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고야아아아ㅏㅏㅏㅏㅏㅏㅏㅏ 


(뱀파이어AU 라고해도 사실 별거없습니다, 존재 정도)


-


 "어째서 저런 녀석이란 말입니까."


 "이건 수치입니다."


 "어디서 굴러들어온 되먹지도 못한 것이.."


 "달리 방도가 없는건 사실이잖아요."


 "더러운 녀석."


 생애 첫 기억은 유감스럽게도 질타에 불과했다. 그리 달갑지도 않았지만 연유를 알 도리도 없이 쏟아지는 말 하나하나가 표피를 찢고 진피를 가르며 비참히 도살당하는 기분. 이대로 갈가리 분해되서 아무것도 아닌게 되어버리고 싶다고 생각했던건 꼬박 태어난지 다섯 해가 되던 해였다. 평범하게 죽어버렸으면 좋았을텐데- 라고 속좋게 내뱉을 처지가 아니였다. 일가 전체가 한패이자 공범이나 나름없었다. 죽으라고, 이참에 죽어버리라고. 이렇게 비참하게 구질구질하게 사느니 눈 질끈 감고 죽어버리라고. 어차피 니까짓게 뭐라고 꼬맹이 하나 죽는다고 일가가 살라지지도, 명예가 사그라들리도 없다고. 사실이였다. 무엇하나 빠지지 않고 진실. 그 점이 한층 아래까지 발목을 잡아당겼다. 

 용케 지금까지 살아있노라 해도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이젠 뭐 살아있는게 무슨 대수냐. 뱀파이어 라는 어중간한 지위의 형태로 태어나게 되면 좋든 싫든 대부분은 영생을 누리게 된다. 도중 살해당해버리는 녀석들은 제외 대상에 불과하지만. 그런 영생의 생물이라 해도 어리석은건 어쩐지 다를리가 없는 모양이였다. 본래 핏줄을 타고난 왕가에 대한 불복종으로 모든게 뒤집히고 죽고 죽이는 약육강식에 끌려가던 천년 전쟁에서 결국 왕가는 한 놈도 남김없이 멸족해버리는 일이 벌어졌고 결국 상급가문에 속하는 다섯 가문이서 골고루 챙겨먹게 되었다. 권력을 위해 피 뿌리던 싸움은 가문 싸움으로 번지게 되자 수장을 거부하는 이들 역시 생겨났다. 겨우 삼일전하 따위를 위해 영생을 버리지는 못했던 모양이였다. 그렇다고 해서 아무나가 수장 자리에 오를 수도 없는 노릇이였다. 수장이 되기위해선 세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만 했다. 첫째, 순혈일것. 둘째, 적자일것. 셋째, 일족과 닮지 않을것. 납득가지 않는 마지막 조건은 사실 뭉뚱그려 적당히 이름을 붙인 것이였다. 유별나게 일족 중 신체적으로 타고난 놈들이 존재한다. 주로 색으로 두드러지는데, 눈, 머리카락, 피부, 손톱, 입술 등에 군데군데 색이 묻어나기도 한다. 


 코즈메 일가는 지배가문 중에서도, 뱀파이어 일족 중에서도 유별나기로 유명한 가문이였다. 대체적으로 익사해버리는 경우가 종종 일어나는 만큼 물에 저항을 가지는 법인데 이 가문만은 친근히도 여겼다. 아마 일가에서 아무도 익사 당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소문이 항간에 돌지만 뱃놀이라던가 수영을 즐기는 탓에 그닥 흥미로운 취급을 받지도 못하는 모양이였다. 그런 이유에서인지 선조들부터 살아온 성 역시 해안 절벽에 지어져 있는데다 지배 영토는 두말할것도 없이 내해를 끼고 있다. 어디서 비롯되었는지 모를 인구가 덜 몰린다는 편안함을 위한 선택이였다지만 모종의 이유에서 몰려든 사람이며 뱀파이어에 의해 다음 수도 이전지로 확정이 나버릴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 일가는 역대의 수장이자 영주들의 제 몫을 톡톡히 한 탓도 있겠지만 예외없이 고양이를 떠올리게 하는 얼굴 상을 가지고 있는게 특징이다. 그렇기 때문에 곧잘 정체가 탄로나는 일이 벌어져 현지시찰도 어렵다고 퉁명스레 불만을 토로하는 일원들도 있었다. 유쾌하다고 웃어넘겨짚고 싶다만 현지시찰을 몸소 다니실 귀족나리는 그닥 존재하지 않는다. 보나마나 어디가서 인간 하나를 적당히 꼬시거나 잡아채 내장이나 뒤지며 즐거운 시간을 보낼게 뻔하니 골칫거리 민원에 불과했다. 


 보름달이 뜨는 날이면 지배가문이서 상황보고나 필요에 따른 협상이나 불가피한 싸움을 피하기 위해 회의를 여는데, 가장 달의 정기를 잘 받는 날이기에 선호하는 모양이다만 그런 이유와는 무슨 관계가 있는지도 모를 만월식을 가지게 된다. 유감스럽게도 다음 회의 장소가 코즈메 일가이기에 얼마남지 않은 만월식 -을 빙자하는 호화로운 만찬식에 불과하다- 을 위해 이래저래 바쁜 듯 보이지만 수장인 켄마는 여전히 침실에 틀어박혀 나올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나오지 말라는 식의 협박을 받은 것은 아니지만 암묵적으로 이 일은 친척에게 위임했기 때문이다. 가문 힘의 상징이자 권력과 명예를 내보이는 멍청한 짓거리라는 이유로 굉장한 세금을 낭비해대는게 사실이였다. 장소 물색이니 뭐니 하며 경비도 될대로 뜯어내가는것을 보면 단지 어딘가의 양아치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원해서 황안 따위를 안고 태어난 것도 흑발도 아니였다. 남들처럼 일가의 이들처럼 평범하게 적안에 금발이고 싶었다. 적당히 타협보자면 차라리 인간으로 태어나 눈에 띄지 않고 살아가길 바랬다. 태어나지 않았다면 그것이야말로 최선이였다. 다만 그런 선택지는 처음부터 없었다. 제 의사 반영따위 될리가 없는데 바란다는 사실이 조금은 우스우면서도 비참하게만 다가왔다.


 "수장님, 야쿠님께서."


 "-들여보내세요."


 일일이 따지자면 하나부터 열까지 죽음으로 결말을 내는 바람에 골치가 썩어들어가는 기분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일같이 저 문 너머서 시녀가 말을 걸어올 때마다, 저 사람도 날 비웃겠지? 라는 뻔한 질문을 도로 던지고 있는 자신이였다. 돌아오리라는 것쯤은 알고 있어도 그게 어찌될지 알면서도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묻고 또 묻고 되물으며 죄악감에 시달려야만 했다. 그러지 않으면 도무지 참을 수가 없었다. 간단한 이유였다.


 "또 그러고 있냐, 넌."


 "아-."


 "아-, 가 아니라고. 회의 준비는 끝낸거야?"


 "적당히. 것보다 귀찮아."


 "귀찮아라고 해도 아무도 대신 회의에 참석해주지 않는다고. 게다가 이번은 주최니까 봐줄리도 없잖아."


 켄마는 고개를 반대방향으로 돌리며 시선을 회피했지만 별 의미없는 행동이였다. 어깨 한쪽이 안으로 우그러드는 스프링에 아래로 기울었다. 야쿠는 걸터앉은 채로 몸을 돌려 금세 검은 뿌리가 돋아난 짧은 단발 머리를 쓸어주었다. 예상 외로 가만히 있어주는 켄마에 신나게 세차레 문지르자 힘겹게 손을 들어 양가로 저어보였다.


 "전혀 안귀엽다고, 너 같은 애는."


 "귀엽고 싶지도 않아."


 "그건 니 입장이지. 형의 입장으로는 귀여울 나이에 좀 더 어린 애마냥 굴어도 된단 소리다."


 "-야쿠가 수장 했으면 좋았잖아."


 "여보세요, 있잖아요. 나 적자가 아니거든요."


 "적당히 윗사람 처리하면-"


 "애가 무서운 소리하고 앉아있네, 어."


 다그치는 말투에도 손은 여전히 머리카락의 끝자락을 오가고 있었다. 이리저리 흩어진 금빛 사이로 하얀 목덜미가 드러났다. 선명하게 자리잡은 검은 역십자가 위에 다시 손가락 끝으로 그어보이는 야쿠의 얼굴은 마냥 좋아보이지도 못했다. 저보다 어린 나이에 수장자리에 앉은 동생이 안타깝지 않을리가 없었다. 하다못해 허울 좋은 놈이였다면 하루가 멀다 하고 찾아올리도 없었다. 제 부모를 포함한 일가의 일원들에게 겨우 네살배기가 자살을 강요당하는 그런 사태가 벌이진다는건 일가의 비밀이였다. 좋게 들릴리가 없으니 적당히 입막음이나 시켰겠지만 드러내기 치욕스러운 일임은 변함없다. 매번 용케도 살아주었구나 라는 아슬아슬함을 느끼며 방문 때마다 문이 열리고 옆의 시녀가 비명을 지르지 않게 해달라고 비는건 어째서인지 당연스러웠다. 말수가 적은 것도, 타인의 손길을 거부하는 것도, 일가에게 배신당했음에도 차마 그들을 쳐내지 못하는 것도, 볕 드는 날을 좋아하는 것도, 고집스러우리만큼 일가대면식에 불참하는 것도, 아이러니 하게도 누구보다도 가장 코즈메 가문의 특징이 두드러지는 것도, 이 모든 걸 끌어안고 있는 작은 아이가 아직 살아있다는 것도 야쿠는 유감을 느끼면서도 조용히 옆에 있어줄 수 밖에 없는 이유였다. 제 부모역시 이 아이더러 경박하다며 욕짓거리를 일삼고 독살을 시도했다는 사실에 대해 책임감을 가지고 있다는 시작이 결코 좋을리는 없었다. 그럼에도 가만히 받아들인 쪽은 켄마였다. 성인식을 치루기 불과 일이어년 전, 끔찍한 소문의 진상을 알게 되었고 한밤 중에 무례라는 것을 알고도 쫓아들어가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었다. 고개를 들 수 없었다. 말그대로 치욕감에 가득차 최초로 코즈메 가문에서 익사 당하는 뱀파이어라도 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잠 들지 못한 아이의 눈 아래는 길게 밤하늘이 이어져 있었다. 다만 별 같은건 존재치 못했다. 어쩌면 당연했다. 길고 긴 덕지덕지 배덕감이 묻어난 그의 고백에 켄마는 조용히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구부러든 마른 등을 끌어안아주었다. 


 '고마워.'


 단지 그 뿐이였다. 그리고 야쿠는 깨달았다. 코즈메 켄마가 수장일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야쿠."


 "어-."


 켄마는 도로 고개를 돌려 야쿠를 올려다보았다. 지는 석양에 눈가를 찌푸렸지만 이미 반쯤 배게에 파묻혀있는 상태인지라 그 안으로 파고들기를 반복하다 들썩- 하고 어깨를 들었다 내리놓으며 나지막하게 속삭였다.


 "고마워."


-


 "코즈메-. 수고."


 "아. 아카아시."


 "별 시덥잖은걸로 이렇게 매번 불려오는거 꽤나 불쾌하지 않아?"


 "확실히."


 "제멋대로잖아. 곤란하다고, 이 쪽은 쌓인 일도 많고, 얼른 돌아가서 마저 남은것도 처리해야되고-"


 "북방은 힘들겠네."


 "곧 여름이잖아? 들떴다고 다들."


 "축제?"


 "응. 특히나 보쿠토 씨가."


 "보좌?"


 "응."


 "오늘은 안보였는데."


 "뻗어있어. 두고 오려했는데 따라오겠다고 생고집을 부려대는 바람에."


 아카아시는 앞머리를 쓸어올리며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주최지가 남쪽이다 보니 반대가 거처인 아카아시네는 항상 그랬다. 

 

 냉혈인이라는 말은 북방민족에 의해 붙여진 이름인데 추위에 강해 극한지까지 담당하는 모양이지만 더위는 약한게 틀림없었다. 그런 사유에도 잘도 목끝까지 단추를 잠그고 예복을 차려입은 아카아시 케이지를 볼때마다 혀를 내두르며 저는 절대 그러지 못한다고 자신에게 신신당부해온 켄마였다. 흘낏 옆모습을 바라보면 짧은 곱슬기 도는 흑발에 적안이 보였다. 부럽다. 저 쪽은 흑발이평범이니까. 켄마는 마름침을 삼켰다.


 "아카아시."


 "응."


 "손 보여줄 수 있어?"


 "넌 매번 그러네."


 어쩔 수 없다는 양 아카아시는 손에 낀 장갑을 벗어 손끝이 잘 보이게 켄마에게 내밀었다. 꽤나 길게 자리한 검은 손톱을 몇번이고 매만졌다. 야쿠가 일전에 그만두라고 말했었지만 괜찮다는 아카아시의 말에 한숨만 이어졌다. 흥미를 잃은 듯 손을 놓으면 도로 장갑을 끼는 모습을 조용히 바라보아야 했다. 같은 족이지만 고혹적이라는 말만이 남았다. 


 "눈에 띄는 편이 좋지 않아?"


 "그닥."


 "난 다들 좀 더 화려한 편이 좋았다고들 말하는데 말이야."


 "부럽다구, 그런 거."


 "그치만 난 코즈메 눈, 좋아해."


 "난 싫어."


 "그야 본인은 싫은 법이지."


 "수장따위 하고 싶지도 않았고 말이야."


 "하긴. 코즈메는 이런거 귀찮아하는 타입이잖아."


 "나도 북방에 갈래."


 "안돼. 춥다고 북쪽은."


 "곧 여름이랬잖아."


 "넌 남쪽 출신이니까- 게다가 너 햇볕 드는거 좋아하잖아."


 "응."


 "그럼 그건 기각."


 "싫네."


 아카아시는 푸스스 웃으며 잠시 눈을 맞추었다. 


 "있잖아, 코즈메. 선물이 있어. 받을래?"


 "글쎄- 귀찮은건 싫은데."


 "그런 류는 아니니까 걱정마."


 "뭔데."


 "인간."


 "-인간?"


 "응. 하프인데 일처리도 잘하고 제2 보좌."


 "보쿠토 씨는 어떻게 된거야."


 "제1 보좌라고 해도 사실 명목상이잖아. 약혼잔데 뭐."


 "그런건 아니지만, 아니 됐어."


 "그래서, 받을래?"


 "하프라고 해도 와닿지도 않고. 나 우리 일가 이외에는 본 적도 없고."


 "사실은- 위쪽은 알잖아. 인간들 살기 힘든거."


 "그거야 그렇지만.."


 "유민으로 넣기에는 하프다보니 걱정되는 것도 있어서 이것저것 부탁하기에는 니 사정을 내가 모르는 것도 아니고."


"그거야 그렇지만,"


 "원래는 중앙으로 보내려 했는데 요즘 하프들 유민들한테 천시받는거 알잖아. 중앙에선 얼마전에 연쇄 살인만지 뭔지도 있다더라고. 일만 커지게 말이야. 그래서 이참에 유능한 보좌나 두세요- 라는건데."


 "야쿠가 있잖아."


 "야쿠 씨는 보좌가 아니잖아. 아니면 정식 보좌로 임명했어?"


 "전혀."


 "여기 적성인데 정 안되겠으면 돌려보내. 그래도 난 괜찮으니까."


 "-알았어."


 "그럼 대충 해서 보낼게."


-


 "보낸다며."


 "역시 혼자는 무리랄까. 너희는 너무 잘 돌아다닌다고."


 침실을 습격받은 켄마는 여전히 이불에 파묻혀 기습해온 아카아시와 그 뒤의 인간을 주시했다. 늘 아카아시의 곁에 붙어다니는 보좌랑 엇비슷한 체격에 다시 보아도 흑발이라는 점은 변하지 않았다. 눈을 떼지못하는 켄마를 바라보며 아카아시는 작게 웃었다. 보쿠토 씨가 아니란 말이야. 


 "소개할게, 제2보좌'였던' 쿠로오 테츠로 씨."


 "그런 과거형 소개는 그만두는게 어때?"


 "사실인걸요. 부정하지마세요, 모처럼의 이력인데."


 "아아 영광입니다, 도련님."


 "쿠로오 씨 그런 태도라면 분명하게 말하는데 이 면접도 불합격이고, 원래 직장에서도 목이 떨어진다고요."


 "그렇게 웃으면서 살벌하게 말하지마, 젠장. 무섭다고."


 "하프가 잘도 그런 말을 하네요. 겁내는 척이라도 해보세요. 웃기지도 않아요."


 몇 마디하지도 않았지만 드러나는 능구렁이 같은 구석에 켄마는 저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 아카아시의 본래 보좌와는 전혀 상반되는 타입이였다. 귀찮아보이는건 덤.


 "그리고 저쪽은 유명하디 유명하신 유능한 남쪽의 코즈메가 수장님이신 코즈메 켄마."


 "그런 낯부끄런 수식어 갖다붙이지마."


 "오- 길게 말했다."


 "아카아시.."


 "농담."


 "만나뵙게되서 영광입니다, 수장님."


 "수장님이라고 하지마."


 "에."


 "저랑 보쿠토 씨보다 힘들겁니다. 물론 다른 이유지만요."


 "우선은 해방이란 소리잖아. 우와-."


 "지금 실컷 기뻐해주세요. 부디."


 "아카아시는 웃는 얼굴로 그런 소리 잘하구나."


 "아, 이 사람이랑 보쿠토 씨랑 있다보니 저절로 몸에 익게 되버렸다고 해야할까."


 "무섭네, 그거."


 "쿠로오 씨, 축하드려요. 코즈메에게 무섭다 라는 소리 듣기 어려운데 말이죠."


 "오 좋은거냐."


 "네, 저도 반쯤 해방이니 멍청한 부엉이나 달래러 돌아가보도록 하겠습니다. 코즈메 그럼."


 "아카-,"


 "-가버렸네요."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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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퀘 ; 봉고 님

                                               -                    

 

 시선이 닿는 곳마다 탐스런 꽃송이가 피어나는 기분이였다. 그것은 장미를 닮은 빼어난 색이였고 지독하게 숨막히는 광경이였다. 동공이라도 마주하면 와닿는 순간 눈 앞을 가득 메우는 진한 향에 이내 눈을 감아버리고 마는 것이였다. 장미려나. 중얼거리자 김 빠지듯 새어나오는 순수는 작은 꽃망울을 떠올리기 너무나도 당연했다.

 

 쿠로는 무슨 꽃 생각해.

 

 좋아한다던가 선호한다던가로 묻지않나, 그런 류의 질문.

 

 어느 쪽이야.

 

 글쎄.

 

 그거 어디에 답하는 거야.

 

 글쎄. 뭐라고 생각하는데, 켄마.

 

                                               -                    

 

 인간은 변화에 둔하던가. 켄마는 결론을 내지도 않을 골 아픈 질문을 되풀이 하며 오전 수업의 끝무렵을 맞이했다. 결코 인간 따위의  넓은 범위로는 한정 지을 수 없는 탓에 바짝 깍인 손톱으로, 사실 상 손가락으로 책상 모서리를 불규칙적으로 두드렸다. 손톱 끝이 아린 것은 분명 눅진히 붙어있던 살점을 떼어버렸기 때문이였고 손톱을 다듬은 것은 부활동 때문이였으며 이런 손 상태를 그의 소꿉친구가 보기라도 한다면 기정사실로 한 소리 들을게 뻔했다. 질문이 어떤 형식이든 결국 답은 귀차니즘에 도태된 고약한 생물체라는 결말일 터였다. 눈에 훤한 엔딩은 피하고픈 심정이였으나 이틀 전 넌지시 정리를 요구한 것은 다름아닌 쿠로오 였기에 별 도리도 없었다. 그야 대뜸 부실에서 환복 중일 때 즈음 들이닥쳐서 잡아당겨져 핏기 맺힌 손끝과 불투명의 하얗고 쓸모없이 계속 기는 손톱의 실종사건으로 사람 좋은 얼굴을 하고는 시끄럽게 굴 쿠로오 였다. 사라진 켄마의 손톱을 찾습니다, 따위의 웃기지도 않을 짓을 벌일 근미래를 예견하는 켄마의 미간은 보기 좋게 구겨졌다. 귀찮아-. 책상 위로 나른하게 엎드려 뻑뻑한 눈을 억지로 감았다. 우선은 아무래도 좋았다.

 

 배구부 내에서는 이제 입 밖으로 꺼내기도 진부한 이야기에 불과하지만 타학교 배구부라던가 전교에서라던가 둘은 왠지 모르게 이름이 알려진 '유명인' 이였다. 물론 '너희들이 말하는 저 비실비실한 꼬마가 우리 네코마의 척추이고 뇌이며 심장입니다' 따위의 부끄러운 발언을 잘도 해대는 덕에 대외선전 하나만큼은 효과가 굉장했다. 교내에서 이름을 날리게 된 것은 분명 배구부라는 타이틀이 한 몫했을게 뻔했지만 그 하나만으로는 설명이 턱없이 부족했다.

 갑작스레 2학년 층에 수험생이신 3학생들이 유독 한 반에 몰려있다던가. 복도나 체육관에서 남의 눈총을 받는다던가. 귀찮음에 흠뻑 젖은 발을 끌어 기꺼이 주장의 호출에 응하면 미묘한 기류가 흐른다던가. 켄마로써 그리 달가울 상황이 아닌데다 덧붙이자면 고교 2학년이나 되건만 한동안 아침에 이불 속에서 도통 일어날 생각을 않은 채 그를 열성적으로 깨우려는 어머니께, 학교 가기 싫어 라는 투정을 해야만 했다. 타인의 시선이 익숙치 않다는 사회 부적응자의 본능에 따른 것이기도 하지만 의미모를 관심은 가십거리에나 불과할 것이였고 얼굴도 이름도 뭣도 모르는 사람의 입에 제가 오르내리는 꼴을 상쾌하게 웃으며 받아드릴 족속이 과연 몇이나 될까.

 

 태초는 항상 리스크를 감수해야한다. 그것이 태초이자 최초라는 칭호를 짊어지는 응당한 무게이기 때문이다. 그 리스크란 것이 보잘 것 없이 자잘하고 의미없는 무범위 속 타겟을 벗어난 사냥일지도 몰랐고 치명상으로 이어지는 일격일지도 몰랐다.

 

 "쿠로."

 

 그는 자주 말버릇처럼 말하곤 했다. 켄마의 그 부름이 마치 없는 것을 보채는 것만 같다고. 어려운 말이라며 게임 속 사인드 트랙 사이로 흘려보내버렸지만 이제야 그게 무슨 말이였는지 조금이나마 알게 된거 같은 켄마였다. 끝도 없이 무언가를 갈망하건데 자신 역시 무엇을 원하는지 알 길이 없다. 자각이 없다.

 

 코즈메 켄마는 사회 부적응자 부류의 인간이니까, 그러니까 좀처럼 꾀를 내지 않았다. 머리가 좋다는 사실을 본인도 무의식에 주억여도 들통난다는 사실보다 누가 버릇 고약한 녀석이 아니랄까 만사가 귀찮다는 허울좋은 변명이였다. 게다가 속인다거나 백 번 양보해 속아 넘어가주는 그의 소꿉친구는 있어도 속는 쿠로오는 없었으니까. 요령 좋은 그에게는 당해낼 재간도 없을 뿐더러 괜히 힘 빼는 일은 벌이고 싶지 않은게 본심이였다.

 

 "왠일이야, 제 발로 찾아오고."

 

 역시 달랐다. 억지로 만들어냈잖아, 그 얼굴.

 켄마는 대뜸 손을 그의 앞에 들이밀었다. 예상대로 눈살을 찌푸리더니 찬찬히 뜯어보다 이내 고개를 들었다. 손끝마다 작은 꽃이 맺었다.

 

 "지금 잘했다고 말해주길 바라는건 아니겠지."

 

 "아파."

 

 "약은."

 

 고개를 가로 젓자 그 큰 손으로 다섯가락을 모조리 끌어안았다. 엄지는 안 아픈데. 아아-. 기꺼이 놓아주었다. 꽃은 순식간에 만개했다. 볼품없어. 중얼거리며 사로잡힌 제 손을 도로 탈환했다. 코즈메 켄마 님께 +150P. 그래도 승전보 따윈 없었다. 단위부터가 다른걸 어떻해.

 

 "데려다 줄게."

 

 "혼자 갈래."

 

 무미건조한 목소리였다. 그래서 더욱 억척스레 굴었다. 겨우 그게 다 였으니까. 몸에 베인 행위 하나 하나가 단순히 반복학습이나 다름없는 반복 퀘스트를 통해 이루어진 것이였고 말 한 마디는 가상 현실의 대화의 보기좋은 예시 답안 여러 개 중 그의 선택안일 뿐이였다. 혼자. 세상에 누가 이렇게 외로운 말을 만들어낸 걸까. 셔츠 소매를 움켜쥐는 쿠로오의 손길을 뿌리치고 켄마는 나섰다. 혼자. 외롭지 않게 '두' 다리가 걸었다. 그래봤자 혼자이걸. 따라붙는 발자국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좀 더 빨리 끝냈더라면 좋았을텐데. 웅얼거리며 그는 발을 끌었다. 계단 오르기 따위 세상에서 제일 싫었다.

 

 아니, 제일은 아닐지도.

 

                                               -                    

 

 "왜 둘은 냉전인거야."

 

 "그런거 아니야."

 

 "세간에서 이런걸 냉전이라고 부른단다, 켄마 군."     

 

 "놀리지마."

 

 야쿠는 팩 음료를 구겼다. 메마른 소리였다. 텅 빈 소리였다.

 

 "게임이라도 하는건 어때."

 

 "무리."

 

 "어째서."

 

 "가지고 있는 게임이라면 2인용 이니까. 그러니까 혼자는 못해."

 

 "혼자라."

 

 딱히 '엄마' 라는 포지션에 기댄 것은 아니였다. 게다가 중요한 사실은 켄마가 먼저 나선게 아니니 말이다. 주장과 부원 사이의 문제였고 미들 블로커와 세터 사이의 문제였고 친구와 친구 사이의 문제였으며 쿠로오와 켄마 사이의 문제였다. 한꺼풀씩 도로 싸매는 켄마도 켄마였지만 이번만큼은 어째서인지 굽히지 않는 쿠로오의 공이 컸다. 뻔히 알면서 나 몰라라 식인 주장 덕분에 수고스러운건 야쿠였다. 함부로 말 꺼내기도 힘드니 가볍게 입을 열 수도 없는 노릇이였고 서로 다른 이유로 진실을 외면하는데 지극히 관대한 저 둘을 바라보는 야쿠로썬 속이 타들어갔다.

 

 "그 자식이 갑자기 변한건 언제야."

 

 "글쎄. 3주 전 쯤"

 

 "뭐 어땠는데."

 

 "제멋대로야."

 

 "아아-." 

 

 그런데 눈은 변하지 않았어. 켄마는 입을 꾹 다물었다. 아니면 금방이라도 나약한 소리가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언제나 처럼 못이기는 척 패배선언을 해주길 바라고 있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였다. 그렇기에 좀 더 시간을 끌어야만 했다. 장기전은 시간 싸움이니까. 견뎌야하니까.

 

                                               - 
                                          

 천성이 무언가를 탐내지 않았다. 그 마저 귀찮다 넘겨짚을 지도 모르지만 아마 원하는 것이 손에 넣기엔 벅차다는 사실을 좀 더 빨리 자각한 탓일지도 모른다. 그럴법도 한 것은 켄마에게 있어 현실과 가상 공간의 갭은 꽤나 컸고 굳이 메우려들지 않았다. 이유라면 그래야할 마땅한 이유가 없으니 당연했다.

 

 어렴풋이 이걸 원하고 있을지도 몰라 정도의 무심함이였고 덕분에 뭐 적당히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하곤 해왔다. 애초부터 청춘 따위와는 멀고도 멀었으니 이제와 가까이 하는 것은 켄마의 룰에 어긋나는 행위나 다름없었다. 게다가 자기 식대로 라는 말이 있듯이 제 나름의 고교생활을 보내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용케 배구를 붙잡고 있는 것은 쿠로오의 공이 컸지만 질리지도 않고 손을 한데 모으고 '우리들은 혈액이다' 따위를 듣는 것은 그 하나로 설명하기 부족했으니까 말이다.

 

 부활동은 가지 않았다. 내빼기 식이냐 물으며 그렇다 긍정할 터였다. 이런 상황에 얼굴 보기 껄끄러운게 당연하니까 괜히 힘 빠질거같아 교실에 남았다. 텅 빈 교실에 홀로 자리를 지키며 게임기를 켰다. 금세 땅거미가 내려앉은 덕에 파란 화면에 눈살을 찌푸렸다. 동그라미 버튼을 두어 번 누르자 얼마 전 하던 게임의 시작화면이 로딩되었다.

 

 혼자서는 못하는걸.

 

 그렇게 괴기스러운 전투 시뮬레이션 화면을 바라보건데 기분이 가라앉았다.

 

 "아, 있다 있다!! 켄마 상- 쿠로오 상이 불러오라고..!"

 "..리에프."

 

 "네?"

 

 "이거 쿠로 갖다줘."

 

 "부활 안오시는 검까?"

 

 켄마는 고개를 주억이며 게임기에서 꺼낸 칩을 건내었다. 조금 뜨끈한 게임칩을 받아든 리에프는 영문을 모르겠단 표정을 해보였다.

 

 "그럼 오늘은 누가 토스올려주는 검까?"

 

 "...몰라."

 

 "역시 부활가요. 쿠로오 상도 걱정하고, 야쿠 상도 걱정하고..또,"

 

 "가."

 

 켄마는 안절부절 못하는 리에프를 내버려둔 채 교실을 나섰다. 걱정 따위 할리가 없잖아. 그런거 뻔하잖아.

 

 "켄마 상-! 밖에 비!! 오는데.."

 

 리에프는 그저 받아든 칩과 켄마를 번갈아 보며 꽤 벅차게 쏟아지는 늦은 오후의 소나기를 떠올렸다. 우산, 있으시려나.

 

 물론 가방 무거워지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켄마는 부수적인 물건따위 흔쾌히 넣고 다닐리가 없었다. 운동화의 신발끈이 풀려있었다. 젖을텐데 아무래도 좋았다. 이미 축축한 현관을 바라보는 눈이 마냥 달갑지 않았다. 가방을 품 깊숙히 끌어안고 빗 속으로 내던져졌다. 걸었다. 발이 끌렸다. 그래서 걸어야했다. 묶이지 못한 신발끈이 애처로웠다.

 사실 볼록한 앞주머니에 든 것이 딱히 꺼내보지 않아도 알고 있었다. 틀림없이 우산일 것이다. 비 맞고 감기 걸리지 말라며 상냥하게 건낸 우산이다. 이름을 닮아서 검은색인지 의미없는 것을 떠올리며 켄마는 걸었다. 쿠로오의 손을 탄 것이기에 달갑지도 않았다. 오히려 당장이라도 내던지고팠다. 그러니 가만히 끌어안고 가는 수 밖에 별 다른 수가 없었다. 버리면 네가 슬퍼할거잖아. 언제부터 그 상냥함을 제가 흉내내고 있는지는 저로써 알 방도가 없었다. 머리가 조금 지끈거렸다.

 

 지금 넌 뭘 하고 있을까. 다 식은 게임칩 따위 건내받고는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까. 이번만큼은 제대로 화 낼까. 아니면 또 어쩔 수 없다는 듯 웃어넘길까. 너라면 그런 면에서 두각을 보이니까 걱정 안해도 잘 알겠지. 그래, 걱정할 필요없겠지. 거절이란게 어려운거였구나. 널 잘도 하더니, 이런 거였구나.

 

 석연찮았다. 칩 건낸 것만으로 충분하지 못한 기분이였다. 그래도 어떤가. 이게 제일 저다운 방법이였다. 표면적으로 뿐만 아니라 남들 눈치 보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얼굴을 맞대고 싫어 따위 무리였다. 그야 슬프니까.

 

 "..아파."

 

 "켄마 왔니..켄마-!"

 

 이미 한계나 나름없었다. 억지로 자신을 몰아세워 끌고 온 것일 따름이였다. 눈 앞이 멀어지는 기분이였다. 아프다는 것을 자각할 즈음 다행히 따스한 엄마의 품에 안겼다. 헤아려보건데 극심한 열기에 혹했을 터였다. 그 품을 착각했으니 당연할지도.

 

                                               - 
 "아 깼다, 깻어."

 

 "아-."

 

 "남의 속 뒤집어 놓고 잘 주무셨는지 몰라. 응."

 

 "쿠로."

 

 잔뜩 가시 박힌 말투였으면서 그는 허탈하게 웃었다. 뜨거운 뺨에 닿은 커다란 손이란건 부정하지 않을만큼 기분 좋은 것이였다. 쿠로오 역시 이를 알고 있기에 번갈아 가며 차갑게 식은 손을 기꺼이 내어주었다. 상냥해. 어둑한 방이라 제 자신 조차 보이지 않았지만 얇은 이불조차 덮지 못하고 드러난 얼굴 위로 그 동안 벼루기라도 한 마냥 꽃송이가 한 다발로 피어오르는 것이 똑똑히 보였다.

 

 "쿠로."

 

 "듣고 있어."

 

 "그렇게 보지마."

 

 "어째서."

 

 "조만간에 앞도 안보일거같으니까."

 

 "그럼 내가 손 잡아줄게."

 

 "...악취미."

 

 "그래서 손 잡아도 되는겁니까."

 

 "글쎄."

 

 "켄마야 말로 악취미 아니야, 이거."

 

 켄마는 쿠로오의 손에 뺨을 부비며 눈을 감았다. 억척스러웠다.

 

 "그럼 쿠로도 답해줘."

 

 "뭔데."

 

 "무슨 꽃 생각해."

 

 "설마지만 아직 마음에 담아두고 있었다던가는 아니라고 말해줘."

 

 "그렇다고 해줄게."

 

 "헤에-. 설마 니가 아직도 그런걸 담아두고 있었다, 라. 뭐 같은데."

 

 "되묻지마."

 

 쿠로오는 낮게 키득였다. 열 오른 모습이 영락없는 아이 같다고 생각하면서도 입 밖으로 꺼내면 혼쭐 날테니까. 여전히 보채고 있었다.

 

 "금어초, 정도면 만족하려나."

 

 켄마는 가만히 눈을 떴다. 보일 리도 없지만 고양이가 떠오르는 덕에 마치 시선이 닿고 있다고 착각해버리고 말았다. 노랗게 초승달을 닮은 눈에 푸스스 하고 웃었다.

 

 "욕망."

 

 "용케도 알고 있네. 어려운데 말이야."

 

 "놀리지마."

 

 켄마는 두 팔을 꺼내들어 쿠로오의 목을 끌어안았다. 좀 더 정확히 하자면 쿠로오가 기꺼이 몸을 숙여 응해주었다. 소리도 없이 입술이 맞닿았다. 쿠로오의 손이 뺨을 어루만졌다. 손가락 끝자락 너머 속눈썹이 간지러웠다. 그 역시 금어초를 빼닮아있었다.

 

 "켄마."

 

 "...아-."

 

 "게임 마저 해야지."

 

 "응."

 

 쿠로오는 막 열기가 가시기 시작한 연인을 안았다. 셈세하니까. 가슴팍에 닿은 머리를 가만히 쓸자 사그락 거리던 잡음이 가셨다. 당장이라도 붉게 달아올랐을 어린 아이를 놀리고팠지만 지금 만큼은 눈 감아주기로 했다. 제 손에 찢겨나간 소꿉친구로 향하는 러브레터와 적당히 합쳐서 없는 일로 해버리면 되는 일이였으니 말이다.

 

 머리 지끈거리는 담담한 금어초들의 향연이라는 착각을 멋대로 해버리며 아이의 등을 다독였다. 이대로 좋았다. 딱 이대로가.

 

                                               - 

 

 

 

 

 

 

 

 

끝났다-!!!! 꼬박 이틀 이였지만 쿨켄 이렇게

고민해서 쓰는 건 또 처음입니다, 젱장..

뭐 그래도 아무래도 제도 꽤 쓰는 내내 즐겼고

나쁘지만은 않다고 생각합니다.

 

만족스럽진 않지만 뭐 사람은 만족하면서

살 줄 알아야하니, 기브 업이지만

이 정도로 봐주십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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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바뀌셔서 뭘 써야할지 모르겠습니다만) 고등어 님 응원글

 

키워드 ; 부정하고 싶었다/눈물조차 나오지 않았다/예쁜 꿈을 꾸렴

(https://kr.shindanmaker.com/484366//진단메이커로 우시오이를 돌렸습니다)



(어쩌다보니 약 마츠하나 요소가 포함되어버렸습니다/나도 모르겠다) 

-

 

 오이카와 토오루 라고 불리는 작자를 떠올리자면 벼랑 끝 자락에서 피어나는 수선화이다. 덧붙여보자면 동양적 뉘앙스보단 '나르시스' 따위의 우아한 어감이나 어울릴 법한 그런 사네이다. 동시에 제 오랜 연을 맺은 이와이즈미의 말을 빌리자면 빌어먹을 만큼 잘난 자식, 이기도 하다. 꽤나 안타까운 얘기지만 그가 '벼랑 끝' 에 비유되는 것에는 다 이유가 있다. 출신이다. 이 바닥에서 정상에 오른 사네에게 이제 와 배경을 가지고 시비를 걸 문제는 전혀 아니였음에도 어렴풋이 마음에 담아둘 수 밖에 없는건 오이카와, 자신이였다.  

 

 따지고보면 이 바닥에선 슬럼가 출신이 많았다. 곱게곱게 자라온 온실 안 탐스런 꽃송이보다 산전산수를 다 겪은 야생화가 혹독한 현실에 강하다는 것은 사실이다. 다시 말하자면, 곱게 주위의 보호와 살핌을 받으며 자란 이들보단 밑바닥부터 이 악물고 올라온 이들이 한 수 위라는 얘기이다. 

 후자에 속하는 그에게 있어서는 꽤나 기쁜 이야깃 거리일지도 모른다. 끝을 모르고 덤벼드는 것들만 제외했다면 말이다. 골칫거리라고 해도 순위가 있기 마련이고 손가락을 하나 씩 접어가며 세어보건데 단연 최고봉이라 한다면 '왕좌' 이다. 온실 안에서 자랐다면 얌전히 쳐박혀 있기라도 했다면 좋았을 터였으나 좀처럼 빈틈을 보이는 법이 없었다. 썩어버리면 좋을텐데. 그는 가끔 그리 중얼거리곤 하였다. 물론 이걸 증명해 줄 사람은 오직 그의 오랜 친우인 이와이즈미 뿐이였지만 말이다.

 

 오이카와의 천성이 그러하다. 웃는 얼굴로 속 뒤집어 놓는 것이 능숙한 작자이다. 빌어먹게 억울한 점은 범인(凡人)의 선을 넘었다는 것이다. 이 바닥은 이미 그의 놀이터와도 같았다. 사실 그가 몸 담고 있는 조직인 '아오바죠사이' 는 '아오바' 와 '죠사이'가 합병된 조직이다. 밑바닥에서 부터 안면이 튼 사이인 만큼 어느 정도 세력을 키우고 돌아갈 만큼 굴려놓고는 흔쾌히 오이카와에게 조직 전체를 내어주었다. 마츠카와가 말했다. 지쳤어, 그 뿐이야. 제 온전히 평생을 바라본 그 얼굴에 안도가 피어올랐다. 그는 입을 열려다 닫았다. 아아- 그럼. 덕분에 제 잡다한 일거리가 늘어났다는 점은 분명 부인할 수 없지만 한가로이 제 연인과 노닥거리게 된 마츠카와에게는 심심찮은 감사를 가지고 있다. 그에게 있어 마츠카와 잇세이는 이와이즈미 못지 않게 오랜 시간을 함께 했기에 도저히 세력끼리 맞붙기라도 하면 저는 어쩔 도리도 없을 터였다. 이미 더러워진 손이라 해도 결코 이 따위로 썩어나기를 바라진 않았다. 다만 그 전에 마츠카와가 자리를 내어준 것이였다. 그리 된 지도 몇 해가 지난 얘기일 뿐이다. 


 사실 그는 제 자신의 존재를 부정해곤 했다. 자신을 인정해버리면 꼬리마냥 이어지는 것들까지 이내 고개를 끄덕여버리고 말아야했기 때문였다. 


 썩어버리면 좋을텐데. 

 

-

 

 낯짝 한 번 참 두텁다고 생각했다. '그' 의 말을 빌리자면 오이카와의, '가출' -물론 본인은 전면 부정해댈테지만- 이후 징글맞을 만큼 그는 칠석으로 부터 보름에 하루를 더한 날 항상 무언갈 보내왔다. 간단히 말하자면 생일이다. 얇고 검은 가죽에 오컬트스러운 초커일 적도 있었고 빈티지 느낌의 낡은 듯한 커다란 새 장일 적도 있었으며 의미 모를 파스텔 톤의 수트 일 적도 있었다. 세간에서 숨어지내는 것이 아니였기에 그를 찾아내는 것은 그리 칭하기 황송하리만큼 쉬운 일이였다. 어디 까지나 표면 상 오이카와 토오루는 건물 하나 씩이나 되는 바의 오너 되시는 분이다. 그 특출난 외모 덕에 의도찮게 잘잘 굴러가는 비지니스이자 취미생활에 본인도 꽤나 만족하는 듯 하였다. 

 그 뒷수습하느라-손님 상대랄까- 죽어나는 하나마키와 마츠카와에겐 두둑한 매출이 그리 달갑지만은 않았다. 다만 마츠카와라면 총질에 소질없는 제 연인이 커피 메이커나 돌리고 있는 걸로 위안을 삼을 수 있었다. 애초에 이 쪽에 물든 적 없이 자랐으니 말이다. 게다가 하나마키로 말할 것 같으면 손주를 끔찍히 아끼던 그의 할아버님 덕분에 세상물정 모르고 자란 도련님 되시겠다. 그런 하나마키가 뒷세계 까지 오게 된 사연은 길고 거기 다 마츠카와의 연인이 되기 까지의 험난한 길을 이어 붙이자니 이루 말로 할 수 없다는 정도만 일러두겠다. 짧게 한다면 그의 할아버님이 어떤 조직에 의해 살해당하고 그 틈에 그 조직을 소탕한 조직이 '죠사이' 였을 뿐이다. 딱 그 정도. 


 이래나 저래나 매년 짙은 보라색 정육면체에 무식하게 하얀 리본을 두른 '것' 이 가게로 배달되었다. 출처는 뻔했으나 배달해주시는 감사한 분들의 멱살이라도 틀어쥐건데 공통점이라면 모두 사람인 것 정도려나. 단언컨데 적어도 '왕좌' 를 섬기는 이들은 아니였다. 그런 소름 끼치게 섬세한 배려가 오이카와의 열을 돋우고 있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이 쯤되면 지쳤을 법도 하건만 지칠 줄을 모르는 윗대가리 되시는 오이카와에 물론 죽어나는 건 아래 였다. 그만 두라 하면 어떻게 제 맘도 몰라주냐며 토라질 것이 분명 했기에 이와이즈미로써도 달가운 리액션가 아닐 수 밖에. 정 그렇다면 역추적이라도 하면 되지 않냐며 영문을 모르겠다는 하나마키에 마츠카와는 그저 몰라도 괜찮다며 히로는 나만 봐 따위의 로맨스 씬을 연출해내면서 무산되고 말았다.

 따지고보면 하나마키의 말이 옳다. 오이카와 토오루 란 작자를 다시 떠올려보자. 원하는 것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족속이건데 그러지 않는다는 것은 사실 그가 '그것' 에 극도로 날카로워져 있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제 안중에는 없다는 뜻이다. 그저 유별 떠는 것에 지나지 않으며 잘도 제 방이든 창고든 가게든 어딘가에 보관 중이니 말 다 한 것이다. 결국의 결국엔 그 휘황찬란한 청색과 진홍색의 적절한 조화가 한 눈에 띄는 파스텔 톤 수트까지 입고 바로 출근한 오이카와는 갓 정신병원에서 탈출한 환자보듯 바라보는 제 '직원' 들의 눈초리에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어보이며 두 팔을 벌렸다. 


 설마 이 오이카와 씨가 부끄러운거야?  


 부끄러운게 당연하잖아, 멍청아! 다행히 오픈 전이였고 자리를 지키던 이와이즈미의 손에 단번에 해결되었다. 그냥 괴상망측한 취미를 가진 또라이일 뿐이라며 고개를 내젓는 이와이즈미는 찬사를 받았다. 이후 그 수트는 옷장에 봉인당했다나 뭐래나. 


 이 에피소드 만으로 오이카와가 '선물' 을 얼마나 아끼는지 혹은 얼마나 호기심을 가지는 지는 모두에게 입증되었다. 더불어 의도찮았지만 공식적인 정신 이상자로 낙인 찍히게 되기도 하였다. 썩어버리면 좋을텐데. 뭐, 이 젠장카와가 어디다 대고 욕질이야? 이와쨩이 아니라..! 문답무용!

 

 언제나의 해프닝이다.

 

-

 

 "어이, 오이카와."

 "응?"

 "너 슬슬 생일 다 되가지 않냐."

 

 그는 지휘하는 양 검지를 치켜세운 채 허공을 휘저었다.

 

 "아아- 그러네."

 "그러네-가 아니잖아, 젠장카와."      

 

 오이카와는 바의 구석에 덩그러니 놓여진 흔들의자 위로 몸을 내던지며 가만히 눈을 감았다. 아아- 어쩔까나.

 

 "우선은, 에어컨 키자. 더워."

 

-

 

 서프라이즈 라는 것은 흔히들 말 그대로 뜻 밖의 일, 놀라움 등을 의미한다. 그것이 좋은 일이던 나쁜 일이던.

 

 "안-녕, 오랜만이야!"

 

 그런 의미에서 저 붉은 머리의 등장은 실로 서프라이즈 스러울 수 밖에 없다.

 

 "아직 오픈 전인데.."

 "하나마키, 타카히로 맞지?"

 "예..?"

 

 별 꺼리낌없이 바 안으로 발을 내딛는 남자는 기분 나쁜 웃음으로 화답했고 그의 뒤에는 또 다른 남자가 묵묵히 열중 쉬어 자세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집안에 외손주. 그래서 그 영감이 그렇게 감싸돌았던 건가! 그런가! 그런가봐 카와니시!"

 "네." 

 

 하나마키가 제2의 오이카와와 이와이즈미를 보고 있다 떠올릴 즈음 마츠카와가 하나마키를 제 뒤로 물러서게 했다.

 

 "이 까지 산보라고 둘러대실건 아니라 믿겠습니다. 텐도 씨."

 "오랜만에 봤더니 애가 까칠해졌어. 반항긴가, 카와니시 저거 반항기야?"

 "모릅니다."

 

 카와니시는 눈길조차 주지 않고는 손목의 시계를 한 번 훑고 돌아섰다. 먼저 가 있겠습니다. 적당히 하고 오십시오. 매정해-.

 

 "마츠카와 군, 내가 정-말 위스키라도 한 잔하면서 옛 얘기 하고싶지만 이러다간 우리 세미 수재 쿠키도 놓칠거 같고 슬슬 카와니시도 열 오르는거 같으니까 간단히 할게."

 "뭡니까."

 "오이카와 어딨어."

 

 마츠카와는 하나마키의 손목을 움켜쥐었다. 세게 쥐었다 놓았다. 하나마키는 그런 연인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둘의 암묵적인 사인이였다. 도망가.

 

 "잇세이- 잇세이- 잇-세-이. 정말. 난 협박할 수단도 없고 무장해제 상태랍니다. 뭣 하시면 수색해보시던가. 응? 뭐가 네 뒤의 작은 아이를 겁먹게 한거야? 나?"

 "닥치시죠."

 "저 작은 도련님 말이야. 서툴지? 여기 사람도 아니잖아. 너 때문에 억지로 발 묶인거잖아. 세간에서 이름 날리던 애가 말이야, 갑자기 사라졌어. 그런데 어라라- 여긴 무슨 밤놀이신가?"

 

 아 밤이 아니니까 밤놀이는 아닌가. 텐도는 혼자 중얼거리더니 뭐든 좋아 라며 미묘히 얼굴이 굳었다.

 

 "오이카와 군 어디계시냐고, 너희 보스님. 꽃병풍. 토오루 군. 오이카와 씨 말이야."

 "대답할 의무는 없습니다."

 "그럼 거기 도련님? 대답해줄래?"

 "얘는 끌어들이지 마시죠."

 "그야- 마츠카와 군이 반항기에 접어들면서 나한테 더 이상 대답해주지 않는걸 어떻해. 그럼 오이카와 어디있는지만 말하면 되는걸."

 

 역광을 진 텐도의 모습은 흡사 사신을 닮아있었다. 열 손가락을 맞대고 있는 것은 상대를 끝내기 전 그의 습관이였다. 마츠카와는 어금니를 물었다. 허튼 움직임이라도 보이면 팔 하나 날아갈 것 쯤은 각오해야만 했다. 그를 상대로는 그래야만 했다. 

 

 "바쁘니까 빨리 가자고."

 "어레-?"

 

 오이카와는 언제부터 였는지도 모르게 문가에 기대 휴대전화를 뚫어져라 바라보며 답했다. 특유의 퉁명스런 억양이였다.

 

 "이게 얼마만이야-!! 라고 하고 싶지만 이 쪽도 급하니까 얼른 가자고. 오이카와 군."

 "아아- 물론이지."

 

 그럼 또 봐, 라며 가볍게 손을 흔들고 자리를 뜨는 텐도에 마츠카와는 그제야 몰아넣은 숨을 내뱉었다.

 

 "맛층, 맛키. 늦어서 미안해. 다녀올게."

 "이와이즈미는?"

 "오늘 휴가랍니다-"

 "혼자갈 생각이냐, 너."

 "응, 그런데?"

 

 그 말은 마치 '지금 산책하러 가는 길이야' 따위의 것과 동격이였다.

 

 "..다녀와라."

 "다녀-오겠습니다, 참. 오늘 오픈 하지마."

 

 검은 세단이 매끄럽게 골목을 빠져나갔다. 아직 상황을 모르는 하나마키는 흡사 넋이 나간 사람처럼 서있는 마츠카와의 소매를 아래로 잡아 당겼다. 마츠. 마츠. 아-. 괜찮은거야? 그는 막연히 저를 바라보는 아이를 안았다.

 

 히로. 사격 배우자.

 

 ..그러자. 그렇게 해. 대신 너한테 배울래.

 

-

 

 "있잖아- 오이카와는 영화같은거 스포일러 하는 편, 받는 편?"

 "헤에- 그런건 왜 물으시는걸까나-?"

 "그야 난 전자니까."

 

 오이카와는 미간을 구겼다. 이럴거면 이와이즈미라도 데려왔을텐데. 이제 와 후회해보지만 기세좋게 마츠카와에게도 그렇게 큰 소리 치고 온 이상 어쩔 도리가 없었다. 따지고보면 시라토리자와 역시 그저 귀찮고 거슬리는 존재지 천적은 아니였다. 구역 지키고 오해 살 일 하지말고 서로 일에 관심끄면 되는 것이다. 그 암묵적이지만 기본적인 수칙만 지킨다면 충돌할 일은 없으며 딱 한 가지 가능성이 있다면 그것이 침략이다. 다만 그 수는 이미 배제된지 오래다. 어쩌면 오이카와는 그가 조직을 꾸리기 시작한 시점부터 블랙리스트의 가장 위쪽을 차지하지만 동시에 영 번에 올렸을지 모른다. 가장 거슬리지만 걸치적거리진 않는다.

 

 "꼬맹이 일 땐 나랑 영화관도 같이 갔으면서 섭하구만, 참. 그렇지, 카와니시?"

 "덕분에 요즘은 가지도 못하고 있네요, 댁덕에."

 "그 어릴 때 장난 친거 가지고 삐지기는, 카와니시도 그렇게 생각하지?"

 

 창 밖 익숙한 경치에 실로 빌어먹을 감탄을 금치 못하며 오이카와는 감상에 젖었다. 하나도 안 바뀌는 구나. 어째서 제 유년의 기억은 죄다 이 곳에 쳐박혀 있느냐고 물어도 답할 수 없었다.

 

 "카와니시는 말이야, 너무 말 수가 적단 말이지."

 "이제 최선이니까요."

 "리액션 안해줘도 되는데."

 "해주길 바라시잖아요."

 

 그렇군! 이라면서 저 혼자 납득할 사이 어느 세 시커멓고 커다란 고딕 풍 건물에 도착해있었다. 썩어버리면 좋을텐데. 오이카와는 혀를 찼다.

 

 "여기서부터는 에스코트 안해드려도 되겠지, 도련님?"

 "소름 돋으니까 그렇게 부르지 말아줄래?"

 "그렇게 말하면 이 삼촌, 슬퍼진단다!"

 "그거 좋은데."

 

 가능한 빨리 텐도와는 멀어지고 싶은게 사람 심정이다. 카와니시 역시 그럴거라 중얼거리며 오이카와는 세단에서 내려 담쟁이로 뒤덮인 정원문을 열고 여전한 분수를 바라보았다. 온통 꽃밭에 풀밭으로 도배된 꼴을 보며 미간을 구겼다. 썩어버리면 좋을텐데. 어울리지도 않았을 뿐더러 역겨웠다. 무엇 때문에 그리 하느냐고.

 

 언제나처럼 이골난 상태로 나무 문 앞에 서 작은 벨을 울리면 문이 열렸다. 도련님 어서오세요. 골 때리는 멘트라며 시대가 시댄데 무슨 대사냐며 생색내도 상부 명령이라며 시종일관 도련님- 하고 부르는게 싫었다.

 넌 자유다. 라면서 무엇이든 우선 옭아매고 보는 것도 싫었다. 보호니 뭐니 그런 허울 좋은 변명이나 갔다 붙이며 아무래도 좋으니 가만히 있어라 따위의 명령에 불과했다. 이중적이잖아. 어린아이의 시선이 비친 영화 속 경찰과 같은 것이였다. 움직이지 말라며 손을 들라니. 어처구니 없지만 따지고보면 틀린 말이 아닌 것 처럼. 어딜 가도 좋지만 저긴 안돼 라니. 이제 와 구역의 경계에 예민해지는 것은 이해한다만 어릴 것에게 설명없이 막연히 선을 그어버리는 것은 꽤나 난폭한 행위였다.

 

 계단을 오르며 습관마냥 난간을 손가락으로 쓸었다. 아니, 습관이다. 당장이라도 잘라내지 않고서야 잊지못할 몸이 기억하는 습관. 먼지. 집관리 또 안되고 있구나. 비웃음이 찬 억양을 뱉고는 제법 신나게 발을 옮겼다.

 

 "도련님, 오랜만."

 "아- 그러네."

 "완전 다 컸네, 다 컸어."

 

 제 유모 격이던 세미는 여전한 얼굴로 그를 반겼다. 분명 적대시 하는 조직의 우두머리를 앞에 두고 있음에도 그는 함박웃음이였다. 모성애에 가까운 것일지도 모른다. 세미는 그의 '가출' 전이나 후까지도 상징적 엄마인 존재였으니 말이다. 제법 의연한 모습으로 주머니에 손을 꽂아넣으며 발걸음을 내딛었다.

 

 "와카토시 한테 가는거지?"

 "뭐."

 "사무실말고 침실로 가. 거기 있으니까."

 "침실?"

 

 응, 침실. 얼른 가봐. 기다린다. 누가봐도 엄마나 할 법한 잔소리를 늘어놓기 시작한 세미에 오이카와는 빠른 걸음으로 사무실을 지나쳐 침실로 향했다. 분명 그대로 두면 몇 시간이고 지난 일까지 들춰 설교할게 뻔했다.

 

 여전히 음산한 그의 침실 앞에 선 오이카와는 노크하려던 손을 멈추었다. 그다지 예의는 갖추고 싶지 않았다. 오히려 정직하게 말하자면 뒷통수라도 한 대 후려갈기고픈 마음이 컸지만 그랬다가는 오늘의 목숨이 간당간당해질 판국이였으니 그만둔지는 꽤 오래 전의 일이다. 다만 문이라며 노크없이 열고 들어갔다.

 

 '노크를 하지 않았다.'

 '우시와카쨩이 못 들은거야.'

 '그런가.'

 

 아직도 신물나게 눈에 훤히 보이는 저 대화가 성립되지 않았다. 놀랄 노자 였지만 다른 것도 포함하자면 사태는 조금 더 심각했다. 올블랙 수트를 갖춰입고 킹 사이즈 침대 위에 홀로 누워 산소 공급기를 낀 꼴이라건 볼만하지만은 않았다.

 

 "새로운 놀이인거야, 그거?"

 "왔는가."

 "난 시체라도 되는 줄 알고 기뻤는데 기어코 눈을 뜨시네."

 "살았으니 당연한거다."

 

 언제 도착했는지 모를 카와니시는 시라부를 지나쳐 의자를 끌어다 주었다. 제법 익숙한 폼으로 앉아 자리잡자 텐도는 시라부를 데리고 방에서 나갔다. 잘난 쿠키라도 드실 요량인 듯 했다.

 

 "생일 축하한다."

 "설마 그 말하려고 이 난리를 쳐서 내가 이 까지 오게 했다고 말하지 마." 

 "물론 아니다."

 "오늘 들은 말 중에서 가장 믿음이 가는 말이네, 참."  


 오이카와는 익숙하게 밝은 청록색 벨벳으로 쌓인 의자에 앉으며 다리를 꼬았다. 등받이에 기대서 살짝 고개를 올려든 것이 딱 건방지기 그지 없어보였다. 한 조직의 우두머리에 군림하고 있다해도 여전히 앳되게만 보일 뿐이였다. 마냥 아이가 받아쓰기에서 만점이라도 받고 의기양양해 보이듯이. 

 우시지마는 그런 오이카와를 바라보았다. 그의 시선이 달갑지 않은 오이카와는 눈살을 찌푸렸다. 우시지마는 왼손을 들어 카와니시에게 손짓하자 그는 고개를 숙이고 방을 나섰다. 오이카와는 문이 완전히 닫히는 순간까지도 그리로 시선을 내어주었다. 습성에 가까운 것이였다.


 "너무 방심하는거 아니야? 죽어가는 주제 자존심 세우기라도 하는거야?"

 "죽어가는게 아니다."

 "그럼 뭔데."

 "죽음은 당연한거다."

 "어릴 적에 잘도 가르쳤지. 그 말."


 오이카와는 따끔거리는 목을 메만지며 지독했던 유년을 떠올렸다. 지독하다 말하지만 사실 그에게 있어 유년을 만들어 준 것이 우시지마일 따름이였다. 

 사채로 인해 아버지가 조직에 살해 당하고 남겨진 그와 어머니는 터무니없는 빚더미 위로 나앉게 되었다. 조직은 그의 어머니에게 매춘을 강행했고 그는 잡일을 떠맡겨되었다. 심심풀이로 지나가던 조직원들에게 일방적으로 폭행을 당하기 일쑤였다. 어머니는 그런 아들을 끌어안고 소리 죽여 우셨다. 날이 지날수록 많은 상처를 지니고 살아야했고 그런 흉측한 자국들을 가리기 위해 그는 좀처럼 살갗을 내보이지 않았다. 그럴수록 그는 프라이드의 집합체에 가까워졌다. 물론 결말은 꽤나 참혹하였지만 말이다. 어미는 누군지 모르는 아이를 잉태하곤 목을 달아 죽었다. 남겨진 그는 죽은 이의 몫까지 챙겨야 했고 복부를 찔려 강에 버려졌다. 반익사 상태로 오이카와는 건져졌다. 산책 삼아 간만에 휴식을 즐기던 우시지마의 손에. 불행 중 다행이라 한다면 오이카와는 중학생 나이가 채 되지 않은 어린아이였고 우시지마는 전신의 혈흔과 상처에도 제 아지트로 그를 데려왔다. 필시 조직과 연관이 있을 법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어린 나이였던 그는 경계의 대상이 아닌 보호의 대상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덧붙이자면 그냥 애정의 대상으로 어린아이를 좋아하기도 했다.

 

 오이카와가 눈을 뜬 직후 얼굴을 맞댄 이는 텐도였다. 어라, 일어났네. 어린 눈에 비친 그는 영 달가운 모습이 아니였다고만 해두자. 저와 눈을 마주하고도 용케 울음을 터뜨리지 않는 아이에 텐도는 괜스레 질 나쁜 장난으로 이어졌고 덕에 '텐도 사토리' 는 오이카와의 기피 순위의 정상을 당당히 차지하였다. 

 

 어쩌면 당연한 것이였다. 아무 의심없이 저를 받아주었고 아무 대가없이 저를 머물게해주었다. 오이카와 토오루에게 있어 우시지마 와카토시는 유년의 상징이다. 어린 티를 벗은 지금에서야 부정해대지만 은연 중 그리 생각해온 사실이다. 

 

 "그게 옳은 길이였다. 넌 네 어미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목 매단 모습을 보자마자 인정했어."

 "아니다."

 "아니야."

 

 우시지마는 미간을 구기며 상체를 일으켰다. 수트가 영 불편한 모양이였다. 오이카와는 반사적으로 손을 뻗었다 혀를 차며 재빨리 내렸다. 조금 느릿한 동작으로 헤드에 기대며 산소 마스크를 벗겨내더니 짧게 숨을 들이마셨다.


 "그거 없으면 죽는거 아니였어?"

 "아니다. 두 번째 서랍을 열어라."

 "내가 왜 니 말을 듣는데? 이젠 꼬맹이도 아니고 니가 이래라 저래라 해서 들을거 같아? 넌 그냥 허우대 뿐이야. 그게 다야."

 "너에게 득이 될거다."

 "그래서 그 때도 그랬어? 재밌었어?"

 "그 얘기를 하려 널 부른게 아니다."

 "잘도 아니시겠지."

 "오이카와."

 "그딴 여자랑 나랑 자던 침대에서 보란 듯이 뒹구는게 나 물 먹이려는거 아니면 도대체 뭔데? 어, 뭐냐고. 설명을 해봐!!"


 의자가 뒤로 쓰러졌다. 우시지마는 가만히 그를 응시하고 있었다. 오이카와는 잠시 숨을 고르더니 주머니에 손을 비집어 넣고는 돌아섰다. 내가 미쳤지. 나무결이 상한 바닥을 짓밟으며 문가로 다가 서 그는 문을 열었다. 반 쯤 몸이 빠져나갔을 때 그는 돌아보았다.


 "니가 말하는 그 잘난 가출이 아니라 니가 제 발로 나가게 만든거야."


 차마 닫히지 못하고 삐걱거리는 경첩은 오랫동안 울어댔다.


-


 "와카토시랑은 얘기 다 했어?"

 "죄다 부질없는 짓이야."

 "말하는거 봐라, 이게. 무슨 일인데." 


 대합실의 창가에 기대 밖을 바라보던 오이카와에게 세미가 물었다. 장난스레 표정으로 그의 앞에 서 두 팔을 벌리더니 엄마한테 오세요 라며 웃었다. 스물 다섯에 징그럽다며 피할 법도 하지만 얌전히 안기자 세미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윽고 오이카와는 웃음을 터트렸고 어깨가 들썩거렸다. 영문을 모를 세미는 세게 안았던 팔을 느슨히 풀어줄 뿐이였다.


 "겨우 열 두살 차이 밖에 안나면서 무슨 엄마야."

 "그 쪽 엄마는 너랑 동갑이잖아."

 "이와쨩 말이야?"


 응, 세미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와쨩은 내추럴 본 엄마란 말이야. 그럼 나는? 제 1호 쯤 되지 않을까? 이게 어디서 까불어. 세미는 짐짓 화가 난 듯한 말투였지만 그의 갈비뼈를 양쪽에서 혹사시키는 것으로 상황은 정리되었다. 


 "뭐라도 마실래?"

 "음-."


 ""마쉬멜로우 코코아.""


 둘은 대합실이 떠나가도록 배를 잡고 웃어댔다. 세미는 눈물을 훔치며 아직 웃음기 가득한 숨을 내뱉는 오이카와는 응접실로 이끌었다.  


 세미는 오이카와에게 커다랗고 하얀 머그컵 가득 코코아 위에 마쉬멜로우를 얹어건내었다. 조심스레 한 모금 마시려던 오이카와는 바지 위로 마쉬멜로우 서너 개를 떨구고나서야 제대로 된 한 입을 맛볼 수 있었다. 목울대가 일렁이자마자 그는 어깨를 바짝 올리고 인상을 구기며 혀를 내밀었다. 


 "달아."

 "어릴 땐 잘만 마셨으면서."

 "사실 그 때도 엄-청 달았어. 근데 지금은 더 하네."

 "그럼 다른거 줄까? 그만 마실래?"

 "아니."

 "어린애 입맛하고는."

 "엄마의 정성을 거절하지 못하는 착한 오이카와 씨 일 뿐이거든?"


 세미는 눈을 크게 뜨더니 응접실 여기저기를 살펴보다 다시 오이카와를 바라보았다. 여기 그런 사람없는데? 누가 엄마 아니랄까 사람 다루는데는 일가견있는 그였다. 빙그레 웃으며 그를 바라보던 세미는 손뼉을 치더니 자리를 떴다. 잠시 뒤 그는 손바닥 두개를 옆으로 이은 것보다 조금 큰 종이상자와 레코드 판을 들고 왔다. 테이블 위에 늘어놓더니 뿌듯한 얼굴로 그것들을 훑어보고는 오이카와를 향해 웃었다.


 "생일 축하해, 토오루."

 "헤에-"

 "나는 이런거 잘 모르니까 그냥 가게가서 커버 보고 샀어. 니네 가게에 축음기 있잖아. 그래서, 뭐. 그렇게 됐네."

 "이거는?"

 "아 홍차. 티백이니까 너무 부담갖지 말고. 내가 너 어릴 때 타주던걸로 포장했으니까 아마 괜찮을거야. 아 얼그레이 일부러 뺐는데 이제는 잘 마시니?"


 극심히 단 입안에 혀를 조금 물며 그는 고개를 내저었다. 이제와 하는 말이지만 풍미가 도저히 견딜 수 없는 그런 류였다. 세미는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레코드 판을 쌓아 그 위에 상자를 올렸다. 


 "와카토시한테는 받았고?"

 "뭘?"

 "뭐긴 뭐야. 생일 선물."

 "전혀."

 "니네 방에서 뭐 했냐."

 "음- 대화?"

 "흔한 사춘기의 청소년이랑 이해못하는 어른의 일방적인 대화라고는 하지 말아줘."

 "아마 빙고."

 "둘이 아주 똑같아요, 정말. 와카토시는 아직도 널 꼬마라고 생각하고 넌 나가서 새 살림을 차렸고. 니가 나가고 나서 한동안 술만 마시더니 자살기도 하시고 난리도 아니다." 

 "자살..기도?"


 세미는 두 눈을 끔뻑였다. 아차. 


 "그게 무슨 소리야."

 "아아- 아무것도 아니..라고 하기엔 늦었구나. 후우- 그냥, 니가 나간 후로 조직에 신경 쓰지도 않았고 구역도 마찬가지였어. 전부 제 탓이라면서, 니가 죽었다고 생각한거지. 토오루 너도 알겠지만 조직은 지배자가 있어야 돼. 아니면 순식간에 엉망이 되버리는거지. 단순히 힘만으로 해결되는게 아니야. 우리도 나름의 규율이란게 있잖아. 그걸 지켜줄 사람이 필요해. 바로 잡느라 시라부랑 카와니시가 고생이 많았지. 넌 모를거야, 후에 합류한 애들이니까."


 세미는 입을 닫았다. 볼 안쪽 살을 잘근거리며 씹었다. 


 "넌, 아마 지금도 와카토시한테는 그냥 어린 애에 불과할거야. 걔 눈에서 본 너는 항상 그랬으니까. 니가 살아있단 사실을 몇 해 후에 텐도한테서 듣기 전까지는 정말 죽은 것 처럼 살았어. 그래서 니가 선물을 받기 시작한 것도 바가 들어서고 나서잖아."


 오이카와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손가락에 찐득하게 달라붙은 마쉬멜로우는 이미 식어버린 채였다.


 "죽음은 당연한거라고 본인이 말해놓고는 참. 어쩌면 니가 사라진 날부터, 한참 전부터 죽어버린건지도 모르지. 특별한 이유도 없는데 말이야. 원래 지병이 있던건지 어디서 부상이라도 입은건지. 알려줄 생각도 없어. 그냥 앉아서 죽는 날만 기다린달까."


 세미는 의자에 완전히 기댄 채 눈을 감았다. 


 "내 탓은 안해?"

 "내가, 너를? 어째서?"

 "따지고 보면 내가 원흉이잖아."

 "글쎄. 잘 모르겠어."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오이카와에게 다가섰다. 그리곤 가만히 안았다.


 "오늘 와 줘서 고마워. 그러니까 하나만 부탁하자."


 세미는 오이카와에게 블레이저 포켓에서 소음기와 함께 권총을 건내주었다.


 와카토시 좀 살려줘.


-


 다시 선 방 문 앞에는 텐도와 카와니시가 서 있었다. 


 "어라라 토오루 군이잖아."

 "제길."

 "토오루, 이 삼촌이 그런 말 쓰면 안된다고 했잖아."

 "제발 좀 닥칠래?"


 오이카와는 짜증스레 그를 밀치고 방 문을 열었다. 순순히 길을 내어주는 카와니시를 바라보며 그는 안으로 들어섰다. 우시지마는 산소 호흡기를 끼지 않은 채 누워있었다. 눈을 뜨지 않았다. 반듯하게 세워놓은 의자를 지나쳐 침대에 걸터앉았다. 여전히 눈을 뜨지 않았다. 


 "난 아직도 내가 나라고 생각 안해. 다른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냐겠지만 넌 알겠지. 내가 나 라고 단정지어버리면 어릴 적 기억까지 다 인정해야할거같아서. 그래서." 


 그는 건내받은 소음기와 권총은 각각 양손에 쥐고 뜸 들였다.


 "굳이 고차원적인게 아니더라도 그냥, 니가 알던 나랑 지금의 나는 다르잖아."


 소음기를 입구에 조심스레 밀어넣자 부드럽게 맞춰들어갔다.


 "지금의 내가 진짜 나라고 하면,"


 소음기가 완전히 고정되었다.


 "예전의 나는 내가 아니게 되버리는것도 아니고."


 오이카와는 확인 차 약하게 소음기를 잡아당겨보았다. 완벽했다.


 "그럼 지금껏 한 말이 모두 맞다면 말이야."


 그는 우시지마의 이마에 입구를 갖다대고 안전장치를 해제시켰다.


 "내가 널 사랑했던 과거도 사랑하는 현재도 다 사실이 되버리는걸."


 이럴 때는 어떻해, 안가르쳐 줬잖아. 물기 섞인 목소리가 웅얼거렸다. 그의 위에 올라탄 오이카와는 이마를 맞대고 가만히 눈을 감았다. 여전히 총구를 갖다댄 채였다. 우시지마는 가볍게 총을 든 오이카와의 손을 잡자 스르륵 총을 내려놓았다. 그는 흘낏 권총을 바라보더니 중얼거렸다. 세미인가. 


 "이럴 땐 어떻게 하면 되는지 왜 안알려줬어."

 "알 필요가 없었다."

 "지금은 어떻게 설명할건데."

 "필요할지도 모르겠군."


 우시지마는 그를 안고 등을 쓸어내렸다. 


 "넌 아직 아이다, 오이카와."

 "어련하시겠어."


 그는 팔을 뻗어 협탁 위에 놓인 쥬얼리 박스를 오이카와의 손에 쥐어주었다. 짙은 보라색 벨벳의 촉감에 오이카와는 상체를 일으켜 앉았고 우시지마 역시 그랬다. 다만 여전히 제 위에서 내려갈 기미가 보이지 않는 오이카와가 떨어질까 조심스러웠다. 


 "생일 축하한다, 토오루."


 목걸이 였다. 오컬트스럽지도 않았고 빈티지스럽지도 않았다. 그냥 목걸이였다. 얇은 실버게열의 줄에 곡선문양 안에 작은 진주가 박힌. 단 하나 뿐인 진주는 모양조차 원이 아니였다. 특별히 다른 모양을 갖추지도 않았다. 그저 원에 가까운 원이 아닌 원이였다. 일그러져 있었다. 


 "굳이 꼭 이런 것만 주는건 도대체 무슨 심보야."

 "너와 닮았다."


 오이카와는 눈을 치켜세우며 우시지마를 바라보았다. 우시지마는 태연히 그에게서 목걸이를 가로채더니 목에 걸어주었다. 말끔히 체인이 걸리기 까지는 오래 걸리지도 않았다. 


 "넌 진주다. 니가 완벽할 때는 내 옆에 있는 순간 뿐이다."


 그걸 기억해라. 오이카와는 손에 걸리는 진주를 만지작 거렸다. 매끄럽게 돌아가지 않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영락없는 저 였다. 


 그를 사랑하는 자신만이 '나' 였다. 

 


바로크 ; 17세기 유럽의 바로크 풍은 우연과 자유분방함, 기괴한 양상 등이 강조된 예술양식이다 라고 어디서 보고 생각나서 썼는데...음


어떻게 인간적으로 6주 씩 걸린단 말입니까......흐어


엔딩 못내는 병에 걸려 개망!!!!!!!!!!!!!!


Dive To Blue!!!!!!!!!!!!!!!!!!!!!!!!!!!!!!!!!!!!!!!!!!!!!!!!!!!!!!!!!!!!!!!!!!!!!!!!


요즘 서뱀프 파시는데 이제 완성해서 뭔가 더 애매해져버렸다는게 사실이지만..음

뭐랄까, 지나가는 것처럼 가볍게 즐겨주세요


얘네 쓰느라 공부했어요..항상 개그 였지만...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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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 흑염소 님 트위터 입성 축하 기념 글/늦어서 죄송합니다

 

키워드 ; 방금 좀 위험했어

 

(하나하키 소재 ; *하나하키 병은 짝사랑하면 꽃을 토해내는 병입니다!)

-

 

 분명 그것은 무의식에서 흘러나온 한 가닥의 실과 같은 것이였다. 단순한 실보다는 새끼 손가락에 운명 끼리 엮여 있다는 붉은 실 즈음 될 법했다. 물론 그는 동급 여자들이나 좋아할 법 한 운명이라던가 미신이라던가는 믿지 않는 편이였다. 관심조차 없었다. '붉은 실' 전설이라면 흔히 그런 것이였다.

 

 '나는 결코 알 생각도 없었고 알고 싶지도 않았지만 그저 우연찮게 귀에 들려와 어쩌다보니 알게 된 것이다.'

 

 지금 떠올리자니 영 쓸모없는 얘기는 아니였다만 이러나 저러나 귀찮을 뿐이였다. 빌어먹을 꽃 덕분에 잠도 못자고 있는 터였다. 당연히 수면 부족에 시달려야했고 컨디션은 말할 것도 없었다. 수업 때 이미 자고 있는 자신이라 하여도 정해진 수면 시간에서 벗어나는 일은 꽤나 까다로운 것이였다. 무시하고 자면 되잖아? 따위의 제 멍청한 파트너의 조언과는 거리가 멀었다. 자고 싶어도 수북히 차오르는 꽃송이들은 간단히도 제 숨통을 죄여오는 덕이였고 기어코 손가락으로 휘저어 빼내야만 했다. 목 안을 간지럽히는 얇은 꽃잎을 비집어 꺼내면 제 타액에 축축히 젖어 늘어진 나태의 형체를 이루는 곤욕일 뿐이였다.

 

 푸른 자양화 였다.

 

-

 

 세간에서 말하기를 '동경' 과 '애정' 은 전혀 다른 것이다. 접점이 없다 말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 하여 굉장한 접점이 있다 이르기도 애매한 부분이 있다. 물론 죄다 부정할 순 없었지만 어디 시립 도서관에서 엄청난 두께에 먼지가 쌓인 고전적이고 지루하기 짝이 없는 국어사전을 펼쳐보지 않아도 아는 사실이다.

 

 그건 아무리 배구 이외 알지 못하는, 알려고 하지 않는 그라 할지라도 눈에 훤히 보이는 '사실' 이였다. 한자를 떠올리기 까지 조금 시간이 걸릴지는 모른다 하여도 그의 활기 넘치는 파트너가 묻는다면 고민할 새도 없이 머리통을 쥐어박으며 '바보' 를 연호할 것임이 틀림없었다.

 사실 상 그의 세상은 배구와 제 자신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 외 부수적인 것이라면 주위를 겉돌 뿐이지 결코 중심부는 커녕 외곽부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을게 뻔했다.  

 그는 자신에게 솔직한 편에 속했다. 어디 까지나 천연이라는 점에서 충분히 만족할 부분이였지만 그는 지나치게 솔직한 면이 있었다. 아직 덜 컸다는 애틋한 어른의 시선이 아닌 더러운 이면을 알기 시작한 경계의 시선으로 바라본 그는 소년과 청년의 사이보단 아이와 소년의 선에 머무른 채였다. 그렇기에 솔직하지만 그것이 진심으로 제가 느끼는 것인지 조차 구별하지 못하기도 했다. 미숙한 감정이란 것이다.

 

 그는 오이카와 토오루를 동경했다.

 

 이것 만큼은 결코 부정하지 않았고 기정사실이였다. 아직 물기어린 제 눈으로 담은 그는 중심이였다. 빛이였다. 그에 비해 저는 벼랑 끝에 서 있었고 이름을 빼닮은 그림자에 불과했다. 그가 되지 못하여 이런 류의 감정을 느끼는 것은 아니였다. 단지 조금 초조할 따름이였다. 제 자신도 모를 그런 다급함. 저 아래서 부터 걷어차 올라오니 사방으로 가로막혀 밀려드는 기분이란 그리 유쾌할 수 없었다. 가라앉으면 그 아래 풍경이 너무도 뻔해서 그게 더 싫었다.

 왠지 모를 배덕감에 휩싸여 역겨울만큼 푸르른 것들을 바라보건데 저도 모르게 눈물이 핑그르 돌고 마는 것이였다. 금세 소매로 훔쳐내며 알 것 없다는 얼굴로 거울 너머 저를 노려보면 간단히도 비웃고 말았다.

 

 용기조차 없는 애송이.

 

 알아.

 

 욕실 전등이 깜빡였다. 속이 울렁였다. 비적비적 걸어나와 방으로 건너들어가 방문을 걸어 잠그고 침대 위에 걸터앉았다. 어느 센가 익숙해져 버린 습관에 좀 전까지 긁어내던 목을 손으로 감싸쥐었다. 차가워. 분명 낮동안 먹은 것도 없는데 속이 헤집어져 무언가 무의식에 집어 오르려는 감각에 이불 위로 쓰러졌다. 배를 끌어안았다. 찬 것만 집어먹은 것 마냥 차가웠다.

 

 간단히 휴대전화 플립을 열어 버튼 두어 개만 누르면 되는 일이다. 휴대전화라는 게 그런 것이였다. 그런데 제 용도로 쓰이질 못하는 비통함이 떨림이 되어 손가락 너머로 울렸다. 참고 견디다 버티다 못해 결국 작은 플라스틱을 누르면 수신음이 들리기 마련이다.

 

 [예, 오이카와 토오루 입니다-] 

 

 코 끝까지 차오르는 자양화의 향기에 저도 모르게 손을 들어 막았다. 소름 끼치도록 새초롬한 향에 눈 앞이 핑그르르 하고 돌았다.

 

 [으흠- 여보세요?]

 

 혓바닥을 덮기 시작하는 얇은 수술과 잎사귀에 헛구역질 할 수 밖에 없었다. 새어나오는 신음마저 삼킬 수 밖에 없었다. 토비오? 좀 처럼 눌리지 않는 조잡한 버튼을 몇 번이고 내리찍고서야 통화는 끊어졌다. 물론 마지막 말이야 들렸지만.

 

 끝으로 쏟아지는 푸른 자양화에 그는 눈물도 함께 쏟아내야만 했다. 빌어먹을 만큼 온전한 모양새인 꽃송이 하나를 집어들며 소리 죽여 비명을 내질렀다. 짝사랑이란게 그랬다. 수없이 부서지고 조각조각 찢어져도 그 속에는 아직 온전히 감정을 끌어안고 있는 제가 있음을 찾아내고야 만다는 것.

 그는 가만히 온전한 꽃을 도로 입 안에 집어 넣었다. 씹지도 않은 채 삼켜버렸다. 얄팍한 것이 식도를 타고 내려가는 미묘한 감각. 이렇게 삼켜버릴 수 있으면 좋을텐데. 작게 중얼거렸다.

 

 그의 세상은 배구와 제 자신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하지만 그것은 겉모습에 지나지 않는다. 소중한 것을 감싸기 위한 껍데기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그의 중심은 자신조차 잠식시켜버렸다. 플립조차 닫지 않은 채 '통화 종료' 라는 안내가 떠있는 화면에 다 잠긴 목소리로 웅얼거렸다.

 

 오이카와 씨. 전 당신을 이렇게 사랑하고 있습니다. 

 

-

 

늦어서 죄송합니다.

 

자양화=수국입니다! 이 쪽 어감이 더 마음에 들어서..쓰면서 수국으로 바꿔야하나 하고 엄청나게 내적갈등했습니다

 

꽃말이 "당신은 아름답지만 차갑다." 이고 여기서 이 글이 시작했습니다. 진단 메이커 씨 도움도 있었지만 아무래도 시작이 반이라니

 

뭔가..음- 죄송합니다

 

사실 얘네 안파는 애들이라 공부하고나서 썼습니다

만족....하실련지 나도 모르겠다..

 

이제 뒷감당 어떻게 할지 궁리나 해보겠습니다

Dive to Blue

 

다시 한번 우리 존잘님의 트위터 입성을 축하드리며 (짝짝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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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쿠아카 키워드 ; 비

 

(쿠로켄 조금이랄까요)

-

 

 "아카아시 군, 미안한데."

 

 전화, 받아봐야 될거 같아. 그녀는 엄지와 새끼를 들고 나머진 접어보이며 귓가에서 흔들어보였다. 어딘가 청초롬 해보이는 그녀는 싱긋 웃으며 기꺼이 그가 일어날 때까지 기다렸다 받아, 라며 유선 전화기를 가리키곤 돌아섰다. 뒤집어놓은 수화기를 들어 잠기는 목소리로 답했다.

 

 "'이부' 입니다."

 

-

 

 부엉이 hibou[ibu] 라는 의미를 가진 '이부' 는 독어이자 아카아시의 회사명이기도 하다. 맞춤형 가구 제작소로 디자인의 전면을 떠맡고 있는 실정이다. 이 제작소가 조금 특이한 점이 있다면 디자인, 소재, 길이, 높이, 폭을 포함한 모든 것을 선택형으로 고객의 '맞춤형'으로 제작한다는 것이다. 제작 5명 디자인 1명 내외 업무 3명으로 매번 10명 이상이 되지 않다는 점에서 혹사 당하고 있는 건 아닐까 라며 자주들 떠들곤 한다. 

 

 물론 인원수가 그런 만큼 한달에 주문은 크기에 따라 소 중 대로 나눠 각각 7개, 4개, 2개로 제한한다. 그러지 않는다면 진정으로 혹사 당할 처지가 틀림 없었으니 말이다. 고객 중 감사히도 도안을 그려보내주시는 분들이 있기도 하다. 하지만 대부분은 그저 이런이런 느낌이였으면 좋겠네요, 라던가 이런 색깔로 해주세요, 라던가의 희망사안만을 적기 때문에 아카아시는 만만찮게 그를 고려해야만 했고 결국 도안을 서너 개를 그리고 제작부에 넘겨 다수결로 붙여버렸다. 결과적으로는 고객에게 묻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지 않냐는 질문은 회사측에서 부정하기 때문이다. 당신의 상상을 꺼내드립니다. 이부의 공식 문구이다. 그렇기에 신비주의적 성향이 강했고 그런 점이 아카아시를 자극했다. 따지고보면 '사장' 입장이였지만 공동대표니 뭐니 해도 막연히 귀찮을 뿐이였다.

 

 그녀. 카미에 쇼는 잘 웃는 편이다. 아니 항상 웃고 있다. 공동대표인 그녀는 아카아시와 아무런 사이도 아니였고 아니며 아닐 것이다. 그저 같은 대학이였으며 다른 학과였고 우연찮게 도서관 앞 자판기에서 커피를 뽑아 덩그러니 놓아두고 사라진 것을 도로 주었을 뿐이였다. 뽑아놓고 그냥 가세요? 흔들어보이면서 웃는 그녀와 어쩌다보니 같은 것을 공유하게 되었고 어쩌다보니 많은 것을 알게 되었고 지금에 닿은 것이였다.

 

 웃는 모습이 미묘히 누군가를 떠올리게 해서 조금 괴로웠다. 닮은 것은 아니였지만 조금 마음이 쓰였던 것일 뿐이였다. 난 아카아시 군한테 마음 전혀 없는걸. 걱정마. 알아. 멀쩡히 임자 있는 사람 이상하게 만들지 말자, 우리.

 

 그녀는 집안에서 약속한 약혼자가 있었다, 물론 파혼 상태이긴 하지만. 좋아하던게 아니였냐는 물음에 푸스스 웃어보이면서 이젠 아니잖아. 라며 취기가 도는지 반쯤 풀린 눈으로 아카아시에게 기대었다. 아직도 임자 있는 몸이야? 글쎄. 그치만 처음부터 말했잖아- 난 너한테 마음 없다고. 제법 멀쩡히, 경쾌히 거리를 휘적이며 걷는 뒷모습이 조금은 부러웠다. 확실히 말하자면 그녀는 매력있는 여자이다. 똑 부러지고 깔끔한 타입으로 유럽계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의 혼혈아로 특유의 뽀얀 살결이 눈에 띈다. 연한 갈색의 머리칼이 허리부근 까지 흘러내리는 그녀는 사랑받는 존재이다. 겉으로도 다 보일 만큼 그녀는 사랑 받고 자란 이였다. 다만 고집스레 웃는 모습에 걸렸다. 막연히 사랑만 받은 것은 아니리라 그리 생각했다.

 

 '힘들면 울어도 되는데 말이야.'

 '운다고 뭐가 바뀌진 않잖아.'

 '그거야 그렇지.'

 

 하지만, 울어도 된다고 얘기해준건 아카아시가 처음이야. 등에 기대오는 탓에 다독여주지 못했지만 응어리가 풀리는 느낌이였고 날개뼈 아래가 축축히 젖어오는 기분이였다.   

 

-

 

 "아카아시, 아카아시. 아카아시 케이지-."

 

 아카아시는 사경을 헤매다 잠에서 깼다. 분명 낮은 음성이였을 터인데 눈을 뜨면 가늘고 얇은 여자의 목소리로 변질되어 있었다. 머리가 띵하게 울리는 것은 언제나와 같았다. 늦가을의 빗소리가 창가를 두드리고 아카아시는 빈백소파에서 담요를 둘러매고도 시린 손으로 눈가를 문질렀다. 빈 머릿속을 누군가 연신 두드려대는 것만 같아 두어번 마른 세수를 하다 말고 오른 손으로 목을 감쌌다.

 

"미안해, 근데 제작부 애들이.."

 "갈게."

 

 겨울용 담요를 소파 위에 얹어두고 일어서는 발걸음이 위태롭기만 했다. 초점이 확실하지 않았고 아직 강하게 관자놀이를 가격하는 느낌의 어지러움에 어쩔 새도 없이 도로 소파 위에 쓰러져야만 했다.

 

 "아카아시!"

 

 배를 끌어안고 웅크리는 것이 영락없는 아이였고 찡그렸다기보다 울상에 가까운 얼굴에 쇼는 이마에 손을 갖다댔다. 야- 너 아프면 아프다고 말을 하라고. 사장이나 되는 놈이 말이야, 아카아시? 작게 웅얼거렸다. 단말마를 지르는 얼굴이였다.

 

 "잘못,했, 습니, 다."

 

 울음기 다분한 목소리였다. 몇 번이고 부르짖는 모습은 다섯 살배기 아이의 애원에 가까웠다. 쇼는 가만히 담요를 끌어 덮어주며 머리칼을 쓸었다. 가지, 마세요. 잘못했어요. 물기 머금은 목소리에 그녀는 자리를 뜨지 못하고 무릎을 꿇고 그 앞에 앉아 작은 아이의 곁을 지켰다. 그래야만 할 것 같았기 때문일지도 모르지만 제가 이제껏 아카아시를 봐왔던 모든 순간을 지켜내기 위함에 가까웠다. 넌 원래 그런 사람이니까. 그리 치부해버리는 행위가 위태롭다 되내이면서도 그러지 않을 순 없었으니까, 그러니까 그녀는 말없이 시리게 떨리는 손을 잡아주지 못해 그저 가만히, 가만히.

 

 사실 그녀는 아카아시의 고질적인 병과 같은 증상에 대해 꽤나 알고 있었다. 물론 본인에게서 들은 것이야 몇몇에 불과하지만 주위에서 들은 것이 훨씬 유용한 정보였다. 구미가 당길 법한 이야깃거리였고 술자리에서 한 술 떠보기도 하였다. 다만 확신했던 것은 여느 때와 같은 비가 오던 날이였다. 쏟아지는 비에도 그는 여전히 작업실에 박혀 살았고 무기력했다. 점심시간이 가까워졌고 이러니 저러니 귀찮다 싶은 마음에 배달 음식이 적절하다며 한 입을 모았고 단순한 주문을 위해 들어갔다 반 쯤 기절 상태에 가까울 정도로 흐느끼는 목소리를 듣고 말았다. 작업대 위에 이질적인 느낌인 반지가 놓여 있었다. 그 뿐이였다. 물론 후에 캐물어 결국 알아낸 것이긴 했지만 여자의 감이란 것은 무시할 수 없는 노릇이였다.

 

 "애인, 이였어."

 "헤- 과거형?"

 

 말없이 작게 고개를 끄덕여보이던 눈 위로 안도감이 피어올랐다. 무엇에. 도대체 무엇에 안도하는걸까. 어디까지나 생각에 불과했다. 입 밖으로 꺼내진 않았다. 그걸 위해 이제껏 그리도 참아왔노라 생각했기 때문이였다. 예나 지금이나 그것만은 같다. 금기어와 비스므리한 뉘앙스를 지니는 '그것' 은 둘 사이의 비밀로 붙였다. 지키지 않는건 매한가지 였지만 말이다.

 

 이름 불명. 나이는 한 살 연상. 극히 활발하고 기운이 심히 넘친다. 애같이 구는 경향이 강하다. 애정 표현이 많다. 누구에게나 공평한 애정을 준다. 지각하는 한이 있더라도 머리는 세우고 다닌다. 학교 선배이다. 쇼가 아는 아카아시의 전 애인에 관한 것이다. 단도직입으로 물어서 안 것도 있지만 역시 알코올이 들어가면 잘 나오기 마련이다. 그리고 요즘 많이 느끼는 두 가지가 남아있다.

 

 하나, 도저히 이름은 알 수가 없다.

 하나, 그는 아직 그 사람을 좋아하고 있다.

 

 그녀의 파혼에 담담하던 것도 이런 이유일 것이 틀림없었다. 같은 처지 라는 거지. 물론 그리 유쾌하지 않은 그녀의 끝과 아카아시의 끝이 어떻게 다를지는 미지수였지만 이별이라는 상황은 지극히 변함없었다.

 사실 그녀가 그를 만났을 적은 이미 둘은 갈라선 상태였기에 둘의 관계가 어떠하였는지는 주위에서나 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지난 일을 듣노라 하거니 아카아시 또한 제법 사랑 받은 테가 났다. 그런 애정에 익숙해져 다시 혼자 그 뒤엉킨 속을 가라앉히기 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을 허비 하였을까. 아카아시 케이지란 남자가 그랬다. 쉬이 마음을 주지 않았지만 한 번 준다면 설령 먼저 끊어져버린다 해도 결코 돌아서지 않는다고, 그런 감정이라고. 깊음이 무엇인지 아는 남자였다. 그리고 그리 깊게 애정하고 창을 열고 그를 맞이했을 터였다. 미워했을까. 새겨두었을까. 무엇도 아닐테지만, 아무것도 털어놓지 않는 눈은 깊었다. 쇼는 그런 눈을 사랑했고 도로 피어나길 바랬다.

 

 쇼는 아카아시의 장점이라면 두 손으론 도저히 모자르다 곧잘 말하고 다녔다. 그 만큼 아끼는 터였고 애정을 쏟아붓는 것이였다. 그것은 도저히 '사랑' 이라 부르기 어려운 형태였고 둘 모두에게 부정당하였다. 아직 남아있노라 다른 이에게 마음을 주기가 버겁다며 몇 번이고 중얼거렸다. 카미에 쇼의 약혼자는 커다란 키의 남자였다. 수트가 잘 어울렸다. 운전실력이 영 나쁘진 않았지만 그닥 즐길 수 있지는 않았다. 스포츠는 관람을 선호했다. 선천적이라 믿지만 매사에 급했다. 그 점이 조금 숨 막혔지만 몇 해가 지나며 몸에 익고나서부터는 즐거운 것이 되었다. 다음은 그러겠지, 라며 시간 떼먹기 좋은 놀잇감이 되어주곤 하였다. 

 물론 끝까지 재미를 가져다 주는 장난감 행세를 하진 않았지만 말이다. 두 달 정도 제 약혼자를 바라보더니 그녀가 물었다. 사랑해? 주체가 없었지만 여전히 웃고 있던 그녀는 어렴풋이 알고있었다, 이 시간부로 그 주체는 제가 될 수 없음을. 겸연쩍은 듯 애매모호하게 웃는지 우는지 당황한지 알 수 없는 표정을 한 그에 그녀는 푸스스 웃음을 터뜨렸다. 받을 적부터 제게 조금 컸던 약혼반지는 언젠가 꼭 줄이자고, 다시 맞추자고 약속했던 것이였다. 굳이 귀찮은데 그러지 않아도 좋다 하였지만 섭섭할거라며 제 의사를 마음대로 정해버렸었다. 아직도 안맞아. 그녀는 작게 소리내어 웃었다. 그 사람한테는 맞을거야. 그 투박한 손에 건내고 돌아섰다. 울지도 않았으며 원망하지도 않았다. 단지 조금 허 했을 뿐이였다. 그리고 지금에 와서야 종종 떠올릴 따름이였다. 그럴 때마다 습관마냥 볼 안쪽 살을 잘근 거리곤 했다. 그 땐 어렸다고, 그러니 제 감정에 솔직해지고 싶지 않았다고, 구차하게 굴고싶지 않았다고.

 

 그리워하고 있다고.

 

-

 

 "매번 신세지네."

 "아니요, 얼굴이라도 보고 저야 좋죠."

 "천하의 이부에 하나 뿐이라는 디자이너가 이렇게 손수 해주시는데 황송하지."

 "이거, 도로 들고 가도 되는겁니까."

 "아니, 아니, 아니. 감사히 잘 받겠습니다- 라는거지."

 

 단순한 사람. 아카아시는 작게 중얼거렸다.      

 

 디자이너가 물론 본업이기야 하지만 취미삼아 조금씩 제작부에서 배우는 턱에 시험삼아 무언갈 만들면 곧잘 남에게 주었다. 가장 처음으로 리스트에 이름 올린 상대라면 쿠로오 테츠로 이다. 제 과거 연인의 친구이자 친구, 라기에는 조금 다른 느낌이다. 워낙이나 속을 알 수 없는 작자라 무의식에 경계하고 있다고 아카아시는 생각한다.

 

 "또 굉장한거 만들었네."

 "굉장하지 않습니다."

 "난 범인(凡人)이라 그냥 다 대단해보이는 겁니다-."

 

 어디까지나 배우는 단계에 있고 무엇보다 제 손재주가 생각보다 쓸만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달아버린 탓에 간단한 것들 위주로 손을 대고 있는 터다. 이번에 쿠로오에게 가져다 준 것만 해도 선반일 뿐이였다. 널빤지에 양 옆에 두어개 덧대면 끝이니 그다지 제가 손 본 것도 없다. 다만 조금 정성들인 곳이라면 기둥 모양으로 깍아 윗 부분을 부엉이로 조각한 정도랄까. 꽤 고생한 건 사실이다. 실제로 손가락 어딘가 베인 것도 사실이다.

 

 "무리하지 않는게 좋다고, 아카아시 군."

 "괜찮습니다."

 

 쿠로오는 어느 센가 손가락을 감싸쥐고 있는 아카아시를 지긋이 바라보았다. 고교 시절부터 봐왔기에 저것이 결코 얄팍히 베여나오는 통증을 위한 것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것 쯤은 잘 알고 있었다. 버릇이였다. 마디를 감싸쥐고 눌러대는 그저 단순한 버릇.

 

 "괜찮다는 얼굴이라도 하고 말하는게 좋지 않을까."

 "쿠로, 또 케이지 괴롭히고 있지."

 

 켄마는 인상을 구기며 방 안에서 지친 걸음으로 쿠로오에게 향했다. 요란한 머리카락이 분명 자다 일어났음을 말하고 있었다. 아직 졸린 눈을 한 켄마는 쿠로오를 지나 아카아시의 품에 안착했다. 얼굴을 묻고 조금 비비적 거렸다. 고양이 같아. 아카아시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야 들으면 좋아하지 않을게 분명하니까 기분을 상하게 하고 싶진 않았다.

 

 "언제 왔어."

 "방금."

 "밥은?"

 "아직."

 

 나왔다, 초간단 대화. 쿠로오는 옆에서 놀림조로 키득거렸다. 어디까지나 둘 다 고교 시절이나 그 전부터 말 많은 상대에게 끌려다니기 일쑤였으니 말수가 적은 상대가 편할 터였다. 놀림조였음은 사실이지만 그러는 쿠로오도 켄마가 아카아시와 대화하는 것을 싫어하지 않았다. 오히려 좋아했다. 제게 보여주지 않는 애교가 자연스레 묻어나는 사람 중 하나였으니 말이다.

 

 "안 먹을거야?"

 "글쎄."

 "나, 할말있는데."

 "뭔데."

 

 켄마는 파묻고 있던 고개를 들어 쿠로오와 시선을 마주했다. 한참이고 말 없이 바라만보는게 위태로웠다. 켄마.

 

 "돼?"

 

 저게 일 치려고.

 

 "안돼."

 "그치만-"

 "안돼."

 

 켄마는 토라진 얼굴로 다시 고개를 묻었다. 켄마-.

 

 "켄마."

 "아."

 "뭔데."

 "오늘,"

 "아, 아카아시!!"

 

 쿠로오는 어쩔새도 없이 소리를 내질렀다. 진짜 일 치네. 아카아시는 천천히 시선을 옮겼다. 켄마 역시 그랬다. 아- 그, 그러니까. 밥 먹고 가라고. 아카아시는 두 눈을 두어 번 내리감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감사히. 다행히 그것은 수락의 뜻이였다.

 

-

 

한 번에 못 끝내겠어요..

하 편 쓰긴 쓸까..슬슬 걱정입니다..에라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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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몽님 리퀘 ; 죽음

 

센티넬버스/왠지모르게 오이이와오이st 지만 전 오이이와라고 주장할겁니다 

-

 

 죽었다. 이와이즈미가 죽었다. 이와이즈미 하지메가 죽었다.

 

 불공평해. 오이카와는 말했다. 애석하게도 그것은 이와이즈미 하지메의 입버릇이였다. 그토록 버릇다운 버릇을 들이라 했지만 끝내 물들고 말았다.

 

 왜 그랬어. 대답. 대답. 대답.

 

 그렇게 기다리기만 한다면, 언제까지고 기다려준다면 답해줄까. 확실한 것은 결국 하나였다. 아니.

 

 이와이즈미 하지메는 죽었다.

 

-

 

 정부 산하 기구의 명은 유려한 영어인터라 그다지 기억이 나지도 않았다. 가이드 라인, 따위의 흔해빠진 것에 불과했다. 빠른 발현 10세부터 늦은 발현 20세에 덧붙여 조기 발현 증상 등 자잘한 것을 더해 관리하고 통제하는 곳이다. 그렇기에 자국민들은 의무적으로 10세를 기점으로 5년마다 재검사 판정을 받아야한다. 결과는 세 가지 뿐이다. 가이드. 센티넬. 노멀. 이 중에서도 가장 귀찮은 것을 고르라 한다면 역시 센티넬이다. 노멀은 말 그래도 무특성. 일반인. 가이드는 피 검사와 조직 검사 정도의 한 손 안에 꼽을 수 있는 베이스 데이터만 작성한 후 등록하면 끝이다. 그에 비해 센티넬은 신체검사부터 능력지수, 발현시기, 구체화, 한계에 이르기 까지 공식적인 검사만 열댓가지에 이른다. 물론 등록 후는 가이드나 센티넬이나 할거 없이 시설에서 트레이닝을 받아야하지만 말이다.

 오이카와는 조기 발현자였다. 그는 이미 9살에 가이드 판정을 받은 지 오래였고 반면 이와이즈미는 볼 것도 없이 노멀이였다. 중학교 시절의 이야기 이다. 여름 방학을 맞이해 원치도 않는 가이드 캠프를 언제나 처럼 발을 질질 끌며 갔고 그런 오이카와를 떼어놓으며 다녀오라던 이와이즈미는 평소와 다름이 없었다. 이와쨩, 나 보고 싶어도 울면 안돼?! 울까보냐! 가벼운 인사 후도 아무렇지 않았다. 단지 밤에 옅게 열에 시달렸다. 몇 일이 지나도 그의 상태는 지극히 멀쩡했다. 조금 어지럽다 느낄 뿐이였다. 2주 째에 접어들자 위장이 역류했다. 목 안이 매말라 목을 내리 긁었다. 어린 것의 통증은 날을 세우고 피를 맺히게 하였다. 막 한 주가 끝나갈 무렵 결국 병원을 찾을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의사의 입에서 나온 말은 꽤나 충격적인 것이였다.

 

 "병원이 아니라 가이드 라인 시설 쪽을 가보시게 어떠신지요."

 

 흔히 센티넬들이 겪는 현상이라 말했다. 안정화 시켜줄 수 있는 가이드가 없기에 초기에 쉽게 폭주해버리는 경우가 있다며 시설에 연락을 넣어주었다. 그리고 홀로 캠프를 마치고 돌아온 오이카와를 맞이해주던 이와이즈미는 없었다. 그가 제 오랜 친구를 만나기 위해 발걸음을 옮긴 곳은 옆 집이 아닌 시설이였다는 것이 전부였다. 또래에 비해 발현이 늦은 감이 있다며 갑작스런 센티넬 발현에 시설 간호사는 이와이즈미의 부모님들을 진정시켜야 했고 무의식에 안정화가 되고 있었다, 라는 말을 전했다. 가이드가 옆에서 무의식에 안정화시켜 발현 자체가 늦추어진 것이다 라는 하얀 진실이였다. 가족 중 가이드는 없었다.

 이와이즈미가 인공 안정화를 받은 후 정신이 돌아오자 반나절은 센티넬 명부에 이름을 올리기 위해 수많은 검사를 할 수 밖에 없었고 나머지 반은 아무 사정도 모르는 오이카와를 진정시키는데 걸렸다. 일주일 후 공식적인 서류가 둘 앞에 날아왔다. 길고 따분하고 지루하고 복잡하며 딱딱한 전문용어 세례였지만 결론은 그것이였다.

 

 오이카와 토오루 님의 센티넬은 이와이즈미 하지메 님 입니다.

 이와이즈미 하지메 님의 가이드는 오이카와 토오루 님 입니다.

 

 그 후 왠지 모르게 서먹해진 사이는 얌전히 휴일을 시설에 반납하면서 무색해져버리고 말았다.

 

 "불공평해."  

 "뭐가?"

 

 훈련 중 트레이닝 룸 바닥에 나뒹굴며 턱 아래 진 땀방울을 훔치던 이와이즈미는 미간을 구겼다. 드링크를 입가에 가져다 대며 검지로 오이카와의 팔뚝을 찌르자 커다랗게 눈을 끔뻑일 따름이였다. 나? 그래, 너.

 

 "내가 뭐 어때서."

 "니가 가이드지, 센티넬이야, 어? 측정기록이 그렇게 나오면 괴물이지. 멍청한 자식."

 "이와쨩이 나보다 높은걸."

 "그게 아니잖아, 망할카와. 내가 너하고 뭔 얘길하냐."

 

 이와이즈미는 재차 고개를 내젖다 드링크를 던지고 언제 지쳤냐는 듯이 벌떡 일어나 문 밖으로 뛰쳐나갔다. 얼굴 정면을 정확히도 맞은 오이카와는 옅게 붉어지는 이마 부근을 매만지며 이내 따라나갔다. 이와쨩- 나 아파! 아프라고 던졌는데 안아프면 안되지. 겍- 나빴어. 시끄러워.

 

 이와이즈미는 나 센티넬, 쟤 가이드 따위를 티내고픈 추호도 없었기에 가벼운 스킨쉽조차 거부하곤했다. 밖은 당연하지만 시설 내에서도 그냥 살갗이 닿는 것을 싫어했다. 물론 연인 사이라던가는 아니였으므로 그러려니 싶게 생각할 법도 했지만 안정화 조차 꺼려하는 턱에 시설 관계자들에게 걱정을 받기도 했다. 아아- 이와쨩 부끄러운거 다 알아. 그러니까 어서 이 오이카와 상에게 안겨, 라는 식으로 구는 날이면 한시도 같이 있으려 들지 않았다. 볼거 다 본 자식인데 굳이 뭘 그래야하냐며 알량한 자존심 문제에 불과했지만 말이다. 그러다가도 늦은 밤 귀갓길에 보는 눈도 없다며 칭얼거리기라도 하면 누가 아니랄까 두어 번 짜증을 내다가도 양쪽 볼을 부풀리며 툴툴거리면 한숨 짙은 말투로 이번 뿐이라고 얌전히 제 손을 내어주곤 하였다. 그러면 오이카와는 잽싸게 손을 잡아채 손가락이 얽히게, 서로의 더울 법한 열기에도 좋아라 붙잡고 놓지 않았다. 오이카와는 저에게만 져주는 이와이즈미가 좋았고 이와이즈미는 손끝에 감겨오는 긴 손가락을 싫어하지 않았다.

 

-

 

 사실 가이드와 센티넬의 관계가 그러했기 때문에 결혼까지 하는 경우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가이드의 입장에선 어떨지 몰라도 센티넬은 가이드 없이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어쩌면 일방적으로 복종 관계가 나타나기도 하지만 어디까지나 어두운 면이라 하겠다. 안정화를 위해서 심한 경우나 각인을 찍어버릴 경우는 관계를 가지기 때문에 그 편이 바람직할지도 모른다.

 기계나 의약품의 힘을 빌려 센티넬의 폭주를 의도적으로 막을 수 있는 것은 4번 뿐. 이후는 면역의 문제인지 정확히 모르지만 비슷한 것으로 인해 몸이 말을 듣지 않는 모양이였다. 더군다나 심한 경우는 육체적 고통에서 죽기라도 한다니 어쩔 도리도 없었다.

 

 제 자신에게 물어보자면 오이카와는 이와이즈미를 좋아했다. 자각한 것이라면 중학교 시절이였다. 정확히는 이와이즈미의 센티넬 발현 후 였다. 그래서 이와이즈미가 제 센티넬이라는 사실에 말하진 않았지만 굉장히 만족스러웠다. 일종의 소유욕이였다. 따지고 보면 좀 더 오래 전부터 짝사랑이란 감정을 품어왔을 터였다. 소꿉친구라는 타이틀이 괜히 있는게 아니였음에 오이카와는 선뜻 다가서지 않았다. 그게 최악의 선택지일테니. 좋아해. 이 한마디를 깊게 묻어놓고 잘도 웃었다. 그래도 틀린 방향은 아니였다. 확실히 한 조각 한 조각 집어삼키고 있었으니까.

 

 이와이즈미에게 남아있던 기회는 세 번이였다. 같은 공간에 있는 것만으로 괜찮던 시기를 넘어서자 이와이즈미는 간단히 정신을 잃었다. 안정화 핑계로 치근덕거리던 오이카와를 떠올리자니 위장이 싸해지는 기분에 좀처럼 손도 잡지 못했다. 아득해져 오는 정신을 부여잡고 머리를 헤집으며 나서자 다리에 힘이 풀렸다. 소리에 뒤따라나온 오이카와는 얼굴을 어루만져주었다. 눈에 선 핏발에 눈가에 도드라지게 드러난 혈관과 삐걱이는 손가락에 더불어 턱턱 막혀오는 숨에도 이와이즈미는 오이카와를 밀어내었다. 사람, 불..러, 와. 순간 오이카와의 얼굴이 눈에 띄게 굳었다. 하지만 별말 없이 뛰어갔다. 그리고 눈을 떴을 때는 입가에 굳은 피가 엉겨붙어 있었다. 목이 따가웠다. 손 끝이 아렸다. 보기 좋게 수직으로 그인 목에 난 선들과 두어 군데 손톱이 빠져버린 손가락에 이마에 바늘자국과 곳곳에 멍자국. 시설 병동에서 작게 신음하자 오이카와는 말했다.

 

 "언제까지 그럴꺼야."

 

 핏기 가신 눈이였다. 아직 두어 개의 인영이 겹쳐보이는 오이카와에게 손을 뻗었다. 나름 기세좋게 뻗어올라 파르르 어깨 위에 안착했다. 오이카와. 오이카와는 말없이 그 손을 잡고 상체를 숙였다. 애석하게도 첫키스는 핏비랜내였다.

 

 물론 그 후로 쉽사리 먼저 다가오는 일은 없었지만 손 정도는 용서해주는 분위기 였다. 오이카와는 여전히 잘도 웃고 다녔다.

 

-

 

 재능은 피워내는 것. 센스는 갈고 닦는 것. 오이카와와 이와이즈미는 그 말이 무색하리만큼 특출났다. 굳이 나쁘게 말하자면 무자비였지만 말이다. 오이카와는 작전 지휘에 두각을 보였고 왠만한 중상급 센티넬과 대등할 법한 측정기록의 소유자였다. 이와이즈미는 제 능력인 방향 감각 극대화로 사격 실력이 출중했다. 덕분에 최전방을 덥썩 받아야만 했다. 생존 확률이 희박하다는 최전방 중에서도 선발대에 배치 받았다. 모래 사막 지형이였다. 폭풍이 자주 휩쓸고 지나가는 구간이였고 시체도 찾지 못한다는 말이 돌만큼 난폭한 곳이였다. 안타깝게도 극도의 확률 전쟁에서 이와이즈미는 살아남았다. 상처 하나 없이, 는 아니였지만 적어도 피 흘리진 않았다. 모래의 잔재 정도에 불과했다.

 

 "이와쨩, 다녀왔어?"

 "어."

 

 땀과 전우인지 적인지 모를 혈흔에 모래를 끼얹은 것을 덕지덕지 붙이고 전초기지로 돌아오면 오이카와는 두 팔 벌려 이와이즈미를 끌어안았다. 수고했어, 이와쨩. 시큼한 비릿내와 손끝이 저릿한 이와이즈미 특유의 체향에 어깨에 코를 박곤 했다. 다치진 않았어? 날 뭘로 보는거냐, 젠장카와. 역시 내 이와쨩.

 오이카와의 경우는 작전이나 지휘 역이 였기에 후방지원에 소속되어 있었고 이와이즈미는 말할 것도 없이 선발대 였다. 말이 후방 '지원' 이지 사실은 그저 기지에 눌러앉아 선발대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는 역할에 불과했다. 가끔 심심한 나머지 스톱워치를 눌러놓고 기록을 재기도 했다. 기지 내 방송으로 귀환 소식이 들리면 극심히 내달리던 시계를 멈추고 군장 준비실 앞까지 한걸음에 뛰어가 제 센티넬을 맞이해 주곤 하였다. 보란 듯이 두 팔을 벌리고 환하게 웃으면서 마치 뒤에 후광이라도 비칠 태세였다. 보는 눈이 많기에 그런 짓을 병적으로도 해대는 것을 잘 아는 이와이즈미 였지만 그 정도는 어리광으로 뵐 뿐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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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날 역시 그랬다. 옅게 바람에 묻어나는 모래 한 웅큼을 용케도 입에서 토해내며 철제 책상을 손톱 세워 두드리며 이와이즈미를 기다리고 있었다. 방송이 울리기 전 귓가를 때리는 요란한 기계음에 오이카와는 푸스스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군장 준비실로 향하던 복도였다. 몇 번이고 지겹게 듣던 멘트를 중얼거리고 있던 참이였다.

 

 [선발대가 급습당하였습니다. 제 1 후방지원 조는 지금 즉시 군장 준비실로 모여주시기 바랍니다. 다시 한 번 알립니다. 선발대가 급습당하였습니다. 제 1 후방지원 조는 지금 즉시 군장 준비실로 모여주시기 바랍니다. 이상.]

 

 "선발대가 귀환합니다. 최외곽 구역 게이트가 열립니다."

 

 멋나게 첫머리만이 맞아떨어졌다. 느긋하게 옮기던 발걸음이 우뚝 멈추어섰다. 급습? 오이카와는 고장난 것마냥 스피커를 올려다보았다. 이와쨩? 두 번째 집합 방송이 울리고나서야 정신을 차린 오이카와는 가장 늦게 도착해 가장 먼저 준비를 마쳤다. 후발대의 준비가 끝마치기 까지도, 전투지역에 도착하기 까지도 오이카와는 무선 연결만을 시도 하고 있었다. 이와이즈미 하지메 코드 번호 A-04798. 폭풍 때문인지 연결이 불가능하다는 문구만이 떴다. 젠장. 이를 악 물었다. 절대 그럴리 없다고 알면서도 불안에 젖어 내리앉는 고동은 어쩌지도 못했다.

 

 "후발대는 지금부터 수색작업에 들어간다. 적과의 접전은 피하고 아군의 위치 파악을 최우선으로 한다."

 

 예상보다 극심히 모래폭풍에 고글을 쓰고도 눈을 제대로 뜨기 힘들었다. 이런 날이라면 속공보단 후퇴지. 오이카와는 간신히 연결된 채 깜빡이기를 반복하는 GPS 기기를 붙잡고 현 위치와 설정한 목적지만을 바라보며 나아갔다. 이와쨩! 어디야! 단단히 조여맨 제복과 살갗 사이로 날카로운 감각이 파고들었다. 화력이 부실한 탓에 개조한 리볼버를 놓칠새라 고쳐쥐며 갈라지는 목소리로 내질렀다.

 

 "이와이즈미!!"

 

 발치에 걸리는 느낌에 주위를 살피자 사나운 바람에 휩쓸린 것은 GPS 송신 기기가 부착된 이와이즈미의 제복이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한 땐 제복 블레이저였을 혈흔이 낭창한 넝마였다. 손바닥이 축축해지도록 불쾌한 감각에 오이카와는 아랫 입술을 짓이겼다.

 

 "이와이즈미 하지메!!"

 

 모 동화의 폭풍에 집이 날아가버렸다는 얘기처럼 모래 위 떨어진 혈흔이 날아가버리고 있었다. 오이카와는 고글을 눌러 활성화 시켰다. 눈 앞에 기계판이 나타나며 요란하게 흔들렸다. 열 감지로 돌리자 열 걸음도 안되는 곳에 사람의 인영이 포착되었다.

도무지 사람이라는 것 이외에는 생사조차 알 수 없다는 기계음에 오이카와는 꽤 난폭하게 시스템을 종료시켰다. 이와이즈미? 리볼버를 이마에 겨누고 조심스레 바짝 붙자 그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이, 이와이즈미..! 어쩌다, 다친거야? 어디야, 심해? 아파? 괜찮은거야?!"

 "시, 끄러..하나 씩, 물으란 말이다, 넌."

 

 군복 식 제복인 점을 감안하더라도 블레이저와 그 위에 따로 방탄 가능한 외투 형식의 옷이 있다. 그게 생각보다 제 몫을 톡톡히 해내는 것이였다. 다만 이와이즈미는 방탄 외투는 커녕 보란 듯이 셔츠까지 찢어 대충 둘둘 말아놓은 상태가 심각했다. 이런 날이라면 감염은 거의 확실히 보장된 거나 마찬가지였다. 오이카와가 이와이즈미의 허리께에 손을 넣어 상체를 조심스럽게 들어올리자 신음이 터졌다. 별 도리없이 오이카와는 제 무릎을 세워 받치고 수통을 열어 지혈 중이던 손을 치우고 들이부었다. 이와이즈미가 크게 들썩였다. 오이카와 역시 이를 악 물고 그의 손을 맞잡아주고 있었다. 참아. 젠장, 그만..둬..! 참아, 출혈 심해지면 또 폭주할거야. 난 그렇게 안둬. 손등 위로 자잘한 근육 사이로 혈관이 돋아오르고 뼈가 드러났다. 더 세게 잡아. 오이카와는 급히 안주머니에서 상시로 가지고 다니던 새하얀 행커칩을 꺼내들어 이와이즈미의 입에 물렸다. 참아. 스며드는 고통에 잇자국이 남도록, 찢어발겨지도록, 얼마 가지 않아 행커칩은 더 이상 하얀색이 아니였다.

 

 "망할, 카와.."

 "말하지마. 다시 물어."

 "9시 방향에, 한 마리. 11시 방향에, 두 마리..처리해."

 

 오이카와의 미간이 꿈틀거렸다. 뭐라할 새도 없이 제 리볼버를 9시 방향으로 들어 조금 힘을 빼고 방아쇠를 당겼다. 팔이 떨리는 감겨오는 진동에도 무표정이 역력했다.

 

 "야, 리볼버, 주제..탄환 아껴, 뭘, 내 꺼 써라."

 "두 발이면 충분해. 다시 물어."

 

 오이카와는 이번엔 고개를 들어 11시 방향을 응시했다. 소음기 들고 왔어야 했네. 그래도 이 난리에 총성이 들릴리가 만무하다는 것을 자각하며 고글의 시스템을 재가동시켰다. 두 마리. 성가셔. 아까와는 다르게 팔 전체에 힘을 준 채 당기자 어깨가 조금 뒤로 밀리고는 빈 수통을 내던졌다. 상처 위를 열기로 지지자 신음성 비명이 터져나왔다. 목소리가 아니라 목에서 울리는 소리였다. 참아.

 

 "그, 만..둬."

 "닥쳐. 참아. 이대로 죽게 둘거 같아?"

 "늦었다고, 말하잖아. 망할 자식아-. 내 말 좀, 마지막인..데, 쳐, 들어..!"

 "누가 멋대로 마지막이야, 이대로 복귀해서 전선 다시 바로잡고, 우리 쪽 피해가 크면, 지금 만회하면 되는, 거 잖아. 그러니까 정신 차려." 

 

 잠잠해지는 폭풍우에 이와이즈미는 울컥하며 핏덩이를 쏟아냈다. 처참하게 토해진 응어리들은 말간 모래 속에 파묻혔다. 파르르 떨리는 손으로 힘껏 오이카와를 밀어냈다. 통증 때문도, 역류한 혈액 때문도, 더군다나 지지리도 제 말을 듣지 않는 오이카와 때문도 아니였다.

 

 "멍청한, 자식..아-"

 

 기도가 막히는 듯한 소음을 만들어내며 응어리가 흘러내렸다. 날을 세웠다. 탁하게 내쉬던 숨도 멈추었다. 더렵혀진 숨을 삼키더니 이내 가단하기 삼켜버리고 마는 것이였다. 가만히 눈을 감았다 뜨자 백안이 검게 물들어있었다. 눈가에 솟은 혈관들은 말할 것도 없었다. 찢기고 엉망이 되어 펄럭이는 셔츠 사이로 힘줄과 뼈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와, 이즈미?"

 

 제 앞을 막아선 채 보란 듯이 피를 토해내며 평소의 입버릇처럼 욕짓거리를 내뱉는 이와이즈미에 오이카와는 뺨의 언저리에 튄 핏자국을 쓸어내리는 순간 이와이즈미는 몸을 돌려 군화로 사네의 발을 내리찍고 턱 아래 움푹한 부위에 엄지를 제외한 손가락을 끼워넣고 날렸다. 평소 상태라도 목에 무리가 갈게 뻔했지만 그는 폭주 상태였다. 팔뚝으로 갗 뽑은 체액이 흘러내렸고 머리와 분리된 몸뚱아리는 허공을 비집다 처참히 쓰러졌고 이와이즈미는 뜯어낸 한낯의 거대한 살점을 떨구었다. 그리곤 고꾸라졌다. 무릎이 가장 먼저 모래 사이를 파고들었고 그 다음 손바닥이 닿기도 전 상체가 엎어졌다. 오이카와는 이와이즈미의 어깨를 잡아 돌리곤 가면마냥 달라붙은 모래를 쓸자 이와이즈미는 허탈하게 웃었다.

 

 "너, 그깟..총 하나, 개조, 했다고..어, 자만질이냐."

 "빨리, 후송.."

 "야, 진짜..어, 끝까, 지 이러냐. 너."

 

 오이카와는 한 손으론 이와이즈미의 턱도 없는 출혈 부위를 막으며 본부에 연락을 넣었다. 물론 무엇 하나 통하진 않았지만 말이다. 한바탕 휩쓸고 간 폭풍우의 여파인지 도무지 닿지 않는 터에 출혈 부위가 한 두군데가 아니라 복부 정중앙에 뚫린 것은 관통상이라 아물지를 못했다.

 이와이즈미는 흉측하게 일그러지는 손을 가만히 들어 배덕감과 죄악감에 시달리는 오이카와의 뺨에 가져다대었다. 얼굴 풀어, 자식아.

 

 "하지메...?" 

 "이럴거면, 손, 먼저 잡아줄..걸 그랬나보다."

 "무슨, 무슨 소리야. 무슨 마지막 같은..! 아니아니, 이제 잡아주면 되는거잖아. 하지메? 하지메, 말하지마. 또 역류할거야, 그만,"

 "줘도, 의미없지, 아주, 어?"

 

 이리와, 토오루. 

 

 표면부터 굳기 시작한 핏자국은 입술이 닿자 몽글거리던 표피가 견디지 못하고 찌그러져 다시 흘러내렸다.

 

 "나쁘진, 않네."

 

 희미하게 걸린 호선은 핏기가 가신 것이였다. 하지메. 조금만, 더 빨리, 할..걸 그랬나. 불공평해. 옅은 키득거림과 함께 마지막으로 말라붙은 손이 모래를 파고 들었다.

 

 하지메. 하지메. 하지메.

 대답. 대답. 대답.

 

 그의 입버릇처럼 대답은 없었다. 불공평하게도. 귓가에 노이즈가 울리더니 이내 지원부대의 연결팀과 연락이 닿았다. 무슨 일이십니까, 오이카와 분대장님. 그 좌표로 지원 필요하십니까. 분대장님. 오이카와는 가만히 인이어를 빼내었다.

 

 불공평해.

 

 그리 중얼거리는 오이카와는 허탈하게 웃었다.

 

 "대답."

 

-

 

어제부터 질질 끌어온 글..다 썼..쿨럭-

 

뭔가 환영해요- 로 시작해서 쓴 글인데 우중충해져버렸..

 

아닙니다, 카몽님 전 진짜로 막-막!! 어휘가 딸린다.....짐승

 

쓰면서 조금은 즐거웠고 나머진 고통받았습니다

 

하지만 그게 일상이므로 신경쓰지 않습니다 하하하하하하ㅏㅎㅎ

 

미묘하게 전력 글 따위로 전락해버린 것만 같지만 아무래도 좋습니다!!

 

그럼, 이런 괴상한 거 받고 나서 뒷수습 어떻게 할지 고민해보겠습니다 구석))

마츠하나 전력 60분 ; 아이스크림

 

(마법사 AU/둘은 사귀지 않습니다/주제는 소품으로 등장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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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짓말."

 "아니, 진짜라니깐."

 

 하나마키는 인상을 팍 쓰곤 제 앞에 서 있는 '고객' 을 바라보았다. 로브 후드를 걷자 드러난 선명한 색에 하나마키는 신음했다. 그럴리가 없는데. 멀쩡한 동공은 여전히 붉었다. 문제라면 동공을 넘어서 까지 적흑 색을 띄고 있었다.

 

 "구울이라고 오해받고 있단말이야."

 "아니- 지금 먹어줘? 멀쩡하다니까?"

 "그럼 아니라고 할 셈이야? 난 실제로 이렇게 됐잖아."

 "그건 너고. 성향 차이일지도 모르지."

 

 옅게 푸른 혈관이 눈가에 두드러지게 돋자 하나마키는 한 걸음 뒤로 물러서 두 손으로 앞으로 내밀었다. 자,자. 우선 진정하자. 그는 천천히 하나마키에게 다가갔다.

 

 "내가, 지금. 어?"

 "자,잠시만..!"

 "진정하게 생겼어? 출석까지 이틀 남았다고."

 "아,아직 이틀이나 남았..!"

 

 다가오던 걸음을 멈추고 가만히 눈을 맞추는 덕에 결국 입을 열었다. 미안. 하나마키는 어깨를 떨구었다. 이래나 저래나 결국은 제 과실인 셈이였다. '진짜 고객' 이였다면 바로 배상이라도 했을 터 였지만 지금 제 앞에 있는 사네라면 달랐다. 마츠카와 잇세이, 소꿉친구이자 이 일대의 지배자인 제 1 에리카 였다.

 

 워낙 종족이 섞여버리는 바람에 종족끼리 묶어 구역을 지정하고 지배자 격의 '에리카' 를 둔다. 다른 족에 비해 수가 압도적으로 많은 족은 구역에서 다시 일대로 나눠 그 안에 에리카를 둔다. 제 1 부터 제 3 까지로 당연히 힘이 차이로 결정한다. 중앙보고를 위해 구역별 각 에리카 한 명이 선발되어 반 년에 한 번 회의에 참석한다. 

 대륙에서 상당한 수를 자랑하는 위저드는 총 여섯 구역으로 나눠져 두 구역씩 묶어 에리카들이 각각이 관리하고 있는 실상이다. 그 셋 중에서도 츠바이(zwei) 의 에리카가 마츠카와 였고 덕분에 빌어먹을 아인스(eins) 에서 오이카와를 보지 않아도 된다며 한 편으로 걱정하면서 마츠카와가 제 1 에리카로 승격 하여 츠바이(zwei) 로 옮기게 되던 날 좋아라 했다.

 

 마츠카와는 하나마키의 이마에 제 이마를 맞대었다. 잇세- 아파. 아프라고 한거다. 이 모든 사건을 요약해보자면 이러하다. 하나마키는 위저드 능력으로 자그만한 과자 가게를 차렸다. 말이 과자 가게지 사실은 간식 가게나 다름 없다. 간단한 빵부터 사탕에 껌 젤리 쿠키 초콜릿 마카롱까지 별의 별 것이 즐비되어 있다. 그리고 신제품이랍시고 만든 아이스크림 맛 마카롱을 마츠카와가 시험삼아 먹었다. -언제나 마츠카와가 실험 대상이다- 그리고 반 나절도 되지 않아 구울같은 눈을 하게 되었다.

 

 마츠카와는 눈 아래를 약하게 당겨 눈알이 드러나게 하여 하나마키에게 얼굴을 들이 밀었다.

 

 "난- 이런 눈을 하곤 회의 참석 못한다고요, 하나마키 씨."

 "예...에리카 님."

 "그러니까 어떻게든 해달라고."

 "그,그냥...잇세이가 주문 걸면 안돼?"  

 

 하나마키가 마츠카와의 시선을 피하곤 힐끗 거리며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손가락을 꼼지락 거리며 어깨는 움츠러든 채 어색하게 웃어보였다.

 

 "부작용 걸리라고요?"

 "그게 아니라, 괜히 또 내가 하는 것보다..실력 좋으니까."

 "하나마키 씨는 어디 학교 출신이시죠?"

 

 마츠카와가 씨익 웃어보였다. 저거 위험해. 마른침을 삼키며 하나마키는 두 뺨에 가해지는 악력에 고개를 들었다.

 

 "아, 아오바죠사이..학,원입니다."

 "아 명문 사립 맞죠?"

 "아,아마도.."

 "그런 경쟁률 높고 졸업반은 빡세게 굴리기로 유명한 사립에서 땡전 한 푼 안내시고 졸업까지 널럴하게 하신 분이 본인이 건 주문에 부작용이 생겼을 때 가장 안전하게 푸는 법은 뭔지 모를리가 없다고 생각하는데요, 전."

 "자,자기가 도로 푸는게 가장 안전합니다.."

 

 마츠카와는 여전히 웃는 얼굴로 하나마키의 볼을 주욱- 잡아 당겼다.

 

 "그럼 내가 푸는게 안전할까요, 하나마키 씨가 푸는게 안전할까요?"

 "저, 저요..아,아파-!"

 

 참지못하고 결국 하나마키는 저 볼을 잡아당기는 마츠카와의 손을 꾹 잡았다. 놔- 미안해, 잘못했어. 놔주세요! 그제야 손을 뗀 마츠카와에 하나마키는 빨간 양 볼을 손바닥으로 문질렀다. 잇세이 너무해. 누가 먼저 시작했는데. 하나마키는 입을 비죽 내밀었다.

 

 "미안해, 내가 심했어. 많이 아파?"

 "나빴어."

 

 눈가에 맺힌 눈물을 보자니 꽤나 아팠던 모양이였다. 마츠카와가 손을 뻗자 하나마키는 움찔거렸다. 손 떼, 안할거야. 어정쩡한 자세로 손을 내린 하나마키에 한숨을 내쉬며 마츠카와는 손바닥을 뺨에 맞닿게 하였다.

 

 "아프지 마. 미안해."

 "잇세- 자,잠시만 이런거에 힐 같은건..!"

 "가만히 있어."

 "괜히 마력소모 되잖아. 괜찮아."

 "이제 괜찮아?"

 

 하나마키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거 안해도 된단 말이야. 투정하면서도 괜스레 입가가 올라가는건 저도 어쩔 수 없었다. 구석에서 빠져나와 언젠가부터 가게의 카운터 아래 자리하게 된 학원 시절 말도 안될 만큼 두터운 백과사전을 꺼내 바닥에 펼쳤다. 마츠카와는 사전 앞에 주저앉은 하나마키의 맞은편에 앉아 뒤집어진 글자를 읽어올라갔다.

 

 "에에- 내가 썼던게 아우구스트립 이였으니까- 부작용 없이가.."

 "저거 아니야?"

 "어디어디?"

 "니가 오른 손으로 누르고 있는 쪽 위에."

 

 아, 이거다. 깨알같은 글자를 찬찬히 읽더니 하나마키의 얼굴은 점점 굳어만 갔다. 뭔데. 마츠카와가 책을 돌려 경직된 하나마키를 대신해 읽었다.

 

 "아우구스트립은 민감한 재료로 부작용으로 여러가지 신체 발현이 이루어질 수 있다. 사흘 정도면 자연적으로 사라진다. 주문자가 해제 시키는 법은,"

 

 하나마키는 마른침을 삼켰다.

 

 "신체접촉이다, 라는데?"

 

 마츠카와가 고개를 들어 하나마키를 바라보았다. 위험해, 이거.

 

 "아,아까 닿았잖아. 괜찮지..않네."

 "아무래도 주문자가 하란 소리겠지. 그리고 내가 아는 한에선 이거 독할걸. 간단히 닿는 정도로 소용없어."

 "그럼 어떻해애."

 

 하나마키는 울상이 되었다. 마츠카와는 태연스레 책을 덮어 옆으로 밀어내며 두 팔을 벌렸다. 안겨봐. 하아? 나도 그런 것까진 몰라. 그냥 해보면 되겠지. 그치만-. 아아- 이번 회의는 못 가겠구나. 제 1 에리카주제 다들 참석하는데 혼자 결석이네. 츠바이(zwei) 에 특례 사라지려나-, 큰일이네. 큰일. 아, 아, 알았어. 마지못해 하나마키는 달려들 듯 마츠카와의 품에 안겼다. 넓은 등을 안노라니 묘하게 나른해졌다. 하나마키는 저도 모르게 얼굴을 부비적거렸다.

 

 "어때?"

 "아아- 유감스럽게도 전혀."

 

 여전히 검붉은 흰자위에 하나마키는 아랫입술을 물었다. 다른 거 시도해보자. 어떤 거? 흐음- 뽀뽀? 에- 싫어. 어릴 때 자주 했잖아, 어때. 그 때랑 지금이 같아? 지금 그런거 따질 때냐. 불만 가득한 하나마키는 상체를 일으켜 잽싸게 뺨에 입술을 찍었다. 마츠카와는 주문으로 거울같이 변한 손바닥으로 눈을 바라보았다. 옅어졌어, 살짝. 진짜? 뭐가 좋다고 거짓말하겠냐, 내가 하나마키도 아니고. 에. 결과 올 라잇- 아니야? 그럼 어떻해? 또 해? 마츠카와가 늘어진 하나마키를 응시했다.

 

 "히로, 기왕이면 한 번에 끝내는게 낫잖아."

 "그야 그렇지."

 "키스."

 "하아? 절대 무리. 무리. 무리. 무리."

 

 마츠카와는 하나마키의 뒷목을 손으로 받치고 이마를 맞대었다. 마주한 얼굴이 담담하기 그지 없어 하나마키는 당황스러울 뿐이였다.

 

 "하나, 내가 할까. 니가 할래."

 "...내, 내가 할게."

 

 하나마키는 눈을 꼭 감고 입 맞추었다. 닿았다. 닿았다. 더욱 세게 눈을 감을 따름이였다. 그런 하나마키를 내려다보던 마츠카와는 작게 웃었다. 귀엽잖아. 아랫입술을 물자 놀라 입을 벌려왔다. 그 안에 혀를 밀어넣자니 놀라 눈을 뜨자 마츠카와는 가볍게 치열을 훑었다. 하나마키는 마츠카와의 옷깃을 쥐며 도로 눈을 감았다. 본능적으로 였다. 살짝 타액만 섞다 마츠카와가 빠져나오자 숨을 조금 가쁘게 몰아쉬며 달아오른 얼굴로 시선을 마주했다.

 

 "이,잇세이."

 "확실한게 좋잖아. 이제 됐네."

 "아-."

 

 나 간다. 몸을 일으키며 마츠카와는 채 일어서지 않은 하나마키를 흘깃 보곤 가게를 나섰다. 그런 마츠카와의 뒤를 바라보던 하나마키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열이 나는 것만 같았다. 다음에도 써봐야지.

 어느 세 정오가 다 되어가는 날에 마츠카와는 밀린 업무에 미간을 구겼다 아직 주머니 속에 남은 하나마키의 시험작 마카롱을 떠올렸다. 웃음이 비집고 나왔다.

 

 언제까지 모른 척 해주면 되는거야, 히로.

 

 또 저를 위해 준비해줄 발칙한 것을 상상하며 마츠카와는 피식 웃었다. 또 보고싶네. 우리 히로.

 

-

 

요즘 전력하면서 느낀 건데 전 주제를 소재로 쓰는게 아니라 소품으로 등장시키고 있어욬ㅋㅋㅋㅋㅋㅋㅋㅋ 젠장

 

그냥 서로서로 저러는 소나무랑 꽃 보고팠어요

오늘 마지막 전력 클리어! 뿌듯하다! /(ㅇㅅ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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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쿠아카 전력 60분 ; 문신

 

(네임버스/봌앜 성인/주제가 탈선해버렸습니다..)

-

 

*아카아시 케이지의 경우

 

 이름을 지웠다. 빨갛게 부어올라 따끔거리는게 마음에 들었다. 차라리 이 편이 좋았다. 흉하게 일그러진다해도 그게 마음 놓였다. 내일이면 또 다시 지워야겠지만 한결 가벼워진 기분에 만족스러울 뿐이였다. 남은 것은 이 만족감과 함께 가만히 앉아 전화를 기다릴 곳을 찾는 것이다. 지금쯤이면 분명 잔뜩 열 올라 익숙하게 번호를 찍어 통화버튼을 누르고 싶어 안달일 테니까 말이다. 낯선 곳까지 들어와버려 천천히 걸어왔던 길을 되짚어야했다. 굳이 돌아갈 길을 찾지 않아도 알아서 잘도 찾아올 그를 생각하면 벌써부터 골머리가 울렸다. 조금 더운 봄이였다. 골목을 나서면 큰 길이 나올 터 였고 그 길을 온통 햇볕이 들었다. 단순히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 눈이 아파오는 것만 같아 골목의 그림자 진 벽에 몸을 기대었다. 손 안에 울리는 진동에 휴대전화 화면을 뒤집어보니 어김없었다. 뭐라고 할까요, 당신은.

 

 "네."

 [너 가만히 있어. 알아들어?]

 

 그렇겠죠. 당신이란 사람은. 어느 세 익숙해진 왼쪽 갈비뼈 언저리의 쓰라림에 대충 그 부근을 쥐어잡고 가만히 눈을 감았다.

 

 [케이지. 대답.]

 "네."

 

 케이지, 라고 불렀으니 날만큼 화는 난 상태임이 틀림 없었다. 당신이 내 이름을 부르는 순간은 두 가지 뿐이니까, 지금처럼 무척이나 화가 난 상태이거나. 관계 도중. 이내 전화가 끊기고 더 이상 그가 있지 않다는 소리 아닌 소리가 울린다. 아-. 아마도 오늘은 조금 더 혼날지도 모르겠네요, 저. 힘 없이 주르륵 미끄러져 내려 흡사 우는 사람마냥 다리를 끌어안고 그 위에 고개를 파묻었다. 얼른 와 주세요, 보고싶지만 보고싶지 않은 사람아.    

 

 그와 만난 것은 오래 전의 일이다. 어릴 적 집으로 편지 한 통이 보내져왔다. 놀랍게도 발신인은 일본 내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대기업의 가문 이름이였다. 보쿠토 가(家). 편지 내용은 이랬다. 막내 아들에게 '아카아시 케이지' 라는 이름이 새겨져 있으니 아들의 이름 주인을 찾고 싶다, 혹여나 보쿠토의 이름으로 이름을 가진 '아카아시 케이지' 는 연락을 달라는 얘기였다.

 편지를 받은 어머니는 어린 나에게 물었다. 케이지는 그 이름이 누군지 알고싶니? 어린 내게 그것은 금단의 것과 같았다. 가족 중 유일한 발현이 있었기에 어머니는 혹여나 어린 것이 상처받지 않도록 함구령을 내리셨고 가족 내에서 또 다른 발현자셨던 할머니만이 이름에 관해 이런 저런 말씀을 해주시곤 하셨다. 어린 나는 어머니를 바라보다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머니는 작게 웃으시더니 어딘가로 전화를 거셨다. 그 다음 날 어딘가 고급스러워 보이는 가게에서 '이름' 을 드러냈고 그 뒤로는 무어라말씀을 나누셨는지 몰랐다. 어려웠던 것 같다. 하지만 일주일 후 난 당신을 만날 수 있었다. 보쿠토 코타로. 보쿠토 가(家)의 막내아들이자 내 이름의 주인. 천진난만하던 그 모습에 어딘가 동요하고 있었던 것일까, 나.

 

 손목을 잡아끌린다. 이름이 말끔히 지워진 흉부가 아려온다. 눈가가 시큰해진다. 위를 올려본다. 당신이 있다. 아-.

 

 "보쿠토 씨."

 "일어나."

 

 억지로 끌어올려져 일어났다. 여전히 잡힌 손목보다 좌측 흉부가 더 뜨겁다. 당신은 조수석 문을 열어주고 돌아가 운전석에 자리를 잡는다. 문이 닫힌다. 나를 바라본다.

 

 "이번엔 또 왜 지웠어?"

 "죄송합니다."

 "이유라도 말해보라고, 케이지."

 "죄송합니다."

 

 난폭하게 걷어져 낱낱이 드러난 표피 위로 당신의 손이 닿는다. 양껏 부어오른 모양새에 당신은 미간을 구기며 엄지로 한 때, 적어도 오늘 아침까진 있었던 이름이 사라진 자리를 쓴다. 목 아래서 신음이 터진다. 것 봐. 차가운 살갗 위에 뜨거운 입술이 닿았다.

 

 "이러면, 또."

 

 수면 위로 올라오는 신음에 당신은 만족스레 웃는다. 아-.

 

 "이름같은 건 드러날 텐데 그런걸로 가려도 소용없어. 제일 잘 알잖아."

 

 다시금 검게 피어오른 이름에 셔츠를 끌어내렸다. 케이지, 여기 봐. 커다란 손이 뒷 목을 감싸고 숨결을 삼켜온다. 정각의 햇볕에 유난히 금빛 테가 두드러진다. 그 안에 삼켜질거 같아 눈을 감았다.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당신의 이름은 사실 심장에 새겨진게 아닐까, 하고. 너무 강해서 겉으로 드러나고만 건 아닐까, 하고. 그러니 지우고 지우고 또 지워내도 결국 손 길 하나에 도로 피어나는 건 아닐까, 하고. 마치 심장박동을 가만히 느끼고 있노라면 내 것이 하나가 아닌 두 개라는 착각마저 들 만큼 담담히 뛰는 내 것과는 다르게 여기 있노라 라며 세차게 뛰어온다. 온전히 받고싶지만 받을 수가 없어 그저 지워낼 뿐이다. 지우면 모를테니까. 잠깐 아픈걸로 잊을 수 있으니까. 그럴테니까.

 

 난 당신을 지운다.

 

-

 

*보쿠토 코타로의 경우

 

 아카아시가 이름을 지웠다. 자주 있는 일이라 익숙해질 법도 하지만 따끔거리는 이름 위의 통증보다 또 '내' 이름을 지웠다는게 싫었다. 그렇게 몇 번이고 몇 번이고 화를 내어보아도 부탁을 해보아도 시선을 맞추었다 다음 날이면 또 금세 지우고 마는 아카아시가 싫었다. 이젠 버릇이라도 든 것마냥 업무 도중이면 빠져나가 당당히도 지우고 오는 것이였다. 처음 한 두번은 가까운 곳에 가서 지우고 다음은 조금씩 조금씩 멀리까지 가서라도 지우고 오는 모양이였다. 그게 싫었다. 강박증 처럼 지우는게 섬세하게 느껴져 소름이 돋았다.

 오늘도 그렇게 한바탕 일을 치루고 곤히 잠든 아이 위의 이불을 걷자 이름이 보였다. 보쿠토 코타로. 내 꺼. 오르락 내리락 거리는 흉부에 윤곽이 드러난 갈비뼈의 중간 정도에 자리한 이름이.

 

 본래 욕심이 많았다. 어릴 적부터 그랬다. 내 것이라면 빠짐 없이 이름을 적어놓곤 했고 덕분에 어머니께도 꽤나 혼이 났었다. 그리고 갈비뼈 언저리에 이름을 가지고 태어났다. 아카아시 케이지. 이게 무엇이냐 물었을 때 상대는 내 이름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태어날 적부터 내 이름을 가지고 있다고.

 

 그런 걸 들은 이상 가만히 있을 수 있을리가 없잖아.

 

 아카아시를 만났을 땐 전율했다. 이제껏 느껴던 그 모든 소유욕을 더해도 이 보다 더할 순 없다고 그 작은 아이에게 떠오른 이름을 보고 생각했다. 내 아이.

 

이름을 쓸다 그 위에 짧게 입 맞추었다.

 

 "보쿠토...씨."

 "미안, 깼어?"

 

 눈가를 손으로 가리며 더 자, 괜찮습니다 라며 그 위에 자기 손을 살포시 얹어놓는다. 졸린 음색이였다. 새벽에 잠들었으니 당연한 걸지도.

 

 "당신은, 절. 사랑하는게 아닙니다."

 "무슨 소리야."

 "당신은 저에게 새겨진 이름을 사랑하는 것 뿐입니다."

 "케이지."

 "당신은 새겨진 이름으로 들려오는 심자박동을 사랑하는 것 뿐입니다."

 

 여전히 졸음기가 섞여있었다. 그렇다면 본심인걸까.

 

 "그러니, 당신은 절 사랑하는 것 따위가 아닙니다."

 "그런 말 하지마."

 

 손가락이 얽혀왔다. 조금 떨리고 있었다.

 

 "그러니 그만두세요."

 

 손바닥을 적셔오는 물기에 졸음이 달아난 목소리에는 어느 세 울음기가 뒤섞여있었다.

 

 "케이지. 난 케이지 사랑해."

 "아닙니다."

 "사랑해."

 "거짓말."

 "사랑해."

 

 케이지, 사랑해. 손을 맞잡으며 들어내자 붉어진 눈가가 드러났다. 그마저 사랑스러워 입 맞추었다. 눈을 감고 받아들이던 아카아시는 이내 손을 뻗어 목에 감아온다. 어리광.

 

 "좀 더."

 "응."

 

 좀 더 원해주세요. 얌전히 입을 벌려온다.

 

 케이지. 케이지. 케이지. 케이지. 케이지. 원해. 좀 더. 갈비뼈가 아려올 만큼 세차게 뛰는 것이 느껴졌다. 내 것인가. 네 것일까.

 

난 네게 새겨 넣었다.

-

 

에에- 나,나도 모르겠습니다..흠-

왜 자꾸 잘 쓰다 잘못 빠지는거냐고오오오오오오오ㅗㅗ오ㅇ...쿨쩍))

 

사실 어리광st가 보고팠습니다..음....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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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로켄 전력 60분 ; 우산

 

(쿠로켄은 성인/주제는 빗물과 같이 시궁창으로)

-

 

 켄마는 자주 음악을 틀어놓고 있었다. CD 가 다 돌아가는데 걸리는 시간은 31분 02초. 2초는 항상 버렸다. 매번 31분이 지나면 정지버튼을 꾹 눌렀다 도로 재생 버튼을 눌렀다. 특별히 들을 이유도 없었고 CD 를 듣는 것도 그저 시간을 때우기 위한 일종의 무의미한 행위 쯤에 속했기 때문이였다. 따분하기 그지없었다. 켄마는 속으로 센 숫자가 60에 닿자 보지도 않은 채 익숙하게 정지와 재생 버튼을 눌렀다. 한가하네.

 

 애초에 켄마네 외할머니가 이 작은 잡화점의 주인이셨다. 시골이라 그런건지 도시의 잡다한 잡화점과는 다르게 소박하게 하얀 벽면에 나무 테와 유리로 진열장이 보였고 마을에서 유일하게 붉은 지붕이였다. 가게와 붙어있는 집은 그저 문턱 하나의 차이였다. 게다가 어딘가 동화에서 흔히 볼법한 분위기에 담쟁이 넝쿨이 하얀 벽을 메우고 있었기에 더할 나위 없었다. 진열장과 같이 테와 유리로 이루어진 바깥으로 열리는 나무문을 열어두면 여름에 훌쩍 가까워진 봄 바람이 기어들어오곤 했다. 가게 안은 대부분 나무재질로 계산대 부근 켄마는 작은 소품같은 의자에 다리를 몸에 붙이고 앉아 숫자 세기에 여념이 없었다. 게임기가 고장난 턱에 지루하기 그지 없었다. 그렇다고 게임을 하면 이 기분이 사라질것 같지도 않았다.

 켄마는 고갤 젖혀 천장에 대롱거리며 달려있는 모빌을 바라보았다. 조개 껍데기와 불가사리로 만들어진 모빌은 이따금 바람에 흔들려 종소리같은 음을 만들어내곤 했다. 그 옆에 한창 유행했던 드림캐쳐가 하얀색, 노란색, 파란색이 종종 매달려있었다. 그 옆엔 조금씩 바람이 빠져나가는 중인 공룡모양 헬륨 풍선이 보였다. 진열장에는 작은 머리핀부터 바늘에 실타래, 골무, 참빗, 이 빠진 그릇에 낡은 수저, 거울, 컵, 갈라진 붓, 얇은 공책들, 조각비누, 쿠션, 담요, 하얀 면티, 가위, 슬리퍼, 모자, 연필, 포크, 수건, 도마, 도시락 통, 낡은 카메라, 부채, 목도리, 앞치마, 촛대, 손전등, 비닐팩, 빨대 까지. 정말 '잡화점' 다운 잡동사니가 가득했다. 그런 점이 켄마는 성가셨고 마음에 들었다.

 

-

 

 비가 내렸다. 지독하게도 삼일내리 쉬지 않고 내렸다. 켄마는 앓았다. 비가 오는 날이면 남김없지 열을 토해냈다. 하루도 빼놓지않고 비가 오기 시작할 즈음이면 열이 올라 이미 제정신으로 있기조차 힘겨웠고 마른 땅위에 세게 내리칠 때면 달아올라 어찌하지도 못한 채 안쪽으로 우그러들 것만 같은 몸뚱아리를 쥐여잡고 끙끙 앓았다. 눈 앞이 점점 하얗게 번지다 정점을 찍었을 때 항상 눈을 떴다. 비가 그친 후였다. 땀에 흠뻑 젖어 휘청이는 머리를 부여잡고 일어나 부엌으로 향했다. 물. 눈 앞이 일렁였다.

 

 실례합니다.

 

 켄마는 이를 갈았다. 참아야 돼. 켄마는 겨우 벽을 짚고 서 가게로 통하는 미닫이 문을 열었다. 그것은 CD 의 재생이 끝난 소리였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미닫이 방에 누워있었다. 한참 큰 절대 제 것일리가 없는 져지를 덮은 채로. 아 괜찮아요? 낯선 목소리에 겨우 눈을 뜨니 마을에서 본 적 없는 얼굴이였다. 누구. 이번에 새로 이사온 쿠로오 테츠로, 라고 합니다. 아-. 병원이라도 가봐야하는게 아닌가요. 괜찮아. 조금만 있으면. 비만, 그치면. 켄마는 일으키던 상체에 힘이 풀려 앞으로 고꾸라지면서 다시 정신을 잃었다. 찌그러질거같아. 나. 아마. 

 

-

 

 친절히도 자신의 져지를 남겨두고 간 새 입주민 덕에 켄마는 돌려주러 마을 깊숙히 까지 들어가야만 했다. 싫어. 후드를 눌러쓰고 맑게 갠 하늘 아래 물 웅덩이를 피해 조심스레 걸었다. 사람 대하는게 꺼끄러운 켄마였기에 그를 위한 외할머니의 배려였을까, 아니면 단지 같은 부류였을까 마을 입구 부근에 위치한 잡화점은 마을과는 꽤 거리가 되는 편이였다. 덕분에 켄마는 편했지만 이럴 경우는 전혀 반대의 경우였다. 어디 사는지도 모르는 사람을 찾아야한다. 새 입주민이라고 하면 얼마든지 찾을 수 있을 터였지만 말 걸기가 어렵달까 그냥 다가간다는 그 자체가 힘겨울 뿐이였다. 꽤 깊게 들어오자 켄마는 제자리에 멈추어섰다. 싫어. 그는 져지를 세게 쥐었다. 동네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싫어. 눈 앞이 흐릿해지기 시작하면서 호흡이 불규칙적으로 변질되었다. 싫어, 싫어. 스니커즈가 흙과 자갈에 쓸려 소음을 만들어내며 뒷 걸음질 쳤다. 싫어. 이내 몸을 돌려 마을 어귀까지 뛰었다. 아파. 어귀의 커다란 이름 모를 나무 앞에 주저앉아 가슴께를 쥐어잡고 숨을 토해냈다. 한참이고 한참이고 그러다 천천히 일어나 느릿하게 가게 문을 열었다. 오늘은 무리, 라 중얼거리며 카운터의 의자에 신발을 아무렇게나 벗어던지고 올라앉아 31 : 00 에서 멈춘 카세트를 보더니 재생 버튼을 눌렀다. 그렇게 다시 처음부터 흘러나오기 시작한 익숙한 곡조에 숨을 몰아 쉬었다.

 

 "아, 있다. 있다."

 

 고개를 들자 그곳엔 쿠로오가 서 있었다. 아- 새 입주민분. 잘되었다 싶어 켄마는 제 왼팔에 감겨버린 져지를 건내었다.

 

 "고마워."

 "뭘, 이름이 뭐야, 그 때도 못 들었어."

 "이미 들었을거아니야."

 "네 입으로 듣고 싶은걸. 그 편이 훨씬 기억에 남고 말이야."

 

 켄마는 입을 삐죽였다. 이런 작은 시골 마을에선 젊은 사람보기란게 좀 처럼 쉬운 일이 아니였다. 말동무 정도야 되어줄지도 모르는 일이였다. 스트라이크 존이 협소한 저는 뭐 아무래도 좋았다. 인터넷이 먹통이라는 것 쯤은 이미 알고있었고 슬프지만 꽤 익숙해진 탓이였다. 싫어.

 

 "안 알려줄거야?"

 "...켄마, 코즈메. 켄마."

 "자아 그럼 켄마군, 앞으로 잘 부탁해요, 나이는?"

 "스물 둘."

 "헤에- 어리구만."

 

 그러는 그 쪽은 나이가 어떻게 되는데. 켄마가 눈을 흘겼다. 쿠로오는 씨익 웃었다.

 

 "그 쪽 말고, 쿠로오."

 "...쿠로는 나이가 어떻게 되는데."

 "쿠로, 오 인걸. 뭐 상관없지만. 스물 셋."

 

 겨우 한 살 차이주제. 켄마는 작게 중얼거렸다. 쿠로오는 키득거렸다. 져지를 꿰입으며 가라앉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전에도 저거 틀어놨지 않았었나.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간다, 나중에 다시 올게. 가볍게 머리를 헤집어놓았다. 아-.

 

 "쿠로."

 "응?"

 "쿠로 말고 쿠로."

 

 문가에 서 돌아보는 쿠로오의 발치에는 작은 고양이 한 마리가 가게 안으로 살며시 발을 내딛고 있었다. 올 블랙. 설마 이래서 쿠로(黑) 라거나. 켄마는 맨발로 나무 바닥을 밟으며 작은 고양이를 품에 안았다. 비 오는 날에 어디 있었어, 응? 검지로 코를 톡톡 두들이며 부드럽게 꾸짖는게 영락없는 연인의 모습이라도 되는 듯 했다. 냐아-. 고양이의 울음소리에 쿠로오는 발걸음을 멈추고 잠시 둘을 바라보았다. 왠지 진 기분이란 말이야. 뒷목을 쓸어내리며 행여나 방해가 될까 발소리를 죽여 가게를 빠져나갔다.

 

 후로 쿠로오는 선전포고 했듯이 하루 두 번씩 잡화점을 찾았다. 필요한 것이 있다면 더 오기도 했다. 그의 방문이 익숙해지기 시작했고 암묵적으로 그는 CD 가 두 번 돌때까지 켄마의 곁에 가만히 앉아 쓸데없는 자잘한 얘깃거리를 주고받거나 요깃거리를 가져와 나눠먹거나 고양이 쿠로의 갸르릉 거림을 들으며 강아지풀을 가지고 장난을 쳤다. 어느 세 자연스럽게 의자가 한 더 늘었고 아이스크림을 소다맛을 준비하게 되었으며 워낙 둘 사이를 왔다 갔다 하던 져지는 미닫이 방의 옷걸이에 걸려 있었다. 어쩌면 싫어가 쿠로오 한정으로 괜찮아가 되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였다. 여전히 하늘은 맑았다. 켄마는 감고 있던 눈을 슬며시 떴다.

 

 "다시 눌러줘?"

 "응."

 

 쿠로오는 켄마가 하던 것처럼 정지버튼과 재생버튼을 차례로 눌렀다. 끊겼던 음이 도로 흘렀다.

 

-

 

 켄마. 켄마. 켄마!

 

 켄마는 억지로 눈을 떴다. 분명 이 감각은 비 였다. 손 끝이 부어 뭉퉁한 느낌이 들었다. 싫어. 싫어. 건들이지마. 싫어. 켄마는 몸을 웅크렸다. 비만 오면 다시 떠올라 정말 죽을 것만 같았다. 당시조차 없었던 수치심마저 들었다. 싫어.

 비 오는 날에 제 집 안에 있을 사람이라면 쿠로오 뿐이였다. 키를 복사해준 것도 저였고 허락해준 것도 저였으며 비 오는 날이면 하루 종일 곁을 지켜주는 것도 쿠로오 뿐이였기에 당연한 것이였다. 알고 있음에도 몸은 거부했다. 쿠로, 나 무서워.  무서워. 싫어. 싫단 말이야. 쿠로. 나. 아마.

 쿠로오는 카세트를 틀었다. 익숙한 31분을 위해. 비교적 잠잠해진 켄마의 상태에 쿠로오는 이불 위를 천천히 쓸어주었다.

 

 "켄마. 쿠로는? 안보이던데."

 "저기, 카운터 밑에.."

 "아니 그 밑에 없어."

 

 켄마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후들거리는 몸에도 억지로 부여잡고 일어섰다. 미닫이 문을 세차게 열었다. 카운터 아래 잡다한 천과 솜으로 채운 담요는 식어있었다. 없어.  켄마가 비틀거렸다. 쿠로오는 켄마의 어깨를 잡아주었다. 내가 찾아볼게, 기다려. 살짝 밀어 문턱을 넘지 못하게 하며 쿠로오는 가게 안으로 내려갔다. 쿠로- 어딨어. 손전등을 가지고 여기저길 비추어보았지만 보이지 않았다.

 

 "쿠로.."

 

 켄마는 밖으로 향하는 문을 바라보았다. 오늘 같은 날이면 들어오라고 조금 열어둔다. 그리고 들어왔는데 다시 나갔다, 인가. 켄마는 그대로 밖으로 뛰쳐나갔다. 켄마! 뒤에서 쿠로오가 부를 듯 했지만 차마 돌아볼 생각따위 하지 않았다. 비는 장마철 못지 않게 쏟아져내리고 있었다. 평평한 길에 물줄기가 보일 정도라면 세차게 쏟아붓고 있음이 틀림 없었다. 이런 날에 갈 곳이 어디 있다고, 켄마는 휘청이는 몸으로 뛰었다. 쿠로 어디야. 쿠로. 어디선가 애처롭게 울고 있을 어린 것의 생각에 켄마는 아찔했다. 어디야, 어디야. 하지만 무엇보다 문제라면 자신이였다. 비. 비. 비. 잊고 싶은 기억을 되돌리는 비. 옆 집 주민이라는 남자의 얼굴. 비. 청 테이프로 가로 막힌 입. 비. 묶인 손. 비. 찢어진 옷. 비. 피. 비. 고통. 비. 아픔. 비. 싫어. 비. 싫어. 비. 그런, 비.

 

 "켄마!"

 "싫어, 건들이지마! 건들이지말라고!! 싫어, 싫어, 싫어, 싫어!!"

 "켄마, 켄마. 나 쿠로오야, 응?" 

 "싫어, 싫어, 건들이지마, 만지지마, 더러워, 싫어. 싫어."

 

 켄마. 켄마. 켄마. 바닥에 주저앉은 켄마의 손목을 그러쥐었다. 하염없이 싫어 만을 외치며 울음을 토해냈다. 다- 싫어. 싫어. 정지, 재생. 정지 그리고 재생. 리셋. 켄마는 중얼거렸다. 눈물과 비가 섞여 흘러내렸지만 눈물이 흐른 곳만이 화끈거렸다. 정지 재생 정지 재생 정지 재생 정지 재생 리셋.

 

 "켄마."

 

 쿠로오는 켄마를 품에 안았다. 정지 재생 리셋. 싫어. 싫어. 나- 쿠로, 나-. 괜찮아, 절대 켄마 잘못 아니야, 그러니까 괜찮아. 나-, 나 더러운걸. 전혀, 그럴리가. 그럴리가. 괜찮아, 괜찮아, 켄마.

 안이한 생각이라는 것 쯤은 켄마도 알고 있었다. 사람따위 믿을게 못되고 거짓에 위선에 연기에 흉내에 불과하다고. 하지만, 하지만. 이 사람이라면 그래도 좋다고- 그렇게 생각해버릴만큼-.

 

 쿠로오는 잔뜩 젖은 채 반 쯤 정신을 잃은 켄마를 안아들고 잡화점으로 들어섰다. 떨어지는 물기따위 닦으면 될 것이였다. 켄마의 몸도 걱정이였고 비까지 덤으로 맞았으니 감기는 확정일지도 몰랐다. 게다가 고양이까지 찾아야한다니. 냐아-.

 

 "쿠로..!"

 

 고양이는 카운터의 아래 담요에 작은 새끼들과 함께 있었다. 밖에서 데리고 온 모양이였다. 현명하네. 쿠로오는 한 시름 놓으며 잡화점 문을 잠그고 켄마를 방으로 옮겼다. 대충 수건으로 닦고 열 오른 아이의 옷을 갈아입혔다. 방 안에 떨어진 물자국을 닦아내고 그 위에 안방에서 가져온 이불을 깔고 켄마를 뉘였다. 제대로 아프겠지, 켄마. 쿠로오는 작게 한숨지었다. 이사 온 날 대충은 들었던 얘기였다. 잡화점 주인, 원래는 도시에 살았는데 남자한테, 좀 그런 일이 있었던 모양이라며. 그래서 본인 외할머니가 그 아이 이름 앞으로 남긴 이 시골까지 내려와서 있는거라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지만 쿠로오는 켄마의 젖은 머리칼을 쓸었다. 진짜였구나. 켄마.

 

 혼자 그러지마, 켄마.

 

 쿠로오는 켄마의 입술에 입 맞췄다.

 

-

 

 그 후 켄마는 삼일내리 지독한 고열에 시달렸다. 다행히 감기는 피했지만 말이다. 어디까지나 인과응보라며 잔소리하는 쿠로오에 켄마는 시선을 피했다. 쿠로 너무해. 그런 소리 하지말고 얼른 나아.

 

 쿠로오는 켄마에게 단색의 빨간 우산을 선물했다. 다음 비오는 날에 이거 쓰고 데이트 합시다, 켄마 군. 데이트라니, 고백도 안했잖아. 나중에. 최악. 그렇게 말하는 켄마의 얼굴은 작은 호선을 그리고 있었다.

 

 "켄마, 선물로 주는 우산의 의미. 알아?"

 "전혀."

 

 쿠로오는 푸스스 하고 웃어보였다. CD 의 31분하고 02초가 탁- 하고 멈추었다.

 

 "당신을 지켜줄게요-"

 

 이제 막 여름에 들어선 하늘은 맑기만 했다. 켄마는 우산 손잡이를 만지작 거렸다.

 

 아- 얼른 비 왔으면 좋겠다.

 

-

 

망! 했! 다! 아! 아! 

역시 졸면서 쓰는거 무리 도중에 급전개로 가버렸잖아.....파들))

 

전 이런걸 원치않았습니다, 음음-

 

단지, 켄마가 쿠로오에게만 의지하는게 보고 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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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로켄 전력 60분 ; 시간은 흘러가고 계절도 지나가지만 애달픔에는 익숙해질 것 같지 않아서 다시 만나고 싶어(시간/계절/애달픔)

 

(제물 쿠로오&사제 켄마/모르겠어요, 주제를)

-

 

 '만월의 아이' 가 있다. 일 년 중 오직 만월이 떠오르는건 네 번 뿐. 그렇기에 대개 사람들은 만월을 신성시여기고 그런 존재로 추앙했다. 그런 달에게 제물을 받치고 그 해를 잘 보내게 해달라는 일종의 의식이였다. 세 달마다 이루어지는 의식을 위해 사람들은 기꺼이 순결한 아이를 내놓았다. 상처하나 없는 순결한 아이야 말로 신성한 만월에게 올리는 무엇보다 값진 것이였다.

 

 미친게 틀림 없었다.

 

 인간 제물이다. 그저 몇몇 보기 힘든 것에 대고 구원을 외쳐대며 어린 것의 목숨을 흔쾌히도 내던지는 동조일 뿐이였다. 적어도 쿠로오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하지만 결코 입 아프게 꺼내지는 않았다. 만월에 해가 되는 말이라도 했다가는 소리 소문 없이 잡혀 사막으로 내던져질게 분명했다. 아무도 어떻게 될지 모른다고 입을 모으지만 누구나 알고 있을 터였다. 그것마저 동조하고 있었다.

 

 글러먹었구나.

 

 쿠로오는 그리 생각하며 차오르기 시작한 탐욕스런 달을 바라보았다. 하나. 하나. 하나. 그렇게 잡아먹고도 부족하단 말인가. 바람빠지듯 웃으며 그는 주사위에 난 결을 따라 손가락을 주욱- 그었다.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객기라도 부려봤으면 좋았을 것을.

 

-

 

 만월의 서에는 그리 씌여있다. 만월의 의미는 '기꺼이 나를 주어도 좋아요' 누가 지었는지 참 잘 지었다 생각하며 쿠로오는 두루마기의 끄트머리를 쓸다 이내 제자리에 돌려넣었다. 미쳤지. 그는 좀처럼 진정되지 않는 혼란에 카펫 위에 털썩 주저앉았다. 뭐 그만한 가치가 있는걸까나, 이거.

 

 사제가 그리 말했다. 이번의 만월은 조금 특별하다고. 누구보다 상처가 가득한 아이를 원한다며 해당되는 이들은 모두 신전에 모이라 했다. 겨우 달 때문에 죽으라니 억울한 처지인 것은 당연했고 그러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고있었지만 어딘가 찝찝한 구석이 남아 쿠로오는 집의 모든 문을 걸어잠궜다. 그는 나라에서 소문난 조각가였다. 조각은 세심한 부분이 많아 자잘한 부상이 끊이질 않으니 그 또한 해당자였음이 틀림 없었다. 가고 싶지 않아. 보고 싶지 않아. 자신의 죽음이라면 그다지 신경쓰지 않는 부분도 있었다. 그야 미련이 없는걸. 그는 입버릇 처럼 말해왔었다. 그에게 삶의 미련으로 남은 것이라면 딱 하나가 있었지만 그것은 수도에서 사귄 이들이 알리가 만무했다. 보면 뭐 어쩔거야. 별 수도 없으면서 괜히 얼굴 봤다간 낭패인게 당연하지. 그리 굳게 다짐했지만 그의 다짐의 집행사제의 명령에 깨졌다.

 

 집행사제님이 널 지목했어. 확실히 '쿠로오 테츠로' 라고.

 

 거참 영광일세. 쿠로오는 작게 이를 갈았다. 좋을게 없었다. 이 미친 '의식' 따위의 메인 이벤트 속 빠질 수 없는 포지션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물론 잡혀들어가는 것은 사양이니 제 발로 걸어들어가는 수 밖에 별 도리가 없었다. 보고 싶진 않단 말이지. 우연찮게 기회가 닿아 집행사제는 볼 수 있냐 묻자 집행사제는 사제들 중에서도 가장 신성시 되기에 의식 날이나 되야 볼 수 있을거라는 답변이 돌아왔고 쿠로오는 안도했다.

 

 그는 집행사제를 알고있었다. 모를리가 없지 않은가. 한낯 대륙 구석에 위치한 곳에서 함께 자란 아이인 것을. 만월의 정기를 가지고 태어난 자. 그리 불렀다. 코즈메 켄마. 그는 집행사제이자 쿠로오의 소꿉친구이자 만월, 그 자체였다. 심블이라도 필요한 것일 테지, 그리 생각했지만 아니였다. 켄마가 집행사제로 지목받은 이후 다음 해, 그는 직접 의식을 거행하였다. 그저 내세울 뿐인 허수아비 따위가 아니였다. 날카로운 칼을 그 손에 쥐고 가만히 눈을 감고 있는 어린 아이의 심장에 그것을 꽂아넣었다. 솟아오르는 붉은 체액에도 그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그 날 쿠로오는 제 심장을 잃었다.

 

 만월의 아이로 지목된 이는 일주일 간 신전에서 생활하며 몸과 마음을 가다듬는다. 물론 쿠로오는 이를 거부하였다. 이번에 필요한게 가장 상처많은 거였던가, 대충 그런 거였으니 가다듬을 이유가 없다는 것이였다. 소란으로 이어졌지만 이내 그를 자유롭게 놓아주었다. 경비병의 말에 따르면 집행사제의 명이였단다. 젠장. 쿠로오는 작게 신음했다. 뭐든 좋으니 그의 눈 밖에 나고 싶었다. 보고 싶지도 않았다. 이 따위로 남에게서 듣고 싶지도 않았다. 그런 마음이였다. 교차되었다. 여전히 머리가 아팠다.

 결국 그는 극단적으로 가기로 마음 먹었다. 자살기도라면 본인이 무리였다. 그러고 싶지도 않고 겨우 이 따위의 애들 장난에 놀아나겠답시고 목숨을 버리고 싶진 않았다. 간단했다. 넘어졌을 뿐이다. 그게 넘어지면서 머리를 박은 바람에 피가 새어나온다면 얘기는 달라지겠지만 말이다.

 쿠로오가 눈을 떴을 때는 제 방이였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미친 의식을 위한 제물의 방이였다. 머리에는 익숙한 손놀림으로 붕대가 감겨있었다. 제법인걸. 뭐 이대로 상처가 늘었다고 좋아라 하려나. 그건 그거대로 재미없다고 생각하며 쿠로오는 팔을 쭉 뻗었다. 투박했다. 조각사가 그런 것이였다. 무엇보다 아름다운 것을 파내지만 그 만큼 손을 혹사시키는 일이였다. 그런 점이 쿠로오를 사로잡았다. 왠지 희생정신같다나 뭐래나. 분명 이 손을 알고 있었기에 지명당한 것이리라. 머리는 맑아지지 못했다.

 

 결국 이러니 저러니 별다른 특별한 것도 없이 의식 날이 성큼 다가왔다. 심란하던 마음은 생각보다 차분했다. 다 끝났다는 걸까.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조금 우스웠다. 조금은 솔직했다면 좋았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머리를 헤집었다.

 

 "나오시지요."

 

 낮은 음성에 쿠로오는 발걸음을 옮겼다. 뭐 어때 이젠 전부 끝나는걸. 그가 신전의 뒤뜰로 향하자 그의 눈은 관중들로 가득찼다. 이제껏 저 위치에 있었던 제 자신을 떠올리자니 조금은 역겨웠다. 매번 그 따위로 생각해놓고 보러왔었던거지. 겨우 이런게 뭐라고. 그는 대리석으로 깎인 제물대 위에 올라 무릎을 꿇었다. 어쩌면 절대 오지 않을 것만 같던 순간이 코 앞에 다가와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의외로 굉장히 골치 아픈 것이였다.

 

 "켄마."

 "쿠로, 안녕."

 

 다시는 보지 않을거라 다짐했던 얼굴이 수면 위로 드러나는 것. 보고 싶지 않았다니, 이렇게 그리워했는걸. 쿠로오는 피식 웃었다. 저 손에 죽는거구나. 여전히 핏기 가신 손을 바라보며 그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저를 내려다보는 켄마를 올려보았다. 달을 등지고 서 있었기에 어둡게만 보였다. 무슨 표정을 짓고 있는지 조차 가늠이 되지 않았다. 평범히 무표정이려나.

 

 "오랜만이네."

 "아아- 그런걸, 확실히."

 "보고 싶었어?"

 "글쎄. 어떻다고 생각하는데?"

 

 난 보고싶었는걸. 켄마가 말했다. 그랬구나. 쿠로오가 말했다.

 

 켄마는 한 걸음 다가와 그의 앞에 섰다. 무엇하나 보이지 않는 어둠이였다.

 

 "대답해줘."

 "별로. 난 별로. 보고싶지 않았어. 응."

 

 쿠로오는 웃었다. 켄마는 머리 위로 칼을 들어올렸다. 떨어진다. 쿠로오는 짧은 순간 켄마를 바라보고 있었다. 조금 익숙해져 옅게 비치는 얼굴은 울상이였다. 니가 왜 그런 얼굴이야. 왜. 떠난건 너였잖아. 먼저 손을 놓은 것도 너였잖아. 왜.

 

 "거짓말."

 

 요란한 소리를 내며 칼은 쿠로오의 오른편으로 떨어졌다.

 

 "아니야."

 "거짓말. 그럼 왜 그렇게 울거같은 얼굴하고 있는거야, 쿠로는."

 "그야- 빌어먹을 만큼 아름다운걸. 조각에 담지 못할 만큼, 그런 만월인걸."

 

 켄마는 주저 앉았다.

 

 "쿠로."

 "응."

 "만월의 의미, 알아?"

 "아마, 기꺼이 나를 주어도 좋아요 였던거 같은데."

 

 켄마는 쿠로오를 올려다보았다. 그 안에 언제나 만월이 담겨있었다. 아- 아름다워.

 

 "쿠로한테 있어서 나는 뭐야?"

 "켄마."

 "대답해줘, 얼른."

 "무슨 답이 듣고 싶은거야."

 

 알고있는 주제. 켄마는 두 팔을 벌려 쿠로오는 끌어안았다. 쿠로오는 검고 노란 그 머리칼을 조심스레 쓸어주었다.

 

 "넌 내 만월이야."

 "쿠로라면, 날 줘도 좋아."

 "그거 고백이야?"

 "아마."

 

 그것은 품 안에 만월이 안겨오는 소리였다.

 

-

 

에에...사실 뭘 쓰고싶었는지 저도 모르겠습니다..

 

그냥 저런 포지션이 보고싶었습니다..쿨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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