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날조 심각(라기보다 과거 파괴)

*극극극소량의 유혈사태 및 약약약 수위묘사

 

-에 유의해주십시오..라고해도 별거 아닌데..

 

 

"사장님. 죄송한데 바꿔달라고만 하시네요."

 

 후쿠자와는 그의 비서인 하루노의 곤란해하는 얼굴에 가만히 주억여주었다. 그럼 회선 바꿔드릴게요. 임무를 무사히 전달받은 그녀는 한시름을 덜고 자리로 돌아가 회선을 돌렸다. 수화기를 집어들자 슈베르트의 [마왕] 의 시작 부분만이 간헐적으로 들려올 뿐이였다.

 

 "용무가 없다면 끊겠다."

 

 [여전히 참을성 없는 친굴세.]

 

 "자네 따위의 친우를 둔 기억은 없다."

 

 [아아- 친우는 아니지. 확실히.]

 

 "끊겠다."

 

 [잠-깐.]

 

 "긴 말 않겠다. 녹차다."

 

 [잘- 알겠네.]

 

 던질 것 같이 수화기를 귓가에서 끌어내리곤 꽤나 얌저히 내려놓자 그제서야 통화는 끊겼다. 후쿠자와는 뒷편에 위치한 거치대 위의 일본도에 손을 뻗었다 금세 그만 두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의자를 밀어넣고 하오리를 손으로 거둬 펴내리곤 흡사 팔짱이라도 끼는 양 손목보다 깊게 손을 밀어넣었다. 지체없이 걸음을 옮기자 하루노는 엉거주춤 일어섰고 그는 그런 그녀를 저지했다. 사장실에서 나오자 제법 소란스러웠던 탐정사들의 눈이 모였다.

 

 "다녀오겠다."

 

 "네엡-."

 

 묘한 미소를 머금은 다자이만이 인사를 건냈다. 후쿠자와가 자리를 뜨자 다자이는 한껏 기지개를 켜더니 키보드에서 손을 뗐다.

 

 "오늘 일은 끝- 이란 말이지."

 

 "다-자-이."

 

 "기한 연장이잖아, 쿠니키타 군."

 

 "악의적이란 말이다. 신입들이 배우기라도 하면 어쩔거냐."

 

 "쿠니키타 씨. 무슨 말이에요?"

 

 "아."

 

 "아아- 쿠니키타 군이 신입군들에게 나쁜 버릇을 들이다니."

 

 "네 놈 때문이잖아!"

 

 "으음- 오늘 사장님은 퇴근이셔."

 

 친절한 다자이의 설명에 아츠시는 눈을 끔뻑였다.

 

 "외출하신거잖아요."

 

 "아까 하신 말씀에서 평소와 다른 점은 뭘까, 아츠시 군."

 

 아츠시는 예상치못한 타이밍의 질문에 눈알을 굴렸다. 글쎄요, 뭘까요.

 

 "'잠시' 란 말이 없으셨지."

 

 "아- 그러고보니 그러네요."

 

 "이제껏 그냥 다녀오신다고 했을 때 당일엔 돌아오신 적이 없으셔. 그러니까 자유다!"

 

 "다자이-!"

 

 다자이는 책상 위의 어지럽게 늘어놓은 서류 몇 장을 허공에 던져버리며 눈 오는 날의 아이 같이 즐거워했다. 물론 동시에 쿠니키타의 잔소리가 흩어졌지만. 

 

-

 

 후쿠자와는 신호등 앞에 서있었다. 어떤 이유인지 평소면 바뀌었을 시간이 진즉에 지나버렸지만 부동의 자세로 신호가 떨어지길 기다리고 있었다. 깊게 생각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지만 여유시간이 생겨버리면 일 이외에도 이것저것 떠올리게 되고 말았다. 조금 미뤄둔다고 문제가 생기는건 아니였지만 타의 모범이 되어야한다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다는 사실은 부정하지 않았다. 서류 결정 건은 2건이 남았지만 금방 끝나니 내일봐도 상관이 없을 터였다. 그 사이 신호가 바뀌고 횡단보도로 내딛으려던 걸음은 제 앞을 가로막은 차에 의해 멈춰섰다. 창이 내려가고 선글라스에 수트를 입은 조수석의 남자가 목례를 했다.

 

 "보스께서 모셔오라 하셨습니다."

 

 실로 언짢기 그지 없었다.

 

 "내 발로 가겠다."

 

 앞을 가로질러 횡단보도에 발을 딛은 후쿠자와는 고개를 돌려 무어라 말도 못하고 제자리에 선 마피아들에게 말을 던졌다.

 

 "전해라. 네 놈의 호의는 거절한다고."

 

 빠르게 지나쳐간 후쿠자와의 그림자를 쫒는데 연결된 스피커 폰에서 호탕한 웃음이 터져나왔다. 보, 보스.

 

 [됐다. 차피 이렇게 될 줄 알았으니, 돌아오도록.]

 

 "예."

 

 모리는 아래 조직원과의 통화를 끊으며 미미하게 새어나오는 웃음을 무리해서 참지 않았다. 애초에 참을 마음이 없다는게 더 맞는 말일 것이다. 모처럼 날도 좋은데 비라도 왔더라면 얌전히 타고 왔을까 라고 생각하다가도 그럴리가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작은 원탁에 우려놓은 홍차를 한 모금 머금었다 삼켰다. 기다린답시고 오래 우려둔게 화근이였다. 끝물에 쓴 맛이 올라와 두어번 입맛을 다셨다. 혀 끝에 남아도는 향에 그래도 짙은 향이라며 혼자 만족하고 말았다.

 

 둘의 관계는 항상 그랬다. 분명 서로의 입장 위치 상 이루어진 관계가 애매하게 지속되면서 그렇게 된 것도 한 몫 했다.

 

"줄곧 이래왔었는데, 자네와 난 말일세."

 

 찻잔을 비워내며 중얼거렸다.

 

-

 

 후쿠자와 가(家) 는 대대로 이능력자 집안이였다. 그래서 막부 정권 즈음부터 뒷일을 맡아왔다. 유서깊은 집안인 만큼 엄했고 그들만의 철칙이 존재했다. 남녀 가리지 않고 힘의 순서로 하여 당주를 내어주었다. 약육강식이란 말이 딱이였다.

 

 장남 후쿠자와 유키치의 위로는 누이, 아래 역시 누이가 있었다. 유감스럽게도 윗 누이는 이능력을 지니지 못한 몸이였을 뿐더러 집안의 폐를 끼치고 싶지 않다며 시집을 들어버렸다. 아랫 누이, 후쿠자와 카나타는 실로 대단했다. 타고난 피라 이르며 집안 어른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으며 자라났다. 자칫하면 살해를 위한 능력이 될 수도 있었거늘 어린 것의 손에 쥐었다 폈다를 반복했다. 그녀가 열 둘이 되던 해 이미 당주는 그녀라는 소문아닌 소문이 돌았다. 자연스러운 것이였지만 그는 그녀를 애써 만나려들지 않았다. 제 아버지 되시는 당주의 결정이기도 하니 그 만은 어길 수 없었다. 어머니가 병석에서 앓기를 자주 하셨기에 저를 유년시절부터 잘도 따르는 누이는 애정의 대상일 수 밖에 없었으나 그녀는 어린 나이에 차기 당주로 발탁될 것이였고 열 여덟에 아직 능력조차 피지 않은 그는 그저 조용히 침전하면 될 이야기에나 불과했다.

 

 "오라버니, 유키치 오라버니."

 

 끈질기게도 하루가 멀다하고 문안인사를 핑계로 다녀갔다. 내심 귀찮아 할까 굳이 오지 않아도 된다 일러두어도 다음 날이면 어린 누이의 발걸음이 들려오기는 마찬가지였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그런 그녀가 한편으론 기특하기도 했다.

 

 검은 마음을 수양할 수 있다한 것보다 제 몸 하나를 지키기위한 수단으로 시작하였다. 그의 유년 역시 검과 함께 였다. 그 머리에 피도 마르지 않은 것이 어찌 마음의 평화고 온화하며 냉철한 정신을 알리가 있단 말인가. 호된 꾸짖음에 시작된 것에 불과할 뿐더러 납치나 살해 위협을 받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타고난 제 복이였다.

 공식석상에서 만날 수 있는 기회는 얼마되지 않았다. 집안이 모두 모일 적 정도 뿐이였다. 그녀가 차기 당주로 발탁되기 전만 하더라도 검이나 경전 수업을 같이 하였으나 그 마저 마땅치 않게 여긴 것이였다. 발탁 이후 그는 아버지를 찾아가 말씀을 올렸다. 그녀는 이제 차기 당주이니 그에 걸맞게 대우해야할 것이고 그러하니 자신과의 접촉도 최소화 해야한다는 누이가 들었다면 서글퍼할 말들이였다. 아버지는 흔쾌히 옳다 하며 그의 소원대로 별채를 지어 그에게 내주었다. 자연스레 저와 멀어지며 당주로서의 마음가짐을 탄탄히 하라는 의미였으나 그래봐야 그녀는 고작 열 둘에 불과했다. 좀 더 사랑받아 마땅했고 어리광이라도 부릴 나이였다. 유감스럽게도 '차기 당주' 라는 역할이 발목을 잡았다.

 

 그 무렵이였다, 모리 오가이를 알게 된 것은. 그는 어머니 주치의의 아들이였다. 만난 것은 분명 몇 해 전의 유년이였으나 짧게나마 목례나 하고 마는 사이에 불과했다. 그는 그의 아버지를 따라다니며 잔심부름을 맡았고 말수가 적었다. 어머니는 안채의 남향으로 방을 내었기에 별채에 따로 지내는 그가 의사 부자를 볼 수 있을 적이라곤 들어갈 때와 나올 때 정도였다.

 그녀의 병세가 깊어지자 방을 내어주고 곁에서 볼 수 있도록 했는데 동갑이라며 아들인 모리가 별채에 들어오게 되었다.

 

 "모리 오가이야, 잘 부탁하네."

 

 "후쿠자와 유키치다."

 

 후쿠자와는 고개를 주억일 뿐 별다른 말을 덧붙이지 않았다.

 

 "원래 말수가 없는거냐?"

 

 그 조차 주억이는 것 말고는 다르지 않자 모리는 작게 웃었다.

 

 "적어도 몇 주는 봐야할텐데 친하게 지내는건 어떤가."

 

 "사양한다."

 

 "손님 접대가 엉망이군, 자네."

 

 "내가 관여할게 아니다."

 

 "유키치 오라버니-!"

 

 분명 다른 이가 보았더라면 경박스럽다 꾸짖었을걸 누이는 달려와 그에게 안겼다.  두 손이 서로 닿지도 않는 등 뒤로 팔을 두르곤 보고싶어 왔노라 말했다. 후쿠자와는 그런 그녀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어주며 일렀다.

 

 "카나타, 손님이 와 계신다."

 

 "아, 죄송합니다."

 

 "아니 괜찮아. 그 쪽은 유키치 동생?"

 

 "네. 후쿠자와 카나타 라고 합니다."

 

 "아아- 차기 당주가 너로구나."

 

 그녀는 금세 자세를 바로하여 무릎을 꿇고 두 손을 가지런히 하였다. 그리곤 모리의 말에 겸연쩍은 듯 작게 웃어보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카나타."

 

 "조금만 더 있다 가겠습니다."

 

 "-그래."

 

 새침하게 툭 뱉고는 웃어버리고 마니 얼른 돌아가라 하려다가도 덩달아 조소를 흘리고 말았다.

 

 "모리 오가이 님, 되시는가요?"

 

 "님은 필요없는데 말이지."

 

 "저희 오라버니가 말수가 적은게지 무척이나 상냥합니다."

 

 "너 무슨 말을,"

 

 "그러니 실망하지 마시고 부디 좋게 봐주세요."

 

 모리는 턱을 괴고 있다 말고 그만 웃으며 알았다 일렀다. 당돌한 그녀는 제 오라버니를 흘깃 보다 마저 이르고 안채로 내뺐다.

 

 "오라버니도 그리 쳐내지 말고 잘 지내세요-." 

 

 미간을 구기며 살뿐하게 뛰어내려가는 뒷모습을 보아도 별달리 할 수 있는게 없어 한숨만 내쉴 뿐이였다. 때마침 차를 내왔고 저러다 아씨 다치시기라도 하는 것 아니냐는 말을 들어야 했다.

 

 "살가운 누이일세."

 

-

 

 병세가 호전되기 시작한게 꼬박 반 년이 조금 지난 후의 일인지라 그 동안 -일방적이지만- 짧게나마 말이 오갔고 대련이라도 같이 하며 살을 맞대고 지내자 후쿠자와 역시 일전보단 이방인을 멀리 하지 않았다. 어쩌면 그의 누이의 소원이 제 몫을 한 건지도 몰랐다.

 

 "유키치. 혼사는 어찌되나."

 

 "집안에서 정해줄테지."

 

 "속 편한 놈이구만."

 

 "그러는 네 녀석이야 말로."

 

 가벼운 농담 따먹기가 오가는 사이가 되어서도 누이는 신신당부를 거듭했다. 자연스레 셋이서 어울리기도 했는데 그럴 때마다 후쿠자와는 한 걸음 뒤에서 있었다. 제 누이를 봐온 것도 십 수년이였고 당찬 그녀가 '여자' 로 보이는 순간이 많아지며 둘이 시간을 보낼 수 있게 해준 그의 배려였다. 그가 여러 면으로 좋은 사람이라는 것은 무의식 속에서 인정하고 있는 부분이였다. 그러니 그녀가 좋다면 지지해 주고 싶은게 오라버니 되는 후쿠자와의 마음이기도 했다.

 싹싹하게 굴고 얘기도 잘 들어주는데다 사람 홀리는게 능한 작자였다. 얼마나 능글맞게 구는지 한동안 한 이불을 덮고 자야했는데 제 몫이 준비된 이후로도 이 편이 좋다며 옆자리를 꿰차고 잠자리에 들었다. 게다가 툭 하면 장난질인데 다 큰 사네 자식한테 수련 중에 뒤로 다가와 허리께를 휘어감기도 하고 상체를 더듬거리며 역시 후쿠자와 가는 다르단 말인가 같이 태평한 소리를 늘어놓아댔다. 그리곤 어느 새 그 모든 것들이 익숙해져 갔다.

 

 "또 고양이한테 말 걸고 있었나."

 

 "-카나타는."

 

 "당주께서 부르셨네."

 

 "어머니 병세는 어떤가."

 

 "많이 호전되셨지."

 

 "고맙다."

 

 "내가 한게 뭐가 있다고, 감사라면 내 아버지에게나 하게."

 

 그와도 1년이 다 되던 해 누이의 등쌀에 못이긴 척 둘은 짧은 휴식을 가지기로 했다. 모처럼이니 누이도 같이 갔으면 했지만 고개를 설레설레 저어보이며 오라버니들끼리 잘 다녀오라며 가서 쉬라는 말만을 재차 말했다. 귀뜸으로 모리가 무얼 좋아하는지 물어봐달라는 말을 덧붙이는 것 보니 마냥 커버린 것은 아니라 실감했다.

 

 여름에 만났다. 꼬박 한 해가 지나 돌아온 새 여름이였다. 시종 몇몇을 미리 여름 별채로 보내 살피게 하고 일주일 채 안되어 출발하자 대충 날짜가 맞아떨어졌다. 산의 중턱에 자리한게 담장 너머까지 들어서는 가지들에 술렁이는 잎이 팔을 거두고 앉아있자니 시원하기 짝이 없었다. 모리는 조금 긴 머리칼에 더워보였다. 후쿠자와 역시 피차일반이였다. 저녁상을 물리고 앉아있자 붉게 익은 하늘은 새파랗게 식어가고 있었다.

 

 "자지 않을 셈인가."

 

 "조금."

 

 "줄여말하는건 그만두라 했던 것 같은데."

 

 "알아들으니 상관없잖나."

 

 "그야 그렇다만."

 

 조금 떨어진 언저리에 앉으며 그는 자연스레 후쿠자와의 무릎의 한 구석을 차지했다. 여기가 지상 낙원이 따로없구만. 덥다. 말만 그러면서 무슨-. 후쿠자와는 이미 양껏 즐기는 모리를 흘겨보고는 그저 내버려둘 따름이였다.

 

 "모리."

 

 "뭔가."

 

 "카나타는 어떤가."

 

 "너무 직접적이라고 생각하진 않는 모양이구나."

 

 "내 돌려말하는 적은 있고?"

 

 "없지, 없어."

 

 호탕한 웃음은 언제나와 같았다.

 

 "네 누이라면, 동경에 가깝지."

 

 "동경?"

 

 "아마 듣고싶은 답이라면 여기있고."

 

 모리는 손을 뻗어 감았던 눈을 슬며시 뜨고 후쿠자와의 턱선을 손가락 마디뼈로 긁어내렸다. 그와 동시에 구겨지는 얼굴은 어쩔 수 없이 익숙하면서도 당연스러운 현상이였다.

 

 "네 놈은 사람을 우롱하는 것도 작작,"

 

 "우롱이 아니라 진심이라면 어쩔텐가."

 

 "그런 걸 보고 세간에선 '우롱한다' 라고 일컫는다."

 

 "항상 그랬었지."

 

 얼굴을 뒤로 빼자 그의 손도 떨어져나갔다. 한껏 기지개를 켜며 고쳐 눕는 모리는 여전히 후쿠자와의 허벅지를 베곤 실없이 웃었다. 기껏해봐야 이제 하루가 지난 탓이였다.

 

 분명히 떠올리건데 치기어린 열병과 생소한 감각에 한 번 타기 시작한 마른 장작이 밑도 끝도 없이 타오르는 것과도 같았다. 

 누이는 단순한 동경이라 취급해버리고는 사람 홀리기 좋은 얼굴로 묘한 기를 띄우며 네가 좋다 라 하여도 별다를 것 없는 나날에 불과했다. 구색이 필요했다. 단지 그 뿐이였다.

 

 술이 들어가기 시작하면 어찌되었든 경계심이 누그러들기 마련이였다. 이만은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는 후쿠자와의 불가항력적 도리와도 같았다. 게다가 좋으나 싫으나 살을 맞대고 벗으로 삼아 짧게나마 지내왔으며 잘도 여는 입에선 제가 모르는 세상살이들이 흘러나왔다. 차갑게 식은 한 잔에 달이 조막만하게 세간살이로 들어서면 어디 그 뿐이겠는가, 분위기에 취해 연거푸 들이킨게 화근이였다.

 

 "자네, 누이를 어찌 그리 아낀단 말인가."

 

 "-어머니가 병석에 누운게 나를 낳고 난 후였고, 카나타는 열 달도 다 채우지 못해 죽을거라 했었지. 누님은 장녀시고 이러니 저러니 해도 집안 도리에서 어긋나지도 않으니- 조부께서 아끼시기도 하는 터고,"

 

 한 마디로 결착을 지으리라 생각한 모리로서는 예상치도 못한 답이 쏟아져나오기 시작했고 깨달았을 때 후쿠자와는 이미 꼭대기까지 열이 오른 상태였다.

 

 "어른들 말씀처럼 내가 죽었어야 했네. 어머니가 아니라 내가-."

 

 "자네 어머니는 지병이시지 않는가."

 

 "나 때문에 얻으신게지."

 

 감쪽같이 달의 반이 사그라들어버렸다.

 

 "아버지 말씀으론 몸의 기가 약하시다 하셨다만."

 

 "그 기가 약하면 정신이 혼란하실 때도 있는가."

 

 "있을지도 모르지."

 

 "나를 배셨을 때, 스스로 강에 몸을 던지셨다 들었다."

 

 내려앉았던 시선이 떠올랐다. 들었던 잔을 내리고 잡되게 안을 헤집어 갈비뼈 아래의 언저리 즈음에 낙인마냥 주욱- 길게 교차로 그인 흉이 보였다. 환락에라도 빠져든 양 후쿠자와는 소리높여 웃었다. 처음이였다.

 

 "유년부터 가까이 두질 않으셨고 내 열 살이 되던 해에 은장도로 찌르셨네. 죽으라 하셨지."

 

 헤집어진 옷가지를 정리하지도 않은 채 남은 잔을 비워냈다. 고개를 떨구었다. 자네 괜찮은가.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지만 흉이 날개를 접은 나비와 같다고 떠올렸다.

 

 "누이만- 내가 살아야된다 말해주었다. 그만두려던 나에게 살아도 좋다고 말해준 유일한 사람이다."

 

 살고싶었다. 작게 중얼거렸다. 잔 안에 바다가 끓어올랐고 그 안에 하얀 달이 몸을 내던졌다. 한 방울의 파도가 울렸다.

 

 "모처럼이니 나도 큰 이야기나 해봐야 겠군."

 

 모리는 술잔의 아래를 손끝으로 치며 장단이라도 맞추는 것 같았다.

 

 "난 아버지를 죽였네."

 

 "-지금의 아버지는,"

 

 "양 아버지일세. 타고난 술꾼이라고 해야할까, 술만 들어갔다 하면 사람 하나를 죽여야 말끔해지곤 했지. 내 죽기 싫어 죽였네."

 

목을 엄지로 슬그머니 그어보이며 아무것도 아니라 한입거리 이야기를 털어놓고 잔을 한 입에 털어넣었다. 

 

 "아버지, 인가."

 

 "자네도 아버지와는 그리 살가운 사이는 아닐터고. 뭣하면 보내드릴 수는 있다만." 

 

 그러고보니 게 어디냐- 아랫지방 아가씨라는 모양이더군. 자네 혼사. 시선이 느껴지자 손을 내저어보였다. 주워들은 얘기일세. 녹록찮은 감상에 젖은 듯 후쿠자와는 더 이상 잔에 손을 뻗지 않았다. 후쿠자와 가(家)의 본가는 도쿄에 있으며 시집 든 윗 누이 역시 도쿄 근방에 자리잡고 있다. 아랫지방이라 한다면 영영 선을 그어버릴 셈이 틀림없었다. 집안 구석에 있어봐야 걸치적거린다 외마디만을 내놓을 것이고 눈엣가시나 다름없었다. 본 부인의 자식이라는 위치가 그러했다.

 

 "때 아닌 반항도 좋은 법이지."

 

 열오른 뺨에 닿는 식은 손길은 기분 좋은 것이였다. 자연스레 이끌려 자각하기도 전에 수치라는 것을 죄다 잊고 본능에 울었다. 간간이 낮게 들려오는 이름에 속세를 잠시 놓았다. 붉게 수놓자 나비는 날개를 가졌다. 뜨겁게도 몸을 갈랐고 거부할 이유는 없었다. 모리의 말 그대로 였다. 때 아닌 반항에 불과했다.

 

 살아가게, 유키치.

 

 새벽녘 느릿하게 눈을 감았다 뜨기를 반복하며 후쿠자와는 가시지 않은 전율을 가만히 받아들였다. 구실이 어찌되어도 좋았다. 괴리감보단 오히려 안정감이 들었다. 이제껏 붕 떠있기만 했었다 느꼈던 불완전한 감각이 사라졌다. 인정치 않고 싶었던 부분이였다. 모든 걸 멀찍이서 바라보는 아버지. 자식더러 죽음을 선사하며 울부짖던 어머니와 제가 가지지 못한 모든 것을 가진 누이. 모두가 증오의 대상에 불과했다. 일말의 배덕감조차 들지 않았다. 온 집안 구석이 그랬다. 한두 푼의 푼돈에 사람이 죽어나가기 일쑤였고 윗 누이는 일찌감치 그런 정세를 떠난 것이였다. 의미를 알 수 없는 말들이 다 그런 것이였다. 어서 예를 빠져나가라며, 단련을 소홀치 말라며. 날 선 칼날 위를 걷고 있음에 깨닫지 못한게 한스러울 뿐이였다.

 

 "좀 더 자두는 편이 좋지 않은가."

 

 "본가로 돌아가야한다."

 

힘없이 어깨를 잡아당겨져 도로 눕자 어지러운 머리칼을 쓸어주었다.

 

 "전장으로 돌아가는건가. 누이를 위해?"

 

 "내 확인해야할게 있네."

 

 "그렇다면 가야겠군. 한 몫 거들어 주겠네."

 

 사양마시게. 이번만큼은 않겠다. 후쿠자와는 윗 누이가 이르게 사람을 시켜 보내온 편지를 구겼다. 돌아가지 말라는 당부였다.

 

-

 

 대문을 들어서자 이미 비린내가 섞여들어있었다. 저도 모르게 소매를 들어 가리며 제법 조심스레 안으로 들어섰다. 몇 걸음 가지 않아 사체들이 곳곳에 널려있었다. 난도질 되어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것들이 대부분이였다. 참극이나 다름없었다. 깨진 기왓장에 미닫이는 깔끔히도 반이 잘려나가버렸고 다다미마다 붉게 물들어 있었다. 안채를 다 돌았지만 산 사람의 흔적은 남아있지 않았다. 급히 비극을 피한 듯이 여기저기 널부러진 병상의 것에 후쿠자와는 미련없이 별채로 향했다.

 

 "도, 도련님..!"

 

 "-무사했느냐."

 

 "다행히죠. 주인 어른께서는 동관으로, 가셨습니다. 그리고 이거."

 

 별채의 시중인 그녀는 끌어안다시피 하고 있던 검을 꺼들내며 후쿠자와에게 건냈다. 칼집에 유혈이 짙게 묻어났다.

 

 "별채가 타버렸습니다. 그래서, 이것 만이라도.."

 

 "더 말하지 말거라."

 

 "도련님. 아씨가, 아씨가- 위험합니다. 가까이 가지 마세요."

 

 질척이며 살결로 옮겨지는 유혈에도 후쿠자와는 아무 말이 없었다. 예는 위험하다. 늙은 시종은 도련님의 손을 깊게 잡고 고개를 주억였다. 울고 있었다. 조심하셔야 합니다.

 

 "누이가 동경이라 했었던가."

 

 "동경이지. 저렇게 날뛸 수 있는 재능이란건 실로 무서운 법이야."

 

 아직도 목으로 모든게 빠져나가던 한심하기 짝이 없던 모습이 잊혀지질 않네. 좀 더 마무리 지었다면 좋았을텐데. 언제나와 같은 얼굴이였다. 모리 오가이는 그런 사람이였다. 매캐한 연기와 함께 솟아오르는 별채의 불길에 마주한 모습이 형편없어 보였다.

 

 "언제부터 알고 있었나."

 

 "어렴풋이 처음부터랄까."

 

 "-아."

 

 "미워하지말게. 말했더라도 좋을 것도 없었잖나." 

 

 별채의 마당으로 들어서자 후회의 연속이였다. 짓밟힌 흔적만이 가득한 못 앞에 제가 선물이라며 내밀었던 붉은 비단의 유카타를 입고 곱게 머리를 묶어올려 머리장식까지 매단 누이가 있었다. 평소에 불평하던것 처럼 답답하다며 맨발인 채에 게다를 신고 있었다. 막 발을 디뎠을 뿐인데 그녀는 천천히 뒤를 돌아보았다.

 

 "오라버니들. 잘 다녀오셨어요."

 

 "덕분에 랄까."

 

 "온다고 기별이라도 하셨으면 마중 나갔을텐데 섭하네요."

 

 "급하게 온거라 말이지."

 

"좀 전부터 유키치 오라버니는 왜 아무 말씀도 안하시나요. 어디 편찮기라도 하십니까?"

 

 "조-금. 잠을 못잔 모양이더군."

 

 "그럼 안되죠. 보시다시피 별채가 간밤에 타버리는 바람에-."

 

 "카나타. 어머니는 어디 계시냐."

 

 "어머니라 하시면, 하루 종일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서 누워있던 안채의 여자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 여자라면 죽었습니다."

 

 반 쯤 돌아선 그녀의 시선을 식어있었다. 온전히 돌아서자 그늘진 아래가 유카타의 색과 빼닮아있었다. 앞으로 내딛는 걸음을 모리가 막았다.

 

 "광기다."

 

 "오라버니는 잘도 그런 사람더러 '어머니' 라고 부르시네요. 불결하기 짝이 없는걸."

 

 "-언행이 나빠졌구나."

 

 "그건 돼지들이겠죠. 잠깐의 권력에 눈 돌아간 꼴들 하고는. 우습네요. 오라버니- 알고는 계셨나요. 오라버니가 그리도 극진히 모셔온 것들은 정작 당신을 죽일 생각 밖에 하지 않다는 사실을요. 알고 있으시냔 말입니다!!"

 

 "그게- 어머니를 살해한 이유냐."

 

 "네. 오라버니를 멸시하던 것들은 마땅히 죽어야합니다."

 

 후쿠자와는 저를 가로막던 팔을 밀어냈다. 다급하게 붙잡아 오는 손길에 살며시 입가를 끌어올려 보이며 모리의 가슴팍에 손을 얹었다. 괜찮네. 심각해보이는 상황과는 무엇하나 어울릴리가 만무했지만 수려하다고 떠올렸다. 큰 동요를 보이지 않는 걸음으로 당장 누이의 앞에 나선 그는 보란듯 검을 떨구었다.

 

 "유키치!"

 

 "뭐하는건가요, 오라버니."

 

 "알다시피 내게는 이능력이 없다."

 

 "알고 있습니다."

 

 "다룰 줄 아는 것도 검 하나 뿐이다."

 

 "알고 있다 하였습니다."

 

 "한 걸음도 움직이지 않겠다."

 

 카나타는 오른 손목을 반대손으로 그러쥐고 그런 그녀의 오라버니를 바라보았다. 두 팔을 벌린게 전장에선 생을 마감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날 죽여라."

 

 "오라버니. 제가 오라버니를 멸시하던 것들을 모두 없애버렸습니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그 옆에서 푼돈이라도 더 받아먹으려는 더러운 것들까지도요! 한낱의 아랫것들이 감히 무어라 하는 것도- 다, 전부 다! 죄다 죽였다고요!!"

 

 "그러니 나 역시 죽여라."

 

 "어째서, 어째서..오라버닌 절 사랑하지 않으십니까."

 

 "그게 너에게 해가 되었다면 내가 나서야 할테지."

 

 "제가 어찌 오라버니를 죽일 수 있을거라 생각하신단 말입니까, 감히 제가!"

 

 "네가 하지 못한다면-"

 

 후쿠자와는 품 안의 은장도를 집어들어 목의 언저리에 가져다대는 순간- 멈췄다. 헛웃음이 났다. 붙잡힌 팔이 그대로 붙들려 찢겨나갈 것만 같았다. 그대로 뼈가 뭉개질 것만 같았다. 거대하고 흉측스런 모습을 하얀 가면으로 가린 오니였다. 가면의 구멍 사이로 파아란 도깨비 불 같은 눈이 일렁였다. 잡아먹을 셈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오라버니는 절 사랑하시잖아요!"

 

 "어디까지나- 가족의 유대다."

 

 "그 유대란게 얼마나 대단하길래 부모가 자식을 죽이려든단 말이,"

 

 "적당히 해두는 어떨까- 카나타 양."

 

 군더더기 따위 없었다. 살기도 없이 그녀가 후쿠자와에게 온 정신을 쏟고 있을 때 손 안에 들어오는 메스로 뒷목을 슬며시 그었다. 긴 직선에 핏방울이 맺히다 등 아래로 굴러 떨어졌다. 얕은 상처였지만 후쿠자와는 주박에서 풀려날 수 있었고 그녀는 기묘한 미소를 보이는 모리를 비웃었다.

 

 "그깟 메스로 뭘 할 수 있단 말이예요."

 

 "적어도 유키치를 구해줄 수 있지."

 

 "당신은 아무것도 몰라요."

 

 "맞아. 난 아무것도 몰라. 그런데 네 년이 죽어야한다는 사실은 잘- 알겠어."

 

 후쿠자와가 엇나간 듯한 팔을 움켜쥐며 검을 도로 쥘 무렵 그녀는 볼품없이 쓰러져버렸다. 찰나의 순간이였다. 눈 앞이 흐릿해졌다. 시선의 끝엔 모리가 있었다.

 

 "유키치, 마무리는 자네가 하는게 좋겠네."

 

 "무슨-"

 

 "아끼는 누이잖아."

 

 어서. 칼집을 집어던지며 날 선 검을 손에 쥐여주며 말했다. 무릎을 굽히고 맞춘 시선이 그리 무서운 줄 몰랐다. 그는- 웃고 있었다. 후쿠자와의 힘없이 검을 쥔 손을 모리는 대련마냥 자세를 고쳐주며 카나타의 명치 언저리에 놓아주었다. 손이 떨렸다. 간단해. 그냥-

 

 "이렇게."

 

 직접 살갗이 닿은 것도 아니였다. 그저 얄팍한 금속을 타고 올라오는 살인의 감각은 유쾌하지 못했다. 뼈도 없는 부근이였는지 부드럽게 날이 들어갔다. 연회 준비로 바쁜 부엌에서도 봐왔던 광경이 제 손에 이루어졌다. 실없이 웃던 모리는 여전히 떨리는 후쿠자와의 손을 놓아주었다. 유감스럽게도 다정하게 굴었다. 어깨를 감싸고 다독이며 말했다. 울지마. 그제야 깨달은 자신이 울고 있다는 사실에 거짓말처럼 피로 물든 손으로 눈가를 닦아내자 모리는 하얀 손수건을 꺼내 자국까지 지워주었다. 

 

 후쿠자와는 정신을 잃었다.

 

-

 

 "유키치."

 

 "-누님."

 

 후쿠자와가 제정신이 든건 언젠지 조차 확실하지 않았다. 그의 검을 챙겨주었던 시종이 윗 누이에게 서신을 보내었고 가까운만큼 바삐 달려와준 것이였다. 누이의 말로는 그는 꼬박 사흘내리 깨어나지 않았고 그 사이 별채는 잿더미가 되어버린지 오래였으며 카나타는 이미 사후경직으로 몸이 굳어있었다. 집안 곳곳에 숨어있던 시종 몇몇과 그 날 본가를 비운 사람들만이 난을 피했다.

 

 "쓰러져 있는 널 발견해서 급히 데려왔으니 망정이지 아니였으면 별채와 같이 탈 뻔 했구나."

 

 "다른 사람은 못보셨습니까."

 

 "사람이라고 한다면, 너와 카나타 뿐이였다."

 

 "그렇습니까."

 

 "팔과 어깨의 이음새가 어긋나 맞추었다고 들었고, 불편한게냐."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어머니를 봐주시던 의원분도 난에 휘말리셨다 하였는데 그 아들이 혹여나 하여 주소를 남기고 갔으니 불편하다면 예로 불러주겠다."

 

 "살아있습니까, 그 아들."

 

 "아버지 심부름으로 내려갔다 화를 면했다더라. 헌데-."

 

 "무슨 일이라도 있으신겁니까."

 

 "의원분의 사체도 타버렸단 말이지. 별채의 불씨가 안채까지 옮겨 조금 탔다만 목에 의도적으로 그어놓은게 보여서 말이다."

 

 누이는 검지의 손톱으로 목에 긴 수평선을 그어보이며 의심쩍은 듯 말을 이어나갔다. 후쿠자와는 마른침을 삼켰다. 녀석의 소행이 틀림없었다.

 

 "골 아픈 이야기지. 더불어 네 혼사도 꼬여버린 모양이고- 장례에, 남은 어른들과 당주 문제도 다뤄야하니 벌써부터 지끈거리는구나."

 

 "누님. 혼사라면 그만두겠습니다."

 

 "난 찬성한다만 영감들과는 알아서 하거라."

 

 "예."

 

 "차피 그 쪽도 이런 화가 난 집안의 아들에게 귀히 키운 딸내미를 내어줄만큼 배짱이 있지도 아닐할 터이니."

 

 "누님이 하십시오, 당주."

 

 "유키치, 네 어릴 적부터 욕심이 없단건 알고 있지만 당주를 내어줄만큼 녹록한 사네는 아닐텐데 말이다."

 

 "이 집안에서 벗어나고 싶습니다."

 

 "진심인게로구나."

 

 누이의 붉은 하오리가 눈에 거슬렸다. 아직도 남은 감촉에 몰려오는 자괴감이 컸다. 사실은 두려웠다. 사람을, 가족을, 누이를 제 손으로 죽여버렸다는 배덕감이 아닌 녀석에게 흔들렸다는 사실이 무엇보다 목을 죄어왔다. 해방이 아닌 또 다른 감금에 다름없었다. 간사하기 짝이 없었다.

 

 "윗 선에서 이 일은 타협 볼 요량인 듯 하니 그냥 가거라."

 

 "누님은 살고 싶었던 적이 있으십니까."

 

 살풋 웃었다. 없을리가 없지 않느냐. 당연한 소리였다.

 

 누이의 말대로 별다른 조사를 이루어지지 않았다. 분명 뒷돈이 오고간 흔적이 틀림없었다. 그는 아무래도 좋았다. 이능 특무과에서 다녀간 사람은 누이와 시종들에게서 면담을 가진 후 후쿠자와 카나타의 이능력 폭주로 사건을 마무리 지었다. 한 마디도 입을 떼지말라는 누이의 엄한 지시에 따라 -애초에 특무과 사람을 만나지 못하게 하였다.- 안채에 어머니 마냥 누워만 있었다. 안이한 편안함은 도리어 사람을 죽게끔 하고 싶게했다. 결국 예정보다 바삐 짐을 꾸려 본가를 떠나기로 했다. 다 죽어가는 패잔병 꼴을 하고 있으니 얼른 나가버리라는 한 소리를 겻들어 늦여름, 조금은 쌀쌀해진 밤 후쿠자와는 떠났다.

 

 "유키치 네 놈은 사람 위에 설 재량이 되지 못한다."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어디가서 그 재량이나 양껏 뽐내거라."

 

 매몰차기 그지없는 누이였다. 자상하거나 상냥한 말투도 아니였을 뿐더러 제 할말만을 마치자 홱 돌아서고 마는 것이였다. 다만 방황하던 그 한 마디가 목적지를 정해주었다. 아니, 사실 처음부터 그럴 요량이였을지도 모른다. 그는 이미 한참 멀어진 누이를 향해 깊게 허리를 숙여 인사를 건냈다. 그럼.

 

 지체없이 향했다. 이유가 어찌되었든 큰 문젯거리가 되지 않았다. 너스레 할 짓은 아니였지만 회피한다면 팔다리를 잘라내어 붙잡고라도 물어보아야할 것이 있었다.

 

시즈오카 현의 끝자락, 도시 외곽의 벽돌 공장에서 찍어낸 듯한 서양식 건물들이 나란히 붙어있었다. 두어 차례 후쿠자와는 주소를 확인하고 현관문의 옆 초인종을 울렸다. 얼마안되어 문이 열리더니 그립다못해 간사하기 뻔뻔한 얼굴이 드러났다.

 

 "드문 손님이로군."

 

 얼굴 안색을 살피더니 모리는 문을 열어 후쿠자와를 맞이했다. 들어오게나. 망설임없이 들어선 집 안은 다름아닌 품 안이였다.

 

 "궁색한 장난은 그만둬라."

 

 "보고싶었다는 애정표현이라고 정정해주겠나."

 

 평온하다못해 지루해보이기 짝이 없는 얼굴이 일그러지자 그제서야 놓아주며 더 이상의 그럴 의사가 없다는 것을 보여주며 두 손을 들어보였다. 차라도 내오겠다며 안쪽으로 들어선 모리는 후쿠자와의 등을 떠밀어 2층으로 향하는 층계로 몰았다. 그는 위를 바라보다 벽면에 기대 지난 후회를 되새겼다. 범을 잡으려거든 범의 굴로 가라하였건만 이건 굴이 아니라 아가미 속에 제 발로 걸어들어온 모양이였다. 어딘가 미심쩍인 감정이 일렁였다. 

 

 "올라가지 않고 뭐하나."

 

 고개를 들자 유리잔 가득 채워진 물이 보였다. 눈치 챈 모리는 키득거리며 눈 앞에 컵을 흔들어보였다. 보기좋게 불이 들어오지 않는 모양인지라. 여전한 사네였다. 올라가세. 한 걸음을 내딛자 모리는 만족스레 입꼬리를 말아올리며 현관문을 걸어잠그곤 후쿠자와의 뒤를 따랐다. 불이 켜지지 않아 어두운 복도임에 모리가 올라오기를 기다리자 자연스레 허리를 감싸고 안쪽으로 데려갔다. 왼쪽 방으로 후쿠자와를 밀어넣더니 협탁 위의 스탠드 하나 키는게 고작이였다. 그런 그의 동선을 따라 후쿠자와의 시선이 따라갔다. 모리는 후쿠자와에게 한 잔의 물을 권했다.

 

 "물어볼게 있다."

 

 "이 까지 찾아올 정도면 필시 그 날의 일이겠군."

 

 "그렇다."

 

 "우선 이거 마시고, 진정하고 질문은 그 다음인걸로 하자고."

 

 연유만만한게 질색이였다. 그에게서 빼앗아 든 물따위 한 입에 털어넣고 협탁에 컵을 내려놓았다. 모리는 그런 그를 침대 위로 쓰러지는 양 앉아 지켜보았다. 그리곤 제 옆을 손으로 두어번 내리치더니 앉으라 했다.

 

 "그 질문이란건 많은 편인가."

 

 "그럴지도 모른다."

 

 "그럼, 뭐."

 

 "그 날 왜 사라진건가."

 

 "내가 그 자리에 있어봐야 좋을 것도 없고 자네의 안전을 위해 누이되는 사람에게 도움도 청했으니 된 일 아닌가."

 

 "아버지는, 양 아버지는 또 다시 죽인거냐."

 

 "아버지라, 답할 가치가 없군."

 

 "자네가 죽인거로군, 어째선가."

 

 "내가 죽였다는 추론은 좋다만 확증이 있는건 아닐텐데. 게다가 난 더 이상 자네의 질문에 답해줄 마음이 없네."

 

 "...무얼 바라느냐."

 

 "이해가 빨라서 좋지. 자네는 나의 답을 원하니 나도 자네에게서 내가 원하는 것을 얻어가야 수지가 맞지 않은가."

 

 이런 류의 이해관계가 썩 유쾌치 못했지만 합리적이라는 것은 인정하는 사실이였다. 후쿠자와는 가만히 고개를 주억였다. 모리는 골똘히 생각하는 양 고심하는 척을 선보였다. 마주한 후쿠자와를 흘겨보더니 이내 만족스러운 미소를 내걸었다. 이게 좋겠네. 깨달은 틈도 없이 잡아당겨져 후쿠자와를 농락했다. 깊게도 아닌 그저 잠깐 타액을 섞곤 허리께를 지분거리며 경박한 소리를 내며 떨어진 입술로 말했다.

 

 "하나로 받도록 하지."

 

 실로 기분 나쁜 사네였다. 태연한 얼굴에 짜증이 치밀러올랐다.

 

 "의원의 목에 네 놈의 장난질과 같은 선이 있었다. 안채에 난 화재에 일어난 화상에 가려진 절상이였지."

 

 "그거야 당연하지. 누이 때 봤었으니 잘 알테고."

 

 "왜 죽인것이냐."

 

 허리선을 타고 내리는 감촉이 유카타 너머로 생생했다. 다른 손은 유카타 옷깃 사이를 벌려 안에 목덜미를 약하게 물었다. 저절로 뒤로 젖혀지는 고개에 모리는 뒷목을 받치고 재차 물어 잇자국을 남겼다.

 

 "이제 쓸모없는 존재니 제 역할을 다한 셈이지. 더는 필요없어 죽였네."

 

 상체가 거의 다 보이도록 벌려놓은게 그닥 소용없어 보였다. 안으로 침범한 손길이 어깻죽지부터 갈비뼈를 지나 허리까지 쓸어내리자 후쿠자와는 미약하게 앓아야 했다. 쇄골 부근을 물었다 훑기를 반복하더니 후쿠자와의 위로 올라앉더니 이마를 맞대었다.

 

 "자네에겐 마지막 질문이 남았지 않은가."

 

 "-구실이 필요했던게지."

 

 소리 죽여 웃으며 눈을 마주했다.

 

 "어차피 이리 될 줄 알고 있었을텐데, 유키치. 게다가 자네가 듣고 싶은건 결국 마지막 질문이 아닌가."

 

 "이래서 네 놈이 싫다."

 

 "이런 격한 감정 표현은 처음이군. 나야 어느 편이든 환영이지만 맨정신에 괜찮겠나."

 

 "각오했던 일이다."

 

 "대범해졌군."

 

 후쿠자와는 떠올렸다. 그 눈이 죽은 누이의 오니와 닮아있다고.

 

-

 

 만연의 본능을 온 몸으로 받아들이고 깨는 이성이란 '자살충동' 을 일으키고 마는 것이였다. 수치를 잊은지는 오래라 했건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닌 모양이였다. 어리석은 질문 하나에 제 몸을 팔았다는, 우매한 자신 덕택에 다른 사람도 아닌 모리 오가이와 몸을 섞었다는 배덕감이 아닌 안겼을 때 울어버렸다는 그닥 의미가 부족한 자존심이였다. 잘도 이런 일을 벌여놓고는 세상만사가 편해보이는 모리였다. 모리는 후쿠자와가 좋다고 했다. 은근히 제 애정을 과시해온 것은 명백한 사실이나 어젯밤 처럼 꺼리지 않고 내놓은 일은 또 둘만의 이야기였다. 처음이 취기에 달해 여차저차 엉망이였다면 다음은 욕심과 탐욕, 쾌락의 어디 쯤에 있었다. 본능이란게 그리 무서운 것이였다. 후쿠자와가 인정하는 바였다. 허리가 아팠다. 술의 힘을 빌린 것도 아닌 터무니 없는 제 배짱이였다. 어쩌면 한 잔 걸치는 편이 좋았을지도 모르는 일이였다. 추태를 조금이나마 잊을 수단이 되어줄지도 몰랐지만 모리를 상대로는 좋은 전법은 아닌 듯 했다. 알코올이 들어갔던 아니던 간에 연달아 몇 번이고 저를 안았을거라는 점을 바뀌지 않을 기정사실에 입각해있었다. 모리는 처음부터 그럴 요량이였겠지만 일이 이리로 흘러간게 제 책임이 없다기엔 저질러 놓은게 너무 컸다. 사람 감정이란게 그랬다. 일방적이다만 제가 좋다는 상대와 낯 뜨거운 행위를 가지면서 낮게 이름을 불리며 연모한다 라는 말을 듣는다는게 그런건지도 몰랐다.

 

 "좀 더 자두는 편이 좋지 않은가."

 

 어디서 들어본 대사였다. 후쿠자와는 기꺼이 도로 누웠다.

 

 "답을 아직 듣지 못했다."

 

 "두 가지라고 말해두겠네. 자네는 누이의 그림자에 살고 있는 꼴이였지. 헌신적인 사랑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난 아니라고 보네. 주박이나 다름없었다고. 그 하나에 매달려 네 자신은 돌아보지도 않은 채로- 이미 죽어있었네."

 

 "이미 죽어있었다, 인가."

 

 "살고 싶다고 나에게 말했던 적이 있었지. 자네가 살기 위해 누이의 죽음은 하나의 원인이자 계기이고 내 바램이였지."

 

 "..다른 하나 역시 대가를 치뤄야하는가."

 

 "그건 잠시 미뤄두기로 하지. 자네 시집갔다는 누님은 알고 계셨던 모양이다만- 자네는 이능력자네."

 

 후쿠자와는 불현듯 집을 떠나오기 전 누이가 건냈던 말이 떠올랐다. 사람 위에 설 재량이 없다.

 

 "자네 검을 품고 있던 시종과 다시 만났을 적에 자네 걱정을 하더군. 큰 아씨가 우려하던 일이 일어났다면서 말이야. 자네가 작은 누이의 폭주를 막아주고 있었는데 그녀의 증오가 기폭제가 되면서 일이 터진거지."

 

 "난 별달리 능력이-"

 

 "자네 능력은 타인의 능력을 제어해주는 역할인 셈이지."

 

 역시 후쿠자와 가(家)의 장남이로군. 모리는 중얼거렸다. 누님은 모든 것을 알고 계셨으면서 무엇 하나 알려주지 않으셨다. 되내이자 서글픈 말이였다. 하지만 납득이 갔다.

 

 "그럼 대가를 받아가볼까."

 

 단념한 후쿠자와의 표정을 읽은 모리는 호탕하게 웃었다. 저와 같이 가줬으면 하는 바램이였지만 그것 만큼은 입 밖에 꺼내지 않았다. 무엇보다 저래보여도 자유분방한게 후쿠자와 스러웠고 같은 길을 걷기엔 여러모로 아까웠다.

 

 "말벗이나 되어주게."

 

 "골치아픈 대가로군."

 

 알겠다. 절대 모리의 특성상 단순한 '말벗'이 아니리란 것은 후쿠자와가 제일 잘 알고 있었다. 누군가 말했다. 유종의 미보다 눈 앞의 적을. 당장의 적도, 유종의 미도 죄다 헤쳐버릴 것만 같았다. 

 

 "자넨 이제 어쩔 셈인가. 여기 왔단 소린 당주도 포기했다는 것일텐데."

 

 "당주따위 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거야 그렇군."

 

 "육지는 진저리나니 바다가 좋겠네."

 

 "호오- 바다인가."

 

 "요코하마."

 

 "누님 때문인가."

 

 "마냥 떠안겨버렸으니."

 

 "고작 그 까지 가서 뭘 한단 말인가."

 

 "카나타 같은 아이들이 없었으면 한다."

 

 "자네도 상냥한 사람이야, 정말."

 

-

 

 "마침 제 시간- 이라하긴 좀 늦었군."

 

 "네 놈의 새까만 호의따위는 받을 생각없다."

 

 후쿠자와는 모리가 의자를 권하기도 전 하오리를 흩날리며 걸어와 맞은 편에 앉았다. 그 시절과는 다르게 제법 당돌해져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자네도 참 고지식한 사람일세."

 

 "고지식하니 돌아가보도록 하겠다."

 

 "사람이 농담을 농담으로 받질 못하니."

 

 포트 마피아의 보스가 대립관계에 서 있는 무장 탐정사의 사장과 변변치도 않은 대화를 하는 사실을 아는 것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포트 마피아에서도 간부 두어 명이 관여하는 일이였고 아래는 입단속 시키기엔 충분했다. 탐정사는 관심이 없다고 해도 무방했지만 의심 사는 것은 사절하고 싶었다. 모리는 몇 번 비워냈을지 모를 찬 잔을 내려놓으며 한탄했다.

 

 "얌전히 타고 왔더라면 좋았을 것을. 자네는 오는데만 해도 몇 시간인가."

 

 "불만이라면 네 놈의 행적부터 의심해보는걸 권하지."

 

 "불만사항이긴해도 상관은 없네. 대가는 톡톡히 받아내고 있으니."

 

 후쿠자와의 표현을 빌리자면 간사한 표정을 지어보이는 모리를 흘깃 보더니 찻 잎이 선 잔을 한참이고 내려다보았다. 좋은 일이라-. 외투를 벗는 모리에 한 마디를 거들었다.

 

 "여기서는 사양이다."

 

 "제법 운치있고 좋지 않은가."

 

 "전처럼 네 수하가 도중에 쳐들어오는건 사양이다."

 

 "아아- 아직 마음에 담아두고 있었단 말인가. 잘 해결했다고 말했을 터인데."

 

 "해결이라 해봐야- 근본적인 문제에 관심은 없는 모양이군."

 

 "근본적이라 하면, 그건 문제가 아니지."

 

 "네 놈과 말로 하는건 지쳤다."

 

 후쿠자와는 건들이지도 않은 차를 내려보다 모리를 따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말벗이니 뭐니 결국은 이리 될 줄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모리는 그의 넓은 상층 방의 불을 껐다. 정정하자면 창을 막았다. 가장 오른 편의 구석에 나무 무늬가 살아있는 문을 열었다. 후쿠자와는 방으로 내딛으며 하오리를 끌어내렸다.

 

 "실로 골치 아픈 대가로군."

 

 "예나 지금이나 표현 못하는건 여전하군, 유키치."

 

문이 닫히고 안에서 걸어잠그는 소리가 났다.

 

-

 

 

 

이게 뭐라고, 이게 뭐라고!!! 꼬박 3일에 걸쳐서 썼..

 

나레기 일복 터짐각인데, 얘네가 너무 오래 걸려서 신쌍흑 아가들 언제 쓰닠ㅋㅋㅋ

 

얘네 소개해준 장본인에게 책임지라고 하고싶지만

 

왜!!!!!!!!111 1일 1연성하라고 이 자식 크흑-

 

이래저래 힘들었으면 힘들었고 재밌었으며 재밌는 작업이였달까

 

나름 즐겼으니 그걸로 만족하련다..

 

과거 조작이 굉장하지만 이게 한계였다..나렉))

 

여튼 끝났다 워후!!!!!! (ㅍㅁㅍ)9 욧샤-

 

눈매 더러워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쿠니키타 씨, 다자이 씨 못보셨나요?"

 

 "다자이 라면 사장님-"

 

 "다자이 씨 오늘 출근안하셨어요!"

 

 켄지는 해맑게 웃으며 언제나 처럼 답했다. 그리곤 무슨 일이라도 있냐는 듯 눈을 끔뻑였다, 물론 해맑게.

 

 "뭐- 다자이 그 자식이 출근을 안했다고?!"

 

 "어라어라 아침부터 무슨 소란일까나- 쿠니키타 군."

 

 "다자이가,"

 

 "방금 귓청 떨어지게 들어버려서 알고 있으니까 반복할 생각하지마. 시끄러운 남자는 치료 중 이외에는 질색이니까."

 

 장갑을 끼지 않은 손을 허공에 내저으며 요사노는 질렸다는 얼굴을 내보였다. 남은 한 짝의 장갑을 끌어올리는 동안 쿠니키타는 못마땅하다는 내색을 비췄지만 소용은 없었다.

 

 "오호라 이 상황은-"

 

 "란포 씨!"

 

 상황을 타개할 만한 인물의 등장에 아츠시는 책상을 치고 자리에서 박차고 일어섰다. 란포는 안주머니로 부터 안경을 꺼내들었다. 초추리를! 기대에 가득 찬 눈으로 안경의 이음새에 손을 얹은 채 고개를 주억이며 그렇군 이라며 중얼거리는 란포의 행동에 아츠시 뿐만 아니라 모두가 입을 다물고 주목했다.

 

 "쿠니키타 군이 요사노 씨에게 질책을 당하고 있었군. 그것도 쓸데없는 행동을 반복했기 때문이지."

 

 "역시 란포. 명탐정이시네."

 

 일제히 같은 행동으로 모아졌다 모두 다른 행동으로 퍼져버렸다. 아츠시는 김 빠졌다는 양 의자로 도로 주저앉아버렸고 쿠니키타는 반문하고 싶지만 그럴만한 여력이 없어보였다. 켄지는 처음부터 그다지 신경쓰지 않았다는 눈치지만 사실 그 편이 아니라 란포가 말하는 것을 예상하고 있었다는 얼굴이였으며 유일하게 요사노는 두 손을 맞잡으며 웃어주었다. 

 

 "내 이능력- 초추리만 있으만 뭐든지 가능하단 말씀이지."

 

 "어째서 이렇게 돌아가냐는 말이다."

 

 "추가적으로 쿠니키타 군이 요사노 씨에게 혼나고 있었던 이유는-"

 

 "말하지마! 됐어! 이제 됐다고!"

 

 "어머, 쿠니키타 군. 예의가 없네. 지금 한창 명탐정님의 추리 해설 중인데."

 

 "그래, 가만히 앉아서 듣기나 해."

 

 "-그래라, 알아서들 해라."

 

 "다자이 씨가 출근을 하지 않았고, 물론 그 질문은 누구보다 저기 우리의 신입군! 아츠시의 발업이 시발점이겠지. 당연스레 사장님과 면담이라도 할거라고 예상한 쿠니키타 군에게 들려온 답변은 출근을 하지 않았다- 라는 예상 밖의 그런, 답변."

 

 또 한건을 멋지게 해결해냈다는 성취감에 가득 찬 몸짓으로 고고하게 안경을 벗어 도로 안주머니로 집어넣는 란포가 결착을 지었다.

 

 "맞았지?"

 

 "니 추리가 틀릴리가 없잖아."

 

 "그렇다는 말씀-!"

 

 제 자리로 구두굽 소리를 내며 쿠니키타를 지나친 란포는 망토 격의 외투를 펄럭이며 존재감을 과시했다. 아츠시는 그런 란포와 굳어버린 쿠니키타를 번갈아 보다 꽤나 조심스런 발걸음으로 란포에게 향했다.

 

 "저어- 그렇다면 다자이 씨, 왜 오늘 출근하지 않으신걸까요?"

 

 "그거야 나도 모르지."

 

 "에-! 하지만 란포 씨의 초추리는!"

 

 "내 초추리로 알지 못하는 것은 없어!!"

 

 "그렇다면 어째서-!"

 

 곤란하다는 표정에 가느다란 실눈이 모습을 드러냈다. 아츠시는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뭔가 건들여서는 안될 것을 건들여버린것만 같아 초조하게 식은땀으로 가득찬 주먹을 쥐었다 펴기를 반복해댈 뿐이였다. 란포는 주먹을 쥐고 책상을 내리쳤다.

 

 "당연히!"

 

 "당연히?!"

 

 "당질 OFF- 다.."

 

 기세 좋게 내리친 주먹을 감싸쥐고 방금까지만 하더라도 보이던 의기양양한 모습은 사라져버린 채였다. 책상에 뺨이 달라붙어라, 누군가 누르기라도 하는 마냥 늘어져 기운 빠진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더불어 뱃가죽이 울리는 소리까지 덤으로.

 

 "아."

 

 무언가 깨달아버리고 말았다는 기괴한 얼굴로 아츠시는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건들이면 안되는게 아니라 알아서는 안되는 것도 아니라 알고 싶지 않은 란포의 이면이였다. 그렇구나. 쉽게 납득이 가면서 진지함이 빠져나갔다.

 

 "자- 이거라도 먹어라."

 

 "오오 그것은!"

 

 "그래. 니 당분이니까 먹어둬."

 

 "내 돈 주고는 절대 사먹지 않는 초코바로군."

 

 어디서 기운 빠지는 소리가 났다. 더불어 쿠니키타의 안경이 반으로 갈라지는 소리도 났다.

 

 "어이. 란포- 너 말이야,"

 

 "하지만! 예외는 존재하는 법이지. 그-! 러니..받아두도록 하겠어..이번 뿐이니 우쭐해지지 말라고, 쿠니키타 군."

 

 아츠시의 입가가 무리하게 올라갔다. 아아- 확실히 이런 사람이지. 란포 씨는.

 정말 힘이라곤 없는 건지 비닐 포장지 하나 제대로 뜯지 못하고 자꾸 헛탕을 쳤다. 보다 못한 쿠니키타는 란포의 가냘픈 손에 들린 초코바를 빼앗아들었다.

 

 "역시 네 놈이란 녀석은."

 

 귀찮아하는 기색을 내비취면서도 제대로 벗겨 먹기 쉽게 포장지 부분을 접어 손에 쥐어주었다. 아츠시는 익숙하면서도 별 수 없다는 얼굴을 한 쿠니키타를 향해 두 눈을 끔뻑였다.

 

 "말하고 싶은게 있으면 말하란 말이다!"

 

 "아니- 그 화낼지도 모르지만, 쿠니키타 씨는 상냥하시네요."

 

 카운터. 그것도 아주 제대로 들어맞아버리고 말았다. 재밌다는 듯이 요사노는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아츠시와 '주변 녀석' 들을 관찰했다. 예상대로 쿠니키타는 이제 전투 불능. 얼어버린게 꼴 좋다고 말한만 했다. 분명 상대를 잘못 골랐다는게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이겠지. 요사노는 중얼거렸다.

 

 "뭐, 뭐라는거냐, 네 놈은..! 쓸데없는."

 

 "그러시면서도 주위 사람들 잘 챙겨주시잖아요. 저도 그렇고."

 

 "돼, 됐으니까 일이나 해."

 

 "네에."

 

 란포는 질린 얼굴을 해가며 질긴 모양인지 몇 번이고 재차 씹기만을 되풀이했다. 목구멍 너머로 -란포의 표현을 빌리자면- '싼 맛' 이 흘러들어가자 그나마 살겠다 라며 얼굴이 펴졌다. 그 사이 제 자리로 돌아간 아츠시는 오늘 자 신문을 훑어보다가 묘한 좌측의 부제를 두 번째로 깨달아야했다.

 

 "그러고 보니, 다자이 씨는 정말 어디가신 걸까요?"

 

 "어딘가 강에 쳐박혀 있겠지."

 

 "또 자살방법 실천 중일걸, 아마-."

 

 "단순히 일 하기 싫은게 아닐까요?"

 

 "귀찮아."

 

 윽-. 속으로 적당히 골라낸 무장 탐정사의 일원들의 해답은 애석하게도 부정하기 어려운 것들 뿐이였다. 틀렸다고 반박할 수가 없잖아. 게다가 자신보다 다자이를 오래 동료로 둔 동료들의 의견이니 신빙성도 있고. 아츠시는 머리를 헤집으며 넓게 책상의 반 이상을 차지하는 신문 위로 쓰러졌다. 아아- 정말 어디 가신거야.

 

 소 몰기 좋은 날이네요. 창가에 선 켄지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오늘 날씨가 정말- 좋아요."

 

-

 

 "아아- 분명 쿠니키타 군 화낼텐데에."

 

 뭐 어쩔 수 없지. 조금도 걱정이 없다는 얼굴을 하고는 제법 호탕하게 소리를 내질렀다. 그의 계산 범위 내의 행동에 불과했다. 주변에는 사람이라곤 저 하나 뿐이였으니 말이다. 글라스 안에서 구 형의 얼음이 벽면의 유리와 맞닿이며 화합을 맞췄다. 날씨 탓인지 기어코 택시를 타고 왔건만 하필 택시에서 해가 비치는 곳에 둔 탓인지 미묘하게 짙은 알코올 향내 사이를 비집고 머금은 한 모금의 끝맛은 물이였다. 이걸 어쩌면 좋담. 조금만 마시기로 오자마자 당당히 건낸 약속치고는 너무 얄팍하기 그지없는 노릇이였다. 입맛을 다시며 상대를 바라보았다. 웃었다.

 

 "오랜만이잖아. 이 정도는 봐줘."

 

 검은 비닐 봉투 속으로 밀어넣은 손 끝에 달랑이며 끌려올라온 것은 당연히 술병이였다. 다 안마실거니까 그런 눈으로 보지 말아줄래. 입을 삐죽이며 달그락 하고 병을 열었다. 특별히 내 월급으로 사온거니까 말이야- 이 정도는 마시게 해달라고. 툴툴 거리면서도 단숨에 미미하게 섞여나는 물을 들이켰다. 빈잔은 채워야하는 법이라고. 신나게 위에서 아래로 내리붓던 병을 급하게 기울였다. 거품이 여기저기 올라온게 딱 반 잔 즈음 될 법했다. 좋아, 이 정도로 타협하자. 손등 언저리 까지 감은 붕대에 물기라도 닿을새라 조심스레 검지를 내려 기포를 터뜨렸다.

 

 "있잖아, 나 얼마 전에 미인을 찾아버렸는데 나랑 같이 동반자살을 부탁했더니 차여버렸어."

 

 그것도 웃는 얼굴로. 울렁였다. 히죽이는 얼굴로 들이켰다. 도로 뱉었다. 잔기침으로 명치를 두어번 가볍게 치댔다. 자네도 이 쯤되면 익숙해지란 말이야. 아무 말 않은 채 삽시간에 얼굴이 굳어버렸다.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려다 보았다. 얼기설기 뒤섞인 앞머리에 눈이 따끔거렸다.

 

 비올거 같아. 

 

 눈 앞이 돌았다. 얼마 마셨다고 꽤나 빨리 오른 취기에 바람 빠지는 소리를 냈다. 있잖아, 나 여기서 술주정 부려봐도 되려나. 뭐, 안된다고? 어째서. 그 편이 더 재밌을게 뻔한데. 아아 알았으니까 잔소리는 그만. 술잔을 요란스레 내려놓으며 두 손으로 귓가를 감쌌다. 더는 안들을거니까 그런 줄 알아. 고개까지 홱 돌리며 온몸으로 반항을 해댔다. 그러다가도 살며시 눈을 떠 옆을 흘겨보자 순식간에 사그락 거리는 바람 소리와 함께 흩날려버리고 마는 꼴이였다. 알잖아, 자네한테 화 못내는건. 푸스스 웃었다. 동시에 두 다리를 끌어모아 안고 고개를 내리박았다. 알아. 이렇게도 잔인한 결말.

 

 "자네가 쓰고 싶었다는 결말은 이런거였어?"

 

 중얼거려봤자 닿기는 커녕 안에서 맴돌기만을 되풀이했다. 또 다시, 또.

 

 있잖아, 있잖아. 달그락 거리는 빌어먹을 화합이 귓가에 거슬렸다. 떨리는 손으로 그 따위 젖는게 두려운게 아니라며 글라스 안의 얼음 덩어리를 꺼내 집어던졌다. 분명 풀숲으로 떨어져버리고 말았으리라. 보기 좋게 산산조각이라도 났으면 기뻤을텐데. 작게 중얼거렸다. 작은 소란에도 여전했다. 내면에서 끓어오른게 화근이였다. 가끔 이렇게 주체 못하곤 날뛰어버리는게 편하다 해도 장소는 한정적일 수 밖에 없는 노릇이였다. 기인 취급을 넘어선 자살 매니아의 별난 놈 이상으로 대해지는데 선이라도 넘었다간 분노 조절 장애 라는 명예까지 끌어안아야 했다. 그 만큼은 절대 사절이였다. 매번 그렇게 삭히고 삼키고 넘기고 참고 억눌러봐야 결국 행선지는 정해져있었고 당연히 거부감 따윈 없었다. 슬프게도 그마저 예상행동 범위 내였다.

 애초부터 다자이 오사무 라는 남자가 그랬다. 딱히 이능력이 미래를 예측한다던가의 대단한 남자는 아니였지만 굉장한 남자였다. 사람이다. 순수하게 머리가 좋을 뿐일지도 몰랐다. 다만 까마득히 기억하는 옛 기억 속에서부터 머리 굴리는데는 일가견이 있다는 정도였다. 그런 말이 있다. 

 

 '적들에게 유감을 표해야하는 이유라면 그들이 다자이 오사무를 적으로 두었다는 점이다' 라는.

 

 계기가 어찌되었든 옛 '친우' 의 한 마디에 제 인생을 뒤집어버린 사람이였다. 애정을 내보여도 그조차 허투루 하는 짓에 불과했고 진심은 삼키는 사람이였다. 그 마저 몇 해전 제 손으로 흩어져버린 친우의 온기와 함께 묻어버린 사람이였다.

 

 "부끄럼 많은 인생을 살아왔습니다- 자네를 포함해서."

 

 오다사쿠.

 

 알싸하게 톡 퍼지는 알코올 맛에 다자이를 양껏 머금었다 삼키곤 혀를 내밀어보였다. 술맛도 다 떨어져버렸는데 책임지셔야겠어. 빈 잔 속은 물기로 젖어들어 벽면에 매달린 물방울이 아래로 흘러내려 모여 다시 한 모금을 만들어냈다. 화하게 올라오는 알딸딸한 기분에 피식 웃으며 아래는 술, 위는 물로 분리되어버린 오다사쿠의 잔에 부어주었다. 너나 더 마셔라. 고개가 절로 내리박혔다. 이유모를 따름이였지만 왠지 그의 앞에만 서면 낯 부끄럽기 짝이 없었다. 분명 그랬다.

 

 "오랜만에 죽기 싫어졌다. 진짜."

 

 그리 중얼거리는 다자이의 눈이 감겼다. 오다사쿠, 나-.

 

 "묘 앞에서 술주정이냐, 다자이."

 

 "-내 반쯤 또렷한 정신이 이 목소리는 츄야라고 말해주고 있지만 믿고싶지 않은걸."

 

 "썩 꺼져. 망할 다자이."

 

 "간부님께서 이런 누추한 곳까진 무슨 일이시래."

 

 "보스 명령. 그러니까 비키라고 썩을 놈아."

 

 "보스?"

 

 "그래. 기일이잖아. 네 놈때문에 챙기시는 모양인데. 조직에서 나가서 까지 일거리나 만들고 징한 놈이다. 넌."

 

 어깨가 미미하게 들썩였다. 츄야는 못마땅하단 얼굴로 미간을 구기며 억지로 집어든 것 마냥 보이는 꽃바달을 상체를 숙여 언저리를 내려놓았다.

 

 "뭐가 우습다는거야."

 

 "-츄야."

 

 "뭐."

 

 "부탁이 있어."

 

 "내가 들어줄거 같냐."

 

 "응. 그야 들을 수 밖에 없잖아."

 

 츄야는 팔짱을 끼고 흩어진 머리칼 사이로 보이지 않는 다자이의 얼굴을 응시했다. 유감스럽게도 이유가 어찌되어도 그가 하는 말이 틀렸던 적이 없다. 굴욕스럽지만 사실이였다. 쳇.

 

 "이거, 츄야의 능력으로 비가 오는 것 처럼 해줘."

 

 "술-반 물 반인데, 애초에 난 젖기 싫거든."

 

 "괜찮아, 나한테만 하면 되니까."

 

 오다사쿠 앞으로 내주었던 잔을 건내었다. 물론 시선은 여전히 오다사쿠에게로 향해 있었다. 떨떠름한 표정임에도 츄야는 잔을 건내받았다.

 

 "뭘 바라는거야."

 

 "비. 비가 내리면 돼."

 

 "공격이라도 해달라는건 아닐텐데."

 

 "지금 여기서 날 공격한다해도 츄야 성격에는 못버틸게 분명하잖아. 그야 정정당당하게 힘으로 꺾은게 아니니까 인정 안할거야."

 

 "망할 놈."

 

 "대신- 내가 츄야에게 빚지는 셈이지. 내가, 이 다자이 오사무가 츄야에게 부탁을 했다 라는 거지."

 

 그제서야 얼굴을 들어보이는 다자이와 영문을 모르겠다는 츄야의 시선이 맞닿았다. 싫어? 그 한 마디는 선악과와도 같았다. 뿌리쳐야 장래에 득될 것은 뻔한데 도무지 그럴 수가 없었다.

 

 "네 놈이 빚지는 꼴이라면 볼만하겠군."

 

 푸스스 웃어보이는 다자이에 츄야는 한숨을 쉬었다. 잔에 든 것을 손바닥에 붓자 흘러내리려던 찰나에 다자이의 위로 모여들었다. 그리곤 일순간의 소나기와 같이 하염없이 내렸다. 여우비같아. 중얼거렸다. 빌어먹으리만큼 좋은 날 알코올과 물을 기꺼이 온 몸으로 받아내는 다자이도 이해할 수 없었지만 제 귀중한 개인 시간을 깨 이 까지 왔건만 왜 이런 허무맹랑한 부탁을 들어주고 있는지도 알 길이 없었다. 그리고 몇 번이고 어깨아래까지 젖어들 때까지 비는 내렸다.

 

 "오다사쿠. 비, 그치지 않는 모양이야. 안그쳐면 좋겠다. 응, 안그치면 좋을텐데."

 

 그러고 보니 그 날도 비가 왔었던가.

 

기어코 마지막 한 방울이 뺨을 타고 흐르자 다자이는 일어섰다. 츄야는 젖은 손바닥을 허벅지면에 슥 밀어 닦아내며 고개를 떨군 다자이를 바라보았다. 각별했던 사이라는 것 쯤은 알고 있었다. 단순히 안다는 것과 눈으로 보는 것은 큰 차이였다. 이 조차도 알고 있었다. 조금은 우스웠다. 비틀거렸다. 시선은 천천히 가라앉았다.

 

 "역시 술주정이였냐."

 

 "츄야-."

 

 "야, 야!"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한 걸음 내딛어 츄야의 어깨 위로 얼굴을 묻었다. 차마 아래를 향하지 못한 빗방울이 검은 원단 위에 짙게 자리했다.

 

 "나- 한 번만 괜찮다고 해줘."

 

 질겁하며 다자이를 밀어내던 손이 멈칫했다. 힘없이 기댄 것이라곤 머리 하나였다. 그토록 증오했고 미워했고 시기했던 작은 머리통 하나. 말해줘, 얼른. 위화감이였다. 비가 그쳐버렸어. 츄야. 동시에 괴리감이기도 했다. 츄야는 어정쩡하게 손을 올려 머리칼이 덮힌 목덜미에 어루만졌다. 그보단 손 끝으로 희미하게 긁었다가 더 가까울 행위였다.

 

 "괜-찮아."

 

 "한 번만 더."

 

 "괜찮아."

 

  오다사쿠, 비 그쳐버리면 어쩌지. 그쳐버린 기분이야.

 

 "끄, 끝나으면 니네 탐정사로 얼른 꺼지라고!"

 

 "머리 아파- 소리 지르지 마."

 

 "이 자식이!"

 

 "데려다 줘어. 어차피 츄야는 차 끌고 왔잖아? 감사의 인사로 내가 운전하고 싶어도 한 잔 해버린 상태고 환자라고, 나."

 

 "니 놈이랑 난 적이다. 잊은건 아니겠지."

 

 "하지만 태워다주면 한 잔, 사줄게."

 

 "지갑 털릴 각오는 됐냐."

 

 "츄야는 어린이니까 그만큼 못먹어요오."

 

 "어딜봐서 어린애라는 거냐!"

 

 "키. 다른 말론 신장."

 

 "한 판 하자는 걸로 받아들여도 되겠네."

 

 "무리무리. 환자에 술 마신 사람 상대로 이능력이라 그거 참 무섭네. 세상이 말세로다-."

 

 "니 놈에게서만큼은 듣고싶지 않아!"

 

 "그거야 나도 마찬가지거든."

 

 "다자이, 네 놈의 그런 면이 죽을만큼 싫다."

 

 "어라라 그래? 난 츄야의 모든게 싫어."

 

 소란을 뒤로 다자이를 휘적휘적 잘도 걸었다. 츄야는 이를 갈며 그 뒤를 쫓았다. 물론 고래고래 소리를 내지르며 말이다. 아아 츄야 어린이 시끄러워요. 이런 곳에선 조용히 해야되는거에요. 포트 마피아의 교육대도 내가 없으니 돌아가질 않는구나. 다자이!!

 

 "아차차."

 

 다자이는 급히 돌아와 비닐봉지를 코트 주머니 속에 밀어넣고 술병 채로 두 빈 잔을 채우곤 꽃다발의 언저리에 내려놓았다.

 

 "오다사쿠. 이제와서 언제나 말하지만, 역시 좋아했어."

 

 포트 마피아의 현 보스인 모리 오가이가 물었던 적이 있었다. 오다 사쿠노스케를 구하러 가야하는 합리적인 이유가 있느냐고. 그 때 그리 답했다. 친구이기 때문이노라고. 잔인하지. 다시 답하라 하여도 다자이의 답변은 변할리가 없었다.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것과 애정은 건너편에나 존재하는 것들이였다. 아마 깊이 애정하기 때문이라 답하였더라면 독방 신세라도 졌을 터였다. 이제와 후회한단들 늦었다는 것도 소용없단 것도 다 부질없단 것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사람 앞날은 모른다는 말이 괜히 있는 꼴이 아니였다.

 

 단언컨데, 오다 사쿠노스케는 다자이 오사무를 향해 있었다. 

 

 안고가 귀뜸 해줬던 것도 있지만 그 정도를 눈치채지 못할 다자이도 아니였다. 모른척했을 뿐이다. 상냥함은 전장에서 약점이나 다름없다. 죽지 않아야 했다. 살아남는 자가 정의라 누가 말했던가.

 

 "안오면 두고 갈테다!!"

 

 "아아- 츄야는 어른이 못된다니까."

 

 창백한 묘석 위를 찬찬히 쓸다 귓가를 때리는 츄야의 목소리에 인상 좋게 고개를 내저으며 어쩔 수 없다는 듯 발걸음을 돌렸다.

 

 "또 올게, 오다사쿠."

 

 역시 비, 그쳐버렸네.

 

-

 

 "네 놈은 어딜 가면 간다고 연락을 하란 말이다! 다들 걱정하잖아!"

 

 "그러는 쿠니키타 군은 걱정하지 않은거야?"

 

 "했, 안했, 해-"

 

 "어느 쪽인거야."

 

 "그래서 결국 어디 가셨던거예요, 다자이 씨."

 

 "으음- 뭐랄까."

 

 다자이는 책상 위에 구두 채 발을 올리고 골똘히 고민하더니 두통이 말끔해졌다는 표정을 지으며 아츠시를 향해 웃어보였다. 알겠다, 알겠어.

 

 "그래서요?"

 

 "동창회, 랄까나-"

 

 "다자이 씨가 동창회?"

 

 "응. 그리운 사람을 만나고 왔어."

 

 믿기지 않는다는 아츠시의 뺨을 콕 찌르고 빙그르 돌며 의자에서 벗어난 다자이는 당당히 문을 열고 나가려다 쿠니키타의 손에 잡히고 말았다.

 

 "이제 일 좀 하지."

 

 "그러려는 참인걸, 쿠니키타 군-."

 

 "어딜봐서 그게 일하려는 태도냔 말이다!"

 

 "다녀왔습니다- 다자이 씨도 안녕하세요."

 

 "켄지도 안-녕."

 

 "으에- 켄지 바닥에 물- 뭐하다 온거야."

 

 요사노가 질겁하며 몸을 뒤로 빼자 타이밍이라도 기다리고 있었는 양 이미 초추리를 위한 안경을 낀 란포가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켄지가 맡은 임무는 단순한 심부름. 이 시간에 물을 뿌리며 정리하는 가게는 없지. 가게 까지 세차장이나 분수 조형은 제로! 그렇다면-!"

 

 "그, 그렇다면?"

 

 여전히 초추리에 흠뻑 빠져든 아츠시였다.

 

 "현재 밖에 비가 오고 있고 그것을 예상치 못했던 켄지는 다 젖고 말았다는 것이다! 더불어 신나서는 여기저기 물장난을 치다 온 거지!!"

 

 "아, 맞아요. 지금 밖에 비오는걸요."

 

 "감기라도 걸린거야?"

 

 "에- 아, 아니요. 절대."

 

 "아쉽네, 그거."

 

 "아쉬워 하지 마세요, 요사노 씨."

 

 "그러는 아츠시가 대신-"

 

 "죄송합니다, 함부로 끼어들어서!!"

 

 "비."

 

 얼빠진 표정으로 소매를 붙잡힌 다자이는 창 밖으로 시선을 내던졌다. 어제 왔더라면 더 좋았을텐데.

 

 "다자이, 그렇다면 어제 어째서 나카하라 츄야가 네 놈과 같이 있었는지는 어떻게 설명할 셈이지. 동창이라고 할 셈인가."

 

 "내가? 츄야랑? 그런 쿠니키타의 '이상' 이 철저히 부서지는 소리따위 하지 말아줄래."

 

 "다들 일 안할 셈이야? 사장님한테 한 소리 들어도 난 모른다고."

 

 요사노의 말에 급히 자리로 돌아간 아츠시와 쿠니키타에 다자이는 소리내어 웃었다.

 

 "아마 니가 제일 유력 후보 일걸, 다자이."

 

 "아."

 

 어쩔 수 없다며 머리를 긁적이며 다자이는 자리로 돌아갔다. 돌아간 의자를 되돌려 거꾸로 앉아 책상에 붙어있기 1분이 채 되지 않았지만 그는 온통 빗 속에 존재하고 있었다. 역시 그치지 않네. 그 편이 좋아. 응, 나도 좋아. 오다사쿠.

 

 하루의 끝까지 창살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는 것은 잔잔히 빗방울이였다.

 

 "비 그치지 않네."

 

-

 

 

 

비가 그치지 않네요=좀 더 곁에 있고 싶어요 라는 표현에서 빌려온건데

 

사실 암흑시대(흑의 시대) 편 보고 아- 이런거 좋겠다 해서

 

다 보자마자 몇 달 내내 연성 못했는데 한순간에 되고 마네..어째서

 

자살맨은 아무래도 좋지만 쓰다보니 츄야한테 이쁨이 가기 시작한다..

 

덕분에 잘 썼습니다, 음- 본인은 알겠지만

 

뚜이 (님) 리퀘스트 가 아닌 생축

 

-

 

 오키타 소고, 열 아홉. 화풍이 독특하기로 소문났다. 그러니 호불호가 격하게 벌어지는 그런 류에 속하기도 했다. 당연한 일이였다. 사람은 누구든지 새로운 것을 추구하거나 옛 것을 간직하려드는 법이니 말이다. 그의 그림에서는 형체를 찾아볼 수 없었다. 매번 형형색색만이 흩뿌려진 것이 전부였다. 무엇 하나를 표현해내는 것은 오로지 색 뿐이였다. 곧잘 위험한 발언도 해대는 녀석이였지만 단 한 가지만은 굳게 입을 닫아버렸다.

 

 "색으로 표현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글쎄요."

 

-

 

 "어-이, 콘도씨가 부른다고."

 

 작업실의 구석에 웅크리고는 두 손을 빤히 내려다 보던 소고에게는 들은 척 조차 용납되지 않는 듯 보였다. 어이-, 사람이 부르면 반응을 해야할거 아니야. 거참. 히지카타의 중얼거림과 함께 소고는 두 손을 털고 일어났다. 몇 날이고 밤을 샌 탓이겠지만 그렇다고 하여 평소 그리 살가운 인상의 소유자가 아니였음에 히지카타는 괜시리 흠칫하고 눈가의 주름이 잡혔다 사라졌다. 급하게 작업실을 나서는 바쁜 그를 붙잡았다.

 

 "야."

 

 "..뭔데요."

 

 "택배왔더라. 가져가라."

 

 역겹다는 듯 인상을 구기며 잡힌 손목을 세게 빼내어 메만지며 걸음을 재촉하는 그였다. 마른 입술을 축였다. 마침 색이 떨어져버린 탓에 작업의 한창에 멈춰야만 했었다. 그 부분이 영 석연찮았기 때문에 제때 도착한 제 물건에 안도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시간에 쫓기고 있을 따름이였다. 바빠 죽겠다고, 이쪽은. 이를 갈며 미닫이 문을 세차게 열자 익숙하다는 듯 웃으며 반기는 콘도가 있었다. 오, 소고. 얼른 여기 와, 앉아 봐. 앉아. 무슨 일인데요. 별 건 아니고- 그럼 갈게요. 중요하다고! 그리고 이어지는 한참의 눈싸움. 항상 져주는건 콘도였다. 애초부터 그런 사람이였다. 욕심내서 그러려면 충분히 그럴 수 있었음에도 가만히 기다려주는 사람. 작업 바쁠텐데 불러서 미안하다. 소고는 긴 소매를 휘적이며 소파 등에 몸을 묻으며 가만히 눈을 감았다. 굳이 보지 않아도 뻔히 보일 저 사람의 얼굴에 피식 웃음이 비집고 나왔다. 나이 어린 애송이 상대로 뭘 그렇게 매사에 진지한건지 아직도 이해할 수 없었다. 다만 한 가지만은 확실했다. 그런 사람이기 때문에 기꺼이 저를 받아준 것이라고. 소고는 자기 입으로 말하기도 무르지 않다. 그런 상대가 있다면 일순위는 혈족되시는 누나. 그 다음을 장식하는 분이 콘도 되시겠다. 정정하자면 일순위란건 이제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 정도. 몇 해 전 지병이 돋으면서 이래저래 합병이 겹쳐져 그 작은 몸뚱아리에 다 담지 못한 채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 공백기의 삶을 이어가게 도와준 장본인이니 무를 수 밖에 없는 노릇이였다.

 

 "이번 전시회 말인데, 토시로 파트까지 해도 될거 같아서 더 그리던가 아니면 2차로 미뤄뒀던 것들 까지 같이 전시해도 될거같아."

 

 "그 자식은 뭘 한다고 자식 파트를 빼요."

 

 "얼마 전에 개인 전시회 했잖아. 일부러 그 때부터 이번은 빠지기로 했었고 나한테 미리 얘기했어. 물론 너하고는 얘기가 안되있을 줄은 알았지만- 화 내지마!"

 

 "화 안났어요."

 

 "아..그래."

 

 "몇 장 더 필요해요."

 

 "열- 두어 점 정도."

 

 "전부 새로 안그려도 되죠."  

 

 "당연하지. 니 실력이 어디간다고."

 

 손도 대지 않은 차는 식어버렸다. 무심하게 자리에서 일어나는 소고에게 콘도의 시선이 따라붙었다. 미처 한 걸음도 떼지 못하고 소매를 거둬 주인을 기다린 잔을 들어 단숨에 비워냈다. 됐죠. 짧은 한 마디를 마무리로 소고를 작업실로 향했다. 그 잘난 '열 두어 점' 때문에 골 썩게 생겼으니 그 정도면 잘 참았노라 생각했다. 망할 자식. 중얼거리며 볼품없는 얇은 종이에 싸매여진 캔버스 여럿을 꺼냈다. 일거리가 늘었다는 생각보다 늦을지도 모른다는 초조함이 강했다. 바닥부터 벽까지 빼곡히 쌓은 최근 작업물에 절로 인상이 구겨졌다. 꼬박 두달하고 조금 더 남은 전시회 임에도 열 점 이상씩 그려내기엔 턱없이 부족할 뿐이였다. 

 유난히 소고의 전시회는 작게만 열었다. 크고 떠들썩하게 하는 갤러리가 아니였을 뿐 아니라 작가의 개인 의사가 반영된 것이였다. 조금 더 보고 싶다는 아쉬움이란 묘미를 남긴다 라고 평론가들은 잘들 떠들어대지만 혼자서들 북치고 장구치고 다 해먹으라며 고개를 내저었다. 마쳤다고 전시회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내지르며 뛰어다닐 상식에서 벗어난 사람은 없었지만 조용히 열고 싶다는 희망사항이였다. 그래서 대형 기획전 참여를 모두 거부하는 이유이기도 했다. 물론 덧붙이자면 거들먹거리는 자식들 그림 옆에 제 작품이 걸려있다는 것만으로 충분한 모욕과 수치라는 것이였다. 이 말은 그대로 출판될 예정이였으나 다음 인터뷰 타자였던 히지카타의 1차 검열에 걸려 세상의 빛을 보지 못했다. 더불어 콘도의 2차 검열로 그런 류의 발언들은 막혀버렸다.

 

 "야 내가 가져가랬지."

 

 "두고가지 그래요."

 

 "너 평소에 하던거 있으니까 그걸로 하면 될 줄 알았지."

 

 "전시회마다 컨셉 잡는건 왜 모르실까, 헛똑똑아."

 

 "열 두점 니가 다 안맡아도 되잖아."

 

 "뭐 그럼 잘나신 그 쪽께서 도로 회수해주시게."

 

 "쉰다고 했잖아. 할거 였으면 지금 노닥거리고 있겠냐."

 

 "네네. 잘났네요. 꺼져."

 

 "이것도 같이 왔더라."

 

 미닫이 문이 닫히고 그제서야 소고는 힘 준 어깨를 떨궜다. 이제껏 준비해온 컨셉과 상반된 컨셉으로 내어도 충분했지만 찝찝했기 때문이였다. 개인 소장인 갤러리인 만큼 전시회도 꾸준히 열고 있지만 냈던 그림을 또 낸다는 사실 자체가 스스로에게 용납되지 않는 부분이였다. 설사 그게 본래 제 파트가 아니였다는 사실에도 생각을 바꿀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프라이드 였고 철칙이였다.

 

 첫사랑.

 

 이번 전시회의 컨셉이였다. 단언컨데 이제껏 제 그림에 그런 감정을 담은 적은 없었다. 낯간지럽기도 했고 그다지 저와는 상관없기도 했다. 어쨋거나 그 이유가 어찌되었든 제 관심분야가 아니라는 점은 확실했다. 흔해빠진 여자 하나 덩렁 그려놓고 끝이다 하고 손을 놓고 싶지도 않았고 더군다나 그는 형체를 그리지 않았다. 그런 미묘함을 색으로 표현해내는게 오키타 소고 였지만 이러거나 저러거나 귀찮기 짝이 없는 얘기였다. 적당히 빨간색이나 캔버스에 뒤엎고 심장이니 뭐니 알아서들 떠들어대게 내버려두고 싶은 심정이였다. 평론가들이 제일 잘 하는 짓이잖아.

 머리를 헤집던 소고는 히지카타가 가져다준 소포로 몸을 돌렸다. 알게뭐야. 두 달이나 남았잖아. 두꺼운 소설책만한 크기의 상자를 갈라내자 보란듯이 자리한 것은 주황색 물감들이였다. 빼곡히 쌓인 물감들을 한참 바라보다 아직 제 손 끝에 남은 주황빛에 피식 웃음이 새어나왔다. 마저 작업할 수 있겠다. 복잡한 얘긴 잠시 미뤄두기로 했다.

 

-

 

 주황색으로 벌인 광란의 작업이 끝나자 그는 붓을 떨구었다. 사방에 색색이 튀었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그 편이 좋았다. 손등으로 턱선을 쓸어내렸다. 뜨거운 체온 사이로 식은 주황빛이 번지는 소리가 들렸다. 좋았다. 구석에 자리한 수도꼭지를 틀어 배수구 아래까지 색을 흘려보내었다. 그림에 해가 될까 작업실엔 보일러를 틀지 않기 때문에 덩달아 물까지 온수불능의 상태였다. 덕분에 사라진 색위에 시린 물방울이 맺혔다. 이걸로 끝났다. 제 파트의 메인은 끝을 매었지만 늘어난 파트 덕분에 욕짓거리를 올라왔지만 어둑한 방에 신경질적으로 슬리퍼를 끌며 스위치를 키자 두어번 깜빡이더니 환하게 밝히며 늦은 오후 내내 제가 저지른 현장을 적나라게 드러내주었다. 기꺼이 받아들이는 모습이였지만 담담했다. 기꺼이 라기보단 그저 일상에 불과했다. 6시를 조금 넘긴 시계를 한참바라보았다. 몇 시 였더라. 혼자 되내여도 소용없다는 사실을 알기에 씁쓸해진 소고는 짧게 기지개를 펴고는 물감들을 벽쪽에 밀어둔 사물함에 넣었다. 그 안은 온통 물감들이였다. 주황색. 조심스레 두손으로 닫고 이마를 박았다. 이마께가 시렸다. 저녁을 위해 발걸음을 돌리다 발치에 체이는 종이를 사그락하고 주워들었다. 수신인 뿐인 악질적인 편지라면 곤욕스럽긴 하지만 마지막 한 마디까지 지옥이나 가라고 열심히 써주시는 어디 사는 열혈팬들을 생각하며 작은 조소를 흘렸다. 그리고 그의 예상과 다르게 하얀 봉투에서 떨어진 것은 티켓 뿐이였다. 이 기지배가. 보란듯이 미간이 구겨지더니 휴대전화를 꺼내들었다. 익숙한 번호를 누르기 시작할 즈음 화면을 잠궈버렸다. 나름대로 생각따위 있을리가 없으니 넘어가자는 행위에 가까웠다.

 

 8시 40분 시작. 넉넉한 시간과 졸지에 두 자리나 차지할 수 있게된 좌석부자가 되어버렸다. 쓸모없는 짓만 골라서 하지, 이 기집애는. 모처럼의 VIP 석인 모양이였다. 제 예매는 3층이니 엄지 손톱만하게 보일게 뻔했다. 공짜로 좋은 자리라니 사양할 필요는 없었지만 모처럼 3층의 A열의 중간석을 사수했던 수고가 사라지는 것은 거부할 것이였다. 찬찬히 티켓을 다시 살피며 2층으로 올라갔다.

 

 "아, 오늘 작업 다 하셨어요?"

 

 "어."

 

 "전 남았는데 말이죠."

 

 "힘내라."

 

 "그러고보니 히지카타 씨 파트까지 하신다면서요."

 

 "니가 할래, 야마자키. 귀찮은데."

 

 "무슨 말씀이세요. 제 실력으로 무리에요. 제 파트도 벅찬데- 그건 뭐에요?"

 

 "아- 공연 티- 너 시간있냐."

 

 "오늘 작업분은 조금 남았는데..말이죠."

 

 "너 보러가라."

 

 팔랑이며 티켓이 야마자키의 눈가를 스치고 바닥으로 떨어졌다. 계단에 기대 희미하게 웃었다. 너 보러가.

 

 "오키타 씨, 이거..표 어떻게 구하셨어요?!"

 

 "그냥-"

 

 "이거 요즘 구하기 힘들텐데, 게다가 VIP 석!!..같은걸 저한테 주시면,"

 

 "난 피곤해서."

 

 "이거 표값만 15만...원! 이라는데.."

 

 손을 훠이 저어 보이며 소고는 층계를 올랐다. 나 바쁘다고 전해줘라. 야마자키는 멀뚱히 그런 소고의 뒷모습만을 올려다보았다. 이내 모습이 사라지자 다시 티켓으로 시선을 내리박았다. 전해달라고? 갸우뚱하다 뭔가 깨달았다는 듯이 소고가 사라진 위를 가벼운 충격에 싸인 눈으로 올려다보았다. 오키타 씨, 이거. 덧붙여 한 마디가 들려왔다. 사거리 쪽 꽃집에서 내 이름 말해라. 야마자키는 급하게 계단을 올랐다.

 

 "오키타 씨, 이거!"

 

 "얼른 준비해서 가."

 

 "어떻게 제가 가요!"

 

 "못갈게 어딨어. 여자애한테 고백받아도 그럴거냐, 나 피곤해."

 

 "그런게 아니잖아요!"

 

 "작업도 있고 히지카타 자식 파트 매우려면 시간이 어딨냐. 잠깐 눈 붙이고 말거니까 꽃 찾아가라. 그거 계집애 알레르기 있거든."

 

 픽하고 바람 빠지듯 웃어보였다.

 

-

 

 이런 엇나가는 행위를 나름 즐겼기에 따로 오페라 글라스 마저 소지한 상태였다. 조금 지연되고 있는 꼴을 보아하니 얼굴이 굳어 풀기 위할 따름일 것이였다. 이러나 저러나 여전히 버릇을 고치지 못했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앉아서는 1층이 보이지 않았기에 야마자키가 어떤 잡스런 자세를 취하고 있을지는 안타깝게도 볼 수 없었지만 대충 상상할 수는 있었다. 보나마나 우스운 꼴이겠지. 이내 지체에 대한 사과와 공연 시작을 알리는 벨소리가 극장 안에 울렸다. 서서히 불이 가라앉고 무대만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소고는 여유롭게 초점을 맞춰둔 글라스를 들어 한 걸음 나가오는 무용수를 보았다. 프로는 프로라고 생각하며 아직 옅게 굳은 얼굴에 슬그머니 미소를 띄웠다. 묶지않은 머리카락이 길게 허리께 까지 내려와 아직 가벼운 동작에 제 자리에서 머물고 있었다. 본래 핏기 가신 살갗이였으나 온몸으로 분노를 표출해낸 것인지, 전신화장이라도 한 것인지 불그스름한 손 끝이 파도 처럼 넘실거렸다. 왼 손을 힘 없이 들어올려 등 뒤로 떨구더니 바닥을 짚고 제자리를 위 아래로 배회하곤 그 자리에 자리 잡고 앉았다. 위로 목을 쭉 빼고 눈을 내리감은게 어깨 아래서부터 공연장 바닥까지 늘어진 머리칼에, 숨을 들이마시며 뒤로 턱을 빼내어 두 팔이 허공에서 유영하며 의심없이 내딛는 한 걸음에, 무던히도 내짓는 표정에 차마 말로 이루못할 손 끝에, 소고는 결국 어깨를 툭 떨구며 그 눈을 곱게 접으며 흩날리는 감정을 내버렸다. 누가 말했던가 당장의 눈 앞의 적보단 유종의 미라고. 그게 누가 되었든 한 마디 쏘아주고 싶은 마음이 한 가득 넘쳐 끝내 입가를 가리고 터져나오는 뜨거움에 아랫 입술을 베어물어야만 했다. 눈 앞의 하나 조차 집중치 못하는데 어찌 유종의 미를 거두겠느냐고. 도약하는 한 걸음에 허리께에서 펄럭이던 하얀 레이스가 면사포 마냥 날리고 하얀 두 다리를 감싸안았다. 아랫 입술을 잘근거리며 소리없이 터져나오는 박동에 아플 새도 없이 바쁘게 하얗게 바랜 동작을 쫓았다, 그 쌍안경의 두꺼운 유리알  너머로. 더할 나위 없이, 의심할 한 치의 여지조차 없이 그 뜨거운 손 끝에서 이뤄내는 선은 그의 뮤즈 였다.

 

 그가 막 갤러리에서 활동하기 시작할 무렵이였다. 고작 열 여섯의 제 감정 하나 토로할 줄 모르던 그 때였다. 학교는 마치기 바랬던 콘도의 손에 이끌려 원치도 않는 사회에 도로 던져지던 당시의 좌절감과 환멸감이란 쉬이 잊혀지지 않았다. 입학 시험조차 치루기 어렵다는 그런 곳에 어린 그의 밀어넣으며 네가 하고 싶은대로 해봐 라는게 단순한 헛소리에 그지지 않는다고 생각했었다. 모멸 당하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누이와 이별한 이후로 그의 살갗에서 유화 향이 사그라들었다. 제게 붓을 쥐어준 것도 누이였고 결국 놓게 된 것 역시 누이에 그치고 말았다. 평생 가까이 할 일따위 없으리라 죽는 날까지 믿었다. 꼴보기 싫다며 자해를 떠올릴만한 행위를 반복했고 수업은 커녕 출석일수가 얼마나 비었는지보다 채워져있는지를 확인하는게 빠를 지경이였다. 타이르고 달래고 큰 소리를 내어보아도 캔버스 앞에 서려하지 않았다. 그 앞에서 자신은 죄인에 불과하다는 의미심장한 말만을 늘어놓았다. 지속되는 수전증과 불면증에 온전한 하루를 시달려야 했다.

 

 "매일 같이 여기서 뭐하는거야."

 

 "..신경 꺼."

 

 "니가 내 연습하는걸 방해하니까 그런거지."

 

 "그래."

 

 미술실 따위는 근처도 가고 싶지 않았고 저를 찾는답시고 활기치고 다니는 꼴도 보고 싶은 추호도 없었다. 좋은 말로하면 자기가 하는 일을 사랑하고 자신감을 가지는 것이지만 그의 눈으로 비춰진 것은 그저 꼴사나운 짓거리에나 뒤지지 않았다. 기본적으로 음악과나 미술과나 무용과나 사이좋지 않은 관계를 잘도 유지해가고 있었기 때문에 존재감도 적으니 그런 소고에게 있어 빈 체육관이란 장소는 몸을 숨기기에 적합하다 못해 제 집과 같았다. 체육관은 무용과가 점령했기 때문에 정규 수업으로 체육이나 전시를 위해 빌리지 않고서야 발걸음할 이들도 없었다. 그래봐야 겨우 쪽잠이나 청할 뿐이였다. 그 늦은 시간에 누가 남아있을 줄이야 생각조차 해 본 적도 없었고 이어폰이 거친 발소리를 죽여주었기에 눈치 챌 기회도 없었다. 그리고 그런 장소를 침범당해버렸다.

 

 "넌 여기서 뭐해. 무용과 아니잖아."

 

 "피난처."

 

 "음악과야?"

 

 "미술."

 

 "아, 안그려?"

 

 "안그려."

 

 "왜 여기 입학한거야?"

 

 "내가 어떻게 알아."

 

 "넌 아는게 뭐냐."

 

 "없어."

 

 "진짜 깨끗한 뇌구나."

 

 "신경 꺼라." 

 

 "할 일 없으면 나 턴 봐줘."

 

 "싫어."

 

 "너 여기 있는거 미술과 쌤한테 말하면 되는거지?"

 

 "....어쩌라고."

 

 "봐달라고."

 

 "본다고 내가 아냐."

 

 "그러니까 봐달라는거잖아, 멍청아. 모르는 사람이 봤을 때 어색하면 그게 진짜 끝장나는거지. 같은 무용과 애들이 보는거랑 다르다고, 알겠냐."

 

 긴 머리를 한 갈래로 높게 질끈 묶고 큰 반팔 셔츠가 어깨를 타고 흘러내렸다. 가볍게 한 발을 찍고 돌았다. 말 그대로 제자리에서 돌았다.

 

 "이상하냐."

 

 "아니."

 

 "그럼 어떤데."

 

 "괜찮아. 됐지, 이제 귀찮게 굴지마."

 

 그저 유별난 애 정도로 밖에 비치지 않았다. 미치지도 못할 헛소리 사이에 끼여 있는 것보단 훨씬 낫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일까, 일수는 점점 채워져갔다.

 

 "제대로 수업 안들으면 유급할지도 몰라, 너."

 

 "상관없어."

 

 "상관있어."

 

 결코 귀찮은건 하루이틀이 아니였다.

 

 "귀찮게 굴지마."

 

 "그럼 내 부탁 하나만 들어라. 그러면 그만두지 뭐."

 

 "내가 뭐하러 그런 짓을 해."

 

 "그럼 알아서 하던가."

 

 새침하게 묶어올린 머리칼이 휘청거렸다. 허리께에 조금 닿지 못하고 등허리를 치대는 색에 소고는 미간을 구겼다. 거슬려.

 

 "뭔데."

 

 "나 그려줘."

 

 "그림 같은거 안그려"

 

 "미술과 입에서 저런 말을 들을 줄이야." 

 

 그럴 줄 알았다는 과장된 팔동작과 비웃음에 가까운 표정에 일부러 높이는 소리.

 

 "그릴 수 있잖아, 그러니까 따지자면- 재능낭비."

 

 "....이제 생각이 안난다고."

 

 "무슨 소리야."

 

 "어떻게 했는지 모르겠다고, 하고 싶어도 못해. 형체같은거 다 사라져버리는데."

 

 "색."

 

-

 

 [잘도 안왔다- 이거지.]

 

 "분명 바쁘다고 야마자키 자식한테 전하랬다."

 

 [니가 봐야 의미가 있다니까!]

 

 "제대로 꽃도 보냈다."

 

 [그거야 당연한 도리 아니야? 여전히 깨끗한 뇌인거야, 넌?]

 

 "그 도리는 다 했으니까 그만하라는 소리지."

 

 [진짜- 얼마나 당황했는지 알아! 당연히 센터에 너 있을 줄 알았는데 멍-한 얼굴이 하나..!]

 

 "멍하다니 들으면 섭섭해하겠네."

 

 [니가 섭섭해하라고!!]

 

 "뭐- 별로."

 

 [이번에 평론가 자식들 평도 좋단 말이야!! 내가, 진짜 어! 얼마나! 망할 놈아!!]

 

 "네네."

 

 [너무하네.]

 

 "이제 알았냐."

 

 [아니. 익숙해.]

 

 "그럼 다행이고. 그런 김에 마지막 턴 때 크로스 하지 말지. 크로스는 그닥 취향이 아니라서 말이야."

 

 [어- 잠깐만 뭐라고?]

 

 "끊는다-"

 

 [야! 야! 야 이 도S 자식아!!]

 

 새삼 한결 편해진 얼굴을 하곤 아무렇지도 않게 종료버튼을 누른 소고는 다시 걸려올 전화에 화면조차 끄지 않고 끊어진 통화기록을 내려다 보았다. 물론 그럴 새도 없이 도로 걸려와버렸지만.

 

 "뭐."

 

 [야아아-!!]

 

 "야아아-!!"

 

 휴대전화 너머로 들려오는 짧게 끊어지는 목소리와 함께 들려오는 육성에 그의 시선은 당연스레 문가로 갔다. 세차게 미닫이 문이 열리고 조만간 새로 장만해야될지도 모를 휴대전화를 아스라질것 마냥 쥐고 흡사 제 머리색과 비스므리한 얼굴색을 한 여자를 태연스레 맞이했다. 아 왔어.

 

 "아 왔어? 왔어어? 왔냐고?! 왔다 이 자식아!"

 

 "소리 좀 그만 지르지."

 

 "안지르게 생겼냐!"

 

 "알아서해."

 

 당장이라도 한 대 쥐어팰 얼굴에 소고는 무죄를 주장하는 양 두 손을 들어보였다. 미리 고통에 대비해 어금니를 맞대어 물었다. 눈을 살포시 내리감으면서 그 찰나의 고통을 폐부로 느끼기도 전에 식은 손이 목덜미를 감쌌다. 품 안 가득 밝기만 했다.

 

 "뭐하냐."

 

 "..알아서 하라며."

 

 "안기는건 뭐 하자는 건데."

 

 "아 이럴땐 좀 가만히 모른척하라고! 이러니까 니가 연애도 못하고- 책으로 연애할 새끼지 아주.."

 

 "이럴 땐 책에서 밀어내래."

 

 "그딴 책 갖다버려!"

 

 소리로 터져나왔다. 환희를 참지 못해 기어코 터져버렸다. 

 

 "뭐, 뭐가 웃겨."

 

 "별로."

 

 "...보러 왔으면 왔다고 했으면 좋았잖아."

 

 "내 돈낸건 봐야지."

 

 "어디에 있었는데."

 

 "3층 A열 센터석."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올려다 보았다. 그에 진짜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졸업 전시회 출품은?"

 

 "다 끝났는데."

 

 "왠일이래."

 

 "졸업하고 싶어서."

 

 "아."

 

 빠른 수긍과 함께 도로 가슴팍에 얼굴을 묻자 허리께까지 떨어지는 머리카락 위에 손을 얹어 쓸어내렸다.

 

 "밥."

 

 "그게 어쨌다고."

 

 "먹자고. 다른게 있냐."

 

 "니가 사냐."

 

 "남자친구라는게, 지 애인 무대는 이상하게나 봐놓고는."

 

 "아, 그거 기억 왜곡."

 

 "니가 사!"

 

 겉옷을 집어들며 작업실 전등을 껐다. 잔뜩 열려버린 문과 문 사이 가득 빛으로 찼다. 먼저 앞서 기다리는 뒷모습에 그늘이 졌다.

 

 "야."

 

 대답은 없었다.

 

 "야."

 

 마찬가지 였다.

 

 "카구라."

 

 "응?"

 

 "..가자."

 

 그 자리는 온전히 온기였다.

 

-

 

 "무슨 색, 무슨 소리야."

 

 "색만 쓰라고. 미술과 친구랑 미술관 간 적 있는데 색만 쓰기도 하던데. 그거 너도 하면 되잖아."

 

 "넌-"

 

 고개를 갸우뚱 하며 비킨 자리로 체육관의 센 조명이 눈에 닿았다. 아 씨.. 연신 감았다 뜨기를 반복하는 그의 눈가에 물기가 섞여들었다. 분명 깨끗하다 말 못할 바닥에 하얀 연습복을 입은 다리가 주저 앉았다.

 

 "눈 떠봐, 아픈거야?"

 

 떠지지도 않는 눈을 억지로 비집으며 물기가 섞여 위로 말려올라간 자리에 선명한 주황이 자리했다. 단지 그것 뿐이였다.

 

 "괜찮아?"

 

 "..야, 너."

 

 "내가 한거 아니거든."

 

 "이름 뭐냐."

 

 "나?"

 

 "그럼 누구."

 

 "카구라."

 

 빠르게 번져나갔다.

 눈을 감아도 짙게 퍼져나간 주황이 분명했다.

 

-

 

작년에 리퀘받고 올해 끝냈다(!)

미묘하게 게을러 보이지만 미묘한게 아니라 확정된 사실이다!!!

생일은 지난지 오래라고 하기엔 이제 의미 없지만 그냥 그렇다고 생각해주셨으면 합니다.

 

아 편의상을 위해 '~해' 는 생략해버렸습죠..

대충 2년이였나 2년! 뒤의 소고+5년 후의 카구라 모습으로 봐주셨으면 합

그게 이미지 상 맞아떨어지니까..어-

 

미안하고 사실 후반부 끝낼 수가 없어서 강제 종료 시켜......읍읍-!

 

미안하다아아아ㅏㅏ!!!!!!!!!!!!!!!!!!!!!!!!!!!!!!!!!!!!!!!!!!!!!!!!!!!!!!!!!!!1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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