지만 말이야. 가끔은 답지않다고 할만큼 투정하는 어린아이 같은 점도 좋아. 그거에 반한거지만 말이야. 아카아시도 저러기도 하구나 하고. 질투 라던가."

 "..그런 적 없습니다."

 "그치만 쿄헤이가 나한테 츄- 했을 때라던가 말이야."

 "아닙니다, 그런거."

 

 보쿠토는 아카아시를 품으로 당겨 안았다. 쿄헤이를 안았을 때와는 다르게 익숙한 폼이였다. 등을 쓸어주면서 케이지 괜찮아. 하고 연신 중얼거렸다. 지금 놀리는겁니까. 쉬잇- 괜찮아. 그러니까 울지마.

 힘으로 밀리는건 당연히 알고 있던 일이지만 아카아시는 전력으로 보쿠토를 밀어냈다.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지만 오히려 보쿠토는 아카아시를 더욱 세게 끌어안았다.

 

 "밀어내지마."

 "어째서..!"

 "싫어하지마."

 "..........."

 "좋아해, 케이지."

 

 대답은, 꾸짖는 듯한 말투였다. 아카아시는 고개를 보쿠토의 어깨에 박았다. 뭘 바라는 겁니까. 당신은. 그런 얼굴이면 나 기대해버리잖아.

 

 "그 기대, 보답할 수 있어서 다행이네요."

 

 목덜미에 뺨을 가볍게 부비더니 조금 떨어져 눈을 마주했다. 누가 뭐라할 것 없이 입 맞췄다. 보쿠토는 아카아시의 머리를 손바닥으로 크게 감쌌다. 아카아시는 두 팔을 벌려 보쿠토를 안았다. 아랫입술을 물자 작게 벌려온다.

 

 좀 더 어리광 부려줘, 케이지. 내 케이지.

 

-

 

우와- 이제 다 쓰다니 이런 쓰레기 자식..나레기..타지도 않는..

 

5월 5일 기념으로 쓴건데 너무 오래 걸려서 그냥...너로 만족..할까보냐!!

 

어려진 아카아시를 쓰고 싶었지만 너무 밑도 끝도 없을거같아

어리광 부리는 아카아시가 보고 싶었습니다, 정말 그 뿐입니다...쿨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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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차피 인간인데, 언젠가는 죽는걸. 줘봐야 뭐해. 다시 죽을 목숨인데."

 "보쿠토, 너 이 자식."

 

 쿠로오도 참 감성적이란 말이지. 보쿠토는 중얼거리며 미간을 구긴 채 '라인 북'을 들여다보는 쿠로오의 어깨를 두어번 가볍게 쳤다. 이에 쿠로오는 매서운 눈으로 보쿠토를 노려보다 이내 한숨을 내쉬었다. 저 부엉이 자식이 뭘 알아, 젠장할. 

 보쿠토로써는 이해하지 못할 쿠로오의 행동에 의아해할 뿐이였다. 일부러 제 업을 늘려서 겨우 인간따위의 생명을 지속시켜 준다는건 하루 빨리 '테이커'의 자리에서 벗어나고픈 보쿠토에게 있어 상상치도 않는 것일 따름이였을 뿐이다.

 

 유일한 테이커의 장점이라 꼽는다면 업을 늘려 테이커 기간을 늘리는 대신 생명을 지속한 인간을 사후에 제가 거둘 수 있다는 점이다. 과연 이점일지는 테이커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갈리는 편이였다. 애초부터 테이커란 것은 형벌의 한 형태이기에 '상'으로 올려주기에는 악업을 지녔기에 테이커의 역할을 수행하며 그 업을 지워나가는데 의미가 있다. 그리고 확실한 것은 결코 유쾌한 일은 아니라는 것이다. 말 그대로 테이커. 죽은 이를 이끌어 주는 역할이다. 간단해보이지만 여간 쉬운 일이라 할 수만은 없었다. 

 

 "쿠로오는 어차피 커넥트 되어있잖아. 그럼 거두면 안돼?"

 "말처럼 쉬우면 이러고 있겠냐. 얘가 얼마나 섬세한 앤데."

 

 그거야 그렇지. 보쿠토는 주억거리며 여전히 머리를 싸매고 있는 쿠로오를 애처롭게 바라보았다. 그러니까 애초에 커넥트 따위 안했으면 좋았잖아. 분명 한 마디 들을거라 생각하며 속으로 주절거리는 꼴이란. 그런 보쿠토의 속을 읽기라도 하듯 쿠로오는 라인 북을 덮으며 말했다.

 

 "너도 때가 되면 알거야. 내 업을 늘리면서라도 더 살리고 싶다는 심정이 뭔지."

 

 물론 너 같은 애송이는 모르겠지만.

 결국 승자는 쿠로오였다. 히죽이는 평소의 페이스로 돌아와 허리춤의 홀더에 라인 북을 넣곤 주머니에 손을 비집어 넣은 채 허리를 숙여 보쿠토의 앞에 얼굴을 마주했다. 쭉- 빠지더니 이내 발걸음을 돌려 손을 들어보이며 걸어가버렸다. 간다, 라는 말만을 남긴 채였다. 그러니까 그 심정을 모르겠단 말인데, 쿠로오. 영 탐탁찮은 얼굴을 한 보쿠토는 씁쓸한 끝말을 느끼며 쿠로오의 뒷 모습을 바라보았다.

 

-

 

"커넥트. 테이커가 자신의 테이커 수행 기간을 늘리는 대가로 생명을 연장한 링커가 이어지는 것으로 링커의 사후 테이커는 링커를 테이커 수행 기간 동안 그 업을 같이 지울 수 있다, 라고 하지. 아마."

 "그럼 링커도 테이커로 판정나면 뭐야. 걔도 또 링커 둘 수 있는거야?"

 "아니, 그건 안돼. 테이커가 걔를 안거뒀을 때 테이커 판정받으면 링커 두는거고."

 

 아아- 어려워. 보쿠토는 제 머리를 헤집으며 책상에 머리를 콩-하고 박았다. 제가 테이커가 된지도 어느 덧 몇 해째인가. 쿠로오랑 같은 해부터 시작했으니 아마 적어도 족히 70년은 넘었을 터였다. 정상참작된 처지이니 불평만 할 수도 없는 위험한 위치였다. 테이커들 사이에서도 꺼리는 '어린 아이'들을 맡은 보쿠토였기에 링커를 찾지 않는건 아니냐는 말도 있었다. 어린 애 상대로 동정심을 베푸는 행위가 아닌가, 라는 의문이 있을 법도 했지만 보쿠토는 단순했다. 많이 안하니까 제가 맡고 점수따고 얼른 테이커 따위 그만둬 버리자고. 어린 아이들은 항상 낯선 이를 경계했고 무서워했고 숨어버린다. 그러니 힘들다. 당연한 것이였다. 다만 그걸 잘 구슬려내는 것 뿐이였다. 아니면 보쿠토의 정신연령이 그 즈음을 엇돌고 있지 않을까, 라는게 코노하의 추측이다.

 

 "넌 링커같은거 관심없는거 아니였어?"

 "그치만- 쿠로오가 그렇게 신경쓰는 것도 꽤 보기 힘든 거라고."

 "하기야."

 "그러고 보니 코노하도 링커 없지?"

 "응, 뭐. 없지."

 "봐둔 사람이라던가 있어?"

 

 코노하는 잠시 제 라인 북에서 보았던 얼굴을 떠올렸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저어보였다. 그에 보쿠토는 의기양양한 얼굴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고마워- 따위를 외치며 문 밖으로 뛰쳐나갔다. 저 바보가 또 무슨 짓을 하려고 저러는거야. 한숨은 온전히 코노하의 몫이였다.

 

-

 

 열. 아홉. 여덟. 일곱. 여섯. 다섯. 넷. 셋. 둘. 하나.

 

 커다란 벛나무에 앉아 발을 까딱이던 보쿠토는 숫자를 거꾸로 세고 마침내 0에 다다르자 병실의 창가로 내려앉았다. 삭막한 방이였다. 어린애다운 그림 하나 없는 허연 병원 특유의 벽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침대와 그 옆의 링겔. 반대 측 벽면의 반을 채울 듯한 스크린 텔레비전과 협탁에 놓인 이미 오래전 시들어버린 꽃바구니. 작은 냉장고의 소음. 간병인 하나 없는 모양새가 간이 침대도 없는 듯하였다. 차갑네, 차가워.

 웃차-. 보쿠토가 병실 안으로 발을 들여놓으며 여기저기를 둘러보았다. 꽤나 부유한 가정에서 자란 듯 병실도 1인 실에 침대 사이즈도 달랐다. 도련님이시구나. 보쿠토는 주억이며 라인 북을 꺼내어 펼쳤다. 침대에 다가가 곤히 잠든 얼굴을 바라보았다. 일치했다. 더 어려보이지만 뭐 상관없지. 보쿠토는 침대 맡에 엉덩이를 걸치고 앉아 아이를 내려다보았다. 귀티나네. 곱슬머리에 뽀얀 피부. 감고있어도 예뻐보이는 눈을 가지고 있었다. 올망졸망한 입술은 턱없이 작아만 보일 뿐이였다.

 

 귀엽네. 보쿠토는 푸스스- 웃으며 머리칼을 쓸어주었다.

 

 "잠시만 일어나서 형 볼래?"

 

 미안하지만 일은 일이니까. 모처럼 예쁜데 안타깝네. 보쿠토는 아이의 볼을 톡톡 쳤다. 금세 눈을 떠 웃고있는 보쿠토와 눈을 마주했다. 옅은 청록빛을 띠는 눈은 나이에 맞지 않게 차분했다. 우선은 설명부터 해줘야 하니까. 어린 애들은 낯선 사람보고 놀래잖아. 전의 아이를 되새기며 보쿠토는 떠올렸다. 절 보자마자 울음부터 터뜨리며 비명을 질러대는 턱에 꽤나 고생했던 터였다. 같은 실수 하지 말자. 귀찮아지는건 싫은걸.

 

 "안녕,"

 "저, 죽은건가요?"

 

 응? 도저히 되물을 수 밖에 없는 아이의 질문에 보쿠토는 당황스럽기 그지 없었다. 틀린 것은 아니니 부정할 수 없고 그렇다고 긍정하자니 뭐라하면 좋을지 몰랐다. 아직 열 살도 되지 않은 저 핏덩어리의 입에서 나온 말이 죽은거냐니. 어리광 부릴 나이 아닌가, 9살이면?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제 라인 북 데이터 속에는 죽음을 경험한 적이 없다. 비슷한 경험도 없었다. 그런데 죽음을 감지한다는 것 자체가 이상했다. 물론 자신이 죽을 때를 안다는 말이 있듯이 아는 사람도 있기 마련이다. 그래도 이건 아니였다. 우선은 침착하자. 어느 센가 아이는 상체를 일으키고 앉아 헤드에 기대어 저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그 모습이 너무나도 고요했다.

 

 "일단 하나씩 천천히 하자, 응?"

 "네."

 "이름은 아카아시 케이지. 9살. 맞아?"

 

 아카아시는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간단하기 그지없지만 본인확인은 끝났다.

 

 "음- 심장이 아픈거야?"

 

 아이는 잘 모르겠다는 얼굴로 갸우뚱 해보였다. 아- 귀여워. 보쿠토는 웃으며 아이의 왼쪽 가슴에 손을 올리며 여기? 하고 묻자 고개를 끄덕였다.

 

 "아까 아카아시 군이 먼저 물었지만, 응. 맞아. 이제 하늘나라로 가자."

 "역시 전 죽었군요."

 

 너무 담담했다. 죽었나요. 그렇군요. 이런게 어디있어.

 기운 없어보이는 얼굴로 천천히 떨군 고개를 들어 보쿠토와 시선을 맞췄다. 두어번 깜빡이더니 다시 고개를 힘없이 떨구었다. 시트를 고사리같은 손으로 꼬옥 쥐었다. 아이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하지만 말은 하지 않았다. 뭐라고 말할까.

 

 싫다고 할까. 무섭다고 할까. 그것도 아니라면 울음을 내뱉을까.

 

 "지금, 가야하나요?"

 "응, 그럴거같은데. 왜 그래?"

 "어머니."

 

 뭐라고? 도로 되묻자 아카아시는 다시 보쿠토와 눈을 마주했다.

 

 "어머니. 어머니 얼굴 한 번만 보고 가면 안될까요?"

 

 이것도 예상치 못했다. 호칭도 호칭이지만 말이다. 성숙하네, 정도가 아니였다.

 말 없이 아카아시를 내려다보던 보쿠토의 시선에 아카아시는 다시 말했다.

 

 "역시 곤란하겠죠. 죄송해요."

 

 그 작은 입이 미묘한 호선을 그었다.

 

-

 

 "천하의 보쿠토가 링커라니. 놀랄 노잔데 정말-?"

 

 틈만 나면 케넥트따위 이해 못하겠다시던 보쿠토 코타로 씨 어디계신가나. 쿠로오 특유의 껄렁한 목소리가 들렸다. 보쿠토는 그런 쿠로오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 이젠 라인 북 제일 첫 면에 적힌 '아카아시 케이지' 를 읽고 있었다.

 

 특별히 말하지 않을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말해줄 이유도 없었다. 그리고 미묘한 독점욕. 아이는 예뻤다. 그저 그 뿐이라 말했다.

 

 "오야오야오야- 어린 애 상대로 뭘 진지해지는거야, 코타로 군."

 "너에게 듣고싶지 않아, 쇼타콤 테츠로 군."

 

 그건 이제 너도 마찬가지 잖아. 아-.

 

 "진짜로 무슨 일이 있었던거야, 너. 예뻤어 따위로 무마시킬 수 없다고."

 "그냥 단지,"

 "단지?"

 

 환하게 웃는게 보고 싶었어. 그 뿐이야.

 

 쿠로오는 조금 놀란 표정을 짓더니 이내 피식 웃으며 보쿠토의 옆에 주저앉으며 어깨 위에 팔을 얹었다. 자식- 뭘 좀 알게 됐군. 보쿠토는 키득이며 라인 북의 아카아시 얼굴을 바라보았다. 왠지 얘라면 괜찮을거 같았어.

 

-

 

 "아니, 아니야. 아카아시 군은 죽지 않았어."

 "하지만 방금 말씀하,"

 

 보쿠토는 손을 저어가며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절-대 아니야.

 

 겨우 9살인데. 이렇게나 예쁜데. 넌 사랑받아야 마땅한 아이야, 그러니까.

 

보쿠토는 아카아시를 품에 끌어안았다. 작은 몸뚱아리가 품에 안기고도 남았다. 도드라진 뼈에 가만히 등을 쓸어주었다. 아이는 가만히 있었다. 미동조차 없었다. 보쿠토는 아카아시의 양 팔 사이에 손을 끼워넣어 들어 제 무릎에 앉힌 채 품에 안기게 하였다. 가만가만 머리를 쓰다듬어주자 아이는 제 셔츠를 한 손에 꼬옥 쥐고 있었다. 그 마저 예뻤다. 조금은 불안해보이는 눈으로 셔츠의 어딘가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아카아시."

 

 눈을 마주쳤다.

 

 "아카아시는 죽길원해?"

 

 아이는 멈칫하더니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영리한 아이야.

 

 "거짓말 안해도 돼. 그리고 울고 싶을 때는 울어야 되는거야."

 

 보쿠토는 작게 등을 토닥이자 아카아시는 품 안에 고개를 묻고 얼굴을 부볐다. 보쿠토는 끊이지 않고 토닥여주며 연신 괜찮아-하고 속삭였다. 이제야 좀 제 나이같네. 보쿠토는 소리 죽여 키득거렸다.

 

 "대신 아카아시, 형이랑 하나만 약속하자. 오늘 일은 둘만의 비밀이야, 알았지?"

 

 아직 눈물을 매단 눈으로 저를 올려다보는 아카아시의 두 눈을 차례로 닦아주며 보쿠토는 씨익 웃어보였다. 약속, 하고 새끼 손가락만을 들어보이자 아카아시는 서툴게 그 손을 따라했다. 귀여워-. 이렇게 걸고 약속하는거야, 응? 아이는 주억였다.

 

 그럼.

 

 보쿠토는 아카아시를 도로 자리에 뉘이고 이불을 목 아래까지 끌어 당겨 덮어주었다. 머리칼을 쓰다듬자 두 눈을 깜빡이며 저를 바라본다. 조금은 웃어주지. 그리 생각하며 보쿠토는 작게 웃어보였다. 갈게-. 살짝 잡아당겨진 셔츠의 귀퉁이에 돌아보자 작은 손으로 잡고 놓아주지 않고 있었다.

 

 "왜 그래?"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형 이름은,"

 

 보쿠토 코타로야. 아이의 이마에 짧게 입 맞추며 귓가에 낮게 속삭였다. 아카아시는 작게 보쿠토, 코타로. 하고 되내였다.

 

 보쿠토는 병원 특유의 넓은 창틀 위에 섰다. 그럼 진짜 갈게-. 손을 흔들어보였다. 아이는 미동도 없이 고개만을 돌려 저를 바라보고 있었다. 희미한 달빛에 비친 청록색 눈이 또렷히 보였다. 아카아시. 네. 스마일-.    

 

Fin.

 

-

 

설정 짰습니다. 힘들어..

테이커-링커. 그거 시리즈로 좀 이을까 고민 중입니다. 으음-.

쿠로오만 나왔어, 미안해 켄마. 주륵.

 

다정한 어른 보쿠토가 제 나이에 맞지 않는 어린 아카아시의 성숙함에 놀라는게 보고 싶었을 뿐입니다. 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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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쿠아카 전력 60분 ; 진도

 

(대학생인 보쿠아카 나옵니다/동거라기보다 기숙사)

 

-

 

 아카아시 케이지란 남자를 말하자면 정사각형이였다. 적어도 보쿠토 코타로에게 있어서는 그렇게 비춰졌다. 학업우수. 외모준수. 바른행실. 곧은성격. 기타 등등.

 어쩌면 그런 의미에서 아카아시는 범접할 수 없는 인물이였다. 이런 사람을 두고 팔방미인이라고 하려나. 보쿠토는 곧잘 그리 떠올리곤 했다. 물론 두어 해를 같이 같은 학교 선후배로, 배구부 팀메이트로 지내며 인간미 있다는 것을 느꼈다. 결국 인간미까지 갖춘 완전체에 가깝다고 멋대로 정정해버렸지만 말이다. 

 그래서 인지 보쿠토는 아카아시에게 장난스레 '아카-아시. 사귈래? 진짜 잘해줄게.' 같은 터무니없는 농담을 내뱉었고 코노하들에게 야유를 받곤했다. 물론 돌아오는 대답은 한결 같았다. 싫습니다. 그 말을 뱉는 목소리조차 단아하다고 생각하며 질리지도 않고 또 덤벼들고 하는게 보쿠토의 후쿠로다니 시절 기억이였다.

 

 보쿠토 코타로란 남자를 말하자면 선이였다. 아카아시 케이지는 그렇게 단언했다. 종 잡을 수 없는 행적을 이루어 말해보면 간단히 도형따위로 비할 수 없는 사람이였다.  굳이 고르라 하여도 어떠한 도형이 될 수 있는 선을 고집했다.

 난조 페이스를 비롯해 하루는 다섯살 배기 어린 아이마냥 굴다가도 저도 모르게 살기를 풍길 때도 있으니 결국 그 장단에 맞춰주는게 아카아시의 일이였다.

 그 난잡한 페이스에 휘말릴 것만 같다가도 말 한 마디에 도로 현실을 직시하게 되는 것이 일상이였고 숨 막힐 것만 같은 금빛 테의 눈동자에 다시 빠져들곤 했다. 그저 그 뿐이라고 말하지만 속으로 보다 아름답다고 자신에게 되내이곤 하는게 아카아시의 후쿠로다니 시절 기억이였다.

 

 

 "단순하네요."

 "응, 뭐가?"

 

 아카아시를 고개를 좌우로 가로저으며 아무것도 아니에요. 라고 중얼거렸다. 재차 떠올려보아도 보쿠토는 참으로 단순무식하기 그지 없었다. 어쩌면 그래서 좋다고 생각이 꼬리를 물었지만 딱히 상관없다고 되내이며 손바닥과 손가락 사이에 자리한 반지를 만지작 거렸다. 보쿠토는 결코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눈 앞의 하나가 중요하다. 배구부 시절부터 가지고 있던 모토 즈음이라도 되려니 싶었다. 아카아시는 제 머리를 헤집으며 제 앞에 서 저를 내려다보는 보쿠토와 눈을 마주했다. 탐탁치않았다.

 

 "보쿠토 선배."

 "응."

 "저희 남자거든요."

 "알아."

 

 뭘 알고 있다는 걸까. 미간을 구기며 그의 뒤로 내비치는 후광에 그림자져 보이지 않는 보쿠토의 표정을 머릿 속으로 그렸다. 어떻긴 어때, 아무렇지도 않다는 얼굴이겠지. 보쿠토에 관해서는 길게 생각할 필요없었다. 아카아시는 그와 3년이라는 고교 시절을 온전히 보내고도 그로 모자라 대학 2년 마저 함께 보내고 처지였다. 모를리가 없었다. 전공법 밖에 모르는 건가, 이 사람.

 

 "반지, 물론 감사합니다. 하지만,"

 "하지만?"

 "티내고 싶진 않습니다."

 "어째서? 싫은거야? 역시 그런거지?"

 

 아니요, 아니요. 아카아시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동시에 손까지 저어보였다. 싫을리가 없지 않은가. 아카아시라고 독점욕이 없을리가. 아니, 생각보다 자신의 독점욕에 놀라는 턱에 온전히 가지고 싶다고, 내 소유였으면 좋겠다고 그리 떠올리는게 허다 했지, 그게 보쿠토에 비해 밖으로 표출되지 않을 뿐이였다. 오히려 기뻤다. 생각치도 못한 곳에서 이렇게 정직하게 한 대 얻어 맞을 줄이야. 아카아시 실버계열이 더 좋다고 했잖아? 그래서 이걸로 했는데 맘에 안들어? 그게 아니라니까요. 

 확실히, 깔끔한게 제 타입이긴 했다. 큐빅 없는 말끔한 실버계열의 링. 안 쪽에 조금스레 새겨진 이름은 코타로, 였다. 화려한 걸 선호하는 보쿠토의 입장에선 한 발 물러서 준 것일지도 모르는 일이였다. 아카아시는 한숨을 폭 내쉬더니 다시 보쿠토를 올려다 보았다. 어느새 제 체온을 옮겨받은 반지를 만지작 거리며 입을 열었다.

 

 "감사합니다. 학교에서는 빼도 괜찮겠습니까?"

 " 오우- 당연하지!"

 

 곤란해할걸 배려해준 걸까. 의외로 간단히도 승락해버리는 보쿠토의 탓에 아카아시는 허탈하기 그지 없었다. 이럴거면 이제까지의 대화는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그런 속과 달리 겉으로 야금야금 새어나오는 웃음이란건 참기 꽤 힘든 것이였다. 아카아시. 예. 좋아해. 그런가요. 뭐야, 제대로 답해줘. 싫습니다. 뭐야-그거 오랜만에 듣잖아. 아니아니, 그래서 답은?!

 

-

 

 아카아시가 보쿠토와 연인이 된지는 2년 째에 접어들었다. 저와 같은 대학에 오라며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전부터 그리 노래를 부르더니 수험 일주일 전에 불쑥 찾아와 빨리 대학에 오라는 터무니 없는 말을 했다. 물론 지금 준비하는거 망쳐서 다른 학교가 가도 좋다면 얼마든지 옆에 있으라는 아카아시의 선전포고에 꽤 조용히 돌아가긴 했지만 말이다. 약속 아닌 약속의 덕택인지 아무 메세지도 전화도 답 없던 아카아시는 대학 배구부 신입생 환영회 때 모습을 드러냈다. 후쿠로다니 출신은 보쿠토 혼자 였기에 그 아무도 상황을 몰랐지만 정말로 문자그대로 보쿠토는 아카아시를 끌어안고 훌쩍였다. 안오는줄 알았다나 뭐래나.

 그 후로 고교 시절과 오버랩 될 정도로 자율 연습을 했고 달라진게 있다면 기숙사 였기에 통금 시간을 맞춰야 할 따름이였다. 무리해서 방을 바꿔 같은 방을 쓰게 된 덕분에 아카아시만 죽어나는 꼴이였다. 물론 과는 달랐으므로 훈련 정도였지만 그것 만으로 직사광선을 온전히 받아내는 것이였고 대단한 것이였지만 말이다.

 

 고백은 타이밍 이라고 누가 그랬던가.

 보쿠토는 아카아시의 입학 후 일주일 채 되지 않았을 무렵 자율 연습 도중 아카아시의 토스를 크로스 스파이크를 내리꽂으며 말했다.

 

 '역시 아카아시 토스는 좋아.'

 '몸에 익으셨으면 편한거겠죠.'

 '그리고 역시, 나 아카아시가 좋아.'

 '단어, 빼먹으셨습니다.'

 '나 아카아시가 좋아. 아카아시 케이지가 좋아.'

 

 이미 짝사랑의 형태로 애정을 이어오던 아카아시에게 있어 이 보다 달콤한 것도 없었겠지만 아카아시 케이지다. 한 발 뒤로 물러섰다. 그럴리가 없다면서. 물론 그 직사광선을 무슨 수로 피하리. 무작위로 그저 좋다며 답을 기다리는 보쿠토의 표정이란 아카아시에게 있어 꽤 심장 떨리는 것이였다. 

 나, 아카아시가 다른 사람이랑 얘기하는 것도 싫고 말이야. 다른 사람 보는 것도 싫어. 다른 사람하고 즐겁다는 듯이 웃고 있는거 보면 열 올라. 나 멍청한거 알아. 하지만 이건 장난도 아니고 단순히 널 아끼는 감정에서 나온 것도 아니야. 좋아해.

 

 아카아시는 들고 있던 수건을 다가오던 보쿠토에게 내던졌다.

 

 '에에-! 아카아시 뭐하는 짓..!'

 

 곧 울거같은 얼굴을 하곤 붉게 달아오른 두 뺨에 시선을 피하는 아카아시의 얼굴은 실로 희귀한 것이였고 보쿠토에겐 있어서 자극제 즈음 되려나.

 

 결국 아카아시는 보쿠토의 품에 안겨 작게 중얼거렸다. 저 역시 좋아합니다, 당신을.

 

-

 

 보쿠토는 초조하게 이미 새벽 2시를 훌쩍 넘어가는 시계를 바라보았다. 늦어, 늦어. 

몇 일 전부터 저를 눈에 띄게 피하는 듯 해 둘 만 얘기해보려 해도 아카아시는 좀 처럼 시간을 내주지 않았다. 아아- 어째서. 제가 무언갈 잘못이라도 한 걸까. 역시 그런가. 

 동기들과 술 자리가 있다는 문자 하나 이외에는 그 어떠한 것도 답해주지 않는 아카아시의 탓에 보쿠토는 불안하기만 했다. 늦게 올거라며 먼저 자라는 친절한 문자가 뒤를 따르긴 했지만 침대에 누워도 눈이 감기지 않았다. 억지로 눈을 감아보아도 자꾸만 어른거리는 얼굴에 뒤척이기를 수 십번. 결국 헤드에 기대 앉아 벽에 걸린 시계만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삑. 삑. 삑. 삑.

 

도어록이 해제되는 소리와 함께 보쿠토는 시선을 방 문 너머로 옮겼다. 멀쩡히도 걸어들어오는 모습에 안심되어 한숨을 놓는 보쿠토였다. 역시. 동기들 돌려보내주고 온걸테지. 다행이다.

 

 "아카아시. 늦었잖아."

 "...뭐야, 안 잤어?"

 "으응..? 아- 어. 늦길래.."

 

 목소리는 그다지 풀린 감각이 없었다. 반말이라니. 평소라면 두근거리라도 했겠지만 지금 상황에서라면 어쩐지 다른 의미로 두근거렸다. 내뱉는 투도 거칠기만 했다. 뭐야.

 

 "아카아시, 취했어?"

 "아니."

 "우선은 눕자, 응?"

 "야. 너."

 

 아카아시는 반쯤 치켜든 눈으로 보쿠토를 바라보았다. 취기에 옅게 달아오른 뺨이 였다. 외투를 벗어 바닥에 내던졌다. 보쿠토가 앉아 있는 침대 위로 풀쩍 올라와 네 발로 기 듯 다가가 보쿠토의 어깨를 쥐었다.

 

 "아,카아시?"

 "코타로."

 

 취했다, 취했어. 확실해. 풀린 눈이였다. 축축 늘어지기 마련인 몸일텐데도 불과하고 보쿠토의 어깨 위를 강하게 짓눌렀다. 힘 없이 아래로 주르륵 미끄러진 보쿠토는 제가 모르는 아카아시의 모습에 당황스러울 뿐이였다. 코타로, 라니. 그렇게 애원해도 불러주지도 않던 이름인데 이럴 때 부르는건가.

 

 "아카,아시. 늦었고하니 자자. 응?"

 

 아이 달래는 말투로 천천히 아카아시의 뺨을 쓰다듬어주며 어색하게 웃었다. 그런 보쿠토를 아카아시는 평소의 무감각한 얼굴로 내려다보더니 오른쪽으로 조금 고개를 비틀어 입을 맞췄다.

 어리광인가 싶은 마음에 보쿠토는 아카아시의 허리에 팔을 두르고 석연찮은 기분은 뒤로 제쳐 두고 혀를 섞었다. 기세 좋게 달려든 것 치고는 얌전한 아카아시가 한 편으로는 귀여워 작게 웃었다. 잠시 후 아카아시가 먼저 떨어졌다. 옅은 숨을 내쉬며.

 

 "코타로, 코타로."

 "응, 나 여기 있어."

 "코타로는, 나 싫은거야?"

 "엑- 무슨 소리야, 그거."

 "그치만- 코타로는,"

 

 다시 짧게 키스했다.

 

 "나랑 자지도 않는걸."

 

 툭 하고 무언가 끊기는 기분이였다. 보쿠토는 어버버 거리며 다음 말을 생각했지만 아무 것도 떠오를 턱이 없었다. 

 

 "나 자고 있을 때 혼자 처리하곤 말이야."

 "어,어째서 아는거.. 윽..!"

 "괘씸해. 코타로."

 

 아카아시는 비웃음에 가깝게 웃어보이며 보쿠토의 하체에 손을 대었다. 검지로 위아래를 찬찬히 훑더니 이내 손에 쥐었다. 세게. 아아- 잠시만, 아,아카아시..!

 

 "뭐, 난 그럴 가치 없는 건가."

 "아,아니,아니. 아카아시-. 그런게 아니..라"

 "이것 봐. 그런데도 이렇게 만져주는 것만으로도, 응?"

 

 아카아시는 소리내어 작게 웃더니 얼굴을 가까이 했다. 필사적으로 참고 있는 보쿠토를 비웃기라도 하는 모양새로 입술에 제 입술을 마주했다.

 

 "아,카..아시는..! 이게 불만, 이 였던거야..?"

 

 아카아시의 키득거림이 멈추었다. 당연하잖아.

 

 "명색이 연인이라는데 말이지, 눈치도 없고. 코타로 말이야. 아- 혹시 잘 상대는 아니였구나, 나. 그냥 플라토닉? 즐기는건가. 그런건가."

 

 보쿠토는 손에 쥐고 있던 시트를 놓고 아카아시의 허리와 어깨에 팔을 둘러 뉘인 뒤 아카아시 위에 올라탔다. 순식간의 일이였다. 당황할 법도 했다. 취해도 아카아시는 아카아신가. 보쿠토는 그리 생각했다. 풀린 눈으로 올려다보더니 이내 검지로 제 턱선을 주욱- 그어보였다.

 

 "뭐야. 코타로."

 

 여전히 히죽거리고 있었다.

 

 "아카아시, 잘 들어. 난 아카아시 엔조이따위로 만나는 것도 아니고 잘 상대가 아니라고 보는 것도 아니야. 나 진심으로 좋아해. 오랫동안 좋아했다고."

 "으흠-."

 "그러니까 좋아한 만큼 아껴주고 싶은 것 뿐이야. 나라고 싫은 줄 알아. 참는 거지. 아카아시가 나 온전히 받아들여줄 때가 좋은거야. 힘으로 몰아붙이고 싶지도 않고. 그냥, 난 단지 기다리는 것 뿐이라고. 그러니까,"

 

 그런 말 하지마.

 

 보쿠토는 아카아시를 품에 끌어안았다. 지금 제가 안고있는 아이가 제게 너무 벅차서. 주고 또 주고 줘도 모자라서. 심장이라도 튀어나갈 것만 같아서.

 

 "코타로."

 "응."

 "좋아해. 많이."

 "응."

 "그러니까 나 불안하게 하지마."

 "응."

 

 보쿠토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마주한 얼굴은 금방이라도 울 것만 같다고 보쿠토는 생각했다. 아카아시는 제 팔을 보쿠토의 목에 감아 아래로 끌어당겨 입을 맞추었다. 보쿠토는 순종적인 아카아시의 모습에 사랑스런 아이의 머리통을 부여잡고 타액을 섞었다. 뜨거운 숨이 오갔고 감정이 들끓었다.

 

 "눈 앞에 하나가 중요하다, 라고 했지. 코타로가."

 

 보쿠토는 잠시 멍 하니 유혹하듯 예쁘게 웃어보이는 아카아시를 내려다보았다. 

둘은 키득거렸다. 확실히 그렇지.

 

 "급한 불은 꺼야지."

 

 그럼 사양않고.

 

 맹금류를 빼닮은 그 금빛 테가 빛났다. 입맛을 다시며 보쿠토는 길게 웃었다. 아카아시도 다를 바 없었지만.

 

Fin.

 

-

 

처음해보는 전력인데, 에에- 저질러버렸다

다들 금손러시던데, 어떻햌ㅋㅋㅋㅋㅋㅋ 에라 몰라

 

반말하는 아카아시가 보고싶었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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