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쿠아카 전력 60분 ; 향수

 

(보쿠토는 성인 아카아시는 학생/주제는 언제나와 같이 두둥실)

 

-

 

 눈을 뜰 수 없을 만큼 맑은 하늘이였다. 한 줌의 재로 변해버린 한 땐, 어머니 라 불렀던 '것' 을 바다에 뿌렸다. 소금기 가득한 바다향에 그 아래 말갛게 속을 내보이는 물가에 내려놓았다. 물에 닿는 순간 사르르 가라앉으며 짙은 잔향만을 남기고 사라져버리는 것을 바라보던 아이는 울지 않았다. 반 쯤 감긴 눈은 슬픔이 어려있지도 않았다. 그저 피곤해보일 뿐 그게 다 였다. 아이는 이내 재를 모두 여전히 투명한 바닷물에 털어버리고 함을 닫았다. 어스름하게 노을이 조금씩 다가오고 있었다. 아이는 홀로였고 그와 조금 떨어져 상점가로 이어지는 계단에 서있는 무리들은 수근거렸다. 골칫거리. 짐. 딱 그 정도의 취급이였다. 아이는 알고있었다. 아버지는 이미 오래 전 돌아가신 탓에 어머니와 단 둘만이 남겨진 것은 가문에서 좋게 볼리가 만무했다. 아버지는 장남이셨고 당연히 재산을 가업을 물려받을 일순위의 자리였기에 그가 없다면 당연히 그의 아들인 아이가 다음 타자였다. 아이에게 있어 어머니의 죽음은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였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로 가문에서는 알게모르게 협박을 가해왔고 그에 시달리는 것은 온전히 어머니의 몫이였다. 이제야 쉴 수 있을거란 생각에 아이는 안도감 마저 들었다. 이제 편히 쉬세요.

 

 "안녕."

 

 작게 웃으며 말을 거는 남자는 아이와 눈높이를 맞추며 허리를 숙였다. 아이는 피곤한지 살짝 고개만 까딱였다. 남자는 아이의 머리칼을 쓰다듬었다.

 

 "오늘부터 형이랑 같이 살아야될거같은데. 혹시- 싫으려나."

 "아니요. 감사합니다."

 

 무슨 소리야, 감사라니. 남자는 피식 웃으며 아이를 품에 안아 올렸다. 아이는 여전히 함을 끌어안은 채였다. 피곤하지, 자도 괜찮아. 남자는 아이의 머리를 큰 손으로 살며시 눌러 어깨에 이마를 닿게하였다. 더러운 자식들. 남자는 작게 내뱉었다. 행여나 들렸을까 바다 바람에 춥지 않을까 조금 더 세게 품에 안으며 남자는 조수석 문을 열고 아이를 앉혔다. 문을 닫고 운전석으로 돌아와 앉으며 조수석 쪽 안전벨트를 매 주었다.

 

 "그러고 보니, 이름은?"

 "아카아시 케이지입니다."

 "형은 보쿠토 코타로."

 

 지금은 밤. 미안해, 자. 아이의 눈가를 손으로 덮어버리며 보쿠토는 시동을 걸고 조금 급하게 자리를 떴다. 이딴 곳에 있어봤자 좋을게 없다고 생각했다. 조금은 난폭했을 운전에도 아이는 깨지 않고 자고 있었다. 많이 피곤할테지. 신호가 걸리자 보쿠토는 블레이져를 벗어 조심스레 덮어주었다. 깨지말고 잘 자. 이마에 작게 입맞추었다. 낮은 음성이 아카아시의 귓가에 가물가물 들려오며 아카아시는 수마로 빠져들었다.

 

 

 "아카아시, 가서 자야지."

 "아-네.."

 "뭐야, 이리와. 옳지."

 

 아카아시는 보쿠토의 말에 선뜻 팔을 벌리자 보쿠토는 제 팔을 벌려 안아들었다. 보쿠토는 침실로 향해 침대 위에 아카아시를 조심스레 뉘이고 가슴께 정도까지 얇은 담요를 덮어주었다. 그리곤 저도 옆에 누웠다. 습관처럼 머리칼을 쓸어주고 이마에 입을 맞춰주며 아카아시, 잘자. 이에 화답하듯 아카아시는 보쿠토에게 안긴 채 시원한 체온에 제 뺨을 가볍게 부비었다.

 

 "오늘 왠일로 어리광이야."

 "저- 꿈 꿨습니다아.."

 "응? 무슨 꿈?"

 "보쿠토 상..이랑 처음 만났을 적이요."

 

 보쿠토는 살풋 웃으며 등을 쓸어주었다. 그랬구나. 안녕히주무세요. 응, 아카아시도 얼른 자. 둘은 금세 잠들었다. 조금도 시원하지 않은 그런 여름 밤이였다.

 

-

 

 보쿠토는 급하게 차를 몰았다. 아카아시의 학교에서 전화가 걸려온 탓이였다. 말 뿐인 '임원' 이니 업무라면 상관없을 터였다. 초조했다. 이러면 안되는데. 보쿠토는 주차를 마치고 시동을 끈 상태에서 핸들에 머리를 박았다. 진정하자. 진정해. 보쿠토는 교무실 앞에서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문을 열었다.

 

 "안녕하십니까."

 "무슨 용무신지."

 "아카아시 케이지 보호자 되는 사람입니다만."

 "바쁘신 와중에 죄송하게 됐습니다."

 

 보쿠토는 뒷문에 가까운 의자에 고개를 내리박은 채 앉아있는 아카아시를 발견하곤 곧장 그리로 갔다. 아카아시는 움츠러들었다.

 

 "아카아시."

 ".........."
 "나 왔어. 고개 들어봐."

 

 아카아시는 고개를 돌렸다.

 

 "아카,"

 "그 쪽이 그 학생 보호자되는 사람이에요? 잘 됐네요. 지금 우리 애가 얼마나..!"

 "아카아시, 얼른."

 "저기요, 잠시만요. 사람 무시하는거에요?"

 "아카아시. 나 화낸다."

 

  아카아시는 여전히 미동도 없었다.

 

 "저기요!"

 "아카아시 케이지."

 "당신 뭐야!"

 "케이지."

 

 아카아시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보쿠토는 손을 뻗어 아이의 뺨을 가만히 들어보였다. 여전히 숙인 모양새였기에 얼굴은 보쿠토 한정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보이고 싶지 않을 터였다. 보쿠토에게라면 더더욱. 내리깔은 눈이 어렴풋이 보였지만 보쿠토의 시선은 닿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상처' 위에 있을 뿐이였다. 벌겋게 부어오른 뺨에 터진 입술. 이 정도면 분명 입 안도 찢어졌을게 분명했다. 그제서야 닿은 시선은 단호했다. 조금 충열된 모양새에 보쿠토는 작게 신음했다.

 

 "당신 지금, 사람이 말을 하는데 들어야 하는게 당연하거 아니야? 그러니까 애가 저 모양 저 꼴이지. 자식 교육을 어떻게 시키는거야, 도대체가!"

 "어,어머님 우선 진정하시고."

 "지금 우리 애가 저렇게 됐는데 진정하게 생겼어요?!"

 

 보쿠토는 아카아시의 찢어진 입술 위를 쓸었다. 여전히 미동조차 없었다. 낯선 향이 미미하게 남아있었고 그것은 보쿠토가 미간을 구기기에 충분했다. 역한 싸구려 여자 향수냄새. 보쿠토는 작게 숨을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뒤돌아 여자를 마주했다. 모멸감마저 들었다. 저따위 여자에게.

 

 "자식 교육 하나 제대로 시키지도 못하고 깡패처럼 아무나 패고 다니게 만들 셈이라면 학교에 보내질 말아야하는거 잖아. 그거 하나 몰라? 당신도 그 정도겠지. 그러니 애 꼴이 저런거 잖아!"

 

 저런거, 라니. 설마 아카아시? 아카아시한테 저런 거라고 한거야, 지금? 교육? 깡패?

 

 "죄송합니다만 초면에 실례가 아닌,"

 "실례고 뭐고 지금 우리 애가 어떻게 됐는지 알기나 해?"

 "모릅니다. 모른다고요. 그러니까 알려나주시죠. 당신의 '애' 가 도대체 얼마나 심각한 상태에 다다라서 지금 이 모양 이 꼴로 우리 애를 만들어놓고 제가 업무 재쳐두고 학교에 나와 당신같은 사람이나 상대하고 있어야 하는지 말해보란 말입니다."

 

 여자는 아무 말 없던 보쿠토의 긴 답에 잠시 움찔하였다 이내 인상을 구기며 조금 옆에 떨어진 의자에 앉은 남학생을 가르켰다. 광대 부근에 멍이 들어있었다. 조금 센가. 보쿠토는 남학생의 얼굴을 흘깃 보고 혀를 찼다. 극성이란 말이지.

 

 "겨우 멍든거 말씀하시는 건가요."

 "겨,겨우 라니..!"

 "전치 몇 주가 나오기라도 하셨습니까? 뭐, 그런건 의미없으니 좋습니다. 얼마 원하시는 겁니까. 그게 목적일테니까요."

 "지금 내가 돈 몇 푼때문에 이러고 있는 줄 알아?!"

 "어,엄마..그만해. 이미 다 끝,"

 "넌 조용히 하고 있어!"

 

 보쿠토는 고개 숙인 아카아시에게 시선을 주었다 남학생의 말에 다시 고개를 돌렸다. 다 끝났다고 말하는건가.

 

 "선생님, 죄송합니다. 제가 급히 오느라 대강 들어서 상황을 잘 모릅니다만."

 "아, 네. 말다툼에서 시작한 모양인데 아카아시 군이 먼저, 손을.."

 "것봐, 그 쪽이 먼저 잘못해놓고 큰 소리나 치는게,"

 "아카아시, 왜 그랬어."

 "저! 제,제가 먼저 그랬어요. 죄송합니다! 아카아시한테도 사과했지만 다시 한 번 미안해."

 "너, 조용하고 있으라니까!"

 "무슨 일이였는데."

 "제,제가.."

 

 남학생은 벌떡 일어나 크게 허리를 숙여 사죄했다. 잠시 침묵이 돌았다.

 

 "부모님..일로 말을 꺼내버려서..죄송합니다. 다시는 그러지 않겠습니다."

 

 보쿠토는 남학생에게 다가갔다. 일어나. 그는 천천히 허리를 세웠다. 보쿠토는 작게 웃고 있었다.

 

 "그랬구나. 말해줘서 고마워."

 "죄,죄송합니다!"

 "아니야, 이렇게 반듯하게 자라주고 말이야. 저런 부모 밑에서. 창피라는 걸 알지도 못하고 대뜸 자식이 맞았다고 해서 찾아가서 인정사정 없이 뺨부터 갈기는걸. 저렇게 되면 전교에 소문 날거고 너도 많이 곤란해지고 하니까 진짜 자식을 생각하는 부모였다면 애초에 이성의 끈이나 잘 잡고 있는게 당연한거잖아. 이렇게 일이 커지게 되서 미안하게 생각해. 앞으로 학교생활하는데 아무런 지장 없게 해줄테니까 안심하고. 우리 아카아시랑 친하게 지내줬으면 좋겠어. 응?"

 "예, 예."

 

 그럼. 보쿠토는 아이의 어깨를 툭툭 치고 일어섰다. 교사는 보쿠토의 기색을 살피다 학생을 내보내었다. 보쿠토는 블레이져를 벗어 아카아시의 어깨 위에 걸쳐주었다. 차 키를 손에 쥐여주며 말했다.

 

 "먼저 가 있어."

 

 아카아시가 교무실을 나서자 보쿠토는 희미하게나마 웃고있던 가짜 미소를 지웠다. 사실 제가 없는 곳에서 다쳤다는 사실에 진정이 되지 않았다. 그것도 저렇게 더러운 손에. 역겨워. 똑같잖아, 그 때랑. 우습기도하지. 보쿠토는 단추 두어개를 풀어헤쳤다. 이렇게 격식 차릴 이유도 없었잖아. 얌전한 머리칼을 쓸어올렸다. 주머니에 손을 꽂아넣고 피식 웃었다.

 

 "당신 말이야. 그거 나쁜 손버릇이야."

 "뭐, 뭐라는 거..야."

 "근데 유감스럽게도 나도 나쁜 버릇있거든."

 

 보쿠토는 천천히 고개를 꺾었다.

 

"내 꺼에 손대는 자식들은."

 

 보쿠토가 웃었다. 흡사 먹잇감을 앞에 둔 맹수처럼.

 

-

 

 "아카아시, 상처보자."

 "죄송합니다."

 "아니 괜찮아. 얼른 아- 해봐."

 "업무 시간이였을텐데 겨우 이런 일로.."

 

 그만. 보쿠토는 아카아시를 얼굴을 쓰다듬었다. 가라앉았지만 여전히 붉은 기가 다분했다. 아팠겠지. 그는 작게 웃으며 시동을 켰다. 이 이상 다그쳐도 좋을게 없었다.

 

 "저녁 먹고 들어갈까?"

 "..좋을대로 하십시오."

 "냉랭하다고, 아- 그러고보니 아카아시가 좋아하던거 있던 곳 기억해. 거기 가자."

 

 아카아시? 아이의 눈은 슬며시 감겨있었다. 뭐야. 보쿠토는 언제나의 습관처럼 벨트를 매어주고 가만히 자는 얼굴을 바라보았다. 시달렸을테니까 조금 일찍 갈걸. 보쿠토는 작게 중얼거리다 가물가물한 눈으로 다시 힘겹게 뜨는 눈에 가만히 손을 올렸다.

 

 지금은 밤.

 

 살짝 벌어진 입술에 제 입술을 겹쳤다. 아카아시는 아무 것도 몰라도 돼. 내 안에 숨어. 너만의 밤이니까 이 안에선 좋을대로 해.

 

 여전히 머리아픈 향수냄새가 났다. 아무래도 좋으니 지우고 싶었다. 역해. 반은 더러운 오물과 같은 냄새였고 반대는 아카아시의 체향이였다. 보쿠토는 머리를 헤집었다. 이렇게 사랑스러운걸. 밥도 밥이지만 씻기는게 우선이라며 조심스레 차를 몰기 시작하는 보쿠토 였다. 

 

 

와ㅏ...죄송합니다

 

이건 진짜로, 진지하게 아닌데..뭐 하다 이리로 빠졌지...흐어

남은 전력 뛰지 말아야하나...

 

개사이다 보쿠토가 보고팠죠, 네..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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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츠하나 전력 60분 ; 나도 내가 불쌍해

 

(사리살짝 배틀로얄 AU/사망소재 有/주제는 하늘 위로)

-

 

 언제부터 였을까.

 

 철 들지 못한 칠칠맞은 어린 것의 한소연도 넋두리도 뭣도 아니다. 그저 사람의 위로라는게 절실해질 뿐이니까. 그러니까 괜찮아. 응. 오늘도 괜찮아. 절대. 괜찮다고. 괜찮은거 맞아? 아니, 괜찮아. 진심이야, 그거? 아-. 그래, 그럼 괜찮겠지.

 

 그럴리가 없잖아. 

 

 한 없이 쏟아지는 비가 억울해 울지도 못했다. 왠지 비따위 핑계로 울기 시작한다면 다시는 떳떳하게 고개들지 못할게 분명했으니까 말이다. 그저 그 뿐이였다.

 

-

 

 하나마키가 죽었다. 생각보다 잔인하진 않다고 마츠카와는 생각했다. 아니 정정하자.하나마키가 자살했다. 생각보다 잔인하진 않다고 마츠카와는 생각했다. 최후의 방편이랍시고 제가 쥐여준 잭 나이프로 손목을 그었다. 고요한 죽음이였다. 그는 섬에서 이루어진 살육의 흔적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아지트와 정반대 편인 해변가의 나무에 기대 잠든 것 마냥 눈을 감고 있었다. 세심한 선택이였다. 아지트가 발각되지 않도록 일부러 엉뚱한 방향에 자리잡았고 사체를 처리하기 쉽도록 해변을 택했다. 간단히 바다로 흘려보내면 끝날테니 편할 것이였다. 혹여나 발자국이라도 남을까 바다와 닿는 바위가 가까운 곳에 그 때 발각이라도 될까 수풀이 우거진 곳이였다. 참 그다운 선택이라고 생각하며 마츠카와는 간이 침대에 누워 작게 눈을 끔뻑였다. 역겨운 체액을 뒤집어 쓴 채 였지만 그다지 신경쓰진 않았다. 뭐- 어때. 이제 끝인걸. 마츠카와는 고개를 돌려 여전히 눈을 감고 의자에 앉아있는 하나마키를 바라보았다. 아니 정정하자. 여전히 눈을 감고 의자에 앉아있는 하나마키의 사체를 바라보았다.

 

 미안.

 

 발가락을 까딱였다. 오늘은 조금 시원하네. 그리 중얼거리며 마츠카와는 볼 안쪽 살을 작게 물었다.

 

-

 

 마츠카와가 하나마키를 만난 것은 괴상한 섬에서의 일이다. 이유도 모른 채 어디 영화에서나 볼 법한 수트를 차려입고 선글라스에 인이어를 낀 무서운 얼굴을 한 사람들에게 붙들렸었고 정신을 잃었다. 깨어나보니 이곳이였다, 따위의 뻔하지만 있을리가 만무한 전개였다. 그리고 실제로 일어났다. 마츠카와 잇세이란 남자는 천성이 그랬다. 가방 속 내용물을 확인하고 생존 가능성을 가늠했다. 행동보단 관찰로 룰을 익혀나갔고 다른 플레이어들보다 한 발 앞에서 생각했다. 하지만 사람은 완벽할 수 없다. 물론 개인 대 다수는 확실히 불리했지만 말이다. 네 명을 시작으로 승률계산이 아닌 본능적으로 몸이 튀어나갔고 그 뒤를 무리가 쫓았다. 갈림 길에서 그는 아지트와 반대 방향을 택했고 배급가방을 들고 익숙치 못한 길을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달리기엔 리스크가 너무도 컸다. 절벽의 끄트머리에 걸린 배급가방을 건져내느라 이미 체력적으로 무리인 상태였고 무엇보다 저에겐 '동료' 가 없었다. 협공에 온전히 혼자서 대치해야만 했다. 위험해. 살육이 허용되는 섬. 단 하나만이 살아서 이 섬을 나갈 수 있다. 빌어먹을 정도로 간단한 룰이였다. 약육강식. 잡아먹지 않으면 잡아먹힌다. 그의 뒤를 쫓던 발 빠른 선발대 즈음 되는 한 명이 마츠카와를 따라잡고 등을 팔꿈치로 찍어내렸다. 급격한 스피드에 둘은 나뒹굴었고 마츠카와에 비해 멀쩡한 사네는 금세 일어나 마츠카와의 허리 언저리를 발로 눌러 손쉽게 제압했다.

 

 '너- 어지간히도 발, 빠르네. 하아- 죽겠다아-'

 

 그는 잠시 숨을 고르더니 마츠카와의 어깨에 걸린 배급가방을 가로챘다. 남의 것은 뺐는게 아니지. 못 배우셨나. 확실히 마츠카와는 기진맥진한 상태였다. 상대도 좋지 않았다. 함부로 덤벼들었다간 도망칠 기회조차 사라질게 분명했다. 하지만 그는 공복 상태에 시달리고 있었다, 이틀 째. 먹지 못하면 죽는 것까진 허풍일지 모르겠지만 서바이벌에서 곤란한 위치에 서게 될 것만은 확신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배급가방이 그에겐 절실했다. 그는 항상 왼쪽 팔뚝에 감아놓은 잭 나이프를 꺼내들었다. 그리 세게 밟고 있는 것이 아니였으므로 충분했다. 망설임없이 사네의 발목을 찔렀다. 사네는 중심을 잃고 쓰러지며 비명을 질렀지만 그런 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배급가방. 마츠카와는 사네의 위에 올라타 목을 그었다. 피가 튀었다. 남의 거, 가로채면 벌 받는다고? 사네는 경련을 일으키며 바람가득한 비명을 지르다 이내 잠잠해졌다. 마츠카와는 명치 부근을 손바닥으로 쓸며 다시 뛰었다. 남은 건 셋이였다. 불리해. 벌써 따라붙은 또 다른 남자에 마츠카와는 이를 악 물었다. 위치를 들키는건 싫지만 어차피 불리한 위치라면 살 길부터 찾아야했다. 그는 안전핀을 물고 뽑아 뒤돌아 저를 향해 달려오는 사네에게 달려들었다. 우선은 발. 사네의 가슴팍을 걷어차고 재빨리 소형폭탄을 던졌다. 그리곤 다시 뛰었다. 최대한 멀어져야한다. 사정권 안에서 벗어나야한다는게 첫 번째 이유였고 아직 남은 둘의 추격을 피해야하는게 두 번째 이유였다. 폭발음이 귓가에 쟁쟁히 울리는걸 보면 그다지 멀리 떨어지지 못한 것이였다. 젠장. 마츠카와는 작게 읊조리며 잠시 멈추어 숨을 골랐다. 박수소리가 들렸다. 짝짝짝.

 

 '대단한걸, 둘이나 순식간에 죽여버리다니.'

 '어디서 부터 예상 범위였어?'

 

 호오-. 이미 그의 앞에 서 있는 둘에 마츠카와는 비릿하게 웃어보였다. 읽힌건가. 아니다. 세번 째 밤, 그와 마주친 적이 있었다. 그는 결코 두뇌 타입은 아니였다. 그렇다면 옆인가. 눈을 마주치지 않은 채 시선을 피하고 있었다.

 

 '저어- 둘 밖에 안남았으니까 동료로 같이..'

 '무슨 소리야, 우리 애들을 둘이나 죽였는데? 동료따위 말이 될리가 없잖아, 멍청아.'

 '하,하지만..아- 알았어.'

 

 지금. 마츠카와는 배급가방을 떨구고 잭 나이프를 수평으로 뉘인 채 직선으로 달려들었다. 복부에 한 번. 그대로 발을 걸어 넘어뜨리고 목을 짓밟고 그 위에 올라타 양쪽 관자놀이를 부여잡고 한 번에 목을 꺾었다. 힘을 견디지 못하고 뼈가 부러지는게 손 끝으로 느껴졌다. 마츠카와는 그대로 뒤집어 셔츠를 찢어 심장 부근과 명치를 차례로 깊게 찔러넣었다. 그리곤 제자리에 주저앉아 숨을 골랐다. 역겨운 체액도 닦아내었다. 물론 옆으로 번지는 모양새가 되어버렸지만 땀과 섞여 비스므리하게 볼만했다. 그는 비적비적 일어나 배급가방을 다시 집어들고 덩치의 시체 옆에 돌아와 털썩 앉아 가방을 열었다. 약. 간단한 음식. 옷가지. 도끼. 물. 밧줄. 괜찮네. 마츠카와는 주먹밥 하나를 꺼내들어 여전히 멍한 남자에게 내밀었다.

 

 '먹어.'

 '예, 예...?'

 '줄게. 필요할거 아니야.'

 '저- 저, 왜 저는 살려주시는 거죠.'

 

 마츠카와는 그의 손에 주먹밥을 쥐여주며 가방을 고쳐맸다.

 

 '그야, 넌 사람 못 죽일 눈을 하고 있으니까.' 

 

 같이 갈래? 남자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름이 뭐야. 하나마키 타카히로, 입니다. 에- 마츠카와 잇세이. 아- 그, 저..잘 부탁드립니다. 이쪽이야 말로.

 

-

 

 하나만이 살아나갈 수 있다. 그것은 유일한 규칙이였다. 단 하나. 하나마키는 발목을 다쳤고 전력이 되지 못하였다. 애초부터 그를 받아들인 것은 전력을 늘리기 위한 것도 동료를 모은 것도 아니였다. 단지 온기가 필요해서 였다. 그저 오랫동안 사람이 그리웠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좋았다. 이 섬에서 유일한 '사람' 이였기에. 마츠카와는 하나마키가 손에 피를 묻히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더럽고 무섭고 힘든 일은 다 제가 할테니 옆에 있어달라고만 하였다. 미끼 역할을 부탁하지도 않았고 자료를 수집해오라거나 배급가방의 위치조차 알려달라 하지 않았다. 정말 그저 곁에 머물러 달라고.

 물론 하나마키도 그렇게 친절하지만은 않았다. 제 고집대로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얼마든지 해냈다. 적의 위치를 알려주고 무기를 손질해놓고 배급가방 조달도 가끔 했다. 다만 마츠카와에게 혼이 났다. 위험한 일 하지말라며. 그게 미안하고 서운하기도 했지만 내심 고마웠다. 그랬기에 좀처럼 그만둘 수 없었다. 모처럼 가방을 들고 온 날이면 마츠카와 역시 들고와 키득거리곤 하였다. 그런 날이면 거하게 한 상을 차리고 말하면서 후회할 옛날 이야기를 꺼냈다.

 

 '그래서 말이야. 그때,'

 '하나, 키스해도 돼?'

 

 마츠카와는 하나마키의 답을 기다리지 않고 옆으로 살짝 고개를 비틀어 입술을 맞대었다. 하나마키는 피하지 않았다. 놀랜 기색이 있었지만 밀어내거나 거부하지 않았다. 이거 허락하는걸로 받아들여도 되는거지? 아마.

 

-

 

 하나마키는 곧잘 말했다. 벛꽃이 보고싶다고.

 마츠카와는 곧잘 말했다. 하나마키가 살았으면 좋겠다고.

 

 마츠카와는 제 옆에 나란히 앉은 하나마키의 머리칼을 쓸어내렸다. 하나, 난 말이야. 잡은 손은 차가웠다. 왜 그래야 했어. 마츠카와는 작게 웃었다. 이제 끝이였다. 이 살인쇼도 막을 내렸다. 내일이면 헬기가 최종 생존자인 저를 데리러 섬에 올 것이 틀림없었다. 주최측에서도 그렇게 알려주었으니 거의 확실했다. 재밌네. 사람끼리 본성 드러내면서 죽고 죽이게 만들어 놓고 마지막 살아남은 사람에게는 막대한 상금이 주어진다니. 요즘은 사람 목숨같은거 돈으로 쉽게 살 수 있으니까 그 정도 주려는 속셈인지도 모르겠다. 잘 죽여주셨습니다, 같은건가.

 새벽녘 맑기만 한 달에 비친 하나마키는 슬프게도 아름다웠다. 여전히 손목 부근만이 붉게 물든 채였지만 그 마저 황홀했다. 마츠카와는 살풋 웃으며 제 오른 손목을 하나마키의 잭 나이프로 그었다. 하얀 선이 그이고 그 사이로 핏방울이 송글송글 맺혔다. 하나, 알아? 여기 우리가 처음으로 섬에 와서 놀았던 곳이다. 그 때 너 물 튀기고 혼자서 좋다고 애처럼 신나서는. 재밌었는데 그치?

 

 "하나, 보고싶었어."

 

 마츠카와는 묘한 두통에 하나마키의 어깨에 기대며 눈을 감았다. 그 앞에는 제 사랑스런 연인이 두 팔 벌려 저를 맞아주고 있었다. 벛꽃, 보러 가자. 우리. 그러자, 잇세이.

 

 마지막으로 눈에 비친 것은 옅은 분홍빛이 흩날리는 벛꽃 뿐이였다.

 

-

 

전력, 전력, 전력.. 에에 내일 두 탕 뛰어야 하는건가, 그런건가..!

 

언제나지만 주제는 두둥실!! 하핫! 나도 몰라..짐승....짐승....흐어

 

요즘 배틀로얄을 자꾸 외치다보니 생긴 폐해인가 봅니다//나중엔 진짜 좀비물 튀어나오겠다....ㅂㄷㅂㄷ

 

마츠카와가 하나마키에게 하나마키 동료..?급 애들 혼자 처리하고 살려주는게 보고싶었을 뿐입니다, 진짭니다, 쿨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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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쿠아카 전력 60분 ; 잔혹동화

 

(보쿠아카는 성인/사망소재 있습니다/이번엔 조금이나마 주제 맞춘건가)

-

 

 "있잖아- 글은 작가의 욕구 배출구, 아닐까."

 "갑자기 무슨 멀쩡한 소리세요, 코타로 군."

 

 여느 때와 같았다면 이미 어금니에 갈려나갔을 얼음이 여전한 유리 컵을 만지작거리며 보쿠토는 창 밖으로 시선을 던졌다. 저도 모르게 그런 보쿠토의 이마에 손을 얹은 쿠로오는 질색할 뿐이였다. 열은 없는데. 보쿠토는 웃음을 터트리며 가볍게 쿠로오의 손을 쳐내자 쿠로오는 팔짱을 끼고 전혀 모르겠단 얼굴로 보쿠토를 바라보았다.

 

 "보쿠토, 나라도 이건 좀 무서운데 말이지."

 "그냥- 그럴수도 있겠구나, 하고 최근 생각하고 있어서."

 

 여전히 쿠로오와 시선을 마주하지 않은 채 뒷목을 쓰는 보쿠토의 행동에 쿠로오는 그저 가만히 '관찰' 하였다. 오늘은 크로스냐 스트레이트냐. 좀처럼 보기 드문 보쿠토의 차분함은 언제나 이면에 무언가 숨어 있었다. 혼자서 멋지게 커버리고 말이야. 이 쿠로오 씨 조금 슬픈걸. 고교 시절부터 손에 꼽을 만큼 본 적은 있었다. 분명 연애상담 이였다고 기억한다. 직접 네코마 고교까지 찾아와서 허리를 숙이고 저를 하루만 빌려가도 되겠느냐고 당당히도 외쳤었다. 이 녀석도 막무가내란 말이지.

 익숙해지지 않는 보쿠토의 페이스에 쿠로오는 아랫입술을 짓이겼다. 또 뭐가 튀어나올지는 절대적으로 미지수였다. 이건 리드 블록 따위 할 수 있을리가 만무했다. 불규칙적으로 테이블을 얄팍한 하얀 손톱으로 내리찍던 의미모를 행위를 그만두고 보쿠토는 처음으로 쿠로오와 눈을 마주쳤다.

 

 "아카아시가."

 

 토스가 올랐다. 몸에 밴 습관대로 두 팔을 뻗고 손가락 마디까지 힘을 주고 네트 위로-.

 

 "뭐- 헤어지기라도 하재?"

 "아니. 그건 아니지만."

 

 원 터치. 그의 천성이리 만큼 쿠로오는 조급해하지 않았다. 아니지만-? 참을성 있게 그는 기다렸다. 찬스는 언제라도 오는 법이니까.

 보쿠토는 입을 열었다 잠시 머뭇거렸다. 그리곤 금세 닫아버렸다. 그는 손가락 마디를 하나하나 누르며 갈 곳 잃은 시선으로 방황했다. 마른침을 삼켰다. 눈을 감아버렸다. 그리고. 천천히. 뜬다.

 

 "아카아시, 다시는 눈 못 뜰 수도 있대."

 

 원터치가 아니라 블로킹 아웃. 쿠로오의 시선에는 작게 웃고 있는 보쿠토가 보였다.

그렇게도 당당해보이던 그가 너무나도 작아만 보였다.

 

-

 

 보쿠토와 아카아시, 그 둘의 관계는 저울이였다. 보쿠토가 한 발 다가가면 아카아시는 한 발 물러났다. 그렇게 미묘한 수평을 이뤄냈다. 그럼에도 보쿠토는 끊임없이 다가섰고 아카아시는 그런 그를 밀어냈다. 그렇게 질릴 법도 한데 보쿠토는 지친 기색도 없이 한 발을 더 다가섰다. 깨달았을 땐 늦었고 등 뒤엔 벽이 가로막고 있었다. 다만 보쿠토는 아카아시를 기다려주었다. 아카아시가 저를 밀어낸 것에는 이유가 있다는 것 쯤은 잘 알고 있었기에 마지막 한 뼘의 거리를 남겼다.

 

 '아카아시. 좋아해.'

 

 당신은 정말-. 쓰러지듯 아카아시는 보쿠토의 품에 안겨왔다. 그 한 뼘의 거리가 뭐라고 이제껏 좁히지 않았던 걸까. 그 오랜 고백이 무색하리 만큼 아카아시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자신의 에이스의 품에 달려들었다. 좋아합니다, 저도. 당신을.

 벅차오르는 감정에 보쿠토는 단 한 마디만 했다. 기다려줘서 고마워, 라고. 그 보답이라도 되는 양 아카아시가 말했다. 포기하지 않아주셔서 감사합니다.

 

 후쿠로다니 배구부를 비롯한 이들도 당연하다 여길 만큼 보쿠토는 배구를 이어나갔다. 물론 배구 이외의 길이란건 애초부터 없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였다. 대학 졸업 후 그는 당당히 국가 대표에 발탁되었고 완전히 라고 하기엔 불완전했지만 더 이상 저만을 위한 세터가 아니라는 자각때문이였을까. 보쿠토의 감정기복은 상당히 완화되었다. 더 이상 어리광부릴 아카아시가 없다는 것이 아니였다. 그야 당연히 코트 밖에서 볼텐데 꼴 사나운 모습 보일 순 없잖아. 끝을 모르는 그는 다시 한번 벽을 깨고 도약했다. 위력만은 우시와카 다음을 이을만큼 그는 자라있었다. 

 반대로 아카아시의 경우는 조금 달랐다. 특별히 선수 생활을 지속할 계획이 아니였기에 대학 배구부에 들어 제 에이스에게 공을 올려주는 것으로 그의 배구는 끝이 났다. 아카아시도 나랑 같이 배구 계속하면 좋을텐데, 라는 제 연인의 투정아닌 투정에 그는 보쿠토네 팀의 오이카와 토오루를 언급하며 절대 무리라 쐐기를 박아버렸다. 물론 여전히 떼 쓰는 보쿠토의 덕분에 가끔 주말이면 생활 체육관에서 여전히 토스를 올려주긴 했지만 말이다. 국가 대표급에 비해 질 떨어질 제 토스를 기분 좋게 내리치며 제 오른손을 쥐고 이거야-라며 이게 치고 싶었어 하고 씨익 웃어오는 보쿠토는 아카아시에게 있어 쉽사리 거절할 수 없는 것이였으니 말이다.

 

 여전히 서로를 자신의 세터, 자신의 스파이커로 칭하며 할가 멀다 하고 애정을 주는 탓에 오히려 진 빠지는 쪽은 보쿠토 네 팀이였다. 그렇게 대단하면 데리고 왔으면 좋았잖아- 라며 칭얼거리는 오이카와에 보쿠토는 무슨 정신인지 다음 연습날 정말로 아카아시를 데리고 나타났고 이는 의도치 않게 연습경기로 이어졌다. 믿기지 않았지만 이겨버렸으니 문제였다. 국가 대표라고. 연습 후 드링크를 가져다 주겠다며 보쿠토가 자리를 비운 사이 오이카와가 아카아시에게 다가왔다. 야호-. 오이카와 상. 코타로 군은 말이야 평소에도 흐름 타면 굉장하긴했지만 오늘 처럼 그렇게 기분 좋게 치는 건 또 처음 봐. 그렇습니까. 세터로써 본받아야지, 나도. 이미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만. 흐음- 케이지군은 코타로랑 처음 경기 해봤을 적 기억해? 글쎄요. 벌써 몇 해전의 일이니까요. 아마 굉장히 힘들었겠지. 그런 타입이니까. 뭐- 그거야. 코타로 군 여기까지 끌어올려줘서 고마워, 케이지 군. 전 한게 없습니다. 무슨 소리, 세터야 말로 아군의 전력을 이끌어내는..! 보쿠토 상은, 보쿠토 상 자신이 완성시켰습니다. 전 옆에서 갈 길을 보여드렸을 뿐입니다. 선택은 보쿠토 상 몫이였고요. 그리고 그 이후로 어쩌다보니 종종 연습시합에 불려오게도 되어버리고 말았다.

 

 보쿠토에게는 외길이였고 아카아시에게는 지나가는 길의 핀 들꽃같이 존재에 가까웠을지도 모른다. 결과는 그렇게 되었지만.

 아카아시는 전공과는 전혀 관련없는 글 쓰는 직업을 가지게 되었다. 어쩌다 우연찮게 시작하게 된 것였지만 깨닫고 보니 흠뻑 빠진 뒤였다. 그 특유의 시니컬하지만 섬세한 문체가 돋보였고 그 바닥에서 인지도를 서서히 쌓아나갔다. 어째서 인지 몰랐지만 항상 어둡게 끝나고마는 그의 글은 몇 해간의 시간 후에 공식처럼 자리잡았고 아카아시 케이지 라는 작가만의 독특한 방식이 되었다.

 조금은 신선하게 헤피엔드 라던가는 어때, 라는 보쿠토의 말에 아카아시는 갸웃 거리며 저도 잘 모르겠다는 답을 했다. 작가가 제 작품을 마음대로 못하는게 어딨어. 하지만 왠지 마음놓을 정도로 편하게 끝나는건 손에 잡히지가 않는걸요.. 뭐- 난 아카아시라면 뭐든 좋지만 말이야! 결론은 팔분출에 불과했다.

 

-

 

 글은 작가의 욕구 배출구. 언젠가 아카아시가 저에게 해 준 말이다. 소설이란게 그렇지 않습니까. 허구에 불과하다고요. 현실같은 허구. 진짜같은 가짜. 그러니 작가의 일생이 들어가 있다 해도 이상하지 않은게 소설이라며.

 

 "그럼 아카아시는 뭘 바란거야. 응?"

 

 보쿠토는 물었다. 답은 없었다. 도로 물었지만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젠장. 보쿠토는 욕지거리를 읊조리며 의자를 끌어다 아카아시의 옆에 자리를 잡았다. 링겔 액이 투여되고 있을 호스도 겨우 저런 것에 의지해 숨을 내맽고 있을 호흡기도 죄다 떼어버리고만 싶은 심정이였다. 케이지 얼굴 안보인단 말이야. 힘 없는 손을 잡아다 가볍게 뺨에 부볐다. 차가워. 여전히 차가운 손이였다. 보쿠토는 아카아시의 손가락을 하나하나 쓸어내리더니 작게 웃었다.

 

 "이젠 반지 헐렁하겠다."

 

 웃었다. 웃었다. 웃었다. 툭. 눈물이 웃음을 비집고 나왔다. 어째서. 난 웃어야 하는걸. 케이지는 나 우는거 싫어하잖아. 울컥 하고 쏟아져나왔다. 기별없는 이별에 지쳐있었다. 알고 있다. 나 케이지 아니면 안되는거 알잖아. 이번에 나- 서브도 확실히 성공했어. 마지막 세트까지 코트에 서 있었어. 스트레이트 뚫리지 않고 막았어. 응?

 

 "잔인하다, 케이지는."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거야? 난 어디서부터 놀아난거야? 화 안낼테니까 대답해줘. 쓰러지기전 온전히 B와 A라는 이름으로 완성시킨 소설 한 권을 건냈었다. 나중에 읽어주세요. 언제? 때가 되면. 그 때가 언젠데. 알거에요.

 A는 시한부 판정을 받았다. B는 그 사실을 몰랐다. A는 B를 짝사랑했다. 얼마가지 않아 B가 A에게 고백했다. 받지 않았다. 하지만 결국 받았다. 욕심이였다. 이게 니 이야기야? 나는? 난 어떻하고? 후두둑- 시트 위로 굵은 눈물 방울이 떨어졌다. 케이지, 케이지, 케이지, 케이지, 케이지. 의자가 소음을 내며 쓰러졌다. 그 아래 보쿠토는 무릎을 꿇었다. 허탈했다. 난-.

 

 눈에 뻔히 보이는 변명이라도 좋아. 이건 아니잖아. 이건 너무 잔인하잖아, 케이지.

 

-

 

아- 날렸어요. 네- 빰! 하고 쫙!하니 차잔!! 하고 사라졌더라고요..쿨쩍))

 

이번 주제 엄청 소재 고민 많이 했는데 보쿠토 얀데레로 간다!! 했다가 요즘들어 아카아시를 심적으로 너무 많이 괴롭혀서 괜시리 죄책감에..미안해 이것도 다를 것 없지만 육체적으로 고통 받..은건가...아 잠시만-

 

어른 스런 보쿠토가 우는 거 보고싶었습니다, 라고 주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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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로켄 전력 60분 ; 오늘은 네 맘 숨기지 마 하고픈 대로 해

 

(제국군 쿠로오와 귀족 소유물 켄마/주제는 두둥실)

-

 

 쿠로오 테츠로는 그 모든 것이 한 여름의 꿈이 아니라면 허상이라 믿었다. 축축하고 낡은 벽의 틈 사이로 자라난 이끼와 눅눅한 곰팡이에 새벽 이슬에 결코 좋지 못한 느낌으로 젖어버린 짚더미 위에서 다시 한 번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그게 현실이 아니였다면 제가 이 곳에 있을 연유도 없었기에 이내 타협해버렸다. 그건 뭐였을까. 이젠 식어 굳어버린 뻣뻣한 핏자국이 선한 제 제복의 옆구리의 언저리를 더듬었다. 알다가도 모를 노릇이였다. 이야- 오늘은 머리가 안눌리겠는걸. 그리 중얼거리며 쿠로오는 짤막한 창 살 너머 보이는 희미한 새벽달을 올려다보았다. 

 

 정말인지 알다가도 모를 노릇이였다.

 

-

 

 제국은 탐욕스러웠고 자라나기 시작하면서 온전히 제 어미를 먹어치웠다. 그로 모자라 형제를 잡아먹었고 끝으로 보란 듯이 아비를 헤치웠다. 그렇게 자라났다. 닥치는 대로 먹어 치우고 제멋대로 굴었다. 그런 무자비함이였지만 함부로 넘볼 수 없는 순수한 힘이였다. 쿠로오 가(家)는 정통 파였지만 그는 예외였다. 특별 취급이라기 보단 어찌되든 좋았다. 힘이란게 그런 것이 였으니. 절대적인 힘에 복종하면 되는 것이였다. 간단하잖아. 선대는 당연히 완강하게 굴었다. 알고있었지만 꽤 단호한걸. 따지고 보면 쿠로오라고 가문에서 미움 살 일은 하고 싶지 않은게 당연했다. 하지만 누군가 희생하지 않으면 더 이상 길은 없었기에 가벼운 머리를 조아렸다. 천성이기도 했다. 제복을 입고 검을 수여받고 충성을 맹세했다. 자신조차 어디서 어디까지가 진실인지 몰랐다. 그 편이 더 좋을거라 생각했다.

 그는 작위를 수여받던 날 아버지에게 불려갔다. 불명예스러운 검을 허리춤에 차고. 사실 얻어맞을거라고 생각했었다. 오히려 그 정도면 다행이라고 되내였었다. 가문의 수치라며 내쫓을거라고, 좀 더 멀리까지 본다면 사지가 멀쩡히 도로 방을 나올 수 없을거라 멋대로 떠올리며 억지로 입꼬리를 말아올렸다. 불안을 보이지 않기 위한 그만의 무기였다.

 

 '작위를 받았다고.'

 '예.'

 

 못난 자식의 얼굴을 마주하지도 않은 채 그저 창가에서 기운 달을 올려다 보고 계셨다. 이제껏 그 손으로 얼마나 많은 이들을 상대해왔을까. 유년 시절부터 쿠로오의 스승은 아버지였고 머리가 굵어지고 나서조차 쉽사리 파고들만한 상대가 아니였기에 그는 자신의 아버지를 잘 알고있었다. 차마 무어라 할 수 없는 것이겠지. 내칠 수도 없었을 터였고 오냐 하고 넘길만한 것도 아니였을 테니 말이다.

 

 '기본에 소홀하지말거라.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다.'

 '예.'

 '마음가짐을 바르게 하거라. 네가 누굴 보필하거든 네 이름에 부끄럽지 않도록.'

 '알겠습니다.'

 '검을 도구로 보지 말아라. 각각의 이름이 있고 삶이 있는 것이니 소중히 다루도록.'

 '명심하겠습니다.'

 

 결국 부모는 부모였다. 당신도 이렇게 약하지 않았을 텐데, 언제부터 그 넓은 등을 한 없이 움츠리고 살아왔는가. 쿠로오는 그 때 처음으로 아버지에게 동정심으 느꼈다. 우습기 그지없었다. 동정심이라니. 한 켠으로 씁쓸해졌다.

 

 힘 없는 아비라 미안하구나.

 

 쿠로오는 본가에서 떨어져 나와 살았다. 본가에 뒤지지 않게 커다란 기와집에 익숙한 사용인들. 아버지였다. 당신은 마지막 까지 이러시는 군요. 쿠로오는 웃었다. 자조적일 뿐이였다.

 

 쿠로오는 성급하게 굴지 않았다. 천천히. 모든 것을 제 편으로 끌어들였다. 원래부터 그런 습성인 것을 아는 사람이라고 해봐야 친우인 야쿠 모리스케 정도였다. 아무도 믿을 수 없었다. 정계가 그런 곳이라 하더라도 이 곳에서 떨어진다면 그 다음이란 없었다. 그렇게기에 영리해야했고 조급하게 굴지 않아야 했다. 남들보다 한 발 앞서야 했고 잡아먹히기 전에 잡아먹어야 했다. 그랬기에 쿠로오 테츠로는 쿠로오 테츠로를 집어삼켰다. 잔해가 남지 않도록. 끝 맛이 느껴지지 않도록.

 

 그는 넓은 바다에 스스로를 내던졌다.

 

-

 

 "아-."

 "죄송합니다."

 

 잘리기라도 한 것 마냥 툭 끊기는 검은 머리칼에서 노란 색. 이 근방에서는 볼 수 없는 희귀한 것이였다. 그것은 짧은 찰나에 쿠로오의 시선을 빼앗기에 적합한 것이였다. 서부 쪽에서 온건가. 쿠로오는 떠올렸다. 잔뜩 싫은 얼굴을 하고 구해줘- 따위의 눈을 하고 있었다. '그것'은 쿠로오를 경계함과 동시에 친근감을 드러냈다. 범인(凡人)의 눈에는 그저 따분함과 무료함에 지친 얼굴일 따름이겠지만 그에게는 달랐다. 막연한 흥미랄까. 새하얀 바탕에 붉게 수놓은 로브라니, 눈에 띄기 적합하기 그지 없었다.

 의문은 금방 해결되었다. 상부의 명령으로 다시 대면할 수 있었다. '그것' 과. 궁에 두 달 간 백작이 머무르고 간다. 백작의 소유물이니 극진히 보살필 수 있도록, 정도. 소유물 이라. 그거 구미가 당기는 말이잖아.

 

 처음에는 귀여운 녀석인 줄 알았다. 알고보니 고양이 과 동물이였다. 식성 까다로워 말수 없어 만사가 귀찮아 취향 확고해. 아니 그냥 고양이 였다. 조금은 외로움을 탔고 조금은 자유를 갈망했다. 쿠로오는 그런 그에게 쉽사리 녹아내렸다.

 

 '이름이 뭐야.'

 '몰라.'

 '쿠로오 테츠로. 너는?"

 '.....켄마.'

 '백작은 그렇게 부르지 않던걸.'

 '코즈메 켄마. 원래 이름이야.'

 

 헤에- 영광인걸, 켄마. 그렇게 부르지 마. 그럼 어떻게 불러, 코즈메 군-? ....아까로 부탁해. 어째서- 어색하니 이렇게 하자고. 싫어.

 쿠로오는 켄마의 페이스가 마음에 들었고 그것은 그가 켄마에게 손 대기 딱 좋은 이유가 되어주었다. 처음 손등에 입 맞추었을 때 켄마는 평소와 다름없는 얼굴로 쿠로오를 응시했다. 어째서 아무 반응도 없냐는 질문에 그는 답했다. 상관없으니까. 슬금슬금 올라왔다. 본연의 저가. 특별히 도로 삼킬 생각따위 없었다. 그래야 할 만땅한 이유가 없었기에. 그는 차례로 목덜미. 뺨. 눈가. 이마. 입술 위에 제 입술을 맞대었다. 어디까지가 상관없다는거야, 켄마. 반응을 원했다.

 

 살을 맞대면 없던 감정도 생긴다고, 물론 애초부터 자리잡은 감정이였지만.

 

 '좋아해, 라고 하면 뭐라고 할래?'

 '거절할게.'

 '쌀쌀맞잖아.'

 '알고 있었잖아, 이런거.'

 

 알고 있어도 부정당하면 씁쓸한거야. 쿠로오는 허울 좋게 웃어보이며 모래시계의 흐름을 관찰하고 있는 켄마의 머리칼을 쓰다듬었다. 침대에 엎드린 채 통 넓은 반 바지 아래로 쭉 뻗은 다리를 까딱이고 있었다. 다 떨어지고도 벽면에 달라붙어 있는 모래 알갱이에 시선을 맞추며 큰 눈을 깜빡이는 켄마였다. 쿠로오는 그런 켄마를 깨닫지도 못한 새 위를 향하게 뒤집어 그 위에 올라타 식탐에 가득 찬 눈으로 켄마를 내려다 보았다. 좀 더 위기감을 가지는 건 어때, 켄마.

 

 '글쎄. 쿠로라면 안심되기도 하고 말이야.'

 

 나른한 눈이 느릿하게 사라졌다 나타났다.

 

 '쿠로라면 괜찮을지도.'

 

 쿠로오는 밤 새 여린 속을 갈랐다. 무심한 주인에 비해 섬세했다. 연신 제 이름을 부르짓는 켄마에 쿠로는 주문도 많아, 하고 중얼거렸다. 불평치곤 부드러운 입맞춤이였다.

 

 언젠가 쿠로오는 켄마에게 물었다. 항상 창 밖으로 무얼 보고 있으냐고. 그러자 켄마가 대답하기를, 내일. 켄마가 말하는 것의 대부분은 좀처럼 이해하지 못할 말 뿐이였지만 쿠로오는 언제나 그저 끄덕였다. 그럼 가버리면 되잖아. 안돼. 어째서. 글쎄, 나 혼자서는 무리랄까. 그거 참 즐거운 상상이네. 식어버린 살갗을 끌어안겨 안으며 쿠로오는 졸린 눈을 한 켄마의 등을 토닥였다. 얼른 자.

 

-

 

 과거의 나에게 묻지 않는 이상 답은 절대 나오지 않을 것만 같았다. 그 때 왜 그랬었냐고. 미련하기 짝이 없지. 켄마의 반응을 원했기에 그러하였단 것 쯤은 잘 알고 있었다. 사랑에 빠지는 순간 멍청이가 된다고 누가 말했었던가. 사랑이구나. 입꼬리를 말아올렸다. 헛웃음이 비집고 나왔다.

 

 "쿠로오."

 "오야오야- 이런 누추한 곳까지 이 시간에 왠 행차시래."

 "조용해, 이 자식아. 너 때문에 진짜 이게 뭐야."

 "쿠로오 상-! 데리러 왔, 윽"

 "리에프 조용해."

 

 최외곽 감옥. 즉 궁에서 가장 떨어진 곳이다. 말끔한 제복차림에 어울리지 않게 과도하게 제한된 행동이였다. 이유 쯤이야 쉽게 간파할 수 있었다.

 

 "현상수배 걸리기라도 하는 날이면 넌 나한테 죽을 줄 알아."

 "이거 무서워서 어디 살기야 하겠어, 야쿠 군?"

 "가. 가버려. 폭동 진압 중이니까 이 쪽에 신경 쓸 전력도 없을거야. 서문은 열려있어. 그 쪽은 우리 부대 담당이니까 길 터놨어."

 

 옥의 문을 열며 기어나온 쿠로오에게 로브와 묵직한 가방을 던지듯 내어주며 야쿠는 말했다. 사나운 눈을 하고 있었다.

 

 "쿠로오 테츠로. 오늘 이 시간 부로 넌 폭동 진압 도중 전사하게 된다. 죽은 사람이야, 알아 들어? 그러니까 꺼져. 죽은 인간이 뻔뻔히 살아 돌아다니면 곤란해지는건 너 하나가 아니란 말이야. 눈 앞에서 당장 꺼져."

 

 아아- 이거 또 신세 지게 됐네. 야쿠에게서 받은 가방을 허리춤에 차고 로브를 둘러쓰고 그의 옆을 지나갔다. 고마워- 야쿠. 망할 자식.

 망을 보던 리에피는 씨익 웃으며 검을 내어주었다. 이거 쿠로오 상 꺼죠? 멍청한건 나 하나가 아니였구만. 왼손에 검을 꽉 쥐고 리에프의 어깨를 툭툭 쳤다. 간다.

 

 "쿠로오-!"

 "아-?"

 "서문은 항상 열어둘테니까."

 

 알아. 로브의 펄럭거림과 군화의 익숙한 둔탁음 검집과 검의 소음.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야쿠는 그제서야 고개를 떨구었다. 굵은 물방울이 군화의 끝을 적셔나갔다.

 

 "멍청한 놈-. 그런 얼굴하는데 어떻게 안보내줘."

 

 리에프는 말 없이 한 없이 작아진 야쿠를 끌어안았다. 울지마요. 안 울어.

 

 야쿠의 말대로 밖은 아수라장이였다. 다만 그의 친우가 알려준 길만은 깔끔했다. 기분 나쁠 정도로 조용하고 음산한 길을 내달리며 쿠로오는 로브를 여몄다. 켄마도 이랬을까. 자유에 가슴이 뛰면서도 불안했을까. 조금 아려오는 옆구리의 통증에 이를 악 물었다. 이래서 귀족 나부랭이들이란, 찌를거면 제대로 찌를테지. 어설프게. 

 

 켄마의 두 손에 자유를 쥐어준 날. 하얀 로브의 펄럭임과 함께 그가 말했다. 쿠로는? 입꼬리를 말아올려보이며 문을 닫아버렸다. 야쿠의 심정도 이럴까. 제 오랜 친우를 보내는 기분이란건 어땠을까. 뒤섞이는 호흡과 생각과 통증에도 쿠로오는 그저 달렸다. 서문에 다다르자 그제서야 그는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주위를 살폈다. 경계 지역이니 조금은 위험할지도. 쿠로오는 검을 뽑았다. 스산하게 선 날은 여전했다. 칼등에 이마를 맞대고 깊게 숨을 내뱉었다. 그리운 감각이였다. 그는 작게 웃으며 문 밖을 내다보았다. 밤이라 시야가 좁아졌다. 하지만 확실히 보이는 바람에 나부끼는 로브와 사람의 인영에 마른침을 삼켰다. 젠장, 틈틈이 연습이라도 해둘걸. 지금이라면 절대적으로 불리할 자신의 입장을 떠올리며 웃기지도 않은 후회를 했다. 그리 깊진 않았지만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상처였다. 쿠로오는 천천히 일어서 검은 수직으로 세우고 왼발은 수직, 오른 발은 수평을 유지한 채 조심스레 접근했다. 여전히 펄럭이고 있었다. 고민할 틈도 없이 검을 수평으로 뉘여 아래서 위로 그어 올렸다. 눈아픈 모래바람이 가라앉자 서서히 드러나는 모습에 쿠로오는 초조했다. 어째서 가만히 있는걸까.

 

 "쿠로."

 

 눈에 띄는 하얀 로브에 시선을 잡아끄는 푸딩 머리. 이것만으로 충분했다. 켄마-. 쿠로오는 검을 천천히 내려 바닥을 겨누었다. 이것도 야쿠의 계획인가. 웃음이 비집고 나왔다. 저를 올려다보는 눈이 그리웠던 지라 말없이 그리웠노라 되내이며 뺨이며 눈가를 엄지로 쓸어내렸다. 켄마는 그의 손 위에 제 손을 겹치며 물었다.

 

 "쿠로는?"

 "아아- 역시 곁에 있을래."

 

 켄마는 발꿈치를 한껏 들어보였다. 쿠로오는 기꺼이 고개를 숙여주었다. 열기가 맞닿자 서로를 옭아맸다. 그들 답지 않게 여유가 없었다. 아무래도 좋았다. 굳이 말로 표현하자면 그것은 구원이였다. 그 깊은 바다에서 건져내어 숨을 불어넣어 준.

 

 쿠로-.

 

 그것은 무서우리만큼 오랜 애욕이 묻어나는 목소리였다.

 

-

 

분명 쿠로켄인데, 얘네가 메인인데..야쿠 멋있잖아, 젠장.

쓰고 싶은게 다 안써져서 불만입니다, 좀 더 넣고 싶었는데 그러자니 갈아 엎어야겠고 여기서 조금만 수정해보자니 이미 만빵인거 같아서 더 넣은면 넘칠거 같습니다 큨큐큐큐큐큐

에라, 몰라 오늘은 전력 두 탕 뛰는 날- 과제 많은데 어쩌지..

 

제복입은 쿠로오와 금기st 의 켄마가 보고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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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츠하나 전력 60분 ; Pumpkin time

 

Pumpkin time ; 꿈이 깨지고 냉혹한 현실로 돌아오는 순간

 

(마츠하나는 성인/주제는 저 멀리)

-

 

 마츠카와 잇세이는 따분했다. 원래 천성이겠거니 싶다가도 그 적막이 사라지기라도 하면 불쾌했다. 본디 혼자 있는걸 즐기는 편이긴 했다. 그렇다고 믿었다.

 

 점심시간이면 창가에 자리를 잡고 턱을 괴고 풍경을 바라보는게 습관이였다. 특별히 눈여겨 보는 것은 없었다. 잠시라도 눈을 돌리고 싶었을 뿐이였다.

 

 그의 첫 인상이라 한다면 무섭다, 즈음 되지 않을까. 여기저기 상처에 거즈와 붕대를 둘둘 두른 채 자기소개란, 마츠카와 잇세이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두어 개 정도 풀린 셔츠 사이로 보이는 푸른 멍에 머리에 붕대 눈가에 밴드 입가에 딱지가 얹은게 영 좋은 인상이라 부르긴 힘들었다. 애초에 성질 좋아보일 법한 얼굴은 아니였지만.

 사람이란게 그렇지. 다가오지 않았다. 자기보호 욕구라는게 저런 걸까. 인간이란게 그렇지. 자기 멋대로 해석하고 자기 멋대로 선을 그어버린다. 처음부터 그런 것 따위 잘 알고 있었는걸, 뭐. 마츠카와의 눈에는 들지 않았다.

 

 배정 받은 자리는 큰 키 덕분에 맨 뒷 자리에서 앞 자리였다. 어중간한 뒷 문에서 두 번째로 떨어진 맨 뒷 자리에서 앞 자리. 소문이란게 편하기도 하지. 뭐라도 가져다 붙이고 나중에 나도 들은 얘기인걸, 하고 입 닦아버리면 끝나는 것이니. 자리라면 바꿔달라 부탁 받았다. 분명 제 옆 자리 여자애 였던걸로 기억한다. 남자를 앞세워서 그 뒤에 숨어 피해자라도 되는 양 덜덜 떨었다. 대체 뭘 했다고 저렇게 구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차라리 주먹이라도 휘둘렀다면 속 시원했을지도. 그리 생각하며 흔쾌히 바꾸어 주었다. 그리고 들리는건 덕분에 살았다, 였었던가. 웃겨, 정말. 흔한 가해자 감싸는 말이 살을 붙여 결국은 위협 해서 같은 반에 남자애가 바꿔줬대,로 완성되었다. 그리고 우연찮게 불량아의 완성이라는 창가의 끝 자리까지 완벽했다.

 

 내 알 바 아니지만.

 

 이후에 잘 해명되었다는 것 같았지만 마츠카와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천성이 그랬다. 원래 소문이란게 뜬 구름과 같았기에 제가 원한다 하여 이리저리 주무를 수 있는 것도 아니였다. 그리고 보이는 것만으로 결정내린다면 거기서 거기란 말이기도 했다. 그러니 어찌되든 좋았다. 고등학교 란게 사교 모임도 아니고 말이지.

 물론 나쁘지만은 아닌거 같아 로 인상이 변하는데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등교 후 몇 시간 되지 않아 시작된 입학식의 신입생 대표가 마츠카와 였기 때문이였다. 눈에 너무 띈다는 이유로 머리의 붕대와 얼굴의 밴드를 떼어내고 단상 위에 올랐다. 뒤 돌아 내려가면서 벛 나무가 보였다. 벛 나무를 닮은 아이도 보였다. 아이는 마츠카와와 눈이 마주치자 싱긋 웃어보였다. 마츠카와는 시선을 피했다. 왠지 그래야 할 것만 같았다. 

 

 물어볼 친구도 없었기에 그 후로 이 반 저 반을 돌아다녔다. 단순한 의문이였다. 그리고 한참 떨어진 10반에서 그 아이를 발견할 수 있었다. 창문 너머로 소란의 중심에서 웃고 있었다. 수 많은 사람 중에서도 유독 눈에 띄었다. 그 특유의 옅은 벛꽃잎을 닮은 머리칼이 한 몫하긴 했지만 마츠카와에게 있어서는 조금 달랐다. 그 아이는 친구와의 대화에 장난을 치다 창문 너머 저를 바라보던 마츠카와와 눈이 마주쳤다. 눈꼬리가 접히게 웃었다. 달큰했다. 마츠카와는 발걸음을 돌렸다. 왠지 그래야 할 것만 같았다. 

 

 배구부 신입생 환영회에서 그 미소를 다시 볼 수 있었다. 중학교 대회 때 보았기에 눈에 익기도 했지만 배구했던 이라면 누가 모를까. 오이카와 토오루. 그의 손에 이끌려 배구부에 가입하게 되었다. 마츠카와 잇세이, 맞지? 아-, 어째서 아는거야. 그야 대회 때 본 적 있는걸, 절대 맞아. 그 때 내 서브 받아낸거 너였어. 그랬었나. 그랬다구- 아까 대표로 단상 섰을 때도 봤고! 그야 전교생이 봤을텐데. 키도 크고, 그래서 말이야, 나랑 같이 배구하자. 전국에 보내줄게. 무슨 자신감이야. 어때? 무엇에 홀린 듯 고개를 끄덕였다. 뭐 현실 잊게 해주는 것 쯤 하나 있어도 좋겠지.

 

 "마츠카와 잇세이, 맞지?"

 "아- 응."

 "나, 하나마키 타카히로 라고 해."

 

 불쑥 내미는 손을 잡았다. 남자치곤 부드러웠다. 암만 배구가 실내에서 하는 스포츠라고 해도 새하얀 색이였다. 너 전에 나보고 그냥 갔지? 글쎄. 다음부터는 그러지말고 들어와. 괜히 나도 마음 쓰인단 말이지. 아-.

 

 그것이 하나마키와의 첫 만남이였다.

 

-

 

 니가 집안 생각해서라도 이러면 안되는거 아니냐. 대체 뭘-. 이 집안따위가 나한테 해 준게 뭐가 있다고. 마츠카와는 머리를 헤집었다. 규칙적으로 울리는 기계음에 짜증이 솟구치다가도 여전히 눈을 뜨지 않는 하나마키의 얼굴에 한숨을 내쉬었다.

 

 "히로, 히로-."

 

 인공 호흡기에 의지해 겨우 숨을 내뱉는 제 연인에 마츠카와는 소리 죽여 울었다. 마른 세수를 했다. 아랫 입술을 깨물었다. 그래도 무엇하나 달라지지 않는다는게 현실이였다. 알고있었다. 알고있었지만.

 

 "히로, 제발."

 

 마츠카와는 핏기없는 하나마키의 손을 잡으며 그 앞에 무릎 꿇었다. 미안해. 미안해.

 

 원래 엄한 집안이였다. 독자로 제가 후계자였기에 유년의 행복한 기억따위 없었다. 그 흔한 어리광도 부릴 수 없었다. 뼈대있는 집안이라며, 어릴 적 부모의 품에 안겨 잔 적이 있었던가. 부모와 함께 시간을 보낸 적이 있었는가. 뻑하면 일이라며 그 넓은 집에 홀로 남겨져 있었다. 사용인들마저 혀를 내둘렀다. 사모님도 좀 너무하신거 아닌가. 도련님만 저 어린나이에 안쓰럽게 된 거지. 불쌍해.

 길고 얇은 줄 하나에 발을 내걸고 아슬아슬하게 외줄타기 였다. 사랑 받아 본 기억은 없었다. 뭐든 잘해야 했다. 그래야 봐주기라도 하니까. 잘하지 못하면 벌이 있으니까. 단지 그것 뿐이였다. 학교에서 집에 전화라도 가는 날이면 그저 죽은 목숨에 불과했다. 부모 자식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제가 배 아파 낳은 자식에게 그렇게 모질 수 없다고 생각했다. 각종 행사에 코 빼기도 보이지 않던 아버지가 학교에 얼굴을 보이는 순간 헛웃음이 비집어나왔다. 난 당신에게 무슨 존재야.

 

 그런 집 구석이 싫어 자살기도를 했었다. 생각보다 아프지도 않더라. 면도칼을 집어다 방 문을 걸어 잠그고 그었다. 처음에는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허연 선이 그어지더니 그 사이로 핏방울이 맺히기 시작했었다. 그 다음 쏟아지더라. 잔-뜩. 새하얀 시트를 적시고 넘쳐 그저 바다 같았었다. 그 바다에 빠진 후 가만히 눈을 감았었다.

 병원에서 눈을 뜨고 나서 처음으로 아버지의 간호를 받았다. 정성어린 간호를. 뭐 였더라, 뺨부터 받았었던것 같다. 그 자리엔 어머니도, 할아버지도, 외삼촌도, 숙모도, 사용인들도 있었다. 그 무자비한 애정에 표독스레 웃었다. 그리고 그 날 깨달았다. 내 목숨조차 내 것이 아니였음. 난 당신한테 있어 뭐야.

 

  앞 밖에 보이지 않는데 이젠 발목을 잡고 눈 앞을 가로 막고 그 길을 반 으로 갈라 막아버리는 기분이였다. 어쩌란 말인가. 어울려줄게.

 

 병원 신세에서 벗어나자마자 다시 입원하였다. 훈육이였다. 너 나쁜 짓을 했으니 벌을 받아야 해, 같은. 그래서 맞았다. 요즘 말로 구타 라고 할까나. 아버지의 경호원들에게 둘러싸여 그 싸늘한 눈 아래서 그저 맞았다. 구둣발이 짓이겨져도 움직이지 않았다. 두 팔로 얼굴만을 막고 죽은 시체마냥 굴었다. 이게 당신이 원하는 거잖아. 덕분에 고교 입학식 당일 까지 병자임을 뻔뻔히 드러낼 수 밖에 없었다. 화려하지 않은가. 머리에 붕대라니. 그럴만도 했다. 화를 참지 못한 그 아버지가 내리친 술병을 온전히 받아들였는 것을. 그 정도면 다행이라고 해야 할만한 것이였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어쩌면 처음으로 욕심내 보았다. 타인의 애정을. 때 묻지 않은 순순함이 좋았다. 그래서 좋았다. 마츠카와는 그런 하나마키가 좋았다. 그렇게 보이지 않았지만 마츠카와는 속이 깊었고 그 만큼 애정에 굶주려 있었다. 그런 그에게 하나마키는 '세상' 이였다. 아침을 잘 챙겨먹지 않는 그에게 먹고 오라며 잔소리를 해댔고 하다 못해 주먹밥을 손수 만들어다 매일 같이 반에 찾아가 전해주곤 했다. 교내 상이라도 받는 날이면 제가 받은 것마냥 좋아라 했고 쉬는 시간마다 그의 옆 자리에 앉아서 쉴 새없이 떠들었다. 처음에는 그 모든게 어색했다. 그 다음에는 조금씩 익숙해졌다. 깨달았을 때는 온전히 그의 애정을 갈구하고 있었다.

 

 '타카히로, 좋아해.'

 '나도 마츠 좋아하는걸.'

 '그런거 말고.'

 

 여름의 끝자락 방과 후 해질 녘 마츠카와는 하나마키에게 키스했다. 좀 더 원했다. 의외로 하나마키는 담담했다.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보더니 이내 웃었다. 달큰했다. 그는 마츠카와의 목에 팔을 두르고 목덜미에 기댔다. 부드러운 머리칼이 닿았다.

 

 '나도. 나도 잇세이가 좋아.'

 

-

 

 아마 제가 모르는 곳에서 저를 부르짖었을 제 연인에 마츠카와는 이를 악 물었다. 이렇게 자라도 나는 당신을 이기지 못하는 거란 말이야.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 사랑하는 이 하나 지켜주지 못한다니 실격이나 다름 없었다.

 

 "잇..세...-"

 "히로."

 

 고교 시절이였다. 성적이 떨어졌다. 하나마키를 만난 이후의 일이였다. 맞았다. 당연했기에 마츠카와는 입에 고인 피를 뱉으며 하나마키를 떠올렸다. 늦은 시간이였기에 받지 않을걸 알면서 전화를 걸었다. 마츠? 미안- 깨웠어? 아니아니. 깜빡 졸았어. 히로. 응. 히로. 응, 잇세이. 보고싶어. 잇세이, 어디 아파? 아니. 거짓말 하지마. 조금. 보러 갈까? 괜찮아, 얼른 자. 내일 연습 때도 졸지 말고. 전화를 걸었던게 화근이였다. 이틀 후, 하나마키는 수업 도중 불려갔다. 오후 연습이 끝날 때 까지 돌아오지 않았다. 연락도 되지 않았다. 오이카와는 마츠카와에게 윽박 지르며 오늘은 집에 가서 쉬라고 등을 떠밀었다. 너 같은거 없어도 우리 연습할 수 있거든, 맛층?!

 빈 교실에서 울고 있었다. 히로. 잇세이.. 미안해. 부어오른 뺨이 애처로웠다. 어쩌면 저걸로 끝난게 다행일 따름이였다. 맘만 먹는다면 이런 사람 하나 아무도 모르게 묻어버리는건 간단할테니까. 히로, 미안해. 막, 막.. 알아, 쉬잇-. 나, 나도 아는데-. 잇세이한테 나같은거 안어울리는건 아는데. 하지만..! 미안해, 미안해.

 

 '그치만, 잇세이가 이 때까지 그런 사람 밑에서 자라왔다고 생각하니까..괜히, 괜히 욱해서 미안해-. 나 때문에 나중에 잇세이 혼나는거 아니야?'

 

 넌 내 세상이야. 제 울음까지 더해 설움을 토하는 하나마키를 끌어안고 마츠카와는 다시 한 번 새겼다. 하나마키, 넌 내 세상이야.

 

-

 

 "잇세-.."

 "응, 나 여기 있어."

 

 마츠카와는 부여잡은 하나마키의 손에 뺨을 부볐다. 여기 있어, 내 히로.

 여전히 깊은 숨을 토해내며 파르르 떨리는 속눈썹에 마츠카와는 검붉은 멍이 든 눈가에 입 맞추었다.

 

 열 일곱의 나에게 묻는다. 그 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기꺼이 그 손을 잡지 않을 수 있느냐고. 다시 그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느냐고.

 

-

 

망했다- 망했다아아ㅏㅏㅏ

사실 전력들은 항상 주제를 보면 소재부터 스토리까지 좌악-하고 떠오르는 편인데 이건 도저히 감이 오질 않아서 많이 방황하다가 망했어요..알아요....쿨쩍))

 

망한거 안다고오오ㅗ오ㅗㅗ!!!!!!!111 광광))

 

몸 상태도 안좋은 바람에 막...쓰던 도중에 픽- 하고 기절해버려서 막 30분 30분 나눠쓰고 잘 한다, 나레기

 

그냥, 애정갈구하는 맛층이랑 애정만땅의 맛키가 보고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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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5일 기념//

-

 

 "저기저기저기!!"

 "보쿠토 시끄러."

 "나이값 좀 해라."

 

 내 말 좀 들어봐! 평소같았으면 이미 어깨가 축 쳐졌을 보쿠토는 여전히 뜨거웠다. 배구부 져지를 끌어안은 채 체육관으로 들어서는 발걸음이 몹시 바빴다.

 

 "이거 보라고!"

 

 져지를 뒤집어 그에 싸인 것을 코노하들에게 들이밀었다. 불만 가득한 얼굴에 부루뚱한 표정으로 꽤나 얌전히도 안겨있는 아이가 있었다. 부드러운 곱슬 머리에 나른한 눈은 영락없는 아카아시 였다.

 

 "헤에- 어디서 또 납치해오셨나 몰라."

 "부실에 있었는걸."

 

 한껏 잘했지, 라는 얼굴을 한 보쿠토에게서 코노하는 아이를 빼앗으며 혀를 내둘렀다. 그리곤 가만히 내려두며 눈높이를 맞추었다. 아- 어디서부터 뭐라고 하면 되는거지.

 

 "죄송합니다."

 

 조금 유-해진 목소리가 어린애다운 구석이 있었다. 답답해 보이는 져지를 끌어내리자 보이는 남청색 셔츠에 검은 반바지, 무릎 아래까지 올려신은 새하얀 니삭스. 이거 제대로 잖아-, 라면서 코노하는 작게 속으로 절규했다.

 

 "아카, 아시?"

 "예. 어쩌다보니 이렇게 되버렸습니다."

 

 눈을 깜빡이며 저를 올려다보는 아카아시를 가만히 보던 코노하는 우선 조치를 내렸다. 일단 이러면 연습은 무리니까, 무슨 영문인진 몰라도.

 

 "보쿠토는 접근 금지."

 "겍- 너무해. 내가 처음 발견했는걸!"

 "니가 있으면 아카아시는 더 힘들어. 절대 안돼."

 

 코노하가 보쿠토와 열심히 실갱이를 벌이는 사이 아카아시는 와시오와 공놀이를 하고 있었다. 와시오가 위로 포물선을 그리게 던져주면 스파이크라도 치는 흉내로 공을 쳐냈다. 성공하고는 자축이라도 하는 양 고사리 같이 작은 손으로 박수를 치면 작게 꺄르륵 하고 웃었다. 금세 빠져들었는지 리시브도 해내는 아이에 보쿠토와 코노하 조차 대화의 목적을 잃고 아카아시를 바라보았다. 리시브 한 공이 와시오가 아닌 저 멀리 구석으로 날아가자 무릎 조금 위로 겉도는 져지를 휘날리며 뛰어가 공을 주어 쪼르르 달려왔다. 와시오에게 공을 도로 던져 주며,

 

 "한 번 더."

 

 아 이거 꽤 위험할지도, 라고 생각하면서 후쿠로다니 배구부는 어린 아카아시에게 매료되기라도 연습따위 잊고 같이 리시브에 뛰어들었다.

 

-

 

 "재밌었어, 아카아시?"

 

 작게 고개를 끄덕여오는 아이의 머리칼을 쓰다듬어주는 보쿠토의 손길에 아카아시는 환하게 웃어보였다.  빨갛게 부어오른 아이의 두 팔에 파스를 붙여주고 드링크를 손에 쥐여주며 보쿠토는 그런 아카아시를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후반부에 본격적으로 달려 든 보쿠토의 덕에 다들 기진맥진 해져 막무가내로 코트 여기저기에 드러누워 버린 채였다. 어느 세 붉게 수놓인 하늘을 창살 사이로 올려다보며 구름 한 조각 없이 맑은 풍경에 보쿠토는 아카아시를 불렀다.

 

 "아카아시, 저기.."

 

 아, 자구나. 제 앞에 가만히 드링크를 끌어안다시피하고 보쿠토 쪽으로 기울어진 채 까무룩히 잠이 든 아이에 푸슬 웃으며 보쿠토는 아이에게서 드링크를 빼앗아 옆에 두고 어깨를 천천히 토닥였다. 잘 자, 아카아시.

 

 "뭐야, 아카아시 자?"

 "응."

 

 보쿠토는 아카아시가 깰까 작게 대답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대답을 들은 코노하는 다시 코트 위에 고개를 박았다. 아카아시는 너같은 스테미너 바보랑 어떻게 연습을 해줬다냐. 중얼거리자 다들 한 마디씩 거들었다.

 

 "아- 아직 계셨습니까."

 "에엑- 아카아시?!"

 

 왜 그러십니까. 아카아시는 작게 얼굴을 찌푸리며 체육관 안으로 들어섰다. 어버버 거리는 보쿠토는 제 옆에 기대어 자는 아이와 아카아시를 번갈아 보았다. 이게 뭐야?! 아카아시는 보쿠토 쪽으로 걸어오더니 자는 아이의 뺨을 부드럽게 감쌌다.

 

 "쿄헤이, 형한테 와."

 "아- 형아."

 

 잠결인지 아카아시의 품에 얼굴을 부비더니 이내 두 팔을 벌려 아카아시에게 안겼다. 밤 날씨를 걱정한 아카아시는 제 져지를 더 여며주며 안아들었다. 여전히 영문을 모르겠단 보쿠토와 눈이 마주쳤다. 이거 귀찮아질게 뻔한데. 하아-. 아카아시는 작게 한숨을 내쉬더니 입을 열었다.

 

 "사촌동생입니다. 아카아시 쿄헤이 입니다."

 "사촌?"

 "그렇습니다만, 무슨 문제라도."

 "너랑 완전 닮았다.."

 

 아- 그러십니까. 아카아시는 미간을 구기며 작게 칭얼거리는 쿄헤이의 등을 토닥여주었다. 괜찮아, 괜찮아. 형 여기있어. 으응-케-지-형. 응, 알았어.

 보쿠토는 물론이고 코노하들까지 넋을 놓고 그런 아카아시를 바라만 보았다. 저러니까 보쿠토도 잘 다루는건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확실히 누군가를 돌보는데 있어 가장 필요한건 경험일 따름이였다. 어르고 달래고 타이르고 보듬어주고.

 

 "부실에 재우고 오겠습니다."

 "아아- 괜찮아. 우리도 이제 슬슬 갈테니까."

 "보쿠토 상은 어쩌시겠습니까."

 "오늘은 나도 갈래."

 

 그럼 죄송한데 잠시만-. 아카아시는 보쿠토에게 조심스레 쿄헤이를 안겼다. 뒤척이거나 잠투정하면 등 쓸어주세요. 그 말을 끝으로 아카아시는 코노하들을 일으켜 체육관에서 내보내고 공을 줍고 네트를 내렸다.

 

 "아,아카아시 그건 내가 할게."

 "괜찮으니 쿄헤이 봐주세요."

 

 시끄러웠는지 쿄헤이는 투정을 부렸다. 으응...에엣- 괘,괜찮아. 괜찮아, 쿄헤이. 형아아-. 아카아시는 잽싸게 뛰어와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보쿠토에게 키를 넘겨주고 쿄헤이를 넘겨받았다. 그리곤 입모양으로 '잠궈주세요.' 라고 말했다. 보쿠토는 주억이며 체육관을 나서는 아카아시의 뒤를 따랐다. 보쿠토는 체육관 문을 잠그고 열쇠를 져지 주머니에 넣었다. 벌써 끝물이 남청색으로 물들기 시작한 하늘에 잠시 눈을 마주했다. 왠지 모르게 떨려오는 기분이 나쁘지만은 않았다.

 

 "보쿠토 상, 가방."

 "오우- 고마워."

 "교복은 넣어놨습니다."

 "아, 응. 아카아시는?"

 

 전 여기요. 어깨에 아슬아슬하게 걸친 가방에 눈짓하며 제 가방을 보이자 보쿠토는 아카아시의 가방을 빼앗아들었다. 큰 소리를 낼 수도 도로 빼앗을 수도 없는 상태에 아카아시는 그런 보쿠토를 노려보았다. 보쿠토는 말 없이 제 져지를 벗어다 아카아시의 어깨 위에 얹어주며 추우니까. 하고 중얼거렸다.

 

 "야, 니네 그러고 있으니까 가족같다."

 "딱이네, 딱."

 "근데 애만 둘이야."

 

 하나같이 보쿠토만 툭툭 치고 먼저들 약속이라도 한듯 뛰어가 버리는 코노하들과 왠지 모르게 보쿠토의 어깨에 손을 얹고 고개를 끄덕여보이며 사라진 와시오에 보쿠토는 어버버 거리며 아니라고 항의했다. 물론 이미 저 만치 가버린 이들에게 들릴리가 만무했다. 보쿠토는 울상으로 아카아시를 돌아보았다.

 

 "아카아시, 진짜?"

 "글쎄요,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형아,"

 "쿄헤이 깼어?"

 

 둘의 대화에 아이가 끼어들었다. 작게 버둥거리니 아카아시는 쿄헤이를 품에서 내려주었다. 아카아시는 허리를 숙여 져지 소매를 거둬주고 손을 잡았다. 아이는 저의 조금 앞에 선 보쿠토의 손가락을 가만히 꼬옥 쥐었다. 보쿠토가 아이를 보았다. 아이도 보쿠토를 보았다. 키득.

 셋은 나란히 손을 잡고 학교 정문을 나섰다. 자동차 한 대가 불을 밝히고 서 있었다. 아이는 우뚝 발걸음을 멈추었다. 손을 놓고 져지를 벗어 아카아시에게 내밀었다. 가만히 보쿠토를 바라보았다.

 

 "형이 보쿠토 상이에요?"

 "오우-이 몸이 그 유명한 보쿠토 코타로다."

 "헤에-진짜구나."

 "응?" 

 "진짜 바보네요."

 

 보쿠토는 뒷통수를 한 대 맞은 얼굴로 쿄헤이를 바라보았다. 그게 무슨 소리야. 아이는 작게 키득였다. 쿄헤이-. 아, 괜찮아. 아카아시.

 아이는 보쿠토의 져지 끝자락을 잡아 당겼다. 보쿠토는 아이와 시선을 나란히 맞추었다. 실은요-. 귀에 나른한 목소리가 흘러들어갔다.

 

 "케이지, 태워주고싶은데 미안하게 됐구나."

 "아니요, 괜찮습니다."

 "쿄가 귀찮게 굴진 않았고?"

 "얌전한 아이잖아요. 괜찮았어요."

 "그렇다니 다행이구나. 이쪽은?"

 "아, 처음 뵙겠습니다. 보쿠토 코타로 라고 합니다."

 

 시합 언제나 잘 보고 있어요. 아, 감사합니다.

 아카아시의 숙모는 잠시 아카아시와 도란도란 대화를 나누었고 그 동안 보쿠토는 쿄헤이와 쎄쎄쎄- 하고 있었다.

 

 "그럼 가볼게. 쿄- 가자."

 "아, 응-."

 "형들한테 인사하고."

 

 아이는 두 형을 앞에 두고 눈을 반짝이며 올려다보았다. 함박웃음을 머금은 채 둘은 번갈아 바라보다 아카아시를 향해 두 팔을 벌렸다. 아카아시는 익숙하게 그에 응해주었다. 등을 토닥여주며 안아주자 아이는 아카아시의 뺨에 짧게 입 맞추었다. 형아, 안녕. 또 올게. 그래. 아카아시는 쿄헤이를 꼭 안았다 놔주었다. 아이는 보쿠토의 앞에 서서 두 팔을 벌렸다. 보쿠토는 이제껏 아카아시를 급습한 전적이 무색하게 어정쩡한 자세로 아이를 끌어안았다. 쿄헤이는 아이다운 웃음소리로 답했다. 형도 잘 있어. 다음에도 같이 배구하자. 오우- 그러자. 그때까지 블로킹 연습해올게. 나도 지지않게 연습해야겠는걸-. 아이는 보쿠토의 뺨에 입 맞추었다. 그런 둘을 아카아시는 지긋이 바라보고 있었다.

 

 총총 걸음으로 차로 향하던 쿄헤이는 다시 둘을 돌아보았다. 그러더니 입가에 두 손을 모아 외쳤다.

 

 "보쿠토 형- 우리 형아 잘부탁해-!"

 "오우-!"

 

 보쿠토는 씨익 웃어보였다.

 

 "케-지-형, 좋아한다고 말해!"

 

 아이는 손을 크게 흔들어보이고 차에 탔다. 보쿠토는 어리둥절한 채 아이에게 손을 흔들어주었다. 제일 아래까지 창을 내리고 바이바이- 하고 인사를 했다. 저 만치 멀어진 차의 붉은 빛을 눈이 아플 정도로 바라보았다.

 

 "아카아시 우리도 가..자?"

 

 아랫입술을 다 문 채 붉게 달아오른 얼굴로 바닥으로 향한 시선이였다. 아까 본 등 때문인가 싶어 보쿠토는 두 눈을 문질렀다. 도로 문질러보아도 같았다. 어디 아프기라도 한 걸까. 보쿠토는 아카아시의 곁에 다가가 이마에 손을 얹었다. 열은..없는걸.

 

 "아카아시?"

 "괜찮습니다."

 

 금세 돌아온 아카아시의 모습에 제가 헛것을 봤다 확신하며 보쿠토는 아카아시와 나란히 발을 맞추었다. 언제나 처럼 보쿠토는 아카아시의 손을 잡았다. 둘 사이의 습관이였다. 엄밀히 말하자면 보쿠토의. 아카아시는 거기에 장단을 맞춰주는 것에 불과했을 지도 모른다. 아카아시는 보쿠토의 져지를 여미며 얌전히 손을 내어주었다.

 

 "쿄헤이는 몇 살인거야?"

 "초등학교 2학년입니다."

 "뭐야, 생각보다 어리진 않잖아. 아카아시한테 어리광 부리는거 보고 완전 초등학생 전이라고 생각했다고, 나."

 "쿄헤이는 이러니 저래니 해도 저한테 무르니까요. 형제가 없어 외로운 모양입니다."

 "무른건 쿄헤이가 아니라 아카아시 아니야? 그렇게 응석 받아주는 것도 처음 봤고 말이야."

 "그럴지도 모르죠."

 

 비록 잠투정에 불과했을지도 모를 어린 아이의 면모를 떠올리며 보쿠토는 작게 웃었다. 귀엽잖아. 아카아시는 그런 보쿠토에게 잠시 시선을 주었다 도로 거두었다.

 

 "생긴 것도 딱 아카아시 였고 말이지."

 "보쿠토 상, 엄밀히 따지면 쿄헤이도 아카아시 입니다만."

 "겍- 그러지마. 케이지 닮았다고 케이지를. 그래서 난 좋았는데."

 "작아진게 좋았다는 겁니까, 태클 걸지 않아서 좋았다는 겁니까."

 "아니야, 그런거! 그냥, 아카아시가 어릴 때 딱 저랬겠구나 싶어서. 똑 부러지니깐 말이야. 괜히 어리광 부린다거나 보고싶기도 했고."

 

 아-. 싸늘한 밤 공기에 말이 흩어졌다. 아카아시는 어깨에 걸쳐진 져지를 끌어내렸다. 보쿠토에게 건내었다 도로 팔에 걸쳤다. 에에- 뭐야, 아카아시. 세탁 후에 돌려드리겠습니다. 괜찮은데- 아카아시 향이라던가 좋은걸. 뭡니까, 그건. 기분 나쁘네요.

 아카아시는 발걸음을 멈추었다. 그럼 가보겠습니다. 오우-. 보쿠토의 집은 아카아시의 집보다 좀 더 가야했기에 보쿠토는 항상 아카아시를 바래다 주곤 했다. 좀 더 걷고 싶기도 했고 같이 있고 싶었지만 늦은 시간에 오랜만에 추가 연습도 없는데 모처럼이니 오래 잡아두고 싶진 않았다. 저 때문에 항상 늦게 귀가하는 아카아시를 생각하자니 괜시리 미안해졌다.

 

 "저- 아카아시."

 "예?"

 "뭐 하나만 물어봐도 돼?"

 

 들어가려던 아카아시의 팔을 붙잡고 보쿠토가 물었다.

 

 "네, 뭔가요."

 

 들었을 때부터 자꾸 떨쳐내지지가 않아서 말이야. 보쿠토는 단호해보였다.

 

 "아까 쿄헤이가 너한테 했던 말. 그거 무슨 말이야?"

 

 아카아시가 작게 움찔거렸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럴리가 없잖아."

 "아무 뜻 없습니다. 그러니 이거 좀 놓으시죠."

 "아무 것도 아니라면, 왜 그런 표정인거야."

 

 평소의 페이스가 아닌 경기 도중 상대 팀의 매치 포인트 때 서브 미스라도 한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어디까지나 보쿠토 다운 발상이였다. 흔히 울 것 같은 얼굴이였지만 말이다. 틀린 말은 아니였다. 낭패감과 당황함이 섞인 불안한 표정.

 

 "나, 사실 쿄헤이한테 들은게 있어서 말이지."

 "무슨 소리십니까."

 "아카아시는 좋은건 좋고 싫은건 싫다고. 물론 나도 알고 있었지만!"

 

 자신의 어리광이 귀찮다는걸 알지만 받아주는 아카아시에게는 도저히 그만 둘 수가 없는 노릇이라던 웃음기 섞인 목소리를 들었다. 하지만 결코 싫지만은 아니라면서.

 

 실은요. 케-지 형은, 싫은건 절대 안하는 사람이에요. 그러니까 분명 보쿠토 형 옆에 있는 것도 좋아서 있는거고. 매번 말은 그렇게 하면서 속으로는 걱정도 많이 할걸요. 사실 나한테도 보쿠토 형 얘기 많이 해줘요. 정말로 형이 싫고 귀찮고 피곤한 사람이라면 그렇게 좋은 얼굴로 말할 리가 없잖아요.

 

 "포기할까도 생각했고 역시 안될거라고도 생각했지만 말이야. 오늘 그런 말 들어버렸으니까 나 용기내보려고."

 "예?"

 "나 아카아시가 좋아."

 "그게 무슨,"

 "나 챙겨주는 어른스러운 점도 좋지만 말이야. 가끔은 답지않다고 할만큼 투정하는 어린아이 같은 점도 좋아. 그거에 반한거지만 말이야. 아카아시도 저러기도 하구나 하고. 질투 라던가."

 "..그런 적 없습니다."

 "그치만 쿄헤이가 나한테 츄- 했을 때라던가 말이야."

 "아닙니다, 그런거."

 

 보쿠토는 아카아시를 품으로 당겨 안았다. 쿄헤이를 안았을 때와는 다르게 익숙한 폼이였다. 등을 쓸어주면서 케이지 괜찮아. 하고 연신 중얼거렸다. 지금 놀리는겁니까. 쉬잇- 괜찮아. 그러니까 울지마.

 힘으로 밀리는건 당연히 알고 있던 일이지만 아카아시는 전력으로 보쿠토를 밀어냈다.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지만 오히려 보쿠토는 아카아시를 더욱 세게 끌어안았다.

 

 "밀어내지마."

 "어째서..!"

 "싫어하지마."

 "..........."

 "좋아해, 케이지."

 

 대답은, 꾸짖는 듯한 말투였다. 아카아시는 고개를 보쿠토의 어깨에 박았다. 뭘 바라는 겁니까. 당신은. 그런 얼굴이면 나 기대해버리잖아.

 

 "그 기대, 보답할 수 있어서 다행이네요."

 

 목덜미에 뺨을 가볍게 부비더니 조금 떨어져 눈을 마주했다. 누가 뭐라할 것 없이 입 맞췄다. 보쿠토는 아카아시의 머리를 손바닥으로 크게 감쌌다. 아카아시는 두 팔을 벌려 보쿠토를 안았다. 아랫입술을 물자 작게 벌려온다.

 

 좀 더 어리광 부려줘, 케이지. 내 케이지.

 

-

 

우와- 이제 다 쓰다니 이런 쓰레기 자식..나레기..타지도 않는..

 

5월 5일 기념으로 쓴건데 너무 오래 걸려서 그냥...너로 만족..할까보냐!!

 

어려진 아카아시를 쓰고 싶었지만 너무 밑도 끝도 없을거같아

어리광 부리는 아카아시가 보고 싶었습니다, 정말 그 뿐입니다...쿨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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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차피 인간인데, 언젠가는 죽는걸. 줘봐야 뭐해. 다시 죽을 목숨인데."

 "보쿠토, 너 이 자식."

 

 쿠로오도 참 감성적이란 말이지. 보쿠토는 중얼거리며 미간을 구긴 채 '라인 북'을 들여다보는 쿠로오의 어깨를 두어번 가볍게 쳤다. 이에 쿠로오는 매서운 눈으로 보쿠토를 노려보다 이내 한숨을 내쉬었다. 저 부엉이 자식이 뭘 알아, 젠장할. 

 보쿠토로써는 이해하지 못할 쿠로오의 행동에 의아해할 뿐이였다. 일부러 제 업을 늘려서 겨우 인간따위의 생명을 지속시켜 준다는건 하루 빨리 '테이커'의 자리에서 벗어나고픈 보쿠토에게 있어 상상치도 않는 것일 따름이였을 뿐이다.

 

 유일한 테이커의 장점이라 꼽는다면 업을 늘려 테이커 기간을 늘리는 대신 생명을 지속한 인간을 사후에 제가 거둘 수 있다는 점이다. 과연 이점일지는 테이커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갈리는 편이였다. 애초부터 테이커란 것은 형벌의 한 형태이기에 '상'으로 올려주기에는 악업을 지녔기에 테이커의 역할을 수행하며 그 업을 지워나가는데 의미가 있다. 그리고 확실한 것은 결코 유쾌한 일은 아니라는 것이다. 말 그대로 테이커. 죽은 이를 이끌어 주는 역할이다. 간단해보이지만 여간 쉬운 일이라 할 수만은 없었다. 

 

 "쿠로오는 어차피 커넥트 되어있잖아. 그럼 거두면 안돼?"

 "말처럼 쉬우면 이러고 있겠냐. 얘가 얼마나 섬세한 앤데."

 

 그거야 그렇지. 보쿠토는 주억거리며 여전히 머리를 싸매고 있는 쿠로오를 애처롭게 바라보았다. 그러니까 애초에 커넥트 따위 안했으면 좋았잖아. 분명 한 마디 들을거라 생각하며 속으로 주절거리는 꼴이란. 그런 보쿠토의 속을 읽기라도 하듯 쿠로오는 라인 북을 덮으며 말했다.

 

 "너도 때가 되면 알거야. 내 업을 늘리면서라도 더 살리고 싶다는 심정이 뭔지."

 

 물론 너 같은 애송이는 모르겠지만.

 결국 승자는 쿠로오였다. 히죽이는 평소의 페이스로 돌아와 허리춤의 홀더에 라인 북을 넣곤 주머니에 손을 비집어 넣은 채 허리를 숙여 보쿠토의 앞에 얼굴을 마주했다. 쭉- 빠지더니 이내 발걸음을 돌려 손을 들어보이며 걸어가버렸다. 간다, 라는 말만을 남긴 채였다. 그러니까 그 심정을 모르겠단 말인데, 쿠로오. 영 탐탁찮은 얼굴을 한 보쿠토는 씁쓸한 끝말을 느끼며 쿠로오의 뒷 모습을 바라보았다.

 

-

 

"커넥트. 테이커가 자신의 테이커 수행 기간을 늘리는 대가로 생명을 연장한 링커가 이어지는 것으로 링커의 사후 테이커는 링커를 테이커 수행 기간 동안 그 업을 같이 지울 수 있다, 라고 하지. 아마."

 "그럼 링커도 테이커로 판정나면 뭐야. 걔도 또 링커 둘 수 있는거야?"

 "아니, 그건 안돼. 테이커가 걔를 안거뒀을 때 테이커 판정받으면 링커 두는거고."

 

 아아- 어려워. 보쿠토는 제 머리를 헤집으며 책상에 머리를 콩-하고 박았다. 제가 테이커가 된지도 어느 덧 몇 해째인가. 쿠로오랑 같은 해부터 시작했으니 아마 적어도 족히 70년은 넘었을 터였다. 정상참작된 처지이니 불평만 할 수도 없는 위험한 위치였다. 테이커들 사이에서도 꺼리는 '어린 아이'들을 맡은 보쿠토였기에 링커를 찾지 않는건 아니냐는 말도 있었다. 어린 애 상대로 동정심을 베푸는 행위가 아닌가, 라는 의문이 있을 법도 했지만 보쿠토는 단순했다. 많이 안하니까 제가 맡고 점수따고 얼른 테이커 따위 그만둬 버리자고. 어린 아이들은 항상 낯선 이를 경계했고 무서워했고 숨어버린다. 그러니 힘들다. 당연한 것이였다. 다만 그걸 잘 구슬려내는 것 뿐이였다. 아니면 보쿠토의 정신연령이 그 즈음을 엇돌고 있지 않을까, 라는게 코노하의 추측이다.

 

 "넌 링커같은거 관심없는거 아니였어?"

 "그치만- 쿠로오가 그렇게 신경쓰는 것도 꽤 보기 힘든 거라고."

 "하기야."

 "그러고 보니 코노하도 링커 없지?"

 "응, 뭐. 없지."

 "봐둔 사람이라던가 있어?"

 

 코노하는 잠시 제 라인 북에서 보았던 얼굴을 떠올렸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저어보였다. 그에 보쿠토는 의기양양한 얼굴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고마워- 따위를 외치며 문 밖으로 뛰쳐나갔다. 저 바보가 또 무슨 짓을 하려고 저러는거야. 한숨은 온전히 코노하의 몫이였다.

 

-

 

 열. 아홉. 여덟. 일곱. 여섯. 다섯. 넷. 셋. 둘. 하나.

 

 커다란 벛나무에 앉아 발을 까딱이던 보쿠토는 숫자를 거꾸로 세고 마침내 0에 다다르자 병실의 창가로 내려앉았다. 삭막한 방이였다. 어린애다운 그림 하나 없는 허연 병원 특유의 벽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침대와 그 옆의 링겔. 반대 측 벽면의 반을 채울 듯한 스크린 텔레비전과 협탁에 놓인 이미 오래전 시들어버린 꽃바구니. 작은 냉장고의 소음. 간병인 하나 없는 모양새가 간이 침대도 없는 듯하였다. 차갑네, 차가워.

 웃차-. 보쿠토가 병실 안으로 발을 들여놓으며 여기저기를 둘러보았다. 꽤나 부유한 가정에서 자란 듯 병실도 1인 실에 침대 사이즈도 달랐다. 도련님이시구나. 보쿠토는 주억이며 라인 북을 꺼내어 펼쳤다. 침대에 다가가 곤히 잠든 얼굴을 바라보았다. 일치했다. 더 어려보이지만 뭐 상관없지. 보쿠토는 침대 맡에 엉덩이를 걸치고 앉아 아이를 내려다보았다. 귀티나네. 곱슬머리에 뽀얀 피부. 감고있어도 예뻐보이는 눈을 가지고 있었다. 올망졸망한 입술은 턱없이 작아만 보일 뿐이였다.

 

 귀엽네. 보쿠토는 푸스스- 웃으며 머리칼을 쓸어주었다.

 

 "잠시만 일어나서 형 볼래?"

 

 미안하지만 일은 일이니까. 모처럼 예쁜데 안타깝네. 보쿠토는 아이의 볼을 톡톡 쳤다. 금세 눈을 떠 웃고있는 보쿠토와 눈을 마주했다. 옅은 청록빛을 띠는 눈은 나이에 맞지 않게 차분했다. 우선은 설명부터 해줘야 하니까. 어린 애들은 낯선 사람보고 놀래잖아. 전의 아이를 되새기며 보쿠토는 떠올렸다. 절 보자마자 울음부터 터뜨리며 비명을 질러대는 턱에 꽤나 고생했던 터였다. 같은 실수 하지 말자. 귀찮아지는건 싫은걸.

 

 "안녕,"

 "저, 죽은건가요?"

 

 응? 도저히 되물을 수 밖에 없는 아이의 질문에 보쿠토는 당황스럽기 그지 없었다. 틀린 것은 아니니 부정할 수 없고 그렇다고 긍정하자니 뭐라하면 좋을지 몰랐다. 아직 열 살도 되지 않은 저 핏덩어리의 입에서 나온 말이 죽은거냐니. 어리광 부릴 나이 아닌가, 9살이면?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제 라인 북 데이터 속에는 죽음을 경험한 적이 없다. 비슷한 경험도 없었다. 그런데 죽음을 감지한다는 것 자체가 이상했다. 물론 자신이 죽을 때를 안다는 말이 있듯이 아는 사람도 있기 마련이다. 그래도 이건 아니였다. 우선은 침착하자. 어느 센가 아이는 상체를 일으키고 앉아 헤드에 기대어 저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그 모습이 너무나도 고요했다.

 

 "일단 하나씩 천천히 하자, 응?"

 "네."

 "이름은 아카아시 케이지. 9살. 맞아?"

 

 아카아시는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간단하기 그지없지만 본인확인은 끝났다.

 

 "음- 심장이 아픈거야?"

 

 아이는 잘 모르겠다는 얼굴로 갸우뚱 해보였다. 아- 귀여워. 보쿠토는 웃으며 아이의 왼쪽 가슴에 손을 올리며 여기? 하고 묻자 고개를 끄덕였다.

 

 "아까 아카아시 군이 먼저 물었지만, 응. 맞아. 이제 하늘나라로 가자."

 "역시 전 죽었군요."

 

 너무 담담했다. 죽었나요. 그렇군요. 이런게 어디있어.

 기운 없어보이는 얼굴로 천천히 떨군 고개를 들어 보쿠토와 시선을 맞췄다. 두어번 깜빡이더니 다시 고개를 힘없이 떨구었다. 시트를 고사리같은 손으로 꼬옥 쥐었다. 아이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하지만 말은 하지 않았다. 뭐라고 말할까.

 

 싫다고 할까. 무섭다고 할까. 그것도 아니라면 울음을 내뱉을까.

 

 "지금, 가야하나요?"

 "응, 그럴거같은데. 왜 그래?"

 "어머니."

 

 뭐라고? 도로 되묻자 아카아시는 다시 보쿠토와 눈을 마주했다.

 

 "어머니. 어머니 얼굴 한 번만 보고 가면 안될까요?"

 

 이것도 예상치 못했다. 호칭도 호칭이지만 말이다. 성숙하네, 정도가 아니였다.

 말 없이 아카아시를 내려다보던 보쿠토의 시선에 아카아시는 다시 말했다.

 

 "역시 곤란하겠죠. 죄송해요."

 

 그 작은 입이 미묘한 호선을 그었다.

 

-

 

 "천하의 보쿠토가 링커라니. 놀랄 노잔데 정말-?"

 

 틈만 나면 케넥트따위 이해 못하겠다시던 보쿠토 코타로 씨 어디계신가나. 쿠로오 특유의 껄렁한 목소리가 들렸다. 보쿠토는 그런 쿠로오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 이젠 라인 북 제일 첫 면에 적힌 '아카아시 케이지' 를 읽고 있었다.

 

 특별히 말하지 않을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말해줄 이유도 없었다. 그리고 미묘한 독점욕. 아이는 예뻤다. 그저 그 뿐이라 말했다.

 

 "오야오야오야- 어린 애 상대로 뭘 진지해지는거야, 코타로 군."

 "너에게 듣고싶지 않아, 쇼타콤 테츠로 군."

 

 그건 이제 너도 마찬가지 잖아. 아-.

 

 "진짜로 무슨 일이 있었던거야, 너. 예뻤어 따위로 무마시킬 수 없다고."

 "그냥 단지,"

 "단지?"

 

 환하게 웃는게 보고 싶었어. 그 뿐이야.

 

 쿠로오는 조금 놀란 표정을 짓더니 이내 피식 웃으며 보쿠토의 옆에 주저앉으며 어깨 위에 팔을 얹었다. 자식- 뭘 좀 알게 됐군. 보쿠토는 키득이며 라인 북의 아카아시 얼굴을 바라보았다. 왠지 얘라면 괜찮을거 같았어.

 

-

 

 "아니, 아니야. 아카아시 군은 죽지 않았어."

 "하지만 방금 말씀하,"

 

 보쿠토는 손을 저어가며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절-대 아니야.

 

 겨우 9살인데. 이렇게나 예쁜데. 넌 사랑받아야 마땅한 아이야, 그러니까.

 

보쿠토는 아카아시를 품에 끌어안았다. 작은 몸뚱아리가 품에 안기고도 남았다. 도드라진 뼈에 가만히 등을 쓸어주었다. 아이는 가만히 있었다. 미동조차 없었다. 보쿠토는 아카아시의 양 팔 사이에 손을 끼워넣어 들어 제 무릎에 앉힌 채 품에 안기게 하였다. 가만가만 머리를 쓰다듬어주자 아이는 제 셔츠를 한 손에 꼬옥 쥐고 있었다. 그 마저 예뻤다. 조금은 불안해보이는 눈으로 셔츠의 어딘가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아카아시."

 

 눈을 마주쳤다.

 

 "아카아시는 죽길원해?"

 

 아이는 멈칫하더니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영리한 아이야.

 

 "거짓말 안해도 돼. 그리고 울고 싶을 때는 울어야 되는거야."

 

 보쿠토는 작게 등을 토닥이자 아카아시는 품 안에 고개를 묻고 얼굴을 부볐다. 보쿠토는 끊이지 않고 토닥여주며 연신 괜찮아-하고 속삭였다. 이제야 좀 제 나이같네. 보쿠토는 소리 죽여 키득거렸다.

 

 "대신 아카아시, 형이랑 하나만 약속하자. 오늘 일은 둘만의 비밀이야, 알았지?"

 

 아직 눈물을 매단 눈으로 저를 올려다보는 아카아시의 두 눈을 차례로 닦아주며 보쿠토는 씨익 웃어보였다. 약속, 하고 새끼 손가락만을 들어보이자 아카아시는 서툴게 그 손을 따라했다. 귀여워-. 이렇게 걸고 약속하는거야, 응? 아이는 주억였다.

 

 그럼.

 

 보쿠토는 아카아시를 도로 자리에 뉘이고 이불을 목 아래까지 끌어 당겨 덮어주었다. 머리칼을 쓰다듬자 두 눈을 깜빡이며 저를 바라본다. 조금은 웃어주지. 그리 생각하며 보쿠토는 작게 웃어보였다. 갈게-. 살짝 잡아당겨진 셔츠의 귀퉁이에 돌아보자 작은 손으로 잡고 놓아주지 않고 있었다.

 

 "왜 그래?"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형 이름은,"

 

 보쿠토 코타로야. 아이의 이마에 짧게 입 맞추며 귓가에 낮게 속삭였다. 아카아시는 작게 보쿠토, 코타로. 하고 되내였다.

 

 보쿠토는 병원 특유의 넓은 창틀 위에 섰다. 그럼 진짜 갈게-. 손을 흔들어보였다. 아이는 미동도 없이 고개만을 돌려 저를 바라보고 있었다. 희미한 달빛에 비친 청록색 눈이 또렷히 보였다. 아카아시. 네. 스마일-.    

 

Fin.

 

-

 

설정 짰습니다. 힘들어..

테이커-링커. 그거 시리즈로 좀 이을까 고민 중입니다. 으음-.

쿠로오만 나왔어, 미안해 켄마. 주륵.

 

다정한 어른 보쿠토가 제 나이에 맞지 않는 어린 아카아시의 성숙함에 놀라는게 보고 싶었을 뿐입니다. 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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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붕요소가 다분할지도 모릅니다//아 거의 확실하게) 

 

 -

 

 

 독특하다. 괴상망측하다. 희한하다. 이상하다. 재밌다. 무섭다. 천진난만하다. 태평하다. 물음표. 가볍다. 어린아이. 속을 알 수가 없다.

이 모든 것은 한 사람에게 따라붙는 수식어이다. 텐도 사토리. 그는 그런 사람이였다.

 보편적이란 이성의 선에서 절대 따라붙지 안는 붉은 머리칼의 존재감이야 말로 그의 모든 것을 말해주는 듯 하였다. 거하게 세운 머리에 어울리는 듯 어울리지 않는 듯한 텐도 특유의 베이비 페이스는 눈에 띌 수 밖에 없는 최상의 조건이였다. 물론 그 성격을 더한다면 더 할 나위없는 존재였다. 클래스 메이트들 사이에선 빨간 놈, 으로 통한다나 뭐래나.

 

 주체 못하는 희열. 그가 배구를 시작한지 얼마되지 않았을 적이 일이다. '재능은 피워내는 것. 센스는 갈고 닦는 것.' 이라고 누가 말했던가. 이미 만개에 가까웠던 재능은 손에 닿는 이질적이지만 결코 낯설지 않은 공의 촉감이 말해주고 있었다. 이게 너의 길 이라고. 가히 축복 받았다 단정지을 수 밖에 없는 센스는 자연스레 움츠리고 있던 손발을 저 멀리까지 내뻗었다. 한 번 내딛기 시작하자 멈출 수 없을 만큼, 하늘이 높은 줄 몰라 그저 위를 향했다. 탐욕스레 먹어치워버렸다. 일반부원에서 벤치멤버로. 벤치멤버에서 체인지 선수로. 체인지에서 레귤러로. 레귤러에서 스타팅으로.

 물론 제아무리 천성이라 하여도 제 비이상적인 도약에 주위를 둘러보지 못할 만큼 텐도는 어리석지 않았다. 흔한 '머리에 피도 마르지 않은 애송이.' '버릇없는 놈.' 그리고 박탈감. 아니, 약탈이야. 작게 키득였다.

 

 3학년이잖아. 그렇죠. 올해 밖에 없어. 그러시구나, 그럼.

 

 이기면 되잖아요. 

 

 다만 그것은 얄팍한 동정심에 불과했을 뿐이였다. 코트에 남는건 강자니까 약자는 먹혀야지. 그게 코트 위의 순리, 아닌가?

 

 서비스 에이스를 성공했을 때도. 3단 블로킹을 뚫고 스파이크를 내리찍었을 때도. 또 속아 페인트에 걸려들어 저를 올려볼 때도. 단순한 도발에 걸려들어 서브에 실패하는걸 봤을 때도. 상대의 환벽한 한 방을 걷어냈을 때도.

모든 것이 완벽한 스파이크를 셧아웃 시킬 때의 쾌감이란 그 무엇에도 비할 것이 못되었다. 상대의 표정. 미세하게 떨리는 손. 얼얼하게 아려오면서도 척추를 타고 올라오는 감각. 끝으로 비웃어주면 끝.

 텐도가 이를 깨달앗을 때는 이미 '괴물' 취급이였다.

 

 두려울 뿐이잖아. 허울 좋은 말 밖에 못하면서.

 

 그런 독선이였다.

 

-

 

 "이야-부럽네. 고시키는."

 

 말이 뇌를 거치지 않고 툭 튀어나왔다. 물론 불필요한 말은 잘렸지만.

 

 한 학년 아래인 세터, 시라부는 드링크를 손에 쥔 채 입가를 닦아내며 영문을 모르겠단 얼굴로 텐도를 바라보았다. 뭐가 부럽다는 겁니까, 선배.

 

 "아니, 그냥."

 

 스파이크 폼이 안정적이랄까, 특히 스트레이트.

 

 턱 선을 타고 내리는 땀을 어깨 언저리로 슥- 하니 문지르며 텐도는 시선을 여전히 크로스 연습에 매진하는 고시키에게 고정했다.

 

 "타점도 득점도 더 높으신건 텐도 선배 십니다만. 그리고 폼이라면 우시지마 선배 쪽이 더-"

 "아니아니아니. 난 오른손잡이고 그건 함부로 흉내낼 만한 것도 아니니깐."

 

 연신 위험해, 를 중얼거리며 드링크 뚜껑을 닫았다. 플라스틱에 말끔히 맞아들어간 고무 임에도 불쾌하기 짝이 없는 소음을 만들어낸다. 눈가를 찌푸리는 시라부와 다르게 텐도는 다섯 살 배기 아이가 장난감을 빼앗긴 떨떠름한 표정을 하고 마냥 부럽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것도 동시에. 요즘 스트레이트가 막힌 적이 있어서 저러시는건가, 시라부는 그리 생각하며 알다가도 모를 선배의 속에 토스 연습을 꼭 꼭 마음에 새길 뿐이였다.

 실상은 달랐지만. 시라부 같이 영특한 아이라면 충분히 알아챌 수 있었을 터였다. 단순히 '미들 블로커'가 아닌 '사람'으로만 바라보았더라도 눈치있는 그 였더라면 그렇게 여지를 남겨 준 텐도가 오히려 이상하다 느낄 정도였을 테니. 어쩌면 연습 직후만 아니였다면 텐도의 시선이 결코 고시키에게 닿지 않는다는 것 쯤 쉽게 깨달았을 것이였다. 그저 나이스 스파이크- 를 외치며 끔찍히 제 후배를 챙기는 세미에게 온전히 모든 관심을 쏟고 있었다. 고시키는 그저 부수적인 배경에 불과했다. 

 

 아니, 행인 1 쯤 되려나.

 

 텐도에게 있어 세미는 조금 특별했다. 시라토리자와 학원에 입학하고 '우시와카'의 전력을 맛 본 후에야 알것도 같았지만 다 먹어치우는 천성으로는 이해할 수 없었다. 레귤러 잖아. 3학년이잖아. 실력도 있잖아. 하지만 그는 시라부의 입부와 동시에 스타팅 자리를 내어주었다. 세터로서의 실력이라면 세미가 훨씬 나을지도 모르는 일이였다. 한 해 늦게 들어온 시라부에 비해 쌓아온 경험. 신뢰 관계. 호흡. 강한 자만이 코트 위에 선다. 세미는 강했다. 하지만 코트를 뒤로 한 채 경계선을 넘어갔다.

 

 멍청한 놈.

 

 그렇게 생각했다, 텐도는. 어쩌면 저의 허울 좋은 말이자 핑계였을지도. 어엿 한 해를 같은 코트 안에서 뛰어온 동료를, 팀메이트를, 친구를. 결코 제가 밀어낸 것도 아니였지만 시라부를 볼 때마다 느끼는 묘한 울림에 곧잘 세미의 눈을 피하곤 했다.

 

 여전히 잘 웃고. 잘 챙겨주고. 든든하고. 동료였다.

 

 왜 욕심내지 않는거야. 나보다 시라부가 나을거야. 그걸 묻지 않았잖아.

 

 애매한 시선으로 입을 열었지만 아무런 말도 나오지 않았었다. 이내 꾹 다물었었다. 어색하게 웃어보였었다. 푸스스-하고 작게. 그리곤 겨우 꺼낸 말이라게,

 

 난 괜찮아.

 

 바보같아. 울렁이는 기분에 그대로 부실을 박차고 나갔었다.

그런 얼굴하고는 뭐가 괜찮다는거야. 처음으로 의문이 들었다. 승리가 뭐야. 도대체.

 

-

 

 생각할수록 배알 꼴리는 것이였다.

 

 텐도는 엄연히 레귤러였고 스타팅 멤버였으며 그 무엇보다 '우시와카'와 한 코트에 설만한 전력을 지니고 있었다. 시라부가 주 세터인걸 감안하더라도 세미 또한 레귤러에 몸 담고 있으며 시합에 투입된다. 물론 3학년이니 그 전부터 맞춰 온 호흡이 있더라도 쓰지 않으면 금세 녹슬기 마련이다. 시라부의 정직하고 헌신하는 토스도 좋았지만 외유내강의 세미 특유의 토스는 꽤나 즐거운 것이였음을 텐도는 흔쾌히 인정한다. 그 토스가 그립나니, 세미는 더 이상 저에게 토스를 올리지 않았다. 물론 원한다면 시라부에게 연습을 부탁할 수도 있고 우시지마에게 말해 얻어낼 수도 있는 것이였다. 다만 상대의 완벽한 하나를 절망으로 내모는 쾌감에 맛 들인 그에게 있어 제 손으로 해내야만 비로소 완성되는 것이다.

 그 따위 남에게 기댈리가 없잖아. 게다가 무엇보다 그 이후의 것까지 남에게 흉내내라 할 수 없는 것이였다. 꿩 대신 닭, 이란 말이 있다. 물론 그에겐 존재하지 않았다. '대신' 이라니. 스스로 인정하지 못하는 강한 집착이랄까.

 

 여전히 불규칙하게 흘러내리는 물을 내버려둔 채 꽤 멋진 자세로 텐도는 낙담하고 있었다. 무언가를 얻기 위해서는 중간과정이 제일 어렵고 중요하다. 맞는 말이다. 처음이야 기세 좋게 덤벼들면 되고 끝은 성취해내면 될테니.

 

 그치만- 이건 너무 긴거 아니야?

 

 복잡해진 머릿 속에 수건으로 젖으 머리를 털어내니 이리저리 물방울이 튀었다.

 

 "아아- 몰라."

 

 뒤로 벌렁 누워 수건으로 눈가를 가렸다. 오늘의 나 -300% 인가. 텐도는 중얼거리며 발가락을 까딱거렸다.

 

 "뭐야, 텐도. 너 아직 안갔어?"

 

 그러다 감기 걸린다. 얼른 말려. 누가 좋은 선배 아니랄까 걱정까지 해준다. 텐도는 제법 티나게 히죽이며 상체를 일으켜 세미와 눈을 마주했다. 놀라우리만큼 흐트러짐 없는 모습에 감탄을 자아냈다. 조금 차분해진 머리 외에는 똑같았다. 열기에 조금 상기된 뺨에 애매한 시선. 저게 좋단 말이야.

 

 "그러고보니 넌 말이야."

 "아-?"

 "그 얌전해진 머리일 때보면 꽤 잘 생겼단 말이지."

 "그런가. 난 잘 몰라."

 

 푸스스 웃으며 셔츠를 꿰 입으며 단추를 잠근다. 목 바로 아래까지 꼭 꼭 잠그는건 세미의 버릇이였다. 텐도는 그런 점을 포함해서 좋았다.

 

 아- 저기에 반했지. 나.

 

 작게 그리는 호선. 고시키에게도 그렇게 웃어주었을까.

 텐도는 세미의 락커를 있는 힘껏 내리찍으며 그의 뒤에 섰다. 아아- 싫어.

 

 불쌍한 텐도. 그 따위에 만족하는거야? 그러니까 제자리지. 가엾어라.

 

 이 얄팍한 동정심. 언제였더라. 텐도는 입맛을 다시며 놀란 눈으로 아직 가슴께 즈음까지 채운 셔츠를 내버려두고 얼굴을 맞댄 세미를 포악스레 바라보았다.

 

 "너, 뭐하는 짓이야."

 

 뼈가 갈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아아- 역시. 이것도 포함해서.

 

 이런 얼굴. 고시키한테 보인적 있어?

 

 

 강자는 약자를 잡아먹고 약자는 강자에게 먹혀들어간다.

 그게 '내' 순리 잖아.

 

 잡아 뜯었다. 흉폭하게. 울부짖도록. 거세게. 더 크게. 이 빈 속으로 채울만큼, 더.

 

 그런, 독선.  

 

Fin.

 

-

 

급 치인게 문제입니다 쿨쩍))

 

텐도 진지하게 애정합니다, 세미 예뻐요.

 

아니, 그냥 그렇다고요...하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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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로켄 전력 60분 ; 목소리

 

(짝사랑 요소 있습니다)

 

-

 

 쿠로오와 켄마는 제 인생의 대부분을 함께 지냈다고 해도 부족할 정도로 길고도 끈질긴 인연이였다. 부모님끼리 친했으니 엄밀히 따지고보면 켄마의 탄생시점부터 둘은 본인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친구' 였다. 쿠로오가 한 살 많고 켄마가 한 살 어리고 따위의 자잘한 문제는 모두 떠나서.

 그것은 불행이자 행운이였다. 켄마는 그리 생각하며 천천히 눈을 감았다. 더워. 게으른 천성이 어딜가리, 이미 뇌는 녹아내렸다고 믿으면서도 몸을 움직일 생각은 하지 않았다. 선풍기의 예약시간이 끝났는데 켄마의 잠을 방해하며 웅웅 귓가에 울리던 소리는 깨닫지도 못한 새에 잠잠해들어 있었다. 다시 켜야될텐데. 뭐, 상관없나. 찌르르- 하고 꼭 꼭 닫아놓은 창 밖에서 매미가 우는 것만 같았다. 켄마는 마른 침을 삼켰다.

 

 "더워."

 

-

 

 본디 감성적이지 않았다. 그렇기에 감정이 메마른건 아닐까 하고 되내여봐도 좋은건 좋은거고 싫은건 싫은거니까 그건 아니라 생각해왔다. 그건 호불호의 문제잖아. 하고 주위에서 타박해와도 그러려니 했지만 무엇보다 그런 말들을 귀에 들어가지 않게 해 준건 쿠로오 였다. 켄마는 원래 이런거야. 어, 이게 도시 남자라는거지. 쿨-하고. 그지? 씨익 웃어보이며 나 잘했지 라는 의기양양해 하는 얼굴을 하곤 제 옆을 나란히 걷던 사내란. 지금 떠올리자니 조금은 우습기도 했다.

 쿠로오와 저의 거리를 느끼기 시작한건 꽤나 어릴 적부터 였다. 그렇게 끈덕지게 붙어다니며 제 끼니를 챙기고 준비물을 확인해주며 숙제를 도와주고 등하교는 꼭 함께 했다. 불편하면 그러지 않아도 좋다고 말해주고 싶었지만 그럴 용기는 없으니까 그냥 다 물었다. 그게 최선이였다. 미안, 쿠로. 전혀 괜찮은데.

 

 아니, 그런게 아니야. 용기 없는 나라서 미안해.

 

 연상이라는 책임감에 휩싸여 있던 걸까. 내가 '형'이니까 더 잘해야 돼, 따위의 의무감에 가까우려나. 아니면 단순히 어린 아이의 부모에 대한 애정갈구를 위한 도구였을까. 그게 습관이라도 된 모양일까. 비겁하지만 이런 생각을 떠올릴 수 밖에 없었다. 애초부터 난 이런 놈이였는걸. 쿠로.

 

 쿠로오가 먼저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의 1년이라는 공백은 무시할 수 없는 것이였다. 하지만 '공백' 이란 말이 무색하게 연락을 계속해왔고 덕분에 이어나갈 수 있었다. 이 아슬아슬한 관계를. 다만 학교에서나 반에선 외톨이 였다. 그걸로 좋았다. 오히려 그게 좋았다. 좀 더 동정심이라도 불러일으킬테니까. 그 나이부터 저는 이런 생각을 해왔을지도 모르는 일이였다. 난 약하니까. 그러니까.

 쿠로오가 원했고 저도 그게 편했기에 중학교도 고등학교도 같은 학교에 지원했다. 배구 덕분에 꽤 흔쾌히 입학이 승낙된 모양이였다. 배구라. 쿠로가 원해서 했을 뿐인데. 어디까지나 그의 옆자리에 있기 위한 허울 좋은 수단에 불과했다. 그게 아니라도 쿠로오라면 얼마든지 제 옆에 머물러 줄 터였다.

 

 '소꿉친구' 니까.

 

 

시간을 확인하기 위해 켠 휴대전화 화면은 눈이 따가울 정도로 밝았다. '밝기' 따위 아무래도 좋았다. 작동한다면 상관없었으니까. 너랑 내 관계도 결국 그런거겠지, 쿠로. '친한 정도' 따위 아무래도 좋아. 지속되기만 한다면 상관없어. '친한 정도'라는건 관계가 지속되기 위한 부속품일 뿐이니까.

 

 목록을 죽- 둘러보았다. 정말 볼품없었다.

 야쿠. 리에프. 타케토라. 이누오카. 시바야마. 후쿠나가. 카이를 비롯한 네코마 시절 배구부와 제가 3학년이 되고나서 만난 배구부. 쇼요. 카게야마(천재). 케이지. 보쿠토(시끄러운 부엉이).

 가족을 제외하고 여기서 저와 관계를 유지해나가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여긴 없지만 쿠로 정도일려나. 아- 쿠로도 가족인가. 애매해져버렸다. 가족이라면 왜 힘들어야 하는거야.

 

 이미 충분히 골치 썩는 탓에 휴대전화 따위 저 멀리 던져버렸다. 그래봐야 제가 누운 침대 안 제 손이 닿는 정도의 거리겠지만. 눈 앞이 어질어질해지는 휴대전화의 밝은 화면에 아지랑이라도 보는 듯한 착각을 느끼며 바로 누워 눈을 감아버렸다. 여름 축제 불꽃놀이의 여운 마냥 여전히 허옇게 터지는 눈 앞의 감각에 슬며시 눈을 떴다. 무언가 대단한 결심을 하고 눈을 감은 것도 아니였는데 뜬 눈을 한 제가 조금 못났다고 생각했다. 여전히 잠들지 못했고 더운 날이다. 여름인가. 

 긴 팔을 둘둘 거두었다. 잘 되지 않았다. 겨우 팔꿈치 까지 끌어올린 모양새가 엉망이였다.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거 어떻게 하는거야. 

괜히 솟구치는 짜증에 켄마는 상관없나-라며 대(大)자로 팔을 크게 벌렸다. 덥네.

 

 그 날도 이렇게 더웠던가. 켄마는 작게 중얼거렸다.

 

-

 

 "쿠로는 결혼같은거 안해?"

 "갑자기 그런 얼굴로 무슨 소리래."

 "그런 얼굴은 무슨 얼굴."

 "있어, 그런게. 생뚱맞게 갑자기 니가 그런 말을 할 줄이야. 뭐야-."

 "아니, 그냥. 쿠로는 충분히 할 수 있잖아. 인기도 많고."

 "인기와 결혼은 상관관계가 아닙니다."

 

 물론 내가 한 인기는 하지만. 재수 없어. 겍- 그렇게 까지 말할 필요는 없잖아. 

 

 "켄마."

 "난 했으면 좋겠는데. 결혼"

 "켄마."

 

 하나.

 

 "지금 이 얘기를 왜 하는거야."

 "글쎄."

 

 둘.

 

 "글쎄라니, 무책임한 발언아닌가."

 "쿠로는 어떻해 생각하는데."

 

 셋.

 

 게임기는 방바닥 어딘가를 뒹굴고 있겠지. 둔탁한 소리를 내며 떨어진 게임기를 생각했지만 뭐 어때. 그거 꽤 쉬웠으니까 세이브는 괜찮겠지.

 그 보다 시급한건 제 위에서 저를 내려다 보는 쿠로오 였다. 누구봐도 화가 치밀러 오른 저 얼굴. 아아- 그런가. 느릿하게 내리감았다 뜨자 쿠로오는 어금니라도 물고 있는 듯 보였다. 그렇게 화 내지마.

 

 "왜 그래."

 "여유로우신데."

 "아-."

 "장난해? 내가 결혼했으면 좋겠다고? 이 얼굴이나 그만두고 말하는게 어때?"

 

 나흘 후 쿠로오의 이름으로 청첩장이 날아왔다. 빠르네.

 고마워. 쿠로. 청첩장에 작게 입 맞추며 말했다. 담아둔 말은 많았지만 꺼내진 않았다.

 

 여름의 끝자락 그는 결혼식을 올렸다. 아름다웠다. 그 뿐이였다.

 

-

 

 뻔뻔히도 모른 척하고 등 돌린 것도 그를 몰아세운 것도 저였다. 그리고 결국 바라는건 애정이라니 우습기 짝이없지. 허탈한 속과는 다르게 몸은 착실히 다시 휴대전화를 쥐고 잊지도 못한 쿠로오의 번호를 꾹꾹 누르고 있었다. 저를 위해서라도 번호따위 바꾸진 않았을 터였다. '소꿉친구' 잖아. 넌 그런 책임감으로 의무감따위에 날 보살필 이유는 없잖아. 좋아해. 네가 행복하길 바래. 좋아해. 날 좀 더 봐줘. 좋아해. 챙겨줘. 좋아해. 신경써줘. 좋아해. 좋아하는걸. 그렇지만 소꿉친구잖아.

 

 좋아해.

 

 암울하게도 푸른 통화 버튼을 눌렀다. 수신음이 갔다. 하나. 둘. 셋.

받을리가 없잖아. 넷. 지금이 몇 신데. 다섯. 3시 45분. 여섯. 받아서도 안되고. 일곱.

 

 [..여보세요.]

 

 여덟.

 

 [여보세요?]

 

 아홉.

 

 [켄마?]

 

 열.

 

 아아- 네 목소리. 그리웠어. 이 목소리가. 그러니까.

 

 좋아해. 쿠로.

 

-

 

쿠로켄으로는 오늘 또 처음이자 첫 전력. 그냥 전력으로 두번째.

오늘 전력 두개나 뛰었어...으어-

 

쓸데마다 느끼지만 이거 생각보다 빠듯하면서 동시에 여유로운 느낌이란. 신기하다.

 

또 망했습니다! 하지만 애정합니다, 쿠로켄.

 

짝사랑 코드의 켄마가 보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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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쿠아카 전력 60분 ; 진도

 

(대학생인 보쿠아카 나옵니다/동거라기보다 기숙사)

 

-

 

 아카아시 케이지란 남자를 말하자면 정사각형이였다. 적어도 보쿠토 코타로에게 있어서는 그렇게 비춰졌다. 학업우수. 외모준수. 바른행실. 곧은성격. 기타 등등.

 어쩌면 그런 의미에서 아카아시는 범접할 수 없는 인물이였다. 이런 사람을 두고 팔방미인이라고 하려나. 보쿠토는 곧잘 그리 떠올리곤 했다. 물론 두어 해를 같이 같은 학교 선후배로, 배구부 팀메이트로 지내며 인간미 있다는 것을 느꼈다. 결국 인간미까지 갖춘 완전체에 가깝다고 멋대로 정정해버렸지만 말이다. 

 그래서 인지 보쿠토는 아카아시에게 장난스레 '아카-아시. 사귈래? 진짜 잘해줄게.' 같은 터무니없는 농담을 내뱉었고 코노하들에게 야유를 받곤했다. 물론 돌아오는 대답은 한결 같았다. 싫습니다. 그 말을 뱉는 목소리조차 단아하다고 생각하며 질리지도 않고 또 덤벼들고 하는게 보쿠토의 후쿠로다니 시절 기억이였다.

 

 보쿠토 코타로란 남자를 말하자면 선이였다. 아카아시 케이지는 그렇게 단언했다. 종 잡을 수 없는 행적을 이루어 말해보면 간단히 도형따위로 비할 수 없는 사람이였다.  굳이 고르라 하여도 어떠한 도형이 될 수 있는 선을 고집했다.

 난조 페이스를 비롯해 하루는 다섯살 배기 어린 아이마냥 굴다가도 저도 모르게 살기를 풍길 때도 있으니 결국 그 장단에 맞춰주는게 아카아시의 일이였다.

 그 난잡한 페이스에 휘말릴 것만 같다가도 말 한 마디에 도로 현실을 직시하게 되는 것이 일상이였고 숨 막힐 것만 같은 금빛 테의 눈동자에 다시 빠져들곤 했다. 그저 그 뿐이라고 말하지만 속으로 보다 아름답다고 자신에게 되내이곤 하는게 아카아시의 후쿠로다니 시절 기억이였다.

 

 

 "단순하네요."

 "응, 뭐가?"

 

 아카아시를 고개를 좌우로 가로저으며 아무것도 아니에요. 라고 중얼거렸다. 재차 떠올려보아도 보쿠토는 참으로 단순무식하기 그지 없었다. 어쩌면 그래서 좋다고 생각이 꼬리를 물었지만 딱히 상관없다고 되내이며 손바닥과 손가락 사이에 자리한 반지를 만지작 거렸다. 보쿠토는 결코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눈 앞의 하나가 중요하다. 배구부 시절부터 가지고 있던 모토 즈음이라도 되려니 싶었다. 아카아시는 제 머리를 헤집으며 제 앞에 서 저를 내려다보는 보쿠토와 눈을 마주했다. 탐탁치않았다.

 

 "보쿠토 선배."

 "응."

 "저희 남자거든요."

 "알아."

 

 뭘 알고 있다는 걸까. 미간을 구기며 그의 뒤로 내비치는 후광에 그림자져 보이지 않는 보쿠토의 표정을 머릿 속으로 그렸다. 어떻긴 어때, 아무렇지도 않다는 얼굴이겠지. 보쿠토에 관해서는 길게 생각할 필요없었다. 아카아시는 그와 3년이라는 고교 시절을 온전히 보내고도 그로 모자라 대학 2년 마저 함께 보내고 처지였다. 모를리가 없었다. 전공법 밖에 모르는 건가, 이 사람.

 

 "반지, 물론 감사합니다. 하지만,"

 "하지만?"

 "티내고 싶진 않습니다."

 "어째서? 싫은거야? 역시 그런거지?"

 

 아니요, 아니요. 아카아시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동시에 손까지 저어보였다. 싫을리가 없지 않은가. 아카아시라고 독점욕이 없을리가. 아니, 생각보다 자신의 독점욕에 놀라는 턱에 온전히 가지고 싶다고, 내 소유였으면 좋겠다고 그리 떠올리는게 허다 했지, 그게 보쿠토에 비해 밖으로 표출되지 않을 뿐이였다. 오히려 기뻤다. 생각치도 못한 곳에서 이렇게 정직하게 한 대 얻어 맞을 줄이야. 아카아시 실버계열이 더 좋다고 했잖아? 그래서 이걸로 했는데 맘에 안들어? 그게 아니라니까요. 

 확실히, 깔끔한게 제 타입이긴 했다. 큐빅 없는 말끔한 실버계열의 링. 안 쪽에 조금스레 새겨진 이름은 코타로, 였다. 화려한 걸 선호하는 보쿠토의 입장에선 한 발 물러서 준 것일지도 모르는 일이였다. 아카아시는 한숨을 폭 내쉬더니 다시 보쿠토를 올려다 보았다. 어느새 제 체온을 옮겨받은 반지를 만지작 거리며 입을 열었다.

 

 "감사합니다. 학교에서는 빼도 괜찮겠습니까?"

 " 오우- 당연하지!"

 

 곤란해할걸 배려해준 걸까. 의외로 간단히도 승락해버리는 보쿠토의 탓에 아카아시는 허탈하기 그지 없었다. 이럴거면 이제까지의 대화는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그런 속과 달리 겉으로 야금야금 새어나오는 웃음이란건 참기 꽤 힘든 것이였다. 아카아시. 예. 좋아해. 그런가요. 뭐야, 제대로 답해줘. 싫습니다. 뭐야-그거 오랜만에 듣잖아. 아니아니, 그래서 답은?!

 

-

 

 아카아시가 보쿠토와 연인이 된지는 2년 째에 접어들었다. 저와 같은 대학에 오라며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전부터 그리 노래를 부르더니 수험 일주일 전에 불쑥 찾아와 빨리 대학에 오라는 터무니 없는 말을 했다. 물론 지금 준비하는거 망쳐서 다른 학교가 가도 좋다면 얼마든지 옆에 있으라는 아카아시의 선전포고에 꽤 조용히 돌아가긴 했지만 말이다. 약속 아닌 약속의 덕택인지 아무 메세지도 전화도 답 없던 아카아시는 대학 배구부 신입생 환영회 때 모습을 드러냈다. 후쿠로다니 출신은 보쿠토 혼자 였기에 그 아무도 상황을 몰랐지만 정말로 문자그대로 보쿠토는 아카아시를 끌어안고 훌쩍였다. 안오는줄 알았다나 뭐래나.

 그 후로 고교 시절과 오버랩 될 정도로 자율 연습을 했고 달라진게 있다면 기숙사 였기에 통금 시간을 맞춰야 할 따름이였다. 무리해서 방을 바꿔 같은 방을 쓰게 된 덕분에 아카아시만 죽어나는 꼴이였다. 물론 과는 달랐으므로 훈련 정도였지만 그것 만으로 직사광선을 온전히 받아내는 것이였고 대단한 것이였지만 말이다.

 

 고백은 타이밍 이라고 누가 그랬던가.

 보쿠토는 아카아시의 입학 후 일주일 채 되지 않았을 무렵 자율 연습 도중 아카아시의 토스를 크로스 스파이크를 내리꽂으며 말했다.

 

 '역시 아카아시 토스는 좋아.'

 '몸에 익으셨으면 편한거겠죠.'

 '그리고 역시, 나 아카아시가 좋아.'

 '단어, 빼먹으셨습니다.'

 '나 아카아시가 좋아. 아카아시 케이지가 좋아.'

 

 이미 짝사랑의 형태로 애정을 이어오던 아카아시에게 있어 이 보다 달콤한 것도 없었겠지만 아카아시 케이지다. 한 발 뒤로 물러섰다. 그럴리가 없다면서. 물론 그 직사광선을 무슨 수로 피하리. 무작위로 그저 좋다며 답을 기다리는 보쿠토의 표정이란 아카아시에게 있어 꽤 심장 떨리는 것이였다. 

 나, 아카아시가 다른 사람이랑 얘기하는 것도 싫고 말이야. 다른 사람 보는 것도 싫어. 다른 사람하고 즐겁다는 듯이 웃고 있는거 보면 열 올라. 나 멍청한거 알아. 하지만 이건 장난도 아니고 단순히 널 아끼는 감정에서 나온 것도 아니야. 좋아해.

 

 아카아시는 들고 있던 수건을 다가오던 보쿠토에게 내던졌다.

 

 '에에-! 아카아시 뭐하는 짓..!'

 

 곧 울거같은 얼굴을 하곤 붉게 달아오른 두 뺨에 시선을 피하는 아카아시의 얼굴은 실로 희귀한 것이였고 보쿠토에겐 있어서 자극제 즈음 되려나.

 

 결국 아카아시는 보쿠토의 품에 안겨 작게 중얼거렸다. 저 역시 좋아합니다, 당신을.

 

-

 

 보쿠토는 초조하게 이미 새벽 2시를 훌쩍 넘어가는 시계를 바라보았다. 늦어, 늦어. 

몇 일 전부터 저를 눈에 띄게 피하는 듯 해 둘 만 얘기해보려 해도 아카아시는 좀 처럼 시간을 내주지 않았다. 아아- 어째서. 제가 무언갈 잘못이라도 한 걸까. 역시 그런가. 

 동기들과 술 자리가 있다는 문자 하나 이외에는 그 어떠한 것도 답해주지 않는 아카아시의 탓에 보쿠토는 불안하기만 했다. 늦게 올거라며 먼저 자라는 친절한 문자가 뒤를 따르긴 했지만 침대에 누워도 눈이 감기지 않았다. 억지로 눈을 감아보아도 자꾸만 어른거리는 얼굴에 뒤척이기를 수 십번. 결국 헤드에 기대 앉아 벽에 걸린 시계만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삑. 삑. 삑. 삑.

 

도어록이 해제되는 소리와 함께 보쿠토는 시선을 방 문 너머로 옮겼다. 멀쩡히도 걸어들어오는 모습에 안심되어 한숨을 놓는 보쿠토였다. 역시. 동기들 돌려보내주고 온걸테지. 다행이다.

 

 "아카아시. 늦었잖아."

 "...뭐야, 안 잤어?"

 "으응..? 아- 어. 늦길래.."

 

 목소리는 그다지 풀린 감각이 없었다. 반말이라니. 평소라면 두근거리라도 했겠지만 지금 상황에서라면 어쩐지 다른 의미로 두근거렸다. 내뱉는 투도 거칠기만 했다. 뭐야.

 

 "아카아시, 취했어?"

 "아니."

 "우선은 눕자, 응?"

 "야. 너."

 

 아카아시는 반쯤 치켜든 눈으로 보쿠토를 바라보았다. 취기에 옅게 달아오른 뺨이 였다. 외투를 벗어 바닥에 내던졌다. 보쿠토가 앉아 있는 침대 위로 풀쩍 올라와 네 발로 기 듯 다가가 보쿠토의 어깨를 쥐었다.

 

 "아,카아시?"

 "코타로."

 

 취했다, 취했어. 확실해. 풀린 눈이였다. 축축 늘어지기 마련인 몸일텐데도 불과하고 보쿠토의 어깨 위를 강하게 짓눌렀다. 힘 없이 아래로 주르륵 미끄러진 보쿠토는 제가 모르는 아카아시의 모습에 당황스러울 뿐이였다. 코타로, 라니. 그렇게 애원해도 불러주지도 않던 이름인데 이럴 때 부르는건가.

 

 "아카,아시. 늦었고하니 자자. 응?"

 

 아이 달래는 말투로 천천히 아카아시의 뺨을 쓰다듬어주며 어색하게 웃었다. 그런 보쿠토를 아카아시는 평소의 무감각한 얼굴로 내려다보더니 오른쪽으로 조금 고개를 비틀어 입을 맞췄다.

 어리광인가 싶은 마음에 보쿠토는 아카아시의 허리에 팔을 두르고 석연찮은 기분은 뒤로 제쳐 두고 혀를 섞었다. 기세 좋게 달려든 것 치고는 얌전한 아카아시가 한 편으로는 귀여워 작게 웃었다. 잠시 후 아카아시가 먼저 떨어졌다. 옅은 숨을 내쉬며.

 

 "코타로, 코타로."

 "응, 나 여기 있어."

 "코타로는, 나 싫은거야?"

 "엑- 무슨 소리야, 그거."

 "그치만- 코타로는,"

 

 다시 짧게 키스했다.

 

 "나랑 자지도 않는걸."

 

 툭 하고 무언가 끊기는 기분이였다. 보쿠토는 어버버 거리며 다음 말을 생각했지만 아무 것도 떠오를 턱이 없었다. 

 

 "나 자고 있을 때 혼자 처리하곤 말이야."

 "어,어째서 아는거.. 윽..!"

 "괘씸해. 코타로."

 

 아카아시는 비웃음에 가깝게 웃어보이며 보쿠토의 하체에 손을 대었다. 검지로 위아래를 찬찬히 훑더니 이내 손에 쥐었다. 세게. 아아- 잠시만, 아,아카아시..!

 

 "뭐, 난 그럴 가치 없는 건가."

 "아,아니,아니. 아카아시-. 그런게 아니..라"

 "이것 봐. 그런데도 이렇게 만져주는 것만으로도, 응?"

 

 아카아시는 소리내어 작게 웃더니 얼굴을 가까이 했다. 필사적으로 참고 있는 보쿠토를 비웃기라도 하는 모양새로 입술에 제 입술을 마주했다.

 

 "아,카..아시는..! 이게 불만, 이 였던거야..?"

 

 아카아시의 키득거림이 멈추었다. 당연하잖아.

 

 "명색이 연인이라는데 말이지, 눈치도 없고. 코타로 말이야. 아- 혹시 잘 상대는 아니였구나, 나. 그냥 플라토닉? 즐기는건가. 그런건가."

 

 보쿠토는 손에 쥐고 있던 시트를 놓고 아카아시의 허리와 어깨에 팔을 둘러 뉘인 뒤 아카아시 위에 올라탔다. 순식간의 일이였다. 당황할 법도 했다. 취해도 아카아시는 아카아신가. 보쿠토는 그리 생각했다. 풀린 눈으로 올려다보더니 이내 검지로 제 턱선을 주욱- 그어보였다.

 

 "뭐야. 코타로."

 

 여전히 히죽거리고 있었다.

 

 "아카아시, 잘 들어. 난 아카아시 엔조이따위로 만나는 것도 아니고 잘 상대가 아니라고 보는 것도 아니야. 나 진심으로 좋아해. 오랫동안 좋아했다고."

 "으흠-."

 "그러니까 좋아한 만큼 아껴주고 싶은 것 뿐이야. 나라고 싫은 줄 알아. 참는 거지. 아카아시가 나 온전히 받아들여줄 때가 좋은거야. 힘으로 몰아붙이고 싶지도 않고. 그냥, 난 단지 기다리는 것 뿐이라고. 그러니까,"

 

 그런 말 하지마.

 

 보쿠토는 아카아시를 품에 끌어안았다. 지금 제가 안고있는 아이가 제게 너무 벅차서. 주고 또 주고 줘도 모자라서. 심장이라도 튀어나갈 것만 같아서.

 

 "코타로."

 "응."

 "좋아해. 많이."

 "응."

 "그러니까 나 불안하게 하지마."

 "응."

 

 보쿠토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마주한 얼굴은 금방이라도 울 것만 같다고 보쿠토는 생각했다. 아카아시는 제 팔을 보쿠토의 목에 감아 아래로 끌어당겨 입을 맞추었다. 보쿠토는 순종적인 아카아시의 모습에 사랑스런 아이의 머리통을 부여잡고 타액을 섞었다. 뜨거운 숨이 오갔고 감정이 들끓었다.

 

 "눈 앞에 하나가 중요하다, 라고 했지. 코타로가."

 

 보쿠토는 잠시 멍 하니 유혹하듯 예쁘게 웃어보이는 아카아시를 내려다보았다. 

둘은 키득거렸다. 확실히 그렇지.

 

 "급한 불은 꺼야지."

 

 그럼 사양않고.

 

 맹금류를 빼닮은 그 금빛 테가 빛났다. 입맛을 다시며 보쿠토는 길게 웃었다. 아카아시도 다를 바 없었지만.

 

Fin.

 

-

 

처음해보는 전력인데, 에에- 저질러버렸다

다들 금손러시던데, 어떻햌ㅋㅋㅋㅋㅋㅋ 에라 몰라

 

반말하는 아카아시가 보고싶었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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