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바뀌셔서 뭘 써야할지 모르겠습니다만) 고등어 님 응원글

 

키워드 ; 부정하고 싶었다/눈물조차 나오지 않았다/예쁜 꿈을 꾸렴

(https://kr.shindanmaker.com/484366//진단메이커로 우시오이를 돌렸습니다)



(어쩌다보니 약 마츠하나 요소가 포함되어버렸습니다/나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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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이카와 토오루 라고 불리는 작자를 떠올리자면 벼랑 끝 자락에서 피어나는 수선화이다. 덧붙여보자면 동양적 뉘앙스보단 '나르시스' 따위의 우아한 어감이나 어울릴 법한 그런 사네이다. 동시에 제 오랜 연을 맺은 이와이즈미의 말을 빌리자면 빌어먹을 만큼 잘난 자식, 이기도 하다. 꽤나 안타까운 얘기지만 그가 '벼랑 끝' 에 비유되는 것에는 다 이유가 있다. 출신이다. 이 바닥에서 정상에 오른 사네에게 이제 와 배경을 가지고 시비를 걸 문제는 전혀 아니였음에도 어렴풋이 마음에 담아둘 수 밖에 없는건 오이카와, 자신이였다.  

 

 따지고보면 이 바닥에선 슬럼가 출신이 많았다. 곱게곱게 자라온 온실 안 탐스런 꽃송이보다 산전산수를 다 겪은 야생화가 혹독한 현실에 강하다는 것은 사실이다. 다시 말하자면, 곱게 주위의 보호와 살핌을 받으며 자란 이들보단 밑바닥부터 이 악물고 올라온 이들이 한 수 위라는 얘기이다. 

 후자에 속하는 그에게 있어서는 꽤나 기쁜 이야깃 거리일지도 모른다. 끝을 모르고 덤벼드는 것들만 제외했다면 말이다. 골칫거리라고 해도 순위가 있기 마련이고 손가락을 하나 씩 접어가며 세어보건데 단연 최고봉이라 한다면 '왕좌' 이다. 온실 안에서 자랐다면 얌전히 쳐박혀 있기라도 했다면 좋았을 터였으나 좀처럼 빈틈을 보이는 법이 없었다. 썩어버리면 좋을텐데. 그는 가끔 그리 중얼거리곤 하였다. 물론 이걸 증명해 줄 사람은 오직 그의 오랜 친우인 이와이즈미 뿐이였지만 말이다.

 

 오이카와의 천성이 그러하다. 웃는 얼굴로 속 뒤집어 놓는 것이 능숙한 작자이다. 빌어먹게 억울한 점은 범인(凡人)의 선을 넘었다는 것이다. 이 바닥은 이미 그의 놀이터와도 같았다. 사실 그가 몸 담고 있는 조직인 '아오바죠사이' 는 '아오바' 와 '죠사이'가 합병된 조직이다. 밑바닥에서 부터 안면이 튼 사이인 만큼 어느 정도 세력을 키우고 돌아갈 만큼 굴려놓고는 흔쾌히 오이카와에게 조직 전체를 내어주었다. 마츠카와가 말했다. 지쳤어, 그 뿐이야. 제 온전히 평생을 바라본 그 얼굴에 안도가 피어올랐다. 그는 입을 열려다 닫았다. 아아- 그럼. 덕분에 제 잡다한 일거리가 늘어났다는 점은 분명 부인할 수 없지만 한가로이 제 연인과 노닥거리게 된 마츠카와에게는 심심찮은 감사를 가지고 있다. 그에게 있어 마츠카와 잇세이는 이와이즈미 못지 않게 오랜 시간을 함께 했기에 도저히 세력끼리 맞붙기라도 하면 저는 어쩔 도리도 없을 터였다. 이미 더러워진 손이라 해도 결코 이 따위로 썩어나기를 바라진 않았다. 다만 그 전에 마츠카와가 자리를 내어준 것이였다. 그리 된 지도 몇 해가 지난 얘기일 뿐이다. 


 사실 그는 제 자신의 존재를 부정해곤 했다. 자신을 인정해버리면 꼬리마냥 이어지는 것들까지 이내 고개를 끄덕여버리고 말아야했기 때문였다. 


 썩어버리면 좋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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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낯짝 한 번 참 두텁다고 생각했다. '그' 의 말을 빌리자면 오이카와의, '가출' -물론 본인은 전면 부정해댈테지만- 이후 징글맞을 만큼 그는 칠석으로 부터 보름에 하루를 더한 날 항상 무언갈 보내왔다. 간단히 말하자면 생일이다. 얇고 검은 가죽에 오컬트스러운 초커일 적도 있었고 빈티지 느낌의 낡은 듯한 커다란 새 장일 적도 있었으며 의미 모를 파스텔 톤의 수트 일 적도 있었다. 세간에서 숨어지내는 것이 아니였기에 그를 찾아내는 것은 그리 칭하기 황송하리만큼 쉬운 일이였다. 어디 까지나 표면 상 오이카와 토오루는 건물 하나 씩이나 되는 바의 오너 되시는 분이다. 그 특출난 외모 덕에 의도찮게 잘잘 굴러가는 비지니스이자 취미생활에 본인도 꽤나 만족하는 듯 하였다. 

 그 뒷수습하느라-손님 상대랄까- 죽어나는 하나마키와 마츠카와에겐 두둑한 매출이 그리 달갑지만은 않았다. 다만 마츠카와라면 총질에 소질없는 제 연인이 커피 메이커나 돌리고 있는 걸로 위안을 삼을 수 있었다. 애초에 이 쪽에 물든 적 없이 자랐으니 말이다. 게다가 하나마키로 말할 것 같으면 손주를 끔찍히 아끼던 그의 할아버님 덕분에 세상물정 모르고 자란 도련님 되시겠다. 그런 하나마키가 뒷세계 까지 오게 된 사연은 길고 거기 다 마츠카와의 연인이 되기 까지의 험난한 길을 이어 붙이자니 이루 말로 할 수 없다는 정도만 일러두겠다. 짧게 한다면 그의 할아버님이 어떤 조직에 의해 살해당하고 그 틈에 그 조직을 소탕한 조직이 '죠사이' 였을 뿐이다. 딱 그 정도. 


 이래나 저래나 매년 짙은 보라색 정육면체에 무식하게 하얀 리본을 두른 '것' 이 가게로 배달되었다. 출처는 뻔했으나 배달해주시는 감사한 분들의 멱살이라도 틀어쥐건데 공통점이라면 모두 사람인 것 정도려나. 단언컨데 적어도 '왕좌' 를 섬기는 이들은 아니였다. 그런 소름 끼치게 섬세한 배려가 오이카와의 열을 돋우고 있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이 쯤되면 지쳤을 법도 하건만 지칠 줄을 모르는 윗대가리 되시는 오이카와에 물론 죽어나는 건 아래 였다. 그만 두라 하면 어떻게 제 맘도 몰라주냐며 토라질 것이 분명 했기에 이와이즈미로써도 달가운 리액션가 아닐 수 밖에. 정 그렇다면 역추적이라도 하면 되지 않냐며 영문을 모르겠다는 하나마키에 마츠카와는 그저 몰라도 괜찮다며 히로는 나만 봐 따위의 로맨스 씬을 연출해내면서 무산되고 말았다.

 따지고보면 하나마키의 말이 옳다. 오이카와 토오루 란 작자를 다시 떠올려보자. 원하는 것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족속이건데 그러지 않는다는 것은 사실 그가 '그것' 에 극도로 날카로워져 있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제 안중에는 없다는 뜻이다. 그저 유별 떠는 것에 지나지 않으며 잘도 제 방이든 창고든 가게든 어딘가에 보관 중이니 말 다 한 것이다. 결국의 결국엔 그 휘황찬란한 청색과 진홍색의 적절한 조화가 한 눈에 띄는 파스텔 톤 수트까지 입고 바로 출근한 오이카와는 갓 정신병원에서 탈출한 환자보듯 바라보는 제 '직원' 들의 눈초리에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어보이며 두 팔을 벌렸다. 


 설마 이 오이카와 씨가 부끄러운거야?  


 부끄러운게 당연하잖아, 멍청아! 다행히 오픈 전이였고 자리를 지키던 이와이즈미의 손에 단번에 해결되었다. 그냥 괴상망측한 취미를 가진 또라이일 뿐이라며 고개를 내젓는 이와이즈미는 찬사를 받았다. 이후 그 수트는 옷장에 봉인당했다나 뭐래나. 


 이 에피소드 만으로 오이카와가 '선물' 을 얼마나 아끼는지 혹은 얼마나 호기심을 가지는 지는 모두에게 입증되었다. 더불어 의도찮았지만 공식적인 정신 이상자로 낙인 찍히게 되기도 하였다. 썩어버리면 좋을텐데. 뭐, 이 젠장카와가 어디다 대고 욕질이야? 이와쨩이 아니라..! 문답무용!

 

 언제나의 해프닝이다.

 

-

 

 "어이, 오이카와."

 "응?"

 "너 슬슬 생일 다 되가지 않냐."

 

 그는 지휘하는 양 검지를 치켜세운 채 허공을 휘저었다.

 

 "아아- 그러네."

 "그러네-가 아니잖아, 젠장카와."      

 

 오이카와는 바의 구석에 덩그러니 놓여진 흔들의자 위로 몸을 내던지며 가만히 눈을 감았다. 아아- 어쩔까나.

 

 "우선은, 에어컨 키자. 더워."

 

-

 

 서프라이즈 라는 것은 흔히들 말 그대로 뜻 밖의 일, 놀라움 등을 의미한다. 그것이 좋은 일이던 나쁜 일이던.

 

 "안-녕, 오랜만이야!"

 

 그런 의미에서 저 붉은 머리의 등장은 실로 서프라이즈 스러울 수 밖에 없다.

 

 "아직 오픈 전인데.."

 "하나마키, 타카히로 맞지?"

 "예..?"

 

 별 꺼리낌없이 바 안으로 발을 내딛는 남자는 기분 나쁜 웃음으로 화답했고 그의 뒤에는 또 다른 남자가 묵묵히 열중 쉬어 자세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집안에 외손주. 그래서 그 영감이 그렇게 감싸돌았던 건가! 그런가! 그런가봐 카와니시!"

 "네." 

 

 하나마키가 제2의 오이카와와 이와이즈미를 보고 있다 떠올릴 즈음 마츠카와가 하나마키를 제 뒤로 물러서게 했다.

 

 "이 까지 산보라고 둘러대실건 아니라 믿겠습니다. 텐도 씨."

 "오랜만에 봤더니 애가 까칠해졌어. 반항긴가, 카와니시 저거 반항기야?"

 "모릅니다."

 

 카와니시는 눈길조차 주지 않고는 손목의 시계를 한 번 훑고 돌아섰다. 먼저 가 있겠습니다. 적당히 하고 오십시오. 매정해-.

 

 "마츠카와 군, 내가 정-말 위스키라도 한 잔하면서 옛 얘기 하고싶지만 이러다간 우리 세미 수재 쿠키도 놓칠거 같고 슬슬 카와니시도 열 오르는거 같으니까 간단히 할게."

 "뭡니까."

 "오이카와 어딨어."

 

 마츠카와는 하나마키의 손목을 움켜쥐었다. 세게 쥐었다 놓았다. 하나마키는 그런 연인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둘의 암묵적인 사인이였다. 도망가.

 

 "잇세이- 잇세이- 잇-세-이. 정말. 난 협박할 수단도 없고 무장해제 상태랍니다. 뭣 하시면 수색해보시던가. 응? 뭐가 네 뒤의 작은 아이를 겁먹게 한거야? 나?"

 "닥치시죠."

 "저 작은 도련님 말이야. 서툴지? 여기 사람도 아니잖아. 너 때문에 억지로 발 묶인거잖아. 세간에서 이름 날리던 애가 말이야, 갑자기 사라졌어. 그런데 어라라- 여긴 무슨 밤놀이신가?"

 

 아 밤이 아니니까 밤놀이는 아닌가. 텐도는 혼자 중얼거리더니 뭐든 좋아 라며 미묘히 얼굴이 굳었다.

 

 "오이카와 군 어디계시냐고, 너희 보스님. 꽃병풍. 토오루 군. 오이카와 씨 말이야."

 "대답할 의무는 없습니다."

 "그럼 거기 도련님? 대답해줄래?"

 "얘는 끌어들이지 마시죠."

 "그야- 마츠카와 군이 반항기에 접어들면서 나한테 더 이상 대답해주지 않는걸 어떻해. 그럼 오이카와 어디있는지만 말하면 되는걸."

 

 역광을 진 텐도의 모습은 흡사 사신을 닮아있었다. 열 손가락을 맞대고 있는 것은 상대를 끝내기 전 그의 습관이였다. 마츠카와는 어금니를 물었다. 허튼 움직임이라도 보이면 팔 하나 날아갈 것 쯤은 각오해야만 했다. 그를 상대로는 그래야만 했다. 

 

 "바쁘니까 빨리 가자고."

 "어레-?"

 

 오이카와는 언제부터 였는지도 모르게 문가에 기대 휴대전화를 뚫어져라 바라보며 답했다. 특유의 퉁명스런 억양이였다.

 

 "이게 얼마만이야-!! 라고 하고 싶지만 이 쪽도 급하니까 얼른 가자고. 오이카와 군."

 "아아- 물론이지."

 

 그럼 또 봐, 라며 가볍게 손을 흔들고 자리를 뜨는 텐도에 마츠카와는 그제야 몰아넣은 숨을 내뱉었다.

 

 "맛층, 맛키. 늦어서 미안해. 다녀올게."

 "이와이즈미는?"

 "오늘 휴가랍니다-"

 "혼자갈 생각이냐, 너."

 "응, 그런데?"

 

 그 말은 마치 '지금 산책하러 가는 길이야' 따위의 것과 동격이였다.

 

 "..다녀와라."

 "다녀-오겠습니다, 참. 오늘 오픈 하지마."

 

 검은 세단이 매끄럽게 골목을 빠져나갔다. 아직 상황을 모르는 하나마키는 흡사 넋이 나간 사람처럼 서있는 마츠카와의 소매를 아래로 잡아 당겼다. 마츠. 마츠. 아-. 괜찮은거야? 그는 막연히 저를 바라보는 아이를 안았다.

 

 히로. 사격 배우자.

 

 ..그러자. 그렇게 해. 대신 너한테 배울래.

 

-

 

 "있잖아- 오이카와는 영화같은거 스포일러 하는 편, 받는 편?"

 "헤에- 그런건 왜 물으시는걸까나-?"

 "그야 난 전자니까."

 

 오이카와는 미간을 구겼다. 이럴거면 이와이즈미라도 데려왔을텐데. 이제 와 후회해보지만 기세좋게 마츠카와에게도 그렇게 큰 소리 치고 온 이상 어쩔 도리가 없었다. 따지고보면 시라토리자와 역시 그저 귀찮고 거슬리는 존재지 천적은 아니였다. 구역 지키고 오해 살 일 하지말고 서로 일에 관심끄면 되는 것이다. 그 암묵적이지만 기본적인 수칙만 지킨다면 충돌할 일은 없으며 딱 한 가지 가능성이 있다면 그것이 침략이다. 다만 그 수는 이미 배제된지 오래다. 어쩌면 오이카와는 그가 조직을 꾸리기 시작한 시점부터 블랙리스트의 가장 위쪽을 차지하지만 동시에 영 번에 올렸을지 모른다. 가장 거슬리지만 걸치적거리진 않는다.

 

 "꼬맹이 일 땐 나랑 영화관도 같이 갔으면서 섭하구만, 참. 그렇지, 카와니시?"

 "덕분에 요즘은 가지도 못하고 있네요, 댁덕에."

 "그 어릴 때 장난 친거 가지고 삐지기는, 카와니시도 그렇게 생각하지?"

 

 창 밖 익숙한 경치에 실로 빌어먹을 감탄을 금치 못하며 오이카와는 감상에 젖었다. 하나도 안 바뀌는 구나. 어째서 제 유년의 기억은 죄다 이 곳에 쳐박혀 있느냐고 물어도 답할 수 없었다.

 

 "카와니시는 말이야, 너무 말 수가 적단 말이지."

 "이제 최선이니까요."

 "리액션 안해줘도 되는데."

 "해주길 바라시잖아요."

 

 그렇군! 이라면서 저 혼자 납득할 사이 어느 세 시커멓고 커다란 고딕 풍 건물에 도착해있었다. 썩어버리면 좋을텐데. 오이카와는 혀를 찼다.

 

 "여기서부터는 에스코트 안해드려도 되겠지, 도련님?"

 "소름 돋으니까 그렇게 부르지 말아줄래?"

 "그렇게 말하면 이 삼촌, 슬퍼진단다!"

 "그거 좋은데."

 

 가능한 빨리 텐도와는 멀어지고 싶은게 사람 심정이다. 카와니시 역시 그럴거라 중얼거리며 오이카와는 세단에서 내려 담쟁이로 뒤덮인 정원문을 열고 여전한 분수를 바라보았다. 온통 꽃밭에 풀밭으로 도배된 꼴을 보며 미간을 구겼다. 썩어버리면 좋을텐데. 어울리지도 않았을 뿐더러 역겨웠다. 무엇 때문에 그리 하느냐고.

 

 언제나처럼 이골난 상태로 나무 문 앞에 서 작은 벨을 울리면 문이 열렸다. 도련님 어서오세요. 골 때리는 멘트라며 시대가 시댄데 무슨 대사냐며 생색내도 상부 명령이라며 시종일관 도련님- 하고 부르는게 싫었다.

 넌 자유다. 라면서 무엇이든 우선 옭아매고 보는 것도 싫었다. 보호니 뭐니 그런 허울 좋은 변명이나 갔다 붙이며 아무래도 좋으니 가만히 있어라 따위의 명령에 불과했다. 이중적이잖아. 어린아이의 시선이 비친 영화 속 경찰과 같은 것이였다. 움직이지 말라며 손을 들라니. 어처구니 없지만 따지고보면 틀린 말이 아닌 것 처럼. 어딜 가도 좋지만 저긴 안돼 라니. 이제 와 구역의 경계에 예민해지는 것은 이해한다만 어릴 것에게 설명없이 막연히 선을 그어버리는 것은 꽤나 난폭한 행위였다.

 

 계단을 오르며 습관마냥 난간을 손가락으로 쓸었다. 아니, 습관이다. 당장이라도 잘라내지 않고서야 잊지못할 몸이 기억하는 습관. 먼지. 집관리 또 안되고 있구나. 비웃음이 찬 억양을 뱉고는 제법 신나게 발을 옮겼다.

 

 "도련님, 오랜만."

 "아- 그러네."

 "완전 다 컸네, 다 컸어."

 

 제 유모 격이던 세미는 여전한 얼굴로 그를 반겼다. 분명 적대시 하는 조직의 우두머리를 앞에 두고 있음에도 그는 함박웃음이였다. 모성애에 가까운 것일지도 모른다. 세미는 그의 '가출' 전이나 후까지도 상징적 엄마인 존재였으니 말이다. 제법 의연한 모습으로 주머니에 손을 꽂아넣으며 발걸음을 내딛었다.

 

 "와카토시 한테 가는거지?"

 "뭐."

 "사무실말고 침실로 가. 거기 있으니까."

 "침실?"

 

 응, 침실. 얼른 가봐. 기다린다. 누가봐도 엄마나 할 법한 잔소리를 늘어놓기 시작한 세미에 오이카와는 빠른 걸음으로 사무실을 지나쳐 침실로 향했다. 분명 그대로 두면 몇 시간이고 지난 일까지 들춰 설교할게 뻔했다.

 

 여전히 음산한 그의 침실 앞에 선 오이카와는 노크하려던 손을 멈추었다. 그다지 예의는 갖추고 싶지 않았다. 오히려 정직하게 말하자면 뒷통수라도 한 대 후려갈기고픈 마음이 컸지만 그랬다가는 오늘의 목숨이 간당간당해질 판국이였으니 그만둔지는 꽤 오래 전의 일이다. 다만 문이라며 노크없이 열고 들어갔다.

 

 '노크를 하지 않았다.'

 '우시와카쨩이 못 들은거야.'

 '그런가.'

 

 아직도 신물나게 눈에 훤히 보이는 저 대화가 성립되지 않았다. 놀랄 노자 였지만 다른 것도 포함하자면 사태는 조금 더 심각했다. 올블랙 수트를 갖춰입고 킹 사이즈 침대 위에 홀로 누워 산소 공급기를 낀 꼴이라건 볼만하지만은 않았다.

 

 "새로운 놀이인거야, 그거?"

 "왔는가."

 "난 시체라도 되는 줄 알고 기뻤는데 기어코 눈을 뜨시네."

 "살았으니 당연한거다."

 

 언제 도착했는지 모를 카와니시는 시라부를 지나쳐 의자를 끌어다 주었다. 제법 익숙한 폼으로 앉아 자리잡자 텐도는 시라부를 데리고 방에서 나갔다. 잘난 쿠키라도 드실 요량인 듯 했다.

 

 "생일 축하한다."

 "설마 그 말하려고 이 난리를 쳐서 내가 이 까지 오게 했다고 말하지 마." 

 "물론 아니다."

 "오늘 들은 말 중에서 가장 믿음이 가는 말이네, 참."  


 오이카와는 익숙하게 밝은 청록색 벨벳으로 쌓인 의자에 앉으며 다리를 꼬았다. 등받이에 기대서 살짝 고개를 올려든 것이 딱 건방지기 그지 없어보였다. 한 조직의 우두머리에 군림하고 있다해도 여전히 앳되게만 보일 뿐이였다. 마냥 아이가 받아쓰기에서 만점이라도 받고 의기양양해 보이듯이. 

 우시지마는 그런 오이카와를 바라보았다. 그의 시선이 달갑지 않은 오이카와는 눈살을 찌푸렸다. 우시지마는 왼손을 들어 카와니시에게 손짓하자 그는 고개를 숙이고 방을 나섰다. 오이카와는 문이 완전히 닫히는 순간까지도 그리로 시선을 내어주었다. 습성에 가까운 것이였다.


 "너무 방심하는거 아니야? 죽어가는 주제 자존심 세우기라도 하는거야?"

 "죽어가는게 아니다."

 "그럼 뭔데."

 "죽음은 당연한거다."

 "어릴 적에 잘도 가르쳤지. 그 말."


 오이카와는 따끔거리는 목을 메만지며 지독했던 유년을 떠올렸다. 지독하다 말하지만 사실 그에게 있어 유년을 만들어 준 것이 우시지마일 따름이였다. 

 사채로 인해 아버지가 조직에 살해 당하고 남겨진 그와 어머니는 터무니없는 빚더미 위로 나앉게 되었다. 조직은 그의 어머니에게 매춘을 강행했고 그는 잡일을 떠맡겨되었다. 심심풀이로 지나가던 조직원들에게 일방적으로 폭행을 당하기 일쑤였다. 어머니는 그런 아들을 끌어안고 소리 죽여 우셨다. 날이 지날수록 많은 상처를 지니고 살아야했고 그런 흉측한 자국들을 가리기 위해 그는 좀처럼 살갗을 내보이지 않았다. 그럴수록 그는 프라이드의 집합체에 가까워졌다. 물론 결말은 꽤나 참혹하였지만 말이다. 어미는 누군지 모르는 아이를 잉태하곤 목을 달아 죽었다. 남겨진 그는 죽은 이의 몫까지 챙겨야 했고 복부를 찔려 강에 버려졌다. 반익사 상태로 오이카와는 건져졌다. 산책 삼아 간만에 휴식을 즐기던 우시지마의 손에. 불행 중 다행이라 한다면 오이카와는 중학생 나이가 채 되지 않은 어린아이였고 우시지마는 전신의 혈흔과 상처에도 제 아지트로 그를 데려왔다. 필시 조직과 연관이 있을 법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어린 나이였던 그는 경계의 대상이 아닌 보호의 대상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덧붙이자면 그냥 애정의 대상으로 어린아이를 좋아하기도 했다.

 

 오이카와가 눈을 뜬 직후 얼굴을 맞댄 이는 텐도였다. 어라, 일어났네. 어린 눈에 비친 그는 영 달가운 모습이 아니였다고만 해두자. 저와 눈을 마주하고도 용케 울음을 터뜨리지 않는 아이에 텐도는 괜스레 질 나쁜 장난으로 이어졌고 덕에 '텐도 사토리' 는 오이카와의 기피 순위의 정상을 당당히 차지하였다. 

 

 어쩌면 당연한 것이였다. 아무 의심없이 저를 받아주었고 아무 대가없이 저를 머물게해주었다. 오이카와 토오루에게 있어 우시지마 와카토시는 유년의 상징이다. 어린 티를 벗은 지금에서야 부정해대지만 은연 중 그리 생각해온 사실이다. 

 

 "그게 옳은 길이였다. 넌 네 어미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목 매단 모습을 보자마자 인정했어."

 "아니다."

 "아니야."

 

 우시지마는 미간을 구기며 상체를 일으켰다. 수트가 영 불편한 모양이였다. 오이카와는 반사적으로 손을 뻗었다 혀를 차며 재빨리 내렸다. 조금 느릿한 동작으로 헤드에 기대며 산소 마스크를 벗겨내더니 짧게 숨을 들이마셨다.


 "그거 없으면 죽는거 아니였어?"

 "아니다. 두 번째 서랍을 열어라."

 "내가 왜 니 말을 듣는데? 이젠 꼬맹이도 아니고 니가 이래라 저래라 해서 들을거 같아? 넌 그냥 허우대 뿐이야. 그게 다야."

 "너에게 득이 될거다."

 "그래서 그 때도 그랬어? 재밌었어?"

 "그 얘기를 하려 널 부른게 아니다."

 "잘도 아니시겠지."

 "오이카와."

 "그딴 여자랑 나랑 자던 침대에서 보란 듯이 뒹구는게 나 물 먹이려는거 아니면 도대체 뭔데? 어, 뭐냐고. 설명을 해봐!!"


 의자가 뒤로 쓰러졌다. 우시지마는 가만히 그를 응시하고 있었다. 오이카와는 잠시 숨을 고르더니 주머니에 손을 비집어 넣고는 돌아섰다. 내가 미쳤지. 나무결이 상한 바닥을 짓밟으며 문가로 다가 서 그는 문을 열었다. 반 쯤 몸이 빠져나갔을 때 그는 돌아보았다.


 "니가 말하는 그 잘난 가출이 아니라 니가 제 발로 나가게 만든거야."


 차마 닫히지 못하고 삐걱거리는 경첩은 오랫동안 울어댔다.


-


 "와카토시랑은 얘기 다 했어?"

 "죄다 부질없는 짓이야."

 "말하는거 봐라, 이게. 무슨 일인데." 


 대합실의 창가에 기대 밖을 바라보던 오이카와에게 세미가 물었다. 장난스레 표정으로 그의 앞에 서 두 팔을 벌리더니 엄마한테 오세요 라며 웃었다. 스물 다섯에 징그럽다며 피할 법도 하지만 얌전히 안기자 세미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윽고 오이카와는 웃음을 터트렸고 어깨가 들썩거렸다. 영문을 모를 세미는 세게 안았던 팔을 느슨히 풀어줄 뿐이였다.


 "겨우 열 두살 차이 밖에 안나면서 무슨 엄마야."

 "그 쪽 엄마는 너랑 동갑이잖아."

 "이와쨩 말이야?"


 응, 세미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와쨩은 내추럴 본 엄마란 말이야. 그럼 나는? 제 1호 쯤 되지 않을까? 이게 어디서 까불어. 세미는 짐짓 화가 난 듯한 말투였지만 그의 갈비뼈를 양쪽에서 혹사시키는 것으로 상황은 정리되었다. 


 "뭐라도 마실래?"

 "음-."


 ""마쉬멜로우 코코아.""


 둘은 대합실이 떠나가도록 배를 잡고 웃어댔다. 세미는 눈물을 훔치며 아직 웃음기 가득한 숨을 내뱉는 오이카와는 응접실로 이끌었다.  


 세미는 오이카와에게 커다랗고 하얀 머그컵 가득 코코아 위에 마쉬멜로우를 얹어건내었다. 조심스레 한 모금 마시려던 오이카와는 바지 위로 마쉬멜로우 서너 개를 떨구고나서야 제대로 된 한 입을 맛볼 수 있었다. 목울대가 일렁이자마자 그는 어깨를 바짝 올리고 인상을 구기며 혀를 내밀었다. 


 "달아."

 "어릴 땐 잘만 마셨으면서."

 "사실 그 때도 엄-청 달았어. 근데 지금은 더 하네."

 "그럼 다른거 줄까? 그만 마실래?"

 "아니."

 "어린애 입맛하고는."

 "엄마의 정성을 거절하지 못하는 착한 오이카와 씨 일 뿐이거든?"


 세미는 눈을 크게 뜨더니 응접실 여기저기를 살펴보다 다시 오이카와를 바라보았다. 여기 그런 사람없는데? 누가 엄마 아니랄까 사람 다루는데는 일가견있는 그였다. 빙그레 웃으며 그를 바라보던 세미는 손뼉을 치더니 자리를 떴다. 잠시 뒤 그는 손바닥 두개를 옆으로 이은 것보다 조금 큰 종이상자와 레코드 판을 들고 왔다. 테이블 위에 늘어놓더니 뿌듯한 얼굴로 그것들을 훑어보고는 오이카와를 향해 웃었다.


 "생일 축하해, 토오루."

 "헤에-"

 "나는 이런거 잘 모르니까 그냥 가게가서 커버 보고 샀어. 니네 가게에 축음기 있잖아. 그래서, 뭐. 그렇게 됐네."

 "이거는?"

 "아 홍차. 티백이니까 너무 부담갖지 말고. 내가 너 어릴 때 타주던걸로 포장했으니까 아마 괜찮을거야. 아 얼그레이 일부러 뺐는데 이제는 잘 마시니?"


 극심히 단 입안에 혀를 조금 물며 그는 고개를 내저었다. 이제와 하는 말이지만 풍미가 도저히 견딜 수 없는 그런 류였다. 세미는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레코드 판을 쌓아 그 위에 상자를 올렸다. 


 "와카토시한테는 받았고?"

 "뭘?"

 "뭐긴 뭐야. 생일 선물."

 "전혀."

 "니네 방에서 뭐 했냐."

 "음- 대화?"

 "흔한 사춘기의 청소년이랑 이해못하는 어른의 일방적인 대화라고는 하지 말아줘."

 "아마 빙고."

 "둘이 아주 똑같아요, 정말. 와카토시는 아직도 널 꼬마라고 생각하고 넌 나가서 새 살림을 차렸고. 니가 나가고 나서 한동안 술만 마시더니 자살기도 하시고 난리도 아니다." 

 "자살..기도?"


 세미는 두 눈을 끔뻑였다. 아차. 


 "그게 무슨 소리야."

 "아아- 아무것도 아니..라고 하기엔 늦었구나. 후우- 그냥, 니가 나간 후로 조직에 신경 쓰지도 않았고 구역도 마찬가지였어. 전부 제 탓이라면서, 니가 죽었다고 생각한거지. 토오루 너도 알겠지만 조직은 지배자가 있어야 돼. 아니면 순식간에 엉망이 되버리는거지. 단순히 힘만으로 해결되는게 아니야. 우리도 나름의 규율이란게 있잖아. 그걸 지켜줄 사람이 필요해. 바로 잡느라 시라부랑 카와니시가 고생이 많았지. 넌 모를거야, 후에 합류한 애들이니까."


 세미는 입을 닫았다. 볼 안쪽 살을 잘근거리며 씹었다. 


 "넌, 아마 지금도 와카토시한테는 그냥 어린 애에 불과할거야. 걔 눈에서 본 너는 항상 그랬으니까. 니가 살아있단 사실을 몇 해 후에 텐도한테서 듣기 전까지는 정말 죽은 것 처럼 살았어. 그래서 니가 선물을 받기 시작한 것도 바가 들어서고 나서잖아."


 오이카와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손가락에 찐득하게 달라붙은 마쉬멜로우는 이미 식어버린 채였다.


 "죽음은 당연한거라고 본인이 말해놓고는 참. 어쩌면 니가 사라진 날부터, 한참 전부터 죽어버린건지도 모르지. 특별한 이유도 없는데 말이야. 원래 지병이 있던건지 어디서 부상이라도 입은건지. 알려줄 생각도 없어. 그냥 앉아서 죽는 날만 기다린달까."


 세미는 의자에 완전히 기댄 채 눈을 감았다. 


 "내 탓은 안해?"

 "내가, 너를? 어째서?"

 "따지고 보면 내가 원흉이잖아."

 "글쎄. 잘 모르겠어."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오이카와에게 다가섰다. 그리곤 가만히 안았다.


 "오늘 와 줘서 고마워. 그러니까 하나만 부탁하자."


 세미는 오이카와에게 블레이저 포켓에서 소음기와 함께 권총을 건내주었다.


 와카토시 좀 살려줘.


-


 다시 선 방 문 앞에는 텐도와 카와니시가 서 있었다. 


 "어라라 토오루 군이잖아."

 "제길."

 "토오루, 이 삼촌이 그런 말 쓰면 안된다고 했잖아."

 "제발 좀 닥칠래?"


 오이카와는 짜증스레 그를 밀치고 방 문을 열었다. 순순히 길을 내어주는 카와니시를 바라보며 그는 안으로 들어섰다. 우시지마는 산소 호흡기를 끼지 않은 채 누워있었다. 눈을 뜨지 않았다. 반듯하게 세워놓은 의자를 지나쳐 침대에 걸터앉았다. 여전히 눈을 뜨지 않았다. 


 "난 아직도 내가 나라고 생각 안해. 다른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냐겠지만 넌 알겠지. 내가 나 라고 단정지어버리면 어릴 적 기억까지 다 인정해야할거같아서. 그래서." 


 그는 건내받은 소음기와 권총은 각각 양손에 쥐고 뜸 들였다.


 "굳이 고차원적인게 아니더라도 그냥, 니가 알던 나랑 지금의 나는 다르잖아."


 소음기를 입구에 조심스레 밀어넣자 부드럽게 맞춰들어갔다.


 "지금의 내가 진짜 나라고 하면,"


 소음기가 완전히 고정되었다.


 "예전의 나는 내가 아니게 되버리는것도 아니고."


 오이카와는 확인 차 약하게 소음기를 잡아당겨보았다. 완벽했다.


 "그럼 지금껏 한 말이 모두 맞다면 말이야."


 그는 우시지마의 이마에 입구를 갖다대고 안전장치를 해제시켰다.


 "내가 널 사랑했던 과거도 사랑하는 현재도 다 사실이 되버리는걸."


 이럴 때는 어떻해, 안가르쳐 줬잖아. 물기 섞인 목소리가 웅얼거렸다. 그의 위에 올라탄 오이카와는 이마를 맞대고 가만히 눈을 감았다. 여전히 총구를 갖다댄 채였다. 우시지마는 가볍게 총을 든 오이카와의 손을 잡자 스르륵 총을 내려놓았다. 그는 흘낏 권총을 바라보더니 중얼거렸다. 세미인가. 


 "이럴 땐 어떻게 하면 되는지 왜 안알려줬어."

 "알 필요가 없었다."

 "지금은 어떻게 설명할건데."

 "필요할지도 모르겠군."


 우시지마는 그를 안고 등을 쓸어내렸다. 


 "넌 아직 아이다, 오이카와."

 "어련하시겠어."


 그는 팔을 뻗어 협탁 위에 놓인 쥬얼리 박스를 오이카와의 손에 쥐어주었다. 짙은 보라색 벨벳의 촉감에 오이카와는 상체를 일으켜 앉았고 우시지마 역시 그랬다. 다만 여전히 제 위에서 내려갈 기미가 보이지 않는 오이카와가 떨어질까 조심스러웠다. 


 "생일 축하한다, 토오루."


 목걸이 였다. 오컬트스럽지도 않았고 빈티지스럽지도 않았다. 그냥 목걸이였다. 얇은 실버게열의 줄에 곡선문양 안에 작은 진주가 박힌. 단 하나 뿐인 진주는 모양조차 원이 아니였다. 특별히 다른 모양을 갖추지도 않았다. 그저 원에 가까운 원이 아닌 원이였다. 일그러져 있었다. 


 "굳이 꼭 이런 것만 주는건 도대체 무슨 심보야."

 "너와 닮았다."


 오이카와는 눈을 치켜세우며 우시지마를 바라보았다. 우시지마는 태연히 그에게서 목걸이를 가로채더니 목에 걸어주었다. 말끔히 체인이 걸리기 까지는 오래 걸리지도 않았다. 


 "넌 진주다. 니가 완벽할 때는 내 옆에 있는 순간 뿐이다."


 그걸 기억해라. 오이카와는 손에 걸리는 진주를 만지작 거렸다. 매끄럽게 돌아가지 않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영락없는 저 였다. 


 그를 사랑하는 자신만이 '나' 였다. 

 


바로크 ; 17세기 유럽의 바로크 풍은 우연과 자유분방함, 기괴한 양상 등이 강조된 예술양식이다 라고 어디서 보고 생각나서 썼는데...음


어떻게 인간적으로 6주 씩 걸린단 말입니까......흐어


엔딩 못내는 병에 걸려 개망!!!!!!!!!!!!!!


Dive To Blue!!!!!!!!!!!!!!!!!!!!!!!!!!!!!!!!!!!!!!!!!!!!!!!!!!!!!!!!!!!!!!!!!!!!!!!!


요즘 서뱀프 파시는데 이제 완성해서 뭔가 더 애매해져버렸다는게 사실이지만..음

뭐랄까, 지나가는 것처럼 가볍게 즐겨주세요


얘네 쓰느라 공부했어요..항상 개그 였지만...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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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 흑염소 님 트위터 입성 축하 기념 글/늦어서 죄송합니다

 

키워드 ; 방금 좀 위험했어

 

(하나하키 소재 ; *하나하키 병은 짝사랑하면 꽃을 토해내는 병입니다!)

-

 

 분명 그것은 무의식에서 흘러나온 한 가닥의 실과 같은 것이였다. 단순한 실보다는 새끼 손가락에 운명 끼리 엮여 있다는 붉은 실 즈음 될 법했다. 물론 그는 동급 여자들이나 좋아할 법 한 운명이라던가 미신이라던가는 믿지 않는 편이였다. 관심조차 없었다. '붉은 실' 전설이라면 흔히 그런 것이였다.

 

 '나는 결코 알 생각도 없었고 알고 싶지도 않았지만 그저 우연찮게 귀에 들려와 어쩌다보니 알게 된 것이다.'

 

 지금 떠올리자니 영 쓸모없는 얘기는 아니였다만 이러나 저러나 귀찮을 뿐이였다. 빌어먹을 꽃 덕분에 잠도 못자고 있는 터였다. 당연히 수면 부족에 시달려야했고 컨디션은 말할 것도 없었다. 수업 때 이미 자고 있는 자신이라 하여도 정해진 수면 시간에서 벗어나는 일은 꽤나 까다로운 것이였다. 무시하고 자면 되잖아? 따위의 제 멍청한 파트너의 조언과는 거리가 멀었다. 자고 싶어도 수북히 차오르는 꽃송이들은 간단히도 제 숨통을 죄여오는 덕이였고 기어코 손가락으로 휘저어 빼내야만 했다. 목 안을 간지럽히는 얇은 꽃잎을 비집어 꺼내면 제 타액에 축축히 젖어 늘어진 나태의 형체를 이루는 곤욕일 뿐이였다.

 

 푸른 자양화 였다.

 

-

 

 세간에서 말하기를 '동경' 과 '애정' 은 전혀 다른 것이다. 접점이 없다 말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 하여 굉장한 접점이 있다 이르기도 애매한 부분이 있다. 물론 죄다 부정할 순 없었지만 어디 시립 도서관에서 엄청난 두께에 먼지가 쌓인 고전적이고 지루하기 짝이 없는 국어사전을 펼쳐보지 않아도 아는 사실이다.

 

 그건 아무리 배구 이외 알지 못하는, 알려고 하지 않는 그라 할지라도 눈에 훤히 보이는 '사실' 이였다. 한자를 떠올리기 까지 조금 시간이 걸릴지는 모른다 하여도 그의 활기 넘치는 파트너가 묻는다면 고민할 새도 없이 머리통을 쥐어박으며 '바보' 를 연호할 것임이 틀림없었다.

 사실 상 그의 세상은 배구와 제 자신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 외 부수적인 것이라면 주위를 겉돌 뿐이지 결코 중심부는 커녕 외곽부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을게 뻔했다.  

 그는 자신에게 솔직한 편에 속했다. 어디 까지나 천연이라는 점에서 충분히 만족할 부분이였지만 그는 지나치게 솔직한 면이 있었다. 아직 덜 컸다는 애틋한 어른의 시선이 아닌 더러운 이면을 알기 시작한 경계의 시선으로 바라본 그는 소년과 청년의 사이보단 아이와 소년의 선에 머무른 채였다. 그렇기에 솔직하지만 그것이 진심으로 제가 느끼는 것인지 조차 구별하지 못하기도 했다. 미숙한 감정이란 것이다.

 

 그는 오이카와 토오루를 동경했다.

 

 이것 만큼은 결코 부정하지 않았고 기정사실이였다. 아직 물기어린 제 눈으로 담은 그는 중심이였다. 빛이였다. 그에 비해 저는 벼랑 끝에 서 있었고 이름을 빼닮은 그림자에 불과했다. 그가 되지 못하여 이런 류의 감정을 느끼는 것은 아니였다. 단지 조금 초조할 따름이였다. 제 자신도 모를 그런 다급함. 저 아래서 부터 걷어차 올라오니 사방으로 가로막혀 밀려드는 기분이란 그리 유쾌할 수 없었다. 가라앉으면 그 아래 풍경이 너무도 뻔해서 그게 더 싫었다.

 왠지 모를 배덕감에 휩싸여 역겨울만큼 푸르른 것들을 바라보건데 저도 모르게 눈물이 핑그르 돌고 마는 것이였다. 금세 소매로 훔쳐내며 알 것 없다는 얼굴로 거울 너머 저를 노려보면 간단히도 비웃고 말았다.

 

 용기조차 없는 애송이.

 

 알아.

 

 욕실 전등이 깜빡였다. 속이 울렁였다. 비적비적 걸어나와 방으로 건너들어가 방문을 걸어 잠그고 침대 위에 걸터앉았다. 어느 센가 익숙해져 버린 습관에 좀 전까지 긁어내던 목을 손으로 감싸쥐었다. 차가워. 분명 낮동안 먹은 것도 없는데 속이 헤집어져 무언가 무의식에 집어 오르려는 감각에 이불 위로 쓰러졌다. 배를 끌어안았다. 찬 것만 집어먹은 것 마냥 차가웠다.

 

 간단히 휴대전화 플립을 열어 버튼 두어 개만 누르면 되는 일이다. 휴대전화라는 게 그런 것이였다. 그런데 제 용도로 쓰이질 못하는 비통함이 떨림이 되어 손가락 너머로 울렸다. 참고 견디다 버티다 못해 결국 작은 플라스틱을 누르면 수신음이 들리기 마련이다.

 

 [예, 오이카와 토오루 입니다-] 

 

 코 끝까지 차오르는 자양화의 향기에 저도 모르게 손을 들어 막았다. 소름 끼치도록 새초롬한 향에 눈 앞이 핑그르르 하고 돌았다.

 

 [으흠- 여보세요?]

 

 혓바닥을 덮기 시작하는 얇은 수술과 잎사귀에 헛구역질 할 수 밖에 없었다. 새어나오는 신음마저 삼킬 수 밖에 없었다. 토비오? 좀 처럼 눌리지 않는 조잡한 버튼을 몇 번이고 내리찍고서야 통화는 끊어졌다. 물론 마지막 말이야 들렸지만.

 

 끝으로 쏟아지는 푸른 자양화에 그는 눈물도 함께 쏟아내야만 했다. 빌어먹을 만큼 온전한 모양새인 꽃송이 하나를 집어들며 소리 죽여 비명을 내질렀다. 짝사랑이란게 그랬다. 수없이 부서지고 조각조각 찢어져도 그 속에는 아직 온전히 감정을 끌어안고 있는 제가 있음을 찾아내고야 만다는 것.

 그는 가만히 온전한 꽃을 도로 입 안에 집어 넣었다. 씹지도 않은 채 삼켜버렸다. 얄팍한 것이 식도를 타고 내려가는 미묘한 감각. 이렇게 삼켜버릴 수 있으면 좋을텐데. 작게 중얼거렸다.

 

 그의 세상은 배구와 제 자신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하지만 그것은 겉모습에 지나지 않는다. 소중한 것을 감싸기 위한 껍데기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그의 중심은 자신조차 잠식시켜버렸다. 플립조차 닫지 않은 채 '통화 종료' 라는 안내가 떠있는 화면에 다 잠긴 목소리로 웅얼거렸다.

 

 오이카와 씨. 전 당신을 이렇게 사랑하고 있습니다. 

 

-

 

늦어서 죄송합니다.

 

자양화=수국입니다! 이 쪽 어감이 더 마음에 들어서..쓰면서 수국으로 바꿔야하나 하고 엄청나게 내적갈등했습니다

 

꽃말이 "당신은 아름답지만 차갑다." 이고 여기서 이 글이 시작했습니다. 진단 메이커 씨 도움도 있었지만 아무래도 시작이 반이라니

 

뭔가..음- 죄송합니다

 

사실 얘네 안파는 애들이라 공부하고나서 썼습니다

만족....하실련지 나도 모르겠다..

 

이제 뒷감당 어떻게 할지 궁리나 해보겠습니다

Dive to Blue

 

다시 한번 우리 존잘님의 트위터 입성을 축하드리며 (짝짝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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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붕요소가 다분할지도 모릅니다//아 거의 확실하게) 

 

 -

 

 

 독특하다. 괴상망측하다. 희한하다. 이상하다. 재밌다. 무섭다. 천진난만하다. 태평하다. 물음표. 가볍다. 어린아이. 속을 알 수가 없다.

이 모든 것은 한 사람에게 따라붙는 수식어이다. 텐도 사토리. 그는 그런 사람이였다.

 보편적이란 이성의 선에서 절대 따라붙지 안는 붉은 머리칼의 존재감이야 말로 그의 모든 것을 말해주는 듯 하였다. 거하게 세운 머리에 어울리는 듯 어울리지 않는 듯한 텐도 특유의 베이비 페이스는 눈에 띌 수 밖에 없는 최상의 조건이였다. 물론 그 성격을 더한다면 더 할 나위없는 존재였다. 클래스 메이트들 사이에선 빨간 놈, 으로 통한다나 뭐래나.

 

 주체 못하는 희열. 그가 배구를 시작한지 얼마되지 않았을 적이 일이다. '재능은 피워내는 것. 센스는 갈고 닦는 것.' 이라고 누가 말했던가. 이미 만개에 가까웠던 재능은 손에 닿는 이질적이지만 결코 낯설지 않은 공의 촉감이 말해주고 있었다. 이게 너의 길 이라고. 가히 축복 받았다 단정지을 수 밖에 없는 센스는 자연스레 움츠리고 있던 손발을 저 멀리까지 내뻗었다. 한 번 내딛기 시작하자 멈출 수 없을 만큼, 하늘이 높은 줄 몰라 그저 위를 향했다. 탐욕스레 먹어치워버렸다. 일반부원에서 벤치멤버로. 벤치멤버에서 체인지 선수로. 체인지에서 레귤러로. 레귤러에서 스타팅으로.

 물론 제아무리 천성이라 하여도 제 비이상적인 도약에 주위를 둘러보지 못할 만큼 텐도는 어리석지 않았다. 흔한 '머리에 피도 마르지 않은 애송이.' '버릇없는 놈.' 그리고 박탈감. 아니, 약탈이야. 작게 키득였다.

 

 3학년이잖아. 그렇죠. 올해 밖에 없어. 그러시구나, 그럼.

 

 이기면 되잖아요. 

 

 다만 그것은 얄팍한 동정심에 불과했을 뿐이였다. 코트에 남는건 강자니까 약자는 먹혀야지. 그게 코트 위의 순리, 아닌가?

 

 서비스 에이스를 성공했을 때도. 3단 블로킹을 뚫고 스파이크를 내리찍었을 때도. 또 속아 페인트에 걸려들어 저를 올려볼 때도. 단순한 도발에 걸려들어 서브에 실패하는걸 봤을 때도. 상대의 환벽한 한 방을 걷어냈을 때도.

모든 것이 완벽한 스파이크를 셧아웃 시킬 때의 쾌감이란 그 무엇에도 비할 것이 못되었다. 상대의 표정. 미세하게 떨리는 손. 얼얼하게 아려오면서도 척추를 타고 올라오는 감각. 끝으로 비웃어주면 끝.

 텐도가 이를 깨달앗을 때는 이미 '괴물' 취급이였다.

 

 두려울 뿐이잖아. 허울 좋은 말 밖에 못하면서.

 

 그런 독선이였다.

 

-

 

 "이야-부럽네. 고시키는."

 

 말이 뇌를 거치지 않고 툭 튀어나왔다. 물론 불필요한 말은 잘렸지만.

 

 한 학년 아래인 세터, 시라부는 드링크를 손에 쥔 채 입가를 닦아내며 영문을 모르겠단 얼굴로 텐도를 바라보았다. 뭐가 부럽다는 겁니까, 선배.

 

 "아니, 그냥."

 

 스파이크 폼이 안정적이랄까, 특히 스트레이트.

 

 턱 선을 타고 내리는 땀을 어깨 언저리로 슥- 하니 문지르며 텐도는 시선을 여전히 크로스 연습에 매진하는 고시키에게 고정했다.

 

 "타점도 득점도 더 높으신건 텐도 선배 십니다만. 그리고 폼이라면 우시지마 선배 쪽이 더-"

 "아니아니아니. 난 오른손잡이고 그건 함부로 흉내낼 만한 것도 아니니깐."

 

 연신 위험해, 를 중얼거리며 드링크 뚜껑을 닫았다. 플라스틱에 말끔히 맞아들어간 고무 임에도 불쾌하기 짝이 없는 소음을 만들어낸다. 눈가를 찌푸리는 시라부와 다르게 텐도는 다섯 살 배기 아이가 장난감을 빼앗긴 떨떠름한 표정을 하고 마냥 부럽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것도 동시에. 요즘 스트레이트가 막힌 적이 있어서 저러시는건가, 시라부는 그리 생각하며 알다가도 모를 선배의 속에 토스 연습을 꼭 꼭 마음에 새길 뿐이였다.

 실상은 달랐지만. 시라부 같이 영특한 아이라면 충분히 알아챌 수 있었을 터였다. 단순히 '미들 블로커'가 아닌 '사람'으로만 바라보았더라도 눈치있는 그 였더라면 그렇게 여지를 남겨 준 텐도가 오히려 이상하다 느낄 정도였을 테니. 어쩌면 연습 직후만 아니였다면 텐도의 시선이 결코 고시키에게 닿지 않는다는 것 쯤 쉽게 깨달았을 것이였다. 그저 나이스 스파이크- 를 외치며 끔찍히 제 후배를 챙기는 세미에게 온전히 모든 관심을 쏟고 있었다. 고시키는 그저 부수적인 배경에 불과했다. 

 

 아니, 행인 1 쯤 되려나.

 

 텐도에게 있어 세미는 조금 특별했다. 시라토리자와 학원에 입학하고 '우시와카'의 전력을 맛 본 후에야 알것도 같았지만 다 먹어치우는 천성으로는 이해할 수 없었다. 레귤러 잖아. 3학년이잖아. 실력도 있잖아. 하지만 그는 시라부의 입부와 동시에 스타팅 자리를 내어주었다. 세터로서의 실력이라면 세미가 훨씬 나을지도 모르는 일이였다. 한 해 늦게 들어온 시라부에 비해 쌓아온 경험. 신뢰 관계. 호흡. 강한 자만이 코트 위에 선다. 세미는 강했다. 하지만 코트를 뒤로 한 채 경계선을 넘어갔다.

 

 멍청한 놈.

 

 그렇게 생각했다, 텐도는. 어쩌면 저의 허울 좋은 말이자 핑계였을지도. 어엿 한 해를 같은 코트 안에서 뛰어온 동료를, 팀메이트를, 친구를. 결코 제가 밀어낸 것도 아니였지만 시라부를 볼 때마다 느끼는 묘한 울림에 곧잘 세미의 눈을 피하곤 했다.

 

 여전히 잘 웃고. 잘 챙겨주고. 든든하고. 동료였다.

 

 왜 욕심내지 않는거야. 나보다 시라부가 나을거야. 그걸 묻지 않았잖아.

 

 애매한 시선으로 입을 열었지만 아무런 말도 나오지 않았었다. 이내 꾹 다물었었다. 어색하게 웃어보였었다. 푸스스-하고 작게. 그리곤 겨우 꺼낸 말이라게,

 

 난 괜찮아.

 

 바보같아. 울렁이는 기분에 그대로 부실을 박차고 나갔었다.

그런 얼굴하고는 뭐가 괜찮다는거야. 처음으로 의문이 들었다. 승리가 뭐야. 도대체.

 

-

 

 생각할수록 배알 꼴리는 것이였다.

 

 텐도는 엄연히 레귤러였고 스타팅 멤버였으며 그 무엇보다 '우시와카'와 한 코트에 설만한 전력을 지니고 있었다. 시라부가 주 세터인걸 감안하더라도 세미 또한 레귤러에 몸 담고 있으며 시합에 투입된다. 물론 3학년이니 그 전부터 맞춰 온 호흡이 있더라도 쓰지 않으면 금세 녹슬기 마련이다. 시라부의 정직하고 헌신하는 토스도 좋았지만 외유내강의 세미 특유의 토스는 꽤나 즐거운 것이였음을 텐도는 흔쾌히 인정한다. 그 토스가 그립나니, 세미는 더 이상 저에게 토스를 올리지 않았다. 물론 원한다면 시라부에게 연습을 부탁할 수도 있고 우시지마에게 말해 얻어낼 수도 있는 것이였다. 다만 상대의 완벽한 하나를 절망으로 내모는 쾌감에 맛 들인 그에게 있어 제 손으로 해내야만 비로소 완성되는 것이다.

 그 따위 남에게 기댈리가 없잖아. 게다가 무엇보다 그 이후의 것까지 남에게 흉내내라 할 수 없는 것이였다. 꿩 대신 닭, 이란 말이 있다. 물론 그에겐 존재하지 않았다. '대신' 이라니. 스스로 인정하지 못하는 강한 집착이랄까.

 

 여전히 불규칙하게 흘러내리는 물을 내버려둔 채 꽤 멋진 자세로 텐도는 낙담하고 있었다. 무언가를 얻기 위해서는 중간과정이 제일 어렵고 중요하다. 맞는 말이다. 처음이야 기세 좋게 덤벼들면 되고 끝은 성취해내면 될테니.

 

 그치만- 이건 너무 긴거 아니야?

 

 복잡해진 머릿 속에 수건으로 젖으 머리를 털어내니 이리저리 물방울이 튀었다.

 

 "아아- 몰라."

 

 뒤로 벌렁 누워 수건으로 눈가를 가렸다. 오늘의 나 -300% 인가. 텐도는 중얼거리며 발가락을 까딱거렸다.

 

 "뭐야, 텐도. 너 아직 안갔어?"

 

 그러다 감기 걸린다. 얼른 말려. 누가 좋은 선배 아니랄까 걱정까지 해준다. 텐도는 제법 티나게 히죽이며 상체를 일으켜 세미와 눈을 마주했다. 놀라우리만큼 흐트러짐 없는 모습에 감탄을 자아냈다. 조금 차분해진 머리 외에는 똑같았다. 열기에 조금 상기된 뺨에 애매한 시선. 저게 좋단 말이야.

 

 "그러고보니 넌 말이야."

 "아-?"

 "그 얌전해진 머리일 때보면 꽤 잘 생겼단 말이지."

 "그런가. 난 잘 몰라."

 

 푸스스 웃으며 셔츠를 꿰 입으며 단추를 잠근다. 목 바로 아래까지 꼭 꼭 잠그는건 세미의 버릇이였다. 텐도는 그런 점을 포함해서 좋았다.

 

 아- 저기에 반했지. 나.

 

 작게 그리는 호선. 고시키에게도 그렇게 웃어주었을까.

 텐도는 세미의 락커를 있는 힘껏 내리찍으며 그의 뒤에 섰다. 아아- 싫어.

 

 불쌍한 텐도. 그 따위에 만족하는거야? 그러니까 제자리지. 가엾어라.

 

 이 얄팍한 동정심. 언제였더라. 텐도는 입맛을 다시며 놀란 눈으로 아직 가슴께 즈음까지 채운 셔츠를 내버려두고 얼굴을 맞댄 세미를 포악스레 바라보았다.

 

 "너, 뭐하는 짓이야."

 

 뼈가 갈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아아- 역시. 이것도 포함해서.

 

 이런 얼굴. 고시키한테 보인적 있어?

 

 

 강자는 약자를 잡아먹고 약자는 강자에게 먹혀들어간다.

 그게 '내' 순리 잖아.

 

 잡아 뜯었다. 흉폭하게. 울부짖도록. 거세게. 더 크게. 이 빈 속으로 채울만큼, 더.

 

 그런, 독선.  

 

Fin.

 

-

 

급 치인게 문제입니다 쿨쩍))

 

텐도 진지하게 애정합니다, 세미 예뻐요.

 

아니, 그냥 그렇다고요...하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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