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쿠아카 전력 60분 ; 잔혹동화

 

(보쿠아카는 성인/사망소재 있습니다/이번엔 조금이나마 주제 맞춘건가)

-

 

 "있잖아- 글은 작가의 욕구 배출구, 아닐까."

 "갑자기 무슨 멀쩡한 소리세요, 코타로 군."

 

 여느 때와 같았다면 이미 어금니에 갈려나갔을 얼음이 여전한 유리 컵을 만지작거리며 보쿠토는 창 밖으로 시선을 던졌다. 저도 모르게 그런 보쿠토의 이마에 손을 얹은 쿠로오는 질색할 뿐이였다. 열은 없는데. 보쿠토는 웃음을 터트리며 가볍게 쿠로오의 손을 쳐내자 쿠로오는 팔짱을 끼고 전혀 모르겠단 얼굴로 보쿠토를 바라보았다.

 

 "보쿠토, 나라도 이건 좀 무서운데 말이지."

 "그냥- 그럴수도 있겠구나, 하고 최근 생각하고 있어서."

 

 여전히 쿠로오와 시선을 마주하지 않은 채 뒷목을 쓰는 보쿠토의 행동에 쿠로오는 그저 가만히 '관찰' 하였다. 오늘은 크로스냐 스트레이트냐. 좀처럼 보기 드문 보쿠토의 차분함은 언제나 이면에 무언가 숨어 있었다. 혼자서 멋지게 커버리고 말이야. 이 쿠로오 씨 조금 슬픈걸. 고교 시절부터 손에 꼽을 만큼 본 적은 있었다. 분명 연애상담 이였다고 기억한다. 직접 네코마 고교까지 찾아와서 허리를 숙이고 저를 하루만 빌려가도 되겠느냐고 당당히도 외쳤었다. 이 녀석도 막무가내란 말이지.

 익숙해지지 않는 보쿠토의 페이스에 쿠로오는 아랫입술을 짓이겼다. 또 뭐가 튀어나올지는 절대적으로 미지수였다. 이건 리드 블록 따위 할 수 있을리가 만무했다. 불규칙적으로 테이블을 얄팍한 하얀 손톱으로 내리찍던 의미모를 행위를 그만두고 보쿠토는 처음으로 쿠로오와 눈을 마주쳤다.

 

 "아카아시가."

 

 토스가 올랐다. 몸에 밴 습관대로 두 팔을 뻗고 손가락 마디까지 힘을 주고 네트 위로-.

 

 "뭐- 헤어지기라도 하재?"

 "아니. 그건 아니지만."

 

 원 터치. 그의 천성이리 만큼 쿠로오는 조급해하지 않았다. 아니지만-? 참을성 있게 그는 기다렸다. 찬스는 언제라도 오는 법이니까.

 보쿠토는 입을 열었다 잠시 머뭇거렸다. 그리곤 금세 닫아버렸다. 그는 손가락 마디를 하나하나 누르며 갈 곳 잃은 시선으로 방황했다. 마른침을 삼켰다. 눈을 감아버렸다. 그리고. 천천히. 뜬다.

 

 "아카아시, 다시는 눈 못 뜰 수도 있대."

 

 원터치가 아니라 블로킹 아웃. 쿠로오의 시선에는 작게 웃고 있는 보쿠토가 보였다.

그렇게도 당당해보이던 그가 너무나도 작아만 보였다.

 

-

 

 보쿠토와 아카아시, 그 둘의 관계는 저울이였다. 보쿠토가 한 발 다가가면 아카아시는 한 발 물러났다. 그렇게 미묘한 수평을 이뤄냈다. 그럼에도 보쿠토는 끊임없이 다가섰고 아카아시는 그런 그를 밀어냈다. 그렇게 질릴 법도 한데 보쿠토는 지친 기색도 없이 한 발을 더 다가섰다. 깨달았을 땐 늦었고 등 뒤엔 벽이 가로막고 있었다. 다만 보쿠토는 아카아시를 기다려주었다. 아카아시가 저를 밀어낸 것에는 이유가 있다는 것 쯤은 잘 알고 있었기에 마지막 한 뼘의 거리를 남겼다.

 

 '아카아시. 좋아해.'

 

 당신은 정말-. 쓰러지듯 아카아시는 보쿠토의 품에 안겨왔다. 그 한 뼘의 거리가 뭐라고 이제껏 좁히지 않았던 걸까. 그 오랜 고백이 무색하리 만큼 아카아시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자신의 에이스의 품에 달려들었다. 좋아합니다, 저도. 당신을.

 벅차오르는 감정에 보쿠토는 단 한 마디만 했다. 기다려줘서 고마워, 라고. 그 보답이라도 되는 양 아카아시가 말했다. 포기하지 않아주셔서 감사합니다.

 

 후쿠로다니 배구부를 비롯한 이들도 당연하다 여길 만큼 보쿠토는 배구를 이어나갔다. 물론 배구 이외의 길이란건 애초부터 없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였다. 대학 졸업 후 그는 당당히 국가 대표에 발탁되었고 완전히 라고 하기엔 불완전했지만 더 이상 저만을 위한 세터가 아니라는 자각때문이였을까. 보쿠토의 감정기복은 상당히 완화되었다. 더 이상 어리광부릴 아카아시가 없다는 것이 아니였다. 그야 당연히 코트 밖에서 볼텐데 꼴 사나운 모습 보일 순 없잖아. 끝을 모르는 그는 다시 한번 벽을 깨고 도약했다. 위력만은 우시와카 다음을 이을만큼 그는 자라있었다. 

 반대로 아카아시의 경우는 조금 달랐다. 특별히 선수 생활을 지속할 계획이 아니였기에 대학 배구부에 들어 제 에이스에게 공을 올려주는 것으로 그의 배구는 끝이 났다. 아카아시도 나랑 같이 배구 계속하면 좋을텐데, 라는 제 연인의 투정아닌 투정에 그는 보쿠토네 팀의 오이카와 토오루를 언급하며 절대 무리라 쐐기를 박아버렸다. 물론 여전히 떼 쓰는 보쿠토의 덕분에 가끔 주말이면 생활 체육관에서 여전히 토스를 올려주긴 했지만 말이다. 국가 대표급에 비해 질 떨어질 제 토스를 기분 좋게 내리치며 제 오른손을 쥐고 이거야-라며 이게 치고 싶었어 하고 씨익 웃어오는 보쿠토는 아카아시에게 있어 쉽사리 거절할 수 없는 것이였으니 말이다.

 

 여전히 서로를 자신의 세터, 자신의 스파이커로 칭하며 할가 멀다 하고 애정을 주는 탓에 오히려 진 빠지는 쪽은 보쿠토 네 팀이였다. 그렇게 대단하면 데리고 왔으면 좋았잖아- 라며 칭얼거리는 오이카와에 보쿠토는 무슨 정신인지 다음 연습날 정말로 아카아시를 데리고 나타났고 이는 의도치 않게 연습경기로 이어졌다. 믿기지 않았지만 이겨버렸으니 문제였다. 국가 대표라고. 연습 후 드링크를 가져다 주겠다며 보쿠토가 자리를 비운 사이 오이카와가 아카아시에게 다가왔다. 야호-. 오이카와 상. 코타로 군은 말이야 평소에도 흐름 타면 굉장하긴했지만 오늘 처럼 그렇게 기분 좋게 치는 건 또 처음 봐. 그렇습니까. 세터로써 본받아야지, 나도. 이미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만. 흐음- 케이지군은 코타로랑 처음 경기 해봤을 적 기억해? 글쎄요. 벌써 몇 해전의 일이니까요. 아마 굉장히 힘들었겠지. 그런 타입이니까. 뭐- 그거야. 코타로 군 여기까지 끌어올려줘서 고마워, 케이지 군. 전 한게 없습니다. 무슨 소리, 세터야 말로 아군의 전력을 이끌어내는..! 보쿠토 상은, 보쿠토 상 자신이 완성시켰습니다. 전 옆에서 갈 길을 보여드렸을 뿐입니다. 선택은 보쿠토 상 몫이였고요. 그리고 그 이후로 어쩌다보니 종종 연습시합에 불려오게도 되어버리고 말았다.

 

 보쿠토에게는 외길이였고 아카아시에게는 지나가는 길의 핀 들꽃같이 존재에 가까웠을지도 모른다. 결과는 그렇게 되었지만.

 아카아시는 전공과는 전혀 관련없는 글 쓰는 직업을 가지게 되었다. 어쩌다 우연찮게 시작하게 된 것였지만 깨닫고 보니 흠뻑 빠진 뒤였다. 그 특유의 시니컬하지만 섬세한 문체가 돋보였고 그 바닥에서 인지도를 서서히 쌓아나갔다. 어째서 인지 몰랐지만 항상 어둡게 끝나고마는 그의 글은 몇 해간의 시간 후에 공식처럼 자리잡았고 아카아시 케이지 라는 작가만의 독특한 방식이 되었다.

 조금은 신선하게 헤피엔드 라던가는 어때, 라는 보쿠토의 말에 아카아시는 갸웃 거리며 저도 잘 모르겠다는 답을 했다. 작가가 제 작품을 마음대로 못하는게 어딨어. 하지만 왠지 마음놓을 정도로 편하게 끝나는건 손에 잡히지가 않는걸요.. 뭐- 난 아카아시라면 뭐든 좋지만 말이야! 결론은 팔분출에 불과했다.

 

-

 

 글은 작가의 욕구 배출구. 언젠가 아카아시가 저에게 해 준 말이다. 소설이란게 그렇지 않습니까. 허구에 불과하다고요. 현실같은 허구. 진짜같은 가짜. 그러니 작가의 일생이 들어가 있다 해도 이상하지 않은게 소설이라며.

 

 "그럼 아카아시는 뭘 바란거야. 응?"

 

 보쿠토는 물었다. 답은 없었다. 도로 물었지만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젠장. 보쿠토는 욕지거리를 읊조리며 의자를 끌어다 아카아시의 옆에 자리를 잡았다. 링겔 액이 투여되고 있을 호스도 겨우 저런 것에 의지해 숨을 내맽고 있을 호흡기도 죄다 떼어버리고만 싶은 심정이였다. 케이지 얼굴 안보인단 말이야. 힘 없는 손을 잡아다 가볍게 뺨에 부볐다. 차가워. 여전히 차가운 손이였다. 보쿠토는 아카아시의 손가락을 하나하나 쓸어내리더니 작게 웃었다.

 

 "이젠 반지 헐렁하겠다."

 

 웃었다. 웃었다. 웃었다. 툭. 눈물이 웃음을 비집고 나왔다. 어째서. 난 웃어야 하는걸. 케이지는 나 우는거 싫어하잖아. 울컥 하고 쏟아져나왔다. 기별없는 이별에 지쳐있었다. 알고 있다. 나 케이지 아니면 안되는거 알잖아. 이번에 나- 서브도 확실히 성공했어. 마지막 세트까지 코트에 서 있었어. 스트레이트 뚫리지 않고 막았어. 응?

 

 "잔인하다, 케이지는."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거야? 난 어디서부터 놀아난거야? 화 안낼테니까 대답해줘. 쓰러지기전 온전히 B와 A라는 이름으로 완성시킨 소설 한 권을 건냈었다. 나중에 읽어주세요. 언제? 때가 되면. 그 때가 언젠데. 알거에요.

 A는 시한부 판정을 받았다. B는 그 사실을 몰랐다. A는 B를 짝사랑했다. 얼마가지 않아 B가 A에게 고백했다. 받지 않았다. 하지만 결국 받았다. 욕심이였다. 이게 니 이야기야? 나는? 난 어떻하고? 후두둑- 시트 위로 굵은 눈물 방울이 떨어졌다. 케이지, 케이지, 케이지, 케이지, 케이지. 의자가 소음을 내며 쓰러졌다. 그 아래 보쿠토는 무릎을 꿇었다. 허탈했다. 난-.

 

 눈에 뻔히 보이는 변명이라도 좋아. 이건 아니잖아. 이건 너무 잔인하잖아, 케이지.

 

-

 

아- 날렸어요. 네- 빰! 하고 쫙!하니 차잔!! 하고 사라졌더라고요..쿨쩍))

 

이번 주제 엄청 소재 고민 많이 했는데 보쿠토 얀데레로 간다!! 했다가 요즘들어 아카아시를 심적으로 너무 많이 괴롭혀서 괜시리 죄책감에..미안해 이것도 다를 것 없지만 육체적으로 고통 받..은건가...아 잠시만-

 

어른 스런 보쿠토가 우는 거 보고싶었습니다, 라고 주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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